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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위 출범과 정관 개정 등 부산국제영화제가 넘어야 할 산
조종국 2017-11-10

진척 없는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 절차

얼마 전 폐막한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전야제에 참여한 강수연 집행위원장과 김동호 이사장(왼쪽부터), 그리고 서병수 부산시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잠잠하다. 올해 영화제가 끝나면 정상화 안을 놓고 여러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올해 영화제를 마치고 물러나겠다고 공언한 터라 폐막과 함께 곧바로 큰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이와달리 제22회 영화제가 막을 내린 지 근 한달이 지났지만 정상화 과정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 지난 10월 하순, 영화계에서 서울과 부산에서 한 차례씩 모임을 열어 의견을 모았으나 후속 조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부산영화제 폐막일인 지난 10월 21일, 부산영화제 이춘연, 이은, 최윤 이사와 사무국장이 같이 만나 부산영화제 정상화 방안에 대해 서울과 부산 영화계의 의견을 각각 들어보기로 했다. 10월 25일, 부산의 영화 단체, 시민문화연대 대표 등 9명은 ‘이사회 역할을 대신할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형식의 기구를 만들어 정관 정비,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선임 등 정상화 조치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뜻을 모았다. 다음날 서울에서도 10여명이 영화단체연대회의 차원의 회의를 열었고, ‘비대위 형식으로 정상화 절차를 진행하는 방안에 대체로 동의하고, 기존 이사회에 제안’하기로 했다. 이 자리에서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거듭 확인했다.

영화계의 이런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사무국에서 이사회 소집을 추진했으나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사의 개인 일정 탓에 11월 이사회 개최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12월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12월에 이사회를 열어 영화계의 제안을 추인하더라도 내년 2월 정기총회 전에 인선과 정상화를 위한 제반 정비를 마무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비대위 구성은 물론 정상화를 위한 조직 정비 실무 절차를 진행하는 데에도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대위안’에 서울과 부산 영화계가 대체로 동의한 듯하지만 사실은 괴리가 꽤 크다. 한쪽은 기존 이사 일부에 몇몇 필요한 인사를 보완하는 정도이고,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선임에 중점을 둔다. 다른 쪽은 기존 이사회의 역할을 위임받는 비대위를 구상하고, 정관을 전면 재정비하고 이에 따라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선임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화단체연대회의 중심의 서울영화계 ‘비대위 찬성’ 입장은, ‘비대위를 통한 수습’ 방안을 ‘기존 이사회에 제안’한다는 것이다. 기존 이사회의 역할에 장애와 한계가 있으니 이를 보완하는 방법으로 비대위 형식을 활용할 수도 있겠다는 정도다. 기존 이사인 영화인 몇 사람을 중심으로 부산 지역 인사나 필요한 몇명을 추가로 선임해서,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을 빨리 선임하고 이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정관 개정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정도다.

주로 부산영화계와 시민사회 단체 등이 대안으로 제시한 비대위는, 기존 이사회를 대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사회는 지난해 김동호 이사장이 부산시와 합의해서 당시 사태를 봉합하기 위해 만든 ‘임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정상화’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게다가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사퇴하고 일부 이사는 ‘궐위’ 상태라 사실상 기존 이사회는 무력화되었다는 판단이다. 이사들이 먼저 전원 사의를 표명하고, 도리어 이사회의 권한을 위임할 비대위를 구성해달라고 영화계에 요청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는 주장이다. 먼저, 비대위를 구성해서 ‘누더기’인 정관을 전면 개정해서 법인의 체계를 바로잡고, 새 정관에 따라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을 선임하는 것이 순서라는 입장이다.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누군인지도 중요하지만 선임하는 절차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며, 이 과정을 통해 부산영화제 정상화에 모든 동력을 모으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무실한 기존 이사회에서 후임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선임안을 ‘의결정족수를 겨우 넘겨 통과’시키는 절차는 또 다른 분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관은 먼저, 총회 구성과 의결 구조를 ‘부산영화제 사태’ 이전으로 되돌리거나 더 확대하는 쪽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전 정관에는 이사회(조직위)와 집행위원회를 합쳐 80명 내외로 총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지난해 김동호 이사장 체제에서 개정한 정관은 이사 18명과 집행위원 8명으로 총회 구성원을 대폭 줄였다. 총회 구성원이 대폭 줄어든 것은 영리기업이나 사조직과는 개념이 다른 민간 사단법인인 부산영화제의 공공성과 운영 방식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의결이 용이하다는 것 이외에 긍정적인 점은 없다. 대신 이사장이나 집행부(또는 부산시)의 일방적인 운영이나 독선의 여지를 넓혀주는 함정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독소 조항인 ‘직무관련성을 막론하고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를 한 경우 집행위원을 해촉할 수 있다는 근거를 삭제하는 것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문제가 된 이 ‘문구’는 김동호 이사장이 주도한 2016년 7월 22일 임시총회에서 신설한 조항이다. 이런 조항을 신설한 것은 재판을 받고 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런 배경으로 꼬여 있는 상황을 풀기 위한 상징적인 조치로 선행되어야 한다.

비대위 형식의 과도체제를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정관 정비와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선임 등 조직 구성 권한보다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비대위를 통해 부산영화제를 보이콧한 영화계와 시민사회가 부산영화제 정상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부산영화제에 전면적으로 재결합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비대위 구성과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인선 과정에 백가쟁명식 논란이 생길 수도 있지만, 기형적인 지금의 이사회가 ‘안건’으로 처리하는 것보다는 훨씬 큰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다.

비대위 구성에 대한 이런 온도 차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련의 정상화 조치를 추진할 집행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폐막 뒤 어떤 후속 조치도 없이 부산영화제를 떠났다. 부집행위원장은 공석이고, 수습 과정을 추진할 권한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다. 누가 나서지도 않고 집행위원회나 이사회를 소집할 주체도 마땅히 없다. 현재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고 적법 절차에 따라 추진할 책임자가 없는 무주공산이다(8명으로 구성할 수 있는 집행위원회도 현재 4명만 남아 있고, 모두 외부 인사임). 사무국장이 관할하는 영화제 내부 일상 업무만 진행되고 있을 따름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침묵하고 있는 부산영화제 내부에 대해서도 눈총이 따갑다. ‘집행부’로 불리는 선정위원회(프로그래머)와 사무국도 손을 놓고 사실상 눈치만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혁명적’인 상황이라면 선정위가 나서서 새로 올 집행위원장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하고, 빨리 이사회를 소집해 정상화를 위한 절차를 밟으라거나 아니면 비대위라도 구성할 수 있게 결단하라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선정위와 사무국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이 안타깝다고 자책하는 직원도 있다. 더욱이 차기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이 누구인지에 따라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자신의 입지를 다질 궁리만 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는 직원의 탄식은 부산영화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일러준다. 부산영화제 정상화, 아직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