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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는 슬프다, 세가의 최후
2001-03-17

게임업체 `세가`

게임을 하다보면 이걸 만든 사람들은 정말 게임이란 게 뭔지 알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감탄사가 가장 많이 나오는 제작사는

일본의 ‘세가’(SEGA)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사실은 ‘Service Game’을 줄여서 세가다. 남다른(?) 작명법에 걸맞게

주요 간부들의 입사동기 또한 특별하다. ‘다른 회사가 사원을 안 뽑아서’, ‘이름이 뭔가 외국회사 분위기라’, ‘남코에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등등 이런 얘길 공공연하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세가는 원래 아케이드 게임업체다.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게임을 여럿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겼다는 설명과 함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된 <버추어 파이터>다. 그 밖에도 아케이드계의

일인자답게 수많은 히트작들이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진출했다. 게임소프트만 만드는 게 아니라 하드웨어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마스터시스템’에서 ‘메가 드리아브’, ‘새턴’에 이르기까지 세가의 게임기는 만년 2인자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사운을 걸고 만든

128비트 게임기 ‘드림캐스트’까지 실패한 세가는 드디어 20여년에 걸친 비디오 게임기 산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사라지는 세가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씁쓸함이다. 가장 확실하게 망한 드림캐스트 게임들을 보자. <렌트 어 히어로>는 메가 드라이브 시절의

고전을 새롭게 만든 게임이다. 보통 때는 평범한 주인공이 특수한 옷만 입으면 히어로가 되어 마을의 온갖 잡일을 처리한다는 내용으로, 일본

특촬물의 패러디에 B급영화의 테이스트로 가득 찬 게임이다. 하지만 너무 마니아 취향이어서 그런지 이 게임의 판매량은 바닥이었다.

<스페이스 채널5>는 노래에 맞춰 화살표와 버튼만 눌러주면 되는 단순한 시스템의 게임이다. 하지만 내용은 범상치 않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지구는 외계인에 정복되었고, TV방송사 리포터인 울랄라가 외계인과 춤대결을 벌여 지구를 구해야 한다. 좋든 싫든 너무나 세가다운

설정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즐겁게 한 게임이지만 판매량은 역시 신통치 않았다.

<젯 셋 라디오>는 지난해 나온 게임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작품이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도시를 휘저으며 스프레이 페인팅을

하며 다닌다. 때로는 다른 스케이터와 묘기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세련된 음악에 뛰어난 그래픽, 박력있는 연출은 기본이다. 망가 디멘젼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3D캐릭터를 2D애니메이션의 느낌으로 표현하는 새로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마디로 환상의 게임이다. 하지만 너무 어렵다.

게다가 미국풍이 강해서 일본 게이머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세가 게임에는 세가만의 색깔이 있다. 기술로도 세계 최고지만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겁없이 내놓기에 더욱 빛이 났다. 최고의 아이디어와 기술이

결합했으니 크게 성공해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드림캐스트에는 멋진 게임이 많지만 대중성이 부족했다. 드림캐스트 재고물량은 9900엔이라는

헐값에 팔리는 신세가 되었고 추가생산은 이제 없을 거라고 한다. 소프트웨어 역시 상황이 이러니 별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세가의 몰락은 단순히 게임기 하나가 없어지는 것 이상의 좌절이다. 메가 드라이브에서 새턴, 드림캐스트에 이르기까지 세가의 게임기는 늘 마니아를

위한 독창적인 하드웨어였기 때문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