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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수퍼맨 리턴즈> 읽기 ① 신과 인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 가장 어려운 부류의 영화이다. 심지어 같은 원작을 다룬 다른 <슈퍼맨> 각색물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 시리즈는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빛나는 아이콘에 대한 진지한 예찬과 그 순진무구함과 어처구니없음에 대한 발랄한 농담이 반반씩 섞인 영화였다. <로이스와 클라크>은 거의 신격화된 만화 캐릭터들을 텔레비전 연속극의 공간으로 끌고 와 현실의 문제와 소프 오페라의 연애 공식 모두에 대입시킨 로맨틱코미디였다. <스몰빌>은 <슈퍼맨> 전설을 10대 소년의 성장기에 대입시킨 통과제의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들은 일단 방향만 잡으면 한없이 화제를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는 그 모든 새로운 해석들을 거부한다. 그의 <수퍼맨 리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단순하다. 싱어의 슈퍼맨은 소외된 10대 소년을 대변하지도 않고, 다정다감한 소프 오페라 로맨스의 주인공도 아니다. 그는 그냥 슈퍼맨이다. 빛의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독특한 분자구조 때문에 엄청나게 힘이 세고 (안경잡이 신문기자 클라크 켄트라는 가짜 아이덴티티를 빌린 것만 빼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크립토나이트에 약한 쫄쫄이 복장의 덩치 큰 보이스카우트 말이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놀려대고 싶어 몸이 달 텐데, 싱어는 그냥 심각하다. 심지어 그는 그 말도 안 되는 유니폼을 놀려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엑스맨>에서 싱어가 오리지널 유니폼들을 작정하고 쓰레기통에 갖다버린 걸 기억하는가? 하지만 로고에 엠보싱을 주고 채도를 조금 낮춘 것만 빼면 <수퍼맨 리턴즈>의 유니폼은 전통에 충실하다. 덕분에 영화는 작정하고 피상적이 된다. <수퍼맨 리턴즈>에는 어떤 숨은 의미도 없다. 싱어가 슈퍼맨 캐릭터에 대한 관습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성애 서브텍스트를 거부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도야 만화 팬들과 퀴어 비평가들이 몇 십년 동안 해온 이야기라 특별히 신선할 것도, 튈 것도 없는 이야기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게이이면서 싱어는 인터뷰를 통해 그 토론 자체를 잘라버린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슈퍼맨이 게이라는 게 아니다. 그가 부정하려는 건 자신이 만든 영화와 주인공에게 어떤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싱어의 영화는 이야기와 내용이 피상적이고 일차원적일 때 가장 자기 역할을 분명히 한다. 이런 영화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평범한 청년인 스파이더맨/피터 파커나 온갖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인 배트맨/브루스 웨인은 별다른 어려움없이 현대적인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 하지만 슈퍼맨/클라크 켄트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타란티노가 언젠가 지적한 적 있지만, 이들 사이엔 분명한 구분이 있다.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은 피터 파커와 브루스 웨인의 분장이지만 슈퍼맨의 경우 분장은 슈퍼맨이 아닌 클라크 켄트이다. 작정하고 기존 설정을 파괴한 <로이스와 클라크>와 <스몰빌>도 이 공식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 얄팍한 보이스카우트의 내면 세계에 어떻게 현대적인 갈등을 구겨넣을 것인가? 액션은 어떤가? 제대로 된 공식을 따른다면 슈퍼맨은 결코 이상적인 액션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약점이 거의 없고 능력이 지나치게 거대하며 대적하는 악당은 그냥 보통 인간이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립토나이트라는 말도 안 되는 장애가 등장해 위기 상황을 연출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액션과 위기 상황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싱어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액션장면은 슈퍼맨의 모험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슈퍼맨을 구출하는 보통 사람들의 액션이다. 그러나 싱어의 선택은 기본적으로 옳다. 넘쳐나는 능력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면 <스파이더 맨> 영화를 만들면 된다. 우린 슈퍼맨에 공감할 필요도 없고 같은 눈높이에 놓고 그의 모험에 동참할 필요도 없다. 그는 조각상이고 롤모델이고 구세주이고 신이다. 슈퍼맨을 슈퍼맨답게 만들려면 구차하고 평범한 보통 인간의 이야기를 덧입히는 대신 그를 신으로 묘사해야 한다. 굳이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슈퍼맨 대신 성모마리아이자 프시케인 로이스 레인과 부동산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프로메테우스인 렉스 루더에게 충분한 장면을 주면 된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성경과 그리스 신화가 그런 것처럼, <슈퍼맨 리턴즈>는 신과 인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슈퍼맨의 갈등이 충분히 인간적이거나 입체적이지 않다고 투덜대는 것은 그가 슈퍼맨이라고 투덜대는 것과 같다.

<괴물> 봉준호 감독, 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 대담

27일 개봉을 앞둔 <괴물>은 지금까지 대규모 예산으로 만들어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호평을 받고 있다. 본격적인 괴수 장르 영화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영화를 품평하기 위해 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가 봉준호 감독을 지난 7일 삼청동에서 만났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선후배 사이기도 한 두 사람은 <괴물>이 지난 정치적 함의와, 엇박자 유머, 한국에서 괴물영화 만들기의 지난함에 대해 두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김소영=영화의 첫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특히 한강의 심연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강이 폭포처럼 올라온다든가 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건가 봉준호=괴물 장면 말고는 사실상 컴퓨터그래픽이 거의 없었다. 맨 마지막, 한강에 눈이 오는 장면과 프롤로그에서 투신하는 남자와 그 뒤로 63빌딩이 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 하늘이 맑아서 찍고 난 다음에 컴퓨터그래픽으로 회색 구름을 깐 정도를 제외하고는. 김=기대가 매우 커서 처음 한강 다리 나오는데 가슴이 두근 대더라. 봉=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걱정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에서는 수모, 편견, 멸시, 구박, 우려가 장난 아니었다. 괴물 영화 만든다니까 영화인에서 친구들까지 너 미쳤냐, 영화 한편 잘 되더니 정신 못차리고 자만에 빠졌다, 이무기 영화 만든다며? 잘 해봐라 등등 냉소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머리 깎으라고 하면 빡빡미는 애들의 오기 같은 심정으로 제목도 <괴물>이라고 붙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설마 진짜 괴물은 안나오죠? 송강호의 인격이 괴물이라면서요 이렇게 반응하더라(웃음). 김=처음 영안실의 투샷은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처럼 평이하게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강의 다양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 블록버스터 규모로 진행되는데 참조영화가 많을 것 같다. 이를테면 <우주전쟁> 같은. 봉=제작비 규모도 그렇지만 보여주려는 의도나 방식도 전혀 다르다. 보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스펙터클에 대한 집착이 크지도 않았고. 굳이 외국영화와 비교한다면 같은 외계인의 침입을 다루지만 <인디펜던스 데이>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한 <싸인>을 좋게봤다는 정도? 김=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제작비가 독립영화 수준이지만 어쨋든 한국에서는 100억원 정도 제작비 규모면 블록버스터다. (투자·제작사와) 조정과정이 흥미로울 것 같다. 요즘 제작 투자 받는 과정에서 엔딩이나 스펙터클 포함해 요구가 많지 않나. 해피엔딩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엔딩이어야 한다거나. 그런데 이 영화는 해피앤딩과 거리가 멀다. 봉=정말 전과정을 통틀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다. 하도 말들을 안 해서 오히려 내가 붙잡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결말만 보자면 디즈니풍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다, 아니다는 반응이 절반정도 됐던 것같다. 김=<살인의 추억> 이후에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호감도 100%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같다. 어떻게 보면 한국영화 산업의 특수한 상황인 것도 같고. 봉=대신 그 상황에서 잘 해야 겠다. 14개월 촬영하고 이렇게 되버리면 안되니까, 나나 프로듀서나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하려고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다. “너 미쳤냐” “잘해봐라” 찍기전 냉소 김=<고질라>나 <대괴수 용가리>처럼 괴수영화를를 정치적으로 읽는 독해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자. <고질라>는 피폭에 대한 영화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탄생했다. <용가리>는 삼팔선 디엠지에서 남대문 쪽으로 온다는 점에서 한미관계가 이야기 아래 깔린다. 괴물도 고질라나 용가리처럼, 미국이 개입한 전쟁과 연관돼 있다. 사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은 비극적인 장면, 정치적인 비관과 블랙 코미디가 서로 약간씩 부정합, 엇박자를 만들면서 간다는 점이다. 그렇게 봤을 때,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으로 흘러나오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용산기지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을 연상케 하고, 영화는 이런 식으로 미국이 한국 주권을 담보하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렇게 정치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한강이 넓으니까 넓은 마음 가져라”식의 대사가 튀지 않도록 완급 조정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봉=칸 영화제에서도 코미디나 정치적 비극이 잘 뒤섞여서 굴러간다, 어떻게 배합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여러 요소를 별도로 놓고 배합한 건 아니다. 나한테는 하나의 단일한 상황으로 인식됐고 그걸 직관적으로 풀어나갔다. 기존 장르 카테고리에 맞춰서 보려고 하니까 여기서는 코미디네, 정치풍자네, 서스펜스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편한 방식으로 풀어간 것이다. 길을 걸을 때 좌측 발이 나가니까 오른 손이 나가야지 하고 걷지 않듯, 그냥 걷는 리듬으로 시나리오 쓰고 찍고, 편집했다. 김=<플란다스의 개>에도 그런 엇박자의 유머가 있었다. <괴물>의 엇박자도 유형적으로 비슷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확인할 수 있는 공포다. 이걸 자기 리듬으로 갖고 있다는 건 재능인 것 같다. 봉=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여러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김=“한강 넓으니까 맘 넓게 가져라”라는 식의 엇박자 유머가 어색하지 않게 들리다가 강두 아버지가 강두 어린 시절 이야기 하는 가운데 유기농 운운하며 유머를 섞을 때는 불편하더라. 웃는 게 무감각하게 느껴지고. 소녀가 납치된 이후에도 나오는 웃음도 그랬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웃을 구석 찾고 있다는 게 불편했다. 2000년 미군 독극물 무단방류 사건을 보고 내영화를 위한 사건이구나 아전인수 생각, 내 작품 세평중 재미에 가장 집착한 영화 봉=<살인의 추억>도 엄청 무서운 연쇄살인인데 포복절도할 웃음이 나왔는데 왜 그렇게 될까 생각해봤다. 내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의 구조나 설정을 짤 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같다. 일단 못난 인물이 나온다. <플란더스의 개>의 이성재, 배두나도 그렇고 <살인의 추억>의 한심스러운 형사들도 그렇다. <괴물>도 평범 수준을 밑도는 가족이 나와서 자신들이 감당 안 되는 상황이나 사건에 노출된다. 연쇄살인이라는 현대 범죄에 적응 안 된 형사들처럼, <괴물>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수퍼 히어로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웃음이 유발될 가능성이 떨어지는데 그들이니까 가능해진다. 상황은 심각한데 스크린 밖에서 볼 때는 웃긴 상황이 되는 것이다. 김=<플란다스의 개>에는 지하실의 보일러 김씨가 등장하고 <살인의 추억>에는 수로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괴물>도 마찬가지고 습지, 물기, 수로, 지하실 등 봉 감독의 영화에는 이런 공간이 일관되게 등장한다. 흔히 젖줄이라는 표현으로 여성화되는 한강이 영화에서 미군의 포르말린으로 더럽혀지고 그 어머니가 낳은 아이가 괴물이 된다. 근데 괴물에 성별이 있나. 봉=괴물 크리에이터인 장희철씨와 추측을 많이 했다. 여잘까 남잘까. 장씨는 자웅동체가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렸을 땐 여성스런 느낌도 있고, 밖에 나왔을 땐 남근처럼 보이긴 하고. 한강도 여성적인 상징, 한각의 기적 처럼 국가적, 역사적 상징을 배제하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백두산 천지의 반댓말이라고 해야 할까? 백두산 천지는 일상과 동떨어진 신비롭고 안개 잔뜩 낀 공간이지 않나. 영화에서 한강은 그런 것의 반대다. 유람선, 자전거, 인라인 타는 곳에서 괴물이 나온다, 이런 충돌을 통해서 낯선 공간이 된다. 괴물도 보통의 괴물 영화에서는 조금씩 보여주면서 괴물의 미스터리, 괴물을 어떻게 죽일까에 집착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괴물이 초반이 나오고 거기서 이야기를 바이러스설, 가족 납치극 등으로 확장시켰다. 오히려 괴물은 생물체로서 그 자체로만 남는 거고, 상징이 집약되기보다는 거기서 파생된 의미가 확장되는 것 같다. 김=자웅동체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괴물의 입이 연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봉=연꽃은 의도한 것이다. 괴물 비주얼에서 입이 포인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류에 기반한 디자인인데 어류는 모습이 단순하니까. 또 영화에서 사람과 마주섰을 때 정면에는 입이 보일 수 밖에 없는데다가 사람을 삼켰다 뱉는 게 반복적으로 나오니까 입모양이 매우 중요했다. 괴물이 풀들 사이에서 입을 쫙 벌리고 비를 받아 먹는 것이나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 휘발유 받아 먹을 때도 연꽃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상징으로 발전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연꽃모양에서 다른 의미가 붙여지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김=크기가 문제되는 괴물이 아니고, 괴물 그 자체로 미스테리라거나 알레고리로 파고들지 않게 했던 건 좋은 설정이었던 것 같다. 봉=배설에 대한 모티브는 있었다. 처음에 독극물을 쏟아붓고 괴물도 사람뼈를 뱉어내고 나중에 에이전트 옐로우가 가스 배출하는 것까지 먹고 뱉는 모티브를 반복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누군가가 먹인다는 거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밥상 차리는 것도 그렇고, 강두 딸 현서는 지옥같은 지하에서 자기보다 더 작은 아이를 보호하려 사투한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였다. 김=강두 딸 현서는 엄마가 없고, 궁수인 고모는 모성보다는 전사의 느낌이다. 여기서 돌보는 역할, 먹이는 역할은 할아버지, 강두가 한다. 그래서 나쁘게 읽으면 엄마가 없는 아이가 처하는 비극이라는 게 여성친화적인 영화로 보긴 힘들다. 이 영화의 비극성에는 대체되기 어려운 모성의 부재라는게 있지 않나. 약자조차 약자를 보호한다는 모티브 봉=무려 두 세대에 거쳐 엄마가 없는 거다. 시나리오 쓸 때 처음엔 의식하진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다. 엄마들이 적재적소에 있으면 가족들이 덜 불안정해 보인다. 나에게 엄마 또는 여자들은 현실적으로 현명한 존재고 남자는 폼만 잡는 이미지다. 두세대 엄마가 없으니 더 우왕좌왕 불안해 보인다. 가장 중요했던 건 모든 가족이 현서를 구하려 사투를 벌이는데 현서는 그 안에서 더 작은 아이를 구하려 사투하는 것이다. 현서, 강두같은 부족한 사람조차도 더 약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먹이려고 한다는 개념이 제일 좋았다. 또 이 사람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고, 도움은커녕 방해만 받지만 아무도 시스템 탓 안하고 자기들끼리 보듬으며 재앙을 개인화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예를 들어 대구지하철 참사도 구조적 모순을 탓하기 보다 ‘내가 돈 잘 벌었으면, 대학입학 했을 때 차 사줬으면, 안 당했을 변을 당했다’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재앙은 훨씬 더구조적인 것에서 온 건데, <괴물>의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김=합동분향소 장면에서 현서의 고모역의 배두나가 눈물 젖은 채로 등장하는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의 궁수라는 직업이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같은 행동을 기대하게 하는데 중간에는 별로 힘을 못쓴다. 이런 게 그 가족의 특징이기도 하고. 배두나 역을 왜 궁수로 설정했나. 봉=장르적인 걸 한국적인 걸로 치환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였다. 다시 말해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를 한국적으로 끌어내린거다. 한국영화에서 난데없이 활 잘쏘는 인물이 등장하면 받아들이기 힘드니까 양궁 선수로 설정한 거다. 또 양궁 중계방송은 올림픽 때마다 익숙하게 보는 것이니까. 그런 이미지로 출발시켜놓면 뒤에서 레골라스같이 다가가도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영화상에서는 강두는 계혹 삑사리나고 강두 남동생을 말이 너무 많으니까 누군가 한명은 조용해야 할 듯해서 말없는 인물로 만들었다. 만약 배두나의 캐릭터가 없었다면 너무 뻑뻑했을 거다. 야채없이 고기만 차려진 밥상 같은. 결과적으로 배두나는 상대적으로 적은 장면에 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저비용고효율 캐릭터였다. 김=세트로 만든 매점에 물건이 포화상태다. 훔쳐가도 꽉 차 있고. 봉=실제 한강 둔치 매점을 가보면 그렇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여의도에 가보면 더 그렇다. 영화에서 매점은 중요한 공간이다. 바이러스 선포 뒤 둔치는 사막화되고, 매점은 오아시스화된다. 매점은 단순하지만 영화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공간이다. 현서는 매점 문 열고 나가는 순간 변을 당하고 가족은 현서를 찾다가 지치면 매점에 모인다. 김= <교>(다리)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구상중이었는데, 한강 다리, 특히 원효대교 돌아가는 모습 같은데서 매혹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강 다리들은 바로크적이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하며 또 무식하게 막 지었지만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하여튼 그러다가 봉준호가 괴물영화를 한강 다리 배경으로 만든다고 해서 슬프게도 창작을 중단했다.(웃음) 봉=한강다리가 이상하다. 무식하고 말도 안 되는데 굉장히 압도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도 있다. 괴물로 말하자면 과학자가 나와서 괴물에 대해 설명하는 다른 괴물영화와 달리 우리 괴물은 설명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웃음) 시나리오를 쓰면서 구상했던 전개는 있다. 이 괴물이 2000년 6월 탄생해서 물고기만 먹으면서 크다가 처음 맛본 인육이 영화 초반 한강 다리에서 투신자살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 처음 인육을 맛 보고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한강 똥물의 물고기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둔치로 올라와서 사람 먹은 거지. 아나콘다처럼 엄청난 양의 사람을 먹고 오랫동안 소화시킨 뒤에 뼈를 뱉어내는 거다. 자세히 보면, 1차 습격 뒤로 괴물이 사람을 쌓아만 두고 안 먹는데 포만감 상태에서 음식물을 쟁여 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처음 먹었던 대량의 뼈를 토한 다음 쌓아두었던 사람들을 먹고 가둬둔 현서도 괴롭히는 거다. 그러고나서 한참 뒤 비상사태 선포로 텅비었던 한강에 사람들이 모이니까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향해 달려가면서 클라이막스가 된다. 이런 괴물의 시점 이야기를 누가 영화에서 설명해줬으면 좋았을텐데(웃음). 김=이 영화에서 보면 제일 철 든 사람들 보면 강두의 아버지인데 중간에 죽어버린다. 봉=강두 아버지가 그렇게 되면서 가족이 흩어진다. <반지의 제왕>때 간달프가 죽을 때를 떠올리며 그렸다. 거기서도 간달프가 어둠속으로 떨어지고 나서 원정대가 뿔뿔이 흩어진다. 이 영화는 거기서부터 2막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렇게 흩어진 가족들이 마지막에 원효대교 쪽으로 집결하게 되는 거고. 김=특별한 함의가 있다기 보다는 서사적인 장치네. 봉=그렇다. 그 캐릭터는 그 세대의 전형적인 아버지다. 변희봉 선생이 그 동안 그로테스크한 역을 많이 해서 오히려 평범한 역할을 하는게 배우와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좋을 것같았다. 준비하지는 않았던 거지만 유언일 수 있는 말을 할 때 자식들은 얘기 안 듣고 다 자고, 본인은 고생하면서 자식을 키웠지만 아래 세대가 안 들어주는 거다. 김= 이런 비교를 안 좋아 하지만, 현서역의 고아성은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이 등장할 때 느낌, 스타탄생 같은 느낌이 있었다. 봉=시각효과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10톤짜리 트럭 1천대를 이빨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웃음). 배우마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면 거의 자살하지 않을까 싶어 잘 아는 배우들을 캐스팅했는데 현서는 너무 중요한 역할이라 뉴페이스가 필요했다. 오디션을 많이 했다. 오디션 할 때보다 촬영 때 많이 자라서 당황하긴 했는데 기가 세서 변희봉, 송강호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는 게 없더라. 이 친구가 촬영할 때 중1이었는데, 매점 안에서 노닥거리는 장면에서 송강호가 애드립도 많이 하는데 다 받아치더라. 김=관객에게 정독을 요구하면서 또 봉 감독식의 엇박자 리듬도 타게 한다는 게 쉬운 영화보기가 아닐 수 있다. 봉= 내가 그렇게 난해한 영화를 찍었단 말인가? 여름방학 어린이 관객 겨냥 영화로 만든건데, 문득 공포가 밀려온다(웃음). 김=용가리나 왕마귀 영화는 아닌 것 같다(웃음). 특히 상업영화의 관습적 결말과 다르게 중요 인물을 결말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허탈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까지 든다. 봉=처음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찬반이 반으로 나뉘었지만 결말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 부분의 딜레마는 없었고, 죽음이 의미가 있는가, 그 죽음이 헛되지 않는가가 중요했다. 물론 비극이긴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관객에게 위로를 준다고 생각했다. <친구>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오히려 비극적 엔딩이 한국에서는 상업적 감각처럼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었던 것같다. 김=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관객을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괴물>에는 그게 안보이고 한강의 기적이나 성수대교 참사 같은 알레고리를 억지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게 좋아보였다. 괴물의 크기가 너무 크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봉=나로서는 지금까지 만든 세편 가운데 영화적 재미에 가장 집착했던 작품이다. 장르적 관습을 깨면서도 그 클리셰를 따라가는 장면도 많았고. 괴물영화 장르에 본래 유치한 풍자적 기능이 있는데 <괴물>에서 굳이 풍자를 위해 독극물 방류 사건을 만든 게 아니라 2000년 주한미군 독극물 무단방류사건을 보면서 아전인수식으로 내 영화를 위한 사건이다 생각했다. 한강에서 괴물이 나온다는 오래 전 구상에 괴물의 기원은 이거다라고 붙은 거다. 그러다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펠리컨이 물고기를 운반하는 걸 보고서 죽이는게 아리나 납치하는 괴물이라는 발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김=지금까지 컴퓨터그래픽을 많이 활용했던 한국영화는 대체로 실패했는데 이영화에서는 그래픽이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한정된 예산에서 포기해야 했다거나 아쉬웠던 점은 없나. 봉=어차피 한정된 예산이라 차라리 그 제약을 즐기면서 하려고 했다. 할리우드 대작영화는 컴퓨터그래픽 한 숏 만드는 데만도 1억원이 넘게 드는 데 그렇게 비교하면 이 영화의 괴물 숏에만 120억원이 들어가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죠스>를 찍을 때 모형 상어가 고장났을 때 스필버그가 그 유명한 죠스의 시점숏을 연출해서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괴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괴물을 찌른 작대기가 부르르 떠는 걸 보여주는 식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오히려 연출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괴물의 실체 없이 촬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한강에 배우들을 비명지르며 뛰어다니게 하는 것도 민망하고, 스탭들까지 찍은 필름을 보면서 이게 뭐예요 그러니까 편집할 때까지 무척 힘들었다. 한마디로 할 짓이 아니었다. 김=다음 작품 계획은 뭔가. 봉=두번 다신 괴물영화는 안 할거다. 컴퓨터 근처에 가는 영화도 안 할 거다. 스탭들도 하도 고생을 해서 한강 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더라. 차기작은 엄마와 아들 이야기인데 그래픽 같은 곳에 에너지 빼앗기지 않고 연출에만 집중하는 무척 아날로그적인 영화가 될 거다. 그 다음 작품으로 <설국열차>라는 제목의 프랑스 만화를 판권계약했다. 그건 규모도 좀 크고 에스에프적인 성격도 있어 준비기간이 꽤 필요한데 판권 만료가 2011년이라 부지런히 두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월드컵의 미장센 [1]

지난 한달이 월드컵과 함께 흘러갔다. 공 하나를 놓고 벌이는 이 축제는 이번에도 전세계를 설레게 만들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만국공용어인 축구의 매력이 그만큼 크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축구 자체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월드컵은 내가 축구를 하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로 축구를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월드컵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축구 중계의 기술부터 미학까지 다방면에 걸쳐 월드컵의 미장센을 분석한 글을 보내왔다. 축구보다 재미있는 축구 중계의 놀라운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나는 축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오프사이드를 눈으로 보고도 그게 오프사이드인지 모른다. 그냥 주심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가보다, 한다. 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지 못하며, 올해 월드컵 스타들의 이름으로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토고전이 있던 날 나는 잠을 잤으며, 프랑스전은 중간부터 보았고, 스위스전만 처음부터 보았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나는 마음속으로 응원하는 나만의 팀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를테면 (<씨네21>의) 오정연은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브라질전은 기본적으로 봐줘야 하는 경기”라면서 차례로 열거했다. 축구의 열혈 팬(이자 나의 축구 관람가이드 선생님)인 허문영은 거기에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를 꼭 보라고 강추한다(그런데 그만 탈락했다. 아쉬운 일이다). 심지어 <<씨네21>에 ‘issue’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한겨레21>의) 김소희는 산후 4주째 되는 날 프랑스전을 보았다고 자랑스럽게 썼다(<씨네21> 제 559호, ‘아이♡월드컵’). 나는 안다. 4주째 된 아기의 그 무시무시함을. 차라리 아기라기보다는 킹콩이라고 부르고 싶은 막무가내의 액션들. 실신 직전의 기진맥진 상태에서 텔레비전을 보다니! 나는 그런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월드컵에 대해서 쓸 자격이 없다. 그런데 무심코 오정연의 ‘허벅지의 미학’을 읽었다(<씨네21> 제559호, 기자들의 오픈칼럼). 거기에는 “(중략) 게다가 허벅지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골은 아름답다. 속이 시원해지는 중거리 슛은 전체적인 각선미를 살필 수 있고, 접전 끝에 가까스로 들어가는 골은 비교적 장시간의 감상이 가능해 좋다. (이런 기준에서 코너킥 혹은 프리킥 이후 헤딩으로 이어지는 슛은 점수가 다소 낮다) 문제는 이런 편협한 기준을 가지면 사소한 불만이 많아진다는 점(중략)”이라고 안타깝게 썼다. 이 글은 내게 문득 축구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이 글은 기묘하게 읽힌다. 오정연은 여기서 축구를 말하는 대신 그걸 중계하듯이 쓴다. 그때 오정연의 자리는 스타디움이 아니라 카메라의 눈이다. 줌렌즈가 되어버린 오정연의 눈, 붐마이크가 된 오정연의 귀. 언제라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몸싸움을 볼 수 있는 앵글과 리버스 앵글로 자유자재로 옮겨다니는 편집된 오정연의 비행술. 지가 베르토프적인 이미지-쓰기, 혹은 기계-되기. 축구선수들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축구라는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으로서의 축구선수들의 육신. 그리고 그 육신을 재현하는 기계적인 눈. 마치 눈앞에 그것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고백하는 오정연의 섬세한 기술은 축구라는 관능미, 축구의 에로티시즘이 사실상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라기보다는 그 축구를 본다는 능동적 착각에 뛰어들어든 테크노-이미지-쓰기이다. 그때 오정연의 눈과 귀는 사라진 매개항으로서의 텔레-비주얼한 스펙터클의 포획에 내맡겨진 감각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오정연의 이 기술은 스타디움에서는 쓰여질 수 없는 글이다. 좀더 정확하게 이 글은 축구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축구에 대한 ‘중계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스펙터클의 이미지-라이브. 스타디움에 앉아서는 중거리 슛을 찰 때의 각선미를 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혹은 접전이 벌어지면 그것을 분석적으로 보는 것은 텔레비전이다. 그때 우리가 보는 것은 축구로 위장된 텔레비전의 수사학이다. 마셜 맥루한의 유머에 가까운 선언. 미디어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정말 무엇을 보고 있는가? 말하자면 그때 나는 축구가 아니라 축구라는 스포츠의 중계-미장센(mise-en-‘football’-televisuel)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축구 중계가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에서의 로마 콜로세움 안에서의 ‘아날로그’ 전차경기 장면 혹은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에서의 막시무스의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사 ‘디지털’ 장면들과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헤어지는지를 생각하면서 월드컵 중계를 보았다. 원형경기장에서의 대결. 환호하는 관중. 보이지 않는 카메라. 하지만 절대적으로 그 장소 바깥에서 멀리 떨어진 채(tele) 카메라라는 기계에 의지해서(techno) 마치 거기 있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구경하기(spectatorship). 스포츠 중계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약간의 우회. 영화의 테크놀로지는 그 자신만의 필요에 의해서 선형 발전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영화는 수많은 테크놀로지들의 불균등 복합 구성체에 가깝다. 라디오와 사진과 축음기의 상이한 발전단계의 비동시적 동시성으로서의 접합(articulation). 그때 영화라는 미디어는 역사의 무엇에 빚지고 있는가? 여기에 폴 비릴리오는 대담하게 영화의 테크놀로지는 전적으로 전쟁에 빚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는 (비릴리오의 <전쟁과 영화>에서 재인용하자면) “시나리오 작가 아니타 루스는 할리우드는 1차 세계대전에 귀속된다”고 선언한다. 전쟁은 정확한 목표물을 노리기 위해서 점점 더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지각의 병참술’이라고 불리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시뮬레이션은 점점 더 전쟁과 영화를 분간하기 힘든 것으로 만들었다. 혹은 전쟁은 영화를 매개로 하여 게임으로 이행했다. 사실상 오늘날 펜타곤에서 하는 일의 축소판을 매일 밤 우리의 아이들은 컴퓨터 모니터 화면 앞에서 수행한다. 목표를 맞추는 일은 카메라에서 줌렌즈가 대상의 초점을 맞추는 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나는 비릴리오와 똑같은 이유로 텔레비전의 테크놀로지는 스포츠에 빚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가 대상을 의심하면서 따라가는 동안 텔레비전은 대상을 설명하고 분석하려고 한다. (벤야민의 말을 흉내내면) 대중은 영화를 볼 때 세상에서 떨어져나와 자기가 사는 세상을 낯설게 쳐다보지만, 집 안의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볼 때는 부주의하게 다시 세상의 일상생활의 일부로 돌아간다. 당신이 들뢰즈주의자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영화는 탈영토적이지만 텔레비전은 재영토적이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일시적인) 일탈이지만 텔레비전을 쳐다보는 건 (무비판적인) 습관의 일부이다. 물론 스포츠를 바라보는 방법을 발명한 것은 (아직 텔레비전이 도착하기 전의) 영화이다. 전쟁과 영화와 스포츠의 삼위일체를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2차 세계대전을 수행한 독일인들이다. 그걸 단지 아돌프 히틀러만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여기에 관련된 수많은 ‘예술적인’ 장교들, ‘지휘관 같은’ 예술가들, 특히 레니 리펜슈탈, 그리고 ‘병사들과 같은’ 선수들을 무시하는 처사일 것이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과 베를린올림픽과 영화를 하나의 스펙터클로 만들었다. 그때 영화는 스포츠를 (종목마다 서로 다른 전술을 이용해서 선수들을 타깃으로 삼아) 전쟁처럼 찍었고(<민족의 제전>), 전쟁(을 위한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을 스포츠처럼 찍었다(<의지의 승리>). 하지만 독일이 전쟁에서 졌다는 이유만으로 스포츠를 찍은 레니 리펜슈탈이 비난을 받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로부터 일년 뒤 존 포드는 태평양 전쟁의 현장에 나가서 전쟁을 찍었다. 그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이 자리는 그 윤리성을 물어보려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영화가 전쟁에서 고개를 돌리면 맞은편에 스포츠가 있다. 그 둘을 찍는 것은 동일한 행위이다. 말하자면 스펙터클. 그리고 그 현장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구경꾼의 자리에로 안내하는 것. 오늘날 올림픽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중계-문법’의 수사학은 여기서 발명되었다. 존 포드가 서부극에서 한 것을 레니 리펜슈탈은 스포츠 중계에서 했다. 하지만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 스포츠 중계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998년 프랑스 축구 중계 감독 중 한 사람이었던 프랑수아 샤를 비도는 그걸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중계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뿐입니다.” 더 잘, 더 가까이, 다시 보기 위해 방송 중계가 시작됐다 그러나 영화가 근본적으로 스포츠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라디오와의 경쟁에서 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경기란 스포일러를 다 알고 난 다음의 영화보다 더 재미없는 법이다. 대중은 느림보의 소식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천리의 소식을 전해 듣는 장님이 되는 편을 택했다. 이때 말 그대로 멀리 떨어져서 원격(tele)으로 보여주는(vision) 텔레비전의 동시성은 영화가 해낼 수 없는 뉴스라는 측면을 부여했다. 스포츠의 일회성은 동시성을 동시에 요구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1930년 첫 번째 월드컵을 쥘 리메의 스포츠 정신의 이상주의에 따라 중계가 불가능한 우루과이에서 열 수 있었던 것은 아직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중계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올해 브라질과 프랑스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선수들이 나와서 플래카드 주변에 선 다음 낭독을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거기에는 “인종차별주의에 대해서 ‘노’라고 말하라!”(Say ‘NO’ to Racism)라고 쓰여 있었다(그런데 한국방송은 이 장면이 45초 가까운 시간 동안 화면에 보이는데도 선수들의 전력을 소개하는 데에만 할애했다. 한국 선수들은 다민족 구성체가 아닌 단군 구성체(?)라서 이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일까?). 그러나 오늘날 그 취지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이를테면 위성중계가 불가능한 저개발 국가 지역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동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공위성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1970년 미국은 지구 위의 하늘을 공개하자는 정책(Open Sky Policy)을 제시한 다음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기 시작했다(그때 미국과 소련 말고 누가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었을까?). 그해 멕시코월드컵은 첫 번째 위성방송 축구 중계였다. 경기장은 선수들의 기량과 감독의 전략이 빚어내는 조화의 세계이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테크놀로지와 자본의 정보시장이 만들어내는 연대기이다. 경기장 안은 정정당당한 실력을 요구하지만, 경기장을 보는 것은 돈의 문제이다. 그때 이 관람의 행위에서 아무도 스포츠 경기를 마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수없이 다시 들으면서 받는 감동과 같은 경험을 위해서 반복해서 보지는 않는다. 만일 당신이 감독이나 선수가 아니라면 당신은 당신이 응원하는 팀 혹은 선수의 승리만을 다시 본다. 아무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진 게임을 다시 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본다면 당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결정적인 장면만을 발췌해서 본다. 그때 스포츠는 텔레비전에 자신의 게임의 규칙과 활용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요구한다. 스포츠 구경의 간절한 세 가지 욕망. 더 잘 보기 위해서,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 다시 보기 위해서. 현장과 포스트 프로덕션이 동시에 그러므로 이 글은 월드컵에 관한 작은 명상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 열광의 수사학을 불러일으키는 중계라는 형식의 스펙터클의 가시성을 물어보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월드컵에서 축구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물어보려는 것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은 키르히 스포츠 AG가 중계판권을 갖고 HBS에서 중계하였다. 한국의 방송들도 당연히 HBS가 제공하는 영상을 받아서 방영하였다. HBS는 경기장 안에 24대의 카메라를 놓았고, 각기 다른 화면을 제공하였다(그리고 각 방송사는 자사의 아나운서와 해설위원을 보여주기 위해서 각자의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경기에 동원된 카메라는 25대이다). 내가 2006년 월드컵에서 (7월2일까지) 본 경기는 모두 7경기. 한국의 세 경기, (나는 토고전을 보지 못했다) 브라질과 일본,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그리고 브라질과 프랑스이다. 나는 (영화처럼 말하면) 매 경기를 25개의 자리를 옮겨다니면서 보았다. 하지만 25개의 화면을 내가 선택해서 보는 것은 아니다. 24개와 1개의 동영상은 하나의 스튜디오로 전달되고, 그것을 선택하여 전달한다. 말하자면 중계는 현장과 포스트 프로덕션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중계의 편집에는 성찰이나 사유가 있을 수 없다. 모든 동영상을 수집하는 스튜디오에서도 10초 뒤의 상황을 예상할 수 없다. 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고작 몇초 안의 일이다. 이를테면 영국과 포르투갈의 승부차기의 결말을 어떻게 예상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 예상할 수 없는 경기의 내용을 따라가야 하는 편집. 중계는 지성이 아니라 지각의 산물이다. 이때 이 편집의 핵심은 리듬이다. 그러나 이 리듬이 반드시 눈앞에 진행되고 있는 게임의 내용을 따라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경기를 본 내 판단이다. 종종 이 리듬은 화면 바깥에 있는 비가시적이지만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경기의 남은 시간과 두팀 사이의 점수 차이가 또 다른 리듬을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중계는 두개의 리듬 사이의 긴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지각과 판단 사이의 대위법적 관계이다. 경기장 안을 자유로이 달리는 나비의 리듬과 시선의 거미줄에 걸려든 목표물의 작은 율동에도 반응하는 거미의 리듬. 그 두개의 리듬 안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기능들과 그에 관한 극화되어가는 심리. 하나의 경기장, 그러나 그 위를 자유로이 이동하는 매끈한 경기장으로서의 표현, 거기에 부여된 내용으로서의 홈 파인 경기장. 이를테면 한국과 스위스전. 오프사이드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판단 이후 이어지는 경기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화면의 가시적인 스펙터클 자체는 골인 선언 이전과 당연히 어떤 차이도 없다. 이어지고 있는 장면은 경기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골을 넣은 것과 넣지 못한 것, 오프사이드 선언의 모호성, 자꾸만 경기의 시간을 골인 이전으로 돌리고 싶은 심정, 고작 10여분 남은 시간, 여기에 더해 만일 이 경기에서 진다면 16강 진출에 사실상 실패한다는 사실. 만일 같은 시간대에 진행된 경기에서 토고가 프랑스를 이겨서 이 승부의 결과에 관계없이 16강행이 이미 결정되었다면 이 순간 남은 시간 동안의 경기를 보는 심리적 리듬과의 차이를 구태여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또는 동일한 결과인데도 불구하고 브라질과 (히딩크가 이끄는) 호주와의 경기를 보고 있을 때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 경기도 2 대 0으로 끝났다) 그 스펙터클이 불러일으킨 감각-리듬의 차이. 이때 나의 질문은 이것을 단지 국적의 차이만으로 이 모든 차이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 라고 대답한다면 우리는 월드컵을 보는 것이 아니라 끔찍하게도 민족주의만을 보는 것이다. 혹은 축구를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전투를 보는 것처럼 구경하는 것이다. 그때 축구와 전투의 차이는 정서적으로 동일한 것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태가 단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월드컵의 미장센 [2]

스타디움에서 본 것과 텔레비전으로 본 것은 다르다 에릭 로메르는 1960년 로마올림픽을 텔레비전으로 본 다음 ‘스포츠의 포토제니’라는 글을 썼다. 거기서 로메르는 스포츠 중계의 핵심은 불가능성에 있다고 설명한다. 스타디움에 가서 경기를 볼 때 인간의 시력으로는 경기의 전체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때 경기의 미세한 디테일을 볼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망원경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좌석이 문제가 된다. 반면 스포츠 중계는 전체를 포기하고 부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거기서 단지 플레이의 디테일만을 보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선수들의 얼굴에 나타난 피로감과 불안, 컨디션을 보게 된다. 그때 여기에 스포츠와는 아무 상관없는 드라마가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좀더 심각한 것은 (로메르는 이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썼다) 딥포커스와 마치 경기장 안에 들어온 것 같은 미디엄 숏의 사용으로 보는 사람과 선수 사이의 거리감을 말살시키고, 제한된 동작을 강조해서 ‘보는 나’의 공간감각을 완전히 왜곡시킨다는 사실이다. 로메르의 생각으로 스타디움에서 본 것과 텔레비전으로 본 것은 ‘시각적 감각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것이다. 카메라는 단지 시청자를 경기장의 맨 앞좌석에 앉히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경기 중에 심판을 제외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경기를 보는 내내 이 불가능한 거리를 ‘양해하고’ 본다. 로메르는 스타디움에서 본 경기가 리얼리즘의 시각적 체험이라면 텔레비전으로 본 것은 무성영화를 쳐다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무성영화와 마찬가지로 텔레비전의 스포츠 중계의 핵심은 액션의 분석과 설명에 있다. 그때 마치 곁에 따라가 있는 것과 같은 스포츠 중계가 신기하게도 선수들의 목소리, 숨결, 몸이 부딪치는 소리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하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중계의 동시성은 절반의 리얼리즘이다. 목소리없는 선수들의 육신만의 가시적 리듬의 세계. 마치 버스터 키튼의 경이적인 액션과도 같은 우주. 말하자면 축구 ‘중계’를 본다는 것은 분석의 미장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먼저 중계의 프레임. 우리는 텔레비전 모니터 화면의 프레임이 온통 정보로 넘쳐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왼쪽 위에 자리잡은 양쪽 팀. 그 바로 아래 자리잡은 현재 승부의 결과, 그런 다음 왼쪽 아래에는 수시로 화면에 보이는 선수의 이름과 다양한 통계자료가 제시된다. 그리고 정해진 경기 진행시간을 번갈아 제공한다. 이 시간은 종료시간 10분 전이 되면 경기 종료까지 제공된다. 우리는 경기를 보면서 시계를 따로 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정보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기에만 몰두하는 것을 방해한다. 아니, 차라리 승부로부터 경기 그 자체의 내용으로 관심을 돌릴까봐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미 위에 지적한 것처럼) 경기 종료 10분 전과 경기 시작 10분 뒤는 경기 자체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걸 보는 사람에게 더더구나 그 경기가 마침 응원하는 경기라면 그때부터 경기는 보이지 않고 오직 시간과 승부만이 보일 수밖에 없다. 한국과 토고전에서 공을 돌리고 있는 한국팀의 경기 진행은 얼마나 지루한가. 그런데 그게 한국전이며, 방심하는 순간 순식간에 ‘골을 먹을 수 있을’ 때, 이 시간은 왜 이다지도 더디게 가는가. 이때 이 정보의 프레임은 (예를 들면 <스타워즈>에서) 이제 행성까지 9분 남았습니다, 라고 한 다음 제국의 군대가 행성을 사정거리에 넣기 전에 그 거대한 다크 스타를 격침시켜야 하는 제다이 기사들의 맹렬한 공격을 보는 물리적 시간 9분과 심리적 시간 9분 사이의 일치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카메라의 고정된 시점 확보가 움직임보다 중요 그런 다음 가시성의 원칙. 축구의 중계는 절대적으로 상상선(imaginary line)의 세계 안에서만 진행된다. 그러므로 24대의 카메라는 경기장 양쪽의 골대를 중심으로 180도 선을 긋고 그런 다음 나머지 절반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건 중계의 절대의 규칙이다. 만일 이 규칙을 포기하게 되면 중계를 보는 우리는 종종 이 선수가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자기편 골문을 향하여 자살골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중계방송에 적용한 것은 영국 다. 가 중계방송을 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중심의 상상선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그 상상선을 기준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철거하는 것으로 사전준비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여기서 10대의 카메라는 자기의 자리에 고정되고 움직이는 것은 11번째 카메라부터이다. 이 말뜻은 고정적 시점의 스케일이 확보되는 것이 카메라의 움직임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율동에 넘치는 카메라의 움직임도 공을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이것은 이후 모든 방송국 중계의 원리가 되었다. 이러한 고전적인 중계방식을 버리기 위한 모든 방송국들의 가장 큰 꿈은 중계방송을 염두에 두고 스타디움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카이 캠 촬영이라는 각도를 얻어낼 것이고, 그 말뜻은 상상선을 넘어서 360도 앵글의 화면을 제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경기장이 일종의 스튜디오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되면 결정적으로 관람객 수를 줄여야 한다. 하지만 방송국들은 시청자 수는 관람객 수와 비교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FIFA는 경기장이라는 현장 안에 존재하는 고유한 관람석에서의 응원이라는 또 한명의 선수를 포기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상상선을 결정한 다음 이 24개의 카메라는 3개의 그룹으로 다시 나뉜다. 축구 중계는 마스터 숏을 기본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그룹은 마스터 숏을 보여준다. 이 마스터 숏은 경기장 안의 진행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이 앵글의 부감촬영의 자리에 배치된다. 이때 이 앵글의 기본 높이를 방송국의 원리에 따라 18m 롱숏이라고 부른다(마치 할리우드 투숏의 기본 거리를 2.35m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걸 꼭 지켜서 찍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관용어이다). 이 높이의 카메라는 같은 높이로 센터필드를 중심으로 양쪽에 45라인 상상선을 성립 가능하게 양쪽 골대를 바라보고 서게 된다. 축구는 A와 B라는 두팀이 하는 게임이며, 이 경기의 진행은 아무리 복잡해져도 결국은 A숏과 B숏의 진행이다. 그 다음 두 번째 마스터 숏을 6m 하이 앵글 롱숏이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남은 두개의 그룹은 줌렌즈로 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풀숏의 앵글을 중심으로 양쪽에 자리잡는다. 공을 따라갈 것인가, 인물을 따라갈 것인가 여기서 줌렌즈로 경기장 안에 들어온 카메라의 앵글은 마스터 숏과 다른 문제와 마주친다. 상상선을 놓고 공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앵글은 그 공이 선수의 발에 도착하는 순간 다섯 가지 벡터를 놓고 질문한다. 그때 선수는 어디에 있는가, 그의 포지셔닝은 무엇인가, 상대방의 선수는 그의 진로를 어떻게 막고 있는가, 상대 골문은 어느 방향에 있는가, 다음에 이어지는 패스 코스는 어느 쪽이 최선의 방향인가? 사건-숏의 잠재적 능력에 대한 상상력의 역할과 실현의 조건. 이때 스튜디오에 있는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패스 코스이다. 그는 그 순간 선수의 전술을 읽어야 한다. 만일 이걸 읽지 못하면 그의 프레임은 공을 놓칠 수밖에 없다. 지단은 자기에게 몰려든 선수들 앞에서 천재적인 판단을 내리고 저 멀리 골문 오른쪽 뒤에 텅 빈 채 서 있는 앙리를 향하여 높이 찬다(프랑스-브라질전). 이때 이 장면이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마치 지단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풀숏으로 진행되던 앵글이 지단이 흘낏 보는 바스트 숏을 잡고 바로 멀리 떨어진 롱숏으로 물러난 다음 뒤이어 앙리를 그 뒤에서 골인을 예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포착한 앵글을 선택하는 그 편집의 동시적인 결정이다. 모든 숏은 결국 벡터의 문제라고 한 사람은 에이젠슈테인이다. 그는 숏 안에 이미 다음 방향의 벡터가 결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때 무엇을 따라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사건을 따라갈 것인가, 인물을 따라갈 것인가, 주제를 따라갈 것인가? (다섯 가지의 변증법적 몽타주의 카테고리). 축구는 이렇게 묻는다. 공을 따라갈 것인가, 선수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승부를 따라갈 것인가? 그런 다음 디테일의 장면들. 축구의 모든 플레이는 룰을 중심으로 개념화되어 있다. 그리고 각 개념의 플레이는 각기 다른 중계의 수사학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코너킥에는 이런 문제가 있다. 코너킥을 찰 때 카메라는 18m 높이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면서 공이 만들어내는 선을 보여주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코너킥을 찰 때 선수의 뒤편에 서서 선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옳을까. 물론 이것은 양자 선택이다. 이때 (영국의) 는 선수를 선택하고 (프랑스의) <카날 플러스>는 공을 선택한다(고 한다). <카날 플러스>는 그때 핵심이 공의 진행 방향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롱숏은 단지 공의 진행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움직임, 골키퍼의 반응. 이 화면은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제시한다. 하지만 는 그때 시청자를 선수들과 경기 안에 밀어넣은 다음 공의 방향을 분석하는 것은 그 장면을 다시 반복할 때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전체적 화면으로서의 프레임과 동시적 앵글로서의 프레임. 롱숏과 미디엄 숏은 중계에서 중요한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때 이 선택은 남의 경기를 볼 때와 자국의 경기를 볼 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샤를 테송은 이 문제를 좀더 개념적으로 요약한다. 축구 중계에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스페인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 원칙이다. 스페인 원칙은 기술과 신체, 미학적인 면에서 축구를 집단 안에서 활동하는 개인의 복원에 가치를 두고 그 안에서 볼 플레이의 전체적인 발전을 중계의 토픽으로 다루는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 원칙은 선수 개인보다도 플레이에 우선권을 부여한 다음 전술적 도식에 따라 선수와 상대방 선수가 서로 접촉하는 방식에 중계의 초점을 두고 공을 따라간다. 나는 여기에 한국 원칙을 더하고 싶다. 원칙은 간단명료하다. 누가 이기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진행은 골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진행된다. (내 생각에) 애절하지만 그래도 질문하고 싶다. 그런데 왜 축구를 야구와 똑같은 방식으로 보고 계십니까? 한국 원칙의 특징은 종목의 차이를 동일한 원리에 의해서 본다는 것이다. 줌렌즈와 HD 카메라가 만들어낸 스펙타클한 영상 그 안에서만 진행되는 중계는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나는 중계라는 것은 그 종목의 룰과 함께 영화의 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그 종목과 영화 사이의 유사성이 생겨난다. 결국 축구 중계란 한쪽 팀의 숏과 반대쪽 팀의 상대 숏 사이의 고전적인 영화에서의 대화의 진행이다. 에릭 로메르가 농구를 지켜본 다음 이건 하워드 혹스의 영화다, 라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다소 무리하게 말하자면 축구를 좋아한다는 말은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말과 같다. 혹은 심판이 경기장 안에서 갖고 있는 판정의 룰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생각한다면 주인공과 상대방, 그리고 그것을 판단내리는 (근대적) 법 사이의 삼항관계로 이루어진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이다. 물론 영화와 달리 축구에서 해피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혹은 스포츠의 해피엔딩이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편에서 요구한다. 두 번째. 그렇다면 축구 중계에서 금지의 숏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내가 축구 중계에 관한 인터뷰를 읽다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FIFA 위원회의 권고사항으로 중계에서 트래블링 숏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경기장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 장치들로부터 경기 도중에 발생할 수도 있는 선수들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공을 쫓아가던 선수가 종종 달려가던 자신의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선 바깥으로 나아가 공과 함께 벽에 부딪히는 수많은 장면들. 트래블링을 금지당한 축구 중계는 연속성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를테면 100m 달리기를 단 한번의 롱테이크로 처음부터 끝까지 잡아내는 수평 트래블링의 장면이 확보한 시간적 연속성과 비교해보라. 여기서 그 포기가 요구하는 것은 공과 선수의 분리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선택이다. 그때 당연히도 중계는 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축구가 할리우드영화처럼 스타 시스템에 의지하고 있지만(축구 경기안내 기사들은 영화 소개와 비슷하다. 이번 경기의 주목할 만한 스타들의 소개, 스타들의 특징, 예상되는 드라마 등등. 차이라면 영화는 시사회가 있지만 축구는 관객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라는 시스템을 운동하게 만드는 것은 공이기 때문이다. 공이 멈출 때 축구도 멈춘다. 공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축구도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축구는 선수가 아니라 공을 따라가는 중계이다. 말하자면 선수의 룰이라기보다는 공의 룰이라는 편이 옳다. 이것이 다른 종목의 경기들과 축구 중계의 결정적 차이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100m 달리기나 수영,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선수보다 더 빠른 카메라를 볼 수 있다. 이 탁월한 테크놀로지의 힘은 경기 자체보다는 선수(의 경이적인 플레이)에 주목하게 만든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그런 숏이 없다. 달리기나 수영, 스케이팅이 시적으로 보이지만 축구가 드라마로 보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때 축구 중계에서 카메라는 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공을 쫓아갈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한쪽 방향에서 서로 다른 각도로 서 있는 카메라의 앵글로 추적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선수들은 미리 예정된 콘티에 따라 달리는 것이 아니며, 공은 중력 법칙과 물리적 인과관계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볼 트래핑을 따라가야 하는 카메라의 앵글과 편집의 앙상블. 구경하는 쪽의 어떤 특수효과, 어떤 의도도 개입할 수 없는 액추얼한 세계. 이때 경기장의 시선을 포획하는 카메라의 영역이 서로 겹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축구 중계의 혁명은 줌렌즈의 위력에 있다. 이것이 HD카메라와 결합하면서 확보하게 된 시야의 딥포커스 공간은 가히 경기장이라는 공간 자체의 스펙터클이라고 할 만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월드컵의 미장센 [3]

축구 중계에서 1분이 넘는 컷은 없다 그러나 테크놀로지가 모든 문제의 해결을 찾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여기서 남아 있는 축구 중계 카메라의 난처함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종목이 야구나 농구와 달리 넓은 공간에서 개인플레이와 세트플레이가 서로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혹은 팀마다 그 성격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브라질과 독일의 차이 혹은 양쪽을 겸비한 프랑스. 그때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팀이 서로 대결하는 경우 경기에서 설정해야 하는 기본 앵글의 범위라는 문제이다. 두 번째는 경기장의 종횡비(縱橫比)의 난처함이다. 라이트윙과 레프트윙을 어떻게 동시에 한 프레임에 담아서 횡의 진행을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혹은 갑작스러운 기습으로 인해 공이 갑자기 상대방의 골문 가까이 떨어졌을 때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종의 구도를 어떻게 따라갈 것인가. 축구 중계는 이 문제를 반대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축구 중계에서 1분이 넘는 컷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뜻은 처음부터 축구 중계는 리얼리티의 연속성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그 대신 같은 순간을 다른 방법으로 두번 보여준다. 중계는 끊임없이 진행되면서 재빨리 플래시백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 플래시백은 과거시제가 아니라 현재진행 중이다. 그런데 한번은 그냥 보여준다. 그런 다음 뒤이어 분석의 숏이 진행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보는 것이 이미 본 것이라는 것을 사실을 잠깐 잊는다. 그때 사라지는 것은 그 순간의 뒤를 잇는 데드 타임이다. 여기서 미학적으로 슬로모션이라는 문제와 어쩔 수 없이 만난다. 말하자면 슬로모션의 ‘개입’이라는 질문이 있다. 슬로모션은 선수의 멋진 플레이만 보기 위해서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슬로모션은 그 순간의 경기 내용에 대한 분석적 미장센이다. 스포츠 중계의 슬로모션은 영화와 다른 라이브 슬로모션(Live Slow Motion, 약칭 LSM)이다. 이때 이 슬로모션은 디지털 방식의 중계 이후 1초에 75프레임으로 진행되는 표준속도로 결정되었다. 중계에서 슬로모션은 항상 같은 장면의 반복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동시적으로 진행하는 슬로모션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로모션은 주심이 휘슬을 분 다음 재빨리 지나친 순간, 과거의 시간, 일종의 플래시백으로 되돌아가서 그 장면의 순간을 다시 보는 것이다. 물론 멋진 플레이 혹은 골인이라는 환희의 순간이 재현된다. 그러나 반칙의 순간도 여기 포함되어 있다. 그때 여기에 판정이라는 문제가 심술궂게 등장한다. 모두가 다시 그 장면을 슬로모션에 의해서 다시 보는데 오직 경기장 안의 심판과 선수들만 보지 못한다. 슬로모션은 같은 동작을 서로 상이한 각도에서 3배로 확장된 속도로 때로 할리우드 액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올해 ‘호나우뚱’이 프랑스전에서 보여준 것은 멋진 플레이라기보다는 대부분 산전수전의 경기를 치른 끝에 프로들만이 할 수 있는 할리우드 액션이었다(뭐 그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다). 그때 슬로모션은 경기를 보고 있는 모두에게 판정의 분석적 자료를 제공한다. 만일 여기서 주심이 오심을 내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게다가 그 결정이 매우 결정적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프랑스 감독인 레몽 도메네크는 한국과 경기를 치른 다음 골문 안까지 들어갔지만 인정받지 못한 골에 대해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것도 경기의 일부이다.” 슬로모션은 정확한 객관성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 기계적 디테일은 축구가 인간이라는 실수투성이의 존재들이 운영하는 게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그때 축구의 규정은 기계 대신 인간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억울해도 재경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기계의 객관성으로 규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카메라의 정확성이 순간의 장면을 붙잡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이야기. 중계 카메라는 연속성을 포기한 대가로 그것을 얻은 것이다. 경기의 흐름 안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객관적 자리는 오직 경기장 안에서 선수들과 함께 뛰고 있는 심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판단은 흐름 안에서 내려야 한다. 축구는 기록이 아니라 시간의 게임이다. 제랄 에쥬네스는 현명한 충고를 한다. “축구는 현실의 스피드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지 슬로모션의 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보이스 오프 해설이 의미하는 것? 사실 중계로 축구를 볼 때 경기의 진행 상태는 끊임없는 불연속 상태이다. 그런데도 보는 사람은 거기서 연속성의 착시효과에 떨어진다. 그러한 착시효과를 만드는 것은 이미지에 덧붙여진 보이스 오프 해설이다. 무성영화와도 같은 축구 중계에서 해설자의 개입은 단지 장면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해설자의 말투, 음성, 지금 벌이지고 있는 경기의 상황, 그 경기가 나와 맺고 있는 관계(말하자면 나의 국적 혹은 내가 응원하는 팀, 내가 응원하는 팀을 격파시킨 팀, 스위스의 16강전, 경기와 상관없이 그 나라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이를테면 일본 혹은 히딩크가 감독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갖는 알 수 없는 친근감 등등)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때 이 해설은 분석적 화면의 잉여일 뿐만 아니라 종종 모순되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독일월드컵에서 마주한 가장 끔찍한 사태는 오프사이드의 여부와 상관없이 SBS가 해설위원 신문선을 ‘강제 송환했을 때’ 벌어졌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해설자가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의 코러스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신문선은 거절의 제스처를 선택했다(나는 그의 오프사이드에 대한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가름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여기서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벌어진 사태는 축구의 이름으로 진행되지 않고 “그는 애국자인가”라는 질문으로 갑자기 탈바꿈하였다. 그런데 월드컵과 애국이 서로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여기에 둘 사이를 관계 맺는 매개항은 무엇일까? 이 관계는 (내 생각에) 황우석 사태의 정확한 반복이다. 여기서 해설에 대한 저항은 정확하게 그 무언가의 환상으로서의 경기로부터 축구로서의 경기에로의 분리를 견디는 대신 차라리 집단적인 형태로서의 (축구로부터의) 소외를 택하겠다는 행위이다. 그때 이 해설은 대중적 환상의 장식에 머물러야 한다. 그 순간 그들이 바라는 코러스는 (차두리의) “말도 안 돼, 이건 사기입니다”라는 외침이다. 그런데 주심이 매수되어 의도적으로 오심을 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도 그 판단을 사기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신문선의 올바른 잘못은 환상의 그 무엇으로부터 스포츠로서의 축구에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그때 대중은 이 판단의 객관성을 질문하는 대신 왜 당신은 한국 편을 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반문은 고스란히 다시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그 유명한 질문. 당신이 그것을 물어보면서 사실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Che Vuoi?) 약간의 각색. 당신이 신문선에게 왜 한국 편을 들지 않습니까, 라고 물어보면서 사실 정말 물어보려는 것은 당신이 월드컵의 그 어디에도 한국 편의 승리를 약속하는 그 어떤 드라마의 가능성도 없는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의 객관적 부정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런데 이 질문이 대답의 끝이 아니다. 만일 이것이 단지 대중의 잘못이 아니라 대중으로 하여금 그러한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성영화와 같은 중계와 객관적 용어로 이루어진 주관적-편향적-‘애국적’ 해설의 협주곡들로 이루어진 결과의 산물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축구는 기술의 대결이며, 선수들의 노력의 결과이며, 감독의 전략으로 이루어진 진행이다. 말하자면 축구 자체는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스포츠이다. 여기에는 어떤 주관적 감정의 개입도 있을 수 없다. 물론이다. 하지만 중계에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기 흐름과 상관없는 인서트, 중계의 미학이자 사기 생각해볼 만한 장면.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전은 ‘그녀들의 리그’에게 매우 슬픈 날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의 리그’의 부동의 1위의 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후반 9분 만에 부상으로 퇴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기는 내게 흥미있는 두개의 신을 제공했다, 하나는 루니가 후반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포르투갈 선수를 쓰러뜨린 다음 지나가는 척하면서 낭심부를 발로 밟고 지나갔을 때다. 물론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루니에게 운이 없게도 주심은 바로 그 순간 눈앞에 있었고, 무려 40m나 떨어져 있었다는 호나우두가 달려왔다(알고 있는 것처럼 루니와 호나우두는 같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소속이다. 그러나…). 호나우두는 항의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루니가 끼어들었다. 루니가 자기는 의도적으로 밟은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자 원래 그렇게까지 할 의도가 없었던 주심은 레드카드를 꺼냈고, 루니는 퇴장당했다. 그러자 호나우두는 고소하다는 듯이 살짝 윙크하면서 지나갔다. 같은 맨체스터 소속인데도 원래 두 사람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면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은 ‘소설’이다. 그건 그들이 무슨 말을 서로 했는지 마치 들린 것처럼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기사를 찾아보니 스포츠 전문기자들도 그렇게 썼다. 하지만 그들은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그 담론을 성립시킨 과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대 테크놀로지의 붐마이크는 충분히 그들의 대화를 사운드 줌인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계에서 일종의 금기의 선이다. 그때 이 설명을 성립시킨 것은 그들 사이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그걸 무슨 재주로 알 수 있나?) 그걸 보여주는 중계의 방식이다. 루니가 상대를 밟고 지나갔을 때 카메라는 그냥 멀리서 바라보았다(익스트림 롱숏). 그런 다음 카메라는 루니를 인서트처럼 바스트 숏으로 보여준다. 호나우두가 달려오고 심판에게 ‘무언가’ 이야기한다. 루니가 다시 끼어든다. 다음 숏은 뒤로 물러나서 풀숏으로 항의하는 선수들과 심판을 보여준다. 그때 심판이 레드카드를 꺼내든다. 그러자 재치있게 카메라는 한숨 쉬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루니를 잡는다. 그런 다음 즉각적으로 뒤이어 루니가 반칙하는 장면, 그러니까 루니가 상대를 밟고 지나가는 장면이 아까와는 다른 각도에서 가까이 줌인으로 다가가 풀숏 사이즈로 정확하게 포르투갈 선수의 엎어진 몸과 루니의 발을 화면의 중심에 놓고 슬로모션으로 ‘다시’ 보여준다. 이 장면은 카메라 스튜디오에서 이미 루니가 밟고 지나간 것을 보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스튜디오는 주심이 레드카드를 꺼낼 때까지 기다린다(‘중계의 심판 판정 존중주의’라고 부르는 원칙. 이를테면 마찬가지로 스위스전에서 당연히 카메라는 부심이 언제 오프사이드 기를 들었는지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주심이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판정하자 중계 스튜디오는 부심의 장면을 화면 자료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뒤이어 호나우두가 윙크하는 인서트를 넣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윙크인지 아니면 땀을 흘려서 눈을 깜빡인 것인지는 모호하다. 그러나 이 장면은 하이 앵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호나우두를 45도로 왼쪽의 자리에 앉아 있는 루니를 보여준 다음 붙여놓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상대 숏의 기능을 하면서 마치 그에게 ‘어떤’ 사인을 보내는 것처럼 되어 있다. 사실상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보는 대신 많은 기사들이 중계를 본 다음 쓰여질 때 자신이 본 것이 중계라는 사실을 생략한다. 그때 경기의 결정적 장면들의 설명은 드라마를 중계하는 것처럼 쓴다. 그러나 스포츠는 드라마가 아니다. 혹은 드라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스포츠를 다른 그 어떤 가치의 세계 안으로 처넣는 것이 된다. 중계는 인서트라는 효과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경기의 흐름과 상관없는 인서트는 중계의 미학이자 사기이다. 사실 어떤 영화에서도 중계가 만들어내는 흐름 안에서의 인서트와 같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경기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경기의 흐름 중에 문득 초조한 얼굴로 경기장을 바라보는 각 팀의 감독들의 표정의 클로즈업을 삽입한다. 이때 이 삽입을 통해서 마치 선수들과 감독들 사이에 텔레파시가 일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혹은 중계 카메라는 경기장에 와 있는 선수들의 아내의 얼굴을 놓치지 않는다. 대부분 이런 삽입은 그녀의 남편이 소속된 팀의 패배가 거의 확정되었을 때 등장한다. 그때 중계는 일종의 신파 드라마가 된다. 이것이 세르주 다네가 중계의 윤리학에서 경기의 연속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말의 핵심이다. 두 번째는 이 경기의 마무리가 연장전까지 진행된 다음에 잔인하게도 페널티킥으로 승부가 가려질 때의 장면이다. 이 페널티킥 장면은 거의 완전한 하나의 공식처럼 편집이 진행되었다. 먼저 골키퍼와 선수를 6m 롱숏의 마스터 사이즈로 보여준다. 프레임 구도는 예외없이 매번 동일한 자리에서 하이 앵글로 잡았다. 말하자면 매번의 슈팅은 매번의 반복의 구도였다. 여기서 내게 신기한 것은 아홉번의 슈팅에서 단 한번도 이 순간을 골키퍼와 선수 사이의 숏과 상대 숏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로 읽힌다. 하나는 연속성-동시성-전체성의 보존이다. 어쩌면 이 장면이야말로 앙드레 바쟁이 말한 금지된 편집의 숏의 현대적인 예일 것이다. 이 장면을 편집하는 순간 골키퍼와 선수 사이의 일대일의 대결이라는 페널티킥의 리얼리티가 손상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다른 하나는 그 사이에서 누구에게도 우선권을 주지 않는다는 편집의 결정이다. 여기에는 중계의 중립성이라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이것은 레니 리펜슈탈이 준 역사적 교훈의 산물이다.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증언들. 24개의 화면을 놓고 개입하는 편집자의 주관적 판단. 여기서 유럽 축구 중계의 테크니컬 디렉터인 장 클로드 주오도는 좀 극단적으로 단언한다. “지금 경기장 안에서 느껴지고 있는 관중의 반응이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혹은 경기 내용의 흐름과도 상관없습니다. 핵심은 그걸 보고 있는 시청자의 심리의 리듬을 따라가는 거지요. 그걸 어떻게 판단하냐구요? 모든 중계는 주관적입니다. 중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경기의 해설자, 심판, 그리고 결과에 가려서 중계의 주관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프랑수아 샤를 비도는 중계 편집을 하는 사람들은 경기가 지닌 성격을 파악해서 작위적으로 경기의 선악을 나눈 다음(착한 편, 나쁜 편 혹은 우리 편, 상대편) 편집을 진행할 때 훨씬 리듬감을 얻는다고 덧붙인다. 정보를 중심으로 중계를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스펙터클을 중심으로 진행할 것이냐에 따라 중계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보를 중심으로 할 때 화면은 대부분 경기의 전체적인 운영을 보여주기 위해 마스터 숏으로 진행되는 미장센의 화면이 될 것이며, 만일 스펙터클이 중심이 될 때에는 공을 놓고 벌이는 선수들 사이의 플레이를 따라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줌렌즈와 편집의 리듬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물론 어느 쪽의 극단을 따르는 중계란 없다. 그러나 여기서 역시 주관적 취향이 문제가 된다. 물론 이것은 객관성을 전제로 한 주관성이다. 말 그대로 객관적 주관성이라는 모순된 용어. 룰은 중계의 문법을 결정한다 그에 따른 소박한 제안. 중계에서 리듬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본 사람들은 축구가 중계처럼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그때 이 리듬은 장면을 보는 숏의 사이즈 차이와 연속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중계의 시간은 불연속의 편집으로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경기 시간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렇지만 중계는 그 시간 동안 장면의 반복과 슬로모션을 통한 시간의 확장 혹은 연장을 통해서 거기에 무언가 사라진 시간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의 경험은 정말 없어도 괜찮은 것일까? 세르주 다네는 이것을 중계의 사기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스타디움에서 경험하는 것과 그것을 중계를 통해서 보는 것은 단지 사람들이 모여서 보는가, 혹은 안방에서 보는가의 차이가 아니다. 더더구나 일시적으로 전국에서 600만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거리 응원이 스타디움이 아니라 전광판 앞에 중계되고 있는 ‘개입된’ 화면을 보고 있는 것일 때 나는 이 차이의 정치학, 혹은 중계의 시네마를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야구에 대해서 쓴다면 축구와는 전혀 다른 글을 써야 할 것이다. 혹은 권투나 K1을 쓴다면 말할 것도 없다. 골프는 또 다른 문제이다. 말하자면 스포츠 중계에서 종목의 차이는 영화에서 장르의 차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룰은 중계의 문법을 결정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런 반문이 가능해진다. 한국 축구에 관한 조언을 하면서 히딩크, 아드보카트, 차범근은 이구동성으로 K리그의 활성화를 하소연한다. 그런데 아무도 (이를테면)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국에 축구 중계만을 전문으로 종사하는 150여명의 카메라맨, 50여명의 녹음기사, 이것을 연출하는 10여명의 스튜디오 감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K리그가 재미없는 것은 단지 선수들의 기량 부족과 감독의 전술상의 무료함 때문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어쩌면 호나우지뉴, 베컴, 지단이 한꺼번에 국내 경기장에서 뛴다 할지라도 그들이 서커스를 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는 90분 내내 흥미진진한 플레이를 보여줄 리가 없다. 이를테면 그렇게 지루하게 한국과의 경기를 진행한 ‘아트 사커’ 프랑스의 부진을 생각해보라. 그런데 그들은 브라질에서 마치 다른 팀 같았다. 그때 이 경기의 진행을 보여주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 아무런 고민도 없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물론 경기의 내용이 압도적인 이유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중계의 스타일, 말 그대로 축구의 미장센이라는 측면을 완전히 부정할 수 있을까? 결국 월드컵에서 응원하는 당신은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 가장 이상적인 축구 중계의 방식은 무엇일까?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세르주 다네라면 축구 중계를 위해서 한명의 카메라맨이 축구 경기장 안에 들어가 처음부터 마지막 휘슬을 불 때까지 단 하나의 숏으로 찍어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광고라는 점만 잊는다면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미학적인 축구 중계는 나이키 광고이다. 그러나 그것이 윤리적이냐는 질문은 또 다른 문제이다. 반면 지금 한국에서 만들어진 축구 광고들이 예외없이 레니 리펜슈탈의 (독일 제3제국시대의 열렬한 민족주의적 열광의 흥분을 연상케 하면서 상상적 공동체의 환상에 기댄) 스펙터클을 재현하는 것은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처음에 한 말의 반복.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축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외신기자클럽] 아름다움의 감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세계의 대도시들에서, 2006년 월드컵을 보기 위해 대형 화면 앞에 모여든 군중이 또다시 늘어났을 것이다.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폰 같은 사적인 영상이 대세를 이룬 요즈음, 이런 대형 화면은 집단적 감정에 대한 필요를 보여준다. 한국영화는 종종 동시대의 이런 증후를 반영해준다. 그래서 우디네영화제에서 선보인 몇몇 작품들과 올 여름 파리 시네마 축제의 한국영화 회고전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들 중에서 뛰어난 작품 중 한편은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모든 점에서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과 비교할 만하다. 그것이 <광식이 동생 광태> 같은 10대 코미디물이건, <연애>와 같은 멜로건, <여고괴담4: 목소리> 같은 판타지건, 또는 <6월의 일기> 같은 스릴러건, 현재의 한국영화는 차가운 타일 위에 깨진 유리 조각 같은 분리된 존재로 가득 찬 천체를 묘사한다. 편모나 편부라든가, 전반적인 침묵 속에서 따돌림당하는 고교생, 수줍음이 많아 아직까지도 미혼인 30대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전형들이 선보였다. <여고괴담4: 목소리>의 귀신은 이 현대적 주인공들의 상황을 요약해준다. 다시 말해 무관심 속에서 해져 닳는 먼 곳의 목소리인 것이다. 친구가 자기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학교 방송의 전파를 통해서이다. <연애>에서 섹스는 가격이 매겨져서만 존재할 뿐이고, 부드러운 애정의 감정은 단지 전문화된 유료 전화 서비스의 얼굴없는 목소리만을 위해 남는다. 몇몇 작품은 명확한 사실을 넘어서서 초현대적 고독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영화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패거리 중 재미난 녀석이 여자를 꼬실 때, 비디오 목록 책자를 가죽으로 제본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길>의 줄리에타 마시나 얼굴을 감상할 줄 알게 될 때 정말로 그를 사랑하게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형사와 정신과 의사는 서로 다투지 않고는 한마디도 못 나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그 유명한 오르가슴 장면을 흉내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이윽고 그들이 나누게 되는 첫 키스는 거실 텔레비전 화면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의 키스와 상칭을 이룬다. 극장 사장과 가판대 여주인의 경우, 전 경험이 서로를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영화를 연출하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은 그 순간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의 역을 맡게 된다. 이런 운명적 만남을 가로질러 민규동 감독은 영화가 얼마만큼 공통적인 자산이며 나이, 돈, 교육 혹은 단순히 삶 자체의 차이로 인해 갈린 관객이 하나의 감정 주위로 모일 수 있는 장소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각자가 개인의 작은 화면에 빠져들어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극장에서 하나의 문화를 나누고, 모두를 위한 단 하나의 커다란 화면을 나누는 것이다. 게다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아마르코드>에서 우디 앨런 감독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까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민규동 감독도 포함해서 그토록 많은 영화인들이 어두운 영화관에서 여배우들의 얼굴을 촬영했던 것은 바로 그런 데서 ‘아름다움의 감염’이라는 낯선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마주하고서 겪는 이런 감동적 순간을 경험한 관객의 얼굴은 오팔 빛 서광으로 빛나는 것 같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역시 이 신기한 현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즉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마지막 장면에서 빗물이 방울져 흐르는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어떤 마술에 의해 내 곁의 여자 관객에게 옮겨가 미소짓게 하고 조용히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하는지를….

[캐스팅 소식] 김하늘·강지환, KTX에 오르다 外

김하늘, 강지환/ 김하늘이 ‘금순이’의 귀공자 강지환과 함께 KTX에 오른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그날의 분위기>(제작 영화사아침·씨네월드, 감독 채리라)에 캐스팅된 것. 영화는 KTX 옆자리 승객으로 만난 두 사람이 부산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김하늘과 강지환은 각각 예민한 성격의 출판 칼럼니스트 희주와 능청스러운 작업남 현보로 분해 알콩달콩 사랑싸움을 펼칠 예정이다. 김혜수, 윤진서/ 김혜수와 윤진서가 위기의 주부들이 된다. <행복한 장의사>를 연출했던 장문일 감독의 신작 <바람 피기 좋은 날>에 캐스팅된 것. 이번 작품으로 처음 호흡을 맞추게 된 두 사람은 각각 솔직하고 섹시한 주부 이슬(김혜수)과 순수하면서 당돌한 주부 작은새(윤진서)로 변신해 사랑과 바람의 경계에 선 대한민국 주부의 모습을 그려낼 예정이다. 박용우/ 여자에게 휘둘리는 노총각(<달콤, 살벌한 연인> <호로비츠를 위하여>) 박용우가 조의석 감독(<일단 뛰어>)의 두 번째 영화 <조용한 세상>에 캐스팅됐다. <조용한 세상>은 독심술을 할 줄 아는 사진작가(김상경)와 그와 함께 사는 비밀스러운 소녀 사이의 교류를 다룬 스릴러물. 박용우는 소녀연쇄실종사건을 수사하던 중 그 두 사람을 수상하게 여기며 추적하는 형사 역을 맡았다. 기존의 이미지에 걸맞게 박용우는 터프한 형사가 아니라, 코믹한 일들을 만드는 엉뚱한 형사를 연기한다고. 린제이 로한, 펠리시티 허프먼, 제인 폰다/ 린제이 로한이 다시 한번 반항적인 10대 소녀로 변신한다. 게리 마셜 감독(<귀여운 여인>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신작 <조지아 룰>에 캐스팅된 것. 영화는 딸과의 다툼에 지친 어머니가 그녀를 할머니에게 보내면서 숨겨졌던 가족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극중 어머니 역에는 <위기의 주부들>의 ‘르넷’ 펠리시티 허프먼이, 할머니 역에는 제인 폰다가 낙점됐다. 새뮤얼 잭슨/ 새뮤얼 잭슨이 더그 라이먼 감독(<본 아이덴티티>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차기작인 <점퍼>에 합류했다. 스티븐 굴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점퍼>는 자신에게 텔레포트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년(톰 스터리지)의 행적을 그린 SF스릴러. 이 소년은 어머니를 죽인 남자를 추적하는 중 미 국가안전보장국(NSA)과 또 다른 텔레포터(제이미 벨)의 관심을 끌게 된다. 새뮤얼 잭슨은 NSA요원으로 나와 텔레포터들을 쫓는다. 할리 베리, 데이비드 듀코브니, 베니치오 델 토로/ 캣 우먼, 멀더, 비리 형사가 삼각관계에 빠졌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배우 할리 베리, 데이비드 듀코브니, 베니치오 델 토로를 한데 모은 것은 <우리가 불 속에서 잃은 것들>. 남편을 잃은 여자로 등장하는 할리 베리는 곤란한 지경에 처한 남편의 친구를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이후 그는 그녀가 슬픔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버팀목이 된다. 듀코브니가 죽은 남편, 델 토로가 그의 친구로 등장하는데, 듀코브니는 회상신에서만 등장한다.

<녹차의 맛> <란포지옥> 상영차 방한한 아사노 다다노부

<녹차의 맛>과 <란포지옥>의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 상영을 맞아 두 영화의 주연배우 아사노 다다노부가 7월6일 내한했다. 1990년 영화 <물장구치는 금붕어>로 데뷔해 2006년 현재까지 총 44편의 장편영화에 출연한 그는 <환상의 빛>과 <디스턴스> 등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피크닉>의 이와이 순지, <헬프리스>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등의 아오야마 신지, <꿈의 미로>와 <고조> 등의 이시이 소고, <쌍생아>와 <바이탈>의 쓰카모토 신야, <고하토>의 오시마 나기사, <바람꽃>의 소마이 신지, <밝은 미래>의 구로사와 기요시, <이치 더 킬러>의 미이케 다카시, <자토이치>와 <다케시들>의 기타노 다케시 등 거의 모든 일본의 유명 감독들과 작품을 함께한 배우다. 2003년엔 대만의 거장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카페 뤼미에르>와 타이의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 출연했으며, 2005년엔 강혜정과 함께 <보이지 않는 물결>로 펜엑 감독과 재회했다. 일본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아사노 다다노부. 1999년에 6편, 2003년부터 2005년까진 매해 5편의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영화제 상영작 중 유독 그의 출연작만이 2편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방한 일정 2틀째인 7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빡빡한 일정 탓인지 다소 피곤해 보였다. 인터뷰 도중 양말을 벗는다든지, 실내를 맨발로 돌아다니는 모습은 ‘아사노다운 인상’이었지만, 갑자기 코피가 났음에도 인터뷰를 계속한 것은 다소 새로운 모습이었다. 50분이라는 인터뷰 시간이 ‘아사노 다다노부’라는 두터운 텍스트를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지만, 그의 답변은 항상 말보다 여백이 중요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영화 속 그의 모습처럼, 서두를 ‘글쎄요…’로 시작했던 아사노 다다노부. 하지만 그도 영화 <피크닉>의 인연으로 배우자의 연을 맺게 된 차라에 대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이 인터뷰는 6일의 기자회견과 7일의 인터뷰 내용으로 구성됐다. -<녹차의 맛>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를 함께했던 이시이 가쓰히토 감독의 작품이라 결정했다. 이시이 감독을 무척 좋아한다. 여러 가지로 재밌고, 이상한 감독이랄까. (웃음) 각본을 읽어보니 역시나 이상하고 재미있더라. -<녹차의 맛>에는 엉뚱하고 특이한 가족이 등장한다.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다. =이시이 감독의 작품치고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다. 그의 전작들을 보라. 특별히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단지 이 사람이 이번엔 또 이렇게 엉뚱하고 재미난 걸 생각해냈구나 하는 정도? -그래도 당신의 캐릭터나 가족들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갖고 시작했을 것 같다. =가족간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간단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사람의 가족간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일상이고, 누구나 아는 얘기들이다. 하지만 <녹차의 맛>에선 이런 일상이 좀더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평범한 일들이지만 영화로 만들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녹차의 맛>은 이시이 가쓰히토 감독과 함께한 세 번째 영화다. 이시이 감독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나. =이시이 감독은 자신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현장은 항상 즐겁다.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라면 언제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시이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한 애정은 없나. =이시이 감독의 작업 스타일은 틀에 박힌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사나 상황들이 대본대로 진행된다기보다는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편안하고, 여유있게 하는 스타일이라 나와 맞는 것 같다. 또, 결과적으로 함께했던 작품들이 대중적이고 재밌어서 계속 하게 된다.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 때는 그림을 그려주거나 설정을 주고, 마음껏 하라고 했다고 들었다. <녹차의 맛> 때도 그랬나. =글쎄, <녹차의 맛>이 어땠었지? (웃음)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 때랑 똑같이 했던 것 같다. 감독은 콘티를 보고 촬영을 했지만, 나는 안 보고 했다. 콘티는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에선 <란포지옥>도 상영된다. 이 영화는 <녹차의 맛>과는 매우 다른 느낌인데. =<란포지옥>은 프로듀서가 <이치 더 킬러>와 같은 사람이다.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 제의를 받았을 때 하고 싶었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인 에도가와 란포의 삶을 네명의 감독이 연출한다고 하더라. 이전까진 없었던 컨셉 같아서 매우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안 해봤던 역이고, 관심이 갔다. -<녹차의 맛>은 <란포지옥>과 매우 다른 느낌의 영화이고, 이시이 감독의 전작인 <파티7>과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와도 다르다. 영화를 몇 가지 부류로 나누는 게 좀 어리석은 생각 같지만, 당신의 필모그래피는 센 영화와 비교적 조용하고 담담한 영화로 나뉜다는 느낌이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웃음) -<녹차의 맛>을 연기하는 당신과 <란포지옥>을 연기하는 당신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글쎄…. 일단 역할이 다르고 상황들이 다르니까, 차이점은 있다. (웃음) 그런 역할들이 나에게 다양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연기에서는 별다른 점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역을 하고, 어떤 느낌의 영화를 하느냐는 연기에 차이가 없다. -시대극인 <자토이치>나 <고하토>는 또 다른 경우이다. 좀더 장르적이고, 전형적인 캐릭터다. 사무라이영화를 무척 좋아한다고도 했는데, 이런 작품들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무라이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글쎄, 특별한 이유랄까. 일단 일본인이니까, 사무라이영화가 제작된다면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일본인이라는 점 외에 사무라이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없나. =글쎄…. 일단 이야기가 알기 쉬우니까. (웃음) 그게 제일 좋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무라이영화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이야기가 알기 쉬운 것들이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사람이 있고, 누군가가 도와주는 뻔한 이야기와 해피엔딩. (웃음) 이런 걸 좋아한다. -외할아버지가 미국인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점이 당신의 정체성에 끼치는 영향이 있나. =물론 있다. 보통 사람들은 부모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면서 ‘아, 내가 이런 점을 닮았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나. 하지만 나는 외할아버지가 어릴 때 미국에 가버렸다. 지금까지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가끔씩 나도 모르는 모습을 발견할 때, ‘이런 점은 할아버지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항상 ‘아메리카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면서 살았으니까. 그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데뷔 시절의 인터뷰를 보면 “연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코멘트가 자주 눈에 띈다. =(웃음) 지금은 별로 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가 싫어지지 않게 된 계기가 있을까. =그게 뭘까. 역시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게 아닐까. 일종의 성장이랄까.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느낀 적은 없나. =재능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있다. -다른 방식이라면. =별로 배우를 하고 싶다는 기분이 없다는 것. (웃음) 열정적으로, 배우가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좀더 넓은 시각으로 다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렇다고 물론 ‘배우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배우를 하는’ 태도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건 정말 훌륭한 거라고 생각한다. (웃음) 아마 아버지랑 함께 일을 해서 이런 태도를 갖게 된 건 아닐까. 하지만 배우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열심히 한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연예계쪽에 종사하시나. =매니지먼트쪽 일을 하신다. -‘배우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배우를 하는 건 아닌’(웃음) 당신의 태도가 연기와도 연관이 있을까. =물론 있지 않을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 연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어떤 건지 말해줄 수 있나. =데뷔하기 전에 오디션에 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가 되고 싶다, 프로덕션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17살 무렵에 그런 사람들과 함께 오디션을 봤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싫었다. 그런 사람들은 매우 재미없게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냥 평상시처럼 하면 안 되나? 왜 꼭 그런 열망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작하면 안 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어디서에서 온지도 모르는 열망을 가지고, 욕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나에게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오디션 때 그냥 일상처럼, 항상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좋다고 말했던 것 같다. 감독님들이 이런 점을 재밌어하시더라. 물론 나에게도 재미있는 부분과 재미없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것들을 스스로 판단한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무엇이 재미없는지. 이런 식의 판단이 있기 때문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데뷔 이후 다른 아이돌 스타와는 달리 TV는 거의 하지 않고 영화, 특히 인디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연기가 하기 싫다고 느꼈던 건 20살까지다. 그 이전에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한 적이 있다. 물론 버라이어티 쇼는 하지 않았다. 처음엔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랬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연예인처럼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아버지에게 상담을 하면서, ‘영화라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말이 나왔다. 더이상 텔레비전은 하지 않고, 영화를 하게 된 건 그 이후다. 연기가 싫지 않다고 느낀 것도 그 즈음이고. -20살 이전과 지금,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진 것 같나. =일단 20살 전에는 연기가 싫다고 느꼈다는 점.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계속 하고 싶고, 재밌다고 느낀다. 여러 가지 경험도 할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의 역할들이 전반적으로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인 것 같다. 특별히 그런 캐릭터에 끌리나. =그런 영화밖에 안 온다. (웃음) -왜 그런 역만 오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그런 이야기밖에 안 하고 있으니까. (웃음) 그런 영화를 보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걸 맡기면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웃음) -최근 개봉한 <보이지 않는 물결>의 경우 말과 동작이 아닌 분위기로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본인의 연기 스타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연기 스타일이라…. 뭐랄까, 일단 과장된 건 좋아하지 않는다. 과장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그냥 과장만 하는 것은 어떻게 표현할지를 모르겠다. 종종 듣는 말이 ‘카메라 앞에 서 있기만 해도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게 나의 캐릭터일지는 모르겠지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는 건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 속에서 캐릭터가 ‘사람이 죽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직접 말하진 않지 않나. 그런 면에서 보면 캐릭터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연기에서 배운 게 있다고 생각하나. =무척 많다. 말타는 법이나…. (웃음) 이건 아닌가? 연기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배웠다기보다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다른 배우들과 연기를 시작하는 입구가 달랐다고 생각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배우가 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다. 배우로서 연기 이외의 것들도 바라보며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가능했다. -영화 출연을 결정할 때 가장 고려하는 점은 뭔가. =각본이 재미있나 혹은 누가 감독하나. -당신에게 재미란 어떤 건가. =그건 말로 할 수 없는 거다. 느끼는 거라고 생각한다. 굳이 얘기를 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출연했던 영화들에 담긴 재미가 아닐까. 나는 항상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만 하니까. (웃음) -영화는 많이 보는 편인가. =거의 보지 않는다. 극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영향을 받은 배우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리버 피닉스는 좋아한다. 또 누구더라? 잭 니콜슨도 좋아한다. -종종 조니 뎁과 비교가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니 뎁이라…. (웃음) 굉장한 사람이다. 물론 기쁘다. 하지만 비교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웃음) -음악 활동도 열심히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피스 필’, ‘사파리’, ‘Mach 1.67’ 등 당신이 참여하는 밴드가 여럿인데. =지금 ‘Mach 1.67’은 안 하고 있다. 그건 이시이 소고 감독과 <일렉트릭 드래곤 80000V> 때 잠시 했던 거다. 나머지 두개는 아직도 하고 있다. -음악 활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별로 의미는 없다. (웃음)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다. 영화와 다르지 않다. 그림이나, 디자인, 촬영, 영화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다. 음악은 그중 하나다. 음악은 단지 라이브로 하지 않나. 공연을 하는 걸 좋아하는데, 영화와 달리 라이브의 느낌이 좋다. -현재 다국적 프로젝트 영화 <칭기즈칸>에 출연하고 있다고 들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보드로프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다. 칭기즈칸을 연기한다. 이번 영화를 하면서 말도 타고, 여러 가지를 배웠다. 물론 언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수염도 못 깎고 있다. -<카페 뤼미에르>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나 <보이지 않는 물결>의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처럼 아시아의 다른 나라 감독들이 당신을 선호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이 자식 써먹기 좋겠구나’ 하며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예측하지 못한 연기가 나온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칭기즈칸> 이후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나. =아오야마 신지 감독과 새 영화를 들어갈 것 같다.

비디오 저널리스트 존 알퍼트를 만나다 [2]

세계의 전쟁터를 누비고 세기의 권력가들과 인터뷰 1980년 이란인들이 이란에 대한 미국의 간섭에 반발하며 미국인들을 인질로 붙잡아두는 사건이 발생하자, 알퍼트는 곧장 이란으로 건너갔다. 다른 방송사들이 대사관에 카메라를 고정시켰던 반면, 그는 뒷골목과 시장들을 누비며 인질 사건에 대한 이란인들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는 그가 찍은 영상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또한 그는 당시 이란에 머물렀기에 구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곧바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할 수 있었다. “뒤늦게 출발한 다른 기자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올 수 없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사막을 통해 걸어가기로 했다. (웃음)” 그것만이 아니다. 1991년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알퍼트는 집중 폭격의 대상이었던 바그다드로 걸음을 옮겼다. “당시 사담 후세인쪽에서 서안(한?)을 보내 촬영 금지 사항들을 전달했다. ‘찍으면 안 된다’투성이였다. 나는 이것을 깨고 전쟁 중 벌어진 일들을 모두 담아왔지만, 정작 에서 이라크에서 찍은 영상물의 방영을 거부했다. 전쟁에 관해서라면 이라크 정부 못지않게 미국 정부 역시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와 결별한 알퍼트는 이후 를 통해 자신의 영상물을 선보여왔다. 이처럼 전세계의 전쟁터를 누볐던 알퍼트였기에 세기의 권력가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기회 역시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직접 인터뷰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카스트로는 멋진 사람이었다. 아주 친절했을 뿐 아니라 인터뷰에도 적극적으로 응해줬다. 그러고보니 그가 쿠바를 장악한 지도 40년이 넘었다. 한번쯤은 카스트로를 다시 인터뷰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라스트 카우보이>를 25년 동안 찍었던 것처럼 그가 변해가는 모습을 찬찬히 카메라에 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는 현재 미국에 감금돼 있는 이라크 전 대통령 사담 후세인을 만나기도 했다. 후세인에 대한 그의 평가는 냉혹했다. “후세인이 한 행동들은 비판받을 만했다. 그가 현재 갇혀 있는 것은 지금껏 그가 저지른 일 때문이다.” 이후 존 알퍼트는 미국 내의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탐사 보도를 시도하게 된다. 그중 가장 먼저 손댄 것이 범죄자들의 삶에 대한 비디오였다. <범죄의 세계에서 보낸 1년>(1989), <교도소: 라이커스 섬의 죄수들>(1994), <라틴 킹: 거리의 범죄자 이야기>(2003) 등을 연출한 그는 “범죄자들이 왜 그렇게 자라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보여주려 했다. 스포츠에도 관심을 기울여온 그는 여자농구단의 얘기를 담은 <신데렐라 시즌: 레이디 볼스팀 반격하다>를 만들기도 했으며, 가장 최근작인 <바그다드 ER>(2006)을 통해서는 바그다드에 있는 미군 병원의 모습을 그려냈다. 알퍼트는 잠시도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관심사를 넓혀왔고, 그러한 노력 때문인지 에미상부터, 컬럼비아 듀퐁 어워드, 크리스토퍼 어워드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내가 받은 상이 몇개냐고? 더이상 세지도 않는다. (웃음) 쪽에서는 좋아하더라. 자기 방송사를 통해 방영된 작품들이 상을 타면 보너스를 받는다고. 나한테 떨어지는 건 없다.” 제3회 EIDF, <파파> <라스트 카우보이> 등 4편 선보여 제3회 EBS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에 초청된 알퍼트의 작품은 모두 네편. 그중 <파파>(2001)에서 그는 자기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아버지는 나의 영웅이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영화 전반부에 나오는 문구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을 찍게 된 직접적인 동기임을 드러낸다. 거기에 그는 일종의 “직업의식”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우리 가족은 자신의 얘기를 서로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내 직업은 다른 사람의 입을 여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위해서라도 내 가족의 얘기를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카우보이 베른 세이거를 25년 동안 취재해 완성한 <라스트 카우보이>(2005)는 알퍼트의 집요함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나는 사우스 다코타의 포큐파인에 사는 베른 세이거다. 여기 있는 이 남자(존 알퍼트)는 나를 찍기 위해 25년 전에 이곳에 나타났다.” 알퍼트가 세이거를 쫓게 된 데에는 카우보이에 대한 경외심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내가 어렸을 때 미국 소년들의 우상은 카우보이였다. 그러니까 베른 세이거는 사실 내 어릴 적 우상이나 다름없다! (웃음)” <라스트 카우보이>에서 알퍼트는 세이거와 친밀한 관계임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그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반면 코발트에 중독된 노동자들을 다룬 <하드 메탈 증후군>(1988)에서 그는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편에 서 있다. “당신들은 혹시 코발트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나? 없다고? 우리는 이 공장의 공기 중에 법적 허용치의 30배가 넘는 코발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네편의 작품 중 가장 강렬한 것은 사회의 이면을 담았다는 점에서 <하드 메탈 증후군>의 연장선상에 있는 <의료보장제도: 돈과 생명의 거래>(1977). 미국 의료보장제도의 허점을 다룬 이 영상물에서 한 환자가 고장난 의료 기기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장면은,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자아낸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그땐 미숙했기 때문에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전달할 수 없었다.” 인터뷰가 끝나가려는 찰나 “왜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느냐”는 질문에 나지막했던 알퍼트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찍은 영상물을 통해 변해가는 이들을 목격하면서 그 중요성은 점점 커져갔다.” 그가 처음부터 투철한 사회적 책임감으로 무장한 채 이슈 메이커로 앞장섰던 것은 아니다. “<파파>를 보면 ‘아버지는 멈추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나는 항상 일찍 포기하는 쪽이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고 똑똑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아버지를 실망시키는 한편 나 자신도 실망시켰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가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고, 스스로를 강하게 담금질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이 내면화돼 지금에 이르렀다.” 자신의 일에 대한 강한 집념과 애착. 그것은 그가 44년 동안 모험을 계속할 수 있었던 힘이고,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그 모험에서 자신을 지탱해준 힘이다. 하얗게 머리가 세어가는 알퍼트가 여전히 모험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믿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그가 인터뷰의 마지막에 들려줬던 따뜻하고 강한 집념과 애착의 말들 때문일 것이다. DCTV는 무엇인가 존 알퍼트는 1972년 아내 쓰노 게이코와 함께 다운타운 커뮤니티 텔레비전 센터(DCTV)를 설립했다. DCTV는 영상물 제작은 물론, 교육 활동과 비디오 장비 대여까지 겸하고 있는 비영리 지역사회 미디어센터. DCTV에서 제작한 수백편의 다큐멘터리와 보도 영상물들은 현재 미국 내 여러 방송국과 캐나다, 일본 내의 주요 네트워크를 통해 방영되고 있다. DCTV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던 알퍼트는 영상물 제작으로 인한 직접적 성과보다 교육 활동으로 인한 간접적 성과에 무게를 실었다. “DCTV는 다음 세대들을 위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DCTV에서 제공하고 있는 비디오 워크숍 등 교육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실제로 DCTV의 주활동 무대였던 차이나타운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지만, 우리를 통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차근차근 자기 길을 밟아가 결국 대학 진학까지 하게 되더라. 그럴 땐 정말 뿌듯했다.” DCTV의 출발점은 중고 우편물 트럭. 알퍼트와 쓰노는 TV를 설치한 중고 트럭을 몰고 다니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트럭의 TV을 통해 길거리에서 상영되던 그의 비디오들은 조금씩 반향을 일으켰다. 현재 20여명이 함께 일하는 비교적 큰 단체로 변모한 DCTV는 다른 나라로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알퍼트가 러시아에 머무르는 것 역시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의 미디어 활동가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자동차를 매개체로 시작했기 때문일까. DCTV는 존 알퍼트만큼이나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

성적표에 짓밟힌 노총각 순정, <101번째 프러포즈> 조기 종영

월드컵·주몽에 치여 시청률 6% 평범남의 사랑 ‘폐인’들은 지지 서른여덟살 노총각 ‘달재’의 우직한 사랑을 그린 에스비에스 월화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극본 윤영미, 연출 장태유)가 ‘폐인’들의 조기 종영 반대에도 불구하고 25일 15부로 막을 내렸다. 당초 계획된 16부작으로 끝맺지 못한 데다 독일월드컵 중계 때문에 지난 6월12, 13, 19일 3회분이 결방되었고 같은 시간대의 사극 <주몽>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평균 시청률까지 6%(에이지비닐슨 미디어리서치)로 한자릿수에 머물렀지만 마니아층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지난 5월29일 첫 전파를 탄 <101번째 프로포즈>는 1991년 일본 후지티브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동명작품이 원작이다. 직장에서 쫓겨난 가장이 전업주부가 된 일상을 다뤄 화제를 모았던 <불량주부>의 장태유 피디와 <내 사랑 토람이>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윤영미 작가가 한국식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바꿨다. 지난 5월에 열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장태유 피디는 “재벌 2세도, 꽃미남도 아닌 평범한 한 남자의 진솔한 사랑이야기를 다뤄 보겠다”고 말했다. 전망 없는 노총각 달재가 사랑을 하면서 희망을 갖게 되는 과정과 그의 사랑을 받는 수정(박선영)이 신혼 여행길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픔을 치유하는 모습을 밀도있게 그렸다. 이에 시청자 게시판에는 ‘답답한 일상에 한줄기 빛이 되는 작품이다’ ‘어깨가 처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드라마다’ 등 지지하는 의견이 계속됐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정과 그의 죽은 남편을 닮은 우석(정성환)의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계속되는 설정은 억지스러웠다. 초반에는 주인공을 둘러싼 가족, 방송국 동료들 등 주변인물들의 연결고리를 촘촘하게 이어가다가 중후반에 갈수록 주인공들의 삼각관계에만 치중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남자 춘향’ 달재의 “죽는 그 순간까지 수정씨만 사랑할게요”라는 애절한 프로포즈, “자기를 단념하라”고 말하는 수정에게 그래도 “태어나줘서 고맙다”라는 절절한 고백, 9회에서 달리는 트럭에 뛰어드는 장면 등 배우 이문식의 연기가 페이소스를 보탰다. <슬픔이여 안녕> <오! 필승 봉순영>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박선영도 여주인공이 마음을 여는 과정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중년 조연들의 코믹 연기도 재미를 더했다. 달재 아버지의 창만(임현식), 수정의 이모 은임(최란), 치킨집 사장 선자(김형자)의 삼각관계는 매번 웃음보를 터트리게 했다. 그래서 <101번째 프로포즈>는 시청률 성적표는 형편없지만,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