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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메이크한 TV시리즈 <니키타>
2002-04-04

하나의 지령, 세 가지 변주

La Femme Nikita 드라마넷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자정

뤽 베송의 <니키타>가 혜성같이 나타났을 때, 이 막돼먹고 제멋대로면서도 세상물정 몰라 방황하는 캐릭터가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국에서는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니키타>를 미국에서 <니나>로 리메이크하고, TV시리즈까지 나왔다. <니키타>(La Femme Nikita). 내 입장에선 뤽 베송의 니키타를 먼저 봤기 때문에 후속 니키타들이 금발이라는 사실을(사실은 아직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 특히 <니나>의 브리지트 폰다는 여린 느낌이 있어서 안 파릴로의 파워풀한 무식함을 그리워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뤽 베송이 브리지트 폰다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니, 그 속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TV <니키타>의 니키타는 떡대가 장난이 아니다. 페타 윌슨의 그 어깨로 한번 맞으면 웬만한 남자도 갈비뼈 하나는 날아갈 것 같아서, 적어도 정말로 발로 뛰는 요원이라는 감은 온다. 그러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인지 패션쇼를 하는 것인지 온갖 비싸보이는 옷을 휘감고 나타나면 정말 발로 뛰는지는 의심이 가지만.

방황하는 야생마를 잡아다가 명마로 훈련을 시킨다. 날뛸 동안에는 좀 고생스럽지만 일단 길들이고 나면 최고가 된다. 극장판 <니키타>와 <니나>는 길들이는 과정과 이를 완수해내는 과정, 그리고 기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까지 일관되게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액션이 있어도 정적인 분위기를 은근히 조성하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자 이를 남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 소진하고 싶지 않은 자연스러운 자기 주장이다(앗, <프리텐더 제로드>?).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니키타와 니나는 끊임없이 자기로서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TV시리즈 <니키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섹션에서 내려오는 지령은 어디까지나 임무 완수가 목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안락한 삶, 사사로운 정은 포기해야만 하고, 니키나는 이를 포기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개인으로서의 삶과 조직원으로서의 삶. 그런데 이러한 갈등상황이 벌어지지만 이 갈등은 니키타 개인만의 갈등이 아니다. 조직 안에 존재하는 개개인이 모두 자기 나름의 생존전략을 짜고 있으며 이것들이 상충하는 것이다.

말이야 인간적인 갈등과 조직의 명령이지만 종종 TV 리즈 <니키타>는 때로 어디에 준거점을 두어야 할지 의심이 될 정도로 복잡한 인간관계의 플롯을 짜나간다. 조직까지 이야기가 넘어가면서, 개인적인 갈등을 겪는 것은 니키타 혼자가 아닌 것이다. TV시리즈 <니키타>는 극장판보다 세련된 감은 떨어지지만 그런 점에서 강점을 지닌다. 조직과의 갈등에 조직 내부의 갈등이 끼어들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잡미묘한 갈등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니키타 전체를 둘러싸는 음악이다.

한명의 니키타를 기반으로 세개의 영화가 나왔고, 결과적으로 세개의 사운드트랙이 나왔다. 원판 <니키타>는 에릭 세라, <니나>는 한스 짐머, TV <니키타>는 마크 스노. 특이하게도 셋 다 전자음악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곡가들이다. 에릭 세라의 <니키타>는 어둠침침하고 자극적이며 말 그대로 ‘니키타스러운’ 나른함까지 선사한다. 모 영화음악실 시그널로 쓴 <The Free Side>는 비오는 날 들으면 부침개 생각도 날려버릴 정도다. <니나> 사운드트랙은 사실 한스 짐머보다는 니나 사이먼의 끈덕끈덕한 목소리에 이끌려 사게 된다. 브리지트 폰다가 안 끈덕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TV <니키타>는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X파일>로 잘 알려진 작곡가 마크 스노의 역량이 걸출하게 돋보인다. 드라마 플롯에서 음악을 뺄 수 없을 정도로, 마크 스노의 작곡솜씨가 환상적인 케이스이다. TV <니키타>는 처음에는 단순한 미녀첩보원 드라마에서 점점 심리스릴러로 변신한다. 니키타 개인에게서 기관 안의 수많은 주인공들 사이의 감정과 긴장을 엮어나가는데(김혜린의 명언, “사람 머리 수만큼의 생각이 있게기 마련이지”), 마크 스노의 음악이 심리적 긴장을 몇배로 증폭시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씨줄과 날줄의 교차. 이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일일이 피해가야만 하는 긴장감이 오히려 이야기 자체의 임무수행보다 때로는 사람 피를 말린다. 마치 없는 듯이 미세하게 존재하는 마크 스노의 힘은 밤안개처럼 니키타의 세상을 장악해버린다.

원판 <니키타> 사운드트랙을 못 구할 때는 에릭 세라 베스트 앨범인 <에릭 세라>가 있다. 그리고 <니나> 사운드트랙은 영문제목인 <Point of No Return>으로 있는데 품절인 곳이 많다. 마지막으로, TV판 <니키타> 주제곡은 마크 스노의 개인 앨범 <The Snow Files>에 첫번째로 실려 있고,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팔지 않는다.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