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컬처잼 > e-윈도우
옆집 아저씨는 마피아
2001-03-23

미국에서 열풍 일으킨 TV시리즈 <소프라노스>

한 6년 전쯤 미국에 업무상 출장을 왔을 때의 이야기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미국 업체쪽 대표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우연치

않게 출신지역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에서 날아간 나와 동료들은 모두 서울 출신들이었는데, 상대편 미국인들은 모두 출신지역이 달랐다. 그중

한명이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맨해튼에 가본 경험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을 던졌다.

순간, 좌중은 조용해졌고 잠시 당황해하던 그 미국인은 내게 이렇게 되물었다. ‘거리에 장갑차가 다니고 최루가스가 난무하는 서울은 살 만한

도시인가?’ 좀 황당한 대화였기는 했지만,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영화나 TV에서 보는 미국은 그야말로 ‘실재하는’ 미국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 2년여 동안 뉴욕을 7번이나 방문하면서 확인한 것도, 뉴욕이 생각보다 너무나 안전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안전한 ‘진짜’ 뉴욕에서 마피아나 갱단의 조직원들을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속에서야 그런 조직원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것처럼 나오지만, 평범한 사람이 그들과 마주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제 조직원들의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섣불리 단정짓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뉴욕에서 몇십년을 살더라도 마피아의 조직원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인데다가, 바로 옆집에 그런 조직원이 산다고 해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름대로

사실적이라고 평가받는 갱스터영화들인 <비열한 거리> <좋은 친구들> 혹은 <도니 브래스코> 속에서 그려지는 조직원들의 삶도 실제와는 많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1999년 1월10일 미국의 프리미엄 영화채널인 HBO를 통해 첫 방송을 시작한 TV시리즈 <소프라노스>(The Sopranos)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중년의 토니는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삶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데, 하나는 아내, 10대인 딸과 아들 그리고 이혼한 어머니 등과 함께 엮어가는 평범하지만 복잡한 가족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마피아의 소두목으로서 변해 가는 조직사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피곤한 조직의 삶이다. 이렇게 설정부터 기존의 갱스터영화들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소프라노스>는 미국에서조차 조직원들의 삶을 블랙코미디로 그린 최초의 TV시리즈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5월, 비슷한 설정을 가진 해럴드 래미스 감독의 <애널라이즈 디스>가 개봉되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될 즈음에 <소프라노스>는

더욱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대부>의 돈 콜레오네 가족의 이야기를 우디 앨런이 다시 쓰고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한 것 같은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런 인기는 프리미엄 영화채널인 HBO의 특성상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TV의 무료 영화채널에서 방영되는

TV시리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청률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HBO로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높은 시청률을 확보했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 물론 일부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여성의 가슴이 매회 노출될 정도로 선정적인 부분이 많아서, 18살에서 35살 사이의 남성

시청자들을 TV 앞에 붙잡아 둘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한 원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1999년 에미상 수상식에서 무려 16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지만 4개 부문 수상에 그친 것을 불만족스럽게 생각한 팬들이 에미상

보이콧 운동을 벌이기까지 했었다는 사실. 그런 팬들의 열성이 두려워서인지 2000년 1월에 열린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는 <소프라노스>가

TV드라마 5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4개 주요 부문을 휩쓰는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즈음

<뉴욕타임스>는 <소프라노스>에 “지난 25년 동안 제작된 미국드라마 중 최고의 걸작”이란 찬사를 헌사하기도 했다.

어떤 미국 시청자들의<소프라노스>에 대한 열광은 비단 시청률이나 시상식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소프라노스> 혹은 마피아 조직원들에

대한 책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뉴욕타임스>에 실린 <소프라노스> 관련 기사들로만 이루어진 라는

책까지 등장할 정도다. 또한 사운드트랙 앨범은 물론 오프닝곡인 을 연주한 영국 출신의 밴드 A3의

음반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고, 첫 번째 시즌의 내용을 담아 출시된 비디오와 DVD는 현재 인기 대여 리스트에 올라 있기도 하다. 한편

일부 열성팬들은 이 시리즈가 촬영된 뉴저지와 맨해튼의 곳곳을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방문하고 있다고도 한다.

물론 미국에서의 이러한 인기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일반적인 것이 사실이다. 우선 ‘갱스터영화는

절대 안 된다’는 충무로의 속설이 말해주듯, 국내 시청자들과 갱스터는 그리 친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공중파나 케이블TV에서나

전반적으로 미국산 TV시리즈의 약세가 지속중인 상태에서, HBO라는 유료 채널에서 방영되는 <소프라노스>가 화제의 시리즈로 떠오를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화제가 되든 안 되든간에 <소프라노스>가 우리나라 TV를 통해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소프라노스> 공식 홈페이지 :: http://www.hbo.com/sopranos

▶<소프라노스> 한글 공식 홈페이지 :: http://www.onhbo.co.kr/hboseries/sopranos/sopranos_main.html

▶팬사이트 소프라노랜드 홈페이지 :: http://www.sopranol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