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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제의 일은 영화계에 맡기면 된다. 관여하려 하니 문제가 생긴다"

대법원에 상고장을 낸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목소리가 안 좋아진 지 4, 5년 됐는데 최근에 많이 좋아졌다.” 지난 8월 1일 부산 동서대학교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학 학장실에서 만난 이용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다소 피곤해 보였으나,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막힘없고 시원했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7월 21일 열린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으로 감형된 뒤 처음이자 단독으로 이루어진 공식적인 만남이다.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이미 밝혀졌듯이 그는 박근혜 정권이 자행했던 문화예술인 탄압의 최대 피해자 중 한명이다. 감사원 감사, 부산시의 행동지도점검, 검찰 기소를 차례로 당하면서 20년 동안 일군 부산국제영화제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다. 대법원에 상고장을 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그간 재판 때문에 쉽사리 꺼낼 수 없었던 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항소심에서 벌금형 500만원이 선고됐는데.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지만 대법원 상고를 했으니 끝날 때까지 준비를 잘하려고 한다. 다행히 몸이 좋아지고 있고 2심이 끝나 이제 뭘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항소심 공판에 들어가기 전에 선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도 많이 했을 것 같다.

=선고일이 6월 23일로 예정됐다가 7월 21일로 연기되니 마음이 이상하더라. 한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음이 닫혔다. 무죄이길 바랐으나 아닐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판결을 들으면서 생각보다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법정을 나오자마자 대법원 상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다이빙벨>(감독 이상호·안해룡, 2014) 상영이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시발점인데 그간 사태의 당사자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말이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국민 모두가 분노하고 있을 때 그 영화가 영화제에 출품했고, 담당 프로그래머와 상영하기로 결정했다. 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이 열리기 전에 이 영화를 초청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부산시에 공유했고, 시장님도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회견 다음날 (영화제) 담당 국장이 과장과 함께 찾아와 세월호 사건이 아직 정리된 게 아니니 틀지 않았으면 좋겠다더라.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와도 시는 집행위원장이 말을 안 듣는다고 얘기하고 넘어가면 되는 건데,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틀지 마라, 틀겠다’하며 서로를 설득하면서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 감사원의 감사와 부산시의 행정지도점검을 받을거라는 예상을 했었나.

=예상했다. (감사) 강도와 방식의 문제겠지만 이명박 정권 초기에 좌파 영화제로 찍혔고, 집행위원장인 내가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 당시 2년 넘게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와 괴롭고 힘들었다. 그때 생긴 긴장과 스트레스 때문에 몸이 많이 망가졌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조치가)다시 시작됐다. 서병수 시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나를 포함한 부산 문화예술인들이 좌파니 전부 처리해야 한다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색깔론을 이용해 무언가를 장악하려는 세력이 부산에 있었다. <다이빙벨> 상영 이전에 분위기가 조성됐고, <다이빙벨> 상영이 도화선이 된 거지.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과 달랐던 건 뭔가.

=이명박 정권은 당시 작성된 블랙리스트를 보여주며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당신 조심해라, 말을 듣지 않으면 손을 보겠다’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작업해 마지막에는 나가라는 거였다. 박근혜 정권은 그런 과정 없이 노골적으로 나가라는 식이었다. 하나는 부산시, 또 하나는 부산시의 토호 세력,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어떤 조치가) 들어온다. 부산시 토호 세력의 일부는 ‘이용관을 내쫓고 우리가 (영화제를) 접수하자’며 아주 노골적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하기 전부터 전투는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정권의 지시를 받은 감사원이 (영화제 감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몰아간 정황이 있는 것 같은데, 재판이 다 끝난 뒤 그걸 증명하고자 한다. 얼마 전 블랙리스트 진상 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공식 출범했으니 거기에도 요청하려고 하고 있다. 감사원(의 영화제 감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몰아간 정황)의 문제를 밝히지 않으면 블랙리스트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쳤는지 밝혀내기 힘들 거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감사원에 대한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송이 이 정도 진행됐으니 다행이지 시대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감옥에 들어갔을 거다. 운이 좋았다.

-김동호 이사장이 아무 조건 없이 서병수 부산시장이 내놓은 조직위원장직을 받으면서부터 부산국제영화제 파행이 시작됐는데. 당시 영화계는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 정관 전면 개정을 통한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 등 세가지 요구를 내걸었으나 서병수 부산시장은 김동호 이사장의 조직위원장 선임을 강행하지 않았나.

=인간적으로 굉장히 낙담했다. 그렇다고 핏대를 세우고 돌아다닐 수는 없는 거고. 2016년 5월 7일 김동호, 강수연, 이용관 3자가 만나 두 시간 반 정도 얘기를 나눴는데 거기서 약속한 게 있다. 모든 것이 다 끝날 때까지는 그날 대화 내용을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날 내가 했던 얘기 중 해도 될 법한 얘기 일부만 털어놓자면, 영화계가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는데 (김동호 이사장이) 정관 개정만 했으니 나머지 두 가지는 어떻게 해결할 계획인가를 물었고 그걸 해결하지 않으면 지난 20년간 쌓아온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으니 심사숙고하셔야 한다고 김동호 이사장에게 말씀드렸다. 그때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내 앞에서 그가 서병수 시장의 전화를 받아 조직위원장 자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저를 만나자고 해놓고 그런 전화를 받는 건 결례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가 ‘그게 왜 결례냐’는 거다. 그리고 서병수 시장이 영화계에 먼저 사과하도록 요청하는 게 먼저 아니냐고, 김동호 이사장에게 말했다. 그때부터 그와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된 거고, 지난 5월 김지석 프로그래머 장례식장에서 잠깐 마주친 걸 제외하면 지금까지 한번도 그를 만난 적 없다.

-김동호 이사장은 왜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과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을까.

=이용관의 명예회복을 두 가지로 생각한 것 같다. 하나는 자신이 조직위원장이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봤던 것 같다. 또 하나는 내가 정말 죄가 있다고 의심했던 것 같다. 거기서 배신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두고 뭐라고 해도 20년 동안 한솥밥을 먹은 김동호 이사장은 자체 조사를 해서 내게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면 되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서 검찰 기소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다고 충분히 얘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신뢰가 무너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김동호 이사장, 강수연 집행위원장을 포함한 프로그래머, 사무국 직원들이 당신과 거리두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거리두기가) 심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약간의 인간적인 섭섭함을 느꼈다고 해서 어떻게 하겠나. 이용관이라는 동력을 잃은 뒤 김동호, 강수연과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테고, 영화제는 열려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좋든, 싫든 김동호 이사장이라면 뭔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했을 거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원망할 수 없겠지만 모든 사태가 끝나고 진실이 밝혀지면 (그들이) 나한테 사과를 해야겠지. 지금 중요한 건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지 얘기하자는 거다.

-당시 영화제에 보이콧 선언을 한 영화계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고마웠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영화인들 덕분이다. 그들은 그간 사회 비판에 앞장섰고, 그래서 관객이 한국영화를 좋아하게 됐다. 영화인들은 이번 사태를 정확하게 본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컸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왜 영화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해야되나. 영화제 내부에 잘못이 있는데 왜 밖에 있는 영화인들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긴 시간 동안 받고 있는 재판 때문에 많이 지쳤을 것 같다.

=지치기도 했지만 억울하니까… 아직은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차라리 잘못을 저질렀다면 ‘이 부분에서 실수했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하지도 않은 일을 저질렀다고 하니까. 누구 말마따나 벌금형 좀 나왔다고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나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 그런데 양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다. 시간이 좀 지나면서 길게 보고 가야 하니 마음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 도와주고 믿어주는 사람도 많고, 그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부터 건강하고, 마음 편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계 선배로서 최근 영화산업과 관련된 이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나.

=아주 간단하다. 누가 영진위 위원장이 되든 영화계의 적폐청산을 제대로 공론화시켜서 (영화인들의) 합의대로 추진하면 제 길을 가리라고 생각한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어떤 사람이 영진위 위원장이 되어야 하나.

=영화계가 합의를 보면 되는 거다. 합의를 봤다는 건 그 사람에게 전권을 주겠다는 거니까. 누가 영진위 위원장이 되는 것보다 (영화계의 적폐청산을) 이행하는 게 더 중요하니 영화계가 적절한 사람을 정해 일을 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몇 사람 있다고 생각한다.

-파행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정상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부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내 생각엔 김동호 이사장이 잘못하고 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뀄잖나. 서병수 시장의 부름에 응한 사람인데 영화계가 원하는 것과 거꾸로 갔으니 이 상태로라면 절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 1년 안에 해결하겠다고 해놓고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물러나야지. 한 나라의 대통령도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탄핵되는 세상인데… 그래도 영화인들은 김동호 이사장이 그간 영화제에서 쌓은 명망과 덕을 인정해 스스로 물러나길 바라는 거잖아. 그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자신도 당한 사람이고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건데,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그런 얘기를 하고 있나.

-학교 생활은 어떤가.

=일과 대부분 학교에서 지낸다. 그간 학생들에게 죄의식이 많았다. 영화제 일을 하랴 본업인 교수를 등한시했던 까닭에 제자들에게 중죄를 지었는데, 영화제를 그만둔 뒤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학교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세대가 달라져 시간이 좀더 필요하겠구나 싶은데 정년퇴임까지 3년밖에 안 남아 선생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한다. 다행히 이번 학기에 열심히 했는지 학생들에게 인정을 좀 받은 것 같다. 이제는 부산 사회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영화제에 복귀하라는데 그건 못하고, 100% 안 간다. 그러면 앞으로 영화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묻는데 그것도 영화계에 맡기면 된다. 영화계가 얼마나 성숙되어 있는데, 그냥 영화계에 맡기면 잘되게 되어 있다. 문제는 잘못됐다고 자꾸 관여하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지. 그게 싫었는데 다시 (영화제로) 들어간다고?

-부산국제영화제가 복귀를 요청해온다면.

=질문이 잘못됐다. 영화제의 누가 오라고 말할 수 있겠나. 그들은 모두 물러나야 할 사람들인데. 영화계가 “이용관이 다시 가”라고 얘기해도 고민해보겠지만, 지금 그렇다고 해도 절대 안 가겠다는 얘기를 한 거다. 내게 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사람뿐이다. 물론 그래도 가지 않을 것이다. 영화계가 영화제를 원상복귀하는 데 일조해달라고 하면 선배로서, 경험자로서 그냥 곁에서 백의종군하겠다.

-그게 이용관의 명예회복인 건가.

=그렇지. 500만원 벌금형은 내 양심의 문제이지, 나에겐 법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걸 알리는 데 너무 힘든 거다. 맨날 술집에서 얘기해봐야 뭐하겠나.

-그동안 할 말이 많았을 텐데 갑갑해서 어떻게 참았나.

=정말 화가 났다. 할 수 있는 건 술을 마시는 것뿐이었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습관이 있어서 몸만 더 안 좋아지더라. 사람들이 “얼굴 왜 이렇게 안 좋아졌어?”라고 하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너, 잘못 살고 있어”라는 뜻으로 들리니까. 편한 얼굴을 보여주는 게 도리겠다,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줘야겠다 싶었다. 술을 먹어야 하면 1차만 하고 도망가고. 얼굴을 명석하게 드러내자는 게 목표였다. 요즘은 부산 문화예술계 풍토를 바꾸기 위해 형으로서,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열심히 도우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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