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외국영화 1위 <아이리시맨>
영화란 무엇인가. 어떤 영화들은 종종 한편의 의미를 넘어 전체로 확장되는 화두를 던지곤 한다. <아이리시맨>이 마틴 스코시즈의 최고작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아이리시맨>은 2019년에 도착함으로써 “마틴 스코시즈 사가의 정점”(김봉석)에 발을 디딘다. 다시,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아이리시맨>은 바로 그 “시간이 만들어낸 역작”(장영엽)이다. 마틴 스코시즈는 미국의 역사와 개인사를 겹쳐놓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들이 손수 쌓아올린 신화를 주름진 육체로 소멸시킨다. 동시에 끝까지 품위 있는 자태로 영화의 환영성을 완강히 지탱해내는 괴력을 발휘한다”.(홍은미) “지나치게 늦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지만 반드시 극장에서 보아야 할 시네마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듀나)이란 평은 거기에 기인한다. 사실 “<대부> 이후 갱스터는 미국 역사를 반영하는 장르로 거듭 태어났다. 코폴라가 떠난 자리에서 마틴 스코시즈는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카지노> <갱스 오브 뉴욕> <디파티드>를 만들었고 <아이리시맨>으로 자기 필모그래피의 한 부분을 완성했다. 미국의 20세기가 범죄의 시간임을 알기 위해서는 스코시즈의 갱스터 필름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이용철) 역사와 장르의 집대성, 바로 그 점 때문에 역설적으로 <아이리시맨>은 “마틴 스코시즈가 그의 영화 친구들과 나이를 먹고 찍었어야 하는 영화”(임수연)가 되었다. 이 영화는 단순히 자신의 영화 작업을 총합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만들었던 영화 세계에 대한 겸허한 반성”(김현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단하게 쌓아가는 서사와 완벽한 카메라워크의 끝에서, 수문이 열린 듯 폭발하는 회한의 찌꺼기들”(김지미)을 감지할 수 있다. 마침내 영화의 패러다임이 변모하는 갈림길에서, <아이리시맨>은 “상영시간이 장르의 깊이가 되고 배우들의 경력이 영화 역사의 부피가 되는 ‘시네마’가 건재하다는 선언”(허남웅)으로 거듭난다. “보석함을 들여다보듯 고귀하게 반짝이는 마틴 스코시즈,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의 조합”(이지현)은 또 어떤가. 마치 “이 세상 마지막 갱스터영화처럼”(김혜리) 우아하고 웅장한 피날레 끝에 깊게 팬 주름, 지연되는 장면 사이마다 서글픈 비애가 감돈다.
올해의 외국영화 2위 <로마>
“처음부터 끝까지 흠결 없이 완벽하다.”(이지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의 선정 이유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건 바로 이 ‘완벽’이란 단어다. “올해 본 영화 중 영화 만들기에 대한 가장 풍성한 사례”(듀나), “시네마로서의 영화를 증명한다”(김봉석)는 평가처럼 이 영화는 시네마가 지향하는 한 가지 방향성을 완벽히 구현했다. 다름 아닌 개인의 체험과 기억이 역사가 되는 과정을 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구현시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는 “그때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영화를 통해 기억으로 들이려는 간절하고 경건한 시도”(김혜리)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로마>에서는 사건도 상상도 모두 현실성을 갖고 있는 설득력 있는 이미지가 된다”(이지현). 특히 이 영화에는 그동안의 작업들이 <로마>를 찍기 위한 예행연습이었다 해도 좋을 정도로 알폰소 쿠아론의 모든 스타일이 압축되어 있다. 물론 이건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영화를 향한 태도에 가깝다. <로마>의 롱테이크는 “차곡차곡 쌓이는 클레오의 시간을 존중하려는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적 태도 그 자체”(안시환)라 할 만하다. 그렇게 <로마>는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 중간에 걸터앉아, 사적 기억이 역사로 번지는 교차로에서 시네마의 자리를 증명한다.
올해의 외국영화 3위 <결혼 이야기> (공동)
“결혼이라는 관계와 제도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편의와 그로 인해 억압되는 욕망과 비틀어지는 관계를 날카로운 유머로 포착한”(김지미), “21세기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듀나).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40년 만에 미세스 크레이머의 속마음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노아 바움백의 진화이자 (현재 기준으로) 정점이라 칭해도 과하지 않을 <결혼 이야기>는 “비섹스•비연애•비혼•비출산을 고민하는 세대를 위한 안티-로맨스 영화로서 결혼과 연애는 어떻게 여성을 고립시키는지”(임수연)를 묻는다. 감독 자신이 천착해온 주제와 고전의 영향이 작품의 적시적소에 빈틈없이 차 있는 이 영화는 “부부 캐릭터의 밸런스, 날카로운 대사, 카메라워킹과 배우들의 동선 등을 포함해 롱테이크 장면을 설계하는 능력까지 완숙한 연출력을 자랑하는 마스터피스에 가깝다”(김소미). 엉킨 실타래 같은 이혼 과정과 그 속의 복잡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풀어낸 감독의 필치가 돋보이는 건 물론이고 “스칼렛 요한슨과 애덤 드라이버의 열연 또한 압권이다”(조현나). 시대가 요구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통적인 영화 만들기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듀나). 유려하고 절절하다.
올해의 외국영화 3위 <행복한 라짜로> (공동)
판타지와 현실 사이, 영화는 어디쯤 서 있나.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행복한 라짜로>를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성인(聖人)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가슴 시리게 포착해낸”(김지미)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은 <행복한 라짜로>를 통해 본인만의 호흡으로 마술적 리얼리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순수한 라짜로의 존재를 통해 이들이 도시로 내몰리는 과정에서 무엇을 빼앗겼는지, 공동체가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이 영화는 “시대와 공간을 불문하는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착취 구조를 성스럽게 영화에 옮겨낸다”(임수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문학으로부터 출발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계보를 절반씩 이어받은 로르바케르 감독은 “장면의 리듬을 기묘하게 늘어뜨리거나, 바람 소리와 같은 특정 사운드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그 어려운 주제를 미장센과 연결지음으로써 신성함의 성질을 직접 닮으려 한다”(김소미). 어쩌면 <행복한 라짜로>는 자본주의 시대에 대한 우화이자 영화에 대한 우화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마침내 “오래된 것들로 만든 계시 같은 영화”(김혜리)가 2019년 우리 앞에 당도했다.
올해의 외국영화 5위 <아사코>
<아사코>는 올해 <씨네21>의 문제적 영화였다. 개봉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가 나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를 달리 봐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사코>에 대한 감탄이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의도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아사코>는 무척 드물게 영화가 혼자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영화다.”(김소미)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청년들의 관계의 불안감을 포착한 이 영화는 “달리고 만나고 나란히 서서 바라본다는 행위만으로도 우리의 시각과 지각을 흔들어버린다”(홍은미). “불신과 두려움을 품고도 다시 생을 견뎌내야 하는 이들의 무표정”(박정원)은 오늘날 일본의 얼굴인 동시에 영화가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최선이기도 하다. “사랑과 믿음의 균열에 관한 대담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일본의 젊은 영화감독들의 고뇌를 반영하는 동시에 세계의 변화를 발빠르게 포착”(김현수)했다. 일본의 차세대 시네아스트로 주목받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촉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워 “모든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은 지나가지 않는다는 모순이 주는 불안과 위안”(김소희)을 정제된 형식 위에 안착시켰다. 가히 “올해 최고의 영화적 경험”(임수연)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