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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이블> 한예리 - 언제든 흔들림 없이
이예지 2017-08-23

은희는 거짓말쟁이다. <최악의 하루>(2016)에서 사소한 거짓말을 하다 만나는 남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버린 그는 <더 테이블>에서는 전문 결혼사기꾼으로 등장한다. “행사는 두번 있는 거예요. 상견례 한번, 식장 한번.” 머리를 야무지게 하나로 묶은 단정한 차림을 하고, 엄마 역할을 해줄 동업자에게 자신의 가짜 역사를 늘어놓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너무 프로페셔널해서 그만 이 사기가 정당한 것이라고 깜빡 속을 듯하다. 김종관 감독의 작품에서 연달아 ‘은희’ 역을 맡은 한예리 이야기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설득당할 법한 그의 단단함 때문일까, 은희는 이번에도 도무지 밉지가 않다.

늦은 오후에 찾은 서촌 골목길의 한 카페에선 <더 테이블> 촬영이 한창이었다. 김종관 감독은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가 남녀 사이의 비교적 가볍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라면 이번 이야기는 슬프면서도 애틋한 테마를 잡아주면서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에피소드”라고 설명하며 “정확하게 연기해야 하는 이 에피소드엔 배우 한예리가 적격이었다”고 밝혔다. 한 로케이션에서 두 인물간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영화라지만 단 1회차로 은희 에피소드를 모두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예리는 “2회차로 촬영하는 배우들이 부럽다”면서도 엔지 없이 매컷을 빠르게 찍어냈다. 신속한 촬영의 비결? 한예리 왈 “드라마가 워낙 좋아서 기교가 필요 없”단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는 늘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으로 흥미로우면서도 미묘한 긴장 상황을 만든다. 배우로선 그 디테일의 맛을 잘 살려내기만 하면 된다.” 결혼사기꾼 은희에 대해서는 “지난 ‘은희’처럼 최악의 여자라고 할 수만은 없는, 자기만의 사연이 있는 여자다. 김혜옥 선배님과 대사를 주고받으며 드러나는 감정선을 잘 지켜봐주셨으면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여성 캐릭터와 호흡을 맞추는 역할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오직 두 여성의 대화만으로 20분가량을 연기하는 셈이다. 상업영화에서는 여배우로서 이럴 기회가 정말 없다. 신나지 않겠나.” 그는 어쩌면 촬영 당일 마음이 급하다기보다는 신이 난 상태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한예리는 <더 테이블>의 은희에 대해 “<최악의 하루> 은희의 미래 같다”고 말했지만, 같은 은희는 아니다. 강진아 감독의 <백년해로외전>(2009)과 <환상속의 그대>(2013)에서 차경처럼 동명이인 캐릭터인 셈이다. 감독들에게 계속 함께 작업하고 싶은 배우로, 같은 이름으로 호명하고 싶은 인물로 분하는 한예리의 매력은 그가 지닌 어떤 종류의 강직함 때문인 듯하다. 김종관 감독은 한예리와 계속 호흡을 맞추는 이유로 “배우가 감독에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감독이 배우에게 의지하게 되는 매력”을 꼽는다. 좀더 구체적으론 “어떤 변수가 생겨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함”이란다. “저예산영화를 찍을 때는 부침이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옆에서 그를 보면 항상 초연한 태도를 유지한다. 마음이 안정된달까. (웃음)” 어떤 감독도 영화라는 수많은 변수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난초처럼 오롯한 이 배우를 사랑하지 않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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