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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인터뷰] "긴장하는 것보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 - <아가씨> 용필름 임승용 대표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6-07-07

“감독님의 스완송을 한번 만들어보시라.” 3년 전 무더웠던 여름의 어느 날, <표적>(감독 창감독, 2014) 크랭크인을 앞두고 진행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용필름 임승용 대표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아가씨>라는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올드보이>(2003) 이후 거의 10년 만에 박찬욱 감독과 호흡을 맞추게 된 소감으로 그는 마이클 잭슨의 오랜 프로듀서였던 퀸시 존스를 예로 들며, <아가씨>를 “박찬욱 감독의 스완송으로 만들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그가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 판권을 구매해 박찬욱 감독에게 전달하지 않았더라면,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박찬욱 감독에게 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아가씨>를 볼 수 있었을까. 상수동에 위치한 용필름 사무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임승용 대표는 “그때 했던 말이 <아가씨>를 세상에 내놓기까지 꽤 무거운 짐”이었다고 고백했다.

-400만 관객을 돌파한 지난 주말, 회식했다고.

=공식적인 프로모션 기간이 끝나서 수고했다고 서로 격려하려고 마련한 자리였다. 시간 되는 투자사, 제작사 직원, 배우, 스탭 모두 모여 밥 먹고, 간단하게 맥주 한잔했다.

-인사말도 했을 텐데.

=거창한 말이 필요하겠나. 그냥 수고했다고 말했다. <아가씨>라는 한 챕터를 끝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400만이라는 숫자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

=프로듀서로서, 제작자로서 감독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이 최대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예산과 시간을 잘 지킬 것, 상업영화니까 흥행이라는 성과를 낼 것. 만만치 않은 예산을 운용했음에도 세 가지를 잘 지켜 거둔 성적이라는 점에서 <아가씨>는 훌륭한 프로젝트였다고 자평한다.

-아쉬운 건 없나.

=흥행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다. 마음속으로만 박 감독님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흥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는데 그걸 달성하지 못한 건 좀 아쉽다.

-3년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에게 최대한 벽이 되어드리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벽 역할을 제대로 한 것 같나.

=스스로를 평가하는 건 주관적일 수 있으니 박 감독님께 여쭤봐야 할 질문 같다. 그럼에도 되돌아보면 최대한 노력한 것 같다. 감독님께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제게 주시고, 작품에 더 깊게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렸다.

-잘 알려진 대로 <아가씨>는 처음에 영어영화로 시도됐다가 1930년대 한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각색 방향을 바꿨다. 박찬욱 감독에게 그 아이디어를 제안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 드렸던 제안은 1930년대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배경으로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이 존경하는 소설이 있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라는 작품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세라 워터스가 <흰옷을 입은 여인>이 <핑거스미스>의 앞이나 뒤에 놓을 만한 소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이 소설이 <핑거스미스>의 전사 같은 이야기라는 얘기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나 <핑거스미스>가 표현하는 건 근대화 시기의 영국인데, 영어영화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기획자로서 원작 소설에서 가지고 올 수 있는 원형은 무엇일까. 그게 근대성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근대성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시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당대 많은 소설가들이 친일로 돌아서면서 사상적으로 이전과 다른 행보를 보인 아이러니를 포함해, 근대화 과정에서 몰락한 귀족 이야기라든가, 계급 갈등 같은 풍경들을 펼쳐놓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점에서 우리 역사에서 근대성을 표현할 수 있는 시기를 언제로 정하는가가 중요했다. 처음에는 화이트칼라라는 말이 처음 생겨났던 다이쇼(다이쇼 천황의 통치를 가리키는 시대 명칭으로, 1912년 7월30일부터 1926년 12월25일까지를 가리킨다) 시대가 어떨까 했다가 근대성이 진정되어 있는 1930년대가 적절하겠다 싶어 1930년대를 제안드렸다.

-원작 판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특정 시대와 사용 언어를 명시하지 않은 것도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올드보이>(2003), <홍길동의 후예>(2009), <방자전>(2010), <표적>(2014) 등 소설, 만화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면서 내린 결론은 각색하는 데 제약이 될 만한 것들은 걷어내야 한다는 거였다. 각색한 이야기는 원작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같은 조항 말이다. 당신의 원작은 존중하지만 그 원작을 가지고 영화로 만드는 건 우리의 선택임을 인정해달라는 거다. 다행스럽게도 세라 워터스는 우리의 의도를 이해해주었다.

-촬영현장에는 잘 안 나갔다고.

=첫날 밤샌 뒤 ‘아, 안 되겠다’ 싶었다. (웃음) 그 이후로 현장에 가더라도 퇴근을 일찍 했다. 숙소에 가서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일찍 퇴근했다는 건 그만큼 현장에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제작자가 현장에 오랫동안 머무는 게 썩 좋아 보이지도 않고.

-왜색, 노출, 동성애, 폭력성 등 리스크 4종 세트 때문에 개봉 직전까지 마음을 졸였을 것 같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영화를 만들 때 긴장감이 없는 것 같다. 긴장이 긴장을 낳고, 그게 슬럼프로 발전하지 않나. 그건 일을 할 때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긴장하는 것보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면 안 보이던 것까지 보게 되고, 실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빨리 차단할 수 있다. 그래서 긴장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게 버릇이 된 까닭에 어느 순간부터 긴장을 하지 않는다. 가끔은 그것도 문제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에는 기술시사 때 애를 좀 태웠다. 편집하는 내내 영화를 수없이 봤지만, 큰 스크린에서 볼 때 느낌은 다르니까. 무언가를 실수하지 않았을까 초조하고. 기술시사만 잘 넘기면 그다음 단계부터는 그냥 일이니까.

-정지우 감독의 신작 <침묵>은 얼마 전 오디션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손홍뢰, 곽부성이 출연한 중국영화 <침묵의 목격자>(감독 비행, 2013)가 원작이다. 재벌(손홍뢰) 딸이 아버지의 애인인 연예인을 살해하면서 검사(곽부성)와 여성 변호사(위난)가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는 내용의 이야기다. 플래시백을 통해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른 인물의 시점에서 재구성하고, 그때마다 진범의 정체가 다르게 드러나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원작의 어떤 점이 흥미로웠나.

=우리는 어떤 사람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지 않나. 언론이 다루는 내용만 가지고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읽는 세상이잖아. 이 영화는 그런 풍토를 꼬집는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것이 과연 진실인가,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건 아닐까, 세상에 진실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나도 진실을 모를 수 있다. 그게 나나 정지우 감독님이 이 아이템을 결정할 때 재미있게 생각한 메시지다. 플래시백을 통해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원작과 달리 우리는 아마도 묵직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 같다. 언제나 이야기에 어떤 장점이 느껴져야 그걸 삶아서 영화로 실어나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을 바라보는 접근 방식과 통찰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어디까지 진행이 됐나.

=정지우 감독이 아직 각색을 하고 있다. 최민식 선배가 원작의 손홍뢰 역할을 맡기로 했다. 그를 변호하는 변호사는 박신혜로 결정됐다. 원작에서 변호사를 연기한 배우 위난은 나이가 좀 있는 설정인데, 연령을 낮췄다.

-정지우 감독이 <침묵>을 맡기 전에 <로기완>을 진행하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면 <로기완>은 잠깐 멈춘 건가.

=정지우 감독과 오랫동안 <로기완>을 개발하고 있었다. 감독님이 원작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에서 무언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셨고, 나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묵직함을 풀어내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둘이서 공감했다. 그래서 잠깐 보류하게 됐다.

-정지우 감독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 호흡이 어떤가.

=취향이 참 많이 비슷하다. 감독님이 선물해주신 사진들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고, 음악 취향도 비슷한 것 같고. 그래서인지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럭키>(감독 이계벽) 후반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마지막 편집을 한번 더 할 것 같다. 음악이 남아 있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 되게 중요하다.

-편집을 꽤 오래 하지 않았나.

=공들이려는 목적도 있고. 아무래도 예산 규모가 여름 시장에 내놓기엔 어려운 게 있어 좀더 적절한 시기에 배급했으면 좋겠다고 투자사와 합의해 개봉을 9월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후반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우리로서는 잘된 일이다. 더 들여다보고 매만질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까.

-<뷰티 인사이드>의 중국 버전(감독 백감독)과 덱스터와 공동 제작하는 <힘을 내요 미쎄쓰리>는 진전이 좀 있나.

=<뷰티 인사이드> 중국판은 화책합신과 준비하고 있다. 백감독과는 <413>이라는 한국영화도 준비하고 있는데, 전철홍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뷰티 인사이드> 중국 버전과 <413> 모두 백감독이 연출하는 까닭에 둘 중 무엇을 먼저 할지 정해야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소재로 한 <힘을 내요 미쎄쓰리>는 한국에서 한국 버전을, 중국에서 중국 버전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다. 덱스터가 중국 투자·배급의 비즈니스를 담당하고, 제작에 들어가면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버전은 나와 김용화 감독이 공동으로 제작하고, 시나리오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덱스터와 용필름의 역할이 철저하게 구분되어 있는 프로젝트다.

-중국과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인데, 어떤가.

=한국영화를 중국영화로 만든다기보다 진짜 중국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낯설지만, 한번 세게 겪어봐야겠다고 각오하고 있다.

-요즘 피트비트(손목에 차면 활동량과 수면양을 체크해주는 기기. 많이 걸으면 걸음 수가 올라가고, 친구들의 기록도 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편집자)는 열심히 하고 있나.

=열심히는 안 한다. 괜히 내기에 끼어들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 (웃음) 꼴찌만 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늘 중간 순위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박찬욱 감독님은 틈만 나면 걸으시던데.

=이게 운동이 좀 되더라고. 기계 하나가 뭐라고 경쟁이 꽤 치열하다. (웃음)

-위스키 애호가로서 <아가씨>를 위스키에 비유하면 어떤 위스키라고 생각하나.

=6, 7년 전부터 즐겨 마시긴 하지만 비싼 건 못 마신다. <아가씨> 시나리오가 탈고된 소식을 듣고 미국에 있는 동생이 선물로 위스키 한병을 보내왔다. 미국에서 글렌고인 위스키를 매입해서 소버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시한 위스키였다. 동생에게 감독님과 너무 맛있게 마셨다고 얘기하니 고생 끝에 두병을 더 구해주더라. 감독님 한병, 나 한병 나눴다. 그러면서 <아가씨>와 함께한 위스키가 된 거다. 달콤한 맛이 있는데, 또 마냥 달콤하기만 하진 않다. <아가씨>가 그런 영화잖아.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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