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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인터뷰] "배우로서 보여지는 것은 1%" - <보통사람> 조달환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17-04-06

녹음기를 켜자, 장난기가 발동한 조달환은 “안녕하세요, 한석귭니다~”라며 대뜸 한석규 성대모사를 한다. 인터뷰 중간중간 오달수와 송강호의 성대모사도 들을 수 있었다. 끼 많고 사람 좋아하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그는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오늘 먹은 점심 메뉴를 얘기하다 문득, 일상에서의 깨달음을 들려주었다. 조달환은 연기는 물론이고 “인성, 인품, 인격”을 갈고닦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배우다. <공모자들>(2012),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뷰티 인사이드>(2015) 등 다수의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온 그가 <보통사람>에선 연쇄살인범으로 몰려 고문받는 태성을 연기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큰 캐릭터였지만 조달환은 그것마저 연기의 카타르시스로 치환해버린 듯했다. 그의 연기론과 인생론에는 새겨들을 말이 많았다.

-<보통사람>의 태성은 안기부의 공작에 의해 연쇄살인범으로 몰리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잔상이 가장 오래 남은 캐릭터이고 연기였다. 이 작품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김봉한 감독님과 4~5년 전에 <히어로>(2013)라는 작품을 같이 할 뻔했다. 그때는 함께하지 못했는데, 작품이 끝나고 한번 보자더라. 그때 보여주신 작품이 <연쇄살인범 김대두>(이후 제목이 <공작>으로 바뀌었고 최종적으로 <보통사람>이 됐다)였다. 김대두는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범으로 기록된 실존 인물인데, 영화에서처럼 안기부가 사건을 기획해 언론에 터뜨린 정황이 있었던 사건이다. 처음엔 그 이야기가 지금의 정권에서 가능할까 싶었다. 이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신다니. (웃음) 그래서 거절을 했다. 실제로 김대두는 키가 160cm 정도로 작은 체구의 20대 청년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더 적합할 것 같은 사람을 소개해줬다. 그렇게 1~2년을 거절했는데 고맙게도 감독님이 끝까지 나를 고집하셨다.

-왜 그렇게 고집했다던가.

=취조실에서 자장면 먹는 신이 내 마지막 촬영분량이었는데 그날 회식 자리에서 감독님께 여쭤봤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생각하는 배우 조달환의 모습은 일부일 뿐이고 나는 너의 다른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사람들이 몰라주는 게 아쉽다’고 하셨다. 또 내가 못하겠다고 고집부리니까 감독님도 고집이 생겼다고. (웃음) 개인적으로는 시국이 더 재밌는데 이런 이야기가 재밌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시사회장에서 영화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 그렇게 눈물 흘린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더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많이 했다. 최근에는 나만 잘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이미 세상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조달환 너 진짜 못돼졌구나. 먹고살 만해지니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지? 그런데 이보다 더 힘든 세상을 아이한테 물려줄 거야? 아이한테도 세상은 이미 아름다우니 네가 세상을 아릅답게 보면 된다고 말하려고?’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뭘 안다고 그랬을까 하며 반성이 되더라. 같이 잘 살아야지.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야지 싶었다. 빈부격차도 줄여야 하고, 사람에 대해 함부로 평가해서도 안되고, 배우라는 직업이 대단하다 생각해서도 안 되고. 그러니 까불지 말고 주변 사람들한테 더 잘하면서 살자, 스스로에게 더 잘하고,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자, 그런 생각들을 요즘 많이 한다.

-<연쇄살인범 김대두> 때는 김태성의 역할이 지금보다 컸겠다.

=그때는 살인범과 형사의 이야기가 중심축이었다. 감독님한테 김대두 사건에 대해 듣는데, 그것이 조작이라는 근거들을 접하니 너무 무섭더라.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의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나 역시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골국에 선지 넣고 우거지 넣어서 자연의 맛으로 우려낸 음식을 찾아가서 먹는 걸 택했다. 어렸을 땐 할아버지가 그걸 왜 맛있다고 하는지 몰랐는데 크니까 그 맛을 알겠더라.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음식을 선택해야 하고, 내가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몸에 좋은 영화들이 있다. 배우로서 선택의 배분을 잘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더이상 <초록물고기>(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박하사탕>(1999) 같은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다는 거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이 예전보다 더 힘들어진 건지도 모른다. 더 희망을 갖기 힘들어졌고 선택의 자유 또한 사라진 걸지도. 정치적 공작만 보는 건 좁은 시야에 갇혀 있는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들에 좌우되긴 싫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겐 소중하니까. 그래서 즐겨야 한다. 더 치열하게 사랑하고 더 자주 고맙다고 얘기하면서 살 거다. 돈도 버는 족족 쓰고. 1만원짜리 커피도 먹고, 소고기 먹고, 여행도 다니면서. (웃음)

-촬영 준비 과정도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안다. 몸무게를 18kg이나 감량했다.

=6개월에 걸쳐서 14kg을 뺐는데, 60kg부터는 진짜 살이 안 빠지더라. 그때부턴 몸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물도 안 먹고 사우나에도 가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당시 먹은 거라곤 견과류, 방울토마토, 황태, 김 정도였다. 살을 빼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키고 싶었던 건, 그 모습이 관객에게 불편하게 보여선 안 된다는 거였다. 한 인간으로서 연민이 일고 마음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모습이 잔인하고 불편하게 보인다면 관객이 나를 미워할 수 있으니까.

-손현주 배우는 당신이 너무도 깊이 캐릭터에 빠져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

=가까이 있던 가족들이 제일 힘들어했다. 식욕이 채워지지 않으니 성욕과 수면욕도 떨어지고, 인간의 기본 3대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니 이성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우울함에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되고. 그걸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 또한 가족의 힘이었다. ‘어차피 난 잘해낼 거야. 이건 별거 아냐. 그냥 연기야. 이거 잘해내고 돈 잘 벌어서 맛있는 거 먹고 여행 가자.’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이겨냈다. 현장에선 감독님이 무한신뢰를 해주셨고, 손현주 선배님은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현장을 지켜주셔서 나는 힘들 게 없었다.

-태성이 영화에 첫 등장하는 세탁소 신을 제외하고는 전부 취조실에서 고문받는 장면이다. 실제로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한 채 매번 취조실로 꾸며진 세트장에서 촬영해야 했다. 세트장에 들어설 때마다 기분이 어땠나.

=예산이 적어서일 텐데 공업용 페인트로 세트장에 칠이 돼 있었다. 냄새가 심했다. 또 수갑을 계속 차고 있으니까 움직일 때마다 수갑이 조여 팔목에 멍도 자주 들었다. 그런 상태로 한두 시간 지나면 지친다. 하지만 다들 치열하게 연기했다. 나뿐 아니라 다들 고생하며 찍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손현주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연기했을까 싶다. 손 선배님은 현실과 영화를 정확히 구분하신다. 그래서 한번도 나를 아프게 때린 적이 없다. 영화는 영화인데 왜 진짜로 때리냐고. 그건 폭행이지. 그러면서 기가 막히게 가짜로 잘 때려주셨다. (웃음)

-태성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이라 취조를 받을 때나 맞을 때 조금씩 느리게 반응한다. 그 속도감과 리듬이 인상적이었는데, 계산된 연기인가.

=본능적으로 연기했던 것 같다. 제일 중요한 건 좋은 동료들을 만나는 거다. 그들이 내 리액션을 다 받아주니까 나도 상대배우만 바라보고 거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면 된다. 좋은 배우는 결국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 같다. 그래서 호흡이 잘 맞는 배우를 만나면 너무 즐겁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세탁소 신에서 태성의 첫 대사다. 원래는, 태성을 잡으러 온 성진(손현주)이 “너 청바지 찾으러 왔냐?” 그러면 내가 “네? 저요?” 이렇게 대답하는 거였다. 그런데 현장에선 “너 청바지 찾으러 왔냐?”라고 했을 때 내가 “아니요” 그랬다. 그러니까 손 선배님이 “아니야?” 이러시더라. 시나리오에는 “아니요”도 없었고 “아니야?”도 없었다. 미리 선배님과 맞춰보지도 않은 대사였다. 그런데 본능적으로 그런 말이 나왔고, 선배님은 그걸 또 완벽하게 받아주셨다. 그 상황이 너무 좋아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웃음)

-자장면을 먹는 신에서도 그런 호흡이 빛났다.

=맞다. 사실 태성이 ‘흐흐흐흐’ 하고 흐느끼며 우는 건 원래 없는 장면이었다. 그냥 성진이 수갑을 풀어준다, 가 전부였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고문하던 성진이 자장면을 주고 옷을 입혀주면서 미안하다 그러니까 이상하잖아. 그런 감정으로 자장면을 먹는데, 그 자장면을 씹을 수가 있어야지. 자장면을 씹으면 신이 길어지니까 면을 씹지도 못하고 삼키기만 했다. 그런데 실제로 눈물이 나더라. 맛은 있고, 슬프고, 무섭고, 억울하기도 하고. 내 실제 감정이었다. 실제로 그 장면을 찍을 때, 내 영혼이 몸과 분리가 돼서 영혼이 나를 지켜보는 것을 경험했다. 굉장히 섬뜩하고 무서웠다. 컷 소리가 나고 혼자서 20분을 울었다. 그러자 감독님이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난독증 때문에 시나리오를 숙지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작품을 준비하는지 궁금하다.

=많은 감독님들에게 죄송한 얘기지만 그 때문에 100% 시나리오를 숙지하고 들어간 작품이 몇편 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연기했지만 그게 내 취약점이었기 때문에 딴 길로 새려고도 많이 했다. 탁구, 캘리그래피, 사진, 음식, 미술 그런 쪽으로 관심을 돌리려 했다. 어렸을 땐 시나리오 보느라 현장에 잠 못 자고 가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본을 잘 안 본다. 대본을 많이 본다고 연기가 되는 게 아니더라. 현장에 더 많은 배움이 있고 예술이 있다. 그래서 기본만 숙지하고 현장에서 급속도로 집중해서 연기한다. 대신 감독님과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떻게 이야기를 쓰게 됐는지 그 과정을 들으면 숲이 보인다. 모든 답은 대본 안에 있지만 그 대본을 쓴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을 워낙 좋아한다.

-캘리그래피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보통사람>을 비롯해 여러 영화 제목의 타이틀 디자인에 참여했다. 취미를 취미로 끝내지 않는 것 같다.

=병이다, 병. 탁구든 글씨든. 어렸을 때 공부를 잘 못했다. 그런데 글씨 잘 쓰면 사람들이 예뻐해주고 좋아해주지 않나. 그땐 난독증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어쨌든 초등학생 때부터 가로획, 세로획만 몇천 만번씩 썼다. (기자의 수첩에 볼펜으로 가로획과 세로획을 정성들여 쓰기 시작한다.) 학교 수업 안 듣고 계속 이것만 했다. 여기엔 엄청난 힘 조절과 섬세함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샤프심을 얇게 갈아서 쌀알에다 백자 이상 글씨를 쓰기도 했다. 그건 돋보기로 봐야 한다. 좋아하던 누나한테 쌀알에 편지 써서 여기 내 마음이 있다고 건넨 적도 있다. (웃음)

-탁구 실력은 TV 예능 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제대로 증명했는데, 아직도 그때의 조달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우리동네 예체능>이 배우로서의 삶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연기하고 싶으면 인지도를 올려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예능이든 뭐든 다 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랬다간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그런데 탁구는 워낙 좋아하는 운동이었고 단 1회차만 출연하면 된다고 해서 나갔다. 그런데 6개월을 출연하게 된 거다. 사람의 운명이란 게 참…. 내게 <우리동네 예체능>은 영화만큼이나 멋진 하나의 작품이었다. 누군가는 아직도 달환이 네 인생 최고의 작품은 <우리동네 예체능>이라고 한다. 그때 내 역할이 나도 참 좋았다.

-연기를 하지 않고 있을 때의 삶을 늘 좋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것 같다.

=감정의 기복을 줄이고 싶다. 배우로서 보여지는 것은 1%다. 그외 99%의 내 삶, 그 삶의 패턴을 어떻게 가져가는지가 중요하다. 연기와 일상의 비중을 잘 맞춰 놓지 않으면 자칫 잘못하다 감정에 무너질 수 있다. 일상에서의 내 역할, 가족 안에서의 배역,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 드라마 <귓속말>에서 변호사 역으로 출연 중이다.

=근래에 고위직 역할이 꽤 들어오는데, 변호사 역은 최근 <미씽: 사라진 여자>에서 잠깐 해봤다. <귓속말>에선 후반부에 내 캐릭터가 활약하는 때가 온다고 하더라. 그때 뭔가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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