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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는 어떻게 아시아를 사로잡았나
2002-04-25

동북아 루저들의 마음의 별

갈색 쓰레빠- 결코 슬리퍼가 아니다- 에 빨간 추리닝- 흰줄 달랑 하나- 베개 눌린 바야바식 떡머리… 이런 외모의 사람이 줄곧 출몰한다… 비디오 대여점에… 그리곤 그들은 잽싸게 빌려간다… 주성치가 나오는 홍콩시리즈물까지…. 물론 나도 그 무리 중 하나다. 나도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라면을 후루룩거리며 그 영화들을 본다. 낄낄거리며 가끔은 눈물도 흘리며 주성치와 오맹달은 과연 우리의 대통령감이야 혼잣말도 하면서 그리곤 상상해 본다. 나 같은 사람들이 전국 아니 가까이 일본, 홍콩, 싱가포르, 중국 본토까지 나와 비슷한 사람들 즉 동료들이 이런 심정으로 이 영화들을 즐겨보는 것은 아닐까?? 서유기의 뽀로뽀로미를 외치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 과연 그들은 동북아시아 루저들의 마음의 별, 루저들의 공화국 대통령들이다.

가족들에게 구박받아도, 돈이 없어 위축되어도, 혼자 쓸쓸해도, 바쁘지 않아서 화가 나도, 날씨가 좋아서 투덜거려도, 오로지 카드사에서만 오는 전화를 노려보아도, 꿋꿋하게 퇴행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 바로 주성치와 오맹달의 영화들이다. 이 동북아시아 실업자들의 별… 마음을 쓸어주던 짝패, 주성치와 오맹달이 아니였으면 우리는 마음껏 퇴행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바로 실업자인 우리의 특권은 퇴행인 것이다.

최근에 나는 회사생활을 접고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마음을 다스린다는 명목으로 구슬을 꿴다. 오색의 구슬을 꿰면서 유치찬란하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만들고선 만족하게 웃으며 만나는 사람한테 선물이라고 안긴다.

그들은 그 유치한 구슬 색깔에 난색을 표하지만 즐거운데 어쩌랴. 하지만 곧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구슬값이 만만치 않아 구슬을 사는 행위가 중단된 것이다. 그래서 유치한 구슬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고 나는 <멋지다 마사루>의 아이원추를 외치고 <행복한 백수>의 벌거벗은 어린애 같은 남편의 행동에 박장대소하다가 동생들한테 구박받고 오래된 술집에서 작은별 가족의 노래를 신청하며 따라 부르다가 눈총받고 심지어 집에서 혼자 도시락을 싸서 까먹는 변태행위도 서슴지 않게 한다. 그리곤 이 장면을 떠올린다. 주성치의 웃으면서도 우는 <희극지왕>에서 도시락을 먹기 위해 처절하게 가는데 우리의 오맹달이 “너 줄 거 없다” 하며 바닥에 버리는 장면… 밥하고 고기가 흩어지는 장면… 크아아 눈물난다.

그러면 나는 도시락 반찬인 분홍색 소시지를 베어 문다. 그렇다. 퇴행도 징후가 길어지면 만만치 않게 괴로워진다. 퇴행도 먹기 위해선 중단해야 하는구나 생각하며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돈 벌 궁리를 해야겠다. 일단 실업급여부터 신청하고 괜히 위축- 관공서는 너무 위축된다- 되며 문서를 작성하고는 장년의 아저씨들과 같이 교육을 받았다(젊은 사람보다는 장년의 아저씨들이 많은 동네 사나보다). 교육 뒤 서류를 작성하는데 학력란에 미 군정시대의 YMCA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그것이 학력이 인정되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물어오는 아저씨, 젊은 사람들에게 밀려났다며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사연도 이야기해준다. 나는 초로의 아저씨들을 보면서 우리시대의 주성치와 오맹달처럼 이들의 마음의 별이 마카로니 웨스턴의 튜니티 형제들이 아니었을까도 추측해본다.

나는 이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우리의 마음을 쓸어주니까…. 어딘가 나처럼 혼자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까먹는 변태 소년소녀들도 누군가가 싸준 도시락을 공원에서 드시는 장년의 실업동지 아저씨들도 마음을 짠하게 해주는 주성치와 오맹달의 영화의 촌스런 아우라가 좋다.

이제 주성치 영화가 가까운 시일에 개봉한다니 생각만 해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이 나온다…. 즐거워서…. 첫날 첫회를 또 역시나 좋아라 보고는 관객인 우리는 아마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종의 연대감으로 끽연을 하며 낄낄거리며 여전히 웃고 있을 것이다. 김정영/ 실업자·전 인츠닷컴 영상사업팀장▶ 울트라 폭소 히어로, 주성치 웃음공작실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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