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파이더 맨>에서 스파이더 맨/피터 파커를 연기한 배우 토비 맥과이어의 키가 170센티미터 정도라고 들었다. 굉장히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절대로 큰 키도 아니다. 특히 ‘무슨무슨 맨’ 같은 딱지가 붙은 슈퍼 영웅을 연기하는 배우치고는 아주 작은 편이다. 여자 슈퍼영웅들은 키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남자 슈퍼영웅이라면 적어도 180센티미터는 넘어야 할 것 같지 않은지? 지금은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왕년에는 190을 훌쩍 넘겼던 <슈퍼맨> 역의 크리스토퍼 리브를 생각해보라.
물론 맥과이어 이전에도 보통 키의 슈퍼영웅은 있었다. 일단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주연한 마이클 키튼도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체격만 따진다면 맥과이어보다 왜소했다. 하지만 버튼과 키튼에게는 핑계가 있었다. 버튼의 배트맨은 가짜 근육을 그려넣은 검은 옷을 입고 첨단기기 장난감을 휘두르며 자신의 정신적 위태로움과 나약함을 숨기는 보통 남자였다. 이런 이야기에서 크리스토퍼 리브와 같은 묵직한 배우가 나오면 오히려 주제와 맞지 않는다. 그는 평범하고 오히려 조금은 왜소한 사람이어야 한다. 좋다, 키튼에겐 이런 핑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토비 맥과이어에겐 어떤 핑계가 있는 걸까?
우선 맥과이어라는 배우를 보자. 그는 예쁘장하지만 그렇게까지 튀는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다. 우린 그를 보고 같은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영리할지 모른다고 추측할 수는 있지만 아주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런 평범함 속에 그의 배우로서의 가치가 있다. 그는 쉽게 관객에게 마음을 열어보일 수 있는 배우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역에서도 관객이 별다른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성격은 다르지만 그가 지금까지 출연한 좋은 역들은 모두 그의 얌전한 외모에 바탕을 둔 것들이었다. 그가 안전한 인디영화의 단골이었던 것도 당연하다.
이런 면은 그의 신작 <스파이더 맨>에서도 적용되는 걸까? 물론 그렇다. 이 영화의 피터 파커는 정말로 평범한 젊은이다. 그래도 떵떵거리는 재산이라도 가진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보다 못하다. 아니, 오히려 그는 미국영화 속의 고등학교 기준으로 보면 평범보다 못하다. 적어도 유전자 조작을 거친 슈퍼거미에게 물리기 전까지 그는 사람 잘 사귀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쉽게 놀림감이 되는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집이 특별히 잘사는 것도 아니고. 맥과이어의 작은 키와 위압적이지 않은 외모,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커다란 눈은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 맨 모두에게 잘 어울린다.
스파이더 맨, 평범한 뉴요커
여기서부터 그는 그의 선배들이었던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같은 영웅들과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의 선배들은 결코 시작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슈퍼맨은 우리와 다른 분자구조를 가진 외계인이고 원더우먼은 아마존 왕국의 공주다. 그들에겐 클락 켄트나 다이애나 프린스와 같은 일상의 모습이 변장이다. 그 증거로 그들은 모두 유니폼을 입지 않을 때는 변장용 안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스파이더 맨>에서 진짜는 피터 파커이고 변장은 스파이더 맨이다. 가면을 쓰고 원색의 유니폼을 입는다고 해서 그가 갑자기 라디오 성우처럼 목소리를 깔며 공익광고 같은 말만 하는 전형적인 슈퍼영웅으로 변신하지는 않는다. 그는 가면을 써도 여전히 신경질적인 냉소와 농담을 쏘아대는 평범한 뉴요커다. 단지 거미줄을 쏘아대며 마천루 사이를 누빌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뿐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만화책 <스파이더 맨>과 영화 <스파이더 맨>의 설정을 섞어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샘 레이미의 영화 <스파이더 맨>은 스탠 리의 만화책 <스파이더 맨>과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몸에서 직접 나오는 거미줄과 같은 영화 고유의 설정도 있고, 방사능이 유전공학으로 업그레이드되기도 했으며, 과장된 스타일과 유머로 범벅이 된 레이미 고유의 개성도 삽입되었지만, 최근에 나온 슈퍼영웅 영화들에 비하면 <스파이더 맨>의 각색은 놀라울 정도로 충실한 편이다. 심지어 종종 어색할 정도로 진지했던 <엑스맨>도 <스파이더 맨>보다는 각색이 자유로웠다.
그 이유는 <스파이더 맨>이라는 만화책이 <슈퍼맨>과 같은 부류들에 비해 비교적 현대적인 시리즈였기 때문에 현대적인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위해 특별히 성격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 맨>은 1960년대에 처음 등장했고, 창작자인 스탠 리나 주인공 피터 파커 역시 그 시대의 아이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슈퍼맨처럼 단순 명쾌한 영웅들이 조금씩 식상하던 터였다. <스파이더 맨>은 캐릭터와 설정의 현실성에서 기존 슈퍼영웅 만화의 대안을 찾았다. 슈퍼파워는 적당한 선에서 축소되었고, 주인공의 일상생활이 주는 압박은 훨씬 커졌다. 당시엔 꽤 신선한 설정이었다. 요샌 바로 일반적인 블록버스터의 정상적인 주인공 성격으로 보편화되었지만. <스파이더 맨>은 나이를 꽤 잘 먹은 셈이다.
비상의 쾌락, 추락의 위험이 공존
스파이더 맨의 슈퍼파워 역시 일상의 한계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슈퍼맨은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하늘을 난다. 하지만 스파이더 맨의 비상은 정확히 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포물선을 그리면서 추락하는 것이다(영화는 일반적인 액션물들과는 달리 1.85:1의 스탠더드 화면을 고집하고 있는데, 그건 이 영화에서 추락이라는 수직운동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파이더 맨의 몸이 마천루 정글의 어딘가에 떠 있는 동안 그를 지탱해주는 건 가느다란 실밖에 없다. 한마디로 그는 즉석 와이어 액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슈퍼맨에 비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운동이 독자/관객에게 주는 쾌락은 오히려 슈퍼맨에 비해 훨씬 크다. 아까도 말했지만 슈퍼맨은 물리법칙을 초월해서 그냥 난다. 그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에게 와닿기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우린 그의 비행을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근육질의 덩치 큰 남자가 파란 유니폼을 입고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데 도대체 뭐라겠는가. 그것은 아무리 재미있어도 거창한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스파이더 맨의 ‘추락’은 훨씬 다이내믹하다. 적어도 그의 비상은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에 꽤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 현실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비행중에 쉽게 바꿀 수 없는 그 운동법칙을 조금이라도 잘못 계산한다면? 익! 바로 이 순간부터 비상의 쾌락과 추락의 위험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독자/관객을 유혹하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솟기 시작하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블록버스터를 롤러코스터에 비유하는데, <스파이더 맨>처럼 그 비유에 적절하게 들어맞는 블록버스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통 작은 영웅
샘 레이미의 영화는 만화의 이런 현실성을 일부러 과장하는 데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영화의 피터 파커와 그린 가블린은 만화보다 더 작고 소박한 사람들이다. 영화 속의 피터 파커는 아직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풋내기인데, 원작만화보다 훨씬 덜 떨어졌고 순진하며 실생활에서도 더 무능하다. 그와 메리 제인과의 로맨스도 원작보다 아주 작고 순진하고 풋풋하며 어리다. 영화 속의 그린 가블린 역시 만화 속의 그린 가블린보다 통이 작다. 그는 악당들을 규합할 생각도 하지 않고 스파이더 맨을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죽일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그저 억압당한 중년 남자의 감춰진 이드에 불과하다. 스파이더 맨과 그린 가블린의 마지막 혈전도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비교적 얌전하게 치러진다. 어떻게 보면 영화 <스파이더 맨>은 지금 한참 물이 익은 만화 <스파이더 맨>의 하이틴 로맨스 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맥과이어의 굉장히 현실적이고 맹한 고음도 스파이더 맨이 가면을 뒤집어쓴 기크(geek)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듯하다. 그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번도 슈퍼맨이 당연히 여기는 존엄성을 유지해본 적이 없다. 그가 처음 등장할 때 입고 나온 유치찬란한 베타 버전 유니폼에서부터 ‘여러분의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 맨!’이라는 촌스러운 선전문, 돈벌려고 별 생각없이 참가한 레슬링 경기에 이르기까지, 그를 놀려댈 구석은 굉장히 많다. 심지어 각본은 의식적으로 그의 위대한 선배를 들먹이며 그를 노골적으로 깔본다. 메이 숙모의 말을 들어보자. “넌 일을 너무 많이 해. 넌 슈퍼맨이 아니야.”
이런 걸 강조한다고 어떤 도움이 될까? 상당히 된다. 주인공이 아래로 내려올수록 관객이 주인공들에게 동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슈퍼맨에 감정 이입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는 멀리서 날아다니는 걸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존재다. 그는 보호자이고 우상이지, 우리 자신은 아니다. 하지만 샘 레이미는 피터 파커를 관객이 충분히 감정이입하며 그의 모험을 대리 충족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신나는 부분이 스파이더 맨이 악당을 때려잡는 장면이 아니라 막 자신의 초능력을 발견한 피터 파커가 맨해튼 시내를 날아다니며 새로 생긴 장난감을 실험하는 장면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이 영화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대리 충족의 환상이지 액션 자체는 아니다. 뒤에 위장 신분이 탄로날 가능성을 무릅쓰고 학교에서 운동선수 동급생과 싸우는 장면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다. 원래 이런 판타지는 학교에서 수줍게 눌려 살던 아이들의 것이기 때문에 학교 깡패를 두들겨패는 장면은 슈퍼악당을 패는 것보다 훨씬 큰 쾌감을 주는 법이다.(그러고보니 <버피> 6시즌에서 초능력을 얻은 악당 워렌이 맨 처음에 한 일이 생각난다. 그건 바로 고등학교 때 자기를 괴롭혔던 동급생을 작살내는 일이었다.) 괜히 신나지 않는가. 우리보다 특별히 나을 것도 없고 우리처럼 돈과 형편없는 연애운, 가족 때문에 고생하는 평범한 젊은이에게 종종 마천루 사이를 날아다니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수퍼 히어로 행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니 말이다. 물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동안 악당들을 때려잡고 도시를 구해도 좋긴 하겠지만 그거야 덤이고. 듀나 duna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