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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단편영화 <유통기한> <쏘울리떼>
2002-04-04

귀여운 절망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운다. 독립영화 역시 SF영화를 향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에 관한 열망 또한 있다. 문제는 독립적인 환경이 그런 판타지와 SF를 만드는 것을 쉽사리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만든다. 그래서 독립영화는 의도하지 않은 미학을 가끔 만들기도 한다. 배달받은 소년을 끼고사는 한 노인은 그를 조수이자 아들이자 애완견처럼 끼고산다. 그런데 그 소년이 점점 부패하기 시작하자 노인은 어떤 미련도 없이 그를 처리해버린다는 이야기를 가진 <유통기한>(한재빈, 16밀리 컬러 15분)은 단연 독립 SF영화다.

이번주의 또 다른 독립 SF로는 <쏘울리떼(Soulite)>(장정혜, 16밀리 컬러 18분)도 있다. 미래의 서울, 극소수의 인간과 다수의 인조인간들이 살고 있다. 그들이 죽으면 사체는 분해되어 다시 재활용된다. 심장은 모터로, 혈관은 전선으로, 영혼은 네온사인으로 그리고 그들의 기억은 비디오테이프로 쓰인다. 이 영화는 그 기억에 중독된 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독립 SF가 그리는 미래세계는 비인간적이며 암담할 뿐이다. (자신들은 문명의 이기를 즐기면서도) 이렇게 묘사하는 것이 진심인지 단지 학습된 것에 불과한지는 알 수가 없다. 무표정한 인물들 하며 미장센은 칙칙한 회색이나 형광빛 푸른색의 광선 그리고 수시로 피어오르는 스모그로 채워져 있다. 설정은 미래지만 지금의 방독면과 아남내쇼날의 상표도 등장하는, 이 귀여운 독립 SF영화들의 미학은 바로 절망감으로 압축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현실적 절망감이 학습된 SF영화의 설정과 교배된 것이 아닐까? 이효인/영화평론가·경희대 교수 yhi60@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