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를 소재로 했을 뿐 소설 <군함도>는 영화 <군함도>와는 전혀 다른 별개의 이야기다. 작가는 굳이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사실 한수산 작가는 누구보다 일찍 군함도에 주목했고 무려 27년을 매달려 소설 <군함도>를 완성했다. 일본의 일방적이고 왜곡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시도로 군함도가 언론의 관심을 받기 전부터 묵묵히 이야기를 발굴해왔다는 말이다. 오래 곁에 두고 진중하게 고민한 만큼 소설 <군함도>의 묵직함은 남다르다. 그렇다고 단지 무겁게만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한수산 작가는 <군함도>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이야기한다. 사람이야말로 역사, 민족,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가치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소설 <군함도>가 다시 읽고 여러 번 읽고 나눠 읽기에 좋은 소설, 필요한 이야기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내 작품이 첫발이 아니라도 좋다. 오히려 여러 이야기 중 하나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에서 군함도를 계속 되살려주었으면 한다.” 한수산 작가의 간절함이 감사하다.
-소설 <군함도>는 무려 27년간 집필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나도 이번에 출판사에서 계산해줘서 알았다. 군함도를 소설로 다루겠다고 결심한 시점부터 지금까지를 계산한 건데, 정확히는 3번에 걸쳐 다시 쓴 소설들을 전부 포함한 시간이다. 1989년 일본 헌책방에서 <원폭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만난 후 나가사키 원자폭탄(이하 원폭) 피해자들과 군함도라는 섬에서 일어난 가혹한 노동에 대해 알게 됐다. 이후 섬을 직접 답사하고 피해 생존자인 서정우 선생을 만나면서 이건 소설로 쓸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작가적 상상력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사실 자체로 이미 누군가가 전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였다. 단지 내가 그 첫발을 뗐을 따름이다.
-<군함도> 이전에 먼저 쓴 다른 작품들이 있었다는 말인가.
=첫 번째로 1993년 <중앙일보>에 <해는 뜨고 해는 지고>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3년 가까이 썼는데도 주인공들이 군함도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할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지만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셈이니 작가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즈음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연재를 중단하고 숙고에 들어갔다. 한참 뒤에 1년 동안 매달려 2003년 5권의 책을 탈고해 <까마귀>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당시 원고를 넘기고 미국에 연구차 잠시 건너가 있었는데 출간된 책을 보자마자 나의 실패를 깨달았다. 소설은 비유하자면 거대한 빙하 중 바다 위에 뜬 작은 부분을 묘사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필요한 이야기 말고도 너무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아냈다는 걸 뒤늦게 자각한 거다. 바다에 잠긴 빙하까지 더듬고 있었던 거지. 사회현상, 원폭 제조 과정, 일본의 전후 사정 등등 총체적인 그림을 그린 거다. 바로 다시 쓰고 싶었지만 붙잡고만 있다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정리했고, 그게 2016년 나온 <군함도>다.
-사실 다시 쓰는 게 새로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 심지어 <군함도>는 전작이랄 수 있는 <까마귀>를 대폭 줄인 셈인데.
=줄이기도 했지만 다시 쓴 지점도 많다. 같은 사건, 같은 시공간이지만 사실상 다른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까마귀>는 2009년 일본에서도 2권짜리 책으로 번역되었는데 원래는 새로 쓸 <군함도>와 함께 동시 출간을 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당시 반응들이 내겐 또 하나의 동력이 됐다. 보수, 진보 언론 가릴 것 없이 대부분 한국 작가가 군함도의 부끄러운 역사를 숨김없이 썼다는 데 주목했다. 대체로 우호적인 반응이라는 데 놀랐다. 한편으론 당연하다 싶은 게 <군함도>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일본의 제국주의, 국가라는 제도, 인간을 초라하게 만드는 권력이라는 탐욕 등을 고발하려 했다. 악인이라는 소악이 아니라 국가라는 이름의 거악. 다시 쓴 <군함도>는 그런 지점들에 집중한다.
-말씀처럼 소설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군함도에서의 고된 생활과 탈출기는 일부분이고 이후 나가사키 원폭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보면 인간애가 돋보인다. 한편으론 사람처럼 살기 위한 고난과 각성처럼 보이기도 하고.
=민족의식은 어느 날 하늘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다. 씨앗이 싹트고 자기의식이 정립되어가는 과정이 있다. <군함도>는 그걸 따라간다. 주인공을 일제 시대 적당히 먹고사는 정미소 집 아들, 어찌 보면 친일의 수혜자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일본 지배가 당연한 상식이었던 인물이 식민 지배의 이면과 실상을 목격하면서 의식의 혼란을 겪는 거다. 당시 민중의 눈높이를 상상하고 탐색하기 위해 공을 들였는데 주인공은 그야말로 평범한 인물이지만 타인을 긍휼히 여기는 인간성을 끝내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자극적인 갈등만을 부추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소설이 가야 할 길이라고 믿는다. 아사히신문사에서 펴낸 <원폭 전후>라는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피폭자들의 증언을 모은 책이었는데 그중 ‘구조대의 주체가 되어 활동해준 젊은 조선인 징용자들을 이제 와서 결코 잊을 수는 없으리라’라는 구절이 있다. 군함도에서 일본인은 조선인을 버렸지만 조선인은 끝까지 인간의 길을 걷고자 했다는 긍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증언이다. 그 짧은 증언에서 소설 <군함도>의 동력을 찾은 셈이다.
-소설 중 유독 힘겹게 다가오는 건 배고픔에 대한 묘사다. 애달프다고 할까.
=‘배가 고파요’라고 탄광 벽에 쓴 사진을 보았나. 열악하고 강제적인 노동환경 중 가장 가혹한 게 배고픔이다. 당시 자료를 찾아보면 허기를 달래려 그렇게 깻묵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혈기왕성한 청년이 배가 고파서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전달하고자 했다. 이제는 돌아가신 서정우 선생(군함도에 15살에 끌려가서 광부 생활을 했다. 나가사키 원폭 피폭자이며 극중 인물인 성식의 실제 모델이다)을 마지막으로 만나러 간 날 이분이 밥을 물에 말아 드시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누가 저분의 인생을 저렇게 부쉈을까 내내 생각하다 보니 불끈 치밀어 오르는 게 있었다. <군함도>는 그 책임을 따져 묻는 데서 출발하는 이야기다.
-<해는 뜨고 해는 지고> <까마귀> <군함도>는 섬에서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전반적으로 상황과 장면을 이미지로 묘사하는 데 특별히 공을 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발로 뛰는 글을 써서 그렇지 않나 싶다. 어쩌면 소설가는 발굴을 하는 사람이다. 주변에 흩어진 사실, 일상에서 진실을 더듬어 찾아나간다. <군함도>를 쓰기 위해 수차례 현장을 답사했고 증언자들과 함께 군함도 곳곳을 걸어다니며 그들의 생생한 기억을 들었다. 그 기억과 증언들을 글로 옮긴 게 소설 <군함도>이니 이미지 묘사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소설가는 멀찌감치 우두커니 서 있는 관찰자 같기도 하다. 직접 그 삶을 살아보는 건 아니니 때론 무력감이 들기도 하는데, 그러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관찰할 때 전심전력을 다하려 한다.
-<무한도전>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군함도를 다뤘고,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문을 연 작가로서 이를 바라보는 소감은.
=감사. 그리고 필요다. ‘군함도’는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다.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방식과 시각으로 수없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떤 경로로든 끊임없이 이야기된다는 게 중요하다. 기록은 지나고 나면 화석이 된다. 피해 당사자들이 사라지면 잊힌다. 응어리가 사라졌다면 그것도 괜찮겠지만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잊혀선 안 된다. 오늘 인터뷰하러 오는 길에 본 게 하나 있다. 청량리역 에스컬레이터가 군함도의 만행을 저지른 미쓰비시 제품이더라. 그런 나라를 누가 무서워하겠나. 누가 반성하겠나. 소설은 잊히는 역사를 현재화하는 작업이고 문화의 역할은 기억을 되살리는 거다. 해결되지 않은 역사를 오늘의 문제로 만드는 것이 문화인들의 소명이자 의무다. 작가로서 꿈이 있다면 과거사에 관한 기억 3부작을 쓰고 죽는 거다. 조선인 징용병들이 BC급 전범이란 멍에를 벗지 못하는 문제, 근로정신대에 끌려갔던 할머니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 문제도 있다. 다행히 내가 잡기에 능하지 못해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즘에 워낙 독서 콘서트나 강연 요청이 많아서 감사하면서도 고민이다. (웃음)
소설 <군함도>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일명 군함도로 불리는 일본 하시마섬. 소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죽음 같은 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삶과 나가사키 원폭 문제를 다룬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후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온 한수산 작가가 치밀한 자료조사와 개작을 반복해 27년에 걸쳐 다듬어낸 역작이다. 친일파 집안에서 자란 지상과 춘천고등보통학교 동문인 우석, 두 남자는 미쓰비시광업소 다카시마탄광 하시마분원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끝에 탈출을 시도한다. 시대를 직접 살아낸 것마냥 생생한 묘사를 바탕으로 시대의 비극은 물론 인간의 근원적인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