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가장 주목하는 한국영화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를 한줄로 요약하면 영화적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영화적 스펙터클과 카타르시스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지는 동시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작 영화들이 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압도적 표차로 1위를 차지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2위로 뽑힌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 공동 3위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는 모두 한국영화계의 간판 얼굴들이 포진한 영화들이다. 인적 구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순위권에 든 영화 중에는 장르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 블록버스터들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계인>, 최동훈, 김우빈, 류준열, 김태리…
<도둑들>과 <암살>로 연이어 천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불패 최동훈 감독의 차기작이란 점에서 업계 관계자 다수는 <외계인>을 기대작으로 첫손에 꼽았다. 외계인을 소재로 한 SF 블록버스터 <외계인>은 1편과 2편을 동시 제작해 순차 개봉할 예정이며, 암 투병을 하다 4년 만에 영화 현장에 복귀한 김우빈과 류준열, 김태리 등이 주연배우로 캐스팅된 작품이다.
“윤제균 감독과 함께 두편의 천만 영화라는 놀라운 기록을 보유한 최동훈 감독과 외계인이라는 소재 및 SF라는 장르의 만남. 거기에 완전히 젊고 새로워진 캐스팅까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이다.” “장르와 소재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배우들의 호연은 기본일 것이고 상업성은 깔고 가는 최동훈 감독이기에 낯선 장르를 생경하게만 찍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더불어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외계인>은 규모 면에서 한국 영화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작품이라 흥행 결과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는 2021년, 이후 극영화의 기획, 제작 방향에 상징적인 영향을 미칠 작품.” “최동훈 감독이 코로나19로 침체된 한국 영화시장을 살릴 수 있을까?” “한국 영화시장이 과연 이 정도 예산의 영화를 품을 수 있을 것인가?” “해당 작품의 결과에 따라 한국영화 제작비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승리호>와 더불어 한국형 SF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외계인>뿐만 아니라 <모가디슈> <한산: 용의 출현> <영웅> 같은 대작들이 “극장용 상업영화의 이후 향배를 가늠하게 될 작품”으로 언급됐다.
한재림 감독의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은 한국영화계의 국가대표급 배우들인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이 포진한 작품이다. <밀양>에서 함께했던 송강호와 전도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함께한 송강호와 이병헌. <내 마음의 풍금> <협녀, 칼의 기억>에서 호흡을 맞춘 이병헌과 전도연. 이들의 작품만으로도 한국영화의 20년치 역사를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다. 거기에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진까지 합류한 <비상선언>의 캐스팅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조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려한 캐스팅뿐 아니라 항공 재난 영화로서 <비상선언>이 선택한 소재와 장르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바이러스 재난이 소재인 만큼 현재의 상황이 적절히 반영된 기획”이라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선보이는 차기작 <헤어질 결심>은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사망자 아내의 만남을 그리는 영화로 탕웨이와 박해일이 출연한다. 자기만의 공고한 영화적 세계 안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거장에 대한 영화적 믿음은 물론이고 “박찬욱과 탕웨이의 조합”, “박찬욱의 멜로”에 대한 기대가 컸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2020년 극장에서 만났을지도 모를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는 2021년 상반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한국 최초의 SF 우주영화로 “SF 장르를 국내에 안착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는 의견과 “마블처럼 견고한 세계관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프로젝트가 한국에서도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을 들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오랜만에 복귀작을 내놓는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 소말리아 내전으로 고립된 남북 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기인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 뮤지컬영화에 도전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이 4위로 언급됐다. 신인 김다미를 일약 스타로 만든 <마녀>에 이어 2편에서도 “실험적인 캐스팅”을 선보이고 있는 박훈정 감독의 <마녀2>도 관계자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며 5위에 올랐다.
드라마와 OTT 플랫폼의 시리즈물 등 영화 외 영상 콘텐츠 중 가장 주목하는 작품으로는 tvN 드라마 <지리산>이 1위로 꼽혔다. <외계인>만큼이나 압도적 1위였다. <지리산>은 최고와 최고의 만남으로 주목받는 드라마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까지 성공시킨 이응복 감독과 <시그널> <킹덤> 시리즈의 김은희 작가, 거기에 전지현과 주지훈까지 가세했으니 이보다 더 믿고 볼 수 있는 조합이 어디 있겠냐는 반응이다. “현재 최고로 평가받는 프로듀서와 작가의 조합”, “당대 최고의 창작자들이 함께하는 드라마”, “국가대표들만 참가했는데 소재도 신선하고 장르도 멜로가 아니고 미스터리라니, 이유 불문”이라며 최고와 최고의 만남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지리산>을 얘기할 땐 배우들의 이름보다 김은희 작가와 이응복 PD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대목에서 작가 및 프로듀서의 브랜드 파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 OTT 업체 아이치이에서 <지리산>의 글로벌 판권을 구매한 것을 주목하는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미 중국의 아이치이, 텐센트(IT 기업 텐센트)와의 연계를 통해 기존 시장 규모를 뛰어넘는 매출을 이뤄냈다. 제작사들이 주목해야 할 만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넷플릭스도 아닌 중국 OTT 업체 아이치이를 통해서 선보이는 <지리산>의 파괴력은 어떠할 것인가. 과연 또 하나의 공룡 OTT의 출현을 보게 될 것인가.” 글로벌 콘텐츠로서 <지리산>의 파급력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컸다.
<지옥>과 <킹덤: 아신전>이 공동 2위
<지리산> 외 주목하는 콘텐츠로 언급된 작품 다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들이 채웠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과 <킹덤: 아신전>이 공동 2위에 올랐는데, <지옥>은 <부산행> <반도>를 만든 연상호 감독의 세계관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만나 세계 시장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가 크다는 의견이었다. <킹덤: 아신전>은 <킹덤> 시즌2의 말미에 등장한 의문의 캐릭터 아신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스페셜 에피소드다. <킹덤> 시리즈의 세계적 인기에 힘입어 제작되는 이 외전은 “한국에선 보기 드문 방식의 콘텐츠 확장”이자 “원소스 멀티유즈의 새로운 패턴”이라며 콘텐츠 확장의 방식과 그 가능성에 대한 주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위로 언급된 <고요의 바다>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우주 배경의 SF 스릴러라는 장르에 먼저 눈길이 가는 작품이다. 정우성이 제작자로 참여하고 배두나와 공유가 출연한다. 4위 <오징어 게임>은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이 만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이며, 공동 4위인 <무빙>은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JTBC의 새 드라마로 <부부의 세계>를 연출한 모완일 PD가 연출한다. 이외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2> 등이 언급됐다.
※설문에 참여한 분들의 성함과 직함은 게재되며, 응답자의 문항별 답변은 공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