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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로 베스트 앨범
2002-03-21

위대한 욕설

닥터 드레의 1992년작 <The Chronic>, 스눕 도기 독의 93년작 <Doggystyle>에 이어 최근 <Death Row Greatest Hits>가 라이선스로 발매됐다. 데스 로의 음반이 잇따라 라이선스로 나오다니, 정말 힙합 관련 문화가 국내에서도 대세이긴 한가 보다.

데스 로(Death Row), ‘사형수 감방’이란 이름만큼이나 험악한(?) 갱스터랩의 산실. “Nuthin’ But A ‘G’ Thang”(갱스터일 뿐)이라고 당당히 읊조리는 닥터 드레를 필두로, 총과 마약이 지배하는 거리의 거친 삶을 적나라하게 내뱉는 갱스터랩과 G-펑크로 90년대 힙합의 흐름을 이끌었던 레이블. 폭력, 마약, 섹스에 대한 과격한 직설법과 욕설이 넘치는 데스 로의 음악은 늘 ‘parental advisory’(부모의 조언 요망) 같은 딱지를 훈장으로 얻었고, 국내에서는 결코 라이선스 음반으로 나올 수 없었다. 꽤 묵은 이들 음반의 발매소식에 눈길이 가는 것도, 국내 음반사인 알레스뮤직에서 라이선스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미 2만∼3만원을 기꺼이 투자해 고가의 수입음반을 사들인 힙합 마니아들에게는 놀라운 만큼 좀 억울한 일이겠지만.

데스 로 레코드는 92년 닥터 드레와 서지 나이트에 의해 설립된 미국의 랩 전문 인디레이블. 닥터 드레는 힙합 초기인 70년대 말부터 명맥을 이어온 파티용 랩이나 흑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에 대한 성토를 담은 퍼블릭 에너미 같은 동부의 랩과 달리, 범죄와 마약으로 얼룩진 게토의 삶을 담은 서부 랩 진영의 N.W.A. 출신이다. 그의 솔로 데뷔음반인 <The Chronic>은 N.W.A.의 연장선상에서 갱스터랩을 끌어냈고, 특히 펑키한 비트와 솔 혹은 R&B의 선율, 베이스와 신시사이저 등의 실제 연주를 적극 활용한 G-펑크(Gangsta Funk) 스타일을 만들어내면서 이후 힙합의 경향을 바꿔놓은 기념비적인 음반으로 평가받았다.

데스 로의 첫산물인 이 음반에서, 닥터 드레에게 발탁된 스눕 도기 독이 느릿하고 간결한 특유의 맛깔스런 래핑과 함께 스타로 떠올랐다. 닥터 드레가 탁월한 프로듀싱 감각으로 새로운 힙합의 흐름을 이끌었다면, 스눕 도기 독은 재능있는 래퍼로 그와 함께 데스 로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내 음악은 히트를 치고 난 가석방이 되어 슬슬 거닐지”라며 갱이자 래퍼의 생활을 묘사한 <Who Am I(What’s My Name)?> 등으로 인기 차트 정상을 누빈 스눕 도기 독의 데뷔음반 <Doggystyle>은, 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데스 로의 아성을 굳힌 바 있다.

<Death Row Greatest Hits>는 이같은 데스 로의 역사를 히트곡으로 편집한 격. 닥터 드레와 스눕 도기 독은 물론, 투팍 샤쿠르, 레이디 오브 레이지, 다 독 파운드 등 데스 로와 인연을 맺은 스타들의 히트곡을 2장의 CD에 담았다. 사실 이 음반이 나온 96년을 기점으로, 데스 로는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닥터 드레가 떠나고, <All Eyez On Me>로 대성공을 거둔 투팍이 피살되고, 90년대 전반을 풍미한 갱스터랩의 전성시대도 갔으니까. 하지만 뒤늦게나마 데스 로의 음반들에 귀 기울이면서, 우리에게는 생소했으나 힙합의 한축을 장식한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황혜림 blauex@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