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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페리먼트> 계기로 본 독일영화의 집단심리학
2002-04-04

독일영화는 어떻게 폐쇄공포에 갖혔는가?

● 만일 당신이 단 2주간의 시간을 빈둥거린 뒤 250만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내리겠는가? 어떻게 보면 이 일은 매우 간단한 것이다. 당신은 죄수복을 입고 2주 동안 모의감옥에서 모의죄수 생활을 한다. 너무 겁낼 것은 없다. 죄수생활이라고 해봤자 세끼 밥이 꼬박꼬박 나오고 물리적 폭력은 절대 엄금. 그러니까 신변안전 철저하고 좌우 앞뒤 분명하게 당신을 보호해줄 시선이 손만 닿으면 있는 그런 천하 태평의 감옥이 이곳이다. 그러니 이게 무슨 감옥이겠는가? 오로지 분명한 게 있다면, 만약 당신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2주 뒤 당신은 자그마치 250만원이라는 돈을 고스란히 손에 얻게 되리라는 사실뿐이다.

1971년 스탠퍼드대학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짐바르도 교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지극히 당연한 의문을 품게 된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인간은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인간은 과연 한계상황에서도 선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집단 히스테리, 사회 전염, 공격 행동 등을 전문으로 연구했던 그는 스탠퍼드대학 지하에 가상 감옥을 만들고 ‘교도소의 생활이 인간의 심리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연구하기 위해 지역신문에 광고를 냈다. 곧 광고를 본 70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연구자들은 심층면접을 통해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로 실험을 꾸려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2주간 지속되리라던 실험은 단 6일만에 중단되고야 말았다. 왜,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피험자들은 일단 실험실에 들어서자 진짜 감옥에 갇히는 것과 동일한 절차를 밞았다. 일상복을 벗고 모자를 쓰고 살충제를 뿌리고 죄수옷을 입는 것까지. 간수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반대로 선글라스와 제복, 곤봉 등을 지급받는다. 평온했던 첫날과 달리 그러나 실험은 이틀째부터 벌써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죄수들은 모자를 벗어버리고, 죄수복에 달려 있던 숫자를 잡아뜯는가 하면 감방 안에서 문을 향해 침대로 바리케이드를 친 채 방어태세를 갖추기까지 했다. 물론 간수역할을 맡은 이들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소화기를 뿌리고 감옥에 들어가 죄수역할을 하는 피험자들을 전부 나오게 하여 옷을 벗게 했다. 이상한 것은 간수역할을 맡은 사람들 모두 한번도 교도소에 다녀오거나 교도관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도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사태를 진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떤 죄수들을 독방에 가두기도 하고, 기존 세개의 감방 중에서 하나를 일종의 특실 개념으로 개조했다. 이 방에서는 옷도 입을 수 있고 침대도 사용할 수 있으며 이도 닦고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가장 모범수였던 사람들이 이 방을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모범수를 상황이 제일 나쁜 감방에 넣고, 폭동을 일으켰던 문제죄수들을 제일 좋은 특실에 넣었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혼란이 감옥 안을 떠돌고 오줌냄새와 변냄새로 가득 찬 생지옥으로 변한 감옥에서 미묘한 성적 학대와 체벌, 공포와 불안은 유령의 원귀처럼 떠돌았다. 피험자들을 빼내겠다는 부모들의 아우성으로 스탠퍼드 대학의 실험은 6일만에 중단되었다. 이 실험은 1970년대 심리학계의 최대의 스캔들로 그동안 미국이 자신의 국가에 이념의 푯대로 내세웠던 휴머니즘이라는 성조기를 갈가리 찢어놓는 자승자박이 되었던 것이다.

그뒤 20년 뒤, 이 말많고 탈많은 그래서 심지어 록그룹의 이름이 되기조차 했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이 게르만족의 후예인 독일영화에서 재현되었을 때, 결과는 장난이 아닌 일파만파를 독일사회에 몰고 오게 되었다. 독일이 갖는 역사적 무게로 인하여 감독 올리비에 히르쉬비겔은 단박에 독일영화계의 기린아가 된 것이다. 할리우드에서라면 고작해야 인간성 파괴를 경고하는 공포물에 지나지 않았을 <엑스페리먼트>는 올리비에 히르쉬비겔의 손을 거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보고서를 넘어서서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은유가 되어간다.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러나 충격적인 방식으로. 죄수와 간수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하는 실험실 감옥은 그대로 거대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 다름없었던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은유

실제로 유럽 중심부에서 열강들의 틈새에 갇혀서 사는 독일인들은 휴가철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백사장에 높은 담장을 둘러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버릇이 있다 한다. 스스로 자처한 고립과 폐쇄라는 측면에서 독일인들의 이러한 행동은 외부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고 남들이 자신을 침범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보호본능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페스트와 30년 전쟁으로 피폐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관념과 환상의 세계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 그 탈출의 미학은 낭만주의를 거쳐서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폐쇄공포증의 미학을 영화사에 꽃피웠다.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외침과 절규를 통해서 기존의 모든 영화문법을 거부했던 표현주의나 좁은 실내공간을 무대로 인물들의 내면세계를 파헤친 이른바 ‘실내극’(Kammerspiel)의 실질적인 공간은 엄격하게 말하면 현실의 공간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공간의 시각화를 목적으로 하는 표현주의의 과장과 왜곡기법은 단순화와 추상화된 평면, 마디마디 고정된 프레임을 통해 그 자체로 블랙박스인 인간심리를 폭로한다. 그리고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의 호스텐발이란 작은 마을이나 칼리가리 박사가 지배하는 정신병원이 차단됨으로써 비로소 제기능을 하는 기이한 장소가 되는 한, 이 이중 삼중으로 폐쇄된 공간 속에 밀폐된 선함과 악함이란 어짜피 종이 한장 차이에 지나지 않을 뿐. 반면 폐쇄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밀물 터지는 듯한 외부세계와 접촉했을 때 드러나는 불안은 그 보호 본능으로 인하여 포악한 공격성의 광기로 모습을 바꿔버린다. 그러한 면에서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 속에서 포착된 군인들의 일사불란한 행진과 광기 어린 히틀러의 연설은 ‘의지의 승리’가 아니라 ‘공포의 굴복’에 또 다른 말은 아니던가.

이렇듯 유난히 독일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폐쇄공포증과 연관된 그 무의식의 뿌리를 찾다보면 결국은 고립과 굴복에 대한 공포로 몸을 떠는 독일인들의 그림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눈과 추위, 소련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된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사실 추위보다도 독일의 폐쇄공포증을 극대화시킴으로써 독일의 정신적인 척추를 부러뜨린 참화였다. 요셉 폰 빌스마이어의 <스탈린그라드>에서 그려진 처참한 전투, 눈에 갇혀버린 독일 병사들이 느끼는 참담함은 바로 독일이 느끼고 있던 폐쇄공포의 현현이자 역사의 교훈이라는 포장 속에 감춰진 독일인의 악몽의 위장술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전작 <돌들의 흔적>에서 이념의 감옥 속에서 좌절해가는 동독인들의 자화상을 그렸던 동독 출신 감독 프랑크 바이어는 <거짓말쟁이 야콥>(1974)에서 야콥으로 하여금 바꿀 수 없는 수용소의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심지어 거짓이라는 언어의 마법을 빌리도록 한다.

그러나 피의 대가는 사라지지 않는 법. 나치즘의 집단적 최면에서 깨어나 과거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인강의 기적’이란 아우토반을 무제한의 속도로 질주했던 독일인들은 아직도 폐쇄공포증의 공간에서 완전히 떠나지를 못한다. 베르너 헤어초크의 <스토로첵>(1977)은 그런 무한질주에서 낙오해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히게 되는 주인공이고, 알프레드 되블린의 원작을 영화화한 파스빈더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주인공 역시 오랜 감옥생활 끝에 출소하여 부적응과 좌절에 시달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에게 갑작스런 자유와 현실은 오히려 더 큰 감옥이요 징벌이기 때문이다.

폐쇄에 대한 두려움은 탈출의 열망으로도 이어진다. 감옥에서의 격리된 삶으로부터 일상적인 삶으로의 탈출을 그린 데틀레프 부크의 <스탠 바이 유어 맨>, 여성과 사회라는 이중적 감옥으로부터의 음악을 통한 탈출기라고 할 수 있는 카차 폰 카르니에의 <밴디트>, 인적 없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속에 갇힌 승객의 심리적 고통과 탈출을 그린 칼 쉥켈의 <추락>(1984)은 모두 관념적 은유로서뿐 아니라 현실적 상황으로써의 네모 상자를 등에 엎고 있다.

미국에 간 빔 벤더스는 왜 혼란에 빠졌을까?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평소 동경해 마지않던 미국에 첫발을 디딘 빔 벤더스의 혼란감과 고독을. 그의 초기작 <도시의 앨리스>의 주인공처럼 미국이라는 사막을 헤매는 그가 접했던 끝없는 광활함에 대한 충격과 방향상실을. 말할 수 없이 차가운 북해의 바다 한 조각을 차지했을 뿐인 독일에서 미국으로 간 그는 <도시의 앨리스>에 이어 <파리, 텍사스>에서 다시 한번 끝없는 사막과 지평선의 공간에 대한 존재론적 탐색을 시작한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기찻길에서 피붙이를 찾아 헤매던 해리 딘 스탠든의 주름진 얼굴은 광활한 땅에 대한 욕망과 이 욕망에 갇혀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불안의 화신, 바로 파우스트 후예들의 또 다른 그림자는 아니겠는가.

이념과 자신의 과거에 갇혀 파멸해가는 테러리스트의 모습을 그린 폴커 슐뢴도르프의 <내 이름은 리타>, 동독이라고 하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젊음을 회상한 레안더 하우스만의 <태양의 거리>, 마닐라 공항에 갇힌 승객의 욕망과 치부, 불안과 갈등을 그린 로뮈알트 카르마카의 <마닐라>, 세월의 변화 속에서 각자의 삶을 좇아 뿔뿔이 흩어진 68세대의 좌절과 고독을 다룬 오스카 뢰러의 <갈 곳 없는 삶>(2000). 그리고 파시즘의 탄압을 피해 몽환적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작가의 삶을 그린 자비어 콜러의 <그립스홀름 성>(2000)을 거쳐 결국 독일 감독들이 안착한 곳은 사랑이었다(유치짬뽕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사실이니까). 이러한 영화들은 한결같이 독일 안에 있는 칼리가리 박사를 타도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성적 자아의 회복을 강조한다. 끝까지 주인공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노래부르는 <스탠드 바이 유어 맨>의 여주인공처럼, <엑스페리먼트>에서 톤 박사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닥터 그림이나 직접 감옥까지 찾아가 주인공 타렉을 구출하는 도라처럼 이성과 사랑이라는 이상을 구현하는 해독제로서의 여성들, <밴디츠>의 용감한 여성들 말이다.

<엑스페리먼트>, 칼 포퍼의 감옥 버전

이러한 점에서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어쩌면 일찍이 파시즘에 대한 극약처방으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강조했던 칼 포퍼의 감옥 버전은 아닐까? <엑스페리멘트>는 폐쇄적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 심리의 면면들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보고서임과 동시에 일종의 ‘놀이’에서 출발한 주인공이 블랙박스를 거쳐 ‘실제상황’의 극복으로 나아가는 내면적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엑스페리먼트>의 마지막, 애인과 함께 바닷가에 나란히 앉은 주인공의 뒷모습에는 강박적 자폐증에서 벗어나 자유와 성숙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독일이 어른거린다. 이로써 독일은 <노킹 온 해븐스 도어>의 바다에 이어 다시 한번 현실의 마지막 경계로써의 네모 상자에서 빠져나온 독일인들의 화려한 외출을 꿈꾸고 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kss1966@unitel.com 남완석/ 연세대 미디어아트센터 연구원·독일영화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