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은 아주 넓은 문화권에서 상서로운 수로 여겨지고 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말고도 피타고라스학파의 관점에서 최초의 수이면서 가장 완전한 수로 여겨지고 있다. 직선상에 놓이지 않은 모든 3개의 점을 이어 원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때문에도 신비주의적 전통에서 3은 완전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래서인지 어떤 분야이든 가장 뛰어난 세명을 꼽는 일이 흔하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니 신세대 여배우 트로이카를 꼽는 건 언제나 흥미진진한 일이다.
게임계에서 3대 제작자에 꼽히는 건 <울티마> 시리즈의 리처드 개리엇, <문명> 시리즈의 시드 마이어, <파퓰러스> 시리즈의 피터 몰리뉴다. 리처드 개리엇의 롤 플레잉 게임 <울티마>는 <울티마 온라인>으로 이어지며 깊이있는 세계관을 완성했고, 시드 마이어는 경영 시뮬레이션, 문명 건설 시뮬레이션 등 새로운 영역으로 게임을 진화시킨 공로가 있다. <파퓰러스>의 피터 몰리뉴는 ‘갓(god) 게임’이란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유명하다.
논란의 여지없이 확고한 자리를 굳힌 3인방이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들의 지위가 예전만 못하다. 시드 마이어는 비슷한 스타일로 평생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심시티> 시리즈의 ‘윌 라이트’와 함께 <심 골프>라는 게임을 제작했고 <문명3>로 꾸준히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교과서 같은 스타일에 변화를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예전에 보여주었던 패기만만한 새로운 장르 개척의 시대는 이미 끝난 것 같다. 자신의 스타일은 원숙할 대로 원숙해졌지만 그 한계 또한 뚜렷한 것이다. 셋 중에 가장 몰락한 게 리처드 개리엇이다. 지금까의 세계관과는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게임 <리니지>에 이름을 판 뒤 <울티마 온라인>을 부정하는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가 쌓아놓은 걸 무너뜨리고 있다. 다행히 피터 몰리뉴는 아직 건재하다. 갓 게임을 더욱 심화시킨 <블랙 앤 화이트>로 여전히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 에고>가 역시 기획대로 이뤄진다면 게임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될지도 모른다.
피터 몰리뉴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게임 제작자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도 슬슬 차세대 3인방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빈 자리를 메울 인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게 크리스 테일러다. 신세대라고 하기는 좀 뭐하고 이미 중견 제작자로 불리는 크리스 테일러는 <토털 어나이얼레이션>으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에 3D라는 새로운 세계를 끌어들였다. <트리플 플레이> 같은 스포츠 게임을 주로 만들다가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어 기대 이상의 수작을 만들어낸 것이 놀랍다. 이번에는 다시 새로운 장르인 롤 플레잉 게임에 도전했다. <던전 시즈>는 3D 액션 롤 플레잉 게임을 한 단계 진화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매번 새로운 게임에 도전해 기존 개념을 바꿔놓고 있는 크리스 테일러는 차세대 주자들 중 단연 선두다.
다음으로 꼽을 만한 게 곤조 수아레즈다. <코만도스> 시리즈는 스페인 게임 산업을 우습게 보던 사람들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단순히 재미있고 뛰어난 게임일 뿐 아니라 자원 채취와 유니트 생산이란 틀에 박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경계를 넘어 한정된 유니트로 전략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게임 디자인의 가능성을 제공해준 명작이다. 마지막으로 우주 전략 시뮬레이션 <홈월드>를 개발한 알렉스 가든이 있다. 놀랄 만큼 생생하게 표현된 드넓은 우주공간에서 독창적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나무랄 데 없는 걸작이다. 아직 한 작품밖에 내놓지 않았으니 섣불리 평가하기 어렵긴 하나, 75년생으로 아직 20대이니만큼 가장 기대되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