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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캐스팅 소식] ‘미칠이’ 최정원, 이장님 마음을 사로잡다 外

최정원/ ‘미칠이’ 최정원이 이장님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장규성 감독(<선생 김봉두>)의 신작 <이장과 군수>에 캐스팅된 것. 이장과 군수로 만난 두 남자(차승원, 유해진)가 벌이는 소동을 다루는 영화에서 최정원은 이장 조춘삼(차승원)이 반한 면사무소 여직원 남옥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김명민, 김태우, 유준상/ 불멸의 이순신, 미궁에 빠지다. 김명민이 ‘수술 중 각성(覺醒)’을 소재로 한 의학스릴러 <천개의 혀>에 캐스팅됐다. 냉철한 외과의 류재우 역을 맡은 그는 최면술을 연구하는 의사 오치훈(김태우), 미국에서 그를 찾아온 사나이(유준상)와 함께 의문의 사건을 추적할 예정이다. <인형사>의 김유미가 홍일점으로 호흡을 맞춘다. 정준호, 존 조/ 정준호가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와 호흡을 맞춘다. 뉴욕의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한 누아르영화 <웨스트 32번가>(가제)에 캐스팅된 것. 존 조는 변호사 존 킴 역을, 정준호는 갱단의 중간보스 전진호 역을 맡았다. 한국계 미국 감독 마이클 강이 메가폰을 잡는다. 황정민, 임수정/ 시골 노총각과 여자 기수가 사랑에 빠진다. 황정민과 임수정이 허진호 감독의 신작 <행복>(가제)에 연인으로 캐스팅됐다. 투병생활 중 사랑에 빠지는 남녀를 그리는 <행복>에서 황정민은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도시 남자 영수로, 임수정은 상대방의 결점조차 끌어안는 씩씩한 여자 은희로 등장한다. <행복>은 9월 촬영을 시작해 내년 봄 개봉한다. 고소영, 이범수/ 고소영은 어긋난 인연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소영이 로맨틱코미디 <언니가 간다>에서 첫 연애의 실패를 가슴에 담아둔 서른살 여자 나정주로 출연, 12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12년 만에 만난 성공한 동창생 오태훈 역은 이범수가 맡았고, 나정주, 오태훈의 고교 시절은 조안과 유건이 각각 연기한다. 헤이든 크리스텐슨/ 다스베이더가 텔레포터가 된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2편과 3편을 통해 악에 물들어가는 아나킨 스카이워커를 연기한 헤이든 크리스텐슨이 <점퍼>에서 텔레포트 능력을 지닌 청년으로 낙점됐다. <점퍼>는 스티븐 굴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더그 라이먼 감독의 스릴러물. 제이미 벨과 새뮤얼 잭슨이 함께 출연한다.

연애는 남녀의 미래다! 연애학자 홍상수 따라잡기 [1]

정녕 연애는 남녀의 미래다. 홍상수 감독이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이래 10년째 해온 영화 작업에 따르면 그렇다. 신작 <해변의 여인>까지 홍 감독은 줄기차게 연애를 이야기했다. 물론 홍상수만의 영화 구조와 리듬을 제치고 연애만을 이야기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그렇다고 홍상수가 영화 언어를 발명하는 데만 힘을 쏟았다고 하는 것도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 그의 영화는 연애의 영화라기보다는 연애의 생성과 소멸의 영화이다. 그의 연애영화에는 생활이 없다. ‘생활의 발견’은 끝내 없고 애써 그 발견 이전과 이후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 간극 사이에서 우리는 생활을 발견하게 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해변의 여인>까지 연애박사 홍상수의 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연애라는 당신의 미래를 앞당기려면 밑줄 쫙. 지금 그 미래를 벌써 끝내버렸다고 해도 밑줄 쫙. 연애는 시작해도 끝나도 늘 현재진행형이기에. 1. 우연이 불륜에 빠진 날 모든 사랑은 우연에서 시작한다. 홍상수 영화에서도 그렇다. 방송국 아나운서가 대기업으로 시집가는 따위의 필연은 홍상수 영화에도 우리 현실에도 없다. 홍상수는 연애를 극한의 조건에 밀어넣음으로써 연애가 무엇인지 스스로 드러나게 한다. 위기와 갈등에 빠졌을 때 사람의 본성이 드러나듯, 연애도 궁지에 몰려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를 누설한다. <생활>에서 경수는 두 여자를 차례로 우연히 만난다. 동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종로 거리를 거니다 우연히 영화의 여주인공을 만난다. <해변>에서 중래는 창욱 차에 탔다가 우연히 창욱의 애인(이라는) 문숙을 만난다. 리스트는 끝이 없다. 우연히 멋진 여자(남자)를 만나서 커피 한잔 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남자(여자)가 수락했다, 그래서 사귀게 되었다 따위의 황당한 일이 현실에 없듯, 이 우연에 엔진을 달아줘야 필연이 생긴다. 그렇다면 그 엔진은 뭐가 되어야 할 것인가. 홍상수 감독 영화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우연이 꼭 불륜과 접속된다. 불륜이라는 불가능한 사랑의 조건이 사랑의 불꽃을 당긴다. 그건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극단의 사례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좋아하는데 장애가 있다면 그 마음은 더 갈망하게 되게 마련 아니던가. 우리는 그저 그 갈망이 어떻게 현실 속에 드러나는지 구경하면 된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 속마음을 어떻게 털어놓을지, 또는 어떻게 불륜이란 장애물을 뛰어넘을지. 홍상수 영화는 그래서 연애의 속성을 되새기게 하는 즐거움을 준다. 참고사항: 홍상수 영화 속 남자주인공들은 많이 닮았다. 같은 영화에서 비슷한 언행을 하거나, 다음 영화에서 비슷한 언행을 한다. <수정>에서 재훈과 영수는 각각 수정에게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라고 말한다. <생활>의 경수와 <극장>의 동수는 “죽어버릴까요?”라고 여자에게 말한다. 연애박사 홍상수는 연애의 심리와 행동이 모방 속에서 탄생한다고 보고한다. 2. 안 봐도 비디오傳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영화에서 또는 연극에서 봤는데, 전에 만났던 것 같은데… 따위가 좋은 구실이 된다. 이런 기시감과 착시감이 연애로 이어지는 핑계가 된다고 홍상수는 말한다. 사실 안 봐도 비디오다. 이런 수작이라니 너무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연애는 이런 뻔한 곳에서 시작해 뻔한 곳에서 끝난다. 이 뻔한 그래서 오히려 즐길 만한 기시감. 행복의 추구는 행복한 기억을 반복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생활>에서 경수 기차 옆좌석에 앉게 된 선영은 경수를 연극에서 봤다며 반가워한다. <강원도>에서 상권은 비룡폭포 가는 길을 자신에게 물었던 여자가 술집 앞마당으로 지나가자 후배를 시켜 말을 걸게 한다. <수정>에서 재훈은 수정이가 어떻게 자기 장갑을 들고 있느냐며 놀라워한다. <극장>에서 영실은 관객인 동수가 따라붙어 한번 만나달라고 졸라대자 “영화네요, 영화”라고 말하며 조건부 승낙을 한다. 왜 유독 홍상수 영화에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지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유독 기시감을 자극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언제 만나봤음직한 친근한 사람. 그들은 말 걸기 좋은 구실을 준다. 방송국이나 영화관에서 배우들을 봤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하게 되지 않는가. 마치 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커피나 한잔 하자고 홍상수 영화 주인공들은 말하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그렇다. 커피는 다음 단계다. 일단 말을 걸어야 하고, 대화를 연장시켜나가야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타인에게 어떻게 3분 이상 말을 걸 것인가. 연애라면 귀를 쫑긋거리는 관객의 숙제이기도 하다. 홍상수는 정답 중 하나로 ‘어디서 봤는데’를 제시한다. 또 하나는 어디 가요? 라는 질문이다. <강원도>에서 유부남 경찰관이 여대생들을 처음 부를 때, <극장>에서 동수가 영실의 뒤를 따라가며 “영실씨, 어딜 그렇게 가는 거예요”라고 물을 때 등등. 괜한 질문을 괜히 계속 던져보는 것. 그게 구애다. 3. 해변의 집요맨-성관계는 없다만 남자의 집요함이, 또는 남자로 하여금 집요하게 따라오게 하는 잔머리가 결국 연애를 끌고 간다. 여자는 낚싯바늘을 집요하게 던지고, 남자는 바늘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진다. 물론 꼭 이렇게 남녀 구분을 할 필요는 없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남자 중심으로 가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권력의 비대칭으로 간다. <생활>에서 명숙은 집요하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강요한다. 그리하여 그 고백을 듣지 못하면서 상처받는다. 권력-매력이 더 적은 사람이 먼저 고백을 하고, 먼저 마음을 다친다. 남자들은 권력의 비대칭을 집요함으로 밀어붙여 평형상태로 만들고자 한다. 집요하기로는 <생활>의 경수와 <극장>의 동수, <수정>의 재훈이 대표선수일 것이다. 경수는 선영의 집을 세 차례나 찾아가고, 동수는 영실을 안경점 앞과 동창 술집 그리고 병원까지 세번이나 쫓아다닌다. 줄기차게 수정을 벗기려 애쓰는 재훈은 그때마다 실패하면서도 또다시 의욕에 불탄다. 월경이라서, 첫 경험이라서, 자기 이름을 잘못 불러서 등등 수정은 온갖 이유를 대며 거절하지만 재훈은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그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집요맨의 가장 강렬한 퍼포먼스는 <강원도>에서 이루어졌는데, 오직 여대생과 잘 목적으로 술을 깨기 위해 난간에 매달린 경찰관에게 우린 훈장을 수여해야 할 것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 그게 필연이라고 우겨대고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 그게 연애다. 촛불이 타오르고 재즈가 흐르는 로맨틱한 상상과, 거리를 쏘다니며 누추하고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게 구걸하는 현실은 정반대편에 있다. <수정>에서 재훈과 영수는 각각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라며 수정을 골목길로 끌고 가서는 뽀뽀를 하거나 여관으로 데려가려는 시도를 한다.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지 파렴치하다고 해야 할지.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순간 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점에서 아무도 그들의 뻔뻔스러움을 비난할 수 없다. 그래서 집요맨들은 포기하는 법이 없다. 하다못해 <수정>에서 영수처럼 “너 빤쓰까지 벗긴 거다”라고 우기며 실패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 뻔뻔한 사례가 목격된다.

이윤기 감독 <아주 특별한 손님> 첫 촬영현장 엿보기

와 CJ엔터테인먼트가 함께 만든 HD 영화 <어느날 갑자기> 등 한 가지 콘텐츠를 영화와 텔레비전 두 매체에 소개해 관객·시청자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케이블채널 가 창립 5주년 기념으로 기획·투자하고 ‘에드리브나이트프로덕션’이 만드는 HD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도 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영화 <여자, 정혜> <러브토크> 등 스산한 삶의 단면을 영상으로 제공해온 이윤기 감독의 작품으로 관심을 끈다.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가 쓴 <애드리브 나이트>가 원작이며 이윤기 감독이 각색했다. 제작사는 이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한 뒤 영화관에서 먼저 틀고 케이블 채널에서 내보낼 계획이다. 의 최현미 피디는 “이번 기획을 시작으로 독특하고 수준 높은 자체 제작 콘텐츠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첫 촬영 현장을 찾아가 어떤 작품이 될지 엿봤다. 편의점부터 버스정류장까지는 채 500m도 안됐다. 그 길을 <봄의 왈츠>에 출연했던 한효주, 영화 <봄여름가을겨울>에 나왔던 김영민 등 배우들은 아침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걷고 또 걸었다. 스텝 30여명은 사람들 통제하랴, 조명 설치하랴 얼굴에 피곤이 맺혔다. <아주 특별한 손님>은 20대 평범한 여성 보경이 우연히 겪게 되는 하룻동안의 따뜻한 ‘일탈’을 다룬다. 한 시골마을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는 집나간 딸(명은)을 기다린다. 마을 청년 기용(김영민) 등은 번잡한 거리에서 우연히 명은을 닮은 보경(한효주)를 만나고 그에게 임종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마을 사람들도 죽어가는 이를 위한 이 즉흥연극에 참여한다. 이날 촬영은 호기심과 서로에 대한 경계가 얽힌 그들의 첫 만남을 담았다. “고명은이 아니라구?” “예 아니에요” “정말 아냐?” “아니라니까요.” 한효주가 두 청년을 뒤로 하고 걸어간다. “컷. 두번 돌아보면 이상해. 한번만 돌아봐.” 이윤기 감독의 조언이 이어진다. “여긴 대사가 이상한데….”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만남을, 감독은 자연스럽게 절제하며 표현하라고 주문한다. 한효주는 “20대 보경은 평범한 아이라서 연기하기 더 어렵다”고 말한다. “자기 틀을 깨고 싶지만 두렵기도 하고, 호기심이 많지만 실현할 용기가 충분한 것도 아니며, 착한 것도 아니면서 우유부단한 아이거든요. 또 나름대로 상처가 있지만 그걸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아야 하는 역할이에요.” 9월 2일까지 보충촬영까지 마칠 계획이니 빠듯하다. 촬영이 끝나고 곤죽이 돼 있을법한 감독은 의외로 팔팔했다. 이윤기 감독은 “다른 영화 같으면 4~5일 걸릴 촬영분을 마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방송 <에이치디 티브이문학관>에서 나간 <내가 살았던 집>을 찍은 적이 있어 에이치디 작업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필름이랑 큰 차이는 없지만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있고 절차가 간단해 짧은 기간에 많은 걸 담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첫 장면은 자연스럽게 궁금증을 유발해야 했어요. <여자, 정혜>나 <러브토크>도 표현이 차가웠을지 모르지만 따뜻한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이번 것은 좀더 명랑한 느낌으로 나올 것 같아요. 하지만 쓸쓸함이 묻어나지 않는 명랑함은 별로예요. 일상적이며 소박한 걸 간결하게 전달하는 이야기가 좋은데 이번 작품의 원작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죠.” 이날 촬영분은 90분에서 15분 정도를 차지할 예정이다.

짝퉁 영화 주인공이 강의하는 킬러되기 여덟 고개

킬러. 늘 시커먼 옷을 입고 다니며 고독하게 살아가는 그들. 킬러 세계에 입문하려 열공 중인 수험생을 위해 영화 속의 대표 킬러(들과 친분이 있는 짝퉁 킬러)들이 입을 열었다. 레몽, 박큐, 도미, 킬라, 대니 보일 등 개성 강한 다섯명의 킬러들과 소비자 피해사례를 급제보해온 젤리 런더가드씨의 강의를 들을 기회! 거친 세계다보니 강의가 부드럽지만은 않다는 소문. 주의사항: 민간인은 함부로 따라하지 마세요. 제 1강. 살인자의 건강법 여러분 하이루~! 방가방가~. 킬러 경력 18년차, 레몽이에요. 근데 무슨 클래스가 이래? 수업할 자세가 안 돼 있잖으아! 나 레몽, 이런 기분으로 도저히 수업 못해. 맨 뒤에 노랑머리 학생, 가서 우유 하나 사와. 1.5리터 댓병으로. 자, 여기. 거스름돈은 가져. 우유는 우리 킬러들에게 꼭 필요한 건강식품이에요. 언니 좀 꼬셔보겠다고 커피, 위스키 이딴 거 먹고 다니지 마. 그런 건 마귀들이나 먹는 거야. 우리 킬러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철저한 자기관리라는 걸 잊지 마요. 남들 놀 때 놀고, 남들 잘 때 자면서 어떻게 킬러가 되겠어어? 모쪼록 킬러라는 것은 수도사와 같아. 혼자 외롭게 살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체력, 집중력 강화에 매진해야 하는 거죠. 나 레몽은 18년 동안 침대에 누워본 적이 없어요. 잘 때도 앉아서. 그래야 긴장이 녹슬지 않지. 총 관리는 반드시 매일 할 것! 연장은 소중하니까요. 가장 중요한 건 업무를 주는 윗선 외엔 어떤 인간관계도 만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일단 신분이 노출되면 그때부터 밥줄 끊기는 거야. 특히, 킬러에게 총보다 위험한 게 여자라는 거, 설마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연애질하다 인생 종친 킬러, 어디 한두번 봐? 감정이 개입되면 그 즉시 게임 오버야. 정 외로우면 화분을 길러요. 그래도 증상이 가시지 않을 땐 100일 새벽 푸시업에 의지하구. 그리고 거기 중간 줄 학생! 그래, 언니 말야. 그런 맨 머리, 오우~ 노! 선글라스만 끼면 뭐하니? 모자 꼭꼭 챙겨 써. 우린 감기 걸리면 약 사다줄 인간도 음써. (문득 북받친 듯) 레옹이 형…, 그곳에서 잘살고 있는 건지…. 틸다가 심은 화초는 벌써 뿌리를 내렸어. 아주 튼튼하게 말이야. 제 2강. 스타일 있는 킬러 되기 안녕하쎄효. 네털란트에서 온 박큐 임미다. 크런데, 촘 천에 나칸, 시커먼 놈, 누쿠인커쵸? 보풀 천지인 털모차, 요츰은 아무도 안 쓰는 통그랑탱 선클라쑤…. 청말 카콴임미다. 나름 프렌치 스타일, 이라는컨카? 니미럴! 오오~, 청말 청말 쏘리함미타. 여러푸운 아페서 이런 알훔답치 모탄 말울 쓰타니요. 하치만, 처런 폭장, 청말 안 촛타코 생칵함미타. 넘흐 촌스럽숨미타. 오늘 캉이 추체는 ‘청슌한 킬러가 퇴차’임미다. 터푸러(더불어) 비툴기(비둘기) 응용펍도 배워 보케쑴미타. 킬러카 손만 데면 뚝 푸러지눈 살암이라고 생칵하는 거쑨, 청말 찰못된 생칵임미다. 우리 킬러들토 얼마둔지 부드럽코 청쓘할 쑤 있숨미타. 체카 네털란트에 잇술 때 아는 킬러 형, 있엇숨미타. 그 형, 알훔다훈 한국 여차, 살앙했숨미타. 머리 킨 여잔데, 테이지 콫, 초아한다코 해서, 매일 매일 테이지 콫 사다노앗숨미타. 크 여차가, 밋술 콩부해서, 그 형토 고흐, 마네, 모네, 초아하게 퇴얏숨미타. 그 형이 참, 미소가 착살(작살)이었는테, 눈은 하나도 안 캄코, 한쪽 입끄츨 비축 올리면써 우섯숨미타. 그 모숩 포코이쑤면 퍽 칼수파케 업쑴니타. 그 형이 나충에 크 아카시한테 “여기 모네도 있어요. 저 모네를 좋아하거등요? 모네는 화폭이 넓고 몽롱한게 보는 사람이 뭔가 상상할 수 있게 하거등요” 하는데, 너무 멋싯어서 축는 출 알았숨미타. 헐마나 푸트럽숨미카. 헐마나 알훔답숨미카. 킬러도 청슌해야 함미타. 아 크리고, 홍콩에 사는 형은 총 솔 척에, 콕 총 투 캐를 한 커번에 쑴미타. 비툴기를 테리고 다니는 컨치, 비툴기 있는 테서 총 소는 커신지는 찰 모르지만, 총 솔 테, 콕 비툴기가 날음미타. (망연한 표정으로) 청말… 청말… 넘흐 머싯슴미타아아…! 제 3강. 위기상황 대처는 이렇게 뭘 봐! 이자식아. 내 이름? 그런 건 알아서 뭐해? 어디다 찔러 넣으려고. 이 개떡같은 놈들. 그래서 내가 뭘 가르쳐야 된다고? 위기상황에서의 대처법? 그럼 하나 말해주지. 옛날에 말이야. 대갈통 여덟개를 운반하게 됐어. 보스한테 엉기다 머리통 신세가 됐지. 그걸 비행기로 옮기는데…, 어이, 주번! 그 머리통을 어떻게 공항 검색대에 통과시켜야 되는지 말해봐. 뭘 퀵서비스로 보내! 이 빈대같은 놈아! 자, 이렇게 내 앞에 선 놈 주머니에 총을 딱 넣어. 그럼 당연히 경보가 울릴 거 아냐. 경찰이 수색을 하면 총이 딱 나오겠지. 앞에서 난리치고 있을 때, 검색대 밑으로 가방을 실실 밀어. 자연스럽게 해야 돼. 뭐 어쨌든, 그렇게 비행기에 탔는데 개떡같은 스튜어디스가 가방이 너무 크다고 짐칸에 실으라잖아. 할 수 없이 실었더니, 짐 찾다가 웬 멍청이랑 가방이 바뀌었어. 가방 열어보니까 이름하고 다니는 대학만 딱 적혀 있더라고. 일단 대학으로 찾아가서 룸메이트 놈들을 족쳤지. 의대 다니는 놈들이더라고. 청진기 고문, 거꾸로 매달아 그네태우기 등등 왠갖 지랄을 했는데 말을 못하는 게 어딨는지 정말 모르는 것 같더라고. 그때 마침 대갈통 가져간 놈이 멕시코에 있다며 전화가 온 거야. 근데 옘병, 머리통을 두개나 잃어버렸대. 보스한테 확인시켜줘야 되는 건데 없어지다니!!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말해볼 놈? 뭐? 뭘 솔직히 말하고 싹싹 빌어 이 시키야! 죽을라고 환장했어? 그럴 때는… (띠리리리리~!) 여보세요? 어, 왜. 뭐얏? 대갈박을 또 잃어버렸어? 이 띨빵한 시키! 도대체 몇번째야? 일 한두번 해? 죽고 싶어? 몰랏! 끊어!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며) 그래, 네놈이 괜찮겠다. 좀 젊긴 하지만 코 부러뜨리고 이빨 몇개 뽑으면 휴고랑 비슷하겠어. 그쪽에 넌 영락없는 조이군. 야, 주번! 톱 가져와. 저놈들 머리 자르게! 그의 과격한 수업 방식에 학생들 항의 속출. 설상가상으로 그가 전문 킬러가 아닌 것으로 밝혀져. 파문, 일파만파. 제 4강. 킬러시대의 철학 안녕. 내 말 들려? 놀라지 마. 텔레파시로 말하는 거야. 난 그냥 킬라라고 불러줘. 내가 말을 안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벙어린 줄 아는데 사실 벙어리는 아냐. 어렸을 때부터 혀가 짧았어. 그래서 아예 말을 안 하기로 결심했지. 난 폼 안 나는 건 뭐든 딱 질색이거든. 다른 사람도 그랬겠지만, 나 처음부터 킬러는 아니었어. 어렸을 땐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지. 여자친구한테서 <진달래꽃>이라는 시집을 선물 받은 뒤부터. 말을 못하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개나리꽃> 같은 거라도 써보라고 하더군. 하지만 살다보니 어른이 시를 쓴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세상은 시를 쓸 수 있을 만큼 아름답지 않더라. 그래서 시인이 되는 건 포기했어. 하지만 남아 있는 다른 꿈이 있었지. 혀 수술을 해서 제대로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어릴 적 그녀를 찾아가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다고. 돈 모으려고 킬러가 됐어. 근데 사람을 죽인다는 게 참 쉽지 않더군. 가책을 안 느끼려면 룰이라도 있어야겠더라. 그래서 ‘예의없는 것들만 죽이겠다’고 나름의 규칙을 정했지. 망둥이 같은 눈을 하고 있는 놈들은 도저히 죽일 수가 없어. 인상 드러운 놈, 못됐게 생긴 놈만 죽이는 거야. <콜래트럴>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거기 나오는 킬러도 괴상한 이론이 있었어. “사람을 죽였어!” 하면 “내가 죽인 거 아냐. 총알이 그랬지” 하고, “(원한도 없는데) 어떻게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죽일 수 있어?” 하면 “그럼 아는 사람은 죽여도 되나?” 뭐 이딴 식이야. LA 지하철에서 누군가 죽는다고 누가 신경쓸 것 같냐며, 먼지 같은 인간 하나 죽는다고 세상 달라질 것 없다는 이론을 펴지. 어쨌든 너도 말야. 처음 킬러가 됐다면 나름의 철학을 정해봐. 기준이 서 있으면 일할 때도 명쾌하고, 왜, 폼도 나잖아. 제 5강. 굳이 사직서를 내야겠다면 어어…. 제 말이 좀 어눌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전 대니 보일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때 납치당해 나쁜 자식 밑에서 개처럼 키워졌어요. 인간병기였던 거죠. 주인이 제 목에 채운 고리를 풀고 “해치워”, “죽여”, “쓸어버려” 따위의 명령을 내리면 아무나 해치웠어요. 전 개였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피아노 조율하는 아저씨를 만났죠. 그 친절함이, 따뜻함이 두렵고도 좋았어요. 그 뒤부터 제 인생에 변화가 일어났어요. 운 좋게도 자동차 사고가 났거든요. 전 혼자 빠져나와서 피아노 아저씨를 찾아갔어요. 새로운 삶이 시작됐죠. 하지만 알다시피 킬러들의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잖아요? 아무리 내가 나오고 싶어도 주변에서 가만두지 않으니까요. 역시 놈이 다시 나타나더군요. 자동차 속에서 기관총 세례를 받았는데 살아 있다니 그놈도 목숨 참 질기죠. 새로 생긴 내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협박했어요. 처음엔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람을 해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도망쳐나온 거예요. 이번엔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생각했죠. 킬러세계의 탈퇴. 목숨을 내주겠다고 각오하는 수밖에 없어요. 살아남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윤발이 형도, 레옹이 형도 다 그러다 갔죠. 그래도 저는 운이 좋은 편이어서 놈을 제압할 수 있었어요. 그놈을 죽이게 돼, 인간성을 상실할까봐 오히려 걱정이었죠. 모쪼록 킬러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 탈퇴 이후를 미리 염두에 두는 게 좋아요. 노후 관리 차, 나와 죽이 맞는 검찰이나 경찰을 하나쯤 친구로 두는 것도 좋구요. 남자들이 왜 의리에 살고 죽잖아요. 윤발이 형이랑 수현이 형이랑 서로 “미키!” “덤보!”하며 뭉클한 장면 연출하는 거, 못 보셨어요? 제 6강. 소비자 피해 예방법-급해도 싸구려들에게 의뢰하지 말 것 음음. 내 목소리가 좀 기분 나쁘죠. 하하. 그래요. 모두가 그러더군요. 모두… (갑자기 책상을 내리치며) 나으으!! 인생에엣 잘된 일이란 없엇! 아둔한 마누라에! 장인은 날 엿 같이 취급하고! 내가 차를 팔 때 단 한명도 군소리없이 사간 적이 없지!! (부르르…) 으흠, 으흠….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때 난 돈이 필요했어요. 땅 사서 주차장 사업을 하려는데, 장인이 돈을 꿔주지 않는 거예요. (다시 얼굴색이 변하면서) 늙은 버러지 같으니라굿! 돈이 그렇게 남아 돌면서 왜 나한테 한푼도 주지 않는 거야! 구두쇠! 변태! 쥐며느리! 사기꾼! 자기가 중간에서 가로챌 생각만 하지!! (부르르…) 으흠, 으흠…. 그래서 마누라를 잠시 납치할 계획을 세웠어요. 아주 잠깐만. 장인한테 돈만 뜯어낼 생각이었죠. 동네 카센터에 가서 셉이란 친구한테 의뢰를 했어요. 소개로 두 친구가 나왔더군요. 그런데 처음부터 거친 게 아주 이상하더라구요. 지들이 잘못 알고 한 시간 빨리 나왔으면서 기다렸다고 지랄을 떨지 않나. 돈을 처음에 다 받겠다고 수작을 부리질 않나. 어쨌든 급한 마음에 싼값에 일을 맡겼는데, 이놈들이 어쩐 줄 알앗? 마누라를 납치해간 중간에 사람을 셋이나 죽인 거다!! 난 장인이 돈을 대주겠다기에 외려 납치를 취소할랬는데 제때 전화 연락도 안 되고! 도무지 무슨 일이 다 그 따윈 거얏! 그래 놓고 자기들이 살인까지 했으니 돈을 더 달라굿? 이래도 되는 거얏? 당신들은 직업 의식도 없엇?! 그 중 내 마누라를 패 죽인 놈은 다른 한놈까지 죽였다굿! 어떻게 죽인 줄 알앗? 분쇄기에다 갈아죽였엇!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굿! 당신들이 인간이얏?! 인간이냐구우우우웃!! 공고 소비자 강사의 난동으로 이후 수업이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취소된 수업은 다음 주 같은 시각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다음 수업 예고 제 7강. 블루 오션을 찾아라 킬러 바트 씨와 츄엔 감독을 특별 초빙하여, 청부살인 과정을 스너프 동영상으로 제작하는 신개념 VOD 사업에 대해 들어봅니다. 제 8강. 웰빙 킬러 되기 살인 안 하고도 돈 버는 비법. 평범한 사진 위에 빨간 칠을 하여, 피칠갑 살인 현장처럼 둔갑시키는 페인팅 기술을 배웁니다.

[외신기자클럽] 영화 수집, 그 참을 수 없는 즐거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매체로의 변환은 우리 대부분의 생애 동안 일어났다. 레코드판을 경험한 적이 없더라도 VHS 비디오 테이프를 성급하게 되감기해본 신선한 기억은 있을 것이다. 마치 개인 영화제라도 되듯, VHS는 세계영화로 가는 출입문이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필자는 런던의 서로 다른 골목 구석에 있던 홍콩, 일본, 한국 비디오 가게에 회원가입을 했다. 그곳 모두 불법이었고 결국 지방정부에 의해 문을 닫게 되었다. 1984년 비디오녹화법은 값비싼 비용을 들여 등급 내지 검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영화들의 대여와 판매를 금했다. 한국 비디오 가게는 런던 교외에 있는 슈퍼마켓의 뒷방에 숨겨져 가장 오랫동안 법망을 피할 수 있었다. 필자는 두개 대륙에 거쳐 캐비닛과 상자들에 담긴 수백장의 VHS 테이프를 갖고 있다. 친구 중엔 수천장에 달하는 컬렉션들 때문에 그들 아파트와 집에 매여 있는 이들도 있다. 그 컬렉션들의 내용은(그리고 그 존재 자체도) 영화와 텔레비전 유통의 역사적인 비효율성을 반영한다. 영화애호가로서, 영어자막이 있건 없건 전세계 어디에도 VHS로는 나오지 않는 유럽영화가 새벽 3시에 소규모 텔레비전 채널에서 방영될 때면 녹화해야 할 사명을 띠고 있었다(많은 독자들이 같은 경험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가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케이블 방송에서 예기치 못했던 영화를 만나는 즐거움이었다. 한번은 동료가 동대문 시장에서도 중고 테이프로 구할 수 없어서 20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안성기 출연의 블랙코미디가 방영된 새벽 4시에 자기를 깨우지 않았다고 호되게 비난한 적도 있었다). 레코드판과 VHS는 각각 CD와 DVD로 대체됐다. 그런데 만일 아날로그 매체가 디지털 매체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단계였다 치면, 디지털 매체도 그저 보편적인 정보고로부터 다운로드로 가기 위한 또 다른 발판이다. 음악과 비디오 소유권의 개념도 기술(과 인간 본성)이 따라잡기 위해서 몇년 정도가 더 필요했기 때문에 생긴 역사적인 부수요건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튜디오들은 파일 공유 네트워크를 열심히 사용하는 이들을 고소하는 대신, 그들을 컨설턴트로 고용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양한 이유들로 아시아는 트렌드에서 앞서가고 있는 것 같다. 대만에서 판매용 DVD는 결코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했고, 유니버설과 파라마운트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브에나비스타는 대만 가정용 비디오 배급을 그만두고 있다. 저작권 도용이 비난받고 있지만 소비자들 또한 영화를 수집하는 일이 바보 같은 일임을 깨닫게 된 걸 수도 있다. 방금 말한 바보 같은 일을 한 자로서 말을 하지만, 본인은 다양한 포맷과 화면비율과 화질 때문에 같은 영화를 사고 또 샀다. 그것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수집하기 위해서다. 선반에 1천장의 DVD가 있다면 그것들을 모두 볼 필요는 없다(시간도 물론 없다). 아직까지는 분배되지 않은 두뇌엽과도 같은 것으로 충분하다. <매트릭스> 후기적인 것과도 같을지도 모른다. 즉 “내가 쿵후를 할 줄 아네”라고 했던 바로 그 혁명적 순간의 확장으로 말이다. 강건한 가정용 비디오 시장의 부재가 종종 한국영화가 직면한 문제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어떤 이들은 지난 10년간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은 비디오 대여시장의 동시적 붕괴를 간과한 점 때문에 환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저작권 도용이든 아니든 간에 사람들은 여전히 영화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1]

당신(You)은 동영상을 자유롭게 퍼나르는 튜브(Tube)입니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가 인터넷 멀티미디어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용자가 직접 동영상을 올리고 또 자신의 공간에 마음대로 퍼갈 수 있는 유튜브는 2005년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전세계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일 방문자만 1천만명, 1일 페이지 뷰(Page View)가 1억회에 1일 재생 횟수는 4천만회에 육박하고 있으니, 가히 세계적인 규모로 거행되는 디지털 세대의 놀이터라고 일컬을 만하다. 도대체 유튜브는 무엇이며 누구의 손에 탄생했는가. 또한 유튜브는 자본으로 점철된 인터넷 사회을 어떻게 동영상의 자유로운 공유 공동체로 재편하고 있는가. 유튜브의 현재를 짚어보고 미래를 예상해본다. 판도라TV, 엠군, 다모임 등 토종 동영상 공유 사이트들이 인터넷 멀티미디어 세계의 변화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도 알아보았다. K는 지인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네 남자가 록음악에 맞춰 포복절도할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였다. 이거 재미나는걸? K는 동영상 화면을 클릭해 유튜브(www.youtube.com)로 접속했고, 동영상의 주소를 복사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며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K의 블로그를 방문한 또 다른 블로거들이 같은 방식으로 비디오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라이선스 앨범 한장 나오지 않은 록밴드 ‘OK GO’는 삽시간에 국내 포털의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시카고의 4인조 록밴드 ‘OK GO’는 근사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난한 인디 밴드에 그만한 홍보비가 있을 리 만무했다. ‘OK GO’는 자신들이 직접 짠 안무를 바탕으로 원신 원컷의 초저예산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유튜브에 올렸다. 몇주 지나지 않아 뮤직비디오는 전세계 유튜브 이용자들에게 퍼져나갔고, 서울에 거주하는 K의 블로그에 뮤직비디오가 올라오기까지는 한달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국제적 유튜브 스타의 탄생이었다. 당신이 올리고 당신이 가져가라. 그건 아마도 인터넷을 창조한 이들이 꿈꾸었던 히피적 세계 공동체의 철학서에 나오는 문구였을 것이다. 거대 기업들의 전쟁터가 되어버린 작금의 인터넷 세계에서 이같은 공동체의 철학은 덧없는 장자의 꿈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유튜브에 들어서는 순간 낡은 철학서의 모토는 현실이 된다. 일반인들이 디지털카메라 등을 이용해 만들어낸 동영상 UCC(User Created Contents)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유튜브는 인터넷의 새로운 빅뱅이다. 그곳에서 모든 것은 자유다. 이용자는 10분을 넘기지 않는 한 어떤 형태의 동영상이든 업로드할 수 있고, 모든 종류의 동영상을 자신의 사이트와 블로그, 게시판 등으로 가져갈 수 있다. 2005년 12월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유튜브는 이처럼 자유로운 조작성과 접근성을 무기로 1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내 무시무시한 숫자의 인터넷 이용자들을 끌어들였다. 1일 방문자 1천만명. 1일 페이지 뷰(Page View) 1억회. 1일 재생 횟수 4천만회. 유튜브에는 하루 평균 6만5천편의 새로운 동영상이 끊임없이 업로드되고 있으며, 동영상 수는 미국 내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동영상의 60%에 달한다. 이만하면 독점이고 과점이다. 하지만 유튜브는 무료이며, 현재까지는 특정한 대기업의 수익사업에도 연계되어 있지 않은 ‘벤처’라는 점에서 이용자들의 심리적 저항은 극도로 적다. 빌 게이츠가 가슴을 치며 두통을 호소할 일이다. 유튜브를 만든 것은 20대의 두 젊은이들이다. 페이팔(www.paypal.com)이라는 온라인 결제사이트에서 일하던 스티브 첸(27)과 채드 헐리(29)는 순전히 파티에서 찍은 홈비디오를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를 고안해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디카로 만든 동영상을 자신의 사이트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서버를 증축해야만 하고, 메신저로 친구들에게 보내자니 용량이 지나치게 커서 곤란했던 경험들. 게다가 기껏 올려봐야 웹상의 재생용 미디어 소프트웨어는 치명적인 한계들을 잔뜩 짊어지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CD로 구워서 직접 건네는 편을 택했을 테지만 첸과 헐리는 실리콘밸리의 게으른 천재들이었다. 둘은 2004년 11월에 세쿼이어 캐피탈이라는 IT회사로부터 350만달러를 끌어와 유튜브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동영상을 만들어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디카 등 다양한 촬영기기의 발전에 힘입어 휴화산 속 용암처럼 부글거리고 있었고, 유튜브는 그들의 욕망을 일시에 분출시켰다. 동영상과 함께 놀다 유튜브의 가장 큰 장점은 간결함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동영상 포맷인 avi, mov, mpg로 된 파일을 모두 업로드할 수 있고, 업로드된 파일은 유튜브에서 저절로 플래시(Flash) 포맷으로 변환된다. 플래시 포맷으로 변환된 파일은 별도의 재생 프로그램 없이도 웹상에서 얼마든지 재생이 가능하다(안녕, 짜증스러운 윈도즈 미디어 플레이어! 안녕, 느려터진 퀵타임 플레이어!). 그렇게 변환되어 업로드된 동영상의 주소와 HTML은 복사해갈 수 있도록 공개되며, 키워드를 이용한 동영상 검색 또한 가능하다. 이토록 간결한 방식으로 동영상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유튜브는 영상 세대를 위한 놀이터다. 밤새도록 키워드를 넣어가며 수억편의 동영상 바다를 헤엄칠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로이가 죽어가며 절규하던 마지막 대사를 찾을 수도 있고, <로쉬포르의 숙녀들>에서 진 켈리가 우아하게 춤추는 장면을 찾을 수도 있으며, 기타노 다케시가 진행하는 몰래카메라를 보며 배꼽을 잡을 수도 있다. 물론 이 같은 동영상들은 저작권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유튜브는 다운로드가 될 수 없는 플래시의 형태로 모든 동영상을 스트리밍(Streaming) 서비스하며, 동영상의 저작권자가 영상의 삭제를 요구하면 즉시 사이트에서 내린다. 심각한 저작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방식이 애초에 아닌 셈이다. 유튜브는 다양한 토종 UCC 공유사이트들이 버티고 있는 한국(박스 참조)에서도 지존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영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사용법이 대단히 간편한데다 전세계에서 업로드된 광대한 자료량을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사이트를 극도로 기피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일본에서도 매달 200만명이 유튜브를 사용한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올해 초 지인의 블로그를 통해 유튜브를 알게 된 서강대 영상대학원 M씨는 “시간이 나는 대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산다. 모두 합하면 하루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블로거(Blogger: 블로그 이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유튜브에서 가져온 뮤직비디오나 광고 영상물, 라이브 공연 실황, 외국 방송 프로그램 클립 등을 종종 블로그에 올린다. M씨가 지적하는 유튜브의 장점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방대한 자료들이다. “한국에서 빨리 접할 수 없는 최신 영상물과 음악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유튜브는 나처럼 시간이 부족해 MTV를 비롯한 케이블 방송을 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손쉽고 빨리 최신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유익한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그리고 일반 매체가 정해놓은 일방적인 방송순서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선별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과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텔레비전 인터뷰라든지 외국 방송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영상의 공유를 일종의 생활로 여기는 그에게 “쉽게 블로그에도 포스팅할 수 있다”는 희열을 빼놓을 수는 없다. 실질적 수익모델 창출이 관건 유튜브에 주목하는 것은 평범한 인터넷 이용자들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의 등장으로 미국 TV계의 새로운 트렌드는 ‘사용자들이 직접 차기 히트쇼를 예견하도록 만들자!’가 되었다. 카툰네트워크의 심야 프로그램 중 하나인 은 동시간 방영되는 MTV와 폭스채널의 TV쇼를 물리치고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쇼의 창조자도 이해하지 못했던 이 같은 인기는 모두 유튜브 덕이다. 유튜브에 공개된 짧은 동영상의 인기가 곧바로 TV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대중의 반응을 시험한 의 제작자 빌 로렌스는 UCC 동영상 공유사이트가 지금 미국 TV계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지 잘 알고 있다. “만약 공중파나 케이블 TV가 인터넷을 프로그램의 런칭과 테스트 장소로 끌어안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실패하고 뒤처지게 될 것이다.” 음반회사들이 새로 나온 뮤직비디오, 나이키가 아마추어들이 찍은 듯한 축구 스타들의 동영상을 슬그머니 유튜브에 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튜브 사용자들은 하루에 1억편의 동영상을 찾아보는 영상 감식가들이다. 엄청난 광고시장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가 실질적인 수익모델로서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IT전문가들은 의문을 표한다. 유튜브를 갑자기 유료사이트로 전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인터넷 다운로드 사이트 냅스터(www.napster.com)는 탄생 초에 유튜브처럼 거대한 미디어 현상을 불러일으켰지만, 저작권 문제 등에 부딪혀 유료로 전환되는 순간 생명을 다했다. 물론 유튜브 역시 현재 한국의 동영상 UCC 공유사이트들이 일찌감치 시작한 방식을 따라 동영상 광고를 수익원으로 삼을 수도 있다. 문제는 유튜브처럼 자유로운 공동체의 공유정신으로 시작된 사이트의 이용자들은 동영상 광고에 대한 저항감이 크다는 사실이다. 유튜브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유튜브의 줄리 수판은 “광고주들이 유튜브로부터 어떤 가치를 창출하느냐보다 이용자들이 광고로부터 어떤 가치를 얻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제대로 해내고 싶다”고 고뇌를 토로한다. 수익모델을 창출하는 것은 유튜브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에 서두르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해법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하지만 유튜브는 이미 생존 해법을 하나씩 내놓고 있다. 지난 8월17일 유튜브는 뮤직비디오 무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사용자들은 한푼의 사용료도 지불하지 않고 막대한 양의 뮤직비디오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게 된다. 유튜브는 사용료를 받지 않는 대신 광고에서 모든 수익을 낼 계획이며, 현재 워너뮤직이나 EMI 같은 음반사들과 서비스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야심만만한 도전이다. 아이튠즈(iTunes)를 통한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애플(Apple)의 스티브 잡스는 젊은 유튜브의 도전 앞에서 늙고 영악한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닷컴의 성공신화 [2]

네트는 광대하다 물론 의문표는 남아 있다. 과연 유튜브가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창출하면서도 현재의 자유로운 영상 공동체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혹여나 거대 기업들과의 결탁으로 인해 또 다른 억만장자 장사꾼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아직 결론을 유추할 단계는 아니다. 우량아 유튜브는 이제 겨우 1살도 먹지 않은 신생아다. 그것은 젊은 이용자들이 대기업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먼저 시작한 인터넷 미디어의 혁명이다. 냅스터와 구글이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크소프트와 애플마저) 더벅머리 젊은이들이 창고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였듯이, 유튜브 또한 가난한 천재들의 창고에서 태어났다. 유튜브가 보여주는 세계는 할리우드와 화려한 힙합 뮤지션들의 자동차와 어설픈 홈비디오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거대 언론의 카메라에 담지 못하는 현장들이 유튜브의 튜브를 타고 전세계 이용자들의 컴퓨터로 전송된다. 은 최근 유튜브에서 찾아낸 동영상으로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보도했다. 로켓포가 건물에 작렬하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퍼지는 영상은 레바논 현지 주민들이 직접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화면이었다. 목숨을 건 언론인들조차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는 순간 속으로 유튜브는 들어간다. 그리고 저널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유튜브는 보통의 시민들이 모여서 미디어 신화를 창조하고 비디오 저널의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마지막 장소가 인터넷이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멋지게 증명하고 있다. 네트는 광대하다. 그리고 광대한 영상의 네트를 연결하는 당신(You)들의 튜브(Tube) 역시 광대하다. 인터넷, 이제 동영상이 대세다 판도라TV, 엠군, 아우라 등 국내서 선전 중인 동영상 사이트들 최근 청와대가 국내 동영상 사이트인 판도라TV에 ‘희망채널’(www.pandora.tv/1219)을 개설했다. 대통령의 현장 발언이나 청와대 행사 등을 보여주는 이 채널의 개설은 국내 UCC(User Created Contents) 동영상 사이트의 인기와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유튜브의 폭발적인 시장 독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동영상 사이트의 선전은 이처럼 여전하다. 2004년 10월에 국내 최초로 동영상 공유 서비스를 시작한 판도라TV(www.pandora.tv)를 선두로, 현재 국내에는 엠군(www.mgoon.com), 다모임(www.damoim.net), 디오데오(www.diodeo.com), 아우라(www.aura.co.kr) 등의 사이트가 동영상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형국이며, 이미 몇몇 사이트는 거대 포털에 못지않은 이용자 수를 자랑하고 있다. 판도라TV의 김국현 과장은 창립 단계에서부터 동영상 UCC 사이트의 열풍을 예감했다고 말한다. “인터넷의 트렌드는 항상 변해간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도달할 단계는 당연히 멀티미디어가 아니겠는가. 전신인 ‘레떼컴’ 시절부터 이용자들의 마음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경험상으로 파악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100% 된다’라는 생각이었다.” 새롭게 열린 시장에 거대 포털 사이트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을 리 없다. 가장 먼저 동영상 UCC 섹션 ‘TV팟’을 개설한 다음(Daum)에 이어, 네이버와 싸이월드 역시 UCC 콘텐츠를 확보하고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 6월 다음 TV팟의 방문자 수는 모두 700만명에 달했고, 네이버의 ‘플레이’ 역시 600만명을 넘어서는 방문자 수를 기록했다. 판도라TV와 CP(Contents Provider: 콘텐츠 제공자) 관계에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쪽은 다음 포털의 이용자들로부터 동영상에 대한 수요를 읽어내고 TV팟을 개설한 경우다. 다음쪽은 “섹션 중에 아고라나 텔레비존, 세계인 같은 게시판 위주 서비스가 있다. 그런데 동영상에 대한 이용자들의 욕구는 있는데 마땅한 툴이 없어서 새롭게 만들어야 했다”고 설명한다. 유튜브도 그러하지만, 문제는 수익모델이다. 판도라TV는 일찌감치 동영상 광고, 콘텐츠 판매, 유료 서비스 등 다양한 수익모델을 확립해놓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수익률이 높은 것은 동영상 광고다. 김국현 과장에 따르면 판도라TV에 들어오는 광고 문의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수준이다. 그는 “최근 옥션에서 광고 문의를 해왔는데 제시해온 금액도 어마어마하지만 그에 따르는 트래픽도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했다”고 설명한다. 벤처기업인 판도라TV의 고민 역시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재 다모임 같은 서비스는 튼튼한 자금력을 지닌 모기업을 발판으로 엄청난 트래픽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유튜브처럼 이용자의 개인블로그나 게시판으로 링크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인 판도라TV는 현재 링크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영상 광고를 무조건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다. “현재는 징글 광고라고 해서 본 동영상이 나오기 전에 광고가 붙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건 사용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방해없이 효과적으로 광고를 할 수 있을까. 지금 동영상 업계가 고민하는 게 바로 그거다.” 콘텐츠의 종류가 협소하다는 것도 업계의 고민 중 하나다. 인기 가수가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해외 엽기, 유머 동영상이 여전히 국내 동영상 사이트의 주요 콘텐츠다. 판도라TV쪽은 이용자들이 순수하게 직접 만들어낸 영상은 전체 콘텐츠 중 20% 정도일 것으로 가늠하고 있다. 다른 동영상 사이트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막강한 사용자 수에 힘입은 다양한 콘텐츠를 자랑하는 유튜브와 경쟁하기에는 조금 빈곤한 편이다. 하지만 국내 사이트들은 유튜브를 비롯한 타 동영상 사이트와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계획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현재 유튜브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 중”이라고 조심스럽게 밝혔고, 최근 벤처캐피털컨소시엄으로부터 60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판도라TV는 네트워크를 증설하는 한편 유·무료 플랫폼만 제공하는 사용자 위주 동영상 포털을 구상 중이다.

2006 한국 호러 영화 무엇이 문제였나

올해 여름에도 9편(<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작품들로, 5부작 <코마>는 한 작품으로 친다면)의 한국 호러영화가 관객을 찾았다. 예년에 비해 많은 제작편수와 더불어 OCN과 SBS 등 TV 방송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2006 한국 호러영화를 진단하는 글을 영화평론가 듀나에게 부탁했다. 그는 슬래셔·좀비영화의 출연을 반가워하며서도 올해의 공포영화 중 무려 7편에서 사다코 클론이나 사다코와 가야코 하이브리드 귀신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또 몇몇 영화들의 노골적인 표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의 글을 통해 올해 한국 공포영화를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올해 한국 호러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귀찮은 부분은 여전히 사다코와 가야코의 클론들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여름 시즌에 개봉되고 방영된 9편의 호러영화들(<어느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 시리즈의 에피소드들은 독립된 작품들로, 5부작 <코마>는 한 작품으로 친다) 중 7편이나 되는 작품들이 노골적인 사다코 클론이나 사다코와 가야코 하이브리드 귀신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특히 <아랑> <아파트> <네번째 층> <코마>는 표절혐의로 걸려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나는 진정으로 가도가와사에서 이 영화들을 고소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도 숨이 트일 것이다. 사다코/가야코의 클론들을 언급하는 게 짜증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런 걸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작가나 감독들도 이게 얼마나 진부한지 알고 있다. 영화를 만든 아무에게나 물어보라. 분명 상상력의 숨통을 끊어놓는 제작자들과 제작 환경 핑계를 댈 것이다. 그렇다면 제작자들은? 난 정말 모르겠다. 누군가가 여기서 분명한 책임을 밝혀주시길. 이 현상은 단순한 진부함을 떠나 집단적인 정신질환의 단계에 도달했다. 죽어라 사다코만 찍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제작 환경 자체를 호러물 소재로 삼는다면 요새 나오는 영화들보다 더 무서울 지경이다. 사다코/가야코의 클론들에 대해 언급하는 게 짜증나는 두 번째 이유는 비평 면에서 그게 여전히 먹힌다는 데 있다. 그것도 꽤 정확하게. 영화 속에 관절염 걸린 긴 머리 여자 귀신들이 나오는 장면들을 스톱워치로 재서 그 길이만큼 감점하면 된다. 사다코/가야코 클론들은 영화의 질을 깎아먹을 뿐만 아니라 영화비평의 질도 같이 깎아먹는다. 호러 영화를 대하는 감독들의 안일한 자세 나는 구체적인 내용보다 표면적인 태도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명이지만, 이번 시즌 호러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만드는 사람들의 태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 중 몇편은 순전히 장르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무너졌다. 가장 먼저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은 <아랑>의 안상훈 감독이다. 영화가 나쁜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없다. 그게 만드는 사람 맘대로 되는 건가. 하지만 “지난해에 와서 공포영화들이 명확한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욕망, 질투, 동성애, 성장통 등의 소재들이 하나의 장르 속에서 몇년 사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반복되어왔다. 관객이 식상할 만도 해졌단 말이다”(<무비위크> 2006.3.27)라고 당당히 말해놓고 올해 나온 호러영화들 중 가장 진부한 사다코 영화를 생산한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안상훈의 잘못은 두 가지다. 하나. 우선 장르에 대해 공부를 전혀 안 했다. 둘. 그러면서 장르를 얕잡아 봤다. 안상훈이 <아랑>이 독특한 시도라고 생각한 건 이 영화가 장르를 뒤집어엎는 것처럼 보이는 반전을 하나 담고 있기 때문인데, 그 반전의 성격은 개봉 이후 한국의 모든 호러영화들에 영향을 준 <장화, 홍련>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진부함을 언급하기 위해 <마크 오브 더 뱀파이어>나 오리지널 <헌티드 힐> 같은 장르 고전들을 꺼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진부함이 나쁜가? 아니, 문제는 진부함을 신선함으로 착각하고 그를 보완할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호러를 위한 공포영화 이전에 사람을 먼저 담아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다른 장르영화들보다 당연히 우월하다는 오만한 착각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할까? <신데렐라>의 봉만대도 비슷하다. “난 무서움을 잘 탄다. 그 때문에 호러영화도 잘 안 본다. 하지만 그게 호러영화를 만드는 데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그의 논리는 받아줄 만한 게 아니다. 무서움을 잘 탄다는 건 좋은 호러 예술가가 될 자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격이 먹히려면 일단 호러 장르에 친숙해야 한다. 술 한 방울 마신 경험도 없으면서 예민한 혀만 믿고 포도주 감식가가 될 수 있나? 과연 봉만대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자기 영화의 각본이 무슨 고전을 노골적으로 인용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었을까? <신데렐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없이 방황하는 영화다. 장르 내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주어진 각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만들어진 건 이야기는 믿을 수 없고 표현은 진부한 장르물이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가장 진부한 장르물을 만드는 사람들은 장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장르를 넘어서려는 사람들이다. 안상훈과 봉만대의 반대편엔 <아파트>의 안병기가 있다. 앞의 두 감독이 자기가 다루는 영역이 뭔지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방황하는 장르 아마추어들이라면, 안병기는 한국 호러영화의 좁은 터에서 단단한 매너리즘으로 굳어진 프로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의 태도는 더 범죄에 가깝다. 그가 원작으로 삼은 강풀의 만화 <아파트>는 장점들이 분명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분명한 장점은 이 작품이 전형적인 호러물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강풀은 진부한 긴 머리 여자 유령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 가볍게 품고 그보다 훨씬 넓은 캔버스에 다양한 장르들과 캐릭터들을 담아 입체적이고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만화는 뻔하디 뻔한 사다코 클론을 담으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색다른 스타일의 호러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건 드문 기회였고 그만큼이나 가치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안병기는 어떻게 했나? 원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 아닌, 자기에게 맞는 부분만 도려내서 자기 평균에 딱 맞는 안병기 호러영화를 만들었다. 멀쩡한 원작 하나가 감독의 에고와 게으름에 희생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다들 생각했겠지만, 도대체 <아파트>가 중간급 안병기 영화의 원작으로 낭비되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슬래셔·좀비 영화, TV 시리즈의 출연은 그나마 반가운 일 올해는 고전적인 아시아 귀신영화에서 벗어난 두편의 장르영화들이 나왔다. 하나는 임대응의 80년대식 슬래셔영화 <스승의 은혜>이고 다른 하나는 <어느날 갑자기>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좀비영화 <죽음의 숲>이다. 둘 다 그렇게까지 잘 만든 영화들은 아니다. <스승의 은혜>는 지루하고 진부한 도입부와 할리우드 모 영화의 결말을 뻔뻔스럽게 차용한 반전 때문에 점수를 깎아먹었고 <죽음의 숲>은… 말을 말자. 그래도 임대응의 <스승의 은혜>에는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미덕이 있다. 한마디로 임대응은 호러영화를 만드는 자세가 됐다. 그는 호러영화라는 장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공부를 철저히 했으며, 능력도 없으면서 그를 넘어서려는 바보스러운 야심도 품지 않았다. 경험있는 호러영화팬들은 <스승의 은혜>를 보면 안심하게 된다. 이 영화는 정말로 호러팬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그들이 <페노미나>나 <오페라>와 같은 이탈리아 호러영화들의 직접적인 인용이라는 건 감점 요인이 아니다. 그런 영화들을 보고 공부했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맙다. 게다가 학용품을 이용한 그의 살육장면은 그가 단순한 모방만 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임대응의 시도는 작고 수줍지만 알차다. 올 여름 시즌 호러영화의 가장 주목할 만한 시도는 텔레비전의 개입이다. OCN에서는 5부작 미니시리즈 <코마>를 방영했고, SBS에서는 CJ와 함께 유일한의 <어느날 갑자기> 단편들을 원작으로 삼은 두 번째 납량특집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저번과 달리 방영 이전에 극장 개봉을 추진했다. 언뜻 보기에 노골적인 납량특집극인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보다는 <코마>쪽이 더 고급스럽고 예술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어느날 갑자기>가 조금 낫다. <2월29일>과 <죽음의 숲>은 민망할 정도로 못 만들었지만 <네 번째 층>과 는 사다코 클론의 습격에도 중간 또는 중간 이상의 질은 유지했다. <네번째 층>은 구닥다리 사다코 원혼 클리셰를 남발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영화이고, 는 <여고괴담>과 사다코의 그늘 밑에서도 기존 장르의 도구들을 비교적 효율적으로 활용한 영화이다. 경험없는 초보들에게 한달씩 중노동을 시켜서 반타작이나 이루어낸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소재를 선택할 자유가 충분한 시간과 함께 주어졌다면 영화는 더 좋아졌을 것이다. 엄청난 실패였지만 <죽음의 숲>처럼 사다코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려는 시도도 하나 있었고. 나는 앞으로도 이 시리즈가 계속 유지되길 바란다. 꼭 유일한의 원작에 의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네번째 층>은 원작과 그리 닮지도 않았으니. <코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극장용 장편영화와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는 알아야한다고. 한 시간 반짜리 영화를 간신히 채울 만한 소재로 5시간을 끊임없는 반복으로 채우는 건 좀 심했다.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재미있는 구석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가 5시간짜리 사다코 메들리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개성은 자유를 필요로 한다. <코마>가 과연 그런 자유를 감독들에게 주었는가? 결국은 아이디어의 문제 쫀쫀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주제가 있다. 왜 올해 호러영화들은 대사들이 이렇게 나쁜가? 특히 <죽음의 숲>과 <2월29일>은 총체적 재난이다. 처음엔 그럭저럭 괜찮게 시작했다가 중반 이후 허물어져버리는 <아파트>나 <네번째 층>도 만만치가 않다. 그냥 앞으로 좋은 대사, 작가들을 고용해 잘 쓰면 되는 게 아니냐고?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한국 호러영화들의 형편없는 대사들에는 좀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호러물은 비현실의 영역이 현실세계에 침입할 수 있게 방치하는 거의 유일한 장르이다. 그리고 한국 호러영화의 나쁜 대사들은 등장인물들이 그 비현실성을 설명하려고 발버둥치는 순간에 발생한다. 특히 이들이 필수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부분에서는 정말 심각해진다. 여기서부터는 ‘당신’이나 ‘그들’, ‘그’와 ‘그녀’와 같은 어색한 인칭대명사들이 날아다니고 대화는 뻣뻣한 문어체로 굳어져버린다. 바로 몇분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김서형이 <네번째 층>의 후반부에서 뻣뻣한 대사들을 읊는 걸 보면 그냥 배우가 불쌍해진다. 자칭 전문가들인 의사, 과학잡지 기자, 보험회사 직원들의 대사들이 나쁜 것도 마찬가지. 한마디로 이들은 현실에서 벗어난 추상적인 정보를 다루는 방법에 서툴다. 해결책은? 늦게라도 배울 수밖에. 그것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호러영화들은 앞으로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그보다 더 심한 정보 제공 수다가 필수적인 SF 장르도 언젠가는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도입될 수밖에 없을 테니. 역시 쫀쫀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언급해야 하는 주제. 이 나라에서 호러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모두 사회적 의무감에 휩싸이는 이유는 뭔가? 호러물을 만들려면 반드시 입시지옥이나 교사비리, 성형중독, 장애인 인권에 대해 한마디 해야 하는 건가? <아파트>에서 학대장면들은 가장 어색한 부분이었고 <신데렐라>에서 성형 이슈는 주제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런 이슈를 강요해야 할 이유는 도대체 뭔데? 호러영화라는 천박한 장르를 만드는 것에 대한 핑계인가? 그렇게 민망하다면 도대체 왜 처음부터 이 장르를 선택했는가?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 모든 건 단 하나로 귀결된다. 지금 한국땅에서 호러물을 만드는 사람들에겐 장르에 대한 애착과 지식이 처절할 정도로 부족하다. 좋은 호러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장르를 배우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그 안에서 숨쉬고 생각하라.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만들고 정 궁하면 훔쳐라. 단지 <장화, 홍련> <링> <주온>에서만 훔치지 말라는 말이다. 그 영화들이 불쌍하지도 않나? 호러 장르는 넓고 훔칠 영화들은 많다. 괜히 제작 환경을 트집 잡지도 말라. 사다코 클론들만 쓸데없이 반복해서 등장시킬 수밖에 없는 건 그를 대체하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만한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없다는 뜻 이상은 아니다. 적절한 곳에서 제대로 훔치기만 해도 이 정도로 구박당하지는 않는다. 부문별 최고와 최악상 누가누가 정말로 무서웠나 최고의 사다코 효과상: <아파트>의 귀신 침입신. 창문 밖을 지나가던 귀신이 마치 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프레임 안으로 쓱 들어온다. 거의 <벅스 버니> 만화를 연상시키는 근사한 호러 농담인데, 과연 안병기가 이게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알았다면 뺐을 거다. 최고의 표절상: <스승의 은혜>의 호치키스신. 이 장면이 <오페라>의 표절인 건 <코마>가 <링>과 <검은 물 밑에서>의 표절인 것만큼 뻔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링> 아닌 다른 영화에서 훔치니까 표절이라도 신선해 보이지 않나? 최악의 표절상: <신데렐라>. ‘원작’이 된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없는 눈>과 비교해보라. 딸에 대한 부모의 절절한 심정이 어떻게 이해 불가능한 감정 서커스로 바뀌었는지. 최고의 분장상: 에서 김리나의 말라붙어 터진 입술 분장. 설득력있는 동시에 배우의 미모를 증가시키기까지 한다! 최악의 분장상: <죽음의 숲>의 좀비들. 얼굴에만 흰색을 칠하면 어떻게 하나? 드러난 팔과 목에도 칠해야지! 최고의 악당상: <스승의 은혜>의 박여옥 선생. 중간에 이야기를 통째로 바꾸어버리는 억지 반전이 이야기를 망쳐놓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두 버전의 박여옥 선생이 모두 효과적인 악당들이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악의 악당상: <코마>의 장서원 선생. 무례하고 불쾌하고 재수없고 무섭지도 않고 공감도 안 가며 결정적으로 너무 편하게 죽는다. 당장 내 텔레비전에서 나가! 가장 맘에 와닿는 주인공상: <네번째 층> 전반부의 민영은 최근 한국영화에 등장한 싱글맘/커리어우먼 캐릭터들 중 가장 설득력있다. 개심한 스컬리처럼 구는 후반장면들은 영 안 먹혔지만. 가장 덜떨어진 주인공상: <죽음의 숲>의 정아와 우진. 걔들은 주인공이 될 자격은커녕 영화 후반부까지 살 자격도 없다. 할리우드에서라면 둘 다 10분 만에 제이슨에게 목이 잘렸다. 올해의 예쁜 어린이상: <네번째 층>의 김유정과 <코마>의 배소연. 순전히 팬심으로 주는 상: <코마>의 <붉은 홍>. 알게 뭐람. 난 여전히 이영진의 팬이다.

눈물과 매직 아워, <마이애미 바이스>

도대체 왜 이사벨라는 섹스를 하다 말고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울음없는 눈물. 카메라는 이사벨라의 얼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고 우리는 그녀의 눈가에 젖은 글썽이는 눈망울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정체불명의 중국인 쿠바 여인과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마약 밀거래상을 하고 있는 마이애미 형사 소니, 혹은 더 정확하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리와 점점 더 매혹적이 되어가는 콜린 파렐의 육신이 뒤엉키는 섹스를 보다 말고 문득 그 눈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이 장면과 만날 때 누구라도 어리둥절해진다. 이건 섹스를 놓고 지금 이사벨라와 소니 사이에 이미 있었던 그 어떤 사연의 비통한 선택을 다루려는 장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첫 데이트이며, 그들 사이에 그 어떤 거래도 없었다. 열일곱살 때부터 마약 거래 비즈니스에 뛰어든 이사벨라에게 이게 첫 섹스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눈물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 눈물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것이 진짜라면 무엇이 갑자기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그 반대로 가짜라면 무엇을 속이기 위한 것일까? 그때 우리는 이사벨라의 눈물을 글썽이는 그 눈망울 클로즈업에서 소니의 리액션 숏이 없다는 것을 환기해야 한다. 그 눈물은 전적으로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녀 자신의 무엇을 속이기 위한 것일까? 혹은 그녀는 무엇에 속은 것일까? 물론 영화에서 갑작스러운 눈물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그냥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만 열거해도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 로메르의 <보름달이 뜨는 밤>, 차이밍량의 <애정만세>,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 하지만 이건 마이클 만의 영화다. 남자들만의 하드보일드 혹은 할리우드 장르영화 안의 세계. <마이애미 바이스>는 잘 알려진 마이클 만의 세계를 거의 완전하게 스스로 카피하는 영화다. 남자들은 우정을 믿고 있으며, 소니와 리코는 한순간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네온사인으로 가득 찬 야경은 황홀하고, 총격전 장면들은 거의 시가전에 가깝다. 특히 액션장면들에서 디온 비브의 HD 바이퍼 카메라는 위력을 발휘한다(<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씨네21> 549호 ‘로맨스는 나의 것’ 박찬욱 인터뷰에서 소개한 그 카메라. 하지만 동일 기종인지에 대해서 나는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마이애미 바이스>에는 마이클 만의 이전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어떤 잉여가 있다. 이를테면 이사벨라의 눈물. 나는 그걸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 자신을 위한 이사벨라의 눈물 첫 번째 판본은 유치하지만 오직 이 장면만을 놓고 하는 설명이다. 이 눈물은 육체적인 즐거움이 주는 기쁨의 표현이다. 그래서 이사벨라는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 것이며, 이 만족이 그녀에게 눈물을 선사한 것이다. 이 장면은 그렇게 설명할 만한 이유가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이사벨라와 소니의 샤워 룸에서 이루어지는 두 번째 섹스는 소니의 파트너인 리코(제이미 폭스)와 그의 애인이자 같은 팀 소속인 트루디와의 샤워 룸에서의 섹스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 알지 못하는 두 여자는 완전하게 동일한 제스처를 취한다. 그때 이 두 장면의 공통점은 서로 다른 두 섹스가 끝난 다음 만족스러운 느낌이다. 둘 다 섹스가 끝난 다음 신기하게도 일 이야기를 한다. 섹스가 끝난 다음 트루디는 리코에게 자기에게 기대어 편히 자라고 말한다. 섹스가 끝난 다음 소니는 이사벨라에게 새로운 계약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는 위로하고(트루디),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계약을 받아들인다(이사벨라). (유사한) 상황의 반복은 <마이애미 바이스>의 연출 플랜 중 하나다. 유사한 상황이 자꾸만 반복되고, 그 안에 매번 다른 등장인물이 순서를 바꾸어 등장하면서 어떤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거기서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다룬다. 아니, 마이클 만의 영화에 어울리게 말한다면 어떻게 견디는지를 본다. 그때 이 눈물은 이사벨라 자신이 트루디와 같은 기쁨을 누리는 것이 과분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섹스에서 트루디는 웃지만 이사벨라는 눈물을 글썽인다. 하지만 이 눈물은 거짓이다. 혹은 아주 잠깐의 진실이다. 이사벨라는 소니가 제시하는 새로운 계약을 받아들이는 대신 그와 흥정한다. 그녀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비즈니스 우먼.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보스이자 정부인 헤수스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 섹스를 그의 침대에서 ‘보고’한다. 첫 번째 가정에 기댄 두 번째 판본. 그런데 트루디와 이사벨라 사이의 이 이상한 텔레파시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되풀이된다. 사실상 둘 사이는 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런데 소니와 작별하는 이사벨라와 병원에서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는 트루디 사이에서 갑자기 교차편집이 이루어진다. 한쪽은 떠나가고, 다른 한쪽은 깨어난다. 단지 이걸 이야기의 경제학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문제의 해결, 하여튼 해피엔딩. 하지만 그렇게 유치하게? 이때 둘 사이의 (영화적) 텔레파시가 성립하는 것은 그녀들이 소니와 리코라는 두 남자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마이클 만의 관심은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두 남자 사이의 관계였다(<히트>와 <콜래트럴>). 또는 한 남자의 내면이다(<인사이더> <알리>). 여기서 사람이 아니라 남자라고 쓴 사실이 중요하다. 마이클 만은 세상이 남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말하자면 그 점이 페미니스트들을 역겹게 만들 것이다. 혹은 마이클 만이 아무리 세련된 척해도 그만큼 그를 고색창연하게 만든다). 그런데 <마이애미 바이스>는 리코와 소니의 내면을 조금도 따라가지 않는다. 그건 <히트>나 <콜래트럴>을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게 보인다. 마이클 만은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했을 때 그 주인공이 둘이라는 것에 대해 항상 한쪽이 다른 한쪽의 내면의 외재화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서 이 둘은 그러지 않는다. 소니와 리코는 파트너를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보충하면서 완벽한 하나의 짝을 이룬다. 그때 두 여자가 두 사람의 외재화라면 어떻겠는가? 이를테면 트루디가 함정에 빠진 다음에 구원받는 순간 폭탄이 터져 그녀는 중화상을 입는다. 병원에 실려간 그녀를 보면서 리코가 말한다. “정말 불공평해, 이런 허접한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다니.” 그러자 소니가 대답한다. “하지만 그녀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걸. 나는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야. 이 일은 자기만큼 중요해.” 하지만 잠시 뒤 그 말을 소니 자신의 입으로 반복한다. 호세 예로와 마지막 대결을 향해 달려갈 때 리코는 소니에게 말한다. “이제 무대에서 내려와서 마지막 연기를 끝낼 시간이야, 준비됐어?” 그러자 소니는 대답한다. “아니,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리코에게 소니가 덧붙인다. “난 지금 장난하는 게 아니야”(그런데 이 대사는 “난 지금 연기하는 게 아니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소니는 소니이자 리코의 트루디이고, 트루디는 리코에게 트루디이자 소니이다. 그때 이사벨라의 알 수 없는 이 눈물은 소니에게 리코에 대한 트루디의 자리에 갈 수 없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장르의 컨벤션이 흘리는 눈물. 그러므로 이 눈물은 전적으로 영화를 보는 당신을 위한 눈물이다. 혹은 마이클 만의 미장센이다. 소니-호세의 관계에 대한 이사벨라의 불안의 눈물 세 번째 판본. 그런데 이 눈물이 거짓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나는 이사벨라가 아니라 눈물이 안다고 썼다. 그러니까 이사벨라는 아직 그것을 모르지만 이 눈물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하나의 메시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말하자면 이 눈물을 불안의 판본으로 읽는 것이다. 이때 내가 말하는 불안은 주어진 현실과 그것을 구성하는 상상적 통일성 사이에서 그 둘이 완전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데서 생겨나는 어떤 붕괴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다. 라캉의 유명한 명제. “불안은 기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벨라는 지금 자기에게 다가온 이 섹스가 의미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소니는 그녀를 속여서 정보를 훔치거나 아니면 정말 그녀에게 빠진 것이다. 혹은 그 둘 다다. <마이애미 바이스>가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언더 커버로 임무를 수행하는 소니가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느낄 때(FBI 국장 후지마는 소니에게 경고한다. “위장수사를 하려면 반쯤 범죄자가 되어야 하지”) 그것이 소니가 아니라 이사벨라의 눈물로 나타날 때다. 그때부터 이야기는 완전히 궤도를 이탈하기 시작한다. 소니가 이사벨라를 이용하는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모호해지기 시작하자 혼란에 빠져드는 것은 소니의 마이애미 수사팀이 아니라 반대로 일종의 도미노처럼 이사벨라를 시작으로 연쇄적으로 마약 조직 전체가 감정의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 더 이상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이사벨라의 눈물에 대한 대답은 소니가 아니라 호세 예로가 한다. 호세 예로? 이 거대한 마약 밀매조직의 딜러이며, 보스 헤수스의 마약을 배달하는 중간 보스가?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미친 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냉혹하고 잔인한 인간. 그는 트루디의 유괴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폭탄으로 트랙터 전체를 날려버린다. 그런데 그는 이사벨라가 자신의 디스코 클럽에서 소니와 키스하면서 춤추는 모습을 모니터로 훔쳐보면서 이상하게도 마치 감상에 빠진 것처럼 눈물을 글썽인다. 왜 눈물을 글썽이는 것일까? 넘볼 수 없는 보스의 여자 이사벨라를 흠모해왔다면 이번이야말로 그녀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에 기뻐해야 할 이 순간에 왜 그는 눈가를 적시는 것일까? 더 이상한 점. 호세의 디스코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때 호세가 훔쳐볼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사벨라는 왜 보란 듯이 여기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는 것일까? 이 모니터 화면에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사실 소니이다. 혹은 이 속고 속이는 수사대와 마약 밀매조직 사이에서 소니는 그 미션을 속이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도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 언더 커버의 이야기가 하나의 무대라면 (리코의 말, “우리는 무대에서 이제 내려와야 해”) 그 무대 위에서 이야기는 상투적인 수사극 액션 장르를 진행하면서 그 이야기에 얼룩진 감정이 일으키는 연쇄 고리의 도미노가 함께 진행된다. 호세 예로는 이 화면의 녹화를 보스 헤수스에게 보여주고 전리품으로 그녀를 얻는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헤수스의 모습은 모니터 화면을 보는 그의 등 뒤에 선 카메라다. 이사벨라가 소니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헤수스의 표정을 보여주는 리액션 숏은 없다. 이제 불안은 일종의 연쇄효과를 일으키면서 이야기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기 시작한다. 균형이 무너지자 동요하기 시작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혼란의 절정은 마지막 총격전이다. 여기서 호세 예로는 난처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가 만일 이사벨라를 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 마지막 거래의 장소에 그녀를 데리고 나타나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호세는 이사벨라를 소니 앞에 내보이면서 그에게 자랑하고, 그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한다. 마치 이사벨라를 취한 그의 음모가 그녀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소니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할 때 호세의 ‘진짜’ 눈물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자신이 마음속으로부터 사랑하는 그녀를 소니가 빼앗아갔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사벨라가 헤수스의 정부였을 때 왜 호세는 단 한번도 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그때 나는 다시 한번 호세와 소니가 처음 만났던 장면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거래를 위해 국경지대의 도시 치우다 델 에스테에서 만나 거래를 협상한다. 거래를 진행하던 호세가 리코에게 말한다. “너만 와, 왜냐하면 저놈(소니)은 쌍통이 싫거든.” 그러자 소니가 의미심장한 대사를 한다. “원하는 게 섹스 파트너야, 사업 파트너야?” 만일 이 말의 반대가 진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호세가 진정 원한 건 이사벨라가 아니라 소니라면, 그래서 이 이야기의 두 남자의 핵심이 소니와 리코가 아니라 소니와 호세라면 우리는 너무 위험한 가정을 하는 것일까? 그걸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호세는 거래를 하면서 내내 소니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첫 거래가 끝난 다음 보스 헤수스에게 보고한다. “놈들이 수상해요.” 그러자 보스 헤수스가 묻는다. “뒷조사를 해보지 않았나? 특별한 게 없잖아.” 그러나 호세는 중얼거리듯 대답한다. “일을 너무 잘해요.” 이 이상한 대답. 여기서 환기하고 싶은 것은 마이클 만에게 두 남자가 등장했을 때 그 두 사람은 항상 반대편에 서서 서로에게 매혹된 두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히트>와 <콜래트럴>. 그러므로 나는 호세를 그 커다란 총으로 쏴죽이는 사람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질투에 찬) 리코인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이사벨라가 단지 이 이야기의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녀의 가족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다음 오히려 더 정체를 알 수 없는 중국인 쿠바 여자 이사벨라가 그저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얼룩에 불과하다면 그녀가 흘리는 눈물은 그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던져진 그녀 자신을 위한 불안의 징후가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겠는가? 분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소외의 체현으로서의 눈물. 이사벨라의 눈물 같은 소니의 어두운 밤의 시간 나는 같은 이야기를 소니의 자리에 가서 반복해볼 생각이다. 앞의 이야기가 이사벨라의 판본이라면 이번에는 소니의 판본이다.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를 하드보일드 디지털 액션영화라고 설명하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마이클 만이 왜 돈 존슨이 나온 198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를 지금 다시 영화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아무 설명도 못하게 된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옛날 시리즈를 다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이를테면 영화에는 티나 터너의 노래도 나오지 않고, 얀 해머의 테마도 나오지 않으며, 필 콜린스의 음악도 들을 수 없다. 여기에는 어떤 추억도 없다. 게다가 마이애미의 멋진 풍광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건 <콜래트럴>과도 다르다. 거의 왕가위의 홍콩을 연상케 하는 <콜래트럴>의 LA 밤풍경 같은 장면은 여기서 볼 수 없다. 마이애미는 대부분 실내에서 찍혔거나 아니면 시내 외곽이거나 혹은 부둣가뿐이다. 오히려 황홀한 풍경은 쿠바의 아바나나 파라과이의 정글 혹은 비행기가 날고 있는 하늘이나 바닷가 한가운데에서 시속 150km로 달리는 쾌속정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도대체 왜 <마이애미 바이스>를 리메이크한 거야, 라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 둘 사이가 완전히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 바이스>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다시 가져온다. 여전히 언더 커버에 관한 이야기이며, 소니와 리코는 한짝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마이클 만은 그 시리즈를 영화로 만들면서 미학적 재해석의 핵심을 HD 바이퍼 카메라에 기대고 있다. 그는 이 텔레비전 시리즈를 텔레비전 뉴스처럼 찍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묻는다(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래서 멋진 총격전 대신 여기서 전개되는 것은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핸드헬드의 뉴스 라이브 중계에 가까운 촬영이다. 하지만 마이클 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여기서 시작한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그는 <마이애미 바이스>를 뉴스처럼 찍은 다음 거기서 뉴스 안의 언더 커버로 매일 총격전과 임무 속에 살아가는 남자들의 세계를 다시 장르 안으로 끌어들인다. 마이클 만의 반문. 그런데 그들이 임무 속에서 어떤 감정도 갖지 않는단 말이야? 뉴스에 빠져 있는 감정의 세계. 말하자면 마이클 만은 여기서 ‘뉴스 안의 시네마’를 찾는다. 그가 여기서 하는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하고 있는 것의 정확히 반대이다. 혹은 그것이 필름과 디지털이 오늘날 시네마에서 하고 있는 서로의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마이애미 바이스>를 <히트>로 환원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이걸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두명의 마이클 만이 있다. 그 경계는 물론 <콜래트럴>이다. 말하자면 아날로그 마이클 만과 디지털 마이클 만. 그건 단지 그 이전 영화가 필름으로 작업하고, <콜래트럴> ‘이후’ HD 카메라를 쓴다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테면 <히트>와 <마이애미 바이스>에는 거의 유사한 공간을 다룬 장면이 있다. <히트>에서 바다가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에서 닐 맥컬리(로버트 드 니로)와 크리스(발 킬머)가 서로 대화하는 장면은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마찬가지로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방에서 소니와 리코가 그의 팀과 함께 마약중개상 니콜라스를 만나는 장면과 같은 방에 가서 찍은 것 같은 거의 동일한 방이다. 방 안에 인물들이 있고, 바깥에 바다가 보인다. 그때 전면에 보이는 전체가 유리이기 때문에 바다는 그들의 풍경이 된다. <히트>는 이 장면을 텔레포트 망원렌즈로 찍었다. 그래서 멀리 보이는 바다와 거기 소파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거의 붙어 보인다. 그러면서 그들을 무심코 바라본다. 그때 그들은 저 바다가 밀어내는 파도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지금 막 모래사장 끝의 이 건물에 닿은 그들은 세상에서 파도처럼 그렇게 일순간의 어느 시간에 사라질 운명이다. <히트>는 어딘지 에드워드 호퍼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 유리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니콜라스의 방을 <마이애미 바이스>는 재빨리 HD 바이퍼 카메라로 쫓아가면서 인물을 바라보는 대신 인물 사이를 숏으로 나눈다. 이때 이 장면의 핵심은 단지 공간과 인물의 분리가 아니다. 혹은 인물과 인물 사이의 분리가 아니다. 이 장면에서 마이클 만은 바다에 관심이 없다. 이 신의 결정적인 얼룩은 팀 전체가 니콜라스에게 마약 밀거래 중간 위장 접선을 위한 소개를 협박하고 있는 동안 소니가 그냥 그 대화에 관심없다는 듯이 무심코 하늘을 볼 때의 인서트 숏이다. 이 인서트는 거의 느닷없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 응시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숏은 대화에서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이 인서트로 보는 하늘은 매직 아워의 시간이다. 이제 막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곧 밀려들 어둠의 순간. 이때 이 신은 저물어가는 시간의 순간을 향해 진행된다. 영화에서 한신 내에서 롱 테이크는커녕 대화를 따라 숏을 나눠가면서 시간의 흐름에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영화라는 메커니즘의 경제학에서 일종의 자살행위이다. 그런데 마이클 만은 이 순간을 보여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때 이 신에서 이 짧은 인서트, 매직 아워를 보는 소니의 응시를 놓치면 안 된다. 그런 다음 영화는 소니의 어두운 밤의 시간 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 자신은 그의 내면에 저물어가는 어둠의 이 매직 아워를 알지 못한다. 그걸 알고 있는 것은 소니 자신이 아니라 정반대로 그걸 보여주는 무심한 하늘처럼 보인다. 마이클 만의 영화는 그 모든 운명을 알고 그것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어떤 예지(deus ex machina)로 항상 넘쳐난다. 이 짧은 인서트는 이사벨라의 눈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혹은 눈물과 매직 아워는 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호명이다. 누구의? 그들이 떨어진 허구로 가득 찬 속임수의 세계라는 밤의 호명. 이 호명을 거절하고 용기를 내는 것은 이사벨라다. 이사벨라가 총격전의 와중에 경찰 배지를 단 소니를 향해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무시하고 걸어오면서 “당신, 누구야?”라고 반복해서 물을 때 이상하게도 거기에 시적인 울림이 있는 것은 그것이 장르의 매직을 깨트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 긴 밤이 끝나지 않았다. 상상적 인연을 모두 끊은 영화의 엔딩 그들이 깨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오른 속임수의 무대라는 세계의 밤을 끝내는 우주의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러니까 이제 그들 각자의 연기는 모두 끝이 났고, 호세는 죽었으며, 헤수스가 그의 은거지에서 사라졌을 때,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때 소니와 이사벨라는 작별의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작별은 다시 한번 매직 아워에서 이루어진다. 다만 소니가 그때 자기도 모르게 언뜻 본 인서트와의 차이점은 이것이 이제 막 낮이 시작되려는 새벽의 매직 아워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사벨라는 말한다. “인생이 너무 짧다는 말을 했죠?” 소니는 대답한다. “행운은 우리 몫이 아니었소.” 그러니까 <마이애미 바이스>는 저녁에 시작해서 아침에 끝나는 영화라고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들 모두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어둠 속의 무대. 속임수로 가득 찬 밤의 장르. 곧 뜨게 될 태양. 멀리서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 트루디가 납치되었을 때 텔레비전 일기예보에선 태풍 어네스토가 곧 마이애미를 들이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의 밤은 달콤했지만, 이제 그들을 기다리는 낮은 가혹할 것이다. 가면을 벗었을 때 그들은 더이상 서로 다른 가문의 싸움에 말려든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다. 그들은 밤으로부터 재빨리 퇴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적 인연을 모두 끊는 것이다. 하지만 장르영화에서 그 인연을 끊었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 어쩔 수 없는 추신이 따른다. 혹은 마지막 이상한 엔딩.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고 난 다음 이 영화의 마지막의 맨 마지막 엔딩 숏이 무엇이었는지를 놓고 내기를 벌이고 싶은 충동을 이기기 어렵다. 이 블록버스터는 엉뚱한 엔딩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이사벨라는 떠나간다. 그걸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 소니는 그 장소를 떠나간다. 그런 다음 그걸 바라보는 이사벨라의 빅 클로즈업이 있다. 나는 어쩌자고 소니를 떠나보내는지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엔딩 숏이 이사벨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영화는 갑자기 주인공을 뒤바꿔치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숏은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병원에 들어가는 소니의 너무나도 평범한, 그게 정말 너무나도 평범해서 영화 사상 가장 시시한 엔딩 숏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평범한 소니의 뒷모습의 롱 숏이 마지막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그리고 나면 영화 제목 <마이애미 바이스>가 뜨고 거의 세곡을 연달아 들려주는 기나긴 엔딩 크레딧이 기다리고 있다. 마이클 만은 이 엔딩에서 무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끝나지 않았다면 그건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장르영화에서 상상적 인연을 끊었을 때 기다리는 것은 속편의 유혹이다. 자, 여기서 두 번째 내기를 걸어도 좋다. 이 엔딩은 마이클 만이 이미 예정된 <마이애미 바이스2>에 대한 불편한 심기일지도 모른다(물론 아직 이 영화가 시리즈가 된다는 기사는 읽은 적이 없다). 어쩌면 <마이애미 바이스>는 21세기의 <리쎌 웨폰>이 될지도 모른다. 혹은 지나치게 하이테크한 <미션 임파서블>에 대항하는 라이브 액션의 시리즈를 자처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는 이 연작에서 <미션 임파서블>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가 차지했던 그 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제 더 할 어떤 일이 남았을까?

비보이의 세계

홍대 거리공연, 댄스 배틀대회, 뮤지컬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로 본 비보이의 세계 2002년 여름 대한민국 전체가 월드컵 4강 신화의 열기로 들끓고 있을 때, 독일에선 한국의 비보이(B-Boy) 열풍이 일어났다. 비보이 크루 익스프레션이 한국팀으로는 최초로 ‘배틀 오브 더 이어’(Battle of the Year, 이하 보티)에서 우승한 것. 보티(BOTY)는 스트리트 댄스 대회의 월드컵이라 불리는 세계 최대의 비보이 축제다. 4월부터 각 지역에서 예선이 진행되고 여기서 선발된 팀이 9월 독일 본선대회에 진출한다. 한국은 2001년 비주얼쇼크가 이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 뒤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들의 대회 영상은 이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화제가 됐고, 영국의 UK비보이챔피언십과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등 세계 4대 스트리트 댄스 대회에서의 한국팀의 승전보도 연이어 들려왔다. “10회가 넘는 엘보 스핀”, “신기에 가까운 관절꺾기” 등, 네티즌의 열광은 주로 시각적인 충격에서 시작됐다. 더불어 세계대회에서 휘날리던 태극기와 한국팀을 응원하던 외국인들의 함성 소리. 이 낯선 광경은 한국의 네티즌을 비보이란 이름의 새로운 신화 속으로 몰고 갔다. 비보이에 대한 호기심보다 먼저 작동한 애국심. 2002년 월드컵의 광풍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의 비보이 열풍도 낯설게 시작됐다.

비보이 열풍의 낯선 시작 현재 우리나라에는 비보이 크루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익스프레션, 겜블러, 고릴라크루, 드리프터즈, 리버스, 라스트포원 등 세계대회 출전과 수상으로 유명해진 크루만 꼽아도 10팀이 넘는다. 대학의 동아리는 물론 지방의 서클도 활성화되어 있으며 인터넷상의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스쿨도 많다. CF와 뮤직비디오에 비보이들이 모델로 등장하고, M.NET의 <브레이크>, MBC의 <오버 더 레인보우> 등 이들의 삶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제작됐다. 세계대회에서의 낭보와 갑작스런 붐. 일반 국민에게 비보이는 일종의 신기루 같았다. 지하철역 내에서 바닥을 쓸고 다니던 시끄러운 놈들이 어느새 ‘문화’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시 한번 낯선 시작. 하지만 그들은 비보이 문화가 결코 갑작스레 나타난 유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준다. “정말 독한 애들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일까? 하나의 동작을 성공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지독하게 연습한다.” 10년 넘게 춤을 추고 있는 고릴라크루의 김우성씨는 현재 한국의 비보이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자신들의 연습기를 답변으로 제시한다. “예전에는 연습실이 없었다. 큰 거울이 없어서 혼자 연습할 때는 장롱을 보고 한다. 그게 조금 비치지 않나. 친구들이랑 같이 연습할 때는 지하철역에서 했다. 지금에야 이렇게 공연도 하지만, 그때는 힘들었다. 사실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 하지만 그냥 친구들과 춤출 수 있는 게 즐거웠던 것 같다.” 그는 윈드밀 동작을 성공하기 위해 1년을 연습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많은 실패로 이뤄지는 하나의 무브. 고릴라크루의 한상민씨는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회전을 하는 나인틴이라는 기술이 있다. 3바퀴를 성공하려고 무지 노력했다. 그런데 어쩌다 무대에서 갑자기 10바퀴 이상 돌아갈 때가 있다. 우린 이걸 이른바 ‘꽂혔다’고 한다. 그렇게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성공과 실패 사이의 보이지 않는 선, 이 미지의 공간에서 한국의 비보이 문화는 태어난 셈이다.

거리 공연의 생동감을 무대 위로~ 서울의 홍익대 근처, 2005년 12월부터 한 비보이전용극장에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란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우연히 비보잉을 본 발레리나가 비보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줄거리. 이 공연은 비보잉을 본격적인 무대 공연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공연은 매우 역동적이다.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부분은 한순간 휴식처럼 느껴질 정도. 무대 위와 아래를 오가며 펼쳐지던 기묘한 광경들은 어느새 음악과 함께 흥겨운 리듬을 연출해내고, 두명의 비보이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루틴 동작은 매우 활기찬 조화를 만들어낸다. 관객의 호응은 추임새다. 공연의 연출을 맡은 문주철 감독은 “비보이 문화에 대한 경영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문화를 좀더 대중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밝혔다. <비보이를…>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비보잉뿐만이 아니다. 디제이(음악을 틀고, 스크래치를 통해 음악을 재편집하는 사람), MC(랩을 비롯 리듬에 따라 말을 하는 사람), 그래피티(벽 등에 하는 낙서) 등 힙합의 모든 요소가 총동원된다. 흔히 비보이를 위의 세 가지와 함께 힙합의 4대 요소로 꼽는데 여기서의 비보이는 좀더 넓은 의미의 스트리트 댄서를 가리킨다. 그래서 <비보이를…>에는 비보이뿐만 아니라 스탠딩 댄서도 함께 출연한다. 실제로 이 공연에 출연하고 있는 고릴라크루는 비보잉을 하는 에이블크루팀과 스탠딩 댄스를 하는 브루클린 몽키즈팀이 함께 있는 프리스타일팀이다. 이에 대해 문주철 감독은 “힙합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관객 중에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디제잉이나 비트박스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더라. 하지만 그게 힙합 문화고 비보이 문화인 걸 어떻게 하겠냐. 단순히 비보이를 데려다가 공연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이들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춤과 음악, 비보이의 추모 방식 비보잉은 거리에서 시작된 문화다. 1970년대 뉴욕 할렘가를 중심으로 흑인과 히스패닉계 청소년들이 거리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추던 춤이 비보잉의 시작이다. 음악의 간주 부분(Break)에 플로어에서 추는 춤. 말 그대로 브레이크의 B를 따서 비보잉이라고 한다. 나이키, 윈드밀 등이 여기에 속하는 동작. 거리에서 생겨났다는 의미에서 어반 스트리트 컬처(Urban Street Culture)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비보잉은 ‘홈 텔레비전 문화’에 더 가깝다. 많은 댄서들이 주로 TV를 보고 춤을 따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엠시 해머와 바비 브라운에서부터 나미와 붐붐과 서태지와 아이들까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비보잉은 TV 무대에서 노래의 간주 부분에 잠깐씩 보여지는 춤동작일 뿐이었다. 김우성씨도 “한 동작을 따기 위해 아는 형에게 자료(뮤직비디오)를 부탁해서 간신히 보며 춤을 췄다”고 회상했다. 한국에 비보이 문화가 좀더 확산될 수 있었던 건 그룹 피플크루의 등장이다. 이후에 가수로 데뷔하기도 한 이들은 그전부터 비보잉 비디오를 발매했다. 자료에 굶주렸던 비보이들은 이들의 영상을 보며 연습했고, 이후 홍익대와 이태원 등지를 중심으로 거리공연 문화가 생겨났다. 그리고 백화점 등의 행사공연. 한국에서 아직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보잉의 공연 양식은 각종 이벤트와 행사의 축하공연이다. 8월12일 저녁, 홍익대 앞 놀이터에선 얼마 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비보이 양파의 추모공연이 열렸다. 고릴라크루, 리버스, 익스트림, T.I.P, 라스트포원, 갬블러 등 국내 유명 크루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공연을 진행한 디제이 고는 “이런 공연은 슬픈 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좋지 않다. 여기 오신 분들 모두 세상을 떠난 양파에 대한 마음으로 함께 공연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도 참가했던 한상민씨는 “당연히 가야 하는 거다. 비보이들은 팀이 달라도 다 가족 같다. 거리에서 공연하며 마주치기도 하고. 예전에 우리 팀 리더였던 전나마 형도 지난해에 부산국제영화제 축하공연을 하러 가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때도 우리가 함께 추모공연을 했다”며 이날 공연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이들의 추모 방식은 매우 자유로워 보였다. 함께 뜻을 맞추고, 마음껏 춤을 추는 자리. 이날 놀이터에는 본 공연이 진행되는 옆자리에 작게 원을 만들고 춤을 추는 비보이들도 보였고, 무대 뒤에서 리듬에 맞춰 혼자서 춤을 추는 비보이도 있었다. 육체가 만들어내는 공간의 역동성이 놀이터의 밤을 묘한 함성 속으로 밀어넣고 있었다.

승패가 없는 배틀 현장 배틀의 현장. 8월20일 찾아간 홍대 근처의 클럽V에선 월간배틀이 열리고 있었다. 인터넷 모 댄스 커뮤니티에서 주최하는 댄스 배틀대회. 배틀은 말 그대로 누가 더 춤을 잘 추는지 겨루는 대회다. 댄서와 디제이, 엠시가 모두 출연하며, 심사위원이 댄서의 실력을 가늠한다. 80년대 미국에선 지역 세력간의 다툼이 배틀의 형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공격적인 무브와 상대방의 약을 올리는 래핑. 이는 집회 현장에서 경찰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세계 4대 비보이 대회도 배틀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엔 비보잉 배틀뿐 아니라 팝핀 배틀, 라킹 배틀, 혹은 이들을 혼합한 프리스타일 배틀 등 다양한 형식이 있다. 이날의 종목은 팝핀과 라킹. 배틀에는 총 150여명의 댄서가 참가했고, 예선을 통과한 8명이 1대1로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클럽의 무대와 플로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기. 냉방기는 이미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무승부와 재심. 원래 2시부터 4시까지 예정됐던 예선은 계속 지연됐다. “무승부는 자주 있는 일이다. 사실 배틀이란 게 절대적인 실력을 가리는 게 아니다. 그날 컨디션이나 분위기에 따라 승패가 많이 좌우된다. 또 디제이가 트는 음악은 무작위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아는 음악이 나오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예선 탈락한 사람이 다음엔 우승을 할 수도 있고, 오늘 우승한 사람이 다음엔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는 거다.” 이번 배틀을 기획한 정현섭씨는 배틀의 의미는 승패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6시가 넘어 시작된 본선. 8명의 댄서들이 1대1로 대결을 펼쳤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먼저 시작한다. 음악과 함께 몸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무언가 “팝!”하고 터지는 느낌. 그야말로 팝핀. “리듬에 맞춰 온몸에 팝이 한번에 들어가야 해요. 몸이 팽창하는 느낌이죠.”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한 참가자는 팝핀의 느낌을 팽창이란 말로 설명했고, 정현섭씨는 이를 다시 “몸에 물방울이 떨어졌을 때, 튕겨나가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1분간 춤을 추던 댄서는 상대방에게 차례를 넘긴다. 상대방을 가리키는 손짓, 혹은 허공으로 무언가를 불어넣는 동작. 상대는 다시 허공 속에서 바통을 이어받는 동작을 취한다. 그리고 다시 팝핀. 이렇게 두번씩 춤을 추고 즉석에서 심사가 발표된다. “심사기준이요? 여러분도 이제 다 알지 않나요? 저는 그냥 여러분 곁에 서겠습니다.” 심사위원의 말처럼 이날 배틀의 결과는 관객의 함성으로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세계대회에서도 심사위원의 결정에 관객의 반대 함성이 터져나오면 재대결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배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심사위원보다 더 정확한 관객. 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만들어낸 시끌벅적한 조화. 어떤 의미에서 배틀은 춤을 매개로 재현되는 민주주의의 이상향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새로운 무브를 꿈꾸며 한국관광공사는 올 상반기부터 한국의 비보이 문화가 제2의 한류가 될 수 있다며 비보이를 활용한 한류 마케팅을 하고 있다. 실제로 <비보이를…>은 이미 여러 여행사의 관광 코스로 지정되어 있고, 외국인 관람객도 평균 20%를 넘는다. 이 공연의 홍보 담당자인 SJ보이즈의 곽서연 대리는 <비보이를…>의 브로드웨이 진출에 대해서도 낙관한다고 말한다. 이 공연의 성공을 계기로 국내에선 비보이를 소재로 한 다른 공연들도 기획되고 있다. 세계대회에서의 선전도 계속된다. 이미 유럽에는 한국의 비보이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생겨났고, 9월10일 한국에서 개최될 지역예선에도 10팀 정도가 참가할 예정이다. 비보이 자신들도 실질적인 생활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힘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는 비보이 동생들한데 전화해보면 다들 바쁘다. 공연하러 다니느라. 이제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다.” 김우성씨의 말처럼 2006년 현재, 한국의 비보이들은 이른바 꽂혔다. 수많은 실패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하나의 무브처럼.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상업화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실제로 90년대 미국에선 비보이들이 CF나 뮤직비디오, 영화에 출연하면서 비보이 문화가 거의 사장되다시피 했다. 한국의 경우도 하나의 트렌드로 지나갈 우려가 있다. 단순한 한류가 아니라 비보이 문화, 힙합 문화를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야 한다.” 대다수의 비보이들은 김우성씨처럼 비보이를 이용하기만 한 상품의 기획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에 국제스트리트댄스협회에서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 문주철 감독은 “얼마 전 서울시에서 전화가 왔다. 비보이를 지원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갔더니 하는 말이 ‘뭘 도와주면 되죠?’였다. 한국에 비보이팀이 몇개나 있는지, 비보이를 배우려면 어디에 가야 하는지, 비보이가 어떻게 시작된 건지, 아무도 모른다”며 수없이 많은 과제들을 지적한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교육적인 사업이다. 우리 협회 하나만 사단법인이지, 나머진 다 사기업이다. 예술고나 대학교에 비보이학과를 개설하거나, 청소년들이 비보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일에 어느 누구도 쉽게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행해져야 비보이 문화의 정착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한국의 비보이들은 분명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하지만 이들이 그 자리에 어떻게 올라갔을까. 제2의 한류라고 포장된 신문기사와 인터넷에 펄럭이는 태극기 행렬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비보이들의 숨소리가 음소거되고, 그들의 땀방울이 제거된 낯선 열풍. 비보이들이 겁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태극기를 흔들며 순위에 집착하기보다는 음악에 몸을 맞추고 비보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이것이 한국만의 비보이 문화를 만드는 새로운 무브가 될 것이다. 보티와 한국의 비보이들 영국의 UK비보이챔피언십,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 나라를 옮기며 개최되는 레드불BC원을 보티와 함께 세계 4대 비보이 배틀대회라고 부른다. 보티는 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배틀. 매년 10월 하노버에서 열린다. 참가팀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화해나 평화, 혹은 각국의 전통문화를 표현하고 이를 통해 결선배틀과 3·4위 배틀에 진출할 팀이 가려진다. 한국은 2002년 익스프레션이 우승, 2003년 익스프레션이 준우승, 갬블러가 3위, 2004년 갬블러가 우승, 2005년 라스트포원이 우승, 갬블러가 3위 등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엘보 스핀(Elbow Spin) 2004년 UK비보이챔피언십에서 리버스크루의 피직스(김효근)가 선보여 화제가 된 동작. 헤드 스핀이 머리로 몸을 지탱한 채 회전한다면 엘보 스핀은 팔로 균형을 잡은 뒤 회전을 하는 동작이다. 피직스는 이 대회에서 16회 회전에 성공하며 팀에 우승까지 안겨줬다. 지금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엘보 스핀을 검색하면 이 대회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비보잉에 대한 간단한 용어 정리 우선 비보이팀은 크루(Crew)라고 한다. 고릴라크루, 리버스크루 등 팀 이름에 크루라는 단어가 포함된 경우도 있다. 비보잉의 동작은 무브, 두명 이상의 비보이가 함께하는 동작은 루틴이라고 한다. 비보잉에는 수많은 무브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나이키, 윈드밀 정도. 나이키는 한팔을 땅에 짚고 두 다리를 뻗은 모양이 나이키 로고의 모양과 비슷하다고 생긴 이름이며, 윈드밀은 등으로 몸을 지탱한 뒤 다리로 회전을 하는, 말 그대로 풍차돌리기다. 나인틴은 물구나무를 선 채로 회전을 하는 동작. 그 모습이 마치 꽃이 피고 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비보이들이 무브를 하다 갑자기 멈추는 순간이 있는데 이를 프리즈(Freeze)라고 한다. 실제로 음악과 프리즈의 순간이 절묘하게 맞았을 때, 관객의 함성이 쏟아진다. 비보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닌 음악과의 조화다. 팝핀과 라킹 넓은 의미에서 팝핀과 라킹을 하는 사람을 비보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들은 각각 파퍼와 라커다. 팝핑은 흔히 관절꺾기로 표현되는 동작들. 하지만 이는 사실 관절을 꺾는 게 아니다. 근육을 팽창시키는 것. 호흡을 통해 근육을 움직이기 때문에 동작을 하고 나면 매우 숨이 가뻐진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팝핑 배틀에서 엠시들은 댄서들에게 “폐 괜찮아요?”라는 말을 남긴다. 라킹은 잠근다는 뜻의 록(Lock)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춤의 동작들도 주로 무언가를 잠그는 행위를 연상시키는 것들. 가장 대표적인 게 양팔을 빠르게 돌리는 동작이다. 또 팝퍼들은 주로 정장에 가까운 복장을 입는 데 비해 라커들은 코믹한 의상을 입는다. 큰 사과를 연상시키는 빅애플캡과 줄무늬 스타킹이 그것. 활기차고 밝은 느낌의 동작들이 주를 이룬다. 팝핀현준 “드라마는 보고 있어요? 근데 왜 시청률이 안 올라?” 일요일 저녁 댄스배틀이 열리던 클럽에 팝핀현준이 나타났다. 게스트로 공연을 하기 위한 것. 팝핀계의 스타인 그는 현재 MBC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 출연하고 있다. 이주노가 만든 고릴라댄스팩토리의 초기 멤버이며 댄스그룹 영턱스클럽의 객원 멤버로 참여하기도 했다. 최근엔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보여준 불춤이 화제를 모았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미끄러지다가 절도있게 꺾이는 몸. 현재는 1집 앨범을 내기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