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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 프로필
2002-05-24

심보경, 최호, 이원재, 황정현, 김화범, 백승록, 이안젤라, 이재희

프로듀서/ 심보경

1967년생.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광고기획 일을 했다. 언니(<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권유로 영화라는 고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93년 <그여자, 그남자>의 홍보, 마케팅을 시작으로 명필름의 기획, 제작 전반적인 과정에 참여했으며 97년 <접속>으로 성공적인 프로듀서 데뷔전을 치름. <공동경비구역 JSA> 프로듀서를 거쳐 2000년 TTL 등의 광고를 제작한 화이트와 손잡고 디엔딩닷컴을 만들어 이사로 취임했다. 디엔딩닷컴의 창립작이자 3번째 프로듀싱작인 <후아유>의 개봉을 앞두고 이 자리에 불려나올 때만 해도 영화를 공부한 젊은 친구들과 좀더 속깊은 대화를 나누겠다고 생각했으나 문 열고 들어오는 순간 ‘학생들이 학생들이 아님’을 알고 조금 놀라다.

최호/ 감독

1967년생. 계원예고와 중앙대 영화과를 졸업한 뒤 영화집단 ‘장산곶매’에서 활동했고 91년 <닫힌 교문을 열며>를 공동연출했다.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영화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만든 첫 작품이 유지태, 김하늘 주연의 <바이준>.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이 영화가 실패한 뒤 4년간, 터널 같은 공백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 <후아유>를 만났다. 처음에 영상원 학생들과의 만남이라기에 ‘필름은 뭐 썼나’ 같은 질문이 날아올 줄 알았는데 ‘영상이론과’ 학생들이라 예상과는 다른 질문들이 많이 터져나옴. 그러나 성실히, 최선을 다해 답하는 자세를 보여줌.

이원재

1976년 7월24일, 서울 이문동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단과대 학생회와 서울지역사범대학생협의회 등에서 활동했다. 워런 비티의 <레즈>를 보고 영화란 것이 날아와 가슴팍에 ‘콱’ 하고 찍힘. 누군 유치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했지만, 대학 4년 교육도 모자라 올해 2002년 봄학기에 영상원에 들어온 1학년(정말 1학년이다, 그리고 정말 76이다, 믿기 싫으면 관둬라). 지나온 세월은 그렇지 못했지만 ‘이번엔’ 열심히 학교 다니고 있다. 이건 정말이다.

황정현

1975년 서울 출생.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육열에 불타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강남으로 이사. 아직도 본인은 강남으로 이사오며 받은 문화적 충격이 트라우마처럼 자신에게 남아 있다고 믿고 있음. 대학교 낙방 뒤 의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재수학원에 등록했으나 두번의 쓰디쓴 연애경험만을 얻었을 뿐, 의대는 예비합격자 5번이라는 ‘사람 놀리는 듯한’ 순번을 받은 채 낙방. 그뒤 홍대 전파공학과에 입학했으나 일찌감치 공학이란 것엔 별다른 재주도 흥미도 없음을 깨닫고 홍대신문사로 ‘전과’. 3년간의 신문사 생활을 마치고 군입대. 제대 뒤 ‘전망고민’ 한답시고 반년가량 민노당 지부에서 상근간사 생활을 함. 영상원 시험 뒤 일년 반 동안 영화전문웹진 기자로 활동하기도 함. 현재 영화 제작수업에 흠뻑 빠져서 말도 안 되는 자작 시나리오들 끼적거리는 걸로 소일하는 중. 관심있는 분야는 프로듀서.

김화범

1971년 대구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학교 때는 동네 만화방과 전자오락실을 전전하며 속칭 동네(하위)문화랑 친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홍콩영화를 즐겨 봤다. 93년, 방위병으로 근무중 삶의 회의와 허무를 밀려와 이리저리 마음의 방황을 하다가 서울로 영화 찍으러 가다. 김영철 촬영기사가 주도한 영화제작워크숍에서 영화를 찍으며 인생의 중대결심을 하다. 대구에서 후배가 시작한 시네마테크에서 죽지 않을 정도의 술과 적당량의 영화를 탐닉했다. 후배가 영상원 시험 본다고 해서 덜렁 나도 같이 시험 봤는데, 후배를 떨어지고 나는 붙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공부. 지금은 3학년.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중이다.

백승록

1973년생. 디지털 특수 효과에 매료된 나머지 영화 영상의 신기원을 이루겠다는 청운의 푸른꿈을 안고 전자 공학과에 진학했으나 전혀 공대생다운 모습을 갖추지 못한채 6년간 방황한뒤 과감히 자퇴. 2년간 이리저리 떠돌다가 2000년 영상원 영상이론과에 입학. 단 한 번 연극 무대에 서본 기억을 자랑스러워 하고, 나이 서른에도 꿋꿋이 좋아하는 사람의 팬클럽 가입을 주저하지 않으며, 밥 대신 영화에서 에너지를 얻고, 간식보다 애니메이션과 만화책과 인터넷에서 더 많은 양분을 얻는 피터팬. 지난 2년간 책읽은 시간보다 현장에서 단편 영화 스탭을 하며 보낸 시간이 훨씬 많아서 이제는 공부를 더 해야하지 않을까 반성하는 중. 졸업후 진로에 대해서는 애니메이션 기획일쪽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음.

이안젤라

65년생. 서울대 미학과. 평화방송 PD 10년 했음. 외환위기니 IMF니 해서 어수선하던 시절, 다니던 회사의 부서가 없어지는 바람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됨. 직장운이 없는 건지 성격이 모난 건지 평탄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데 비해 학교는 휴학 한번 하지 않고 그럭저럭 무난히 다니고 있는 편. 전공은 이론이지만 제작에도 관심이 많아 영화과를 부전공으로 기웃거리면서 영화제작의 달콤함과 씁쓸함을 몸소 겪어봄. 영화관람 스타일은 부지런히 수시로 개봉작을 보러 다니기보다는 영화제에서 한꺼번에 왕창 몰아보는 편.

이재희

1976년생. 16살 때부터 심리학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했지만, 4년의 학교생활 끝에 남은 건 단골 만화방과 비디오방뿐. 묘하게 과선배들 중 영상원으로 도망간 사람들이 많아, 어떤 곳인가 싶어 시험을 쳐봤는데 덜컥 붙었고, 졸업에 대한 아쉬움 없이 입학. 한 학기는 반짝 스스로 놀랄 만큼 부지런하게 보내봤지만, 이후 지금까지의 생활을 보면 이전 학교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80%쯤. ‘집이 극락’주의자랄까. 방에 들어앉아 노래듣고, 동화책 읽고, 오락하고, 가끔 방송도 하고, 비디오 보고, 추리소설 읽고…. 적어도 빈둥대는 데 있어선, 혼자서도 잘해요 체질이다. 얼마 전 공짜 DVD 플레이어가 생긴 이후로 두근두근했지만, 동네의 문화적 인프라가 워낙 ‘후져서’ 빌려다 볼 일이 막막하다. ▶ 영상원 대학생, 감독·프로듀서와 <후아유>를 논하다 (1)

▶ 영상원 대학생, 감독·프로듀서와 <후아유>를 논하다 (2)

▶ 참석자들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