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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파일] 김상진 27기 추도식에 가다
2002-04-24

그날의 황사바람

지난 일요일 벽제 국립공원 묘지에서 치러진 김상진 열사 27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창창한 햇빛이 무덤들을 더 유구한 젖무덤으로 봉긋봉긋 도들새김했지만 추모식 내내 강한 바람이 불었다. 소풍 나온 종이컵, 음료수팩, 빈 김밥 도시락곽이 혼미 속을 휩쓸려다녔다.

김상진은 1975년 4월11일 서울대 농대 캠퍼스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중 양심선언물을 읽고 할복 자살한 열사다. 당시 4학년. 당황한 당국은 시신을 강제 탈취, 지금의 장소에 서둘러 매장했다.

정말 27년 만이군…. 그의 할복 자살 뒤 곧바로 월남이 해방되고, 어둠의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22일 열린 ‘김상진 열사’ 장례식에서 추도시를 읽었고 그렇게 ‘긴조시절’에 걸맞은 시인 데뷔를 한 셈이지만 그의 무덤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안한 건 물론이고, 그때의 슬픔과 열정이 그만큼의 나이를 먹은 모습을 새삼 확인하는 건 스스로 안쓰러운 일이다.

추모식을 준비한 김상진 기념사업회는 ‘열사’ 자가 빠진 것에서 짐작되듯 여느 ‘열사사업회’에 비해 점잖고 그 대신 사업이 구체적이다. 15년 넘게 회장직을 맡아온, 허약한 키의 안종건(방송통신대 교수, 김상진의 당시 대학동기)은 희끗한 머릿발을 조신하게 드러내며 ‘강단있는 너그러움’으로 소식지 <선구자>를 49호까지 내면서 독특한 농업운동지로, 다시 농업교양지로 심화-확대시키면서 현역 농대생까지 포괄해냈다.

운동권 명사들이 아니라 김상진의 ‘직접’ 선후배-친구들이 그와 함께 ‘김상진 추억’을 ‘농업의 미래를 위한 양식’으로 전화시켰을 것이다. 사업회 인터넷사이트에는 웹진 미래농업이 링크되어 있고 자체 정리한 농업 관련사이트 목록이 일목요연하다.

무덤에도 피 냄새는 없다. 김상진 기념사업회가 할복의 피를 일상적이고 지난한 노고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동안 김상진 무덤은 세월을 머금으며 스스로 의로운 죽음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 그것은, 추념식을 하지 않더라도, 삶과 가장 친근한 무덤이다.

인혁당 사형집행 날, 가장 심각한 황사가 끼었다, 김상진은 세상을 덥친 죽음의 공포를 우리들이 극복하게끔 할복을 했을 것이다…. 그날 김상진의 ‘후대’들이 서로 나눈 말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내용이다.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