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류재림] “한국 극영화 보유율 80% 달성하겠다”

류재림 한국영상자료원장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려니 힘들다. (웃음)” 30여년간 카메라를 들었던 류재림 신임 한국영상자료원장이 카메라 앞에 서게 되자 멋쩍은 듯 흘린 얘기다. 류재림 원장은 <코리아헤럴드> <서울신문>의 사진기자 출신으로 앞으로 3년간 영상자료원을 이끈다. 당장 파주보존센터가 5월19일 개관 예정이다. 부족했던 수장고 문제가 해결됐고, 안정적인 이원보존체계가 구축됐다. 동시에 상암동과 파주로 조직이 분리되면서 조직 및 시스템 안정화에도 힘써야 한다.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류재림 원장의 말이 엄살은 아니리라. 변화와 도약의 시기를 맞이한 영상자료원의 수장으로서 류재림 원장이 구상하고 있는 영상자료원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지난해 10월 한국영상자료원장으로 임명됐다. 부임 후 세달이 흘렀는데, 영상자료원장의 자리에서 업무를 파악해보니 영상자료원이 어떤 기관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전공이 사진이라 원장으로 오기 전부터 영상자료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것과 내부에 들어와서 보는 것은 차이가 있더라. 외부인이었을 때에는 아무래도 영화관, 박물관 등 외부로 보여지는 서비스 사업들에 관심이 많았는데, 원장으로 와서 업무 파악을 해보니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유익한 공공사업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영상자료원을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하고 싶다. ‘원칙’, ‘창의’, ‘보편’이다. 다시 말해 원칙에 입각해 수집•보존하고, 창의적으로 훼손된 자료를 복원하며, 누구나 손쉽게 한국영화를 접할 수 있도록 보편적 활용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영상자료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병훈 전 원장 역시 사진기자 출신이었다. 사진기자 출신이라는 이력이 영상자료원장 업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나.

=또다시 사진기자 출신이 영상자료원장으로 와서 우려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웃음) 하지만 사진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촬영하면서 자료 보존에 대한 중요성을 누구보다 크게 느꼈다고 자부한다. 또한 영화는 연속된 사진의 예술이기 때문에, 보존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그간의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전문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오랜 기간 언론계에 종사하다보니 다방면에서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하다. 그동안 언론인 출신인 조선희, 이병훈 전임 원장의 노력으로 영상자료원이 많은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영상자료원의 공익사업들을 알리고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싶다.

-앞으로 3년간 그리고자 하는 큰 그림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료 이원보존체계와 디지털 보존의 안정화이다. 지난해 12월 파주보존센터가 완공됐다. 현재 한창 자료 이전 중이다. 올해는 파주보존센터의 보존고와 복원장비 세팅을 마무리하고 조직체계와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일에 주력할 것이고, 내년에는 자료 보존과 복원 품질, 그리고 시네마테크 서비스를 확대해나갈 것이다. 임기 마지막해인 2018년에는 영상자료원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서비스 인프라를 확장하려고 한다. 대외 인지도를 높이는 일 또한 중요하다. 영화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들은 영상자료원을 아직 잘 모르더라. 외부로 나가 전시를 하는 등 향후 3년간 영상자료원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업무를 추진할 계획이다.

-영상자료원의 업무가 크게 자료 보존과 활용이라고 한다면, 보존의 측면에서 또 활용의 측면에서 세워둔 세부적인 계획들은 무엇인가.

=지난해 영상자료원의 2020년 비전과 향후 5년간의 중점과제를 마련했다. 첫째가 한국 극영화 보유율 80% 달성이다. 일제시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초기 극영화가 많이 유실됐다. 국내외 조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제작편수 대비 극영화 보존편수를 80%까지 올릴 계획이다. 두 번째는 보존 복원 100% 자립화 및 한국영화 100선 디지털화다. 파주보존센터가 운영되면 그동안 외주에 의존했던 디지털 복원을 점진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또 복원을 위한 생산라인이 늘어나면서 복원 수량도 확대될 텐데, 2020년까지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기술 자립과 더불어 2014년 우리가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을 모두 최신 품질로 디지털화할 것이다. 마지막은 (온•오프라인 통합)시네마테크 이용객 500만명 달성이다.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해 지리적 제약 없이 쉽고 빠르게 한국 고전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영화 필름을 이원보존할 수 있는 수장고 건립은 영상자료원의 숙원 사업이었다. 2014년 기공식을 가진 파주보존센터가 올해 개관한다. 파주보존센터의 역할을 설명해달라.

=계획대로 지난해 12월 파주보존센터가 완공됐다. 하지만 자료 이전과 이전에 따른 정밀 실사 그리고 현상설비 구축과 인테리어까지 마치려면 4월까지는 바쁘게 개관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정식 개관은 5월19일로 예정하고 있다. 개관 기념 영화제와 국제 심포지엄도 준비 중이다. 파주보존센터 건립의 의미는 국내에서 제작된 영화 자료를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우선 향후 20∼30년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될 영상자료 보존에 대비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현재 상암동 보존고의 수장률은 100%이다. 수장고가 꽉 차 더이상 자료를 보존할 공간이 없다는 의미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생성되는 자료의 양도 상당히 증가했는데, 앞으로는 공간이 없어 보존하지 못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자료의 이원보존이 가능해져 재해와 재난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파주보존센터 건립 이전에도 국가기록원 공간을 임대해 일부 자료에 대한 이원보존을 실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임대공간이었고, 파주보존센터 건립 이후 다른 선진 아카이브들과 마찬가지로 본격적인 이원보존을 실시하게 된다.

-파주보존센터에 필름 인화•현상 설비도 구축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 앞으로는 자체 필름 현상이 가능해질 것이다. 디지털 시네마가 본격화되면서 민간 현상소가 모두 문을 닫았다. 하지만 아카이브 입장에서는 보존 매체로 필름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필름 현상이 필수적이다. 디지털의 경우 재생장치가 업데이트되면서 계속해서 바뀌는 점, 소실의 불안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필름은 관리만 잘하면 100년이고 200년이고 충분히 보존할 수 있다. 2014년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인수받은 필름인화현상 장비를 파주보존센터에 설치해 자체적으로 필름 생산이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예정된 필름 복원 사업, 한국 고전영화 발굴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아직 작품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국내 우수 고전영화를 중심으로 4K 고해상도 작업 라인을 통해 30여편 이상을 디지털화하고, 공개와 활용을 목적으로 HD 2K 저해상도 작업 라인을 통해 10편 이상을 디지털화할 계획이다. 그리고 자체 4K 복원 시스템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고품질 복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발굴 사업 역시 올해에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발굴한, 일제강점기 우리의 생활상이 담긴 기록영상을 2월 말에 언론을 통해 최초 공개할 예정이다.

-시네마테크 영화관, 한국영화박물관, 영상도서관 운영사업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올해는 시설 환경 개선에 중점을 둘 것이다. 영화박물관은 지난해 말 대대적인 리뉴얼을 했지만 영화관과 도서관은 2007년에 상암동으로 이사 온 이후 한번도 리모델링이나 환경 개선을 하지 못했다. 1월 말부터 2월까지 한달간 영화관과 도서관 리모델링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좀더 편리하게 영상자료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회원제와 통합회원 관리 시스템, 자체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내년에 야심차게 준비 중인 영화 기획전이 있다면.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쿠엔틴 타란티노 특별전, 김기덕 특별전, 페드로 코스타 특별전, 프랑수아 트뤼포 특별전, 하라 세쓰코 특별전 등이 준비되어 있다. 파주보존센터 건립 기념 영화제, 이난영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 독일영화 기획전 등도 마련되어 있다.

-원장으로 부임 후 각 언론사의 협조를 받아 영화 관련 사진자료 수집 사업도 적극 추진 중이다. <씨네21>과는 30만점의 사진자료 기증 협약을 맺었다.

=그간 영상자료원은 필름(극영화)에 비해 사진 등 지류자료 관리에 취약했다. 과거 극영화가 많지 않았던 시절부터 ‘필름만이라도 잘 보존하자’는 인식에서 비롯된 듯하다. 사진자료의 양은 필름만큼 많은데, 필름 중심으로 조직 구조와 인력 배분이 이루어졌었다. 지난해부터 비필름자료 보존 부문과 수집된 자료를 분류하고 조사하는 카탈로깅(목록화) 업무에 인력을 충원해 보다 많은 양의 자료를 보존•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더불어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방대한 아날로그 자료들이 방치되거나 폐기처분되는 경우가 늘고 있어 지금이 영화 관련 사진자료를 수집하는 데 적기라고 판단했다. <씨네21>과의 협약은 언론사와 국가 아카이브가 자료 보존 협약을 맺는 최초의 사례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 고전영화의 리스트 혹은 배우 리스트가 궁금하다.

=아주 어렸을 적 본 김승호 주연의 <마부>(1961), 동양영화사에서 만든 최하원 감독의 <독 짓는 늙은이>(1969),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1974)이 당장 떠오른다. 배우라면 남정임, 정윤희, 안인숙 같은 여배우들을 좋아했다. (웃음) 어렸을 적 극장에 대한 기억도 선명하다. 지금은 사라진 극장인데, 신설동 노벨극장에서 월트디즈니의 장편다큐멘터리 <사막은 살아 있다>(1954)를 본 기억이 남아 있다. 미국 서부 사막지대를 배경으로 온갖 동식물의 성장을 컬러필름에 담은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였다. 삼선교 동도극장과 미아삼거리 대지극장에도 자주 영화를 보러 다녔다. 피카디리, 단성사, 스카라극장에도 많이 갔었고, 지금 생각하면 극장 사진이라도 기록으로 남겨놓을걸 싶다. 그땐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웃음)

-처음 사진에 매료된 계기는 무엇인가.

=중학교 때까지 성악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땐 성북구 합창대회에서 <초록바다>를 불러 1등도 했다. (웃음) 그러다 연극이 하고 싶어졌다. 서라벌고등학교에 입학해 연극부에 들어갔다. 기주봉 배우가 연극부 1년 선배, 문창길 배우가 연극부 2년 선배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연극 <전하>에서 도승지 역을 맡았는데, 첫 대사가 “야밤에 죄송합니다, 전하”여서 별명이 ‘야밤이’였던 적도 있다. (웃음) 대학도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집안의 반대가 심해서 어쩌다보니 결국 사진과에 들어갔다. 이후 충무로에서 프리랜서로 작품 사진을 찍다가 1985년에 <코리아헤럴드>에 입사했고, 1988년에 <서울신문>으로 이직했다. 서울미문화원점거사건(1985년 5월23일)이 벌어진 날이 사진기자로서의 첫 출근날이었던지라, 출근하자마자 3일을 밤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와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진기자로 일하는 틈틈이 나만의 작품사진을 남겼더라면 하는 점이다. 사진작가로선 살롱사진보다는 리얼리즘사진에 관심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아카이빙의 의미에 대해 개인적 정의를 내려본다면.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 윤리강령에 따르면, 원본자료를 창작자의 의도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장 유사한 형태로 후손들에게 전수해주는 것이 아카이빙의 목적이다. 그러한 정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활용적 차원에서 아카이브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다. 아무리 희귀하고 좋은 자료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이 공평하고 보편적으로 영상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보존된 자료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개방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카이브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