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정말로 궁금한 게 많다. 동생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는 건지? 비가 오면 지렁이는 왜 기어나오는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고 있는 여섯살짜리 소녀 마팔다도 이런 꼬마들 중 하나다. 하지만 그녀가 고민하는 것은 무언가 다르다. 그녀는 혼자서 골목길에 앉아 있다가도, 밤중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도, 궁금한 게 있으면 총알같이 엄마와 아빠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묻는다. 고양이는 민주주의에서 어떤 계층에 속해? 베트남에선 왜 미국과 베트콩이 싸워? 왜 지구는 이렇게 썩어 있어? 또 어른들은 왜 그렇게 비겁한 거야?
아트 나인의 서구만화 시리즈로 나온 <마팔다>는 60∼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만화로, 이미 30개국에서 그 명성을 떨쳐오다가 뒤늦게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퀴노(Quino)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만화가 호아킨 살바도르 라바도(Joaquin Salvador Lavado)는 <내게 소리 지르지 마시오> <나의 상상을 방해하지 마시오> 등의 정치 카툰으로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온 바 있다. 하지만 그를 진정한 아르헨티나의 국민만화가로 만든 것은 바로 이 당돌한 소녀 ‘마팔다’라고 할 수 있는데, 소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움베르토 에코 등도 그녀의 열렬한 팬이다. 에코는 “마팔다는 단순히 퀴노가 종이 위에 그린 과장된 인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증인이며,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거리는 우리의 사춘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의 2세들은 하나같이 마팔다가 될 준비를 한다”라고 말한다.
세상이 너무 궁금한 소녀
마팔다는 원래 퀴노가 전자회사의 홍보만화를 위해 만든 소녀 캐릭터였다. 그런데 그 회사가 갑자기 망하게 되어 잠시 책상 서랍 속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1964년 만화잡지 <프리메라 플라나>로부터 연재 제의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그 얼굴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듬해에 일간지 <엘 문도>로 옮겨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스페인어권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게 된다. 모두 9권으로 출간되어 있는 단행본은 <엘 문도> 이후에서 1973년까지의 작품을 담고 있다(국내에는 현재 2권까지 발행되었다).
<마팔다>를 그저 귀여운 꼬마들의 명랑만화라고 생각하며 손을 대었다간, 이 꼬마의 직설적인 말과 행동에 당혹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는 최근에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군부 독재와 빈곤으로 큰 곤란을 겪고 있었던 60∼70년대에는 더욱 극심한 정치적·경제적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퀴노는 이러한 세상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우격다짐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지는 않는다. 조금은 경제적으로 여유를 얻고 사회적 억압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시민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의 비겁함과 우유부단함을 작은 소녀의 목소리로 꼬집고 있는 것이다.
<마팔다>는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어른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만화라는 점에서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피너츠>와 흔히 비교된다. 하지만 <피너츠>가 2차대전 뒤 무언가 바깥으로 걱정할 거리를 잃어버린 미국 중산층의 내적 고민을 적당한 냉소와 유머로 풀어가는 만화라면, <마팔다>는 제3세계의 소시민이 겨우 얻어낸 삶의 여유와 여전히 남아 있는 많은 모순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는 모습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연재 초반에는 상당히 직설적인 표현으로. 후반부로 가면서 명료한 성격으로 떠오르는 꼬마 주인공들의 긴장관계를 통해 은유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해간다.
과장과 단순화의 절묘한 그림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고 궁금한 것은 절대 못 참는 마팔다, SF와 서부극이라는 미국식 판타지에 빠져 있는 펠리페, 빨리 엄마가 되어서 아들 덕을 보고 사는 게 꿈인 수사니타,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아빠를 이어받아 대재벌이 되고 싶어하는 마놀리토, 그리고 TV와 브리지트 바르토라면 사족을 못 쓰는 마팔다의 동생 질…. <마팔다>의 꼬마 주인공들은 우리 주변에서 아주 쉽게 보게 되는 인물들의 전형이면서, 소시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여러 인생관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철저한 자본주의자 마놀리토도 그 천연덕스러움 때문에 귀엽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은 따끔한 비판 이전에 풍부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마팔다>가 그토록 직설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은, 비판받는 스스로도 즐겁게 웃을 수밖에 없는 탁월한 유머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어우러진 독특하고도 절묘한 그림의 묘사는 ‘괜찮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해서 ‘한 차원 높은 경지의 작품’이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2등신의 주인공을 내세운 만화체의 귀여운 그림이지만, 디즈니식으로 딱딱 떨어지지 않고 선 하나하나의 맛을 분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그림은 정말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커다란 입을 벌리고 좋아서 낄낄거리는 표정, 밤중에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동생을 부둥켜안고 우는 모습 등 그 과장과 단순화의 절묘함은 만화적 언어의 절대치를 보는 듯하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