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of Honey 1961년, 감독 토니 리처드슨 출연 도라 브라이언 <EBS> 5월26일(일) 오후 2시
“우리의 태도에 내재하고 있는 것은 자유에 대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그리고 일상의 의미에 대한 신뢰이다.” 1950년대 후반 린제이 앤더슨, 카렐 라이즈, 토니 리처드슨 등의 영국 감독들이 내건 모토다. 이른바 ‘프리 시네마’의 움직임이다. 고전영화의 내러티브, 다시 말해서 뻔한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것에서 벗어나 세명의 감독은 당시 영국 노동계급의 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동성애와 사회적 일탈, 붕괴된 가족 등은 세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즐겨 다룬 소재들로 꼽힌다. 영화를 현실의 반영이라고 못박으면서 이들은 새로운 리얼리즘을 주창했던 것. <꿀맛>은 프리 시네마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을 잘 녹여내고 있는 영화로, 서로 으르렁대길 멈추지 않는 어느 모녀의 이야기다.
조는 엄마 헬렌과 함께 살고 있지만 어머니와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헬렌은 늘 술에 절어 있으며 딸에게 귀감이 되는 행동이라곤 보이질 않는다. 엄마는 충동적으로 결혼을 하고 딸의 곁을 떠나간다. 한편, 조는 동성애자인 머레이가 운영하는 신발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흑인 선원과 사랑에 빠진 조는 아이를 갖게 되고 헬렌은 남자에게서 버림받자 다시 딸에게 되돌아온다.
<꿀맛>의 모녀는 정말 서로를 증오한다. 아니, 애증으로 똘똘 뭉친 관계다. 딸은 어머니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사기꾼 기질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에 대해 딸이 보이는 태도를 불편해한다. 조의 행동은 갈수록 삐딱해지는데 엄마와 연인 앞에서 “난 당신이 필요없어! 엄마를 그냥 놔두란 말이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뒤 그녀는 흑인의 아이를 갖게 된다. 이런 점을 유심히 볼 때 <꿀맛>은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1996)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흥미로운 건, 미혼모와 앙숙지간인 모녀 등의 모티브가 극히 상업적인 클리셰일 수도 있다는 것. 프리 시네마 영화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일 수 있다.
<꿀맛>은 형식적으로 투박하기 그지없다. 대부분 야외에서 촬영했으며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이 중간중간 눈에 띈다. 이렇듯 스타일의 일관성은 프리 시네마 감독들의 작품을 관통하는 영화적 핵심이다. <꿀맛>은 ‘키친 싱크’(Kitchen Sink) 드라마의 영향을 간직하고 있다. 노동계층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그들의 소외된 삶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조가 점원으로 일하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뒤 거리를 걸어갈 때, 카메라는 그녀의 걸음을 뒤따르며 함께 이동한다. 당시 영국의 풍경은, 삭막하고 춥게만 느껴진다. 이 황량함은 모녀가 재회하는 영화 끝부분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꿀맛>은 영화사적인 가치가 충분함에도 본국에선 의미가 많이 퇴색된 작업이기도 하다. 주된 이유는 토니 리처드슨 감독이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상업영화 감독이 되면서 변심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기쁨도, 분노도, 통찰력도 없는 영화”라는 어느 평론가의 호된 비평은 토니 리처드슨에 대한 영국 평단의 냉대를 실감케 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