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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 북유럽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는 영화 <히어 애프터>

17살 소년 욘(울리크 문테르)이 마을로 돌아왔다. 떠난 지 2년 만이다. 마중 나온 아버지와의 사이는 어딘가 어색하다. 가족은 아버지와 남동생이 전부로, 가까운 곳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묘하게 여성성이 부재하는 가족이다. 식사하고 운동하고 쇼핑하는 일상이 이어지지만 소년 욘과 가족 그리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묘한 적의와 긴장감이 감돈다. 2년 전 소년 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건 영화 <히어 애프터>가 과거의 미스터리를 돌아보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세계엔 손쉬운 공감도, 치열한 고발도, 인간적 포용도 없다.

마을 사람들의 적대감에 고독하게 맞서는 소년이라는 설정은 영화 <더 헌트>를 강력하게 연상시킨다. <이다>의 촬영감독 루카시 잘이 선보이는 견고한 앵글과 절제된 미장센은 영화의 미학적 입장을 분명히 한다. <히어 애프터>는 근래의 인상적 북유럽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는 영화다. 감독 매그너스 본 혼은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및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이 작품을 통해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격렬한 전쟁이나 파열적 폭발 없이 인간 본성의 폭력성을 섬뜩하게 드러내는 극사실주의적 연출이 인상적이다. 심지어 이 영화에는 배경음악조차 없다. 인간 본성의 심연을 치열하게 응시하는 태도와 입장이야말로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견고한 태도다.

오가는 일상적인 대화와 포즈 속에서도 내면의 불신과 적의가 드러난다. 마을 사람들, 학교 동급생들 그리고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 합리적인 교양인들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차가운 파시스트들이다. 하지만 기이한 점은 이 영화에서 소년 욘이 주위의 편견과 적대에 맞서야 하는 가련한 희생자인 것만도 아니라는 점이다. 욘 역시 폭력성에 둔감한 차가운 심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줄거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화가 있다. <히어 애프터>가 그런 영화다. 인간의 본성을 파고들지만 우리는 누구의 입장에도 쉽게 공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한순간은 우리의 마음을 잠시 동요하게 만든다. 일상적이고도 사소한 폭력과 내면의 파시즘을 고요히 따라가는 영화 <히어 애프터>는 그 동요의 순간에 영화의 힘을 응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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