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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박찬욱 감독 인터뷰

“존재의 목적은 그냥 밥먹고 씩씩하게 사는 것이다” 평론가를 그만둔 지금까지도 전업 글쟁이보다 글을 더 잘 쓰는 영화감독 박찬욱이 쓴 글 중에 ‘인터뷰’라는 게 있다. 그 안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가 인터뷰를 당할 때 기자들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유괴범을 청각장애인으로 설정하신 이유는?” 이렇게 묻지 않고 꼭 “<복수는 나의 것>에서 유괴범을 청각장애인으로 설정하신 건 세계와의 단절, 나아가 어떤 근원적인 소통 불가능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죠?”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어서” 감독이 “뭐… 예”라고 하고 나면, 나중에 “기자: <복수는 나의 것>에서 유괴범 역할을 청각장애인으로 설정하신 이유는? 감독: 세계와의 단절, 나아가 어떤 근원적인 소통 불가능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죠”라고 기사가 나온다는 거다. 창작자로서 “유권해석”을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함께, 말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것의 아름다움을 말로 설명받기를 요구하는 자들이 단락을 바꿔가며 곡해까지 저지르는 것을 꼬집은 문장이다. 물론 그는 그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말의 악순환”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다소 단순화한 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거나 명쾌하고 재미있는 지적이다. 인터뷰란 관객과 창작자를 중계하는 소임이니 못난 질문이라도 안 할 수는 없고, 다만 그의 말을 새겨들어 ‘길고 상투적으로 질문한 것과 짧게 망설이며 대답한 것’의 문답까지 되도록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 영화 촬영 초반 때 내 영화가 현실성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궁금한 건 현실성에서 멀어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들도 있을 텐데, 동화적인 방법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어떤 계산이나 전략을 갖고 하는 건 아니다. 개구쟁이 같은 면모가 나한테 있는데, 그게 좀 발동되는 결과인 것 같다. 그래서 아이 같고 유치하고 좀 단순하지만 멋대로인 그런 걸 다루게 된 것 같다. 예를 들면, 영군이가 자기는 핵폭탄이고 그 존재의 목적은 세계의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아이다운 발상이다. 할머니 때문에 분하고 화가 나서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고, 세상이 박살나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유치하게 화를 내는 거다. 같은 분노라고 해도 이전 영화들하고는 다른 아이 같은 면이다. 그런 것 때문에 영화가 동화적으로 보이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물어보고도 싶다. 동화적이기 시작한 <친절한 금자씨>부터 눈에 띄는 면면이 있는데, 다소 어지럽게 보일지라도 극의 전개를 펼쳐서 가겠다는 뉘앙스를 받게 된다는 거다. 그게 동화 같은 면과 같이 출발했다는 것이 의미 있어 보인다. =<친절한 금자씨>는 그런 것처럼 시작하지만, 영화 후반에 이르러서 교실에서의 학부모 회의로 모든 것이 응축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아주 단정하게 좁은 공간 안에서 여러 사람의 앙상블로 끝까지 가지 않나. 앞부분이라면 해당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다. 맞다. 단단한 구성을 추구한 영화는 아니다. 많은 조연들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동화하고 관계가 있느냐? 글쎄, 동화라고까지는 못하겠고, 역시 아이 같은 산만함? 이 얘기 했다가 저 얘기 하는, 그런 식이 반영된 것 같다. -영화는 다 자기 느낌대로 보기 나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뮤지컬 같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본 거다. 그러려고 했다. 음악도 뮤지컬처럼 해보려고 하다가 안 했는데, 자크 드미의 뮤지컬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어간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 사람 영화를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영화들의 순진함, 행복감, 유치함 그런 것에서 때때로 내가 뭔가 끄집어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HD 바이퍼카메라의 용도에 대해 완성 직후인 지금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나. 어떤 선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촬영감독은 아주 불평이 많았다. 익숙하지 않은 기계를 쓰려니 불안한 마음에. 단점 하나를 예로 들면 고속촬영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총 쏘는 장면 고속촬영할 때는 필름카메라를 썼다. 그러나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감독 입장에서는 너무도 유용한 도구다. 모니터가 선명하고, 최종 결과의 근사치를 보여주기 때문에 현장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도, 촬영기법 지식이 없는 사람도 데이비드 핀처만큼이나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 수 있다. 피사계 심도, 렌즈 밀리 수 몰라도 눈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쪽은 더 어둡게 해주세요, 포커스는 저쪽도 맞게 해주세요, 모니터를 보면서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최종 결과물과 비슷하니까. 그게 아주 획기적인 것 같다. 다음 영화를 또 바이퍼카메라로 할지 안 할지는 생각 중이다. -관객이 궁금해할 만한 팩트에 대해 질문해보겠다. 가령, 영군이 할머니가 정신병원에 끌려간 일로 상처를 크게 받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영군이가 그 기억을 회상하는 걸 보면 영군이도 그 상태가 이미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웃음)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설정한 건데, 그 배경이 궁금했다. =이런 환자들을 다루는 영화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만들기 위해서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외상에 무슨 미스터리가 있는 것처럼. 그런데 실제 분열증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건 그렇지 않다는 거다. 정신병에 대한 상업영화 접근법에 전통이 있는데 그것에서 벗어나려고 한 거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리고 모계로 내려오는 분열증 증세라는 건 벗어나기 힘든 운명적인 비극의 성격을 갖고 있다. 지금 보여지는 이야기가 밝긴 해도 어차피 이 영화는 치료되지 않는 환자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다루는 감독의 태도는 치료를 포기한 태도다. 그런 면에서, 사실 셋 중 제일 아파 보이는 사람은 엄마인데, 아이는 병원에 들어가 있고 엄마는 버젓이 바깥에서 일하고 있다. (웃음) 영군 엄마 캐릭터는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만들어낸 캐릭터 중 제일 훌륭한 캐릭터인 것 같다. 연기도 그렇고.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동감한다. 이용녀씨가 갖고 있는 말투와 표정과 배역은 정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영군 엄마 역으로 캐스팅하게 된 건가. =<친절한 금자씨> 때 만났는데 문학소녀 같은 면이 있어서, 현장에서도 대기하는 시간에 언제나 독서하시고, 섬세하지만 감정 기복도 많고. 들떠 있을 때는 또 들떠 있고, 어떻게 보면 연약해 보인다고 할까…(웃음), 그렇다. -또 하나 덧붙이면 유독 본인 영화에서 오달수가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 영화에서도 재미있었다. 오달수는 자신이 갖고 있는 섬세하고 나약한 면이 나올 때 매력을 풍기고 사랑스러워지는 것 같다. 이번에 가만히 보니까 그의 코미디는 시선 처리에서 나온다는 걸 알겠더라. 간호사가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릴 때 눈을 찔끔 감는데, 관객은 그때 웃을지 모르지만, 정작 웃긴 건 그러고 나서 눈을 뜨고 오달수가 째려보는 순간이다. 또는 “너희들이 폐 끼치는 기분을 알아, 씨발년아”, 그렇게 욕해놓고 (갑자기 실수했다는 듯) 둘러싼 사람들을 슥 쳐다본다. 그런 시선 처리에서 코미디가 나오더라. 그런 것의 달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다리 건너인 할머니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심쩍어하는 시대 아닌가. 그런데 영군과 할머니의 관계를 굉장히 가깝게 묶어놨다. =그건 영군과 엄마하고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군과 엄마의 관계가 나빠 보이지는 않던데. =엄마 상태가 안 좋은데다, 할머니를 이모들과 함께 보내버리기까지 했다.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았어도 이 둘 사이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는 느낌을 주고 있고, 그래서 엄마 대신 외할머니와 유대를 갖는 것으로 설정 한 거다. 외할머니는 자기가 쥐라고 생각해서 그냥 조용히 무를 갉아먹을 뿐 남을 억압하진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이고, 억압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자기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로 여긴다는 점에서 영군과 통한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가 백 선생을 처단하기 위해 하는 일은 친구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진심을 준 것 같지 않아서, 그들의 마음을 훔친 모양새가 된다. 훔친다는 의미에서 일순의 캐릭터를 생각나게 한다. =그건 생각 안 해봤다. 일순은 엄마가 떠났다는 상실에 공허해졌고, 그 빈자리 때문에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축소되고 끝내는 점이 될 것 같은 공포를 가진 사람이다. 살기 위해서 훔치려는 사람이다. -라디오의 경우도 그런가. 라디오는 영군에게 공상을 허락하고 할머니와의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크게 보면 <친절한 금자씨>는 라디오 동화극을 구연하는 방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역시 관련성을 묻게 된다. =그건 라디오 성우를 다시 기용함으로써 닮아 보이는 면일 거다. 그런 얘기 듣겠다는 걱정은 했다. (웃음)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성우의 목소리가 제니의 미래 목소리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객관적인 줄 알았던 것에 반전이 일어난다. 그에 비하면 이번 라디오의 목소리는 기계의 신 같은 존재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가냘프지만 권위적인 음성, 무섭지 않은 형태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무서운 것, 이라는 점이 목소리의 요점이다. 라디오는 뭐 영군이 직접 만드는 기계장치라는 의미 정도인 거고. -영군이 밥을 먹고 나서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약간 긴 에필로그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할머니가 말했다고 영군이 생각하는 “존재의 목적은…”이라는 것에서는 이 사람들을 그냥 이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감독의 전언을 듣는 것 같았다. 그건 아까 대답 중에 말한 치료를 포기한 감독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된다. =진짜 에필로그가 하나 있었다. 각본을 만들었다가 지웠는데, 뭐 한 30∼40년 흐른 뒤에 노인이 된 남녀가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비가 오니까 자동으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제야 그 집이 위치한 곳이 보이는데, 달동네 꼭대기, 제일 높은 곳이다. 그 옥상에는 언제나 준비된 텐트가 있고,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 안테나를 붙들고 번개를 기다리면서 끝나는 거다. 안 찍은 건 그렇게 안 해도 다 알 것 같아서였다. 이 커플은 이렇게 해서 밥을 먹게 됐으니까 됐고, 평소에는 잘살다가 비 오면 행사처럼 나가고, 비 그치면 또 평소처럼 살고, 그러면 됐지 한 거다. -영군과 일순의 태도는 말 안 됨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인 것 같다. =우리가 망상이라고 깔보면서 불러도 분열증 환자들에게는 그게 중요한 생활의 기반이다. 어쨌든 거기에 적응해서 살아야 하니까. 내가 핵폭탄이라고 믿어야 이 여자가 잘살 수 있다면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터지면 너희들은 다 끝장이야라는 마음으로 살더라도, 남들에게만 해끼치지 않고 살면 되는 것이다. -착각과 착란이 대체로 박찬욱 영화에서 이끄는 지점은 어떤 이성적 판단이 고장나버리는 지점이라는 거다. 늘 영화에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판단이 멈춰지는 것이 항상 중요하게 보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굉장히 원초적인 내용이 담긴 것이 아닌가 싶다 =방금 내가 장황하게 설명한 게 바로 그런 내용이다. 무지개가 떠오르고, 해도 뜨고, 둘이서 원초적인 나체로 끌어안고 있는데, 거기에는 이렇게밖에는 생존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제스처도 들어 있다. 세상을 끝장내겠다는 목적을 자각하고 나서야 존재하겠다는 희망을 갖는 그런 패러독스가 보기에 따라서는 불행하거나 뭔가 보수적인 태도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뿌리를 뽑아버릴 정도의 완벽한 희망을 포기한, 그런 태도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 영화에서 내가 생각한 것은 존재의 목적을 거창하게 외부에서 찾는 것은 어렵거나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결국 존재의 목적은 존재 그 자체이고, 뭔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밥먹고 씩씩하게 그냥 사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욕먹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뭐 내가 생각하는 건 그런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그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그게 논쟁이 된 건 복수 삼부작이었다. 그래서 아까 원초적이라고 말했던 건 도덕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에서 판단력이 멈추는 양상을 이 영화는 그냥 알몸으로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맞다. 그것에 대해서는 뭐… 그렇다고 할밖에. -기자 간담회장에서 어떤 사람이 마지막 장면에 대해 한 질문에 모두가 웃었지만, 실은 그런 자리에서 나온 질문치고는 꽤 괜찮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음… 그거야 안 나오면 이상한 거지. -방금 그 장면을 말하면서 주인공들이 벌거벗었다고 은연중에 표현을 했는데, 확실히 엉켜 있는 건 분명하다. 비가 와서 옷이 젖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되고, 그러다보니 한쪽에 뜬 무지개는 이 사람들의 자세를 조금은 예쁘게 혹은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의상의 도안 자체가 마치 이 순간을 살덩어리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제로 벗고 있다. 하지만, 무지개는 거대한 충전 완료를 뜻한다. 시선을 돌리려는 뜻은 없었다. 그 장면의 이미지 자체는 무지개만 빼면 네덜란드 사진작가 에드 반 데르 엘스켄의 작품을 참조한 것이다. 인용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영군 침대 머리맡에도 그 사람 사진을 걸어놨는데 어떤 흑인이 기계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장면이다. 기계가 꼭 표정을 가진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 사람 사진 중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초원이 있고, 멀리서 남녀가 벌거벗고 성행위를 하고 있는 사진이다. 거기서 직접 따온 이미지다. 영화 속에서 그게 성행위까지 가는지 아닌지는 나한테 중요하지 않다. 그 컷에서만큼은 성행위는 아니다. 부모들이 보면 기겁할 만한 소꿉놀이 장면 정도로 설정되어 있는 거다. -하지만 둘 다 20대 초반으로 나이가 설정되어 있고, 그 정도면 이성이 모자라도 본능적인 육감은 있을 때다. (웃음)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사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굉장히 성적인 어필을 했다. 그래서 이 영화가 12세 관람가를 받은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웃음) =(웃음) 심의위원들은 내 생각처럼 그 장면을 봐준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찍었고. 전체적으로 본다면 성적인 뉘앙스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암시하는 모습들은 많이 있다. 키스할 때 발바닥에서 분출되는 화염, 열락을 뜻하는 듯한 무지개, 와인 병에 물들어간다고 집어넣는 손가락 같은 것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렇게 생각하셔도 우리는 잘 몰라요, 하는 그들의 그런 느낌이다. (웃음) -마지막 장면을 뭔가 탈현실화되어 있는 장면으로 끝내는 성향이 강해지는 것 같다. =강해진다기보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 같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그들이 몰랐던 사이에 찍힌 사진으로 끝나지 않나. 그걸 내가 좋아하나보다. 아옹다옹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졌던 복잡한 현실세계에서 벗어나서 탈출하는 것 말이다. -이번 영화는 소재도 그렇고 캐릭터도 그렇고 아까 말한 치료를 포기하는 감독의 태도가 크게 문제될 건 없다는 생각인데, 길게 봤을 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판단력이 항상 제로 지대에 이르게 되는 매혹이 영화적으로 본인 영화에 얼마만큼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박찬욱 영화에 대한 논쟁은 대부분 거기서 발생한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볼 문제다. 하지만 당장 대답하기는 힘든 어려운 문제다. 듣고 보니 중요한 문제 같다. (웃음) 왜냐하면 그것들이 내가 중시하는 성향이고 취향이라서. 모든 비극 내지는 옳고 그름에 대한 번뇌들이 다 하찮아지는, 극복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까지 도달했을 때 멍해지는 그런 상태가 종종 내 영화의 결말로 사용되는 것 같다. 왜 그런지 한번도 정리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바람이 있는데, 박찬욱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아주 잔인한 장면일 때조차 너무 신사적이고 고풍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주 더럽고 저열한 면을 한번 끌어안아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것은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스코시즈 같은 사람의 분야다. 나는 그런 세계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세계를 묘사하더라도 그 태도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만약에 내가 그런 것을 한다면 억지로 하는 것이 될 거다. 그래 보이고 싶어서, 스코시즈처럼 되고 싶어서 하는 짓이겠지. 본분을 알아야지. (웃음) 내 본분은 숏을 구성하거나 대사를 구성하거나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아무리 저열한 인간이라도 어떤 인간적인 기품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가 아니라(웃음), 그런 바람이 있다는 거다. 그것을 팽개치고 스코시즈나 이마무라에서 보여지는 날것 같고 바닥을 보는 듯한 그런 건 내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이럇샤이! 행복해지는 주먹밥을 드립니다, <갈매기식당>

핀란드의 갈매기는 비대하다. 어릴 적 기르던 고양이를 생각나게 한다. 하지만 음식을 맛나게 먹는 통통한 갈매기가 나는 좋다…. 주인공 사치에의 내레이션과 함께 푸른 하늘을 유유히 나는 갈매기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항구도시, 헬싱키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어느 여름날, 헬싱키의 거리 한쪽에 작은 식당이 문을 연다. 식당의 주인은 작은 체구의 일본인 여성 사치에로 식당의 이름은 ‘갈매기식당’이다. 그녀는 우연히 거리를 지나다 아무런 부담없이 누구라도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식당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단어도 ‘레스토랑’이 아닌 소박한 느낌의 ‘식당’을 선택했다. 메뉴 역시 심플하면서 맛난 것을 고민했다. 그래서 결정한 갈매기식당의 메인 메뉴는 다름아닌 오니기리(주먹밥)다. 오니기리의 종류도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대중적인) 샤케(연어), 우메(매실), 오카카(가다랑어포)의 단 3종류. 하지만 작은 체구의 일본인 여성 혼자서 하는 식당이 낯선지 현지 주민들은 호기심에 주위를 맴돌지만 좀처럼 손님이 되지는 않는다. 며칠이 지나도록 식당을 찾는 손님이라곤 갈매기식당의 기념적인 첫 손님이란 명목으로 매일같이 공짜 커피를 마시러 오는 핀란드 청년 한명뿐이다. 일본 만화에 심취한 청년은 사치에에게 <갓챠맨>의 가사를 물어보는데 어렴풋이 맴돌기만 할 뿐 도무지 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카데미야 서점 카페에서 심각한 얼굴로 <무민 계곡의 여름축제>(핀란드의 대표적인 동화작가 토베 얀손의 작품)라는 제목의 일본어 책을 읽고 있는 미도리에게 사치에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건다. <갓챠맨>을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미도리는 눈을 감고 세계지도를 찍었더니 그곳이 핀란드였다고 한다. 이를 인연으로 미도리는 사치에와 동거하면서 갈매기식당을 돕게 된다. 그리고 또 한명의 일본인 중년 여성 마사코. 헬싱키 VANTAA공항에서 짐을 기다리는데 그녀의 짐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어느 날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핀란드의 에어기타 경연대회, 휴대폰 멀리 던지기 대회 등을 보게 된다. 20년 동안 부모님의 병수발을 든 마사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하찮은 일에 그토록 열중하는 핀란드인이 인상에 남아 핀란드행을 결정했다. 가방을 찾기 위해 당분간 헬싱키에 남아야 하는 마사코도 이렇게 갈매기식당의 일원이 된다. 뭔지 모르게 여유롭고 행복하게만 보이던 핀란드 사람들의 이미지, 하지만 하나둘 갈매기식당의 손님이 늘어가고 낯설기만 하던 사치에의 일본 음식이 천천히 그들의 입에도 익숙해져가면서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사치에도 미도리도 마사코도 알아간다. 최고의 커피에 대한 전설과 마술을 알려주고 간 마티, 남편이 이유없이 떠난 뒤 우울증에 시달리던 핀란드 여성도 그들의 친구가, 이웃이 된다. 이들과 함께 아직 어떤 계획도 목표도 뚜렷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헬싱키의 일상에 젖어들면서 작은 행복을 느껴가는 사치에, 미도리, 마사코…. 사치에의 멋들어진 ‘이랏샤이’(어서오세요)와 함께 갈매기식당은 어느덧 헬싱키 손님들로 만원을 이룬다. 영화의 원작은 담담한 필치로 여성들의 일상을 그려내 많은 여성 독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인기작가 무레 요코의 소설 <갈매기식당>. 각본과 감독은 이 작품이 세 번째인 오기가미 나오코가 맡았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시골에 사는 소년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담담하게 담아낸 데뷔작 <이발사 요시노>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어린이영화부문 특별상을 수상했다. 도쿄에서 약 10시간,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에 자리한 나라 핀란드. 핀란드인들은 일본인들처럼 연어(salmon)를 좋아한다. 사치에가 갈매기식당의 장소로 핀란드를 선택한 이유이다. 어렴풋이 멀고도 가까운 이미지의 나라 핀란드에서 <갈매기식당>이라는 영화가 탄생했다. <갈매기식당>에 출연하는 일본인은 3명의 중년 여성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핀란드 배우이고,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과거가 없는 남자>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헬싱키 출신 마르쿠 펠톨라가 커피의 마술을 전해주는 마티 역으로 출연한다. 주요 스탭으로는 일본인 스탭 외에 헬싱키의 따뜻한 풍광과 여유로운 헬싱키인들의 감성, 그리고 항구도시 헬싱키의 내음과 풍경 등을 스며들듯 화면에 담아낸 촬영, 조명, 녹음, 미술에 핀란드 스탭이 참가했다. <갈매기식당>은 <사가의 무서운 할머니>와 함께 2006년 일본 미니시어터(단관계) 최고의 흥행작이다. 헬싱키(핀란드) 올 로케로 진행된 이 영화는 일본 내에서 제작비 약 8천만엔, 마케팅비 약 5천만엔, 프린트 17벌(순회상영으로 현재까지 약 70개 스크린에서 상영)로 극장에서만 약 7억엔의 수익을 올렸고 이런 극장의 호성적에 힘입어 현재 DVD도 잘나가고 있다. 이 영화가 일본의 30~40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으면서 흥행에 성공한 배경에는 1988년에 시작된 <후지TV>의 심야 인기시리즈 <역시 고양이가 좋아>라는 시추에이션 코미디가 있다. 극의 반 이상이 애드리브로 진행된 이 프로는 배우들의 절묘한 연기궁합에 힘입어 세 자매의 다양한 일상을 자연스럽게 그려내 인기를 얻었다. 가타기리 하이리를 제외한 고바야시 사토미, 모타이 마사코가 역시 세 자매의 멤버이다. <역시 고양이가 좋아 2005>에는 이 영화의 감독인 오기가미 나오코가 각본을 담당하기도 했다. “인간은 모두 변해가는 법이니까…”라는 사치에의 신념처럼, 핀란드어를 배우고 어릴 적부터 해온 합기도로 심신을 단련하는 사치에 본인처럼, <갈매기식당>은 조용하면서도 강하고, 그러면서 왠지 기분 좋은, 그런 편안한 행복감이 은근하게 넘쳐나는 영화다.

죽음의 전조를 낭만적 판타지로 표현한 <수면의 과학>

달콤하고 광적이며 서글픔을 담고 있는 미셸 공드리의 새 영화 <수면의 과학>은 놀라운 조합물이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불행하고 채플린을 닮은 듯한 광인을 연기하는 이 장난기 가득한 낭만적 이야기에는, 공드리가 찰리 카우프만의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든 <이터널 선샤인>의 여운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겉모습을 볼라치면 공드리의 뮤직비디오들이 떠오른다. 이상한 옷들과 콜라주 경치, 얼기설기한 사물들의 애니메이션, 가짜 원근 착시 그리고 거친 상상의 지형도. 공상 속에 사는 스테판(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자신이 <스테판 TV>라는 텔레비전 쇼의 진행자라고 상상하며 밤을 보낸다. 창고에 달걀판들을 붙여 만든 세트장. 카드보드로 만든 카메라를 보며 스테판은 음악도 연주하고 게스트들도 인터뷰하며 (주로 자기 엄마) 시청자에게 자신의 비전을 어떻게 “섞는지” 지켜보게 한다. 매일 밤마다 자신의 쇼에서 스테판은, 멕시코에서 아버지와 살다가 파리에 있는 가족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이 훌륭한 복귀의 세팅은 꿈의 스튜디오의 또 다른 버전이어서 스테판은 그저 소년 시절 물건들과 루브 골드버그식 장치들로 둘러싸인 조그만 침대에서 자고 있다. 언짢은 성격의 마술사와 사는 스테판의 엄마(미유 미유)는 아들을 인쇄소에서 일하게 해준다. 가게 주인은 스테판이 제안한, 각각의 달이 유명한 재난으로 구별되는 달력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드리의 지나친 공상가 주인공이 어디에서든 그렇듯이, 그곳도 독특한 인물들과 상상거리 풍부한 물건들이 가득해 그의 쇼를 위한 환상에 사용된다. 스테판의 일상은 스테파니(샬롯 갱스부르)가 앞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더 복잡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테판이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가냘파서 세밀하고 앙상한데다 대단히 신경질적이다. 하지만 매력이 없다고 집착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스테판과 스테파니는 이름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서로 다른 면에서 유치하고, 만들고 모으는 조그만 물건들이 있다. 깊은 의미에서 그들은 천생연분인데 스테파니는 스테판이 그녀가 따온 장난감 말을 만져서 움직이게 하자 그걸 뒤늦게 깨닫는다. 스테판은 (공드리처럼) 집에서 사용되는 재료들을 사용하는 예술가다. 일단 둘이 공동작업을 시작해 만드는 광적 작품은 미쳐 날뛰게 된 유치원 미술 프로젝트 같다. 나머지는 알랭 레네 스타일의 이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와 중간쯤 되는 듯하다. 사물들도 그만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하루는 스테판이 발이 냉장고에 남겨진 채 깨어난다). 진정, <수면의 과학>은 기본적으로 잡동사니 더미 같아서 이리저리 흩어진 익살스러운 대사들과 장식적인 프로이트식 개념들이 두서없이 뒤죽박죽 쌓여 있다. 공드리의 제멋대로인 비주얼과 난해한 미장센은 주인공들의 외국인 악센트로 더 강조되어서 뱉어내는 각 단어들은 독특하게 들린다. 공드리는 얀 슈반크마이어보다 훨씬 더 밝은 초현실주의자이지만 <수면의 과학>은 체코의 거장이 만든 <광기>처럼 요즘 나온 사물을 이용하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작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만들어진 세상이 주인공의 심란한 정신 상태를 반영한다. 스테판의 꿈과 현실을 오가며 재료들을 이리저리 다른 각도에서 보여주는 <수면의 과학>은 장난기 가득한 영화다. 분위기는 죽음의 전조에 가깝다. 그러나 주인공만큼이나 영화는 색다르기에는 너무 낯설고 유치하기까지 하다. 스테판은 성공을 꿈꾸고 보상받지 못한 사랑에 괴로워한다. 그의 고독은 어디에서나 분명하다. 그는 서글프게 말한다. “아빠와 얘기하고 싶어.” 스테판과 스테파니가 검비(<몬티 파이튼>의 점토 캐릭터)가 탈 듯한 말을 함께 타고 구겨진 셀로판의 바다를 건너는 마지막 환상은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기보다 앓게 한다.

도도함에 쉼표를 찍다, <언니가 간다>의 고소영

영화용어 중에 ‘코미디 릴리프’(comedy relief)란 말이 있다. 영화 속에 코믹한 장면을 삽입해 극의 긴장을 늦추는 것이다. 팽팽했던 이야기는 웃음에 진동하고, 작은 쉼표가 파장의 뒤를 잇는다. 숨죽였던 장면들이 안도(relief)의 한숨을 내쉬는 동안, 영화는 가벼운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고소영이 코미디를 들고 나타났다. 도도하고 섹시하며 당당했던 그녀가 복고 냄새가 진동하는 핑크색 가죽재킷을 입고 오토바이에 올라 있다. 거침없이 내뱉은 대사는 <언니가 간다>다. 우연한 기회에 12년 전 과거로 돌아가는 30살 싱글녀의 이야기. 비현실적인 설정과 덤벙거리는 캐릭터가 왠지 고소영에겐 이물감처럼 낯설다고 생각했다. “어색했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사실 저는 스쿠터도 탈 줄 알거든요. 또 편한 사람들을 만나면 춤도 추고, 코믹한 노래를 부르러 가기도 해요. 물론 깐깐하고 도도한 이미지가 강하긴 하지만, 저의 다른 면도 이젠 보여주고 싶어요.” 실제로 만나본 그녀는 하이톤의 차가운 어투 대신, (본인의 표현대로) “찡얼거리는” 베이비 톤으로 대답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집에서 뒹구는 것”을 즐기며, 텔레비전을 하도 많이 봐서 “테순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집에서는 종종 갈비찜, 김치찌개, 된장찌개도 만든다고 한다. 이쯤 되니 고소영이란 팽팽한 이미지도 진동하기 시작한다. <언니가 간다>는 과거를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고소영이 연기한 나정주는 ‘고삘 때’ 실패한 첫사랑을 수정하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는 여자. 하지만 결과는 실패,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누구나 살면서 후회는 해요. 하지만 정주는 후회하지 않거든요. 첫사랑의 상처는 아프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다고 말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12년 전을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게 왜 없겠어요? 하지만 그건 지금 바꿀 수 없는 거잖아요. 저는 우스갯소리로 ‘나는 72년생이 아니야, 72년에 태어난 기억이 없어, 엄마가 72년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런 거야’라고 해요.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인 거죠. 세월은 흐르고, 누구나 나이는 먹고, 하지만 변하는 건 없어요.” 그렇게 고소영은 긴장을 놓았다. 자신의 12년 전과 마주하는 영화에서 그녀는 불편함을 덜어내고 추억을 즐긴다. 그녀의 표현대로 ‘생목소리’는 웃음의 또 다른 이름이다. “감독님이 제 목소리가 다르대요. <아파트>에선 ‘천. 삼백. 이십. 사호(웃음),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근데 이번 영화에선 많이 편하게 한 것 같아요. 그냥 친구들 만나면서 수다 떠는 것처럼.” 4년에서 6개월. 올해 7월, 긴 공백기 끝에 <아파트>로 돌아왔던 그녀는 템포를 한껏 높여 보인다. “다작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젠 일년에 한편 정도는 하고 싶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4년이란 시간이 아깝기도 하거든요. 더 좋은 작품, 더 많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근데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제가 지금 이렇게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쉼표 다음엔 다시 팽팽한 긴장일까. 모든 일을 사전에 계획하고, 철두철미하게 진행한다는 그녀는 “예전에 안병기 감독님이 농담처럼 말씀하신 <원초적 본능> 같은 영화, 혹은 박찬욱, 허진호 감독님과의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이번엔 귀여운 영화 했으니까, 다음엔 좀 멋있는 걸 하려고요”라고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코미디는 진심을 실어 나른다고 하지 않던가. 확실히 ‘언니’의 출발은 다시 시작된 것 같다. 12년 전의 나 과거를 심각하게 돌아보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제가 성격이 급하거든요. 옷을 샀는데 후회가 되면, 바로 다음날 가서 바꾸든지 해요. 뭐든지 빨리 해결하는 게 좋아요. 12년 뒤의 나 12년 뒤요? 생각하기 싫다. (웃음) 아기도 하나 있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은 연기를 평생직업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한데 맞는 역할이 주어진다면 계속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장만옥이나 공리, 참 멋있잖아요.

이미지의 정치학을 사유한다

‘포토그래피’(fauxtographie)- 프랑스어의 ‘거짓’(faux)과 ‘사진’(photographie)을 합성한 조어로 <주말>에 등장한다- 로서의 영화가 어떻게 진실을 위한 거짓이 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고다르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한 물음에 대면하여 고다르는 ‘백지상태’(tabula rasa) 혹은 ‘영’(zero)으로 돌아가 영화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이미지와 사운드를 그 근본부터 다시 검토하고(<즐거운 지식>), 이미지의 생산과 배급에 있어 점점 지배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텔레비전을 경유하여 이미지의 제작과정을 분석하기도 했다(<넘버2> <잘 돼 갑니까?>). 고다르의 1980년대 이후 작품들에 이 모험적 시기의 성과들이 유감없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초에 제기된 물음의 답변 형태로서가 아니라 좀더 정묘해지고 복수화된 물음의 형태로서다. 이미지의 정치학이라고 할 만한 고다르의 이 같은 사유와 더불어 우리 또한 답변이 없는 물음들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깊은 숙고로 즐겁게 빠져들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종종 간과되곤 하는 것이 과학에 관한 고다르의 견해이다. 비평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의 고다르가 ‘발견’과 ‘발명’의 수사학을 종종 끌어대는 것도 영화(와 스스로)를 예술사뿐 아니라 과학사의 한 부분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는 뤼미에르 스스로가 “미래가 없는 발명품”이라 진술했던 영화의 과학적 기원을 잊지 않는다. 또한 영화와 정치의 몽타주를 근심하는 동시에 영화와 과학, 과학과 정치의 몽타주에 대한 사유를 병행한다. 물론 여기서 고다르가 자신을 위치시키는 곳은 언제나 영화이며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정치와 과학은 ‘여기’(here)의 영화가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다른 곳’(elsewhere)으로서 기능한다. 즉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을 본다.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탐정>) 물론 고다르는 정치학자가 아닌 만큼이나 과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학과 과학의 방법론을 영화적으로 ‘번역’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고 또 그러한 번역의 가능성에 대단히 민감한 시네아스트이다. 예컨대 <즐거운 지식>은 화학에서의 물질의 정성적(定性的) 분석방법을 이미지의 분석에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파트리샤란 인물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요소로 분해하고”, “환원시켜”, “치환기”를 만들고, “재배열한” 뒤에 사운드와 이미지의 올바른 모델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런가 하면 <잘 돼 갑니까?>는 ‘비트’(bit) 개념과 정보이론의 창시자인 클로드 섀넌의 노이즈(noise) 이론의 영화적, 실천적 적용이다. 고다르는 한 인터뷰에서 “노이즈는 단순히 기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하면서, 동시대 유럽인의 삶을 바꿔놓은 ‘사회적’ 노이즈의 실례로서 베트남전을 들었다. 또한 그는 <열정>의 인물들이 “자기장 속을 가로지르는 철심들”로 고려될 수 있으며 이 영화는 그것들의 교차에 관한 이야기이자 비전이라는 식의 괴이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과학적 방법론의 예술적 전유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괴테의 소설 <친화력>을 떠올리게도 하는 고다르의 모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를 둘러싼 숱한 비평적 상투구들로부터 벗어나는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이 다면체의 영화작가의 발걸음은 여전히 우리를 숨가쁘게 만든다. 상영작 소개 즐거운 지식 Le Gai Savoir 출연 줄리엣 베르토, 장 피에르 레오 | 1968년 | 컬러 | 91분 고다르의 필모그래피에서 1968년 이전에 ‘촬영’된 마지막 작품으로 누벨바그 시기와의 완벽한 절연을 선언하는 듯한 전위적 에세이 필름. O.R.T.F.(프랑스라디오텔레비전기구)의 제의로 만들어진 텔레비전용 영화로 본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의 영화판으로 의도되었으나 결과물은 기대에 완전히 어긋난 것이었고 결국 방송은 거절되었다. 에밀과 파트리샤란 이름의 두 남녀가 7일 동안 밤마다 만나 사운드와 이미지에 관해 토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전기적 잡음에 섞여 들려오는 고다르 자신의 목소리, 1968년 5월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녹음된 사운드, 각종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등의 조합은 영화에 복잡성과 혼란의 감각을 부여한다. 고다르의 후기작 <영화사(들)>에서 그 절정에 달하게 될 에세이적 스타일의 시작이자 “영(zero)으로의 귀환”으로 일컬어지는 작품. 넘버2 Numero deux 출연 상드린 바티스텔라, 피에르 우드리 | 1975년 | 88분 고다르의 새로운 시작이자 이른바 ‘제2의 데뷔작’(이 영화의 애초의 제목은 <넘버2 : 네 멋대로 해라>였다). 비디오로 촬영되어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지는 화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한 뒤 35mm 필름으로 다시 촬영한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급진노선을 표방했던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기 작품들의 교조적 특징이 거의 사라진 대신 1970년대 중반 고다르의 비디오 시기 작업들을 특징짓는 내밀한 스타일과 주제(일상과 텔레비전)가 뚜렷이 드러난다. 일종의 ‘공장’으로 정의된 현대의 일터, 가정, 영화작업, 육체 모두에 대한 전방위적 분석으로서의 영화.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성행위 묘사와 노출로도 악명 높은 작품인데, 고다르는 극중 인물의 입을 빌려 <넘버2>가 포르노이자 정치영화이며, 텔레비전이자 영화이며, 픽션이자 다큐멘터리라고 선언한다. 잘 돼 갑니까? Comment ca va? 출연 미셸 마로, 안 마리 미에빌 | 1976년 | 78분 누벨바그 시기의 <경멸>이나 후기의 <열정> <사랑의 찬가> 등처럼 고다르식 ‘영화에 관한 영화’, 즉 영화 만들기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이야기되는 작품이다. 특정한 이미지(사진)에 대해 집요한 논평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선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기의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궤를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불운한 영화이기도 하다. 좌파신문의 인쇄공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두 남녀가 토론을 벌이지만 끝내 영화는 완성되지 못한다. 1970년대 이후 고다르의 동반자가 된 안 마리 미에빌이 여주인공 오데트 역을 직접 맡았다. 노이즈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일부로 간주하는 오데트/미에빌의 견해는 고다르 자신의 영화에서 각종 노이즈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한 간접적 언급이기도 할 것이다. 열정 Passion 출연 이자벨 위페르, 한나 쉬굴라 | 1982년 | 87분 고다르는 한 인터뷰에서 <열정>의 이자벨(이자벨 위페르)이란 여인은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사제의 일기>의 주인공과 닮은 데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따라 <열정>을 한 노동계급 여성의 ‘수난’(passion)을 통해 기독교적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라고만 보기엔 이 작품의 결은 지나칠 정도로 풍성하다. 영화촬영장, 공장, 호텔 등 세 공간을 무대로 삼은 이 영화에서 고다르는 빛과 어둠, 낮과 밤, 진실과 허구, 사랑과 노동 등의 대립물들간의 ‘횡단’(trans)의 가능성을 다소간 모호한 방식으로 탐색한다. 렘브란트, 고야, 앵그르, 들라크루아, 엘 그레코의 걸작들을 영화적 활인화(tableau vivant)로 완벽하게 재현해낸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의 솜씨는 탄성을 내뱉게 만든다. 시몬느 베이유의 저서 <중력과 은총>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이 영화를 두고 콜린 매케이브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고다르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 탐정 Detective 출연 나탈리 바이, 클로드 브라쇠르 | 1985년 | 95분 2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 중인 탐정과 그의 삼촌 프로스페로, 빚에 시달리고 있는 복싱 프로모터, 그에게 빚을 독촉하는 한 부부와 마피아 일당 등이 한 호텔에 기거하고 있다. 영화는 각각의 인물들의 방을 오가며 이들간의 느슨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데 종국엔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지고 2년 전의 살인사건은 싱겁게 해결된다. 이 작품은 프로스페로의 책상에 가득 쌓여 있는 <세리 느와르> 시리즈에 대한 고다르식 논평으로 볼 수도 있고, 복싱 프로모터의 이름이 ‘짐 폭스 워너’라는 데 착안하면 할리우드영화 및 영화산업에 대한 코믹한 비판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고다르는 이 작품을 세명의 미국영화작가- 존 카사베테스, 에드거 울머, 클린트 이스트우드- 에게 헌정했다.

10명의 음악평론가들이 뽑은 2006년 베스트 음반 [2]

한국 기타 역사를 새로 쓴 ‘사건’의 주인공 강인오 올해 대한민국을 대표했거나 들뜨게 했던 화제의 용어이자 화두 중 하나는 단연 ‘UCC’가 아닐까 싶다. 그런 수많았던 영상이나 홍보물 중에서 음악적으로 크게 화제를 모은 것은 유명한 클래식 곡인 파헬벨의 <캐논>을 멋진 일렉트릭 기타 실력으로 소화해낸 아마추어 뮤지션 임정현이었다. 갑작스러운 텔레비전 깜짝 출연과 이어진 광고음악 삽입 등 매스컴의 힘을 업고 거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은 아쉬웠지만. 그렇다면 다음의 기사 타이틀은 기억이 나시는지?! “기타리스트 강인오, 미 연주음반 사이트서 2위 기염”, “기타 하나로 이뤄낸 작은 한류 강인오씨 미 차트서 2위 기록”. 각각 지난 3월 말쯤 <마이데일리>와 <동아일보>에서 다룬 기사 제목이다. 강인오의 앨범은 2005년 11월부터 발매되어 국내에선 굉장히 더딘 홍보가 시작되었었다. 워낙 현 트렌드를 역행하는 음악인데다가 기타 연주곡으로만 채워진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앨범이었고, 가뜩이나 정통 록 음악이 설 자리가 별로 없는 우리네 시장에서 관심을 받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하지만 골수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으로 퍼지던 이 앨범은 놀랍게도 ‘Guitar 9’이라는 해외 기타 전문 사이트의 ‘Top Seller 차트’에서 3월25일자로 2위에 기록되는 사건을 일으켰는데, ‘Guitar 9’은 기타연주 앨범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세계적인 미국 사이트이자 레이블로 불리고 있다. 우리가 존경하는 초절정의 기타리스트들 앨범에서부터 장르를 불문한 세계 곳곳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들의 연주 음반들이 고루 모여 있으면서 새로운 아티스트들의 연주 앨범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유통되는 곳으로, 세계 도처의 기타음악 마니아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그런 곳에서 1위를 차지한 드림 시어터의 기타리스트 존 페트루치 앨범의 바로 밑에 강인오의 앨범이 2위에, 그 아래 4위엔 기타 영웅 조 새트리아니의 앨범이 순위를 차지했으니 기타 연주계에선 놀라운 사건이었다. 자신의 밴드 앨범이 예전에 발매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강인오는 이번에 ‘록’이라기보다는 ‘퓨전’적인 연주를 능숙하게 보여주는데, 테크닉을 위한 테크닉이 아닌 음악과 멜로디가 살아나면서도 사운드 메이킹과 리듬, 그루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을 이루어내 굳이 자세한 소개가 없다면 외국 기타리스트라 착각할 만한 ‘우직하고 완성도 높은’ 음악적 결과를 이뤄냈다. 거기에 유명 기타리스트 블루스 사라세노의 참여나 재킷 디자인에 다크 트랜퀼리티 멤버 니클라스의 도움은 한결 예술성을 배가했다. 성우진/ 대중음악평론가·방송작가 성우진 최고의 음반 리스트 (무순. 국내음반에 한정) 강인오 (드림온레코드) 고찬용 (도레미미디어) 머스탱스 (비트볼뮤직) 메쏘드 (서울음반) 몽라 <꿈꾸는 아이>(IO뮤직) 소히 <앵두>(CJ뮤직) 송홍섭(The Phoenix) (서울음반)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파스텔뮤직) 캐비넷 싱얼롱즈 (도레미미디어) 푸딩 (스톰프뮤직) 블루스와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넘나드는 두 거장의 손놀림 알리 파르카 투레 & 투마니 디아바테 개인적으로 올해 세계 음악계의 가장 큰 손실은 말리의 거장 알리 파르카 투레(1939∼2006)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여러 면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음악이 처음 미국에 소개됐을 때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 알리 파르카 투레가 연주하는 서부 아프리카 말리의 전통음악이 존 리 후커, 머디 워터스 같은 블루스 거장들의 음악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블루스와 너무나도 비슷한 그의 음악을 조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블루스의 뿌리가 어디인지도 규명됐다. ‘블루노트 음계가 많이 쓰여서 블루스다’, ‘슬퍼서 블루스란 이름이 됐다’는 그간의 논란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다. 라이 쿠더가 그를 모시고 발표했던 앨범은 빌보드 월드뮤직 앨범차트에서 무려 32주 동안 1위를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은 코라(Kora: 서부 아프리카 전통 현악기, 보통 21현에서 25현으로 구성되며 투명하고 아름다운 음색을 지녔다)의 명인 투마니 디아바테와의 조인트 앨범이다. 이 음반은 지난 가을 극찬 속에 발표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앨범과 함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무리한 작품으로, 알리 파르카 투레의 어쿠스틱 기타와 투마니 디아바테의 코라가 중심이 된 연주를 들려준다. 어쿠스틱 기타와 코라의 조화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잡지 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앨범”이란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수록곡에서 영롱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어쿠스틱 악기 특유의 투명함을 맛볼 수 있다. 블루스와 서부 아프리카 전통음악을 편안하게 넘나드는 두 거장의 손놀림은 마치 소리를 뜨개질하듯이 섬세하고 부드럽다.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듯 구슬프게 노래하는 (아이 가 바니: 당신을 사랑해요)는 앨범의 백미다. 이 음반으로 다시 한번 그래미상을 탔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만큼 알리 파르카 투레는 모든 것을 초월한 도인의 풍모를 뿜어낸다. “세계는 위대한 목소리와 관대한 영혼을 잃었다.”() 송기철/ 대중음악평론가 송기철 최고의 음반 리스트 (무순. 수입음반 포함) 알리 파르카 투레 & 투마니 디아바테 (수입) 비아 (소니BMG) 조앤 셰넌도어 (알레스뮤직) 마누 차오 (EMI) 세자리아 에보라 (소니BMG) 아누아르 브라헴 (수입) 수아드 마시 (수입) 장 홍 얀 (수입) 바우 (수입) 카에타노 벨로조 (수입) 복고는 퇴행이 아니다, 복고는 쇼크다! 날스 바클리 거개의 복고 방법론은 과거의 소재 자체를 끌어들이는 리메이크 아니면 멜로디와 리듬의 응용에 중점을 둔다. 데인저 마우스와 시-로(Cee-Lo)의 듀오 날스 바클리는 그런 구태를 거부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멤피스나 모타운 솔이 활강하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면서 흔해빠진 복고를 가져오는 주범이라 할 느낌의 모사가 아닌 녹음 방식과 스타일의 완전 재현과 재활이라는 방식을 취했다. 첫곡 부터 ‘백 투 더 패스트(past)’의 기(氣)가 펄펄 흐른다. 올해 영미 음악시장과 차트를 초토화한, 그것도 다운로딩만으로 차트 정상을 쾌척한 스매시 는 그 정점이다. 드럼을 비롯한 반주와 보컬 녹음을 그 시절 방식에 맞춰 거행하면서, 완벽한 복고의 산물을 일궈냈다. 복고의 상업성과 정체성을 구분하는 영미 음악 고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의 마력에 미쳐 들어갔고, 우리도 CF에 삽입되었으니 거의 미쳤다. 데인저 마우스의 사운드 뒤집기도 빼어나지만 멜로디에 빈티지 로망을 부여하는 시-로의 보컬은 정말 훌륭하다. 이 곡 외에 나 결정적으로 는 이들이 과거를 ‘현재 시제’로 얼마나 창의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잘 바꿀 줄 아는지를 웅변한다. 앨범 전체의 수록곡이 열넷이나 되는데도 러닝타임이 37분반(??)에 그치는 것도 그 시절의 미니멀리즘을, 간결함을 선호하는 이 시대의 감각과 연결시키는 것 또한 영리함의 증거다. 복고는 잘해봤자 퇴행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이 시대에 쇼크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 방법론, 더 나아가 미래지향성도 소지하고 있음을 말해준 것이다. 복고라는 방식으로 지긋지긋한 복고의 상업성을 퇴치한 쾌보. ‘크레이지’ 날스 바클리를 빼고 올해 음악계는 정리가 안 될 것 같다. 백 투 더 퓨처!!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최고의 음반 리스트 (국내 음반 및 라이선스 음반에 한정) 1. 날스 바클리 (워너뮤직) 2. 배치기 <馬耳東風>(포니캐년) 3. 제이슨 므라즈 (워너뮤직) 4. 전제덕 (서울음반) 5. 러브홀릭 (서울음반) 6. 밥 딜런 (소니BMG) 7. 도널드 페이건 (워너뮤직) 8. 뮤즈 (워너뮤직) 9. 장혜진 <4 Season Story>(서울음반) 10. 크라잉넛 (도레미미디어) 그리스의 ‘상처뿐인 영광’에 대한 슬픔의 대서사시 엘레니 카라인드루 영화음악가 엘레니 카라인드루가 아테네에서 공연한 주옥같은 실황 앨범. 엘레니 카라인드루는 그리스가 자랑하는 영상시인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음악을 담당해왔다. 이번 공연 실황에는 카메라타 오케스트라와 ERT합창단, 그리스의 국민가수 마리아 파란투리까지 우정출연해서 앨범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수록곡은 영화 <안개 속의 풍경>(1988)의 삽입곡 를 비롯해 <울부짖는 초원>(2004)의 , <영원과 하루>(1998)의 그리고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1984), <비키퍼>(1986) <율리시즈의 시선>(1995) 등 카라인드루가 맡았던 앙겔로풀로스 영화의 음악들이다. 카라인드루의 음악은 듣는 이를 압도하는 슬픔의 서사시이다. 앙겔로풀로스의 근작 <울부짖는 초원>에서도 보여지는 것처럼 그리스가 살아온 역사의 흥망성쇠는 우리나라와 너무 비슷하다. 그녀의 음악이 우리 마음에 더욱 깊이 저며온다면 그 때문일 것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상시키지만 <태극기…>가 지나친 총격전으로 일관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표현하려고 했던 반면 <울부짖는 초원>은 전투신이 거의 없이 여주인공의 흐느끼는 절규장면 하나만으로도 총격전 이상의 감동을 보는 이에게 준다. 이에 덧붙여 영화의 슬픔과 감정의 깊이를 더하는 건 그의 파트너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엘레지 음악들이다. ‘뿌리뽑힘의 절망에 대한 엘레지’라는 앨범 타이틀이 의미하듯, 이번 공연 실황 앨범은 그 같은 그리스의 ‘상처뿐인 영광’의 역사를 두장의 CD에 담아낸 것이다. 우리 민족의 그것과 같아서, 동병상련의 정마저 느끼게 하는 음악이다. 전영혁/ <전영혁의 음악세계> DJ 전영혁 최고의 음반 리스트 (수입음반 포함) 1. 엘레니 카라인드루 (수입) 2. 키스 자렛 (C&L뮤직) 3. 트리오 비욘드(잭 디조넷, 존 스코필드, 래리 골딩스) (C&L뮤직) 4. 디노 살루찌 그룹 (수입) 5. 아누아르 브라헴 (수입) 6. 드림시어터 (워너뮤직) 7. 시르크 드 솔레이유(태양의 서커스) (수입) 8. 에릭 클랩튼 & J.J.케일 (워너뮤직) 9. 블랙모어스 나이트 (수입) 10. 데이비드 길모어 (소니BMG) 사색적 울림의 뽕짝, 장난스럽거나 우아하거나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입술이 달빛> 올해 최고의 음반과 올해의 가장 흥미로운 음반은 다르다. 음반을 고르고 소개하는 입장에서, 올해 최고의 음반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좋다는 것을 따라 말하면 된다. 그러나 올해의 가장 흥미로운 음반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 자신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음반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혼자서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으며, 승패가 어떻게 되건 자신에게 가장 정직한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두 번째 음반에 대해 얘기할 때면 왼손이 오른손을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두 번째 음반에는 ‘뽕짝’ 리듬이 차분히 넘실거리는 기묘한 분위기의 포크송들이 들어 있다. 쿵 짝 쿵 짝 쿵 짜라 쿵 짝. 사람들은 포크를 ‘사람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진실한 음악’이라 말하곤 한다. 그러나 뽕짝 역시 (좀 다른 방향이긴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둘을 섞어서 안 될 건 없지 않은가? 캠프파이어에서 장난처럼 통기타를 두드리며 송대관의 <네박자>를 부르는 것 이상의 섬세한 음악적 시도가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지 않은가? 또한 그것이 엽기적(이기를 바라는) 복고와 키치로 범벅된 떠들썩한 울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사색적 울림이 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노래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이상적인 답변을 들려준다. 음반의 타이틀 곡인 <입술이 달빛>, 구슬프게 뚱땅거리는 <고양이 소야곡>, ‘뽕짝의 재구성’을 감행하는 <또 돌아보고>와 같은 곡들에는 ‘전통’을 굳이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전통의 일부가 된 음악이 얻어낸 여유와 부드러움이 있다.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통속적이며 때로는 우아하다. 뽕짝이 존재하는 한국이 아니면, 뽕짝이 존재하는 21세기의 한국이 아니면, 뽕짝과 인디 신이 존재하는 21세기의 한국이 아니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음반이다. 이 음반을 올해의 최고작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유일무이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러하듯이. 최민우/ 대중음악평론가·음악웹진 [weiv](http://weiv.co.kr) 편집장 최민우 최고의 음반 리스트 (무순. 국내 음반 및 라이선스 음반에 한정) 날스 버클리 (워너뮤직) 디셈버리스츠 (EMI) 마이 케미컬 로맨스 (워너뮤직) 머스탱스 (비트볼뮤직) 벨 & 세바스찬 (알레스뮤직) 불싸조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파스텔뮤직)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입술이 달빛>(파스텔뮤직) 저스틴 팀버레이크 (소니BMG) 펑카프릭 부스터 (타일뮤직) 피들밤비 (비트볼뮤직)

<거룩한 계보> 장진 감독의 신작 <아들>

장진 감독이 <거룩한 계보>를 촬영하기 전부터 트리트먼트를 써놓았던 <아들>은 매우 단순한 이야기다. 무기수 강식은 15년 전 세살난 아들을 바깥에 두고 살인강도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왔다. 교도관 박 경사와 동행하여 하루 동안 귀휴를 나가게 된 강식은 할머니와 살고 있는 고등학생 아들 준석을 만나러 간다. 상영시간이 85분 남짓 될 <아들>은 이처럼 15년 동안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정이 쌓이는 것은 고사하고 얼굴조차 모르는 아버지와 아들의 하루를 담을 뿐이지만, 밋밋한 드라마 위에는 애틋하고 당혹스럽고 코믹한 감정이 스쳐가곤 한다. 장진 감독은 <아들>이 단 하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무기수가 귀휴를 나왔는데 그 시간이 이틀이든 일주일이든, 그것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는 다르다. 강식은 아들이 홀로 집에 돌아오면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아들을 교문 앞까지 마중나가지 않는가. 관객도 하루라는 시간 때문에 드라마에 더욱 깊숙이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아들>은 관객 스스로 긴장을 만들어나가는 영화다. 해가 기울고 노을이 지고 어둠이 내려앉아 여명이 밝기까지, 관객은 다시는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못할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은 치매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또다시 혼자 남을 아들이 애처로워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한정된 시간 외에 드라마 외부에서 <아들>을 조여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강식이 무기수라는 사실이다. 그는 독백한다. 사형수는 사형을 기다리는 고통이 있겠지만, 무기수는 아무것도 기다릴 것이 없어 고통스럽다고. 그 때문에 강식은 시간에 의해 조금씩 존재가 지워져가는 듯했던 15년보다 귀휴를 기다리는 6일을 보내기를 더욱 힘들어한다. 그가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인 아들을 만나고 돌아온다면 수십년이 될지도 모르는 남은 세월, 기다릴 무언가를 가질 수 있을까. <아들>은 이런 소망을 강요하지 않고, 은근하게 권유하며, 온기와 눈물이 어리는 결말로 다가간다. 장진 감독은 무기수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군대에서 너무 즐거웠다. 나는 제대만을 기다렸는데, 한번도 무언가를 그토록 절실하게 기다려본 적이 없는데,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기다리는 제대가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나더러 군대 체질이라며 말뚝 박으라고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 즐거움은 사라질 것이었다.” 그 때문에 강식이 만나고자 하는 대상은 굳이 아들이 아니어도 좋을지 모른다. “얼굴도 모르는 아들에게 무슨 정이 있겠나. 하지만 무기수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마도 바깥에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을 거고, 그걸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정을 강조하는 가족영화라기보다 누군가의 아들일 수 있고 누군가를 아들로 가질 수 있는, 그 상황 자체의 소중함을 눈여겨보는 영화가 될 듯하다. <킬러들의 수다> <아는 여자>에서 독백에 가까운 대사와 내레이션을 유용하게 쓰곤 했던 장진 감독은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가보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들>은 내레이션의 영화다. 강식이 무서운 눈을 가졌다고 말하는 아들에게 상처받아 거울을 들여다볼 때, 준석이 조그만 침대 옆 바닥에 자리깔고 누운 아버지를 바보 같다며 타박할 때, 서먹함에서 친밀감으로 다가가는 부자(父子)의 감정은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들리는 내레이션을 타고 흐른다. “내레이션은 <아들>의 인물들이 속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는 수단이다. 날아가는 철새 가족도 내레이션을 하는 까닭은 하늘이나 땅이나 이런 감정은 모두 통한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D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하게 되는 철새 가족은 진중한 상황을 비집고 간간이 코미디가 등장하는 <아들>에서 가장 웃기는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기러기인가, 청둥오리인가 갈등하던 애니메이션팀은 좀더 진지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청둥오리를 택해 이미 4개월이 소요되는 작업에 들어갔다. 스물넷인데도 세살짜리 아들이 있었던 강식은 비슷한 나이에 아들 노아를 낳았던 배우 차승원에게 돌아갔다. “처지가 똑같잖아. (웃음) 맞아, 그때는 네가 짐스러웠어, 라면서 얼마나 공감을 하는지 모른다. 노아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아버지와 살갑게 정이 붙지 않는데, 그러니 모든 것을 다해주고 싶어하더라”는 장진 감독의 설명은 언뜻 ‘아버지’라는 단어와 매끈하게 붙지 않는 차승원의 캐스팅에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들어준다. <묻지마 패밀리> <웰컴 투 동막골>로 제작자로서 장진 감독과 두번 인연을 맺었던 류덕환은 독한 말을 내뱉고 무뚝뚝하게 외면하다가 나란히 욕탕에 몸을 담그기에 이르는 아들 준석으로 캐스팅됐다. 앳된 인민군 소년병이 너무 자라버리지 않았을까 걱정했던 장진 감독은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고선 류덕환이 아직은 성장영화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사가 두 마디 이상 되는 인물이 거의 없고 75신으로 규모도 아담한 <아들>은 “탄력을 잃으면 안 되는 영화의 성격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툭툭 찍고 개봉도 늦지 않게” 할 것이다. 그러나 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성미가 급하다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서먹하게 만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소줏잔을 기울이고 밤길을 달리고 텔레비전 안테나를 고쳐 다는 모든 순간들은, 끝내는 따뜻한 정으로 뭉쳐져야 하므로 어느 하나 허술하게 흘려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착하거나 다정하거나 무게있는 영화라는 의미만도 아니다. 강식이 귀휴를 나가기 전에 공부하는 자료는 요즘 아이들이 쓰는 채팅어들이다. 강식은 아들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를 건네고 싶어한다. “하이, 방가방가.” 장진 감독, 저예산영화를 만나다 슈퍼16mm 같은 매체를 활용해 <아들>을 15억원 남짓한 예산으로 찍으려고 했던 장진 감독은 상업영화 투자사가 합류하면서 “굳이 힘들게 할 거 뭐 있나” 싶어 제작비를 20억원까지 높여 잡았다. 스탭과 배우들이 평소보다 개런티를 낮게 받았고, 등장인물과 촬영분량이 적고, 거창한 세트나 특수효과가 필요없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진 감독은 이러한 저예산 전략이 앞으로도 많은 경우에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기획영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저예산 개념은 단지 예산이 적은 것이 아니고, 기획의 힘으로 제작비 누수를 막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형 저예산이라고 믿는다.” 장진 감독이 <아들> 이후 신작으로 계획하고 있는 SF사극 <애일리 안첨지>가 그러한 개념을 적용한 영화가 될 것이다. 장진 감독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할 벼를 키우고 있는 논에 우주선이 내려앉아 미스터리 서클을 만들면서 시작되는 <애일리 안첨지>의 제작비를 30억원 안팎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50억원짜리 영화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우주선이 얼마나 거창하겠는가. 사극이어서 제작비가 일정 수준 아래로는 내려가기 힘들겠지만 30억원이면 할 수 있겠다고 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상상하며 좋아하던 종류의 이야기여서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