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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의 태 살리려고 펜티까지 풀 먹였어”
2002-04-03

감독과 다투면서까지 의상 본래 역할에 철저, 또 다른 창고 불로 마음고생

1983년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해야. 그해 찍은 작품 중 두개가 날 엄청 고생시켰거든. 먼저 안동 하회마을에서 <여인잔혹사-물레야 물레야>를 찍을 땐데, 그땐 하도 급하게 크랭크인에 들어가서 의상을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 그래서 서울 작업실에서 전날까지 부지런히 의상을 만들어 다음날 청량리역으로 가 안동 가는 기차편에 실어 부치곤 했어. 매일 다섯벌에서 열벌씩 꼬박 부친다고 생각해봐. 정신없이 옷 만들고 또 기차역 가서 부치고 돌아와선 다시 옷더미에 파묻히고. 사람이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지.

그 영화 끝나고 맡은 <화평의 길>이라는 작품은 동학당을 다룬 영화였는데, 동학당 의상 200벌이랑 일본 군복 30벌이 필요하대서 지어서는 촬영지가 있는 강원도 진부령으로 갔지. 3, 4월쯤 돼서 날이 풀리니까 정상에서도 눈이 녹아 발이 빠질 정도로 질척거릴 때였어. 슛 한번 들어가고 나니까 옷들이 아주 엉망이 되는 거야. 고무신이랑 버선은 어느 틈에 진흙 속에 빨려 들어가고 바짓가랑이에 덕지덕지 묻은 흙덩어리하며, 아주 다음 신을 못 찍을 지경이 됐지. 근데 또 거기엔 물도 없어. 어디 개울이라도 있으면 갖고 가서 죄다 빨고 싶은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그래 고민고민하다가 결국 트럭에 옷들을 싣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지. 그래서 화곡동에 있던 우리 집으로 가지고 가 다 털고, 빨아서 또 진부령으로 갖고 갔어. 어떻게 두 영화 모두 그런 식으로 속을 썩이는지.

84년에는 배창호 감독이랑 정진우 감독이랑 만든 영화가 참 잘 됐어. 배 감독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관객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고, 정 감독의 <자녀목>은 대종상 여러 부문을 휩쓰는 등 상복이 터졌구. 그러면서 이미숙, 원미경, 이혜숙이가 차례로 여배우들 가운데 두각을 드러냈지. 이미 원미경과는 <물레야…>나 <불새의 늪>(1983, 고응호)에서 만났지만, 그녀만큼 한복이 감칠맛나게 어울렸던 배우도 없을걸. 양장도 잘 어울렸던 걸로 기억하구.

85년 들어 기억에 남는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오싱>과 <어우동>이지. <오싱>은 일제 치하의 학도병과 더부살이를 하며 구박을 받던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야. 그해 많은 여성 관객을 눈물의 도가니로 몰고 간 작품이기도 하지. 극중 어린 여주인공 ‘신’ 역을 맡은 김민희의 똑소리나는 연기도 볼 만했지. 하지만 영화를 찍을 땐 감독과 남모를 갈등이 많았어. 어느 감독이든 자기 작품이 화려하게 나오는 걸 원하잖아. 이상언 감독도 시대적 배경보다는 좀더 ‘화면발’이 사는 의상을 원했어. 감독은 자꾸 미화시키려 하고, 나는 시대적 배경을 살려야 한다고 해서 서로 잘 안 맞았지. 한번은 감독이 옷에 솜 넣는 문제를 두고 뭐라고 하는 거야. 추운 겨울에 촬영을 하느라 어린 배우들이 달달 떠는데, 감독은 옷이 두툼하면 태가 잘 살지 않는다고 빼라는 거야. 별 수 있나. 감독 말이 곧 법인데. 그냥 다 빼고 얇은 옷 입고 영화 찍었어. 김민희가 그 덕에 고생을 많이 했어.

사극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극을 하나 맡아도 어디서 얻어다 입히는 건 몰랐어. 군복이 필요하다 하면, 당시 시장에도 군복이 나와 있었거든. 그런데도 500벌이면 500벌 다 만들었으니. 죄수복 이런 건 그냥 광목 끊어다 기워 쓰면 되거든. 그게 죽어도 싫은 거야. 그래서 천을 써도 군대나 교도소에서 직접 불하되어 나오는 것을 다시 뜯고 고쳐서 썼지. 그런 천들은 국가에 납품하는 것들이어서 개인적으로 쓴다는 건 어려웠어. 사실 시장에서 파는 옷은 왜 영화 의상으로 쓸 수 없느냐. 박음질이 무성의해서 몇번 밀고 당기다 보면 그냥 맥없이 뜯어지거든. 그래 가지고선 한 신도 제대로 못 찍어. 몇번 쥐고 흔들어도 끄떡없어야 영화에 쓰지. 게다가 시장에서 사온 천으로 그냥 옷을 지어서도 안 돼. 그러면 꼭 첫 빨래에 다 오그라들거나 모양이 변형되거든. 천들은 기본적으로 한번 빤 뒤에 옷을 지어야 다음에도 계속 모양의 변동없이 쓸 수가 있어. 이건 옷 하는 사람들에겐 기본이지.

옷을 다 지은 뒤에는 풀을 먹이는 게 내 순서였어. 속옷도 다 풀을 먹여야 해. 그러면 안에서 빳빳하게 받쳐주니까. 일단 겉옷의 태가 살고, 몸에 이리저리 붙지 않으니 땀 흘리며 연기하는 배우들에겐 청량감을 주지. 풀 먹인 옷은 먼지나 때도 그렇게 쉽지 타지 않아. 때가 타더라도 잘 빠지고. 그렇게 풀을 먹이다보니 버선도 먹이고, 팬티도 먹이고 옷이란 옷은 거의 다 풀을 먹여 썼지.

몇해가 아무 일 없이 흘러가나 했는데, 화곡동에서 주자동으로 이사온 지 얼마 안 돼 87년에 다시 화재가 났어. 총독부 관사로 쓰였던 오래된 목조 건물에 살았는데, 전기 배선이 낡아서 거기서 불이 났나봐. 다행히 금방 꺼지긴 했는데, 소방차가 하도 물을 많이 뿌려놔서 이번엔 습기 때문에 옷이 썩어버렸지. 웃지 못할 사건의 연속이었어.

구술 이해운/ 1925년생·<단종애사> <마의 태자> <성춘향> <사의 찬미> <금홍아 금홍아> <서편제> <친구> 의상 제작 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