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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인터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다룬 <재심>의 김태윤 감독, 박준영 변호사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7-02-16

“폼 나는 다른 전문도 많은데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될 줄은 몰랐다”는 박준영 변호사와 “<또 하나의 약속> 이후 또다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만들게 될 줄 몰랐다”는 김태윤 감독이 만났다. 박준영 변호사는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사건,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재심을 맡아 유명한 재심 전문 변호사다.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2013)을 만든 뒤 김태윤 감독은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영화화한다.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현장 목격자였던 15살 최군이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한 사건으로, 최군은 2016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됐다. 영화는 변호사 준영(정우)과 살인누명을 쓴 청년 현우(강하늘)가 재심을 향해가는 과정을 뜨겁게 그려낸다. 재심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었다는 변호사와 그런 변호사를 영화적 캐릭터로 멋지게 창조한 감독을 만났다.

-본인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어떻게 봤나.

=박준영_ 일단 긴장을 많이 했다. 정우씨가 연기한 주인공 이름과 내 이름이 같아서 준영이란 이름이 나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민망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는데 강하늘씨의 연기를 보면서 이 사건을 6년 이상 맡아온 내가 과연 최군(영화 속 현우)과 최군 어머니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도 억울하게 옥살이했던 최군과 가족의 고통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이 세상이 약자들의 고통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 말이다. 더불어 지금은 격려받고 박수받는 변호사가 됐지만 약촌오거리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나는 남의 불행을 이용해 유명해지려 한 속물적인 변호사였다. 이 영화는 약자에게 강압적인 공권력의 모습이라든지 약자의 고통을 이용하려는 변호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변한다. 그 변화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약촌 사건의 경우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났고 진범이 밝혀졌으니 더 통쾌하게 이야기를 끌고 갔으면 하는 의견도 있는 것 같은데,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경찰, 검사, 판사, 국선변호사 그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에 준영이 하는 대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사법부가 저지른 잘못을 사과한다는 그 대사 말인가.

박준영_ 그거 얘기하면 스포일러라던데. (웃음)

=김태윤_ 그 정도는 괜찮다. (웃음)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취재하던 SBS 이대욱 기자의 제안으로 영화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안다. 이 사건의 어떤 점에 끌렸나.

김태윤_ 2012년 가을쯤 이대욱 기자의 지인이자 나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선배 한분이 찾아와서 약촌오거리 사건을 취재 중인 기자를 한번 만나보라더라. 그때 한창 <또 하나의 약속>을 어렵게 준비하고 있던 터라 실화영화는 더이상 안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화가 실화를 뛰어넘기도 힘들고, 민감한 실화라면 투자나 캐스팅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을 들어보니 마음이 동하더라. 내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었다. ‘최군이 살인누명을 썼다’는 것에서 끝나는 이야기라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 거다. 최군은 살인누명을 쓰고 10년을 옥살이했고, 복역하고 나왔더니 근로복지공단의 구상금 청구로 빚더미에 앉게 됐다. 공단이 피해자 유가족에게 지급한 산업재해보상보험금이 4천여만원인데 10년간 이자가 붙어 1억4천만원이 됐다. 한편으론 공단의 구상금 청구 때문에 최군은 박준영 변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불행이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불행이 또 다른 행운으로 연결된 거다. 너무 극적이지 않나. 도저히 상상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박준영 변호사의 캐릭터도 재밌었다. 박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발생할지 궁금했다. 참고로,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영화를 기획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보다 먼저 준비했다. (웃음)

-두분의 첫 만남, 첫인상은 어땠나.

김태윤_ 정의로운 변호사 코스프레를 하지 않아서 좋았다. 유명해지려고, 방송에 나가려고 약촌오거리 재심 사건을 맡았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데, 이 캐릭터 골때리는구나 싶더라. (웃음)

박준영_ 일단 내가 영화화를 제안한 게 아니었고,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당시 나는 재심을 진행 중이었고, 그때도 여전히 속물이었기 때문에, 김태윤 감독이 영화에서 날 어떻게 표현 할 건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컸다. 그래서 첫인상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웃음)

김태윤_ <또 하나의 약속>을 만들 때 황상기 아버님도 그랬다. 당신의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라고 하면 대부분이 안 좋은 시선으로 보고 경계한다.

박준영_ 안 좋게 본 건 아니다. (웃음)

김태윤_ 위기 상황도 찾아왔다. 극중 변호사 캐릭터를 여자로 설정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거냐며 화를 버럭 내더라. (웃음) 초반엔 누명 쓴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 버전도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잘 안 풀려서 변호사 캐릭터를 붙였다. 그런데 <변호인>(2013)이라는 큰 영화가 있지 않나. 고졸 출신 변호사라는 점도 그렇고 박준영 변호사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겹치는 배경들이 있어서 이건 어떻게 만들어도 <변호인>의 그림자 안에 들어가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여자 변호사로 갈까 했는데, 캐스팅을 위해 매니저들을 만나보니 다들 영화 출연을 부담스러워했다.

박준영_ 변호사 캐릭터가 여성 캐릭터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그날의 술자리를 자세히 기억한다. 그날 술 엄청 먹었다. 하지만 결국엔 원래 캐릭터로 돌아오지 않았나. 이게 진실의 힘이다. (웃음)

-흥미롭게도 영화와 현실이 나란히 진행됐다. 촬영 시작 무렵 재심 결정이 났고 크랭크업하고 한달 뒤쯤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났다.

김태윤_ 재심이 결정되지도 않았고 판결도 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엔 재심이 시작되는 것으로 엔딩을 맺기로 했다. 다행히 영화의 바람이 현실로 이어진 셈이다. 만약 재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엔딩은 지금과 달랐을 거다. 훨씬 더 공분을 사는 엔딩이 되지 않았을까.

박준영_ 2010년 여름에 약촌오거리 사건을 처음 접했고 2013년 4월1일 재심을 청구했다. 3년 동안 부족한 자료와 씨름하며 재심을 준비했다. 재심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사건 기록과 관련 자료를 보면서 하나의 확신은 있었다. 최군은 절대 유죄가 아니라는 것. 그런데 왜 최군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고, 진범을 잡고도 다시 풀어주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 이게 바로 현실 사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황이다. 솔직히 나는 영화를 통해서 현실에 영향을 끼치고 싶었다. 재심이 쉽지 않았으니까. <이태원 살인사건>(2009), <도가니>(2011), <부러진 화살>(2011), <변호인>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현실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력이 크다고 본다. 이런 영화들이 더 만들어지고 흥행해야 약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사법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여론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사법부가 여론에 영향을 받아서 문제되는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법부가 여론을 모른다는 게 문제다. 국민이 생각하는 보편타당한 상식과 동떨어진 재판들이 얼마나 많나. 나는 영화를 통해서, 공론화를 통해서 그 상식이 무엇인지 전달되길 바랐다.

-<재심>은 준영과 현우의 관계 변화가 드라마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캐릭터 드라마이기도 하다. 실제 최군과 박준영 변호사의 관계를 많이 반영한 건지.

김태윤_ 최군을 처음 만났을 때 좀 무서웠다. 덩치도 크고 복역한 세월이 묻어나기도 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어떤 벽 같은 것도 느꼈는데,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지 않으면 저 친구는 사람들의 편견 속에서 평생을 살겠구나. 그런 생각들을 종합해서 현우 캐릭터를 만들었다.

박준영_ 2010년 여름 최군을 처음 만났다. 그때 얘기를 하자면, 당시 이대욱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SBS 시사프로그램 <뉴스추적>에서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온 최군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있는데 함께 재심을 준비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최군이 재심 준비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더라. 내가 만약 그 사건을 맡게 된다면 <뉴스추적>에 출연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그래서 함께 최군을 만나러 갔다. 당시엔 재심에 대한 법리도 잘 몰랐다. 무조건 최군을 설득해서 재심을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최군이 재심에 동의해야 내가 TV에 나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전주의 다방에서 두시간을 설득했다. 공익성, 정의구현 그런 건 크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웃음)

김태윤_ 옆에서 본 바로는 두 사람은 애증의 관계다. 어떻게 보면 최군 입장에서 박 변호사는 무조건 고마운 사람이다. 박 변호사 입장에선 최군을 무조건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고. 그런데 최군은 박 변호사가 하는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도 있고, 박 변호사는 최군이 답답할 때가 있다. 사람의 관계라는 게 일방적일 순 없더라. 두 사람의 그러한 애증관계를 영화에도 반영했다.

-지난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재심과 함께 1999년 발생한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재심도 승소로 이끌었다. 바람대로 이젠 꽤 유명한 변호사가 된 듯하다.

박준영_ 사법시험 합격할 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고졸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제2의 노무현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들뜨기도 했다. 그런데 업계에 발을 들이고 나니 아무도 나를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더라. 유명 대학 나온 능력 있는 변호사들이 이미 많고, 연수원 성적이 좋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고. 잠재적 고객이라 생각한 고향 출신들이나 친척들도 나에게 사건을 맡기지 않았다. 송사라는 게 살면서 드물게 경험하는 일이다보니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사건을 맡기려 하지 않는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었다. 뭔가 의미 있는 사건을 통해서 정의로운 결과를 내고 그것이 알려진다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유명해지고 싶었다. 지금은 그 목표가 달성됐다. 결국 하고 싶은 얘기는, 사람들이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나 같은 사람을 보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고, 변할수 있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좀더 영향력을 가지고 싶다. 아직 우리 사회에 억울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선한 영향력을 더 키우고 싶다.

-처음으로 맡은 재심 사건인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2007년 수원에서 노숙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경찰이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는 정씨와 지적장애인 강씨 등 노숙인 2명과 10대 노숙 청소년 4명을 구속했다가 이들의 무죄가 입증된 사건)을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외 담당한 사건들 중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싶은 사건이 있다면.

박준영_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은 영화 진행이 잘 안되고 있는 것 같다. 특별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다.

김태윤_ 내가 탐나는 사건은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이다. 문재인씨가 변호사 시절 변호를 맡았다.

박준영_ 정말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사건이다. 1990년 1월4일 살인사건이 발생했고 2년 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2년 뒤 경찰이 두명을 체포했다. 결국 두 사람은 무기징역형을 받았고 21년간 형을 살다 감형받아 출소했다. 이분들의 사연이 정말 가슴 아프다. 그들을 범인으로 몰기 위한 수사기관의 가혹행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다. 인간성을 파멸시킬 정도로 고문했고, 가족들이 알리바이까지 증언했지만 그들마저 위증으로 몰아갔다. 심지어 그중 한분은 시각장애인이라 앞도 보지 못한다. 두 사람의 무죄를 확신해 변호를 맡았던 사람이 현재 대권주자 문재인씨다. 자신이 30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억울하고 기억에 남는 사건이 바로 엄궁동 살인사건이라고 얘기한 적 있다. 현재 이 사건의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재심>처럼 또 한번 두분이 호흡을 맞춰도 좋을 것 같다.

김태윤_ <재심>으로 족하다. (웃음) 이제는 정말 편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약촌 사건처럼 내 마음을 움직이고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겠다 싶은 사건을 만나게 되면 또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박준영_ 사람의 운명은 의지대로 가지 않는다. 상황이 의지를 몰아가기도 한다. 나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살아본 적이 없다. 다만 그건 믿는다. 사람은 살아온대로 살아간다는 것. 그걸 거역하면서 딴 거 하면 안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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