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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27일 오후 7시 전주시 전북대 문화관에서 개막식을 열어 5월3일까지 장·단편 극영화와 다큐멘타리 180여편을 상영하는 8일간의 영화 장정을 시작했다.

이날 개막식엔 중국 감독 진첸, 일본 감독 미에다 겐지 등 해외 영화계 인사들과 임권택 감독, 배우 명계남씨, 명필름 이은 대표 등이 참석했다. 개막작인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상연됐다.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 친구>에 이은 임순례(40)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27일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으로 관객에게 첫 선을 보였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였던 <세 친구>(96) 이후 5년이 흐른 것처럼, <와이키키…>는 성장기의 희망이 빛 바래고 남루해진 어른들의 세계로 옮겨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청소년 시절 음악을 좋아했던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그룹 사운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채, 남성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불경기로 밤업소들 사정이 나빠지면서 하나둘씩 밴드를 떠난다. 활동무대도 서울에서 지방으로, 나이트클럽에서 단란주점으로 추락해간다. 갈수록 꿈은 멀어지고, 볼품 없고 지리한 현실이 주인공을 에워싼다. 그 과정을 무척 사실감있게 보여주기 때문에 <와이키키…>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 그러나 지방 소도시의 문화, 그곳의 나이트클럽에 모이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누추하면서도 정겹다.

나훈아를 흉내내는 가수 너훈아, 식당일 하다가 나이트클럽 공연이 펑크났을 때 달려와 이영자를 흉내내는 땜질 전문 코미디언, 마음에 드는 여자손님이 들어오면 시선을 끄느라 난데없이 백보컬을 지르는 드러머, 춤 잘추고 바람난 목욕탕 때밀이 유부녀…. 가식과 과장이 없는 연출 속에서도 이런 한국식 `3류 문화'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난다. <와이키키…>의 분위기는 우울한 저음으로 시작해 한번도 고음을 내지 않지만 낮은 음자리 안에서의 잔잔한 높낮이와 강약이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그 안에 삶의 애환과 행불행의 이미지가 다 담겨 있어 저음에 익숙해지면 바로 낄낄거리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영화 속의 세상은 익숙한 곳으로 다가온다. 임 감독은 주인공의 불행을 `보편적 불행'으로 관객에게 전염시키지만, 세상을 보는 자신의 눈에 담긴 애정까지 함께 옮기기 때문에 춥지가 않다.

“사는 게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누추한 삶도 유쾌할 때가 있고, 성공했다고 보이는 삶도 누추할 때가 있을 거다. 주인공이나 그 주변사람들은 항상 손해보고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지 못하지만 그게 대다수가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봤다.”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임 감독은 “잃어버린 10대 때의 꿈, 그것과 현재 삶과의 간극을 그려보고 싶었다”면서 “밴드의 이야기를 택한 건 음악이 어렸을 때 가졌던 꿈의 순수함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에 대한 직설적 공격이 <세 친구>보다 약해진 데 대해서는 “연고 중심주의로 똘똘뭉친 지방 소도시는 한국사회의 폐단과 비리의 집약이라고 생각돼 그걸 함께 담아보고 싶었지만 영화가 산만해질 것 같아 덜어냈다”고 설명했다.

제작사인 명필름은 <와이키키…>를 해외영화제에 몇차례 내보낸 뒤 가을에 일반극장에 걸 예정이다.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