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법, 무언가에 홀린 듯 열중하는 법. 그 둘이 다르지 않음을, 소설가 윤이형은 작품을 통해 꾸준히 말해왔다. 주인공들에게 매혹은 선물처럼 오지 않고 과거에서 비롯하는 것이며, 그것을 알지 못하고 빠져들기 때문에 대가처럼 고통을 경험하곤 한다. 윤이형은 2005년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로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뒤, 동성 연인의 사랑을 그린 <루카>로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과 문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14년간 소설을 써온 그에게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이 많은 누군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믿지 말고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라고. “나는 쓰지 않아야 할 때 쓰면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자전적인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와 그의 첫 번째 고양이에 대해 물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한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라는 제목은 고양이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결혼 이야기다. 어떻게 시작한 이야기인가.
=고양이를 두 마리 키웠는데, 첫 번째 고양이가 지난해 1월에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갑작스럽게 보낸 터라 6개월 정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바닥에 누워서 울면서 보내다 기운을 차리니, 그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 문자로 옮겨놓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고양이 때문에 힘든 사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상해봤다. 결혼을 했고, 애가 있고, 고양이를 너무 사랑하는데, 고양이를 실은 사람 자식처럼 생각하고 길러온 사람인 거다. 혼외자로 자라고, 어릴 때 아버지가 곁에 없었고 했던 것에 대한 반발로 정상 가족 판타지도 있는 사람이면 어떨까? 주인공은 무리가 되는데도 결혼해 가족을 만들었는데, 무리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고, 문제가 터져나오는 와중에 가족 중 하나가 죽은 셈이다. 그때 심경에 어떤 변화가 생기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처음에는 한 여자 얘기라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가족에 관한 이야기더라. 그래서 제목에 ‘그들’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고양이들까지 다 합쳐서 가족이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정상 가족이 어떻게 깨지는지를 다룬 이야기가 된 듯하다.
-한국에서 정상 가족에 반려동물을 포함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반려동물과 계속 함께 사는 일을 꺼리는 경우도 아직 많다.
=나는 내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욕망은 있었지만 결혼에 나쁜 점이 너무 많잖아. 그런데 한국에선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방법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나보다 약한 존재를 돌보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사람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애가 생기니까 사람하고 고양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컸다. 소설에도 썼지만, 임신하면 고양이와 같이 살면 안 된다고 다른 집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맡기는 정도는 괜찮은데 아예 버리는 일도 많고. 고양이가 죽고 나니까 느껴지는 게 사람이 죽었을 때랑 다르더라. 애도의 시선도 다르고, 목숨의 가치 자체가 달리 취급되더라. 내 고양이가 죽었다는 걸 나만큼 슬퍼할 사람이 없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거야. 너무 슬프더라. 고양이는 집에서 사니까 태어나서 만나본 생명체가 많지도 않은데.
-<82년생 김지영>을 비롯해 최근 페미니즘과 결혼이 문학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이전에 결혼은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로 간주했는데, 페미니즘 안에서 결혼과 가부장제를 생각하면서 사회적인 담론의 층위로 올라왔다.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를 쓰면서 결혼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이 많았을 듯하다.
=결혼한 모든 사람이 이 정도의 이야기는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웃음) 차마 이야기하지 못할 뿐이지. 너무 참혹할 수도 있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는 듣거나 읽는 일 자체가 고통일 수도 있을 듯하다. 당사자들은 다른 생각을 좀 해보고 싶어도 일상의 모든 것이 겹겹이 투쟁이다. 이런 일들에 대해 내가 말을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말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한 결과가 이 소설인 셈이다. 기혼 여성이 여성주의를 뒤늦게 접했을 때 분열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분열 상태가 소설에 많이 드러나 있다. 이상은 있는데 현실과 맞지 않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순간이 많다. 혼란스럽고, 분열돼 있고. 보통은 현실을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안 하고 이상을 무데뽀로 밀고 나가는 여자를 그려보고 싶었던 듯하다. 내 세대만 해도 이런 게 있었다. ‘아, 그래. 부모 세대가 잘못 사는 걸 봤어. 그런데 나는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웃음) 근거 없는 자신감. 이상한 희망, 오만, 낙관. 내면의 결핍된 감정. 그런 것 때문에 꿋꿋이 가족을 이루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완전히 다르다고 느낀다. 잘못된 답을 보고 내가 정답이 될 필요가 없고, 문제 자체를 거부하면 된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를 이미 낳은 사람에게는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며 썼다.
-작업하는 시간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궁금하다. 작업실이 따로 있나.
=그냥 부엌 테이블에서. 밥한 다음에 식구들 다 자면 하고, 마감 때 한다. 생활과 분리해서 창작하고 있지 않다. 이게 편하다. 좋고. 내가 하는 작업이 생활의 연장, 생활이 작업의 연장이었으면 좋겠고 둘을 분리해서 서로 적대시하게 하는 일이 내 경우에는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2005년에 등단했다. 그전에는 잡지기자로 일했고, 한동안 기자 일을 병행하다가 지금은 전업작가인데, 그사이 글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게 있을까.
=나는 기적적으로 생존해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면서 글을 쓰며 살아왔는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나 같은, 프리터라 할 만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반을 일단 만들어야 그 이상의 창작도 되고 하는데. 이전에는 글쓰기를 대단한 걸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게 너무 싫다. 글이라는 것에 대한 지나친 추앙, 숭배가 낳은 결과를 보면서 글쓰기가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한다. 글이 인간보다 위대해, 생활보다 위대해, 이런 생각이 싫다. 글도 생활과 같은 선에 있을 뿐이다.
-SF와 판타지, 퀴어 등 여러 장르에 걸친 소설을 많이 발표해왔다. <대니>는 아기를 키우는 할머니와 로봇이 등장하고 문지문학상과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루카>는 루카와 딸기라는 동성 연인 이야기다. 한국 문학계에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견고한 편인데, 소설을 발표할 때 장르소설의 경우 제약이 있다고 느끼나.
=나는 명백한 차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알파고 때 A.I.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문학을 인용해야 할 때 수많은 SF소설이 있는데도 내 작품을 인용할 때 느끼는 민망함이 있다. 혹은 무례함. 나는 상 한번 받으면 이런 인터뷰도 하지만 장르 작가들은 11번째 책이 나와도 기사화되지 않는다. 창작 지원금도 등단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다.
-초반에는 판타지나 SF에 속하는 작품들을 꽤 썼다면 최근에는 퀴어소설이나 성장물이 더 늘었다. 관심사에 변화가 있나.
=최근 몇년 새, 어느 시점 이후로 미래가 나오는 걸 잘 쓰지 않게 되었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현재가 압도적으로 참혹하다고 해야 하나. 미래에 대한 밝은 생각이 들지 않고, 미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지금 내 눈앞의 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더 많이 말하게 된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좋았던 작품이 있다면.
=지난해 제일 좋았던 책은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사회과학이나 여성주의를 다룬 책을 많이 읽는다. 최근에는 조너선 프랜즌에 빠져 있다. 하지만 2년 정도는 책도 많이 읽지 않았다. 올해는 ‘한달에 한권 과학 책을 읽자’고 다이어리에 써놓기는 했는데. (웃음)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났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둘은 결혼했다. 어쩌면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번역을 하던 여자는 일을 늘렸고,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남자는 부품 조립을 하는 회사에 취업했다. 생계가 최우선인 나날이 흐르는 동안 그들의 첫 고양이 ‘치커리’가 죽고, 두 번째 고양이 ‘순무’가 죽는다. 주인공은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인데, 더 나은 가족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나 자신을 버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고양이가 죽는 사이에 벌어진 어느 가족의 이야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작가의 말은 이렇게 끝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 좋다고 말할 수는 도저히 없는 날들이지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가끔은 기뻐하며 살아요. 거창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늘 하던 일들을 하면서요. 저도 그래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