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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가 살아가는 법
2002-04-04

사소함에 목숨을 건다

한 유령이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컬렉터라는 유령이. 이제 컬렉터들이 전세계를 향해 스스로의 견해와 목적과 경향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서 컬렉터의 유령이 있다는 소문을 선언으로 바꿔놓아야 할 절호의 시기가 닥쳐왔다.

RC 카에서 바비 인형까지 컬렉터들의 수집 대상은 다양하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장난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멀쩡하게 다 큰 어른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쏟아부어 남들이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물건들을 사고 또 사들이니 주위 사람들의 탄압에 시달리지 않을 리가 없다.

컬렉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파김치가 되어 회사에서 돌아와서도 새벽 2∼3시까지 인터넷 경매사이트나 장터사이트를 돌아다닌다. 혹시 좋은 걸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클릭주기는 10∼20분이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를 가지고 매주 가격표를 새로 작성하고, 분기별 가격 동향 그래프를 만들어 최적 구입 시기와 가격 선정 전략을 수립한다. 하지만 다 소용없다. 원하는 게 나오기만 하면 당장 구매 버튼을 클릭한다. 망설였다가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가기라도 하면 일생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컬렉터들은 편집광이다. 게임 컬렉터들은 특정 게임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시리즈물을 전부 다 구입한다. 그래픽만 조금 바뀌었을 뿐 내용은 똑같은 게임을 다른 게임기로 출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 사버리기도 한다(하드웨어가 없다면 이 기회에 게임기까지 같이 구입한다). 웬만한 게임이면 다 한정판을 출시해 열쇠고리니 티셔츠니 자질구레한 것을 추가해서 비싼 값을 받는 건 다 컬렉터들을 믿고 하는 것이다. 증세가 악화되면 컬렉터의 정체성이 게임 역사 전체에 대한 소유욕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우선 게임산업 역사 연표를 정리한다. 그리고 해당 연도를 빛낸 게임기나 게임 소프트웨어들의 리스트를 짠다. 리스트의 모든 항목이 지워질 때까지 컬렉터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전자 게임 컬렉터 1970∼80년대의 선택>은 컬렉터들을 위한 행동강령이다. 총 190페이지에 걸쳐 70, 80년대에 나온 게임기 304종이 소개되고 있다. 사진과 함께 게임기 이름과 제작연도, 제작사와 나왔을 당시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실려 있고 출시 당시, 그리고 현재의 가격까지 엔화와 달러로 나와 있다. 5단계로 나뉘어 구입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현재 구입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예를 들어 75년에 나온 에포크사의 <TV테니스>는 당시에도 놀라운 1만9500엔에 출시되었지만, 지금은 무려 3만엔에 달한다. 구입 난이도가 5이기 때문이다.

소박하게 슈퍼패미컴, 닌텐도64, 플레이스테이션, 새턴, 드림캐스트, 게임보이 같은 메이저 게임기만 보유한 초보 컬렉터인 나로서는 이런 책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덜컥 겁이 난다. 책장을 넘기면 동공이 확대되고 맥박이 빨라지지만, 이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뒤통수가 찌릿찌릿하다.

저자가 컬렉터 한명과 인터뷰를 했다. “컬렉터에게 가장 큰 위기는 역시 결혼이죠.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저는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미키 컬렉터니까요.” (웃음) 자기 컬렉션에 배당할 가계수입 몫을 늘리기 위한 전쟁만 벌이지 않는다면 이 집은 그럭저럭 행복할 것 같다.

컬렉터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받을 일로 간주한다. 컬렉터가 혁명 속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돈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전세계의 컬렉터들이여, 단결하라!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레어아이템인 마그나복스오디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