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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염치를 모르는 사회에 산다는 것 - <해빙> 이수연 감독

‘얼음이 녹고 시체가 떠오른다’는 것은 <해빙>(제작 위더스필름·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의 강력한 모티브였다. “영원히 덮어둘 수 있는 것은 없다. 해결하지 않고 묻어둔 것들은 언젠가는 귀환하게 마련”이라는 이수연 감독의 지론대로, 떠오른 시체는 이 사회 혹은 한 개인이 대면하지 않고 억압해두었던 문제들에 대한 강력한 메타포다. 미제 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수도권 신도시, 강남에 개업했다 실패하고 페이닥터로 온 승훈은 수면내시경 중 살인을 고백하는 노인(신구)을 본 뒤 그와 그의 아들 성근(김대명)에게 의심을 품게 된다. 전작 <4인용 식탁>이 그러했듯, 이번 이야기 또한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이수연 감독의 말에 의하면 “스릴러라는 당의정을 두른 사이코 드라마”라는 <해빙>은 몰락한 중산층 남자의 불안을 좇는 이야기다. “두번의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의 몰락과 함께, 중산층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서초동에 사는 가장이 실직 후 아내와 두딸을 죽인 사건도 있었다. 그 원인이 뭘까? 계층이동이 불가능해지면서 한번 삐끗해서 밀려나면 다신 중산층의 자리를 회복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거다.”

중산층의 불안을 통해 사회를 조망하려는 이수연 감독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단어는 전락”이라고 말한다. “염치를 모르는 사회가 됐다. 단순한 경제적 전락이 아닌 가치의 전락이다. 무엇이 부끄러운지 모르고, 권위와 권위주의, 지식인과 고학력자, 품위와 잰 체를 구별하지 못하게 된 것”이라는 진단이다. “두번의 금융위기 전까지 한국은 오늘보다 내일 더 잘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것은 청계천을 밀어버리고 마천루를 지었듯 외면해버린 문제들 위에 자리한 사상누각에 불과했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덮어버린 일들은 반드시 돌아와 우리에게 값을 치르게 한다.” 현 사회의 징후들을 눈여겨본 그는 “청산되지 않은 것들이 악몽처럼 소환되는 걸 보면서 이 작품을 쓰게 됐다”고 밝힌다. 많은 함의를 담고 있지만, <해빙>은 장르적 재미에도 충실하다. “퍼즐 맞추기,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놀이의 즐거움이 있는 영화”로, 플롯의 구조에도 주목할 만하다. “흥미로운 시점 변화가 있다. 처음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보이지만 중·후반부엔 그것이 주인공 일인칭 시점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앞에선 문제를 내고 뒤에선 답을 맞히는 형태다. 초반부엔 공포감과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장면들을 구축하며 장르적인 재미를 충분히 주려 했다.”

승훈 역의 조진웅 캐스팅도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이수연 감독은 “<끝까지 간다>가 끝나고 조진웅을 캐스팅했는데, 그때까지 조진웅은 조폭, 비리형사 등 육체를 많이 쓰는 쾌남을 주로 맡았던지라 누구도 그를 예민하고 겁에 질려 있는 승훈으로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체중을 감량해가면서 승훈을 소화하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굉장히 감수성이 풍부해 울리기보다 울지 못하게 하기가 더 힘든 배우인데(웃음), 클라이맥스에서 본인의 장기를 십분 살린다. 여태까지 조진웅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들을 전부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가 될 것”이란 전언이다. <4인용 식탁> 이후 13년, “감회가 새롭다고 말하기에도 너무 오랜” 세월을 거쳐 두 번째 장편으로 돌아온 이수연 감독은 긴장되기보다는 설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현장을 너무나 사랑하는 감독이라 어제도 촬영장을 다녀온 것처럼 편안하더라. (웃음) 이젠 관객을 얼른 만나고 싶다.” 수면 밑에 있었던 시체가 떠오르며 가려진 진실이 귀환하듯, 잊고 있었던 것들과 함께 찾아올 <해빙>은 2017년 2월 개봉예정이다.

synopsis

강남에서 개원했으나 실패한 의사 승훈(조진웅)은 한때 미제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했던 경기도의 한 신도시 병원에 페이닥터로 취직한다. 이혼 후 위자료를 보내느라 빠듯하게 살고 있는 그는 자신이 세들어 사는 정육식당의 정 노인(신구)의 수면내시경을 하다 살인 고백을 듣게 되고, 그의 아들 성근(김대명)과 정 노인을 의심하게 된다. 한동안 조용했던 도시에 다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전처가 실종되면서 승훈은 살인사건에 휘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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