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당시를 초등학교라고 하기보다는 국민학교라고 해야 하는 것처럼. 대한극장이었는데(그것 역시 대한극장이라고 기억하는데… 가 옳다, 아니다. 단성사였나?) 영화광이었던 엄마 손에 이끌려 유치원 이전부터 영화관을 들락거리던 그런 즈음 국민학교 저학년 어느 날, 숀 코너리의 굵고 섹시한 음성을 만났다. 그리고 그게 극장에서 만난 첫 영화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007 시리즈의 하나였는데 등 뒤에 로켓 가스통을 메고 하늘을 날던 장면 같은 것엔 별로 큰 감동을 받지 못했고 그 큰 홀을 울리던 숀 코너리의 음성이 가슴 깊이 남았다. 내게 대한극장 혹은 단성사의 홀은 거대한 실내광장 같았고 늦은 손님의 자리를 찾아주던 안내원의 플래시 불빛과 비상구 불빛 외엔 온통 어둠뿐인 그곳에 숨죽인 관객의 호흡과 냄새에 섞여 이상한 공명을 만들어내며 울리던 그의 목소리는 내게 영원한 판타지의 세계를 각인시켰다.
또 한번의 비슷한 기억. 미성년자 출입금지 영화였지만 엄마랑 가면 난 미성년자 취급도 받지 않을 만큼 어려서 대충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은 같이 간 사촌형이 덩치가 커서 문제가 되었다. 제목도 삼삼하여 <표범 황혼을 떠나가다>였다. 거긴 분명 단성사였다. 엄마는 분했던지 며칠 뒤 사촌형을 떼어놓고 다시 내 손을 붙들고 그 영화를 보러 갔다. 어린 마음에도 그 영화는 무척 낯설었다. AFKN이나 영화 <모정>의 주제곡이 단골 타이틀이던 중앙방송사 일요일 밤 9시 명화극장에서 보던 서부극들은 신사적이고 법칙이 있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거긴 온통 지저분한 놈들이 나와서 웬 서부극이 마차도 아닌 지프차에, 발칸포같이 생긴 기관총을 싣고 전투를 벌였다. 주인공인 폴란드인을 빨간 얼굴의 바보로 업신여겼다. 강렬한 이미지들이 가슴에 남았고 그동안 알던 게리 쿠퍼나 존 웨인 대신 다른 영웅들을 알게 됐다. 프랭크 네로와 잭 팰런스였다. 음악잡지 <온가쿠노 도모>가 쭉 꽂혀 있던 아빠의 책장 한쪽 구석에서 일본잡지 <스크린>을 뒤져 그 영화의 스틸들을 찾아낸 뒤 여운을 즐기는 것까지가 일과였다. 그런 종류의 여운은 꽤 오래가서 아빠의 솜이불을 쌓아 언덕 모양을 만들어놓고 화약을 장착한 지프를 적진영으로 돌진시킨 뒤 이불언덕으로 굴러떨어지는 종류의 액션연기 같은 경우는 최소한 몇달간 지속된다.
한편, 일찍 자라는 말씀 안 듣고 몰래 보던 AFKN에서 난 그게 뭔지도 모르고 <이지라이더> <졸업> 등 수많은 명화들을 보았다. 하지만 정작 잊지 못하는 영화는 타이틀도 모르는 어느 전쟁영화다. 기억나는 배우는 율 브린너뿐이고 내용은 2차대전 당시 러시아의 한 소수종족이, 배신한 이웃종족과 독일연합군에 맞서 투쟁을 벌이는 영화였다. 내가 좋아하는 클라이맥스는 마을 특공대원인 주인공이 끝까지 싸우다가, 동료 특공대원들을 치료하다 이미 숨을 거둔 사랑하는 마리아를 부르며 죽어가는 장면이다. 폭파 전문가 율 브린너는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임무를 맡아서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 영화는 이후 나를 전쟁영화로 끌어들였고 그 후유증 역시 무척 오래 갔다. 아마 <예스터데이>의 액션장면에도 그런 취향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부인하진 못할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골치 아픈’ 영화를 좋아하는 쟁이가 되었지만(사실 <예스터데이>도 골치 아프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각인된 몇몇 영화들의 이미지, 영화감독이 되면 금발의 여배우와 뜨거운 물로 같이 샤워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행복한 상상이 나 스스로를 어느새 영화감독이라고 믿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