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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한국 대중영화
2002-05-13

제4회 이탈리아 우디네 동아시아영화제, 홍콩의 로맨틱코미디와 한국 대중영화들 인기유럽에서 한국영화는 아직도, 미처 다 발굴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베를린이나, 칸, 베니스 같은 유수의 영화제에서 몇편의 우수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고, 할리우드에 맞서서 최근 가장 두드러진 약진을 보여주는 건강한 영화산업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 나 있지만, 영화제에서 꼬박꼬박 아시아영화를 챙겨보는 여간한 아시아영화광이 아니고서는 한국영화는 아직도 일반 관객에게서는 꽤 멀리 떨어져 있다. 거기다 대개의 영화제에서는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보다는 예술성과 완성도가 높은 문제작 위주로 초대되게 마련이어서 한국의, 이른바 좀더 대중적인 상업영화들이 유럽에 발을 내디디기는 더욱 어려워보이는 실정이다.이탈리아 소도시 우디네에서 온 초대장그런데 뜻밖에도, 이 문제를 풀 힌트를 얻은 것은 4월19일부터 27일까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우디네에서 열린 동아시아영화제에서였다. 유럽쪽에서는 축구팀으로 유명한 우디네는 베니스 근방의, 그다지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소도시다. 이 조용하고 한가로운 이탈리아의 소도시에서,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솔직히 말해, 당혹감이었다.

그다지 멀티컬처럴해보이지도, 아시아권 인구가 많은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 그저 너무나 이탈리아적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왜 동아시아영화제를 하는 것인가? 우디네에 사는 일반 사람들은 아시아영화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 좋아하는 것인가? 더군다나 영화제용 메인 극장은 원래 오페라나 연극을 공연하는 호화로워 보이는 공연장 한곳이고 모든 영화는 영화제 기간 동안 한번밖에 상영되지 않는 작은 규모의 영화제.

이 정도 규모인 영화제에 게스트 수는 300명을 훌쩍 넘는다. 대부분 유럽,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초대되어온 30대 전후의 젊은 영화비평가, 저널리스트, 영화제 관계자들이고, 나머지는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온 영화학교 학생들이다. 이들 학생들 역시 영화제의 게스트 대우를 받고, 영화제 기간 중 숙소를 제공받는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이 영화제가 게스트들만을 위한 영화제는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건 반쯤은 사실이었다.

오전 시간대, 그리고 평일 오후 시간대 영화들은 주로 이 게스트들이 주관객이다. 그러나 주말이나 평일 저녁 시간의 프로그램들은 이 지역 관객으로 꽉꽉 채워진다. 그들은 재미있고 이색적인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저녁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이 영화제에 오는 것이다.이 영화제가 동아시아영화만을 상영한다는 것과 더불어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영화제의 모토가 철저하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한다는 데 있었다. 예를 들어 올해 이 영화제에 초대된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파이란> <엽기적인 그녀> <신라의 달밤> <달마야 놀자> <무사> <공공의 적> <킬러들의 수다> <친구> 등이다. 우디네영화제는 이들 영화들이 한국 국내의 대중영화의 중요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이들이 한국의 일반 관객을 매료시켰던 영화들이라는 점을 높이 산다. 그래서 아시아영화에 관심이 있는 영화 관련 종사자들에게 이들을 소개시키고, 우디네의 일반 관객과의 즐거운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다.인기투표 상위 3편 모두 한국영화에이번 우디네영화제는 홍콩의 최근 화제작인 애니메이션영화 을 소개하면서 역대 중국의 애니메이션들을 특별 시리즈로 묶어 함께 상영했다. 일본의 핑크영화들이 특별 섹션으로 묶여져 소개됐고, 최근 강세를 보인 홍콩의 로맨틱코미디들도 선보였다. 또, 중국에서 개봉된 메인스트림의 중국영화들 역시 게스트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개의 국제영화제들에서는 잘해야 가장 히트했던 중국영화 한두편을 볼 수 있을까,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둔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들을 보기란 무척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한국영화의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한국영화는 이곳 우디네에서 가장 신선하고 다양한 영화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특히, 올해는 한국영화의 라인업이 가장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의 관객 인기상의 결과를 보면, 최고 인기상은 영화제 끝까지 머물러준 여배우에 대한 호의에 힘입어 홍콩영화인 가 차지했지만, 두 번째는 장진 감독의 <킬러들의 수다>가 차지했다. 그리고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인기투표의 3위는 <달마야 놀자>가, 4위는 <엽기적인 그녀>가 각각 차지했다. 김성수 감독과 배우 정우성, 주진모씨가 게스트로 참가한 <무사>는 지역신문 등에서 대서 특필하면서 모든 티켓이 매진된 유일한 영화가 됐다. 우디네에서의 한국영화의 인기는 지난해에도 높아서, 지난해에는 1,2위를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 JSA>가 차지했었다. 특히, 한국의 코미디영화들은 이곳 관객에게도 쉽게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신선한 면모를 지니고 있어서 한국영화가 유럽에 진출하는 데 가장 가능성 있는 장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한국영화는 관객에게 인기가 높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온 젊은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우연히 얘기를 나누게 된 한 유럽의 비평가는 <달마야 놀자>의 신선한 형식적 시도들에 대해서 극찬하고 있었다. 우디네에 모인 젊은 영화 관계자들은 이미 일정 정도 한국영화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DVD로 출시되는 한국영화는 빠짐없이 웹사이트에서 주문해서 본다는 한국영화 열혈 팬도 있었고, 매년 우디네를 찾으면서 한국영화를 섭렵한 결과, 대표적인 한국의 상업영화들에 대해서는 한국 관객 못지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다수였다.아시아 대중문화의 물꼬를 트기를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우디네영화제는 장기적으로 유럽 안에서 아시아영화가 유럽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인프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시아영화에 관심이 있는 젊은 세대의 영화 관계자들이 매해 아시아 각국의 상업영화들의 경향을 볼 수 있고, 또 다른 유럽의 영화제들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리고 유럽 내 극장에서 상영되리라 기대할 수 없는 아시아권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디네는 비록 필름마켓이 없는 영화제이지만 뭔가 다른, 새롭고 재미있는 아시아영화를 찾는 영화 배급업자들에게 꼭 거쳐가야 할 영화제로 자리잡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 우디네의 지역주민들에게는 일년에 한번씩 재미있고 흥미로운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해가 거듭하면서 이들 주민들은 아시아 사람들 못지않게 아시아영화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애정을 갖게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연히 만난 이곳 사람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올해는 이런 한국영화를, 지난해에는 이러이러한 한국영화를 봤고, 어떤 한국영화가 가장 좋았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더 중요하게는 영화학교 학생들에게 아시아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이들이 앞으로 유럽영화계에서 활약할 것을 생각하면, 유럽과 아시아영화의 커넥션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유럽에 한국영화가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형성하고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단순히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일반 대중, 그리고 영화 관련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영화들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 혹은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계기를 만드는 것이 너무 벅차고 힘든 일이라면, 우디네 같은 이미 갖춰진 시스템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우디네에서 봤듯이, 영화들과 관련된 대중 문화적인 경향들과 그 대중 문화 자체를 함께 가져오고 그 컨텍스트와 관련해서 영화를 인지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우디네=이지연 통신원▶ [중국영화는 지금] 탄탄한 영화산업이 절실하다 [사진설명] 조용하고 한가로운 소도시 우디네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지역주민들과 아시아영화에 관심있는 유럽의 영화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아시아 대중영화의 창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