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코인송금대행24시자금믹싱업체코인송금대행24시자금믹싱업체'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추석 종합선물 [6] - 유형별로 골라보는 DVD

오랜만에 긴~ 연휴를 즐길 수 있는 즐거운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길게는 9일을 쉴 수 있는 이번 연휴에 방바닥과 친구삼아 시체놀이를 할 여러분들을 위해 잠자는 시간도 아깝게 느껴질 강추 DVD를 알려 드립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영화를 골라보세요~ 하루종일 방콕, 폐인파 -TV 드라마 DVD 완전 정복 <24> 국내에서도 공중파 방영과 DVD 등을 통해 마니아층을 양산하고 있는 <24>는 테러진압 요원 잭 바우어(키퍼 서덜랜드 분)의 활약상을 그린 스릴러물. 24시간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하루 동안 벌어지는 긴박감 넘치는 사건을 24회로 나눠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프렌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렌즈 전 시즌 패키지가 재발매 되었다. 카페인과 농담, 어리석은 연애에 구제불능 뉴욕의 여섯 친구들과 함께라면 추석이 짧아진다. <지구에서 달까지> 1998년 4월5일부터 12주 동안 를 통해 방영된 <지구에서 달까지>는 총 12부작으로 구성된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텔레비전영화로, 무한한 감동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톰 행크스는 평소 우주에 대한 관심을 제작자로, 또 에피소드 1편의 감독으로 그리고 배우로 참여하며 흔치 않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놀랄 만한 완성도로 이끌어간다. <연애시대> DVD 타이틀에 수록된 부가영상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서 비교적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TV드라마의 한계를 뛰어넘는 뭔가를 기대할 순 없지만, 드라마에 매료되었다면 가볍게 즐기기엔 좋은 것들이 다수 있다. 드라마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주요 배우들과의 인터뷰 영상은 작품에 관한 개인적 느낌과 생각을 담고 있어 우선적으로 추천할 만한 부록이며, 노영심이 얘기하는 음악에 대한 설명, 번역작가 신유희로부터 들어보는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가 다른 드라마 DVD와는 차별되는 성격을 지녔다. <부활> 수많은 ‘드라마 폐인’들을 배출한 <다모> <네 멋대로 해라> <발리에서 생긴 일>을 이어간, 또 한편의 ‘마니아 드라마’. 경쟁 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대중적 인기에 가려지긴 했지만, <부활>은 잘 만든 드라마로 손색이 없었다. <부활>은 엇갈린 운명을 살아가는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로, 시종일관 탄탄한 구성으로 살인사건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을 밀도있게 그려낸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특히 첫 주연 작품임에도 1인2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엄태웅의 눈부신 연기가 발군이다. 인기작만 골라보는 실속파 -9월 마지막 주 판매 DVD 인기 순위 <왕의 남자> <왕의 남자>는 한정판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극장판과 일부 추가된 장면이 수록된 확장판을 함께 제공하며, 맛보기가 아닌 상당한 분량에 잘 구성된 부가영상으로 짜여져 있다. 부록은 극장판 디스크에 이준익 감독과 프로듀서, 조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진행하는 2개의 음성해설을 수록했고, 세 번째 디스크가 나머지 부록 모두를 담고 있다. 많은 부가영상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영화에 사용된 여러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현과 타>를 통해 이병우 음악감독의 자세한 해설을 들어볼 수 있고, <왕의 남자> 원작인 연극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爾(이), 왕의 남자 그 넘어>에서는 연출자로부터 들어보는 연극이 담고자 했던 의미, 실제 공연 모습의 일부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중요한 인물인 연산군에 대한 내용도 빠뜨릴 수 없다. <태풍> 곽경택 감독의 야심작 <태풍>은 결과적으로 어정쩡한 영화가 되어버렸지만, 한국영화 사상 최대라는 제작 규모는 분명 그 과정을 궁금하게 만든다. 부록의 핵심은 다른 한국영화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제작다큐멘터리. 비록 영화상으로는 그 규모를 피부로 느끼기에 스펙터클이 떨어지긴 했지만, 제작다큐멘터리를 통해 보는 촬영현장의 느낌은 대작다운 모습이다. 최초의 영화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로케이션, 비주얼 효과, 미술과 세트 제작 등의 과정을 꼼꼼하게 수록해서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특수효과와 관련한 부분은 할리우드영화를 보는 듯한 색다른 기분도 든다. <빨간 모자의 진실> 잘 알려진 고전 동화의 이야기를 살짝 뒤집으면서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빨간 모자의 진실>. DVD는 영어 더빙과 함께 김수미, 강혜정 등이 참여한 우리말 더빙까지 수록해 메리트가 있다. 다만 우리말 더빙이야 예외이지만, 한글자막의 경우 지나칠 정도의 우리식 표현들이 많아서 아쉽다. 화질과 음향은 대단히 우수하며, 부가영상으로 제작진의 인터뷰 중심으로 진행이 되는 12분 분량의 메이킹 필름과 5개의 삭제장면, 흥겨운 뮤직비디오 영상을 제공한다. <식스틴 블럭> 법정까지 죄수를 호송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찰 내부의 음모와 그에 맞서는 노쇠한 경관 잭 모슬리의 활약을 그린 리얼타임 액션무비! 브루스 윌리스는 은퇴를 앞둔 맥빠진 경관을 연기하지만, 16블록을 향하는 과정에서 왕년의 존 맥클레인의 일부를 만날 수 있다.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DVD 타이틀은 극장에서와는 또 다른 엔딩 시퀀스, 리처드 도너와 브루스 윌리스의 인터뷰, 메이킹 필름을 수록했다. <킹콩> 영화 사상 최고의 제작규모를 생각하면 이번 DVD 타이틀은 일종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맛보기조차 결코 평범하지 않다. 2장의 디스크를 통해 제공되는 부록은 제작과정과 영화배경에 대한 안내의 두 가지 성격으로 나뉜다. 제작 관련 영상과 영화배경인 1933년 뉴욕에 관한 부록도 뛰어나지만, 역시 이번 타이틀의 핵심은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해골섬에 있다. ‘해골섬의 역사’는 DVD에 수록된 부록 중에서 단연 최고다. 분량은 20분이 채 되지 않지만, 영화 팬들이 보기에는 이 이상의 부록이 없다. 영화의 중요한 무대인 해골섬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고, 매우 짜임새있는 구성으로 흥미를 더한다. 심오한 영화의 세계에 빠지고픈 학구파 -명불허전, 안보면 손해 <기타노 다케시 컬렉션> 이번에 출시된 <기타노 다케시 컬렉션>은 한 제작사가 그 DVD들을 공들여 모아놓은 결과물이다. <돌스>는 기출시된 DVD의 화질이 안 좋았던 점을 감안해 새로 제작됐으며, <자토이치>와 <돌스>의 경우 부록이 보강됐다. 전체적으로 영상과 소리, 부록이 평균 수준을 보여주고 있지만 기타노의 작품 세계를 경험하기에 당분간 더 좋은 선택은 없지 싶다. <3-4×10월> <그 여름 조용한 바다> <소나티네> <모두 하고 있습니까?> <키즈 리턴> <하나비> <기쿠지로의 여름> <브라더> <돌스> <자토이치>를 11장의 디스크에 수록한 두툼한 박스를 열면 영화평론가 모은영의 해설책자가 손에 잡힌다. <장 뤽 고다르 컬렉션> <장 뤽 고다르 컬렉션>에 들어 있는 네 작품의 스펙트럼은 넓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즐겁고 낭만적인 소품 <국외자들>, 68혁명 직전에 만들어진 부르주아 부부의 끝나지 않는 악몽 <주말>,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절에 장 피에르 고랭과 만든 <만사형통>, <영화사>를 만들던 1990년대를 마감하는 극영화 <포에버 모차르트>-30년을 관통하는 네 작품은 고다르의 역사이자 분명 영화의 한 역사다. DVD에 포함된 영화평론가 김성욱의 음성해설과 책자는 영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컬렉션> 각 영화의 마지막- 노트 사이 꽃잎을 볼 때(<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언덕 너머로 두 아이가 넘어갈 때(<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남자가 희열에 차 뛰어올 때(<올리브 나무 사이로>), 죽음을 결심한 자가 석양을 볼 때(<체리향기>)- 에서 관객은 문득 영화 속 한 자리를 차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창조자의 손길이 인간과 그가 사는 터전을 스쳐간 이들 작품을 보며 그 손길 아래에 경계가 있다면 그 또한 우스운 일 아닌가 싶다. 키아로스타미 작품의 유일한 경계는 삶과 죽음 사이에만 존재한다. <짐 자무시 컬렉션> 자무시의 데뷔작 <영원한 휴가>부터 <천국보다 낯선> <다운 바이 로> <미스테리 트레인> <지상의 밤> <데드맨>까지를 수록한 <짐 자무시 컬렉션>이 출시됐다. 세편의 흑백영화와 세편의 컬러영화 중 흑백 편을 들어주고 싶은 건 필자의 취향이겠고, 어쨌거나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보석 같은 작품들이다. 다이아몬드나 황금이 아닌 유리로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을 세공해낸 자무시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팝콘&콜라] ‘KBS 독립영화관’ 폐지론 이의 있소

매주 토요일 오전 1시10분, 켜진 텔레비전보다 꺼진 그것이 많은 늦은 밤 한국방송 제1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 독립영화관’, 국내에서 유일한 독립영화 프로그램이다. 지난 2001년 5월 방영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450여편의 국내외 독립영화들을 방송해왔다. 하지만 시청률 조사기관인 티엔에스 미디어 코리아의 최근 조사결과를 보면, ‘독립영화관’의 평균 시청률은 1%를 넘지 않는다. 초라한 시청률은 이 프로그램의 발목을 잡았다. 최근 한국방송의 가을 프로그램 개편에서 ‘독립영화관’ 폐지 논의가 오갔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물론, 각 지역 독립영화 단체, 문화연대, 한국영화감독조합 등 영화 관련 단체들은 즉각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반대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때마침 한국방송 쪽은 사장 선임 문제 등 복잡한 내부사정 때문에 개편 자체를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독립영화관’의 폐지도 일단 보류됐다. 하지만 ‘독립영화관’의 폐지 논란은 언제든, 아마도 조만간 또다시 불붙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바닥을 헤매고 있는 시청률이 갑자기 뛰어오를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방송국 쪽이 프로그램 폐지의 유혹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관계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독립영화관’ 폐지에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독립영화관’은 거의 유일하게 일반인들에게 독립영화를, 다시 말해 다양한 영상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저예산인데다 대중적이지도 않은 독립영화들의 경우, 상업영화들처럼 스크린을 많이 확보할 수도, 마케팅비를 지출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공공의 자산인 지상파 방송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대중들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청률이 낮아 광고가 붙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립영화 관련 프로그램의 편성을 게을리 해왔다. 상업영화 방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거액을 선투자하기도 하고, 똑같은 상업영화를 여러번 재방송하면서도, 참신한 독립영화들한테는 단 한 번의 방송 기회조차 주지 않아 왔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방송들이 자국 영화산업 발전과 다양한 영화문화를 추구하기 위해 독립영화 및 단편영화들을 정규 프로그램화하고 있는 상황과 대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독립영화관’의 역할은 단순한 영화소개 프로그램 이상이었다. ‘독립영화관’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했거나 제한적으로 상영된 독립영화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상영’했다. 한국방송은 공영방송이고, ‘독립영화관’이 방영되는 제1 텔레비전의 경우 광고도 없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차원에서라도 ‘독립영화관’ 혹은 그런 유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편성할 ‘의무’와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낮은 시청률? 방송사 처지에서야 어쨌든 간과할 수 없는 문제겠지만, 시청률을 높일 수 있는 시간대로 편성시간을 바꾸는 등 ‘일단’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부터 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추석 맞이 어메이징 한국영화 레이스 [3]

Mission 4. 연리지 나무를 찾아라 도전경로: <…홍반장> → <각설탕> → <연리지> 도전과제: 미션 4에 접어들고 과제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도전자들도 지쳐갑니다. 장생과 공길 커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연애참> 커플은 조금만 수틀리면 육두문자를 남발해 점점 레이스의 왕따가 되어가는군요. 그래도 소정의 상금을 건 레이스는 계속됩니다. 첫 번째 과제는 제주도로 내려가 신비의 인물, 홍반장을 찾는 겁니다. 이 남자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지만, 워낙 직업도 많고 여기저기 두문불출하는지라 의외로 찾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홍반장을 찾는다 해도, 그는 쉽게 다음 과제를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 자장면 배달이나 도배, 마을 청소 등 뭔가 노동을 해야만 간신히 입을 열 사람이니, 도전자들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홍반장의 지시대로 요상스럽게 생긴 나무, 연리지를 찾아가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리지는 두 나무가 자라면서 가지가 딱 붙어버린 걸 뜻하는데, 여기에는 닭살 커플 혜원(최지우)과 민수(조한선)의 안구에 습기 찰 만한 러브스토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의 사랑을 만들어나가는 이 연인들을 상징하는 나무라나요? 문제는 거기까지 어떻게 이동하느냐는 것인데, 반드시 말을 타고 가야 하는 것이 두 번째 과제입니다. 가장 먼저 과제를 수행하는 팀은 <각설탕>의 명마, 천둥이를 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물론 도착한 순서에 따라 경험 많은 준마들이 주어지겠죠? 제일 마지막으로 과제를 수행한 팀은 걸어서 찾아다녀야 할 테니,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겁니다. ★ 장애물: 과제를 수행하기에 앞서 권투 글러브와 헤드기어, 마우스피스를 착용하세요. 각팀 중 한 사람은 <주먹이 운다>의 강태식(최민식)처럼 4시간 동안 인간 샌드백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 샌드백을 하며 번 돈으로 제주도행 교통비에 보태세요. 배를 타고 가느냐 비행기를 타고 가느냐는 전적으로 도전자들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도전결과: 아무리 백만불짜리 다리를 가진 기봉이라 해도, 노모와 함께 거친 레이스를 하기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체력전에서 밀린 기봉이 모자 탈락! 1위는 예상대로 말타기와 각종 재주에 능한 장생-공길 팀이 차지했습니다. Mission 5. 용두리의 인구를 조사하라 도전경로: <엽기적인 그녀> → <마파도> → <잘살아보세> 도전과제: 자, 미션의 난이도는 점점 높아집니다. 죽도록 고생하는 것에 비해 과연 얼마나 보람있는 짓인가 의심되는 시점입니다. 어쨌든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어메~ 이 징한 레이스>. 미션 5의 첫 과제는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전지현)와 견우(차태현)가 묻어놓은 타임캡슐을 찾는 겁니다.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들고 산등성이로 올라가세요. 중요한 것은 타임캡슐이 묻힌 나무를 제대로 찾는 것인데, 엉뚱한 구덩이를 팠다가는 레이스 대열에서 이탈당하기 십상입니다. 타임캡슐을 찾아 다음 미션을 확인했다면, 양팔을 쫙 벌려 호기롭게 “난 바람이 될 거야!”라고 한번 외쳐주세요. 그리고는 다음 미션 장소인 마파도로 향합니다. 마파도로 가는 교통수단은 가뭄에 콩 나듯 드나드는 선박뿐인데, 배멀미에 약한 도전자들은 고생 좀 하겠네요. 마파도에서의 과제는 대마밭을 샅샅이 뒤져 다음 도전과제가 적힌 쪽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넓은 대마밭을 뒤지는 것도 일이지만, 마파도 거주민인 다섯 할머니들이 도전자들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무임금 노동으로도 모자라 성희롱의 위험마저 도사리고 있을 테니까요. 마파도에서의 과제가 끝나면, 최종 목적지인 <잘살아보세>의 용두리로 향하게 됩니다. 전국에서 출산율 1위를 자랑하는 이곳은, 마을 이장 변석구(이범수)와 가족계획요원 박현주(김정은)의 주도하에 피임 열풍이 한창입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용두리의 인구를 조사하는 것이 마지막 과제입니다. 단, 뱃속에 있는 태아도 포함해야 하니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빠른전진: 길(道)이 없는(無) 마을(里), 무도리. 한번 들어가면 함흥차사라는 이 자살명당으로 향하세요. 낮밤 가리지 않고 사람을 홀리는 도깨비골을 거쳐, 엉큼한 세 노인네를 모두 극복하면 마을 절벽으로 가는 겁니다. 그곳에서 번지점프에 성공하면 마지막 과제로 바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도전결과: <짝패>의 두 친구가 ‘빠른전진’을 택했으나, 무도리에서 지나치게 헤매는 바람에 1위는 태극기 형제에게 돌아갔습니다. 난폭한 <연애참> 커플은 다른 팀들의 방해공작 때문에 결국 최종 레이스 대열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Mission 6. 원효대교에서 활을 쏘아라 도전경로: <친절한 금자씨>(선택도전) → <지구를 지켜라!> → <괴물> 도전과제: 드디어 황당하고 난데없고 어이없는 <어메~ 이 징한 레이스>의 마지막 미션에 접어들었습니다. 남은 팀은 태극기 형제와 광대 커플, 그리고 충청도 주먹계의 전설적인 짝패입니다.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친절한 금자씨>에 관련된 선택도전입니다. 이번 과제에서 도전자들은 직접 일정량의 수입을 올려야 하는데,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금자씨 케이크를 만들어서 팔거나, 지정된 동네의 집집마다 빨랫줄을 검사해, 널려 있는 금자씨의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파는 겁니다. 케이크 만들기는 빠른 학습능력과 세심한 미각이 요구되며, 원피스 발견하기는 엄청난 체력이 요구되니 둘 다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친절한 금자씨> 과제가 완수되었다면, 다음은 <지구를 지켜라!>로 넘어갑니다. 첫 과제에서 번 돈으로 병구(신하균)가 강 사장(백윤식)에게 가했던 고문도구를 구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때밀이 수건이나 물파스야 쉽게 구할 수 있겠지만, 텔레파시 차단모자와 고문의자 등은 웬만해선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까지도 해결했다면(대단한 도전자들입니다!), 이제 결정적인 과제가 남았습니다. 한국영화 흥행신화를 다시 쓴 문제의 그 영화! <괴물> 관련 미션입니다. 도전자들은 괴생물체가 은거지로 삼았던 한강 원효대교를 샅샅이 뒤져야 합니다. 썩는 냄새 진동하는 하수구는 물론, 아슬아슬한 철각까지도 모조리 말입니다. 그곳에는 <어메~ 이 징한 레이스> 제작팀이 숨겨놓은 남주(배두나)의 양궁 도구가 있을 겁니다. 그걸 가지고 원효대교 위에 서서 한강에 그로테스크하게 떠다니는 오리배를 맞추세요. 가장 먼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오리배를 맞춘 팀이 이번 레이스의 최후 승자가 되겠습니다. 도전결과: 레이스의 최후 승자는… 두둥~ 네! 왕의 남자들, 장생과 공길 커플이 차지했습니다. 한끝 차이로 엎치락뒤치락 하던 경쟁자들을 젖히고 마지막 활쏘기 과제에서 특유의 재주를 발휘했군요. 태극기 형제와 충청도 짝패는 체력이나 몸싸움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았지만, 광대들의 다양한 경험과 잔재주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최후 승자 <어메~ 이 징한 레이스>의 어메이징 상품 이제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지?”라는 애매모호한 말로 기쁨을 나누는 장생과 공길. 최후 승자인 광대 커플에게는 상금으로 한가위 유흥비 19만9900원과 함께 최종 미션에서 사용된 오리배와 양궁 도구를 상품으로 드립니다. (뭐, 상품이 너무 알량하다고? 그래서 애초에 말했잖아. 100만달러 주는 <어메이징 레이스>가 아니라고. 그리고 니들, 대박 터져서 돈 많이 벌었잖아?!)

<팔월의 일요일들> 양은용씨 “독립영화계 ★ 떴대요”

배우, 특히 여배우와 인터뷰 할 때는 보통 이렇다.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메이크업 아티스트, 영화 제작사나 홍보사 관계자 등이 각각 1~2명씩, 그러니까 네댓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배우를 수행하고 등장해 인터뷰 현장을 가득 메운다. 그런데 〈팔월의 일요일들〉(이진우 감독)의 양은용(사진)은 달랐다. 그는 일정을 직접 챙겨 택시를 잡아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왔고, 사진을 찍기 전 파우더 퍼프를 손수 들고 메이크업을 보정했다. 챙겨 온 의상을 가방에서 꺼내들고 모퉁이 쪽에 살짝 숨어 갈아입기도 했다. 독립영화에 출연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다가 매니지먼트사를 뛰쳐나온 이 배우의 낯설지만 신선한 작업방식이었다. “자유롭고 싶었어요. 비주류여도 상관없고, 톱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하고 살면 돼요. 혼자서 연기, 매니지먼트, 때로는 운전까지 다 하니 불편하긴 하지만 그런 게 또 재미있기도 해요.” 에스비에스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텔레비전 드라마 〈비단향꽃무〉, 영화 〈인터뷰〉 〈공공의 적〉 등에 출연했던 양은용은 조범구 감독의 〈양아치어조〉를 만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양아치어조 출연 제의를 거절하려고 감독님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시나리오를 읽어보고는 덥썩 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군 홍보영화 출연도 하라고 했던 회사에서 돈이 안 된다며 〈양아치어조〉는 못하게 했어요. 다른 때는 싸우기 싫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좋은 작품을 접하고 나니 싸우게 되더라고요.” 〈양아치어조〉를 통해 독립영화에 첫발을 내디딘 뒤 양은용은 〈내 청춘에게 고함〉, 〈팔월의 일요일들〉 등 근래에 크게 주목받은 독립영화들에 잇따라 출연했다. ‘고 이은주를 닮은 공채 탤런트 출신 배우’라는 꼬리표도 순식간에 ‘독립영화계의 스타’로 바뀌었다. “겨우 4편 출연했을 뿐인걸요. 하지만 독립영화가 매력적인 건 사실이에요. 제작 환경은 열악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잖아요. 감독과 스태프들의 열정도 대단하구요. 좀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좋은 작품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저한텐 기회죠.” 그런 의미에서 29일 개봉한 〈팔월의 일요일들〉은 양은용에게 더 많은 기회와 과제를 던져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동료 의사, 환자의 보호자 등과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팔월의 일요일들〉이라는 절판된 책을 수소문하는 외로운 의사 ‘시내’ 역을 맡았다. “이진우 감독님은 ‘나한테 묻지도 말고, 분석도 말라, 너무 많이 보여주지도 말라, 책을 읽듯 연기하라’고 하셨어요. 여백이 많은 영화에서 그에 걸맞은 연기를 하려다 보니 감이 잘 안 와서 헤매기도 했는데, 그게 다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아서 잠이 안 올 정도로 괴로웠어요.” 그는 “영화와 연극, 드라마에서 계속 연기할 거고, 기회가 되면 희곡을 쓰거나 연극 연출을 하거나 단편영화도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직 차기작이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팬 카페에 남긴 이메일 주소나 지인들을 통해 건너건너 연락처를 물어오는 감독들이 있다”며 곧 차기작이 결정될 거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현지보고] <가디언> LA 시사회 및 주연배우 인터뷰

해안경비대, 할리우드의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하다 미국은 영웅을 좋아한다. 미국만큼 영웅이 흔한 곳도 없다. 서부영화의 고독한 총잡이부터 슈퍼맨, 스파이더 맨 그리고 뉴욕 소방관에 이르기까지 ‘영웅적’ 존재들이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평범한 개인도 고결하고 뛰어난 ‘신화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미국적 의미의 영웅이다. 개인의 삶을 결정짓는 사회적 시스템의 영향력은 종종 무시된다. ‘영웅 만들기’의 내러티브는 미디어뿐 아니라 일상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다. 한때 영웅들은 공권력이나 초능력을 등에 업고 나타났다. 9·11 이후 영웅들은 일상에서 ‘발견’된다. 공공서비스를 담당하는 소방관이나 의료진의 활약상은 이미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점령했다. 더이상 남아 있는 영웅이 있을까 싶지만 할리우드는 기어이 새로운 영웅을 찾아냈다. 소박하지만 철저하게 미국적인 영웅 신화 이번에는 ‘해안경비대’(Coast Guard)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인명구조대(Rescue Swimmer)가 소방관의 뒤를 이어 미국의 ‘보호자’(The Guardian)로 선을 보인다. 케빈 코스트너와 애시튼 커처 두 배우를 내세운 <가디언>은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하다. 해안경비대를 일반인들의 시야에 등장시킨 것은 2005년의 카트리나 재앙이었다. 총칼을 든 군인과 경찰이 무력하게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를 배회하고 있을 때, 해안경비대는 3만명에 이르는 수재민들을 구하고 대피시켰다. 세계의 경찰, 미국이 자기네 땅에서 일어난 대재앙에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시민들을 구조한 해안경비대의 활약은 예견치 못한 것이었다. <가디언>은 칭송받지 못했던 숨은 영웅, 해안경비대 구조팀 이야기를 스크린에 불러낸 첫 번째 시도다. 첫 시도가 흔히 그렇듯, <가디언>은 폭풍 몰아치는 심해에서 조난당한 선원들을 맨몸으로 구해내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어떻게 훈련받을까, 이들의 일은 그리고 생활은 어떨까라는 많은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물론 디즈니가 제작한 할리우드영화답게 영웅되기의 고뇌와 어려움, 극적인 활약상 등의 전형적인 드라마로 얼개를 짰다. <도망자> <언더 씨즈> <홀> 등에서 드라마틱한 상황에 처한 강인한 인물들의 활약상을 주로 다뤄온 앤드루 데이비스 감독을 매혹시킨 것도 바로 누구도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웅의 세계였다. “60m가 넘는 얼음장 같은 베링해에 뛰어들어 조난당한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의 모습은 지금껏 누구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할리우드의 새로운 아이콘을 만들기 위해 세명의 베테랑 해안경비대 구조팀이 영화에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가디언>은 이례적으로 장시간 공을 들여 해안경비대 훈련학교의 훈련과정을 그려낸다. 물탱크 속 폭풍의 스펙터클 전설적인 베테랑 구조대원 벤 랜들 역을 맡은 케빈 코스트너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게 임무인, 그러나 해병대나 해군처럼 화려하고 섹시하지 않은” 이 특수한 부대에 마음이 이끌려서 <가디언>에 참여했다. <늑대와 춤을> 이후 <포스트맨> <오픈 레인지>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전작에서 비슷비슷한 ‘미국적 영웅’을 연기해온 케빈 코스트너가 다시 ‘보호자’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미 오십을 넘긴 이 노익장은 예전의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듯한’ 영웅이 아니라, 어느덧 담담하게 나이 먹은 어른의 풍모를 보여준다. “배우가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을 연기할 때 영화가 성공적일 수 있다”고 믿는 스크린 밖의 케빈 코스트너는 그의 스크린 속 페르소나들보다 한결 매력적이다. <70’s 쇼>의 코미디 배우로 스타의 후광을 손에 넣은 애시튼 커처에 대한 선입견을 우려해서일까. 기자회견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애시튼 커처의 어른스러움을 친절히 강조하는 걸 잊지 않는다. 촬영 첫날, 물탱크 속에서 10시간을 보내고 나서 자신의 트레일러로 일부러 와서는 힘든 점과 불편한 점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건 입지 말고, 저건 하지 말고 끝도 없이 당부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단다. 영화에서 랜들이 구현하는 ‘소박한 영웅’의 전설을 계승하게 될 애시튼 커처(제이크 피셔 역)는 언제라도 “맘만 먹으면 케빈이 내 볼기를 후려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농담으로 선배 배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다. 두 배우가 극진히 서로를 배려해야 했을 만큼 <가디언>의 실제 촬영은 배우들에게 육체적으로 도전이었다. 평소에도 물속에 들어가길 꺼리는 애시튼 커처의 입장에선 8개월 전부터 시작된 트레이닝이나 수영장에서 보낸 많은 시간들이 쉽지 않았을 터이다. <타이타닉>의 특수효과 담당이었던 스콧 피셔와 앤드루 피어스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마히르 아메다 프로덕션디자이너가 만들어낸 거대한 물탱크 속의 베링해도 녹록지 않은 적수였다. 테마파크의 인공 파도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물탱크 속의 폭풍은 스크린 속 영웅들에게 할리우드가 제공할 수 있는 스펙터클로는 손색이 없다. <가디언>의 애초 촬영 예정지였던 뉴올리언스 해변을 쓸어버린 카트리나의 위력에 버금갈까마는. 새로운 영웅 탄생에 박수를 보내는 <가디언>은 그래서 철저히 미국적이다. 아마도 영화 개봉 이후 해안경비대 지원자가 늘지 않을까. “패배 속에서 진정한 영웅이 탄생한다” 주연배우 케빈 코스트너, 애시튼 커처 인터뷰 -영웅에 대해, ‘언더독’의 경험에 대해. =케빈 코스트너: 누구나 인생에서 재점검을 하는 순간이 있다. 애시튼은 지금 막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애시튼 커처가 과연 심각한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지켜보는 때니까. 그런데 나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 한다는 게 바로 실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는 멋진 미국 영웅의 정신 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비난하지 말 것, 해명하지 말 것” 아닌가. 인생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일진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영화가 돈을 많이 벌면 그 영화는 성공한 걸까. 성공이 모든 걸 정당화할까. 영웅에 관한 진실이 하나 있다면 그들도 때때로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영웅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자이언트>에 미국 영화사상 가장 영웅적인 순간이 등장한다. 록 허드슨이 바에서 힘에 부치는 싸움을 하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 “당신, 지금까지는 한번도 당신보다 큰 사람들과는 상대하지 않았잖아요.” 나는 패배 속에 진정한 영웅이 탄생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드는 것뿐이다. 물론 우리도 상처는 받는다. =애시튼 커처: 성취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장애물이 있어야 더 의미가 있다. 내 목표는 항상 다음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전보다 더 나은 다음 단계에. -영화에 대해서, 영화배우로서의 다음 선택에 대해. =케빈 코스트너: 아직도 돈을 내고 영화를 보러 다닌다. 사람들이 왜 영화를 볼까 종종 생각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팔에 소름이 돋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그런 느낌 때문이 아닐까. 영화의 마력은 거기에 있다. 나는 아직도 ‘바보처럼’ 그런 경험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영화의 마력을 믿는다. 산타클로스라든가 바다 밑에 사는 요정이라든가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들도 일단 스크린에서 소리쳐 외치고 나면, 그 순간만큼은 믿게 된다. 지금까지 장르영화를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내가 계속 자기 복제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걸 안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버전으로 계속 만든다는 거지. 그런데 난 만족한다. 분명 영리한 사업 전략은 아니지만. 난 계속 이 장르를 ‘방문’할 것이다. 또 다른 나이대의 내 모습으로. =애시튼 커처: 영화 보면서 운 적은 한번도 없다. 어릴 적 어드벤처영화를 보러 간 일이 기억난다. 우리 가족은 시골에서 넉넉지 않은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극장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많이 봤다. <구니스>는 지금도 기억난다. 나도 그 모험에 같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게 아니라 이미 같이 가고 있었다. <꿈의 구장>을 봤을 때는, 우리집 뒤에 있는 옥수수밭에서 야구 선수가 걸어나올 것만 같았다. 난 정말 믿었다. 내가 그 속에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직접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다른 세상으로 보내준다. 나에게는 이것이 영화의 매력이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용감했던 순간에 대해. =케빈 코스트너: 아마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내 심장의 울림’에 따른 것이다. 어릴 적에 비즈니스도 학문에도 소질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가야 했겠지만, 연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했다. 나는 매우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연기자가 된다는 것은 부모와 연을 끊는다는 걸 의미했다. 게다가 연기를 한다고 해서 성공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고 모든 것이 잘될 거라는 어떤 확신도 없었다. 그래도 내 인생에 한번, 관습을 깨뜨리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인 게 가장 용감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이 일이야,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라고 말이다. =애시튼 커처: 영웅적인 일을 기대할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아니다. 제일 용기가 필요한 일은 나의 감정과 약점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다. 나의 상처를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

독립영화인, 조영각 스토리 [1]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조영각. 독립영화에 관한 한 이 사람을 통하면 가장 신속하고 믿을 만한 정보와 해석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된 지 거의 10여년이 다 되어간다. 언론 지상에서는 물론이고 집회와 세미나 등 각종 독립영화 행사에 가면 언제나 그를 볼 수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그를 보고 독립영화의 마당발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당당한 판단과 행동은 그동안 몇몇 이슈를 낳았고, 더 중요하게는 그것들이 진보된 결과를 낳았다. 그가 9월29일 개봉하는 독립장편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이것도 진보적 이슈의 조짐일까? 독립영화의 마당발이자 <팔월의 일요일들>의 프로듀서 조영각의 스토리를 풀어보았다. “뭐야, 이번에는 ‘조영각 화보집’ 나오는 거야?” 40여분째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조영각씨를 두고 친한 지인들이 먼 발치에 서서 자기들끼리 한마디씩 농담을 주고받는다. 안 그래도 “내가 아니라 감독이 나가는 게 맞는 거 아니냐”며 여러 번 말한 터라 조영각씨 본인도 겸연쩍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할 순 없지 않나. 아마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독립영화계의 얼굴(?)답게 혹은 대변인답게 외모에서 내용까지 허술하게 하고 온 준비가 하나도 없다. 대구단편영화제와 제주영화제에 다녀온 직후라 피곤할 텐데도 미용실에 가서 머리 손질까지 하고 온 걸 보면 선수는 선수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다 빼는데 나는 좀 덜 빼니까 이상하게 얼굴마담이 돼버린 건데, 후배들에게 미안하죠.” 하지만 지금도 인터뷰 등의 이유로 찾아온 매체들 앞에 서로 나서기 싫다고 미루는 수줍은 후배들을 볼 때마다 좌불안석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그의 말. “아니, 사람들 기다리는데 뭐 하는 거야?”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게 되면서 덕분에 그는 이상한 지병도 하나 얻었다. 자칭 ‘유명병’. “내가 유명병에 걸릴 정도라니까요. 모르는 사람이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날 알아보고 저러는 건가 싶어요.” 아닌 게 아니라 인터뷰가 끝난 뒤 길거리에서 마주친 지인이 그에게 말을 건다. “잘 지내세요? 지면에서 종종 뵙고 있어요.” 그랬더니 그의 대답. “… 허허, 또 보게 되실 것 같은데요.” 물론 그가 나서기 좋아 그러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고 싶어 그러는 것도 아니다. 혹은 그가 아니어도 독립영화계가 당장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독립영화에 관한 그의 입과 발을 묶어두지는 못할 것 같다. 독립영화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지평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반칙성이 아니라면 지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유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해, 독립영화에 대해, 자신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독립장편영화 <팔월의 일요일들>에 대해 시종일관 열성적으로 작업의 끈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그 열의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연 그는 어떤 길을 걸어 유명병에 걸려버린 것일까. 말하자면, 그 병력이 곧 지금의 조영각이다. # 영화광 조영각 많은 사람들이 93년, 94년경 문화학교 서울에서 그를 처음 본 것으로 기억한다. 달변은 아니었지만, 자신감있는 목소리로 상영작 소개를 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던 사람. 독립영화 활동가로서 많이 알려진 그지만 사실 처음은 영화광으로서의 길을 먼저 택했던 셈이다. 영화 애호가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그에게는 영화를 좋아하는 부모 형제들이 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 사랑하던 영화들이 있었다. 특이한 건 그것들 중 한국영화가 많았다는 점이다. “중학교 때는 텔레비전에서 한국영화를 많이 상영했는데 매일 잠 안 자고 그걸 봤어요. 배창호 감독님 영화는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도 극장에서 다 봤고요. <고래사냥>은 별로였지만 <기쁜 우리 젊은날>은 그때 나의 어떤 로망이었죠. 그래서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 너희들은 할리우드 키드냐, 나는 충무로 키드다 그랬을 정도니까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 EBS <시네마 천국>의 공동작가를 하면서 한국영화 부분을 맡은 것도, 그때 먼지 쌓인 비디오들을 뒤져서 이만희, 신상옥, 하길종 등의 작품을 소개한 것도, 그리고 <한국영화 비상구>라는 책을 공동집필하게 된 것도 다 한국영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사실 대학 들어가서는 학생운동을 하다 보니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어요.” 그러다 <파업전야>를 지키던 사수대 조영각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면서 지키고 있는 거잖아.” 그러고 나서 상영장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그 영화를 봤고, 그게 다시 영화와 영화운동을 이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 경험이 문화학교 서울과의 관계를 맺게 한 것일까. 제3세계 영화나 아시아영화 등의 기획전을 처음 문화학교 서울에서 비디오로 접했을 때 그는 마음을 굳힌다. 그때 처음 본 영화가 헥터 바벤코의 <피쇼테>였고, 허우샤오시엔의 <동년왕사>는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대학생은 안 된다는 데도 우겨서 학생 자격으로 문화학교 서울 정식 직원이 되었고, 95년 졸업할 즈음에는 학교 친구들에게 “나 취직했다. 연봉(!) 30(만원)이다”라고 말해 부러움(?)을 샀다. 운영위원으로서 그가 처음 했던 영화 소개는 데이비드 린치의 <이레이저 헤드>였는데, 비록 데이비드 린치가 꿈에 나타나 “네가 한 해석 그거 다 틀린 거다”라고 하여 충격을 받긴 했지만, 열심히 영화 공부했던 시절이었고, 즐거웠던 때였다. 독립영화 활동가로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조영각과 영화(운동)의 인연은 영화 애호가의 성격과 시네마테크 운영자로서의 기질로 먼저 확인된 셈이다. “그냥 영화만 상영한 건 아니에요. 우리끼리 하드 트레이닝이라고 부르면서, 왜 우리가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지, 어떤 이유가 있는지 토론하는 시간도 많이 가졌으니까요.” 영화를 좋아해야 영화운동의 가능성도 보이는 것 아니었을까. 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생기면서 영화광 조영각은 자연스럽게 독립영화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접점을 찾아나간다. # 독립영화인 조영각 “장산곶매가 없어지기 전에 문화학교 서울에 와서 영화상영도 하고 그랬어요. 봉준호 감독의 <백색인>, 조근식 감독의 <발전소> 등도 틀었고요. 그때쯤 인디포럼 준비하면서 저는 독립영화하고 관련을 맺기 시작했죠. 문화학교 서울에서 관객과의 대화 마련하면서 독립영화 감독들과 많이 만났으니까요. 류승완 감독의 <변질헤드> <패싸움>을 묶어서 처음 상영한 것도 우리였고. 그때 인맥이 많이 넓어졌어요. 보도자료 들고 언론사도 많이 찾아다녔고요. 잉마르 베리만 영화 트는 데 사진이 없으니까 사진을 오려서 가기도 했고. (웃음)” 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생기고 나서 처음 든 그의 생각은 “문화학교 서울 3일, 한독협 3일” 출근이었다. 그러다 “한독협 사무국장이 됐고, 인디포럼도 바빠졌고, 99년 2월부터는 ‘독립영화 관객을 만나다’ 기획하느라 바빴고, 문화학교 일을 빠지게 됐죠.”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인디포럼 프로그래머, 한국독립단편영화제 집행위원등 ‘독립’과 ‘인디’자 들어가는 직함만 해도 여러 개를 거쳐 지금 그의 자리는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각종 사안에 대한 영화 세미나에 빠지는 법도 없다. 물론 직함의 수만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무엇보다 독립영화인 조영각은 독립영화에 관련된 어떤 이슈라도 민감하게 대응할 뿐만 아니라, 대처에 능하다. 이를테면, 최근의 일만 보더라도 부천국제영화제 파행 운영에 관련해 독립영화계의 강성 목소리를 주도해냈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운동 때는 배우들 다음 차례에 서는 위험(?)을 무릅쓰고도 (개그맨 ‘희한하네’팀의 일원인 동생 조영빈씨와 그의 친구들을 동원하면서까지) 1인 시위에 나섰고, KBS <독립영화관> 방송 폐지 움직임 등과 관련해서는 <팔월의 일요일들>의 시사회 전날인데도 성명서 작성에 진땀을 뺐다. 거의 언제나 맨 앞에 서서 외치는 사람 중 한명인 그는 “우리도 나름대로 영화해야 하는데 이렇게 만날 투쟁하러 다녀야 되냐?”며 푸념을 잊지 않지만, 어쨌든 사회가 더 나아지지 않는 한 그의 손과 발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푸념을 뒤로하고 바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를 독립영화계의 대변인으로 만든 건 자의 반 타의 반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이슈에 동참하기 때문인데, 그러다보니 스스로 이슈 메이커가 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해프닝에 가깝지만 가장 유명한 조영각 일화 중 하나가 바로 ‘반쓰봉 사건’. 2000년 영화법 개정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원로 영화인이 반바지 차림으로 단상에 오른 조영각씨에게 호통을 쳤고, 그 내용이 언론을 타고 퍼지면서 쟁점이 됐던 내용이다. “사실 무대 올라가는지 몰랐어요. 그때 독립예술제를 하고 있었는데, 매일 비오고 그래서 반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고…. 왜 옷차림 갖고 그러느냐 그 자리에서 세게 말할 수도 있었지만 참았어요. 나중에는 다들 잘 참았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도 두고두고 사람들은 한순간이나마 의복 표현의 자유를 뺏겨버린 이 ‘반쓰봉’의 사내를 기억하게 되었다. “영진위 놀러가면 안정숙 위원장은 장난 삼아 반바지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봐요. 이충직 위원장은 너도 이제 높은 사람들 만나고 그래야 하는데 반바지 좀 그만 입어라 그러죠. 그럴 때 김동원 감독님이 반바지 입고 슥 나타나는 거예요. (웃음) 그럼, 그러죠. 저거 보세요. 왜 나한테만 그래요?” ‘반쓰봉’ 사건이 해프닝이었다면 사실상 상영금지에 해당하는 <죽어도 좋아!> 제한 상영가 재심 결정에 항의하여 임정희, 박상우씨와 함께 영상물등급위원회 소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한 것은 일종의 용단이었다. “한독협 사무국장을 그만두자마자 출근한 곳이 영등위였어요. <죽어도 좋아!>는 내가 알고 있었고. 이게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향방이 결정될 거란 생각은 했어요. 닥치니까 묵과할 수 없었죠. 사회적으로 이슈화됐고, 성명서도 빨리 나왔고, 언론 노출도 발빠르게 했고요. 그때는 하루 60통씩 전화받았어요.” 그 선택에 대해서는 선뜻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고는 말하지만, 본인으로서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한 가지. “<팔월의 일요일들>에 오정세씨가 나와요. 그런데 다른 장편상업영화 출연이 겹쳐서 못 올 것 같다는 거예요. 우리는 하루만 밀려도 타격이 크잖아요. 거기에선 조연이지만 우리쪽에서는 주연인데. 내가 그쪽 제작팀에 전화를 걸었죠. 다행히 그쪽에서 스케줄 조정해서 친절하게 시간 빼주더라고요. 그게 박진표 감독의 <너는 내 운명>이었어요. (웃음) 한번씩 주고받은 거죠.” 조영각씨가 <죽어도 좋아!>의 제한 상영에 반대한 것은 <둘 하나 섹스>로 이미 한번의 법적 부당함을 겪어본 유경험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지상 감독의 <둘 하나 섹스>는 1999년 9월과 12월 영등위의 전신인 공연예술진흥협회로부터 재차 등급보류를 받았다가, 법정 투쟁을 통해 결국 2001년 8월30일 헌법재판소로부터 등급보류 위헌 결정을 끌어내 개봉이라는 결과를 얻어낸 사례였다. <둘 하나 섹스>의 프로듀서가 조영각이었으며, 그 작품은 그가 프로듀서로서 첫발을 내디딘 작품이었다.

아시아 작가 영화의 지도그리기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이루어지는 특별 프로그램인 <아시아 작가 영화의 새지도 그리기 2> 에서는 이란의 아미르 나데리, 인도의 V.샨타람, 중국의 추이즈언 감독의 작품 16편이 소개된다. 이란에서 활동하다가 1980년대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아미르 나데리는 지금(실제로 지금도 2편의 영화를 기획, 촬영 중이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의 작품은 이란에서 만들어진 <하모니카>, <달리는 아이들>, <물, 바람, 먼지>와 뉴욕에서 제작된 , <마라톤>, <사운드 배리어> 6편이다. 배경은 이란의 사막에서 번잡한 뉴욕의 거리로 변했지만, 그의 인물들은 여전히 불안하게 달리고 도망치고 찾아 헤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강박에 사로잡힌 인물과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은 나데리의 영화 제작 과정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미르 나데리는 촬영장에서 스탭들과 배우들을 극한 상황까지 몰아넣고 악에 받힌 연기가 나올 때까지 고함을 질러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란-이라크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바단의 도시에서 촬영되었던 <달리는 아이들>(1985)은 거리에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하고서야 촬영을 중단했을 정도였다. 이런 극단적인 제작 환경은 영화 속 이미지뿐 아니라 관객들의 관람 경험에도 고스란히 연결된다. 말 그대로 아미르 나데리는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견딜 것을 요구한다. 이란의 거리에서 한푼 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는 고아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달리는 아이들>은 다분히 자전적이다. 소년의 지독한 고집은 차라리 광기처럼 느껴진다. 구두닦이 도구를 훔쳐간 오토바이 탄 사내를 쫓아 달리는 긴 시퀀스는 감독의 집착과 강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후 1989년 <물, 바람, 먼지>를 마지막으로 이란을 떠난 나데리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며 잡음으로 가득한 뉴욕이야말로 강박적인 인간을 묘사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에서 만든 그의 영화들은 도시를 괴기스러움과 하층민, 학대 받는 인간들로 가득한 정글로 묘사한다. 외로움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도시에서 그의 인물들은 여전히 미지의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추적을 계속하고 광기에 빠져 끊임없이 움직인다. 아미르 나데리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다른 특징은 거듭되는 영화 사운드의 실험이다.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 퍼즐을 푸는 <마라톤> (2002)에서 고조되는 앰비언스의 불협화음과 아파트의 침묵이 보여주는 극명한 대조 혹은 죽은 어머니를 찾기 위해 테이프를 뒤지는 청각 장애인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운드 배리어>(2005)는 관습적인 사운드를 뛰어넘는 청각적 환기를 경험하게 만든다. 1921년 무성영화 시대부터 1984년까지 영화 제작을 계속한 V. 샨타람은 인도영화계의 거인으로 묘사된다. 영화 제작의 다양한 분야에 골고루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감독뿐 아니라 편집자, 배우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또한 영화 기술의 발달에 몹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30년대 독일의 영화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UFA 스튜디오를 직접 방문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일찍 유성영화를 제작하였으며, 인도 최초의 컬러 영화를 만들고, 1935년에 텔레포토 렌즈를 사용하고, 70mm 필름을 배급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결혼 지참금, 교도소 개혁, 성직자의 몰락 등 식민지하의 인도와 독립한 인도 공화국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었다. 이번에 상영되는 <예기치 못한 일>(1937)은, 유아결혼을 다루었다는 이유로 당시 인도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는 자유주의적이고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독립한 인도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조명하면서, 영화가 무엇인가와 영화가 무엇을 다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지만, 결코 주류 영화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진지한 주제와는 별도로 음악과 춤을 주제로 하는 영화들도 다수 제작하였는데, 대중적인 뮤지컬을 통해서 흥행성와 대중성을 유지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댐 건설을 둘러싸고 종교가 다른 두 친구의 갈등을 그린 <이웃들>과 함께 소개되는 일본 식민시대의 중국에 파견된 의료진의 일대기를 그린 <코트니스 박사의 여정>과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작인 <두 개의 눈동자와 열 두개의 손>에서는 감독뿐 아니라 직접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의 아들인 키란 샨타람은 아버지의 영화제작에 30년 동안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올해 소개되는 <샨타람의 초상>은 딸 마루라 자스라이가 직접 만든 샨타람의 영화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중국 퀴어 영화의 대표주자인 추이즈언은 강의 시간에 동성애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최근 베이징 영화 학교의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극단적인 호모포비아가 만연한 중국에서 공공연히 퀴어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추이즈언의 최근 작품인 <스타어필>, <꽃피는 계절에 시들다>, <억제>는 그가 설립한 DV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이야말로 공식적으로 중국 내에서의 영화 제작이 금지된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이다. 추이즈언은 ‘커밍 아웃’이 주는 트라우마나 국가의 호모포비아에 대해 언급하거나 자기연민의 피해의식에 빠지는 대신, 성적 성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추이즈언과 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유보를 포함한 배우 3명을 초청하였으며, 토니 레인즈가 참석하는 대담을 마련하여 중국에서의 퀴어 문화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From a World of Madness and Obsession to China's Queer Cinema? Continuing from last year, PIFF's, "Remapping of Asian Auteur Cinema 2" introduces 16 films from Iran's Amir Naderi, India's Rajaram Vankudre Shantaram and China's Cui Zien. From Naderi come six films, three made in Iran, , , and , and three made after he immigrated to New York, , , and . His possessed characters and painful images arise directly from his production process, as in , shot during the Iran-Iraq war, where shooting was interrupted by falling bombs. This impacts not only the images, but the viewers as well. You can't simply watch his films, you are demanded to endure them. The young orphan of is quite autobiographical. His intense persistence verges on insanity. When the runner runs after a thief on a motorbike, Naderi’s own stubbornness is perfectly portrayed. After moving to New York, Naderi depicted the city as a jungle, with characters engaged inendless quests, chasing unknown targets to the point of falling into madness. Naderi’s other specialty is his sound experimentation. Exceeding convention, he creates auditory awakenings, as in , where a sharp contrast is created between an ambient cacophony and the silence of an apartment, and in , where a deaf-mute searches for his dead mother’s audio tapes. From 1921 until 1984, Shantaram was a Indian cinema titan, working as a director, editor and actor. He also developed film technology, creating the earliest sound films and making India’s first color movies. He confronted socialissues, addressing dowries, prison reform, clerical corruption, India's colonial past and the development of the Republic. Screening at PIFF 2006 is his 1937 work, , a film banned in India for dealing with child marriage. Though he employed a liberal and feminist perspective, he never abandoned the mainstream and his musicals were extremely successful. He also appeared as the main character in , , and , winner of the Berlin Silver Bear. PIFF 2006 also introduces , a documentary about Shantram's cinematic world, directed by his daughter, Madhura Jasraj, and produced by his son, Kiran Shantaram, who worked as his father’s assistant director for 30 years. Cui Zien, a prime representative of China's queer cinema, whose films are prohibited from public productionin China, has set up his own "DV Studio," where he produced such digital films as and . More than addressing society’s homophobia or the trauma of "coming out", his works employ a style that weaves between truth and lies, acknowledging the fluidity of sexual inclinations. Chui and three of his actors are also scheduled to discuss the growth of Chinese queer cinema in a PIFF panel with film critic Tony Rayns.

쇼 비즈니스의 계명을 따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만큼 역사적인 소재와 뚜렷한 제목을 가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개봉했다. 안드레아 버로프의 시나리오에 근거한 이 영화가 지닌 놀라운 점은 그 사실성이 아니라 절제에 있다. 파괴 전문가 스톤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수백만달러를 사용해 9·11 직후의 파괴 장소를 재현했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효과는 섬세한 편집에 있다. 역사를 바꾼 재난은 빠르게 진행된다. 비행기의 그림자가 보이고 꽝 하는 충격음, 그리고 텔레비전 중계 이미지들. 내내 스톤은 분별력있게 장면들을 전환시키고 어두운 화면을 의미있게 사용한다. 올리버 스톤은 베테랑 군인이다. 그의 주인공도 그렇다. 20년 경력의 항만 경찰 존 맥라글린(니콜라스 케이지)은 새벽 3시29분에 일어나 자는 아내 도나(마리아 벨로)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직장으로 향하고 자동차 라디오에선 신기하게 ‘뉴욕시에 떠오르는 해’를 노래하고 있다. 항만청 터미널에 도착하자 젊은 경관 윌 히메노(마이클 페나)가 혼란스러운 무리를 뚫고 다가오는데, 둘은 곧 우여곡절을 함께 겪게 된다. 이들의 아침 모임은 군대적 성격을 가졌다. 비행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부딪혔다는 뉴스를 듣자 맥라글린과 부하들은 전쟁터로 향한다. 이것은 그들의 의무인 것이다. “우리는 다운타운으로 간다.” 무시무시한 파괴의 이미지는 CGI를 통해 다소 부드러워졌다. 90층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한명만 보여준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사무실 직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지원한 맥라글린과 히메노가 두 번째 타워 건물이 무너지며 재와 먼지가 큰 파도처럼 몰려오는 것을 첫 번째 타워의 로비에서 목격하는 장면이다. 새로운 스타일의 재앙영화에 걸맞게 재앙의 스펙터클은 이 영화의 경우 산 채로 묻혀버리는 주관적인 경험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6m 깊이의 건물 잔해 더미에 빠져버린 두 경찰은 땅속 깊이 갇힌 광부와 같다(케이지의 배역은 물리적으로 속박되어 있는데 감독처럼 이 배우도 효과적으로 제어돼버린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스톤의 전쟁 경험과 할리우드 전쟁영화 방식으로 그려진다. 인물들은 <지.아이.제인>을 인용한다. “고통은 너의 친구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뿐 아니라 전투지와 가정이 파괴되었다. 이 사상자들은 집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의 사자들을 기다리는 아내들과 함께 이 비극을 겪게 되는 헌신적인 가장들이다. 마리아 벨로는 절망을 조절하며 버티고 있지만 매기 질렌홀이 연기하는 앨리슨 히메노는 뉴저지 집을 들락날락하며 초조해한다. 스톤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라고 의무적으로 스튜디오가 주문했을 말을 반복했다(그것이 가능이나 한가. 사용된 음악도 레이건이 재선을 위해 선거 켐페인에서 사용했던 구질구질한 피아노곡을 연상시키고 있는데…). 하지만 일단 스톤이 카메라를 들어올려 파괴 현장에서 통신 인공위성으로 전세계를 보여주니 필연적으로 정황이 보이기 시작한다. 첫 번째 반응자는 영웅적인 조지 부시고 그 뒤로 셰보이건 경찰관이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뱉고 또 다른 남자는 “조국이 전쟁에 직면했다”라고 외친다. 코네티컷 어딘가에선 자신을 중사라고 부르는 전역 해병대원이 하늘의 소명을 받고 참사 현장으로 인명 구조를 위해 달려간다. 그는 현장에 접근하며 “신은 연기로 장막을 드리워 우리가 볼 준비가 되지 않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라고 말한다. 스톤이 세공한 것은 무엇인가? 우익한테 스톤은 제인 폰다 이후 마이클 무어 이전 가장 미움받는 할리우드 자유주의자다. 하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스톤의 갱생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용기라는 특성만이 아니라 신의 의지다. 단지 사람들만 구조를 받은 것이 아니라 가족이 구출되는 것이고 가족이 지닌 가치 또한 구하는 것이다. 생존을 확인한 맥라글린은 도나에게 궁극적인 공을 돌린다. “당신이 날 살아 있게 했어.” 재앙을 오락으로 바꾸는 열쇠는 정신을 고무하는 것이다. 당신이 신의 간섭을 믿지 않는다 해도, 물론 스톤도 안 믿는 듯 보여왔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더 중요한 쇼 비즈니스의 계명을 준수한다. 2700여명이 죽은 잿더미에서 살아남은 20명 중 2명에게 초점을 돌림으로써 영화는 <쉰들러 리스트> 전략을 사용한다. 관객이 이름없이 죽어간 많은 사람들 대신 기적적으로 재앙에서 살아남은 선택된 몇몇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닌 선함을 보여주었다”라고 해설은 결론내린다. 맥라글린과 히메노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향했다는 점은 감동적이다. 중사가 그들을 찾았다는 점은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의 다음 임무를 내다본다. “이제 누군가가 복수를 해야 해.” 9·11은 조지 부시의 설명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일까? 스톤의 자막은 중사가 그 뒤 이라크에 두번 파병됐다고 알려준다. 이라크의 재앙에선 도대체 누가 우리의 용감한 군인들을 구할 것인가?

투덜양, <사랑과 야망>의 미자와 <봄의 눈>의 키요에게 한마디

요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하나 있다. 미자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한고은이 열연하는 그 미자말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미워하다니 엄청 한가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의 시름이 깊을수록 믿고 의지할 건 텔레비전밖에 없다는 옛 성현의 말씀도 있지 않나.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겠지만 딱 하나, 아주 죄질이 나쁜 사랑이 바로 미자가 태준에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곁에 있을 때는 온갖 무시와 외면으로 상대방의 인내를 시험하다가 상대방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순간 돌아와달라고 매달리는 건 사실 사랑이 아니라 ‘나 갖긴 싫은데 남주긴 아까워’병의 발작 증상에 불과하다. 미자와 태준의 재결합 이후 벌어지는 파탄의 풍경을 보라. 여기부터는 시청을 중단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정신건강이니까. 그래서 한동안 평화로웠던 나의 마음상태를 다시 발칵 뒤집어놓은 미자의 이란성 쌍둥이가 등장했으니 <봄의 눈>의 주인공 키요다. 키요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토코에게 매몰차게 대한다. 그저 거절하는 게 아니라 사토코에게 없는 말을 지어 자기가 유곽을 전전한다는 편지를 보내고, 가장 친한 친구와 사토코를 맺어주려고도 한다(아, 미시마 유키오!). 결국 사토코가 모든 걸 포기하고 황족인 다른 남자와 약혼을 하는 순간 그는 사토코의 유모를 협박해 사토코와 만난다. 그리고 남들의 눈을 피해 여관 같은 곳을 전전하면서 사토코와 금지된 연애를 시작한다. 영화는 끝내 실패하고 마는 이들의 사랑을 슬픈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다. 모든 파탄은 키요가 만든 것에 불과하다. 그는 사토코와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자기 발로 차버린 다음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징징거린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노는 고무줄을 끊는 건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정리할 일이다. 그런데 나잇살이나 먹은 어른이 자신의 감정과 욕망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눈물, 콧물 다 흘리며 “그건 사랑이었어요” 외치는 건 추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모든 걸 용서할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 쓰마부키 사토시라 할지라도 <봄의 눈>의 키요가 괴로워하는 건 연민을 주지 못할뿐더러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았을 때 “쌤통”이라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눈물, 콧물 빼고 있을 세상의 미자와 키요 들이여, 인면수심이란 꼭 강간범한테만 쓰이는 말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이는 악행을 중단하시라. 안 그래도 세상은 고달픈 일투성이인데….

[외신기자클럽] 류승완 감독, 쓸쓸한 얼굴로 돌아보다

<포지티브> 특별호, <카이에 뒤 시네마> 특집, 400쪽 분량의 중요한 책 한권, 텔레비전과 파리의 한 극장에서의 회고전 등…. 1970년대 미국영화가 유행이다. 아마도 이 현상은 부시의 두 번째 임기의 보수주의와 일부 할리우드영화의 무기력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 1970년대의 위기는 미국 영화사에서 가장 성숙한 영화들을 탄생시켰다. <이지 라이더>(1969)가 거둔 의외의 성공에 이어 스튜디오들의 주류는 반문화와 청년문화의 비주류에 문을 열었다. 할리우드는 코폴라, 스코시즈, 알트먼, 드 팔마, 스필버그, 루카스와 그 밖의 많은 감독들이 만개하는 것을 보게 됐다. 이 시기는 1975년 <죠스>와 함께 쇠락하기 시작했다. 작품의 장점이 어떠했든 간에 영화는 <씨네21> 독자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새로운 배급방식을 구축했다. 일반 작품이 125~200개 스크린에서 개봉하던 당시, <죠스>의 상어는 단번에 500개관을 점령했으며, 1980년대를 지배하게 됐던 ‘블록버스터’라는 모델의 서장을 열었다. 1977년 <스타워즈>가 나왔고, 1978년엔 <슈퍼맨>이 나왔고… 비주류는 추방됐고, 주류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았다. 또는 비주류가 결국 새로운 주류를 만든 것이라 하겠다. 물론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이런 왔다갔다하는 현상은 미국만의 고유한 것은 아니다. <짝패>를 보고 난 뒤 생각하게 됐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도시로 되돌아와, 청소년기 패싸움의 사심없는 폭력이, 냉소적인 성인이 된 옛 친구에 의해 조직된 범죄에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을 목격한다. 복수 이외에도 다분히 고전적인 영화의 주제는, 결론적으로 말해 순수함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감독 자신이 자기 영화의 근원을 찾으며, 극중 인물의 여정과 공명하는 것이다. <짝패>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열정적인 영감을 되찾으려는 절망적인 시도나 마찬가지다. 결국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따라서 영화는 영원히 잃어버린 순수에 대한 향수 속에서 끝을 맺는다. 류승완 감독은 비주류 출신으로 주류에 새로운 스타일을 불어 넣었던 작가군에 속한다. 기존 주류의 내부에서, 그는 매우 개인적인 자신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둥지를 트는 힘이 있었다. 그렇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작품을 분출시켰던 정돈되지 않은 원동력은 성숙함이 생기면서 떨어졌다. 이것이 주류 속에서 살아남는 데 치르는 대가다. 최근에 <엽기적인 그녀>를 다시 봤는데, 이 작품은 대략 <스타워즈>가 새로운 할리우드에서 그랬듯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에 속한다. 기존 규범으로의 회귀는 이 작품의 구체적인 한 장면에서 드러난다. 처음에 농구화를 신은 여주인공은 지하철 역사 끄트머리, 노란선 가장자리 훨씬 너머 자리잡고 있었다. 완전히 변두리 비주류 속에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지하철 역사에 있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있다. 감독은 전지연의 발 클로즈업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뒤로 한발 물러선다. 노란선 너머로 자리를 옮기고, 더이상 위험과 불균형이 없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서 있는 규범의 공간으로 들어간다. 즉, 주류 속으로 말이다. 그녀와 함께 모든 한국영화는 가장자리 비주류의 텅 빈 공간을 과거 향수에 젖은 이들에게 남겨둔 채 자신의 한계를 다시금 그린다. 지금도 용기있는 몇몇 독립영화감독들은 그들의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주변부가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