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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창호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 "산악 문화의 확산과 함께 지속 가능한 영화제를 꿈꾼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8-09-06

“영화감독이 신작을 가지고 인터뷰 해야지.” 몇해 전, 추석영화 흥행사와 관련된 특집 기사를 준비하다가 배창호 감독을 섭외할 일이 있었는데 그는 과거 영화에 대해 다시 얘기하는 걸 한사코 거절했다. 배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를 “한번도 마음 편히 본 적 없다”고도 말했다. 5년 전, 그와 함께 필리핀 다바오에 동남아시아 영화 학도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출장간 적 있는데 그때 배창호 감독은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고만 귀띔해주었다. 전작 <여행>(2009) 이후 내놓는 오랜만의 신작이 어떤 이야기일지 무척 궁금했지만 그는 말을 아꼈다. 그런 그가 신작 대신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움 반, 놀람 반의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산 좋아하는 사람치고 낭만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듯이 배창호 감독 같은 낭만을 아는 사람에게 산악영화제라니, 무척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한 그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씩씩하게 말했다. “하하. 김 기자, 밥 먼저 먹고 인터뷰하자고.”

-영화제 준비는 다 끝났나.

=막바지 준비를 정신없이 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영화제를 알리는 게 최우선이라 스탭 모두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긴장도 많이 되겠다.

=데뷔작 개봉을 앞둔 신인감독의 심정이다.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1982) 개봉했을 때 기억이 나나.

=되게 더운 여름날에 시사회가 열렸다. 극장이 사람들로 꽉 찼다. 극장 안도 더웠고, 몸이 긴장된 탓에 안경알에 김이 서려 수십번 닦았다가 넣었다가 했다. 이제는 나이를 먹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영화제 개막을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다. 준비한 만큼 결과가 나오겠지.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당장 작품에 들어갈 수도 없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또 산악영화제가 가진 컨셉이 신선했다. 잘할 수 있겠다 싶어 선뜻 맡기로 했다. 집행위원장이라는 경험도 하고 싶었다.

-산을 좋아하나.

=40대였던 1992년, 체중이 95kg가 넘어가면서 뛰는 것조차 불편해 건강을 관리해야겠다 싶었다. 당시 살던 집 근처에 야트막한 산이 있어 그곳을 올랐다. 그런데 그 산조차 오르기 힘들어 열몇번씩 쉬었다가 올랐고, 줄넘기도 열심히 했다. 계속 하다보니 재미가 붙었고 결국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산을 타면서 고통의 즐거움을 알았달까. 올라갈 때는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내려올 때는 성취감이 아주 컸다. 이후 혼자서 내장산에 가서 단풍을 구경하고, 강원도의 설악산, 충청도의 월악산을 두루두루 다녔고 건강도 덩달아 좋아졌다. 딸이 어릴 때 서울 구의동으로 이사왔는데 딸을 데리고 근처 아차산을 종종 올랐다. 산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그렇게 동화 같을 수 없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라고 한번 안 타면 산에 계속 안 가듯이, 요즘은 등산을 하지 않는데 영화제가 끝나면 ‘영남알프스’의 멋진 산들을 한번 올라가봐야겠다 싶다.

-산의 어떤 점이 매력적이던가.

=보약 한첩을 먹은 것 같다고나 할까. 정신이 맑아지고 육체가 가벼워진다. 그런데 산에 가기까지가 너무너무 귀찮다. (웃음) 아내(배우 김유미. 배창호·김유미 부부의 자전적 이야기였던 <러브 스토리>(1996), <>(1999), <여행>에 출연)도 산을 좋아하냐고? 그럼, 데이트를 신청할 때 “지리산 밑에까지만 갑시다”라고 해서 복장을 맞춰 입고 데이트한 적 있다.

-하산 길에 막걸리도 마시나. (웃음)

=산만 가면 맥주, 소주 생각이 안 나고 오로지 막걸리만 생각난다. 금주한 지 꽤 됐지만 막걸리를 매우 좋아했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슬로건에 맞게 올해가 법인 출범 원년인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더 확장됐다.

=지난 4월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됐는데 섹션이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섹션 하나하나가 만족스러웠다. 산악영화뿐만 아니라 인간 한계에 도전하거나 자연과 환경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도 함께 모았다. 가족이 와서 볼 수 있는 ‘움프 투게더 섹션’도 마련했다. 산악영화제로서 정체성을 지키되 스펙트럼을 좀더 넓혀가려 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산악영화가 있나.

=1978년 현대종합상사 케냐 지사장으로 간 적 있다(그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해 회사 생활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1981년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1981) 조감독을 맡았다. 당시 배 감독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하면, “전공 과목이 경영학인 내가 해외근무까지 하면서도 영화감독이 되고픈 꿈 때문에 귀국한 걸 보고 친구들은 괴짜라고 했다. 샐러리맨인 내가 직장 근무보다 영화감상에 시간을 보냈고 나름대로 영화를 하겠다고 좋은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동료들은 이해를 못했다.”-편집자) 그곳 국립공원을 갔는데 설산을 배경으로 들소 떼들이 물을 찾아 우르르 이동하는 광경을 보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의 사막, <닥터 지바고>(1978)의 설원, <해바라기>(1970)의 해바라기밭 등 자연 풍경이 스토리에 잘 녹아든 영화를 좋아한다.

-<클리프 행어>(1993) 같은 역동적인 산악영화를 꼽을 줄 알았는데.

=산악영화라면 초등학생 때 봤던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의 <>(1956)을 좋아한다. 이 영화는 형제이야기다. 형 재커리는 베테랑 등반 가이드로 활약하다가 사고를 당한 뒤 더이상 산을 오르지 않는다. 그에게는 하나뿐인 가족인 동생 크리스가 있다. 그들이 사는 에베레스트에 비행기가 추락하자 크리스는 산을 오르려고 하고 , 재커리는 마지못해 동생과 동행한다. 기억이 오래 남는 영화라 프로그래머에게 상영해달라고 요청했고, 고전영화들을 선정한 ‘움프 클래식 섹션’에서 상영된다.

-‘여성 그리고 산’이라는 주제로 꾸린 ‘울주 비전 섹션’이 눈에 띈다.

=용기 있고 멋진 여성 등반가들을 그린 중·단편 13편을 준비했다. 한국에도 여성 등반가가 많다. 1963년부터 2018년까지 히말라야를 오른 모든 등 반대와의 인터뷰를 기록한 엘리자베스 홀리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히말라야의 기록자-엘리자베스 홀리>도 이 섹션에 포함됐다. 산악영화에 다큐멘터리가 많은데 스턴트맨과 CG 없는 스릴 만점의 장르라고나 할까.

-좀더 많은 지역 주민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고민도 하고 있을 것 같다.

=‘움프씨네콘서트’라는 행사를 준비했다. 김훈 작가, 정호승·이동순 시인의 강연이 진행된다. <히말라야>(2015) 상영이 끝난 뒤 영화 속 삽입곡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부른 김창완 밴드의 공연과 <리틀 포레스트>(2018) 상영이 끝난 뒤 가수 조동희·장필순·권진원의 공연, <걷기왕>(2016) 상영이 끝난 뒤 여행스케치의 공연이 각각 펼쳐진다. 가족과 함께 텐트 치고 누워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자리도 있다.

-영화제가 개최 2회 만에 국제산악영화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했고, 아시아영화진흥기구에도 가입돼 넷팩상을 신설했다. 영화제가 산업적 기능까지 갖춘 셈인데 이와 관련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나.

=지속 가능한 영화제가 되려면 산악 문화가 확대돼 산악영화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커져야 한다. 등산 인구가 천만명이 넘고, 주말마다 등산복을 입고 산을 오르며, 국토의 70%가 산인 만큼 우리 삶은 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데 산악 문화는 그만큼 발전하지 않은 것 같다. 전국의 산악인들이 배낭을 메고 울주에 와서 영화도 보고 영남알프스의 빼어난 경치도 감상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질문을 하자면, 신작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얘기를 할 수 없지만 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로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하고 있다. <황진이>(1986)를 찍을 때부터 구상했던 아이템인데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소망만 가지고 있다가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는 할 수 있겠다’ 싶다. 10여년 넘게 준비하다가 수면장애를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극복하고 시나리오를 틈틈이 수정하고 있다. 투자자를 알아보고 있다.

-요즘에도 한국영화를 많이 챙겨보나.

=많이 본다. 메인스트림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보면 기술적인 완성도가 놀라울 정도다. 특히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한 것 같다. 하지만 흥행이 최우선 목표다보니 소재가 한정적이고 스토리가 작위적이며, 흥행 강박증이 걸린 사람인 양 자극적인 표현에 매달리는 영화가 많다. 인간을 좀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음에도 선과 악으로 도식화시키고. 영화는 삶을 비추고, 영화 작가로서 태도가 중요한 매체라는 점에서 아쉬운 작품도 많다.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흥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좋겠다.

-산업의 헤게모니가 자본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는데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산업이 갈수록 양극화되는 것 같다. 제작비 규모를 좀더 줄여도 될 텐데 말이다. 과거에도 제작비에 대한 압박은 컸다. 압박이 큰 만큼 비용을 절감하는 훈련도 됐다. 컷 수를 줄이고, 시나리오를 압축시켰으며, 머릿속에서 편집하며 찍었다. 볼거리가 중요한 장면을 원하는 대로 찍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신작을 찍는다면 함께하고 싶은 배우가 있나.

=영화가 들어가야 누가 어떤 배역을 하는지가 정해지겠지. 지금은 대답 못한다. 활동 중인 배우들은 연기가 상당히 현실적이다. 깊이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들은 인간의 깊은 면모까지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작업한 동료 중에서 누가 가장 많이 생각나나.

=두 사람이 있다. 일단 안성기씨. 만든 영화 17편 중에서 13편을 함께했으니까 얼굴이 많이 떠오른다. 또 다른 한명은 정광석 촬영감독(<꼬방동네 사람들>부터 <적도의 꽃>(1983), <고래사냥>(1984),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깊고 푸른 밤>(1984) 등 배창호 감독과 콤비를 이뤄 만든 작품들이 연달아 히트했다.-편집자), 강원도만 가면 생각나. <고래사냥>도, <꿈>도 거기서 찍었으니까.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스벤 닉비스트 촬영감독과 작업을 많이 했다. 한 인터뷰에서 잉마르 베리만 감독이 “영화를 다시 찍고 싶지 않은데 스벤 닉비스트와 호흡을 맞추면서 작업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다”고 말한 적 있다. 그 말처럼 나 또한 정광석 촬영감독과 호흡이 잘 맞았고, 그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 <꼬방동네 사람들>이 흥행한 뒤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가 “배 감독, 세 작품까지 성공해라”고 조언해주었다. 세 작품 연달아 성공한 뒤 다시 함께 술을 마시는데 그가 “다섯 작품까지 성공해”라고 말했다. 다섯 작품을 성공한 뒤 술을 마셨는데 정 촬영감독이 “열 작품까지 성공해”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그는 내가 들뜨지 않게 바로 잡아준 선배였다.

-지금까지 만든 영화 중에서 최근 들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작품은 뭔가.

=<꼬방동네 사람들>은 디지털로 복원돼 블루레이로 나왔고, 해외에서도 가끔 상영돼 재조명을 받곤 한다. <꿈>은 최근 프랑스에서 소개됐다. <>(1999)은 유튜브에서 스페인 관객이 스페인어 자막을 입혀 올렸는데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본 횟수가 무려 190만건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도 조명을 받는 건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이 내 영화를 오랫동안 기억해주는 거니까.

-지난 7월 열린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 조직위 위원을 맡기도 했는데, 최근 대외 활동이 많아 좋아 보인다. (웃음)

=그건 사수이자 충무로뮤지컬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이장호 감독이 시켜서 했다. (웃음) 물론 충무로라는 이름에 대한 애정도 있었지만 말이다.

-JTBC <전체관람가>를 통해 단편영화를 만든 이명세 감독처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단편영화를 만들 생각도 있나.

=장편과 단편 가리지 않고 도전하고 싶다.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단편도 좋다.

-영화제 개막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어떤가.

=지난 몇 개월 동안 집행위원장 업무를 하면서 여러가지를 배웠다. 앞으로 일을 하면서 더 많이 배울 것 같다. 영화제에 푹 젖어서 영화 일도 열심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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