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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 오브 워터> 소재, 스머티노즈 섬 살인사건
2002-04-11

미디어가 만든 전설

미국사회에는 도끼를 든 살인마들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있는 듯하다. 귀신이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전설의 주테마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확실히 도끼로 사람을 난자하는 살인마들에 집착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은 미국의 영화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에 도끼 살인마를 등장시킨 영화들만 해도 <캠퍼스 레전드> <슬리피 할로우> 등이 있었고, <샤이닝>과 같은 고전이나 <나는 도끼 부인과 결혼했다> 같은 코미디도 도끼 살인마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심리를 잘 드러내준 영화들. 같은 맥락에서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의 <웨이트 오브 워터>도 현대의 미국인들이 도끼 살인마의 이야기에 얼마나 강박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도 설명된 것처럼 실제 사건이 일어난 것은 1873년 3월6일, 메인주와 뉴햄프셔주의 경계선에 있는 숄스 군도의 스머티노즈라는 이름의 섬에서였다. 희생자였던 어네스 크리스텐슨과 카렌 크리스텐슨은 도끼로 난자당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사건 현장에서 도망친 뒤 다음날 아침에 발견되어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가 된 마렌 혼트벳은 자신의 올케와 동생의 살인범으로 루이스 와그너라는 어부를 지목했다. 남편인 존 혼트벳과 오빠인 이반 크리스텐슨 밑에서 일한 적인 있는 루이스 와그너가, 돈을 노리고 남자들이 섬을 떠나 있는 사이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던 것. 그런 주장은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루이스 와그너가 보스턴까지 도망쳤다가 체포됨으로써,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1875년 미국에서 흉악범에 대한 마지막 교수형의 제물이 될 때까지, 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는 사실이다.어떻게 보면 너무나 뻔한 것 같은 이 사건이 지금까지도 미국인들의 정신 세계를 자극하는 이유는, 교수형에 처해진 루이스 와그너가 진범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주장이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마렌을, 다른 이들을 마렌의 남편 존을 진범으로 지목하기도 했고, 한편에서는 그 당시 섬에서 공사에 참여하고 있던 인부들 중 일부가 진범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이 미국인들의 이목을 꾸준히 집중시킬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바로 그런 다양한 주장들을 여과없이 전달한 미국 미디어들의 괴팍한 관심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약 130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 하나가 이른바 ‘전설’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그런 역할이 필수적이었던 것.

그 ‘전설’ 만들기를 처음 시작한 것은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부터 재판과정 그리고 교수형이 집행될 때까지 약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관련 기사에 기꺼이 헤드라인을 내준 신문들이었다. 초기엔 주로 스머티노즈 섬이 속해 있던 뉴햄프셔주와 메인주의 지방신문들이 열성적으로 사건을 보도하며 편향적인 기사는 물론 때론 오보를 일삼은 것이 인구에 많이 회자되었고, 재판과정에 들어서면서부터는 타지역 신문들까지 그에 가세했던 것이다.

그 다음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출판계. 1875년 스머티노즈에 살면서 희생자 중 하나인 카렌을 자신이 운영하는 호텔에 고용하기도 했던 시인 셀리아 텍스터가, <Memorable Murder>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출간해 사건을 좀더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어 1927년에는 <Murder at Smuttynose and Other Murders>라는 제목으로 사건의 상세한 내막을 그린 책이 출간되었고, 1942년에는 사건을 좀더 범죄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풀어나간 <Famous Old New England Murders> 제목의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이어 1959년에는 숄스 군도의 역사를 연구하는 리만 거트리지가 사건에 대한 간략한 해설서인 <Moonlight Murder at Smuttynose>를 출간하였고, 가장 최근인 2000년 말에는 범죄소설가인 HP 제퍼스가 도끼 살인마들과 관련된 사건들의 이야기를 모은 <With an Axe>를 출간하며 스머티노즈의 사건을 새로운 각도로 조명하기도 했다. 영화의 원작이 된 아니타 슈레브의 소설 <웨이트 오브 워터>는 1970년대에 단편으로 발표되었다가 20여년이 지난 뒤에 장편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

한편 영화쪽에서는 197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사건을 다룬 작품이 나타났는데, 약 10분의 상영시간 동안 루이스 와그너의 살인과 재판과정을 그려낸 단편 <Ballad of Louis Wagne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숄스 군도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사건이 ‘전설’화 되었음을 확실히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그러다 드디어 할리우드가 그 ‘전설’을 영화화할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소설 <웨이트 오브 워터>가 베스트셀러로 뜬 이후였다. 영화 <웨이트 오브 워터>는 초기에 올리버 스톤이 감독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가 캐스린 비글로우로 교체되어 완성된 상태로, 2000년 9월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뒤에 계속 미국에서 개봉날짜를 잡지 못하다가 오는 9월 개봉이 예정된 상태다.

이렇게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전설’ 차원으로 승화되어버린 스머티노즈 사건은 최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까지 발전되고 있는 중이다. 뉴햄프셔주가 스머티노즈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은근히 관광을 부추기는 데 열중하고 있는 것.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버킷츠빌이 엄청난 관광객들을 끌어모았던 상황을, 뉴햄프셔주도 <웨이트 오브 워터>의 개봉을 즈음하여 재연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가 성공할 것인지 여부의 상당부분은 영화 <웨이트 오브 워터>의 미국시장 성적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영화가 ‘전설’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관객들이 판단한다면 성공에 가까워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실패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리스트chulmin@hipop.com

사진설명

1. 도끼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의 집.

2. 살인의 희생자가 되었던 어네스 크리스텐슨과 카렌 크리스텐슨의 비석.

3. 당시의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해 베스트셀러가 된 <웨이트 오브 워터>.

4. 스머티노즈 사건 등 16건의 주요 도끼 살인사건을 다룬 책 <With an axe>.

스머티노즈 섬의 비극 홈페이지 http://www.seacoastnh.com/smuttynose/

<웨이트 오브 워터>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watermovi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