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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9·11 테러는 할리우드를 어떻게 바꾸어왔나 [3]

“9·11과 함께 미국은 끝났다” 토드 보이드 교수는 9·11 사태 이후, 이 사건과 미국 대중문화를 꾸준히 연관시켜 바라봤다. 현재 남가주대학(USC)의 영화이론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며 미디어 전문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미국 대중문화와 영화, 특히 미디어와 관련된 인종 및 계급, 성 정치학 분야의 전문가이다. 독특한 스타일과 대중적이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진행하는 ‘힙합 문화’, ‘미국 영화의 인종, 계급, 젠더 문제’ 등의 강의는 USC 학생들 사이에서 ‘필수’ 코스로 알려져 있다. 2005년 가을 학기에는 영화를 통해서 9·11 이후의 미국을 조명하는 ‘9/11 아메리카’라는 강의를 개설했던 그에게서 2001년 9월11일 이후 5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문화적 변화에 관해 들어봤다. -9·11 테러 이후 5년이 흘렀다. 9·11이 미국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화는 특정 시대 사회상의 반영이다. 때에 따라 그 양상이 미묘하기도 하지만, 9·11의 경우 미묘한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미국사회에 끼친 9·11의 영향이나 함의는 한마디로 거대하다. 그리고 명백하다. 지금 5년이 지났는데, 이제야 이 사건이 미국 사람들의 의식이나 문화에 끼친 영향들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소화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데는 어느 정도 역사적 거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최근에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의 영화가 쏟아져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것 같다. 이제 충분히 비판적인 거리가 생겼으니 9·11이 음악, 텔레비전, 영화 등에 끼친 영향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9·11이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글쓰는 것, 음악을 듣는 데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의 기고문에서 9·11 이후 ‘종교의 부활’과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의 확대’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9·11의 직접적인 결과는 미국인들이 두려움에 빠졌다는 것이다. 신문도 읽지 않고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에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보통의 미국인들이 비행기가 빌딩을 들이받는 장면을 보고, 부시의 “우리가 그놈들을 토끼굴에서 몰아낼 거다”, “정의를 되찾을 거야” 등의 멜로드라마적인 선언을 들었을 때 겁에 질린 거다. 내 생각에 포스트 9·11 시대에 가장 악랄하고 기분 나쁜 정책은 ‘공포의 조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바로 그 시점에, ‘도덕적 정당성’이 필요한 시점에 구원책으로 등장했다. 종교가 하는 일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정부가 밀어줬고 승인했다. 종교가 포스트 9·11 시대에 미국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얘기하자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사례로 들 수 있다. 이 영화의 등장과 대단한 성공이 9·11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분명히 확신한다. 다른 분야에도 이런 사례들은 많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를 들 수 있는가. =완전히 반대 진영에서 나온 <화씨 9/11>이 쉬운 예다. 이 두 영화가 같은 해에 나왔다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여러 면에서, 두 영화는 2004년 대통령선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화씨 9/11>이 진보 성향에 호소했다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우익 진영을 대변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영화가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중이 이 두 영화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이 두 영화가 선거 기간 중에 양대 진영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입장을 대변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좀더 구체적으로 할리우드는 이런 사회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할리우드도 미국사회의 한 부분이다. 할리우드가 미국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굳어지긴 했지만, 단언컨대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할리우드가 진보적 관점을 지닌 영화를 만든다면, 그건 영화가 어느 정도 팔리기 때문이다. 음반업계도 마찬가지지만 할리우드도 그간 많은 변화로 인해서 침체기를 겪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나 대중의 관람 형태의 변화 등이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이 미디어를 생산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있다. 유튜브에 가면 할리우드 간부를 상대하지 않고서도 혼자서 영화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서 할리우드도 앞으로 어떻게 비즈니스를 할 건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이 유난히 많다. 알다시피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 가려면 부모를 동반해야 한다. 티켓을 한꺼번에 두장 이상 팔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미디어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유일하게 남은 시장인 셈이다. -영화의 주제나 내용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우리는 9·11 사태를 ‘아이러니의 종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심각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러니나 풍자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할리우드도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사실 그렇게 호들갑떨었던 것만큼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본질적으로 할리우드는 이익을 추구하는 비즈니스다. 뭐든지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만든다. 요즘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비판적 거리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시간도 흐르고 수용할 관객층이 생겼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9·11 사태를 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더이상 정부의 설명대로 사건이 일어났다고 믿지 않고 나아가 음모론을 거론하기까지 한다. 당시에야 부시 정권의 고위 관리가 공개적으로 “위기의 시대에는 입조심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 각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말하기를 두려워했다고 보면 된다. -<플라이트 93> <월드 트레이드 센터> 같은 영화는 봤나. =보지 않았다. 나는 9·11을 ‘기념’하고자 하는 행렬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그 사건이 두려움을 무기로 삼아 미국인들을 이용하고 조종하는 데 사용됐다는 사실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9·11은 좀더 넓은 시각에서 논의가 필요한 이슈다. 어쨌든 그 영화들은 안 봤고 볼 생각도 없다. 타워가 무너지는 순간을 이미 라이브로 수도 없이 봤는데, 내가 그 사건 자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게 더이상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루즈 체인지> 같은 영화는 어떤가. =그 영화도 안 봤는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최근 들어 9·11이 정말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영화를 안 볼 거다. 나는 종종 <어 퓨 굿 맨>에 나오는 “당신이 진실을 감당할 수 있나”라는 대사를 인용하곤 하는데,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여전히 보통의 미국 사람들은 ‘미국은 결백한데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이 우리의 자유와 라이프 스타일을 싫어해서 빌딩에 비행기를 들이받았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무지하고 어리석다. -80년대 레이건 시대에는 람보가 문화적 아이콘이었다면 부시 시대 혹은 포스트 9·11 시대에도 그런 아이콘이 있을까. =<덤 앤 더머>? (웃음) 오리지널 람보는 나중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2편부터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대변인이 됐지만 1편에서는 베트남 참전용사였고 자살한 동료 친구 때문에 분노해 정부에 대항하던 인물이었다. 레이건은 배우였다. 그래서 이미지의 중요성, 영화의 파급력을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영화산업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도 많다. -부시 정권의 특별한 문화 정책은 없나. =시대가 달라졌다. 레이건 때는 냉전 시대의 막바지였고, 따라서 <스타워즈>라든가 <람보>,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레이건은 배우였다. 부시도 배우지만 전문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부시는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건 ‘본질’이 아니라 ‘연기’라는 사실을 몸으로 대변한다. -‘연기’가 중요해진 상황과 연관시켜서 슈퍼히어로 장르가 유행하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장르는 오래된 것이긴 하지만 최근 활발히 재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영웅은 실제가 아니다. 영웅은 공백을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실제적인, ‘리얼한’ 이 시점에 허구적인 영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도피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껏 말했던 이슈들은 너무 무겁다. 대면하고 싶지 않은 거다. 아마도 이런 점이 슈퍼히어로 장르의 인기를 설명하는 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포스트 9·11 시대의 긍정적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 사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나 세계화, 이슬람 세력의 부상 등 새로운 문제들이 많이 등장했다. 미디어의 생산과 소비의 ‘개인화’라는 문제도 흥미롭다. 또 중국의 부상이나 새로운 지역 구도의 개편,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권의 등장 등 세계 정치적 파워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 지금은 미국이 파워와 부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미 세상은 바뀌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미국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도 언제나 외적인 변화들은 있었지만 미국인들은 무시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들도 그 영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변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20세기에 미국은 잘나갔지만, 이제 끝났다. 9·11은 미국인들이 이 새로운 시대를 리얼하게 인식하도록 화두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다.

찾았다! 신상옥의 <열녀문>

2년 전 대만 발굴 작업부터 다음달 부산영화제에서 첫 공개 앞두기까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제작된 1919년부터 1969년까지 총 2097편의 영화가 발표되었고 그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영화는 646편에 지나지 않는다. 불과 30%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필름보관소로 출범한 한국영상자료원이 남아 있는 영화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1974년부터이고 보면, 이 30%의 생존율은 어떤 면에서 기적적인 수치인지 모른다. 영화 한편을 만들고 사라진 영화사가 부지기수였고, 생명력이 있는 영화사들조차도 필름 보관실을 지니지 못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면 남아 있는 한국영화의 수가 적다고 한탄하기보다는 이 정도라도 남아 있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자료원은 이 수치를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왔고 이제 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일제시기 영화들이 지난 2년간 7편이 수집되었고 여기에 신상옥 감독의 <열녀문>이 더해진 것이다. 발굴-맨땅에 헤딩하기 발굴은 맨땅에 헤딩하는 작업이다. 수없는 공문과 전화, 방문을 통해 이루어내는(많은 경우 빈손으로 끝이 나는) 지난한 작업이다. 국내에서 영화를 찾는 작업도 어렵지만 외국으로 나가게 되면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대답없는 이메일과 거듭되는 전화 통화와 쥐가 날 정도의 발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영상자료원이(당시는 한국필름보관소) 영화 수집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국제영상자료원연맹(FIAF)에 정회원으로 등록된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FIAF에 가입한다는 것은 우리 기관의 국제적 위상과 공신력을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지만 외국의 자료원과 절차와 합의를 걸쳐 외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회수하는 공식적인 통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역시 쉬운 것은 아니다. 일단 특정 외국 자료원에 과연 우리 영화가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는 늘 조사의 1차 대상이 되어왔다. 중국전영자료관과 대만영상자료원 그리고 홍콩전영자료원과의 교류는 그래서 필수적이었다. 자료원은 지난 3년간의 노력 끝에 중국에서 7편의 일제시기 영화를 발굴하고, 대만에서 <열녀문>을 입수하였다. 그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우리 자료원이 <열녀문>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2004년 11월 FIAF 소속 필름 아카이브간 교류 및 한국영화 발굴을 위한 조사를 위해 대만영상자료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에 약 6개월간의 조사와 협의과정을 거쳐, 2005년 4월 대만영상자료원에 필름에 대한 수집을 정식으로 요청하였고, 같은해 6월 16mm필름을 기증받을 것을 합의하였다. 그리고 11월 양국 영상자료원간의 상호 합의각서가 교환되고, 12월 드디어 필름을 기증받기에 이른 것이다. 복원-인내심의 한계에 도전한다 수집된 <열녀문>은 16mm필름 세벌이었다. 대만 자료원과의 협의사항은 영화를 HD로 전환하여 기증한다는 조건이었고, 이를 준수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오랜 세월로 인해 손상된 필름을 수선하는 일이 시작된다. 때묻은 프레임 하나하나를 닦아내고, 손상된 필름의 퍼포레이션 하나하나를 복구하는 일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단순한 반복 작업인 것처럼 보이지만(사실 실제로도 그렇지만), 단 한번의 실수가 유일한 원천자료를 영구히 소멸시킬 수 있기에 작업의 중압감은 이루 설명하기 어렵다. 이 과정이 끝나면 복구된 필름을 텔레시네를 통해 자료를 변환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HD 변환작업이 끝나고, 드디어 시사의 순간. 이 감격적인 순간에 부산영화제 관계자도 자리를 함께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열녀문’이 모습을 드러내고, 청상과부와 파란을 일으킬 성칠이 화면에 등장한다. 아름다운 자태의 과부 최은희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여자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는 시할머니 한은진의 따끔한 가르침을 받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얼마 뒤, 갑자기 잡음이 심해지고,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뭔가 말을 하지만 통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대사가 잡음 속에 묻혀버린다. 문제다. 영화의 30분가량이 심한 잡음으로 손상되어 있는 것이다. 상영을 위해 사운드를 복원해야 한다는 허문영 프로그래머의 제안에 따라 영화제는 복원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접촉을 해보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 돈은 둘째치고라도 이런 복원이 익숙지 않은 작업인데다가 보통의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곤란한 상황에서 고민 중에 우연히, 정말 우연히 HFR이 이런 복원 작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장비 후원을 해준 업체였다는 이야기에 다짜고짜 연락을 취했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HFR의 옥임식 실장은 적극적으로 호의적으로 답변을 주었다. 이제 둘째 문제였던 돈이 우선 문제가 되었다. “후원해주십시오”와 “그러죠”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간단히 문제가 해결되었다. 본격적인 복원작업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복원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HFR의 욕구와 소리가 제대로 들렸으면 하는 영화제의 기대가 만난 것이었지만 HFR의 욕구는 우리의 기대 이상이었다. 사운드뿐만 아니라 이미지까지 개선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해온 것이다. 사실 이 회사의 주업무는 이미지 복원이다. 사운드를 복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차 사운드 복원은 다른 두벌의 프린트에서 음질이 좋은 사운드트랙을 옮겨오는 것이었다(사실 이것이 우리가 바랐던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 영화들이 그렇듯, <열녀문> 역시 일정한 잡음과 대사에 쇳소리가 묻어나왔고, HFR은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영화 전체 사운드의 잡음 청소에 들어갔다. HFR은 원래 D.I.(Digital Intermediate: 오리지널 네거를 디지털로 변환하여 이미지를 변형 개선시키는 기술) 작업을 주업무로 하는 회사이다.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형사>와 <웰컴 투 동막골> 등 스타일 넘치는 영화들의 작업을 도맡아 해왔다. 이 회사가 복원에 뛰어든 것은 복원이 “미래사업”이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복원기술은 현재 영화에도 사용된다. 촬영 중 혹은 현상 중에 손상된 이미지를 복원하거나 녹음 중에 발생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복원기술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은 믿음은 영화를 새로 만드는 것만큼 만들어진 영화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경영적 사고와 부딪치지 않고는 배울 수 없다는 실험적 도전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이들의 믿음이 우리 영화를 지키는 첫발이 복원에 있음을 깨닫는 사회적 인식과 맞물리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열녀문>은 HFR의 신충섭씨와 이용기씨의 마우스의 쉴새없는 클릭과 단축키를 누비는 화려한 손놀림하에 서서히 아름다운 옛 모습을 되찾고 있다. <열녀문>는 신상옥 작품성을 국내외에 재확인시킨 작품 <열녀문>(1962)은 <연산군>에 이어 신상옥에게 두 번째 대종상 작품상을 안겨준 작품이었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에 이어 아시아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작품이었다. 상업적인 성공과 영화적 완성도에서 신상옥의 위상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과부>를 원작으로 한 <열녀문>은 1960년 조긍하 감독이 <과부>(1960)라는 제목으로 이미 영화화했었다. <열녀문>에서 머슴 성칠을 맡은 신영균은 <과부>에서 같은 역으로 데뷔하였다. <열녀문>에서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한은진이다. 그녀는 열녀문을 하사받은 근엄한 시할머니에서 바싹 말라 독기만 남은 노인네로 변해하는 모습을 열연하며 연기력의 절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신상옥 감독의 “사각 앵글의 미학”은 다시 한번 빛을 발하며 뒤틀린 시대에 갇힌 인물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열녀문>은 “과거는 현재를 밝혀내는 단초”(사극을 만드는 이유)이며, “굴곡에 찬 여성의 삶이야말로 영화적인 것”(여성이 늘 주인공인 이유)이라는 그의 주장이 만나며 그의 영화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거기에 인간의 욕망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인 탐험에 나섰던 그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갔고, 우리는 남아서 그의 빈자리를 당당하게 지키는 그의 영화를 만난다. 이제 영화 <열녀문>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 과거 한국 영화사의 한 조각을 맞추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 된 것이다.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 배우 홍석천

얼굴이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의 배우 중 성적 소수자가 홍석천만은 아닐 것이다. 공식적인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 홍석천일 뿐이다.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혼자인 걸 보면 누구나 택할 수 있는 쉬운 길은 확실히 아니다. “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 자주 출연하지 않느냐”고 일반인들이 묻는다는데, 정확히 말하면 아직도 그를 가둔 성문화적 철책이 걷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점에서, <두뇌유희프로젝트, 퍼즐>의 창녀촌 양아치 ‘노’,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무식하고 과격한 마초 역할을 홍석천이 한다는 것은 그를 둘러싼 기존의 성문화적 선입견과 아이러니한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본인의 희극적인 연기 항로에 기댄 역이 아닌데다, 그가 지금까지 영화에서 맡았던 것 중에서도 제일 큰 역이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을지 모른다. 담배를 피워보면 어떻겠느냐고 사진기자가 말하자, 선글라스를 쓴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요새는 담배없이 못 산다면서. -담배를 많이 피우나. =이 영화 찍으면서 완전히 중독됐다. 영화 속에서 항상 담배 피우면서 욕을 해대야 하니까 그렇게 됐다. 예전에, 커밍아웃하고 나서 할 일 없어지고, 생각 많아지니까 그때도 이렇게 늘더라. 어디다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으니까. 담배가 아니었으면 아마 그때 약을 했을 거다. 한번은 경찰이 아침부터 집에 들이닥친 적이 있다. 너무 힘든 상황이니까 저놈이 분명히 뭔가 약 같은 걸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인권 침해니 가만있지 않겠다, 언론에 알리고, 변호사 선임할 거다 했더니, 미안하다면서 조용히 테스트 한번만 받아달라고 하더라. 꿀릴 거 없으니까 그냥 해줬다. 내가 외국에 자주 다니니까 저놈이 뭔가 하긴 하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나보다. -그러고 보면, 이번 영화에서 담배는 ‘노’라는 캐릭터의 기호 같은 것이다. =늘 담배와 욕을 달고 사는 게 내가 맡은 ‘노’의 캐릭터다. 항상 노는 담배를 피우려고 하고, 김현성이 맡은 정은 못 피우게 하면서 티격태격하는 게 있다. 그게 시나리오에서는 훨씬 더 심했다. 나중에도 결국 담배 피우다 정한테 당하지 않나. -언론시사회의 무대인사 때 배우들의 뒷모습을 봐달라며 출연진을 잠시 뒤돌려 세우는 일종의 ‘시사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약속된 것이었나. =갑자기 떠오르더라. 우리는 항상 앞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관객이 우리의 뒷모습을 보는 경우가 별로 없겠구나 생각했다. 얼마 전에 박상훈 사진작가가 유명 배우들을 찍어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주제가 배우들의 뒷모습이었다. 쟁쟁한 분들 찍는 자리에 나도 끼게 됐다. 갤러리에 걸린 내 뒷모습 사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다. 늘 화려한 조명에서 분칠을 하고, 만들어지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배우들의 꾸미지 않은 뒷모습은 어떨까 하는. 그래서 우리 영화를 보러온 관객에게도 한번쯤 보여줬으면 싶었다. -3년 만의 출연이라고 했는데. =방송 이후에 3년 만이라는 이야기다. <완전한 사랑> <슬픈 연가> 하고 나서. 영화는 <작업의 정석> 카메오 출연한 걸 제외하고는 굉장히 오랜만이다. <꽃을 든 남자>가 내 영화 데뷔작이었고, 그건 배역이 꽤 괜찮았다. 그리고 나서, 이번 영화가 거의 처음 무게있는 역인 것 같다. 한 8년 만에 제대로 내가 영화를 찍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조역은 꽤 있었던 편이다. =영화는 하고 싶은데, 안 써주니까…. (웃음) 그래도 한발은 담궈야 이 사람이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열정이 있다는 걸 알고 나중에라도 불러주니까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요즘 한양대 출신 동창 감독들이 굉장히 잘한다. 정용기는 동기고, 정윤철은 후배고, 이한, 김영준, 이시명 등 많다. 이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는 다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이 인간들이 배신을 하더라. (웃음) 그 사람들 영화 개봉할 때 “도대체 뭐야, 나 없이 영화 잘되겠어” 하는 반협박도 한다. 아무래도, 나는 고정 이미지가 있으니까 부담을 안고 출발하기 힘든 그 사람들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이번 역 제의받고 더 놀란 거다. 김태경 감독이 이런 어려운 역할을 왜 나를 시키나 해서. 사실, 처음에는 고사하고 싶었다. 오히려 제작진과 다른 출연진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이 오케이하면 하겠다고 했고, 다행히 모두들 좋다고 해서 하게 됐다.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그들의 의견을 물어볼 필요까지 있었을까. =나는 그런 입장이다. 커밍아웃 전에는 안 그랬지만, 이제는 주어지는 기회가 한정되어 있고, 내가 갖고 있는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나와 관련된 배우나 제작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커밍아웃한 다음에 생각하는 패턴이 많이 바뀐 게 있다. 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했으니까 저 사람보다 더 돋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안 그러려고 한다. 가령 주진모하고의 경우에도 될 수 있으면 상대방 감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연기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더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지려고 애썼고. 제작사나 감독 입장에서는 분명히 모험이었던 것 같다. -‘노’라는 역은 한국 관객이 홍석천에 대해 갖고 있는 선입견과 경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모험을 감행한 것인데, 그 선택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이미지가 구체적인 캐스팅 이유가 된 것인가. =‘노’는 외국 배우 느낌이 나는, 그리고 기존 이미지와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배우에게 맡기고 싶었다고 하더라. 사실 맨 처음에 감독은 스티브 부세미 같은 느낌의 배우를 찾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찾아보니 막상 없고, 나를 보고 나서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보는 사람들이 나의 성정체성 때문에 내 연기에 거리감을 갖고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건 배우로서 내가 깨뜨려야 할 것 아닌가 싶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남자 셋 여자 셋>의 쁘와종을 기억한다. 하지만,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내 이미지가 굉장히 마초 같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에 나가서도 “너 참 아시아 남자치고 강한 인상”이라고 말하다가도, 내가 “나 게이야” 하면 그제야 놀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젊은 층의 경우, 내 이미지를 되게 강하게 느낀다는 것도 출연을 결정하는 데 일종의 자신감을 줬다. -연기를 위해 참조한 영화가 있나. =감독이 사실 가이 리치, 타란티노, <유주얼 서스펙트> 이런 종류의 영화 리스트를 일고여덟개 줬다. 근데 별로 안 봤다. 오히려 내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에서 가져오자 하는 생각을 했다. 작품을 할 때는 일부러 많이 안 보는 편이다. -분량으로 보나, 역의 중요도로 보나 이번 영화의 배역은 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세번의 큰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대학로에서 포스터 붙여가며 연극하고 뮤지컬하다 <남자 셋 여자 셋> 시트콤에 합류했을 때가 첫 번째고, 커밍아웃한 뒤 고민하다가 <완전한 사랑>에 캐스팅 됐을 때가 두 번째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인 것 같다. 그동안 조심스럽게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거라면, 이번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외양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 배우들에게 외양이란 상당히 중요하지 않나. 같은 머리 모양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이유가 있나. 성정체성의 문제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그건 제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헤어 스타일을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친한 이승연씨는 “석천아, 너 지겹지도 않니. 배우로서 많은 역할을 맡고 싶으면 머리를 길러라”, 이렇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한다. 집에 가발도 있다. 그거 쓰면 홍석천인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이 헤어 스타일을 유지하는 이유는 일단 내가 커밍아웃 전에 갖고 있던 내 모습이라는 것이고, 연기자로서 홍석천이 복귀했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할 때까지는 그대로 유지하고 싶었다. 그리고 외국 배우 중 나 같은 스타일 얼마나 많나. 그럼에도 별별 역할을 다 하지 않나. 나이 마흔이 되면 그때 머리를 기를까 생각 중이다. 그때 기르면 좀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지 않을까 싶다. 내가 청춘 스타가 될 요량이라면 이미 예전에 뭘 해도 했을 거다. 그런 거 아니지 않나. 나는 내가 생각하는 시기에 맞는 컨셉이란 게 있다. 지금도 이 스타일 때문에 불편해하는 사람은 조명감독님 빼고는 없다. (웃음) -처음에 그 헤어 스타일을 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 =광고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 인상 같지는 않은데, 두상이 예쁘니, 머리를 밀 수 있느냐는 에이전시의 말에 그렇게 했다. 흑인 느낌, 힙합 느낌이 나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렇게 광고를 시작했고, 그 당시에 머리 깎은 모델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많이 출연했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으로 들어간 거고. -한 가지 더. 자신이 갖고 있는 목소리를 사랑하나. =불만이 많다. 축농증이 있어서 코가 항상 막혀 있다. 그래서 이번에 연기할 때는 담배를 하루에 두갑씩 피웠던 거다. 좀더 거칠고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건강만 악화되고 목소리는 그대로고…. (웃음) -앞으로 어떤 종류의 배역을 맡고 싶은가? 가령, 이 질문을 장동건에게 하는 거라면 상투적인 의미밖에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배우 홍석천의 입장에서라면 거기에 대한 대답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싶다. 희극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앞으로 좋은 코미디를 많이 하고 싶다. 많은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었으니까 그걸 극복하고 나오는, 생활 속에서 즐겁게 묻어나는, 남들에게 기분 좋은 감정을 줄 수 있는 코미디 말이다. 두 번째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어떤 작품들.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스스로 나를 닫게 되더라. 그동안 연극, 뮤지컬, 영화 제의가 꽤 있긴 했다. 거의 게이나 그 비슷한 역할이었다. 그래서 고사를 많이 했다. 그런 역만 할 수 있다고 인식되고 싶지 않았다. 그거 아니면 내가 배우로서 밥줄 끊긴다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번 역할을 과감하게 선택한 이유도 그런 거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여준 뒤라면, 내가 다른 진짜 100% 게이 역할을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작품이 있는데, 이번 겨울 지나서 초봄쯤 창작 연극을 하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커밍아웃을 한 유명 연예인이 주인공이다. 내 이야기가 기본 토대지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섞어서 갈 생각이다. 주인공과 그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된 일반 이성애자가 한 공간에서 같이 살면서 서로의 이질적인 문화와 성향과 오해와 편견을 부딪치면서 깨가는 이야기다. -불행하게도 지각변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당신을 보는 주위의 시선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 대한 요즘 생각이 궁금하다.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얼마 뒤,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전화가 온 적이 있다. 소니픽처스였나 그럴 거다. 내 이야기 갖고 영화 만들고 싶다며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메일도 주고받고 했는데, 갑자기 미국 정세 험악해지면서 소식이 끊겼다. 이제는 한국에도 <왕의 남자> <로드무비> 같은 새로운 성에 대한 애정과 노력들이 있는 작품이 나왔고, 그건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필요로 할 때 내가 주체적인 입장이 된다면, 그 다음부터는 홍석천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앞장서서 일을 저질러야 하는 시기가 오는 것 같다. 6년 동안 기다렸다고 표현을 한다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다. 그렇게 하다보면,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와 함께, 인디영화와 함께, CJ인디컬렉션

CJ인디영화관을 통해 인디영화를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는 CJ CGV가 CJ인디콜렉션 ‘인디, 세상을 만나다!’를 연다. 한국, 일본, 이란,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인디영화 16편을 소개하는 이번 행사는 “관람 시기를 놓쳐 개봉기간 동안 영화를 보지 못했던 관객들을 위해” 마련됐다. 국내에서 개봉한 작품 12편과 아직 공개되지 않은 영화 4편(<몽골리안 핑퐁> <쓰레기 시인> <라이즈> <택시 운전사의 사랑>)으로 구성된 상영작은 ‘나는 성장한다’, ‘내 삶의 기적’, ‘희망 그리고 소통’ 등 크게 세개의 부문으로 나뉜다. ‘나는 성장한다’는 주로 개인 내면의 문제를 고민하고 주변 환경과의 갈등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섹션. 올 여름 개봉했던 조창호 감독의 <피터팬의 공식>과 2005년 개봉작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거북이도 난다>, 이윤기 감독의 <여자 정혜>, 아직 공개돼지 않은 영화 <몽골리언 핑퐁>과 <쓰레기 시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온주완의 첫 주연 데뷔작이기도 한 영화 <피터팬의 공식>은 올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 베를린국제영화제 인터내셔널 포럼부문 초청 등 해외 영화제를 돌며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세상의 무게를 지고 위태롭게 살아가는 고교생 한수의 이야기가 몽환적인 화법으로 그려진다. <거북이도 난다>는 이란의 아슬아슬한 현실이 가슴 아픈 영화. 위험을 무릎쓰고 지뢰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시울을 적신다. 김지수가 출연한 <여자, 정혜>는 일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다. ‘내 삶의 기적’ 섹션은 판타지 요소를 차용해 몽환적이거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영화들의 모음이다. 원색의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의 <시티즌 독>, 시모츠마 시골 마을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로코코 소녀’ 모모코의 이야기 <불량공주 모모코>, 푸켓에서의 ‘보이지 않는 일들’이 신비롭게 흘러가는 아사노 다다노부, 강혜정 주연의 <보이지 않는 물결>, 드랙퀸의 삶을 활기차고도 애절하게 그려낸 제임스 첸 감독의 <드래퀸 가무단>, 신기한 세탁기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판타지극 <나의 아름다운 세탁기> 등이 리스트에 올라있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도 있다. ‘희망 그리고 소통’의 상영작들은 말 그대로 관객들과 소통하고 희망과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들. 외로움에 대한 보물같은 스케치, 에릭 쿠 감독의 <내곁에 있어줘>는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을 안겨주며, 모든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노총각 택시운전사의 사랑이야기 <택시 운전사의 사랑>은 순수한 사랑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인권영화 두번째 프로젝트 <다섯개의 시선>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하고 박경희, 류승완, 정지우 감독 등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일상에 잠재된 편견과 차별을 다섯가지 시선으로 고발하고 있다. 이윤기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 <러브 토크>와 남선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모두들, 괜찮아요?>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밖에도 CJ인디콜렉션은 특별상영작으로 미국 변방의 댄서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라이즈>를 준비했다. 춤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하는 모습이 ‘희망 그리고 소통’ 섹션과 잘 어울린다. CJ인디컬렉션 상영작 소개 쓰레기 시인 Poet of the Wastes 모하마드 아마디 | 이란 | 2005년| 81분 이란에선 청소부가 되기 위해 3가지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과학, 종교, 정치. 실업자가 300만명이 넘는 이곳에선 청소부 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25살의 한 청년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테헤란의 청소부로 취직한다. 매일 밤 9시가 되면 집 앞에 놓인 쓰레기를 수거하고, 거리를 빗질한다. 하지만 그의 꿈은 시인이다. 쓰레기를 처리하면서도 종잇조각에 쓰여진 문구를 쉽게 지나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들의 암살로 약혼자를 잃은 여인의 사연과 한 시인의 메모는 그렇게 발견된다. 영화는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부가 한 여인과 시인의 삶을 엿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다. 이는 이란의 암울한 현실과 소통해보려는 작은 몸짓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루지 못한 꿈을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성취해보려는 청소부의 기다림, 망설임, 용기를 보여주며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아래에서 영화를 배운 모하마드 아마디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몽골리언 핑퐁 Mongolian Ping Pong 닝하오 | 중국 | 2005년 | 102분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넓게 펼쳐진 몽골의 초원. 7살 소년 빌리케는 우연히 하얗고 작은 공 하나를 발견한다. 이는 다름 아닌 탁구공. 몽골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알 리는 만무하다. 손으로 만져보고, 혀로 맛을 보다 결국 빛나는 진주라고 믿어버린다. 어른들에게 물어보아도 별다른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연히 본 마을 천막 극장의 화면에는 또 다른 하얀 공(골프공)이 지나간다. 아이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게 스포츠와 관련된 것일까. 영화는 문명의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몽골의 삶을 통해 순수함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코믹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이 텔레비전에서 ‘국가적 공’이란 말을 듣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믿는 경찰관에게 탁구공을 주려는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낸다. 문명의 아이러니가 동심과 맞물려 묘한 재미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MTV 아시아에서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던 닝하오 감독은 광활한 몽골의 풍경을 유려하게 잡아낸다. 그래서 천안문 현수막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이 더욱 씁쓸하다. 2005년 도쿄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된 바 있다. 택시 운전사의 사랑 Midnight My Love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 타이 | 2005년 | 105분 끊임없이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는 직업이 있다. 택시 운전사. 하루에 수십명의 사람과 마주치지만, 별다른 대화는 나누지 못한다. 방콕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바티는 항상 혼자라고 느끼는 외로운 중년 남자다. 잠도 혼자 자고, 밥도 혼자 먹는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라디오 프로그램 <추억의 애창곡>을 듣는 것. 엽서로 사연까지 보내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누안이란 창녀를 손님으로 태운다. 왠지 모르게 얼굴에 쓸쓸함이 비친다. 동질감에서 시작된 관심이 점점 애정으로 발전하고, 무력하게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던 두 남녀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려 애쓴다. 한국영화 <편지>의 타이판 리메이크작 <더 레터>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콩데이 자투라나사미 감독은 택시 운전사와 창녀의 사랑을 복잡한 도시 방콕의 뒷골목처럼 그려낸다. 외롭고 황량하지만, 깊은 감동이 찾아오는 엔딩. <택시 운전사의 사랑>은 현대인의 씁쓸한 일상에서 찾아낸 굴곡이 깊은 사랑 이야기다. 라이즈 Rize 데이비드 라샤펠 | 미국 | 2005년 | 84분 이번 상영작 중 유일한 비아시아영화. LA지역에서 발생한 크럼핑이란 댄스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70년대 힙합문화가 뉴욕에서 발생했던 것처럼 크럼핑은 1992년 로드니 킹 폭동사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생겨났다. 크럼핑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얼굴에 아프리칸 전통 분장을 연상시키는 페인트칠을 한다는 것. 격렬한 손동작과 발놀림이 비보잉과는 또 다른 쾌감을 준다. 영화는 크럼핑이란 춤을 중심으로 커뮤니티에 대한 고찰, 댄서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특히 폭동사건으로 총살을 당한 댄서를 추모하기 위해 한 흑인 가수가 거리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모습은 이들의 문화가 거리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삶의 고난과 역경을 춤과 음악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리듬감 넘치고, 이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잡아낸 사진작가 출신 데이비드 라샤펠 감독의 연출이 역동적이다. 크럼핑의 창시자이자 이 영화에도 출연한 릴C는 국내 댄스가수 세븐의 <난 알아요>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했다.

즐거운 아저씨들의 변두리 로큰롤, <라디오 스타>

작가 스티븐 킹은 이야기는 플롯을 짜나가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발굴하는 일이라고 했고, 미켈란젤로는 조각이 없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돌 안에 갇혀 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작업이라고 했다. <라디오 스타>는 그런 의미에서 억지로 짜맞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독, 작가, 배우 안에 갇혀 있는 이야기를 발굴한 것이다. 변두리성을 무대 한복판으로 밀어 올려온 이준익 감독은 물론, 라디오 작가 출신인 최석환 작가, 그들 자신의 한때의 영락의 삶을 연기하는 듯한 박중훈, 안성기의 이야기이다. 골자가 되는 이야기 줄기는 1988년 가수왕 출신으로 이제는 미사리에서 지나간 영광의 추억과 자기 연민을 핥고 있는 최곤(박중훈)이 아직도 그 곁을 떠나지 않는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와 함께 지방 방송국 DJ로 간다는 것이다. 주인공들 못지않게 조역들도 변두리적인 인물들이다.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PD를 맡은 강석영(최정윤)은 아이돌 스타를 씹은 뒷담화가 방송사고로 연결돼 원주에서 영월로 쫓겨왔고, 영월지국장(정규수)은 원주와의 통폐합만을 기다리는 사내다. 강원도하고도 영월이라는 변두리도 그렇지만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오래전 살해당한(영화에서 흐르는 <비디오 킬드 더 라디오 스타>) 라디오라는 매체 자체도 변방으로 밀려난 것이다. 그러나 낡은 건 소재지 이야기가 아니다. <라디오 스타>는 DMB 시대에도 라디오를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다매체 시대에 사라져가는 옛 매체의 향수에 대해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가깝다면 <라디오 스타>의 이야기 방식은 마당극의 구조일 것이다. 다방 종업원, 철물점 주인, 백수, 꽃집 총각, 농협 직원 등 변두리 이웃들이 주파수 안으로 들어오며 관객도 덩달아 함께 따라들어가 놀게 되는 열린 원형 무대의 구조. <황산벌>의 인간장기판이나 욕설 대결, <왕의 남자>에서 궁궐 안의 마당극처럼 영월 사람들과 주인공들은 마당을 펼치고 노는데 그 마당이 주파수라는 게 다를 뿐이다. 그조차도 주파수 안에 가둬두기보다 방송 100회 기념 공연, 인터넷으로 방송 다시 듣기, 청취자 홈페이지 등으로 무대를 확대한다. 그럼으로 영화는 라디오 방송의 일회성과 주파수가 퍼지는 범위의 국지성(영화 속 영월방송은 당연히 전국 방송이 아니다), 그리고 예쁜 엽서 전시회류의 향수를 벗어난다. 그렇다면 이건 무슨 이야기인가. <황산벌>의 일부, <왕의 남자>의 대부분에서 볼 수 있던 여자없는 뒤틀어놓은 연애담이다. 물론 이 연애란 순수한 우정에 훨씬 더 가까운 점액질없는 형태다. <황산벌>에서 김유신과 계백, <왕의 남자>에서 장생과 공길의 방식과는 또 다른 두 남자의 이야기다. <황산벌>이 계백의 목을 치게 하는 장면, <왕의 남자>가 공길과 눈먼 장생이 줄 위에서 노는 장면에 이르는 비극적인 연애담이라고 본다면 <라디오 스타>는 18년간 이상한 의존관계에 있던 두 남자가 자신들의 관계를 갱신하게 된 사연을 말하는 이야기다. 영화는 18년 전 유성처럼 단 한번 번쩍거리고 사라진 최곤의 가수왕 수상장면을 보여주고 바로 현재로 도약한다. 그 뒤로 영화는 과거를 참조하지 않고 18년간 꾸준히 시간에 의해 침식당한 최곤의 밑바닥을 보여준다. 최곤과 박민수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고 일방적인데 최곤은 학대하는 역을 맡고 박민수는 그 학대를 응석의 언어로 번역한다. 심지어 박민수는 최곤이 때린 미사리 카페 사장에게 자기를 때려달라고까지 말한다. 최곤과 박민수의 관계를 지탱시키는 사랑의 논리는 겉으로 봤을 때는 피학과 자학의 오묘한 공존이다. 그 공존이 흥미로운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최곤이 ‘나는 박민수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의존성을 학대의 형식으로 연기하고, 민수가 ‘최곤은 내가 품에서 담배를 꺼내지 않으면 담배도 못 피울 인간’임을 알면서도 그걸 복종의 형식으로 연기하는 데 있다. 다른 하나는 그런 역할극을 서로 쉽게 깨뜨리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관방에서 낙망에 빠진 박민수가 ‘같이 빠져죽자’고 하자 최곤은 이렇게 얄밉게 대꾸한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 같이 빠져 죽으면 둘이 사귄 줄 알아.’ 이 역설 안에 충분히 애정과 기대가 담겨 있지만 그 역설이 어떻게 실제 사랑의 증명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가 궁금증을 낳는다. 아무튼 이들은 영월 동강 절벽 가까이까지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폐경기 증후군에 빠진 듯한 두 사내를 어루만지고 활력을 충전시키는 마당이 필요하다. 영월은 폐경기에 이른 두 사내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무대 노릇을 한다. 전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영월로 내려온 최곤은 작가가 써준 알맹이없는 수식어 멘트를 내버리고 자기 식대로 방송하면서 사고를 저지른다. 또는 자신의 잊혀진 끼를 발굴한다. 겨우 담배 심부름이나 하고 최곤이 때린 피해자 위로나 하던 박민수는 라디오 방송 벽보를 붙이고 홍보를 하면서 오랜만에 매니저 노릇을 한다. 외상값 독촉하는 다방 종업원, 취직 자리나 알아달라는 엉뚱한 백수, 심심파적거리인 화투 규칙을 확인하는 할머니, 집 나간 아빠 찾는 아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꽃집 총각 등 전화 연결된 영월 청취자들이 최곤의 무뎌진 감성을 흔든다. 순댓국집에 네명이 우르르 몰려들어가서 ‘순댓국 하나 소주 넷’을 시키는 괴짜 밴드 이스트리버(노브레인)가 자신의 우상 최곤을 접선하면서 마당엔 풍악까지 갖춰진다. 이제 영화는 관객의 소매를 끌거나, 관객은 스스로 소매를 잡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청취자들의 각양각색 사연에 최곤이 그 못지않은 엉뚱한 처방을 내리며, 카메라가 영월 청취자들의 다양한 표정을 잡아낼 때 이스트리버의 <넌 내게 반했어>가 이 낡아 보이는 마당극을 하나로 묶는다. 박중훈과 안성기의 차곡차곡 쌓여가는 연기가 마지막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는 걸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들의 연기는 빛나던 90년대의 전성기 가운데 몇 대목을 상기시킨다. 그들을 마음껏 놀게 할 이야기들이 요즘 퍽 드물었음을 깨닫게 만든다. 연극판에서 큰 배우인 정규수는 비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의 품을 익살과 연민어린 표정으로 메운다. 변두리에서 저물어가는 아저씨에게도 귀여움과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추석 종합선물 [4] - TV영화 추천작

징검다리만 잘 건너뛰면 정말 긴 연휴다. 만약 이 긴 연휴가 사막 위의 오아시스처럼 반갑게 느껴진다면 당신에게 이 글은 무용하다. 이 글은 온갖 잡일에 시달려 몸과 마음이 시들어버린 ‘추석 노동자’, 누구는 해외로 떠나는데 고향조차 내려갈 수 없는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 그리고 가족도 애인도 없이 추석 기분 낸답시고 홀로 전 부치고 앉아 있는 고독한 인간, 오직 이들을 위한 것이다. 청명한 가을, 남들 놀러갈 때, 어둠침침한 방구석에서 텔레비전이나 껴안고 있다고 자학하지 말자. 텔레비전, 맥주, 그리고 이미 본 영화라도 처음 보듯 즐길 수 있는 자세만 있다면 당신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아무리 <두사부일체>나 <몽정기>처럼 재탕, 삼탕, 백탕 된 영화들이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 당신의 감수성을 무시하더라도, 텔레비전을 끄지 말고 차라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온갖 꼬투리를 잡아 신나게 저주를 퍼붓자. 다행히 올해는 비교적 싱싱한 최근작들과 몇번을 봐도 나름의 미덕을 찾을 수 있는 작품들이 꽤 많이 준비되어 있다. 육체의 향연을 즐겨라, <쿵푸허슬>과 <싸움의 기술> 긴 연휴, 무기력해진 몸을 다스리는 데 고상한 요가보다 좋은 것이 있다. 아무 생각없이 현란한 몸의 향연에 마음을 맡기는 것. 성룡은 조금 지겹고 할리우드 액션은 짜증날 때, 주성치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우선 <쿵푸허슬>은 대단히 웃긴다. 주성치의 소심하지만 아름답고 노련한 액션은 물론이고 이름부터 황당한 돼지촌 곳곳의 에피소드들과 <희극지왕> <소림축구> 등 주성치 영화에 출연했던 일명 ‘성치 패밀리’들의 아우라가 당신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것이다. 주성치 혼자 각본, 연출, 제작, 주연까지 도맡은 작품으로 주성치의 천재성에 다시 한번 감탄해볼 기회다. 만약 완벽한 고수들에게 기가 죽는다면, 고수가 되기 위해 이리저리 터지는 <싸움의 기술>의 어눌한 소년에게 연민을 느껴보는 것도 괜찮다. 마음 여리고 육체 부실한 소년에게 세상은 가차없이 모질다. 그러나 독기와 증오심만으로 싸움의 승자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어차피 액션은 주성치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게 뻔하니, 차라리 ‘고수는 싸움의 기술만 터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인생 고수, 백윤식 선생의 카리스마에 주목할 일이다. 닭살없는 연애의 밑바닥, <연애의 목적>과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그렇지 않아도 외로운 마음에 부채질하냐고? 걱정 마시라. 이 두 영화에는 눈물 짜는 신파나 낭만적인 시선이 없다. <연애의 목적>에서 연애 뒤에 남는 건 사랑의 추억이 아니라 뻔뻔함(박해일)과 상처(강혜정)뿐이다. 사랑을 할 때는 한없이 불안하고 이별을 할 때는 구질구질해지는 것이 인간의 연애라고 영화가 한수 가르친다. 낯간지러운 사랑의 약속 따위는 없다. 한재림은 이 냉혹한 진실을 신인답지 않은 대범함과 예리한 관찰력으로 밀어붙인다. 그래도 강혜정과 박해일의 이상한 해피앤딩에 못내 기분이 상한다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유지태와 김태우, 성현아에게로 고개를 돌려보자.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희생과 순수 대신 위선과 가식과 나르시시즘과 거짓말로 둘러싸인다. 그 사랑은 지겹게도 반복된다. 연애의 밑바닥이 날것 그대로 드러날 때 우리는 그 사랑을 조롱하지만, 그 조롱은 화살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홍상수식 연애는 낄낄거림을 동반한 고통이다. 하지만 그의 연애 방식이 아무리 괴롭게 다가오더라도, 황정민과 전도연의 애절한 사랑을 보고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처량하게 우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선택이 아닌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편견을 버려! <슈렉2>와 <곰이 되고 싶어요> 고수들의 노련한 액션도, 아무리 괴로운 사랑 이야기도 반복해서 보다보면 심장의 반응은 게을러지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냉소하거나 더 강한 자극을 찾는 대신, 따뜻한 세상의 유쾌한 이야기를 찾아보자. <슈렉2>의 ‘겁나먼 왕국’은 당신을 지루함의 덫에서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다. 허니문에서 돌아온 못난이 초록 커플은 과연 왕국의 인정을 받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당나귀 덩키뿐만 아니라 새로 등장한 프린스 차밍, 역대 만화 캐릭터 사상 가장 귀엽게 느끼한 장화 신은 고양이까지 감초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스파이더 맨> <반지의 제왕> <귀여운 여인> 등의 화제작을 패러디하는 솜씨도 여전하고 톰 웨이츠, 닉 케이브,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이 부른 맛있는 노래는 이 귀여운 애니메이션과 놀랄 만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슈렉2>의 재기발랄함보다 감동적인 동화의 깊이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덴마크의 거장 야니크 하스트럽의 <곰이 되고 싶어요>가 어울린다. 이 애니메이션은 북극의 그린랜드를 배경으로 곰과 인간이 빚어내는 가슴 훈훈한 드라마다. 어린 시절 어미 곰에게서 자라 결국 인간 세상으로 보내어지나 다시 곰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의 모습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곰만 보아온 우리에게 곰의 세계를 열망하며 눈물 흘리는 인간은 심금을 울린다. 만화는 어린이들이나 보는 거라는 쓸데없는 오만과 편견을 저 멀리 날려주는 작품이다. 블록버스터를 저렴하게 즐기는 법, <캐리비안의 해적>과 <스타워즈> 시리즈 말이 필요없다. 굳이 줄거리를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연휴에 보는 블록버스터영화는 극장에서 먹는 팝콘 같은 존재다. 연휴 대박을 노리고 개봉한 얄미운 블록버스터들이 아니라 몇년 전에 이미 극장에서 한번 본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다시 한번 봐주는 것. 비디오로 빌려 다시 보기는 어색하고 시리즈인 탓에 DVD를 하나씩 사기가 어쩐지 망설여지는 블록버스터들을 이럴 때 부담없이 구경할 수 있는 건 텔레비전이 선사한 기회다. 더욱이 <반지의 제왕> 같은 단골메뉴에 지쳐갈 때쯤, 상대적으로 싱싱하게 느껴지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스타워즈> 시리즈는 반갑다. 가난한 마음을, 돈을 마음껏 바른 화려한 세트로 달래주고 눈이라도 호강시켜주는 건 어떨까. <캐리비안의 해적>의 영원한 마스카라 맨, 조니 뎁의 매력에 푹 빠져 보물을 찾아 환상의 세계로 떠나거나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떠올리며, 4, 5, 6편인 <새로운 희망>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을 한번에 복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검은 한복과 물방울 원피스의 미장센, <음란서생>과 <친절한 금자씨> 이 두 영화를 하나로 묶은 이유는 순전히 시각적인 측면에 근거한다. 어차피 한번쯤은 봤던 영화를 다시 볼 때, 그것도 연휴에 늘어지게 앉아 다시 관람할 때는 영화의 특정 부분에만 초점을 두며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카메라의 움직임을 끈질기게 쫓아가보든지 배우들의 연기력에 주목해보든지 영화의 음악이나 음향효과에 촉각을 세우든지 빛의 미세한 움직임을 찾아내보든지 선택은 보는 자의 몫이다. 탁월한 선택과 그 선택을 밀고 가는 끈기, 그리고 날카로운 시선이 영화를 보는 새로운 경지를 열어줄지 누가 알겠는가? <음란서생>과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주목할 요소들은 다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이 영화들의 세트와 주연 여배우의 의상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상영시간 내내 충분한 즐거움을 준다. 한석규와 이범수가 즐겨 찾는 오달수의 유기전 내부나 저잣거리 풍경은 고증에 따라 재현했다고 하지만 근대적인 분위기가 스며들어 독특한 영화적 공간으로 완성된다. 이영애가 출옥 뒤 거주하게 되는 좁은 공간도 강렬한 색채 대비 속에서 키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특히 이 두 영화에서 시각적 쾌감이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아름다운 의상들이다. 김민정이 입은 그 유명한 검은 한복이나 이영애의 촌스러운 물방울 원피스는 미장센의 일부가 될 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표현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이러한 효과는 ‘그녀들’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정성일의 가을 영화 산책 [1]

약간의 사연. 나는 간절하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영화는 내게 연애를 하자고 조르고 있었다. 그래서 책상에서 일어나 거리로 나오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너무 오래 책상에 앉아 있었다. 텔레비전이 보는 사람을 안방의 정주민으로 만든다면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거리를 쏘다니는 유목민으로 만든다. (들뢰즈가 아니라) 레지스 드브레가 한 말이다. 영화를 보러 달려가는 두근거리는 마음 혹은 보고 난 다음 지금 막 보고 나온 영화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영화는 오가는 길이라는 사유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나는 대부분 영화를 길에서 깨달았다. 나는 교실에서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 또다시 하염없이 긴 글을 쓸까 지레 겁을 먹은 김혜리 기자는 일단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에 안심을 했음이 분명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까스로 허락받은 산책. 나는 인터넷을 종료하고 영화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영화평은 영화 보는 경험의 연장 (그저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는) 산책의 대가들의 명단. 보들레르의 산책. 지가 베르토프의 산책. 모네의 산책. 알베르틴의 산책. 다이스케의 산책. 벤야민의 산책. 로셀리니의 산책. 도미오카와 유키코의 산책. 솔레르의 산책. 차이밍량의 산책. 홍상수의 산책. (고작해야) 그들을 흉내내고 있는 나의 산책. 더 솔직히 말하면 영화에 대한 메모만으로 가득 찬 산책-글쓰기는 내 오랜 꿈이었다. 나는 이러한 글쓰기를 세르주 다네의 (신문 <리베라시옹>에 1981년 7월18일 프리츠 랑으로 시작해서 1986년 1월24일 펠리니의 <진저와 프레드>로 연재를 마친) ‘영화-일지’(Cine-Journal)를 읽으면서 배웠다. 물론 나도 안다. 내가 아무리 해봐야 다네만큼 높이 상공 비행한 다음 내려다보지 못한다는 것을. 다네가 보여준 더 많이 보려는 욕망. 그는 어떤 영화는 슬로모션처럼 보아야 하며, 어떤 영화는 디졸브하듯이 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영화를 보는 내가 영화-되기. 지금 모두들 영화비평의 위기를 말한다. 지금 다시 떠올려볼 만한 다네의 유명한 제안, 영화에 관한 평이란 완전하게 불필요하다. 대중은 평 없이도 영화를 보고, 극장은 글 없이도 가득 채울 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평이란 잉여이다. 그런데 그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가? 그건 단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영화를 본 다음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영화에 관한 평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경험의 연장이며, 보충이며, 대리이다. 그러기 위해서 영화평은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겹쳐놓을 수 있어야 한다. 세르주 다네는 영화를 본 다음 정리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핵심은 그 인상을 보존하고, 그것만으로 버티는 것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의 중재. 그냥 영화를 본 다음 인상적으로 떠오른 생각들. 수첩을 가득 채운 두서없는 메모. 이 글은 그렇게 쓰여졌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척하다가 정말 바람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바람난 아저씨가 카바레를 떠돌듯이 영화관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아아, 바람난 영화야, 여기 아저씨가 왔다.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 그래서 급기야 마감일에 다시 한번 전화를 하고 말았다. 내 말도 안 되는 푸념을 들은 김혜리 기자는 한주 미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한 다음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그런데 몇매를 쓰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우물거리면서 대답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한 다음 누군가에게 분량을 의논하였다. 그러자 저 멀리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렸다. “진짜 그것만 쓴대?” 그 말이 들리는 수화기를 든 나는 저 멀리 끝나가고 있는 늦여름의 한강을 무심코 보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골뱅이가 나타나서 현서를 잡아먹었던 그 한 많은 강. 또 누군가가 뛰어들 강. 2006년 여름, 정치적 계절의 도래 물론 <괴물>은 아직도 상영 중이다. 나는 ‘(하지만…)’으로 글을 맺었고(<씨네21> 제 565호, ‘노골적이고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 그리고 허문영이 그 다음을 이어 썼다. 그 글은 내가 놓친 부분을 정확하게 찾아서 다시 쓰고 있다(<씨네21> 제566호, ‘끝까지 둔해빠진 새끼들은 누구인가’). 하지만 나의 ‘하지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좀더 정확하게 나는 서문을 쓴 것이고, <괴물>은 이제부터 더 이야기되어야 한다. <괴물>이 내게 가장 새로운 것은 이야기 구조에 있다. 봉준호는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인물들을 흩어놓는다. 혹은 일부를 빼낸다. (박희봉) 말하자면 여기에는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에 역행하는 배치의 분산화가 있다. 아니, 차라리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면서 편집은 점점 산만해지고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무언가를 회피하고 있다는, 이렇게 무책임하게 인상적으로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걸 말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인물이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책임을 떠넘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걸 말해야 하는 숏이 다음에 나와야 할 때 갑자기 영화는 다른 장소에 있는 다른 인물 신으로 달아나버리고 만다. 물론 술래는 괴물이다. 더 미룰 수 없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 말도 못하는 괴물의 차례가 돌아온다. 중심의 결여라고 할까, 주변의 점으로 이루어진 가운데가 빈 원형이라고 할까, 이 이상한 이야기의 진행 안에서 종종 이야기를 구경하는 것 같은 수평 트래킹 카메라는 분산되는 인물과 그걸 붙이려는 편집 사이의 무심한 매듭이다. 이를테면 괴물이 한강에서 뛰쳐 올라와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는데 그냥 무심하게 원효대교를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그걸 쳐다보는 승객의 수평운동의 시선. 나는 <괴물>에 대해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서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한 가지 더 지적할 점. <괴물>의 날씨는 박강두와 그의 가족이 병원에서 탈출한 다음부터 종잡을 수 없다. 심지어 한강 둔치로 들어가는 굴레방 다리를 지나기 전에 그렇게 내리던 비가 거길 지나가자마자 개어 있다. 그런데 여길 지나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걸어서도 1분이면 충분하다. 이 비현실성 혹은 초현실주의적인 날씨. 겨우 50m 이쪽과 저쪽이 마치 다른 도시처럼 보이는 거리. 나는 한강에 나타난 괴물보다 이쪽이 훨씬 신기해 보인다. 그런데 봉준호는 그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괴물>에는 무언가에 고착된 채 그걸 집행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요소를 끌어안고 거기서 눈에 보이는 광경만을 펼친다. 혹은 무언가 상상을 덧쓰려는 현실효과를 뿌리치려는 완강한 저항이 있다. 대중 안에 이데올로기의 폭탄을 던지는 것은 오늘날 그렇게 점점 상상이 환상을 덮어쓰는 방식으로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나는 <괴물>이 좀더 많은 질문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질문을 온통 돈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대한민국 영화담론의 빈곤함이다. 아무래도 <괴물>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질문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다세포 소녀> 하지만 여기 나는 한편을 더 추가하고 싶다. ‘B급 달궁’(이라는 예명을 쓰는 채정택 작가)의, 얼짱 김옥빈의, 혹은 이재용의 <다세포 소녀>는 건드리기도 전에 끝났다. 이 영화를 말할 때 성 정치학이나 장르의 혼합, 혹은 패러디를 말한다. 하지만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에 대해서는 애써 질문을 피한다. 그 반대로 나는 이 소녀가 가장 궁금하다. ‘B급 달궁’의 원작에서는 주변 인물에 지나지 않는 이 소녀가 갑자기 이야기의 중심에 왔을 때, 그래서 계급모순이 중심에 올 때 성 정치학은 왜 창백해지는가? 왜 이 영화에는 도착은 있는데 전복이 없는가? 혹은 성에 대한 애착만큼 프롤레타리아를 사랑하는 것은 왜 불가능한가, 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걸 이재용이 질문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질문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성애자 앞에서 트랜스젠더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받는’ 타자이지만, 부자 앞에서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사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괴물>을 본 다음 <다세포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올 여름, 마침내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도래하였다. 혹은 <괴물>은, <다세포 소녀>는 2006년, (평화로운 국면인 척하는) 대한민국을 (계급모순과 반식민지 분단체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 아래 놓인) 대한민국답게 만들어주고 있다.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를 한다고 한다. 다가올 미래 앞의 기기묘묘한 예고편. 내년 대통령 선거는 괴수와 싸우는 영화가 될까, 아니면 정치적 복장도착의 뮤지컬이 될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야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지난여름이 끝나기 전 몇편의 영화를 더 보았다. 먼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 두편을 모두 본 것은 <파이란> 때문이다. 나는 <파이란>이 지닌 통속성에의 향수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해에 <순애보> <봄날은 간다> <번지점프를 하다> <소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나왔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나는 지금 멜로드라마만 열거한 것이다(그해에 가장 대중적인 영화는 <친구>였다). 이 명단은 예외없이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사랑을 잃지 않는 행위를 선택한다. 그것을 우리 시대의 쿨한 사랑법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파이란>은 갑자기 낭만적 사랑의 제스처를 택한다. 거의 복고취향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통속성. 나는 이 반시대적 연애영화의 행위가 너무도 용기있어 보여서 그걸 방어해야 한다는 어떤 만족을 얻었다. 그러나 그 만족은 어떤 망설임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파이란>을 본 다음 이 영화의 장점이 (김해곤의) 시나리오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송해성의) 연출 몫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해성이 <카라>로 데뷔한 것은 (적어도 내게) 악재로 작용하였다. 세 번째 영화 <역도산>은 송해성보다는 어딘가 (이 영화를 제작한) 차승재의 영화처럼 보였다. 그런 다음 <우리들의…>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연애…>을 먼저 보고 난 다음 보게 되었다. 결과는 좀 이상한 방식으로 대답하였다. 이 두편의 영화는 <파이란>을 둘로 나눈 것 같았다. 둘 다 거의 벼랑까지 밀고 간 다음 눈물을 요구했고, 둘 다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바닥을 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둘 다 사랑에 빠진 커플에서 남자쪽에 기대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신파조 이야기 안에서조차 그래도 산다는 문제를 붙들고 늘어지는 끈덕진 장점은 김해곤의 것이었고, 강재라는 남자에게 부여한 피와 살은 송해성의 것이었다. 먼저 <연애…>. 영운은 비루하지만 그만큼 흥미있는 등장인물이다. 그러나 <해변의 여인>의 김승우를 ‘직전에’ 먼저 본 것은 김해곤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홍상수는 일단 자기 영화 안에 배우가 들어오면 거의 일그러뜨리다시피 한 다음 자기 이야기 안에서 반쯤 자백을 하듯이 연기하게 만든다. 그의 영화는 배우에게 일종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그리고 그걸 점점 더 잘한다. 문제는 그게 너무 인상적이어서 다른 영화에 그 배우가 나올 때 그렇게 홍상수 마음대로 구겨지고 이리저리 잘라낸 이미지가 남아서 (혹은 복원되지 않아서) 남의 영화 안에서 홍상수 영화 속의 인물의 이미지와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김승우는 이상하게 이야기의 시선이 잘 투영되지 않는다. 홍상수는 그걸 안 다음, 이를테면 세 그루의 나무 앞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려도 김승우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같은 자리에 김태우는 갈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연기의 문제가 아니라 모델의 문제이다. 그런 다음 홍상수는 재빨리 고현정과 송선미에게 응시의 자리를 돌려서 문숙과 선희를 번갈아 그 곁에 앉혀놓고 그 앞에서 김승우에게 말하게 만든다. 그때 김승우는 항상 보는 대신 보인다. 그러나 <연애…>에는 그럴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술집 여자 연아(장진영)는 보는 사람을 설득시키기 매우 힘든 등장인물이다. 그러므로 이 인물을 믿을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영운이 동원되는 구조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혹은 연아라는 인물의 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은 영운뿐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연아는 영운의 환상의 대상이다. 그런데 연아쪽에서 영운을 보게 되면 이 주관적인 감정선을 객관적으로 노출시킬 위험과 만날 수밖에 없게 된다. 왜냐하면 납득할 수 없는 연아쪽에서 영운을 볼 때 이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이비) 브레히트적 조건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물을 믿을 수 없을 때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연애…>는 그 상황이 가슴 아프게 우습지만, 그 안의 인물들이 그 상황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 끝내 떨치지 못한다. 그러면 그걸 보는 나는 무엇을 구경해야 할까? 연민으로 끝나고 마는 눈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우리들의…>는 비슷하면서 다른 문제에 부딪힌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강동원은 ‘완전소중’이다. 얼마나 멋있는지 죄수복을 입어도 빛이 난다. 곁에 선 이나영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강동원이 그저 슬쩍 슬픈 표정을 짓는 게 더 안쓰럽다. 게다가 이 형무소는 차라리 기숙사처럼 보인다. 지난해 추석에는 하지원이 그 곁에서 울었고(<형사 Duelist>), 올 추석에는 이나영이 옆에서 울고 있다. 내년에는 누가 그 옆에서 또 울까? 그러나 영화 속에서 누군가가 우는 것과 그걸 보는 내가 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송해성은 잘 울리지 못한다. 그의 재능은 울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는 것을 보는 데 있다. 그는 남자가 우는 걸 가장 잘 보는 감독이다. <파이란>은 그 순간과 만날 때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최민식도 강재에게 공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최민식은 전형적인 메소드 액터이다. 그는 지나치게 강재 안까지 들어갔다. 그런 다음 최민식은 강재에게서 나오기 위해서 거의 몸부림을 쳤다. 오대수라는 인물을 선택한 것은 배우로서 일종의 자살이다(<올드보이>). 그렇게 해서라도 강재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반대로 강동원은 사형수 정윤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세상은 공평하다. 지나치게 멋있는 남자들은 모델은 잘할 수 있지만 배우는 힘들게 한다. 강동원은 좀더 부서져야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연기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근사해서 문제다. 그렇다고 모델로서 그 인물을 흉내내기에는 정윤수가 던져진 상황이 너무 드라마틱하다. 마지막 선택. 그렇다면 강동원은 정윤수 그 자신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공지영은 소설을 쓰면서 정윤수를 그려낼 때 단 한번도 강동원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맹세를 해도 좋다. 강동원과 정윤수는 인생에서 거의 공집합이 없는 삶을 살아오다가 여기서 처음 마주쳤을 것이다. 브레송의 유명한 말. 영화에는 두 가지 인물이 있다. 하나는 인물을 배우가 흉내내는 것, 또 하나는 인물이 모델을 닮는 것. 잡으러 가기와 잡아당기기. 모델이 강동원일 때 정태성은 그를 잡으러 왔다(<늑대의 유혹>). 하지만 모델이 정윤수일 때 강동원은 그를 자기 안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송해성은 정윤수의 눈물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거기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정윤수가 아니라 강동원이다. 그때 눈물은 오로지 가련한 연민으로 끝난다. 하지만 <우리들의…>는 사랑이 아니라 죽음을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죽음의 두 가지 측면, 자살과 사형은 이나영과 강동원의 눈물을 경유하여 삶의 상실이라는 슬픈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사랑의 상실은 삶의 상실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눈물은 이미 주어진 현실을 얼룩진 왜상으로 만들어 진실을 보도록 도와주지도 않는다. 눈에 머물지 못하고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 세상을 보는 대신 이야기에 내던져진 슬픈 눈물. ‘안습’ 내기. 눈물은 영혼을 비쳐 보이거나 그 반대로 감정을 증발시켜버린다. 매우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 둘이 함께 만든 <파이란>이 그 두편의 영화 어느 쪽보다 좋다. 그러나 <우리들의…>에 대해 쓰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내게 <연애…>를 쓰는 것도 그만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지만 너무 많은 영화가 어른거린 <천하장사 마돈나> 이해영과 이해준의 첫 번째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는 재미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시나리오작가에서 시작한 사람들답게 보는 내내 이미 정해진 결론까지 가면서도 작은 반전의 대목들을 기습적으로 배치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너무 많은 영화들이 어른거린다. 이를테면 어쩔 수 없이 수오 마사유키의 <으랏차차 스모부>. 게다가 트랜스젠더 ‘이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후’에 대해서 어떤 작은 대답조차 할 생각이 없는 이 영화의 태도는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을 결국 구경거리로 만들고 말았다(그들은 그 후일담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그만두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윤리적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철희의 <예의없는 것들>은 왕가위의 <타락천사>의 두 이야기를 샘플 리믹스한 것 같다. 말을 못하는(금성무) ‘킬라’(여명). ‘그녀’(윤지혜)는 막문위를 흉내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다행히 ‘망기타’는 흐르지 않는다. 조범구의 <양아치어조>는 좋지는 않지만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이 영화에는 날을 세운 감정의 칼과 그것에 찔린 다음에도 그걸 참아내는 포옹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가 멀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영화 <뚝방전설>은 좀 어리둥절했다. 내가 그의 첫 번째 영화를 잘못 보았든지 아니면 영화에 대한 그의 생각이 바뀌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새 도망친 여름. 스튜디오로 귀환한 타르코프스키의 세계 <리턴> 가을이라고 느꼈을 때 처음 본 영화는 안드레이 즈비야긴체프의 <리턴>이다. 이 영화는 임상수의 <바람난 가족>이 베니스영화제에 간 해에 황금사자상을 받은 데뷔작이다. 좀 이상한 표현이지만 이 영화는 ECM영화다. 집 떠나간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아들 앞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레닌 ‘이후’ 러시아영화에서 줄기차게 반복해서 다루어온 억압에의 귀환이다. 말하자면 서방세계의 아버지와 달리 러시아영화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정신분석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 무게가 더 크다. 이미 많은 영화들이 그러한 화법을 택했고, <리턴>은 그러한 전통에 기대어 진행된다. 그러나 즈비야긴체프가 새로운 것은 그 앰비언트 사운드의 디자인이다. 돌아온 아버지가 두 아들과 집을 떠난 다음 모든 장면은 야외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사운드는 거의 밀폐된 것처럼 완전하게 통제된 스튜디오 안에서 작은 소리들을 일일이 만들어서 장면 안에 배치하였다. 그때 이 사운드의 느낌은 ECM 음반을 들을 때의 그 차가운 명징함과 소곤거림, 어떤 노이즈도 없는 제로 상태, 허락되지 않는 잔향효과, 모자이크에 가깝게 편집된 선율의 카탈로그, 어떤 작은 팬 홈도 남겨두지 않은 채 매끈하게 다듬어진 방음효과 안의 공간에 초대받은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즈비야긴체프는 그렇게 아버지의 대지를 스튜디오의 영토로 만들고 있다. 여기서 시간은 음향 안에 있다. 그 안으로 돌아온 리듬적 인물과 그 속으로 떠나는 선율적 풍경. 그때 세상은 하나의 음향-기계처럼 느껴진다. <리턴>은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귀환의 실패이다. 물론 미학적 실패가 아니라 그 목적론의 실패라는 의미에서이다. 여기에는 타르코프스키가 소망하는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지나가는 시간(의 경험) 안에서 되찾을 수 있다는 낭만주의적 희망이란 없다. 아버지가 돌아오지만 그는 상자를 되찾은 다음 미처 열지 못하고 예상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므로 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버리고 영화의 기호들에 우리의 감각을 열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때 타르코프스키와 즈비야긴체프는 둘 다 바람에 관심이 많다. 타르코프스키는 심지어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바람을 만들어 들판의 나무를 뒤흔든다. 하지만 즈비야긴체프는 여기서 바람에 움직이는 나무를 찍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바람 소리를 들려준다. 혹은 자연 속에서 찍은 이미지를 일일이 DI 작업을 해서 디지털 풍경으로 만든다. 그때 타르코프스키를 연상케 하는 이 여행은 정반대로 기계적인 녹음으로 배열된 음향과 이미지로 자연을 인공의 영토로 코드화한다. 흐루시초프 혹은 브레즈네프 시대를 산 타르코프스키는 스탈린 시대의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아버지들이 이미 죽었거나, 유령이거나, 끝내 돌아오지 않거나, 바보이거나, 미쳐버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푸틴 시대의 즈비야긴체프는 고르바초프 시대의 아버지를 우스꽝스럽게 기다린다. <리턴>의 질문은 아버지가 왜 돌아왔느냐가 아니라 왜 떠나갔느냐, 에 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지 않는다. <리턴>은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음울한 유머이다.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홍상수 영화 <해변의 여인> 그 다음. 안 쓰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냥 몇 가지 메모. 홍상수의 일곱 번째 영화는 장 르누아르가 미국에 가서 1946년에 찍은 첫 번째 영화와 제목이 같다. 그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인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홍상수는 해변가 빌라 이층에 빌린 중래의 방을 중심에 놓고 복잡한 동선을 그은 다음 그 사이를 넘나들거나 되돌아오거나 혹은 쳐다보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때 불투명한 문과 커튼 사이로 (반)투명한 창문은 프레임의 숨바꼭질을 위한 알리바이가 된다. 갑자기 프레임의 일부가 안 보이거나(저 문 너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혹은 프레임의 일부가 구멍이 난 것처럼 뚫려서(창문 너머에 있는 저 여자는 누구일까) 프레임 안에 프레임이 보인다. 말하자면 건축이라는 질료성을 영화적 투시도법의 미장센으로 다시 구성한 장 르누아르의 화면과 동선. 문과 창문. 사실 그 둘은 모두 구멍이다. 프레임의 막힌 구멍과 뚫린 구멍. 여기서 막힌 문은 분리에 실패한 소외이며 그 창문은 소외당한 욕망의 블랙홀이다. 그때 그 방문과 창문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루이스 브뉘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미처 닫히지 않은 문 사이로 개미들이 기어나오는 구멍 뚫린 손이다. <안달루시아의 개>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가에 부서진 상자가 보이고 난 다음 모래에 파묻힌 두 남녀가 보이자 거기 “봄날에”(au printemps)라는 자막이 떠오르면서 끝났다는 사실을 떠올리시길. <해변의 여인>은 이제까지 그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가까이 초현실주의에 기대고 있다. 심지어 그게 좀 아슬아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가 비유에 기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이미 당신께서 읽었을) 두개의 글을 읽고 나는 홍상수를 배운다. 김소영은 두명의 중래를 놓고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표면 위의 기호의 싸움을 본다(<씨네21> 제569호, ‘영화적 재미의 새로운 경지’). 이를테면 “(중략)… 우연성을 필연으로 엮어내는 서사가 영화감독 중래의 강박관념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문숙과 선희가 닮았다고 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진술은 둘을 함께 목격한 식당주인, 그리고 선희에 의해 반복된다. 그러나 이 반복으로 가는 대한(??) 의미화로 가는 대신 영화의 서사적 추동성은 문숙이 이것을 잘라내는 중단, 정지로 간다. 그녀는 중래를 놀리듯 말한다. 나는 반복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나는 이 대목을 읽다가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읽었다. 기호의 반복과 서사(-운동의) 중단. 혹은 정지. 반복 안의 중단. 사유하도록 강요한 다음 다시 이야기 안으로 끌어(attractive)들이기. 홍상수의 내밀한 몽타주.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 나는 항상 남의 글을 읽고 배운다. 그때 배움은 여전히 나의 행복함이다. 그런 다음 허문영은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듯한 더할 나위 없이 예를 갖춘 사랑이 그윽한 향처럼 번져나오는 글을 썼다(<씨네21> 제 560호, ‘남자와 여자와 개의 시간’). 허문영은 여기서 이상하게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해변의 개’를 끌어안고 개의 자리를 둘러싼 인간의 형상에 대해서 <해변의 여인>을 거의 다시 쓰다시피 했다. 나는 이 개가, 그러니까 ‘돌이’, 혹은 ‘똘이’, 또는 ‘바다’가 <해변의 여인>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라고 믿는다. 나는 두개의 글을 읽은 다음 그 ‘이후’에 또 쓰는 건 중언부언이야, 라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나는 <해변의 여인>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훔치면서 배운다. 이것이 8월 말, 9월 초의 나의 첫 번째 배움이다.

정성일의 가을 영화 산책 [2]

동해로 향하는 서해안의 여인 다만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생각. 서해안에 가서 찍은 이 영화는 서울을 꼭짓점으로 한 다음 지정학적으로 남서쪽에 가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도 그 세 사람이 도착해서 바다를 바라볼 때 이상하게 자꾸만 동해안에 가서 진행되는 것처럼 90도 상상선을 그은 다음 그들을 바라보고 왼쪽 45도에 카메라를 세운다. 그런데 <강원도의 힘>에서는 강원도의 바닷가에 가서 반대로 진행하였다. 지숙은 그녀의 두 친구와 함께 강원도 해변가에 간다. 짧은 신이지만 여기서 <해변의 여인>과 거의 동일한 장면이 나온다. 그녀들은 해변에 도착해서 바다를 본 다음 돌아서 모텔을 보는데 그 앞에 웬 말이 서 있다. 주인은 이 말 이름을 ‘주필이’라고 가르쳐주는데 지숙의 친구는 그 이름을 듣고 “주피야, 주피야, 넌 어쩌다 여기까지 왔니”라고 묻는다. 그런 다음 다시 그 세 사람은 해변가에 앉는다. 그런데 카메라는 구태여 그녀들을 마치 서해안에 온 것처럼, 그러니까 이번에는 상상선의 오른쪽에 가서 보여준다. 바다는 건물이나 길과 달리 고정된 것이기 때문에 마스터 숏으로 방향을 정하면 그걸 반대로 틀어놓기 매우 힘들어진다. 나는 <강원도의 힘>을 보았을 때 이 신이 너무 이상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실 난 이런 장면을 만나서 설명이 안 되면 거의 못 견디는 쪽이다. 이 장면에서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홍상수는 아직 영화에 서투른 예술가이거나(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 힘>은 에릭 로메르 ‘이후’에도 새로웠다) 아니면 그 스스로의 이미 완성된 세계 안에서 결론을 갖고 영화를 시작한 셈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시행착오란 없다. 이미 그는 영화에 대해 결론을 내렸고, 다만 그 안에서 반복의 역설 아래 차이로서의 반복과 반복 안의 차이 사이를 오갈 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내기를 미루었다. 그런데 꼭 10년 만에 <해변의 여인>으로 서해안에 간 홍상수가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바다 앞에서 반대로 진행할 때 어떤 쇼크를 받았다. 홍상수는 <강원도의 힘>에서 해변가를 ‘서해안의 힘’처럼 보여준다. 그런데 <해변의 여인>은 내게 <동해안의 여인>으로 보인다. 나는 문숙의 차가 마지막 마지막 신에서 지정학적으로 서해안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가다가 갑자기 수렁에 빠진 다음 두 남자의 도움을 받아 거기서 빠져나오자마자 갑자기 유턴을 할 때 아니, 여기서 유턴을 할 거면 뭐 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라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여기는 길도 아니고 모래사장 한복판이다. 나는 거기서 차를 수렁에서 건져주는 두 남자 대신 그녀 스스로 ‘똥차’라고 부른 하늘색(푸른 바다색?) 마티즈의 유턴을 보았다. 그때 서해안을 가던 차는 유턴을 해서 천연덕스럽게 동해안처럼 되돌아간다. 이때 나는 가까스로 되찾은 긍정된 세계로부터 재빨리 다시 물러나는 홍상수를 본다. 똥차 혹은 버림받은 개. 개의 예와 아니오와 문숙의 예와 아니오. 그것은 되돌아오는 것일까, 나아가는 것일까.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 변덕스러운 봄날의 뿌연 공기. 김기덕에 대한 작은 연대 나는 <해변의 여인>을 본 다음 막 개봉한 김기덕의 <시간>을 다시 보러 갔다. 그러는 동안 김기덕은 소란의 한복판에 외롭게 던져져 있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거의 개의치 않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영화이지 그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사회가 끝난 다음 이루어진 기자회견을 거의 소설로 각색한 기사에 항의하는 배급사의 회견 전문을 다운받았고, 심야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100분 토론>을 산만하게 보았고, 그 방송이 끝난 다음 김기덕이 연합통신에 보낸 메일 전문을 읽었다. 김기덕은 네이버 조회 인기검색어에도 올라왔다. 김기덕의 메일에 달린 글은 그의 영화에 대한 글보다 더 많았다. 심지어 그 메일에 수능시험 논술고사 채점하듯이 문장 단위로 일일이 토를 단 기사마저 있었다. 김기덕은 텔레비전 인터뷰에 응한 다음 “나는 언론을 실험용 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누가 누구를 조롱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까지 가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다시 보는 <시간>은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텅 빈 영화관에는 나를 포함해서 8명이 쓸쓸하게 앉아 있었다. 조롱의 게임은 누가 바보인지를 놓고 벌이는 내기였다. 대답은 둘 다이다. 그것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 수가 무심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의 개봉을 촉구하기 위한 격문의 형식을 빌려 단지 줄거리 소개만 했기 때문에(<씨네21> 제549호, ‘반복 안에서 찾은 새로움: 김기덕 감독의 신작 <시간>을 최초로 보고 쓰다’), 좀더 안을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영화에 가장 따뜻한 글을 쓴 사람은 남다은이다(<씨네21> 제566호, ‘죽음만 남을 때까지 계속되는 반복’). 하지만 <시간>이 한국에서 개봉한 것이 김기덕에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 이제는 솔직하게 판단하지 못하겠다. 꼭 내가 쓴 글 때문에 개봉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 일정 정도 개입한 글을 쓴 나는 이 황량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그저 쳐다보았다. <시간>에 대한 담론은 정작 빈곤하기 짝이 없었고 모두들 김기덕의 말에 대한 주석에 매달려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걸 보는 내 느낌은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침을 흘려가면서 물어뜯듯이 매달린다는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렇다고 그 주석에 어떤 집요한 성찰이 있거나 혹은 그 말을 경유하여 영화 안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물론 김기덕의 영화를 싫어할 수 있다. 그러나 싫어하는 것이 김기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걸 혼동하면 안 된다. 나는 할 수 없이 김기덕의 열네 번째 영화를 보기 위해서 칸이나 베니스 혹은 뉴욕, 어쩌면 도쿄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갈 것이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서울에서 다시 ‘개봉’할 때까지 나는 더이상 그의 ‘새로운’ 영화에 대해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것이 김기덕에 대한 나의 작은 연대이다. 오즈의 계절에 듣는 밥 딜런의 음악 그런 다음 잠시 망연자실하게 돌아보았다. 이제 막 여름이 끝나고 가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 사이. 늦은 여름 혹은 이른 가을. 말하자면 오즈의 계절. 지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노래다. 밥 딜런의 (‘공식 해적음반’ 연작을 제외하고, 그러나 5장의 라이브와 그레이트풀 데드와의 라이브와 한장의 사운드트랙을 포함해서) 39번째 앨범 <모던 타임스>는 그냥 한마디로 심금을 울린다. 이 앨범은 누구나 연상하듯이 채플린의 그 유명한 마지막 무성영화와 같은 제목이다. 하지만 밥 딜런이 여기서 채플린에게 오마주를 바치거나 패러디를 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떠올리자면 채플린이 토키시대에 끝까지 무성영화로 저항한 것처럼 밥 딜런은 여기서 ‘옛것이지만 근사한’ 재즈 블루스 백 밴드에 기대어 중얼거리면서 노래한다. 그는 이번에는 엘모어 제임스와 윌리 브라운, 머디 워터스, 로버트 팻웨이 혹은 토미 존슨 사이 그 어딘가에서, 말하자면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의 탁류에 몸을 내맡기고 세션 맨들과 어울려 흘러가듯이 노래한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로니 존슨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세 번째 트랙에서 느닷없이 머디 워터스처럼 <롤링 앤 텀블링>을 노래할 때는 이상하게 걷잡을 수 없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밥 딜런의 모든 앨범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거의 동시에 데뷔한 폴 매카트니의 행보와 비교하고 있으면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역사의 실패를 노래하는 고다르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 나는 똑같은 마음을 고다르에게서 느낀다. 광화문에서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을 막 보고 나오면서 고마워, 고다르, 라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두 영화를 마치 동시상영처럼 보여주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자리에 있다. <사랑의 찬가>는 일상의 물건들이 이미지가 될 때 우리로 하여금 지금 우리가 우주의 질서 안에 살고 있다는 숭고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때 고다르는 단지 숭고함의 물신주의에 매달리는 대신 이미지가 덧없이 영화라는 시간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다루면서 이미지를 다루는 영화의 운명과 임무에 대해서 계속 질문한다. 고다르의 영화를 보려면 무엇보다도 질문을 견뎌야 한다. 질문은 고다르에게 영화의 존재 이유이다. 아니, 차라리 고다르의 카메라가 사물의 이미지를 건드릴 때 세계가 질문을 던진다, 라고 말하는 편이 맞다. 반대로 <아워뮤직>은 이미지의 교육학이라고 부르게 만든다. 그건 반드시 ‘연옥’편에서 고다르가 하워드 혹스의 <그의 여자 프라이데이>를 텍스트 삼아 숏과 상대 숏의 관계에 관한 긴 강연을 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미 이 토픽은 1963년 장 피에르 우다르가 로베르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을 본 다음 (라캉의 ‘봉합’(suture) 개념을 빌려) 문제제기를 하였고, 그때 고다르는 이미 나나가 드레이어의 <잔다르크의 수난>을 보다 말고 갑자기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비브르 사비>를 찍은 다음이다. 핵심은 왜 그걸 지금 다시 끌어들이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이 이야기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역사적 관계, 그에 영화가 대응하는 판타지와 다큐멘터리, 그런 다음 숏과 상대 숏의 비대칭성이라는 삼항 관계로 놓고 진행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그리고 이 영화는 단테의 <신곡>을 빌려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삼부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 고다르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진행 중인 역사가 변증법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고다르는 실패한 것이 역사이지 변증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진행이 중단된 모순으로서의 상대 숏, 좀더 정확하게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물어본다. 상대 숏으로서의 팔레스타인. 안티테제가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변증법은 잘못된 종합명제로서의 천국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아워뮤직>의 ‘천국’은 불길하다. 말하자면 주한미군에게 ‘작통권’을 갖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우파들이 날뛰는 대한민국은 고다르에게 21세기의 천국이다. 제국의 천국. 역사 속의 이미지들은 지옥의 피에 젖어들고, 현재 진행 중인 연옥의 이미지들이 모순의 불평등에 시달릴 때, 미래의 천국은 미군의 이미지들이 점령할 것이다. 그것이 고다르가 부르는 ‘우리의 음악’(notre musique)이다. 음악은 아직 (혹은 영원히) 도래하지 않은 이미지를 부르는 호명이다. 그렇게 노래하는 고다르와 밥 딜런. 나는 이 두 사람을 같은 해에 ‘발견’했다. 그런 다음 그들의 새로운 영화 혹은 노래를 기다리면서 살았다. 때로는 실망했고, 때로는 의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항상 나보다 훨씬 멀리 나아갔다. 그걸 뒤쫓아가면서 나는 배우고 또 배웠다. 그 안에 있는 앎의 비밀. 아니 차라리 세계라는 비밀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기호. 지치지 않는 사랑. 앎과 사랑 사이를 연결하는 긍정. 그 사이(entre). 그 둘이 연결될 때 배움의 느낌이 불러일으키는 상위형식의 비밀에 대한 간절한 궁금증. 그 형식 안에서 활동하는 나의 능력의 한계가 안겨주는 슬픔. 그러므로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사랑의 찬가>와 <아워뮤직>을 보면서, 혹은 밥 딜런의 <모던 타임스>를 들으면서 또 배운다. 이것이 이번 이른 가을의 두 번째 배움이다. 디지털카메라의 놀라운 클로즈업 <퍼펙트 커플> 그리고 종로에서 짧은 축제가 있었다(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는 이미 끝났다. 멀어서 오지 못한 것은 유감이지만, 게을러서 보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일곱 번째를 맞는 서울영화제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올해가 가장 재미있었다. 나는 영화가 지나치게 자기를 뽐내거나(실험영화들), 반대로 너무 겸손해할 때(미디어로서의 영화들) 흥미를 잃는다. 물론 그걸 더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 취향을 말하는 중이다. 영화는 세상과의 긴장을 유지할 때, 그래서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내가 개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생각이 활동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한다. 결국 영화는 어떤 자세로 세상을 보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어떤 자세를 선택할 때 거기서 진실을 볼 수 있느냐는 선택의 내기이다. 영화와 세상 사이를 중재하는 자세와 거리. 스와 노부히로의 <퍼펙트 커플>과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더 선>은 동시상영처럼 볼 필요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마이클 만의 <마이애미 바이스>를 더하고 싶다. 본 것은 내게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스와와 소쿠로프는 자기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든다. 스와 노부히로는 지금 막 이혼을 결심한 부부의 이틀간의 감정적인 위기를 다룬다. 소쿠로프는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한 다음 유폐되어 살고 있는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다(그리고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의 두 형사를 다룬다). 이 세개의 인물 다루기 사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셋 다 디지털카메라로 인물에게 다가간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로 다가갈 수 없는 거리까지 바짝 다가간다. 그 놀라운 클로즈업이 전혀 다른 내용, 전혀 다른 스타일, 전혀 다른 인물에게서 동시에 벌어진다. 이때 클로즈업은 카메라와 얼굴 사이에서 그 이전에 한번도 본 적 없는 거리를 창조한다. 나는 이미 마이클 만에 대해서는 말했다(<씨네21> 제568호, ‘눈물과 매직 아워’). 그러므로 그 뒤를 이어 스와 노부히로,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퍼펙트 커플>은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을 파리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다. 스와 노부히로는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세 번째 영화 에서는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자기 방식으로 리메이크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알랭 레네에게 보내자 레네는 “편집이 되지 않은 영화를 왜 내게 보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우스꽝스럽게 들리는 일화는 스와 노부히로 스타일을 간단하게 설명해준다. 스와 노부히로는 영화에서 데드 타임을 그냥 내버려둔다. 그는 로셀리니보다는 존 카사베츠에 더 가깝다. 그래서 장면은 때로 배우에게 맡겨지고 종종 한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영화는 1시간44분 동안 고작 44숏이다(중간에 나오는 검은 자막은 셈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게 한신을 한숏으로 찍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 그렇게 찍기는 했지만 그러나 갑자기 장면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같은 방을 쓰다가 다른 방으로 옮긴 아내 마리를 찾아 남편 니콜라스가 찾아간 장면에서 갑자기 숏을 나누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스와 노부히로는 고정된 카메라로 롱테이크로 찍을 때는 소통의 단절을 보여주다가 그들의 대화가 소통될 때 갑자기 나누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영화의 비밀은 롱테이크나 멈춘 카메라에 있지 않다. <퍼펙트 커플>에서 이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은 카롤린 샹페티에의 카메라와 그 카메라와 거의 혼연일체가 된 동시녹음 기사 장 클로드 로뢰가 들려주는 미세한 소음들이다. 카메라는 멈춰 서 있는데 사운드의 붐마이크는 이리저리 옮겨다니고 있다. 그래서 어떤 장면은 마치 후시녹음을 한 다음 폴리를 한 것처럼 제한적이고, 어떤 장면은 카메라는 이쪽에 와 있는데 붐마이크는 저쪽에 있어 카메라와 붐마이크가 숏과 상대 숏의 역할을 한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마리가 로댕의 조각이 있는 미술관에 들를 때다. 그때 장면은 모두 실내에서 진행된다. 그런데 이 실내를 두개의 전시 공간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때 카메라와 붐마이크는 공간이 오픈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 안에 누군가가 들어와야만 그 존재를 인정한다. 말하자면 장소가 지닌 물질성과 붐마이크가 갖는 질료성 사이에서 카메라가 그것을 중재한다. 그 안에서 스와 노부히로는 이혼을 앞둔 불안한 마리가 불멸의 예술품으로 남아 있는 로댕의 조각상이 주는 영원성과 우연히 어린 아들과 함께 거기를 찾아온 옛날 고등학교 동창이 자신의 아내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삶의 소멸 사이에서 겪는 심리적 동요를 끌어낸다. 영화는 두번 아내 마리와 남편 니콜라스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간다. 그런데 카메라가 너무 가까이 가서 표정을 알 수가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그때 이 얼굴은 말 그대로 풍경처럼 보인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 <더 선> 세 번째.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매우 난처한 세명의 인물의 연작을 찍었다(아마도 이 연작은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 하나는 레닌을 다룬 <몰로크>이고, 그 다음은 히틀러를 다룬 <타우르스>이고, 그리고 <더 선>은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그들의 결정이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다루면서 소쿠로프는 그런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미 전쟁은 끝났고, 히로히토는 작은 도서관에 유폐된 채 지낸다. 마치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러운 그의 뒤뚱거리면서 걷는 모습은 미군 점령관 맥아더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그는 중얼거린다. “내가 저런 인물을 또 어디서 보았을까?”), 여전히 히로히토를 모시는 가신들은 그를 ‘태양의 신’으로 생각한다. 전쟁에 진 것은 인간인 신하들의 책임이며, 여전히 신인 동시에 일본 그 자체인 히로히토에게 누가 될까 인의 장벽을 친다. 그래서 히로히토가 국민들에게 알리는 담화문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전쟁에 책임을 진다”는 녹음을 한 젊은 남자는 그 녹음과 함께 할복자살한다. 그때 소쿠로프는 시종일관 이 영화를 거의 꺼져버릴 듯한 어둠 속에서 진행한다. 그래서 이미지들은 ‘일본의 태양’인 히로히토가 마치 금방이라도 꺼져서 어둠이 세상을 삼켜버릴 것처럼 희미한 빛과 거의 화면 전체를 지워가는 그림자로 가득 차 있다. 사실 그 태양은 꺼져야 한다. 그러나 히로히토는 희미하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을 온전히 드러내는 유일한 빛이다. 이 영화에서 다른 등장인물들은 얼굴의 일부가 그림자들이 갉아먹은 것처럼 지워져 있지만 히로히토의 얼굴은 항상 온전하게 보인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는 이 인물을 소쿠로프는 자신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따라간다. 그때 소쿠로프는 ‘감히’ 히로히토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신이 가질 수 없는 삐죽대는 뻐드렁니와 주름 잡힌 피부를 거의 만질 것처럼 본다. 거기엔 어떤 신화도 없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가서 인간의 얼굴을 드러낼 때, 그래서 그가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볼 때조차, 그를 신으로 남겨놓기 위해 그 주변의 인물들이 기꺼이 복종하고 심지어 할복자살을 할 때 히로히토는 그가 염원하는 인간의 자리에 내려오지 못한다. 소쿠로프는 종종 히로히토의 얼굴을 바짝 다가가서 찍지만 <더 선>은 소쿠로프가 쓰고, 연출하고, 찍었다. 거의 폐소 공포증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이따금 히로히토의 상상을 따라 도쿄가 폭격당하는 장면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그때 불바다가 된 도쿄거리를 날아다니는 것은 마치 헤엄을 치는 듯한 물고기들이다. 그 기괴한 장면들은 이 태양의 신이 바다에서 온 것은 아닐까, 라는 환상에 빠질 만큼 소름 끼친다. 한 가지 더. 영화 중간에 나오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5번>은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이다. 내가 이 위대한 대가의 연주를 평가할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나는 이 연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봐야 하는 10시간30분짜리 영화 <필리핀 가족의 진화> 올해 서울영화제에서 백지수표를 위임받고 거기에 다섯편의 추천작을 써넣었다. 그중 한편이 라브 디아즈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이다. 우선 이 영화를 보려면 그날 하루를 포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상영시간이 10시간30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반문할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건 그날 하루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로테르담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 다음날 아무 영화도 보지 않았다. 그냥 하루 종일 이 영화를 다시 생각했다. 간단한 줄거리. 할머니와 그녀가 낳은 남매가 있다. 오빠는 세딸을 남겨두고 아내가 도망갔으며, 여동생은 돈 벌러 마닐라에 갔다가 강간을 당한 다음 미쳐서 쓰레기장에서 자기의 아들이라고 믿는 아이를 주워서 고향에 돌아온다. 마르코스 대통령 독재치하의 필리핀은 이 작은 시골에서도 혁명군과 정부군의 크고 작은 전투가 이어진다. 오빠는 골치 아픈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혁명군 편을 들면서도 빨치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일이 문제가 되어서 매를 맞은 그는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다. 오빠가 돌아왔을 때 여동생이 동네 남자들에게 납치되어서 강간을 당한 다음 매장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주워온 소년은 총을 구한 다음 그들을 쏘아 죽이고 고향을 떠난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이제 오빠의 집과 소년이 떠돌다가 흘러들어간 집을 오가면서 진행된다. 오빠는 소년을 대신해서 감옥에 갔다 온 다음 소년을 찾아서 필리핀을 떠돌다가 도둑이 된다. 오빠는 그러면서 마닐라의 범죄조직에 연루된다. 그러는 동안 고향에서 오빠의 어린 딸을 노리는 시장은 계속 할머니를 찾아와 어린 그녀를 첩으로 달라고 조른다. 한편 소년이 머무는 집에서 그를 양아들로 받아들인 아버지는 금맥을 발견하겠다고 세 아들과 함께 정글을 헤매다가 그의 아들 중 한명이 금을 둘러싼 갈등 끝에 옛 친구의 부하들에게 맞아 죽고 실종된다. 아버지는 복수를 맹세한다. 그러는 동안 독재정권에 저항하기 위해 마닐라로 돌아온 민주인사 베그니노 아키노는 공항에서 총에 맞아죽고, 그의 아내 코라손 아키노가 투쟁을 계속한다. 마르코스는 실각하지만 군부가 재집권을 하고, 민중의 삶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필리핀 가족들은 아직도 투쟁 중이다. 좀더 놀라운 이야기는 <필리핀 가족의 진화>가 5시간30분의 <남부, 바탕>, 그리고 9시간의 <예레미아>와 함께 3부작으로 이루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보아도 다 보지 못한다. 나는 두 번째 이야기만을 보았을 뿐이다. 라즈 디아브는 필리핀 근대사라고 할 이 거대한 서사를 8년에 걸쳐 찍었다. 문제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정말 나이를 먹고, 한편으로 베타 캠으로 시작한 촬영은 DV로 바뀌면서 영화의 화질이 바뀐다! 게다가 필리핀 근대사의 사건들을 발췌한 텔레비전 화면들도 그냥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기술적인 완성도로 본다면 일부는 마치 아마추어가 찍은 것처럼 약점이 많고, 무엇보다도 사운드의 문제는 부분적으로 너무 손실이 커서 일정 수준에 맞춰놓고 상영하면 중간에 안 들리다가 갑자기 큰소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흑백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을 움직인다. 단지 그것이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거나 혹은 역사를 건드려서가 아니라 여기에는 새로운 화법이 있다. 라즈 디아브는 역사와 가족사를 단순하게 도식적으로 병렬시키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필리핀의 근대사는 숨 가쁘게 바뀌고 있는데도 거의 나라 끝에 위치한 것 같은 이 두 가족은 자본주의와 봉건적 관료제, 반근대적인 인습과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개인들의 욕심, 정치를 내세운 교활한 잇속, 민중투쟁을 하다가 독재 권력을 타도하는 순간 권력으로 변모하는 해방전선의 동지들, 그 속에서 부서져가는 여자들, 여자들 사이의 착취, 그 악순환의 고리들이 어떻게 필리핀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때로 이것은 마치 현장에 취재나온 기자의 생방송 중계처럼 진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시적인 실험영화처럼 DV를 이용한 무한정한 롱테이크로 진행되다가, 마닐라의 범죄 소굴에서는 장르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산만하기보다는 인물들의 사건 안에서 피와 살을 부여하는 것은 이것이 누가 보아도 전투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를 보지 말고 영화를 만든 과정을 보라고 충고했다. 만일 라즈 디아브의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영화사의 계보에 놓아야 한다면 오페라풍의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만든 루키노 비스콘티의 <대지는 흔들린다>로부터 이어지는 긴 미학적-사회적-정치적-여정의 21세기 버전일 것이다. 사적인 고백. 그런데 이 영화를 추천한 다음 의기양양해하다가(*^^*) 갑자기 그날 아침 아, 어쩌면 그 상영시간에 질려서 아무도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 달려나갔다. 그리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나를 놀라게 만든 것은 그 자리에 28명의 관객이 각오라도 단단히 한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도 그 곁에 앉았다. 이걸 처음부터 다시 본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힘들었지만 나는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사람이 중간에 가고, (중간에 세번의 휴식이 있었다) 신기한 건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몇 사람이 있었다. <필리핀 가족의 진화>를 본다는 것은 영화가 주는 관습과 싸우면서 투쟁적으로 획득하는 자유로운 리듬의 쟁취의 일부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는 2시간이라는 상영시간에 굴복해 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건 그 시간 안에 풀어내야 하는 시간의 물리적 경제성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모든 이야기가 2시간 안에 해결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는 순간 영화의 시간적 경제성이란 무효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28명의 투쟁적인 관객에게 동지들, 이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단 한번의 상영. 우리는 2006년 9월11일 월요일,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나에게 영화 친구란 말하자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이다. 지아장커에게 배우다 마지막 수다. 내가 가을이 막 시작되려는 9월의 첫 번째 주말에 들은 기쁜 소식은 지아장커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스틸 라이프>(三峽好人)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뉴스였다. 물론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걸 읽으면서 문득 구정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다. 구정은 베이징전영학원에서 문학과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그런 다음 지아장커 영화의 시나리오를 함께 쓰고 그의 조연출이 되었다. 그는 지아장커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고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1997년, 우리는 졸업할 때가 되었다. 친구들은 각자 앞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아장커는 여전히 영화를 찍고 싶어했으나, 아무런 대책없이 그와 함께할 친구는 없었으며, 모임은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조금도 슬프지 않았고,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이렇게 흘렀고, 우리는 생계의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 바라볼 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졸업하기 4개월 전, 지아장커가 돈을 구해왔다. (중략) 지아장커가 나와 왕홍웨이(<소무>의 주연)를 찾아왔다. 우리 같이 영화를 찍자. 구정, 네가 조감독을 맡아주고, 왕홍웨이, 네가 주연을 맡아줘. 역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야. 우린 거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를 찍으러가니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는 거였으니까. 우리는 결코 거절할 수 없었다.”(구정, ‘우리 같이 영화 찍자’, <지아장커, 중국영화의 미래>) 그 영화가 <소무>이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다음 1980년대 중국을 통과하는 가무단 이야기 <플랫폼>을 찍었고, 다퉁에 사는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임소요>를 그렸고, 베이징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청춘을 그린 <세계>를 찍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지아장커는 여전히 중국 사회주의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찍고 있다. 그는 아주 멀리 왔지만, 그러나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나는 그것을 지아장커에게 배운다. 이것이 막 시작하는 가을에 세 번째 배움이다. 오늘 밤에는 그에게 축하 메일을 쓸 생각이다. 그렇게 이 수다스러운 일개 영화평론가의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다. 당신은 오늘 밤 누구에게 메일을 쓰실 생각이십니까? (후렴) 지금은 가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