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은 네시였고, 우리가 모인 시간은 두시였다. 여름 냄새가 슬슬 풍기는 오후, 한겨레신문사 앞 한 밥집에서 미리 모여 각기 준비한 질문과 자료들을 확인하며 밥을 먹었다. 이름하여 ‘작전회의’였다. 각자 꺼내놓은 질문지, 감독의 필모그래피, <후아유>를 비롯해 참조해야할 영화들에 대한 자료까지. 어쩌면 실탄은 이미 충분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뾰족한 작전은 세우지 못한 채 배만 채우고 인터뷰 장소로 향해야 했다.
영상원에서도 특히나 늙은 학생들이 많기로 소문난 영상이론과의 대표선수들이 총출동한 이 인터뷰는 어쩌면, 젊은이들이 바라본 젊은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던 감독과 제작자에게는 첫 ‘번개’의 배신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학생 6명의 평균연령은 30살. <후아유>에 대한 소개와 짤막한 감상들을 나누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최호 감독과 심보경 프로듀서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영화를 즐긴 한명의 관객이자 또한 앞으로 영화를 업으로 삼고 싶은 늙수구레한 학생들과 제작자들이 <후아유>를 경유하며 서로에게 던진 질문과 답변의 세 시간. 그 특별한 수업을 전한다.
음, 재밌는 영화네
이원재 영화 되게 재밌게 봤구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정말 재밌게 봤어요. (웃음) 영화 내에서 멜로와 조승우씨를 헷갈리는 것처럼 이나영씨와 헷갈릴 정도로. 실제로 어딘가에서 이나영씨가 게임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면서….
이안젤라 만듦새가 매끄러운 영화예요. 사실 예전엔 한수 접어주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드라마에 너무 신경쓰다보니 영화 본연으로서 스크린에 소홀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적절히 볼거리를 배치하면서 스크린 사이즈에 맞추어 수족관이나 도시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TV랑 달라지는 지점을 신경 쓰면서 만들었구나 싶었어요.
황정현 재밌게 봤구요. 특히 영화의 호흡을 조절하는 것도 그렇고, 들어가는 것과 나오는 것,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것과 부분을 따는 것이 매끄럽다는 느낌이었어요. 또 아바타 문제도 영화 속으로 잘 옮겨냈고 트렌디한 부분을 잘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백승록 ‘후진’ 모뎀 시절부터 지금까지 십몇년을 통신을 해오면서 채팅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괜한 반발심이 생겨요. 에이 저렇지 않은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 속에 잘 감정이입이 안 되고. <접속> 때도 그렇고 <후아유>도 사실 그랬어요. 아바타를 만들고 사람을 만나는 것, 더이상 특별한 것이 아닌데 자연스럽게 일상화되어 있는데 영화 속에서는 굉장히 특별하게 보여지는 것들이 부자연스러웠어요. 실례되는 말이지만 만든 사람들은 실제로 그 문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구요.
도대체, 왜 청춘영화야
이원재 최호 감독은 <닫힌 교문을 열며>와 <바이준>을 지나 이번 영화도 20대 청춘남녀를 다루고 계신데 청춘영화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최호 그 또래가 사실 방황의 시기고, 저 개인의 기억으로 이야기하자면 안개 속 한가운데 놓여 있는, 누가 쉽게 대답을 주고 알려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항상 불안하고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그런 시기지요. 하지만 사회는 그런 경험들을 빨리 잊으라 하고 또 쉽게들 잊어요. ‘난 이제 모든 걸 다 알아’라고 말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사회에서 자신이 지나왔던 아프고 힘들었던 감정으로 돌아가 그 느낌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청춘영화 아닐까요. 제 자신도 진짜 힘들게 그 시기를 보냈고.
이안젤라 제 연령대가 타깃층에서 배제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아쉽기는 했어요. 그 나이 때 다 힘들다는 건 알지만 그 나이 때 영화가 표현해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사회에 대한 반발이라든가 자기네들 그룹의 독특한 고민이나 불안이라든가. 그런데 여기서는 형태나 인주나 그냥 성공적으로 기성세대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인상을 줘요. 다소 안이하게.
최호 그런 혐의는 많아요. 컨셉이 아래층 남자 위층 여자, 죄송합니다. (심보경 프로듀서를 돌아보며, 웃음) 이 영화는 사실 청춘로맨틱코미디가 될 가능성이 많았던 소재였어요. <접속>을 2002년식으로 외피만 바꾸는 것 아니냐는 혐의도 있었고. 이것들은 <후아유>를 시작하면서 안고 가야만 하는 운명이었어요. 저는 <후아유>의 캐릭터들에서 ‘뭔가 안 된다. 왜 잘 안 되지?’라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인주는 백수생활 2년 하다 수족관다이버 일을 하게 되고 거기서 뭔가 하고자 하는데 그게 결코 쉽게 되지 않고. 남자주인공들인 지형태와 이남훈은 실제로 있는 분들을 취재했고 자신들의 캐릭터를 쓰는 데 동의해서 쓰게 되었는데, 시나리오 진행 초기에 만났을 때엔 ‘우리 뜬다’며 굉장히 상기돼 있던 친구들이 시나리오 3고 쓸 즈음에 만났더니 ‘우리 월급 3개월 밀렸거든요’ 했어요. 그러한 불안이 남자 캐릭터에 있지요. 제가 바라는, 안개 속에 있는, 뭔가 잘 안 된다는 느낌은 잘 구현했다고 봐요.
심보경 청춘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 때, 사회문제 속에서의 젊음, 방황하는 청춘과 같은 부분이 중심인 경우가 많아요.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 역시 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서 지금까지도 문제작으로 남은 것이겠지요. <후아유>의 경우 그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좀더 대중적인 정서와 맞물려 멜로라는 지점을 향해 있는….
이원재 청춘영화가 90% 이상 이성문제와 결부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것일까요?
최호 <후아유>가 멜로드라마를 목적으로 하긴 했지만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라는 식으로 가려고 하진 않았어요. 이 나이 때에 어떤 젊은 애 둘이서 사랑을 한다면 어떤 방식일까. 마지막 부분에 이 남자애가 여자애에게 ‘나는 너를 다 안다’라고 말하는 것을 저는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20대에 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나는 너를 정말로 안다, 이해한다, 라고 말하는 것만큼 센 프로포즈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시나리오의 포인트였구요.
서로의 정체성의 문제를 갖고 티격태격 다투다가 누구 하나는 눈물을 흘리고 누구는 안타깝게 쳐다보고. 길 가다 젊은 애들이 싸우고 있잖아요. 한참 걷다가 뒤돌아보면 아직도 싸우고 있거든요. 무슨 내용 있겠어요. 걔들이 철학적인 얘기로 싸우는 게 아니라 너는 나 알아, 난 너 몰라, 하고 티격태격하는 거거든요. 그런 식의 연애경험 다 해보셨을텐데, 그런 걸 너무 약한 드라마라고 보시는 건 불만이에요. 서로 내가 너를 알고 니가 나를 안다, 라는 데에 동의하게 되기까지의 드라마, 이게 멜로영화이자 청춘영화의 요소라고 생각해요.
이안젤라 사랑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들 남녀에게 정보의 불균등한 측면이 있다고 봐요. 남자는 게임프로그래머로서 여자에 대한 정보들을 이미 다 아는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출발하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은 익명으로 존재하고 아바타 뒤에 숨어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에서 상대에게 접근하지만, 여자는 이미 까발려진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문제만이 남는 거지요. 남자는 여자를 만나러 갈 때도 카메라를 들고 가서 그 안에 인어복장으로 헤엄치는 여자를 담아내면서 관객에게 하나의 포획된 대상으로 제시하고. 한국영화에서 여성을 재현하는 익숙한 방식 이상은 아니지 않나 싶어요.
심보경 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지점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애초에 인주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 수족관다이버라는 직업은 비주얼의 측면에서 설정했고, 청각장애는 어떤 상징적 설정이었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을 보면 휴대폰이라든가 인터넷이라든가 해서 외부와 적극 소통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기 세계 안에 많이 갇혀있는 것 같아요. 인주의 경우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를 극복하고 뭔가를 성취해보려는 노력들을 보여줘요. 여자, 남자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그 나이가 가질 수 있는, 처해진 상황을 관계 속에서 극복하려고 계속 뭔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캐릭터로 그리려 했어요.
최호 스물두살짜리 여자 관객에게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인주는 사실 이때까지 표현되지 않은 캐릭터를 해준 것 같다고. 오히려 형태보다 조금 더 리얼했다고 생각한다고. 형태는 재수가 없다, 이기적이다, 마지막까지 자기 사랑을 구걸하고, 그렇게 보는 측면도 있더라구요. 물론 이 영화에서 계속 남자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관객과 남자는 알고 끝까지 모르고 있는 게 인주이니까. 하지만 그런 방법을 통해 그동안 잘 묘사되지 않았던 상업영화의 한 캐릭터를 그려냈다고 생각해요.
황정현 남자주인공의 ‘너는 나를 아느냐’는 질문이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라고 생각해요. 이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유심히 봤는데, 결국 온라인을 통해 파생된 갈등이 오프를 통해 해결되거든요. 결국 만나서 해결하는 거지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특성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려고 하셨는지.
최호 온 ·오프의 관계는 분열에 놓았어요. 관계가 진전될수록 남자주인공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지게 되는. 온라인에서는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나면 깐죽대고 그런 식으로 스스로 분열되어가는 양상을 보여줘요. 사실 형태가 인주에게 관심을 갖는 순간부터 프레임 안에는 형태의 반사 이미지가 많아지지요. 그런 드라마적인 갈등요소로 온라인이 기능하게 했어요. 인주 같은 경우도 실제의 친구가 아닌 모니터를 붙잡고 자기 얘기를 펼치다가, 결국 꺼진 모니터 앞에서 현실의 한 남자와 가상의 친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어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잖아
촬영현장에서 “울고 싶었던 적은 없냐”고 물었을 때 최호 감독은 “그 정도야 뭐, 아픔을 많이 겪어봐서”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하지만 가만히 촬영초기의 기억을 꺼냈다. “조승우씨와 이나영씨가 너무 서먹해서 투샷을 잡았을 때 너무 어색하더라구요. 아휴, 초반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실제로는 한살 더 어린 조승우는 세살 많은 오빠를 연기해야 했고 게다가 “껄렁하고 능글능글한 연기”를 이나영이 받아줘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같이 술도 마시고, 1년 정도의 촬영과정에서 서서히 친해져나갔다. 영화에서 온라인 게임으로만 조우하던 조승우와 이나영이 마침내 “우리 만나자”고 말하는 바로 그 신, 조승우는 아주 고혹적인 열창을 뽑아낸다. 립싱크인가? 아니었다.
최호 시나리오 쓰던 와중에 이재수의 <스틸 러빙 유>가 떴고, 원래는 형태가 노래부르는 신이 없었는데 그래서 첨가됐어요. 사실 노래를 너무 잘해가지고, 원래 생각한 맛은 정확히는 그게 아니었는데.
황정현 <차우차우>나 노래방의 <난 괜찮아>처럼. 그렇게 익숙한 노래들이 많이 감기는데 음악의 컨셉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너무나 대사와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관습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최호 <난 괜찮아>는 관습적이라기보다 실제적인 노래였어요. 사실 벤처하는 사람들 열받았을 때 노래방 가서 진짜로 <난 괜찮아>를 많이 불러요.
백승록 그 노래말고도, 전반적으로 개개의 곡들이 다 좋은 노래인데 되게 직설적으로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심보경 <후아유>의 음악 컨셉은 진짜 젊은 애들이 현실생활에서 접하는 리얼한 느낌으로 가자는 거였어요. 인터넷 하면서, 차 안에서도, 생활에 밀접해 있는 그런 부분들. 감독님이 처음에 콘티작업 들어가기 전에 음악선곡부터 완전히 끝내놓았어요.
이원재 감독님께서 이 영화에서 특히 애정이 가는 부분은 어디인지요.
최호 실제로 영화에 보여준 거보다 엔딩이 더 길어요. 시나리오도 그렇고. 영화에 나오는 거보다 더 격렬하게 싸우고. 내가 그런 장면을 좋아해서 그런 건지. 사실 육박전에 가까울 정도로 싸우거든요. 두 배우가 열심히 했고, 편집도 다 했는데 모니터링을 하면서 이건 좀 심하다, 상업영화의 수위를 벗어났다, 하하, 그래서 전 정말 고민했어요. 너무 애착이 가는 신인데. 자기가 각자 어떤 문제로 싸울 때, 굉장히 유치한 얘기하면서도 그게 정말 절실하기도 한, 그런 뉘앙스가 담겨 있거든요. 조금 수위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줄이긴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기도 해요. ▶ 영상원 대학생, 감독·프로듀서와 <후아유>를 논하다 (1)
▶ 영상원 대학생, 감독·프로듀서와 <후아유>를 논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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