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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바람의 검심>의 켄신 목소리 구자형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몬스터>의 덴마, <바람의 검심>의 켄신, <하얀 마음 백구>의 성견 백구까지. 성우 구자형의 팬카페에 올라온 ‘쾌남전문성우’라는 말은 그동안 그가 맡아온 캐릭터들의 공통점을 단박에 짚어낸다. 구자형의 목소리는 언제나 정의를 지키고 진실을 밝혀왔다. 냉정하면서도 차분한 그의 음색과 높낮이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안 그래도 잘생긴 미남 캐릭터들의 외모마저 돋보이게 했다. 하다못해 백구마저 잘생긴 토종 진돗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구자형 자신은 주변의 이런 평가에 대해 조금은 냉정한 태도를 견지한다. “매력으로 느껴준 것은 고맙지만, 어떻게 보면 그만큼 비슷한 캐릭터만 맡아온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는 것은 아니다. “모두 어둠과 밝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죠. 스파이크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고, 덴마는 처음에는 어수룩하지만 점점 인간의 깊이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 해요. 모두 제가 먼저 맡고 싶어했던 캐릭터들이었어요. (웃음)” 지금은 애니메이션 팬들의 가상캐스팅 보드에 항상 이름이 오르는 인기성우지만, 그는 원래 믹싱엔지니어를 꿈꾸던 학생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 캐나다에 가서 일도 하면서 공부하려 했는데, 당시 걸프전 때문인지 비자가 늦게 나왔어요. 한참을 백수로 지냈는데, 한 친구가 사진관에 데려가서 사진을 찍게 하더니 원서는 이미 냈다고 성우 시험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소리와의 질긴 인연 때문이었을까? 목소리 연기의 경험은 전무했지만 그는 당당히 시험에 합격했다. “아마 때묻지 않은 백지상태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점수가 좋았던 것 같아요. (웃음)” 현재 방송가에서 구자형의 목소리는 고급스러움과 신뢰감으로 통한다. 여러 다큐멘터리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내레이션은 한쪽 눈으로는 과거를, 다른 한쪽 눈으로 현재를 보며 살아가는 스파이크처럼 균형있는 느낌으로 신뢰를 부여한다. “내레이션의 고급스러움은 목소리보다도 텍스트 자체에 대한 이해도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미리 준비하려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제작시스템에서는 조금 힘든 부분이죠.” 철저한 준비는 구자형이란 이름 석자를 애니메이션 팬들의 기억에 남게 한 가장 큰 비결이기도 하다.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역을 준비하는 과정도 다를 바 없었다. 캐스팅 당시 PD에게 ‘선물’이란 명목으로 스무개가 넘는 비디오테이프와 A4용지 300여장 분량의 대본을 받았던 구자형은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상적인 제작환경의 모델을 찾은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이후 다른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면서 꼭 원작 만화를 먼저 챙겨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외화드라마가 방송 외의 창구로 넘나드는 요즘, 더이상 ‘완전한 내 것’의 의미는 무색해졌어요. 이제는 한국판으로서의 의미를 찾을 뿐이에요. 그걸 조절하는 것은 역시 텍스트에 대한 접근인데, 다양한 상상을 하기에는 만화책만한 것이 없죠.” 데뷔 이후 지금까지 주로 강직한 멋을 간직한 남자들에게 목소리를 입혔지만, 의외로 구자형은 “영화 <올랜도>의 주인공처럼” 양면성을 지닌 캐릭터에 더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유아 프로그램 <꼬꼬마 텔레토비>에서 주제가를 부르고 해설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의 시도였다고. “ 버전에서는 성우가 마치 카우보이처럼 해설을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설정이었기 때문에 동화구연처럼 친숙한 분위기에 정직한 느낌을 더하려 했죠.” <프라이멀 피어>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이중인격자 애런 역을 욕심낸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캐릭터에 대한 바람 외에 성우로서 가진 더 큰 꿈이 있다면 배우들의 본래 음색을 좀더 살리는 더빙을 완성하는 것이다. “를 보면서 호레이쇼 반장이 양지운 선배의 말투와 정말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또한 <매트릭스>의 미스터 스미스는 돌아가신 장정진 선배와 정말 비슷했어요. 언어차이 때문에 힘든 건 있지만 앞으로도 더 노력해보고 싶어요.” 성우들의 세계에서 말하는 “싱크로율 120%의 더빙”이 그의 바람일 듯. 성우 구자형에게 그것은 곧 우리나라의 정서와 120%로 부합하는 한국판 버전의 탄생을 기원하는 마음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 신작 <숨> 현장 공개 및 기자 간담회

김기덕 감독에게서 날아온 반가운 현장 초대다. 1월 17일 서대문 형무소 건물 안. 세 주인공 하정우, 장첸, 박지아가 함께 나오는, 어쩌면 <숨>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지아가 감방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장첸이 그녀에게 다가가고 둘은 끌어안는다. 미니 크레인에 달려 천천히 후진하며 떠오르는 카메라. 하정우가 프레임으로 들어와 박지아의 손을 잡아 반대방향으로 끌고 가면, 박지아는 자꾸만 장첸 쪽을 뒤돌아보며 노래를 부른다. 그들과 반대쪽으로 조용히 프레임 아웃 하는 장첸. 서대문 형무소 좁은 복도에서 피어나는 상상적이면서도 애틋한 이 장면. 과연 <숨>은 어떤 이야기인가? 연(박지아)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장첸)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본다. 연은 자기도 모르게 끌리듯이 사형수가 있는 형무소를 찾아가 면회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에게 1년간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춰 한 번씩 그를 방문하여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 편으론 계절에 맞는 노래를 불러주고, 또 계절에 맞게 면회실을 꾸며준다.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형수는 언제나 그녀의 방문을 기꺼이 받는다. 한편, 외도에 빠져 연을 외롭게 만들었던 남편 정(하정우)은 아내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 채고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숨>은 연과 사형수와의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이 영화의 제목 <숨>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다. 김기덕 감독의 열 네 번째 영화 <숨>에서는 순환의 시간에 놓인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기이한 공존과 구원의 이야기가 그려질 듯 하다. 올 여름 국내 개봉 예정이다. (현장 공개가 끝난 직후에는 서대문 형무소 야외 풀밭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이하 김기덕 감독 및 배우들 문답) -이 번 영화에 대해 각자 소개한다면 =(김기덕)우선 이렇게 추운 날 찾아와주어 고맙다. 지난 번 <시간>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은 국내 판매 형식으로 8개관에서 개봉한 뒤 3만 명 정도 관객이 들었다. 애초 내가 말한 20만명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영화사 스폰지에 이 번 작품을 수출하여 국내 개봉하기로 했다. 또, <시간>때의 발언 이후로 몇몇 매체들이 내 생각을 지지해 주었고, 그 지지자들의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될 듯 싶었다. 나한테는 997만명의 관객보다 3만명의 관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영화를 위해 발품을 팔고 봐준 관객들에게 이 번 영화도 보여드리고 싶다. 그게 내가 했던 말을 책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라 생각했다. =(장첸)처음으로 한국 감독과 영화를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즐거웠다. 대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만의 캐릭터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특이한 경험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관객이 아닌 배우로서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박지아)연이라는 이름의, 남편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을 사형수에게 얻는 여자 역할이다. =(하정우) <시간>은 보람 있었다. 개인적으로 김기덕 감독과 다시 할 수 있게 된 건 큰 영광이다. 이 번 촬영 역시 즐거웠다. 내가 맡은 남편 역은 삶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다가 어떤 사건을 통해서 그걸 깨닫게 되는 역할이다.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숨>의 시나리오는 <빈집>과 <나쁜남자>때 감옥 장면을 찍으면서 떠올랐다. 서대문 교도소를 배경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숨>은 80퍼센트가 교도소 장면이다. 제목이 <숨>인데, 숨을 내쉬는 것과 들이쉬는 것이 음양의 이치와 같아 보였고, 그 숨쉬기가 인생의 어떤 한 모습이지 않은가 싶었다. 여주인공 연이에게 남편인 정이 해주지 못하는 걸 사형수가 대신하는 것이다. 내쉬고 들이쉬는 숨의 이미지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장첸에게) 김기덕 감독과 일해 보니 어떤가 =한국 오기 전에 시나리오를 열심히 보고 연구했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시나리오 이외의 요소가 영화를 이루는 게 많기 때문에 그것만 보고 짐작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김기덕 감독은 예상을 할 수 없는 스타일이다. 처음에 예상한 것을 뒤엎는다.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웃음). 감독에 대한 의존성이 강한 새로운 캐릭터여서 더 흥미로웠다. 극장에서 보면 다시 또 느낌이 달라질 것 같다. (김기덕 감독을 보면서) 맞나요 감독님? -(하정우에게) 김기덕 감독과 두 번째인데 다른 감독들과는 어떤 차별점이 있나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축소하고, 콘티도 없고, 설명적이지도 않다. 헤드라인만 갖고 만나는 거다. 결과를 예상할 수 없는 스포츠 경기를 하는 흥분감이 있다. -지금까지 촬영한 건 어느 정도 마음에 드나 =이번에는 외국에서 투자를 받지 않았다. 최소로 봤을 때 2억 5천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그동안의 해외수익금을 모아 제작하는 작품이고, 그걸 스폰지에 수출한 것이다. 촬영횟수가 10회차 밖에 안 되고, 그걸로 90분 런닝 타임을 맞춰야 하니 전쟁처럼 찍은 영화다. 마음에 드는지는 편집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개봉인데 왜 수출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나 =내 영화는 만들면 적어도 20개국 이상 판매되고 있다. 내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만 따지면 2-3만이지만, 전 세계 가까이 따지면 천만 정도가 된다. 그 중에 한국은 2-3프로 되기 때문에 넓게 봐서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숨>의 국내배급을 맡은 스폰지 조성규 대표) 부가설명을 하자면, <시간>도 그렇지만 이 번 영화 <숨> 역시 외국영화를 수입할 때와 동일한 조건과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수출이라는 말은 그런 뜻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저예산영화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는가 =내가 제일 중요하게 문제 삼는 건 제작비 상승이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용이 55억이라는 게 문제다. 25억 미만, 더 나아가서는 10억 미만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 다음은 국가 지원책에 관한 거다. 나는 꾸준히 10억 이하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국가지원책이 있어서 가능했다. 만약 그런 맥이 끊겼다면 못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극장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것에도 국가 지원책이 더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을 하는 것이 거대 영화들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화를 하는 후배들에게 바란다면,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와 능력을 오락영화에 함몰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변덕을 자주 부린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고민 많이 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것처럼 3만 명의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한거다. 약속을 어긴 거라고 보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이랬다 저랬다 한 것도 여러 번이 아니라 이 번 한 번 아닌가(좌중 웃음). 그건 인간이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한 세 번 정도 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웃음)

찌질이들과 함께하는 미국 횡단여행 패키지

미국 횡단여행을 해보지 않고 미국을 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한 사람은 없지만 한번쯤 해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행길이다. 또 자동차로, 오토바이로, 때로는 잔디깎이까지 동원해 미대륙을 가로지르는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런 매력을 부추긴다. 돈은 없어도 마음만은 가득한 독자들을 위해 취향 따라 골라서 즐길 수 있는 미국 횡단여행 패키지를 소개한다. 하지만 성급하게 짐은 싸지 마시라. 영화가 끝나면 여행도 끝나니까.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 궁극의 화장실 유머를 실천하는 이색 문화 탐방 준비물: 특수제작 V자 수영복, 파멜라 앤더슨 브로마이드, 일행 중 한명이 식탁에 똥 봉투를 들고 와도 웃는 여유, 언제 어디서나 튈 수 있는 순발력과 주력. 여행 테마: 미국식 유머감각과 식사예절, 음주문화, 애국심, 신앙심 등등을 배워서 익히며 상호 호혜 정신에 입각해 ‘창녀 여동생과 저능아 남동생이 섹스를 한다’는 카자흐스탄식 유머감각을 널리 전파. 일행: 공개할 수 없는 이유로 (말하자면 <베이 와치>를 보고 한눈에 반한 파멜라 앤더슨과 결혼하기 위해) 미국문화 탐방이라는 국가적 임무를 저버리고 LA로 가는 카자흐스탄 TV리포터, 카자흐스탄 유일의 프로듀서, 불곰 한 마리, 닭 한 마리. 주요 일정과 이동수단: 뉴욕을 출발해 워싱턴DC, 미시시피, 텍사스 등을 거쳐 LA까지 대략 일주일. 비행기, 폐차 직전의 아이스크림 트럭,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타는 캠퍼 등등. 체험 하이라이트: 처음 보는 남자들에게 키스로 인사하며 정신병자로 인정받기, 생방송 중인 기상캐스터에게 다가가 화장실 위치 묻기, 게이 퍼레이드에 참가해 서로의 ‘그곳’을 만지며 친밀감 표시하기, 샌드위치에 독을 탄 (게 틀림없다는 것이 보랏의 주장) 테러리스트(가 확실하다는 게 보랏의 주장) 유대인 노부부 집에서 극적으로 탈출하기, 극우적 분위기의 로데오 경기장에서 미국 국가를 ‘카자흐스탄 넘버원’이라는 가사로 바꿔 부르기(직후 몽둥이 찜질). 광신도들의 집회에서 방언을 따라하며 함께 어울리기, 나체로 숙소 안팎을 뛰어다니기 등등. 교훈: 파멜라 앤더슨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파멜라 앤더슨을 보쌈해가서 결혼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선진 미국의 문물도 뚜껑 열고 보면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후유증: 웬만한 화장실 유머와 슬랩스틱 코미디에 대한 불감증 유발.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분노와 출연배우들, 촬영장소 주민들의 줄소송. 러시아 상영금지 조치, 파멜라 앤더슨과 키드록의 두 번째 파경. <비비스와 버트헤드> 텔레비전과 국가 비밀무기를 찾아 떠나는 액션 어드벤처 준비물: TV를 훔쳐서 운반할 수 있는 트럭(TV가 사라져야 출발이 가능). 언제라도 ‘할(do)’ 수 있도록 벗기 쉬운 간편한 복장. 자기 이름도 못 읽는 동반자들을 위한 영어 읽기 능력. 여행 테마: 잃어버린 TV를 찾아 떠나는 시작은 미미했으나 사라진 비밀무기를 찾기 위해 총동원령이 내려진 FBI에게 쫓기다가 결국은 미국 대통령까지 만나게 되는 그 끝은 창대한 모험. 일행: 죽기 전에 한번 ‘해(do)’보는 게 소원인 10대 소년 두명. 많이 ‘따먹는’(score) 게 꿈인 소년들과 자신의 꿈(score: 카지노에서 점수 올리기)이 같다고 생각하는 귀 어두운 할머니와 이따금 합류. 주요 일정과 이동수단: 라스베이거스스, 후버댐, 옐로스톤 공원 등 미대륙 횡단여행 패키지의 주요 관광사이트를 거쳐 워싱턴DC 백악관까지 대략 3, 4일. 비행기, 대륙 횡단 관광버스, 수녀원 버스, 자동차 트렁크 등. 체험 하이라이트: TV를 보기 위해 들어간 모텔방에서 교장 선생님의 마조히즘적 성적 취향 발견하기,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고대 이집트 여성 동상의 가슴을 두 시간 동안 쳐다보기. 그 가슴을 만지기 위해 동상에 올라가다 미끄러지기, 후버댐 관리실에서 똑같은 화면만 나오는 TV(댐 경비 모니터)의 채널을 돌리기 위해 이것저것 누르다가 미국 전역에 걸쳐 정전 사태 불러오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뛰어내리다가 490중 추돌사고 일으키기, 대통령에게 표창받으며 그가 누군지 못 알아보기 등등. 교훈: 말은 새겨서 듣자. ‘처치하라’(do)는 말을 ‘섹스하라’(do)는 말로 오해하지 말 것. 어른들의 말은 더욱 새겨서 듣자. 한번 ‘하게’ 해주겠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었다가는 지명수배범이 되기 십상이다. 후유증: 90분 동안 감상한 대륙횡단의 주요 코스들이 모두 엉성하게 그려진 그림이라는 사실에 문득 밀려오는 허탈감. 걷다 보면 어느새 티셔츠 목을 머리까지 올리고 ‘똥구멍’(bung hole)이라는 낱말을 반복해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 <노브레인 레이스> 200만달러의 상금에 목숨걸고 달리는 무한도전 준비물: 라스베이거스에서 뉴멕시코까지 모든 경로가 표시돼 있는 지도, 개인 비행기나 헬리콥터, 공돈이라면 부모와 인연도 끊고 형제도 기꺼이 내다팔 수 있는 헝그리 정신. 여행 테마: 라스베이거스스 카지노 재벌과 전세계 도박광들이 판돈으로 내놓은 200만달러를 숨겨놓은 뉴멕시코 시골 간이역 보관함에 가장 먼저 도착해 여는 사람이 다 먹는 게임. 일행: 20년 만에 처음 만난 모녀, 부정판결로 쫓겨난 농구심판, ‘덤 앤 더머’ 형제, 젊은 변호사, 휴가차 라스베이거스에 온 4인 가족, 말하다가 갑자기 잠에 빠지는 체질의 이탈리아인 등 6개 경쟁팀 가운데 한팀을 자유 선택. 돈보다 모험을 원한다면 ‘덤 앤 더머’ 형제와 4인 가족 강추. 주요 일정과 이동수단: 라스베이거스에서 뉴멕시코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가장 먼저 도착해야 함. 팀에 따라 헬기에서 승용차, 기차, 관광버스, 속도 실험용 로켓 등 다양한 이동수단 중 택일. 체험 하이라이트: 노점상에게 다람쥐를 안 샀다가 낭떠러지에 추락하기, 소와 함께 열기구에 매달려 하늘 날기, 바람난 애인 때문에 눈 뒤집힌 헬리 조종사 옆에서 목숨 건 비행묘기 즐기기, 피어싱한 혀가 곪은 사람의 언어 배우기(‘안녕하세요?’->‘아바바바’ ‘미인이시군요’->‘어버버버’), 바비인형 박물관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네오나치 소굴인 ‘바비 박물관’에서 나치들의 음침한 연설로 시간 지체하다 소장품인 히틀러의 차로 도망치기, 그 차로 2차대전 참전용사집회에 쳐들어가기 등등. 단 체험이 많아질수록 200만달러는 점점 멀어진다. 교훈: 남의 돈 날로 먹는 건 땅 파서 돈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너만 열심히 일하면(달리면) 성공할(돈 딸) 수 있다’는 신념은 부자들의 즐거움과 배를 채워주는 데 일조하는 환상일 뿐이라는 신자유주의 질서의 냉혹한 진실. 후유증: 습관적으로 로또복권 가게 앞에서 줄을 선다. 밥 먹고 전화를 받는 따위의 사소한 일상적 행동들에 내기를 걸게 된다(출근한 뒤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화가 올까, 밥 빨리 먹기 시합 등등).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밴드와 함께 떠나는 아메리카 횡단 공연 투어 준비물: 앞으로 20cm 가량 수직 돌출시킨 헤어스타일, 여행하는 동안 그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한 헤어스프레이 100통, 헤어스타일과 유사하게 앞코가 뾰족한 검은 가죽구두, 약간의 악기 연주 실력. 여행 테마: 음악과 함께 떠나는 미국 횡단여행.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을 목표로 그 시작은 창대했으나 멕시코 시골 결혼식 피로연 연주로 마무리하는 끝은 미미한 투어공연. 일행: 9명의 핀란드 폴카 밴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그 중 베이스 주자는 연습 도중 얼어 관에 실어 이동. 카우보이들의 악덕 매니저, 카우보이가 되기를 꿈꾸지만 머리카락이 없어 비루하게 쫓아다니는 얼뜨기. 주요 일정과 이동수단: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과 양키 스타디움 공연 직전 취소, 멤피스, 뉴올리언스, 텍사스 등의 클럽을 거쳐 멕시코의 결혼식에서 투어 마지막 공연까지 약 한달. 천장에는 관을 매달고 트렁크에까지 좌석을 설치한 낡은 세단 이용. 체험 하이라이트: 핀란드와 미국 공연 프로모터한테 ‘완전 무시’당하기, 클럽 공연 중 관객한테 ‘완전 무시’당하기, 공연 뒤 클럽 문 닫게 하기, 혼자 맥주를 계속 마시는 매니저가 밴드 멤버들에게 밥 먹으라고 던져준 양파 자루에서 생양파 꺼내 씹어 먹기, 쭈그리고 앉아 걸으면서 난쟁이 흉내내며 구걸하기, 여행 기간 내내 일행끼리 거의 대화하지 않는 일종의 침묵 수련 여행, 중고차 판매상으로 출연하는 짐 자무시 감독 만나서 악수하고 사인받기, 폴카에서 컨트리, 하드록까지 멋지게 연주하는 카우보이들의 ‘판타스틱’한 음악세계 즐기기. 교훈: 꿈이 허황될수록 결과는 쓸쓸하다. 가수는 역시 매니저를 잘 만나야 성공한다. 폴카 스타일로 듣는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도 듣고 보면 꽤나 그럴싸하다. 후유증: 조용필에서 동방신기까지 모든 노래가 폴카 리듬으로 리메이크돼서 들린다. 코미디언 김무스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이 영화를 기준 삼아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다른 영화를 찾아보다가 상처입는다(안 웃기거든). <트랜스아메리카> 아빠 찾아 삼만리, 찾고 보니 엄마인가 준비물: 트랜스젠더를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는 쿨한 태도, 마약 팔고 몸 파는 10대에게 설교를 늘어놓지 않을 수는 있는 관용의 자세, 가족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수 있는 무거운 입. 여행 테마: 가족을 버리고 떠나 트랜스젠더가 된 아버지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고 방황하는 10대 아들이 떠나는 가족여행. 하지만 그 아들은 아버지가 아버지인지 전혀 모른다는 거~. 일행: 여성이 되기 위한 수술을 일주일 앞둔 상태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아들을 건사해야 하는 상황이 된 아버지, 근사한 아빠를 만나 부자 상봉을 꿈꾸는 10대 아들. 사기꾼 히피의 잠깐 합류. 주요 일정과 이동수단: 뉴욕 구치소에서 출발, 아들의 새아빠가 사는 켄터키가 본래 목표지였으나 방향을 선회, 피닉스 등을 거쳐 LA 도착. 아들의 사기꾼 친구가 판 구닥다리 소형차와 도보, 택시 등 이용. 체험 하이라이트: ‘아메리칸 청춘’의 냄새(고랑내~)와 물이 내려가지 않는 공동화장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뉴욕 슬럼가의 하드코어 아파트 구경, 치마를 들추고 앉아서 ‘누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일어서서 ‘누는’ 일을 끝내는 아빠의 독특한 배변습관 훔쳐보기, 수시로 터지는 부자간의 말다툼 무시하기, 길에서 만난 히피와 물 맑은 호수에서 즐기는 물놀이, 물놀이 도중 차를 훔쳐 달아난 히피에게 가운뎃손가락 내밀기, 생전 처음 가본 부유한 할아버지 집에서 즐기는 달콤한 휴식과 어색한 가족의 대화에 동참하기, LA 미소년 포르노 촬영현장 탐방 등등. 교훈: 나를 낳아준 부모는 부자에다 멋진 사람들일 것이라는 어릴 적 환상에서 빨리 깰수록 좋다. 가슴 달린 아빠면 어떠랴, 가족은 좋은 것! 포르노 배우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다. 후유증: 진짜 부모는 별볼일없더라도 진짜 할아버지는 부자에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새로운 환상이 생긴다. 권위적인 우리 아빠도 성전환 수술을 받기를 진심으로 기도하게 된다. <이지 라이더> 60년대 아메리카의 문화와 젊음을 오토바이로 달린다 준비물: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 아니면 스쿠터라도, 70년대 미국 남부 사회의 편견과 증오심을 버텨낼 수 있는 강심장, 가족과 친구들에게 남기는 유서, 출발 전 재산 정리. 여행 테마: 시대의 주류적 공기에서 일탈한 히피 스타일 젊은이들이 찾아 떠나는 ‘궁극의’ 자유. 또는 자유를 가둬놓는 새장 흔들기. 일행: 마약 판매로 여행 경비를 준비한 두 남자. 금발의 섬세한 꽃미남형인 캡틴 아메리카와 껄떡남에 호색한이며 무모한 성격의 빌리. 답답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는 알코올중독자 변호사가 잠시 합류. 주요 일정과 이동수단: 서부에서 출발, 히피 공동체 마을 거쳐 뉴올리언스 경유, 궁극의 자유를 맛볼 수 있는 카니발이 펼쳐진다는 이상향인 마디그라까지 대략 한달. 폼나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로 완주. 체험 하이라이트: 불량한 행색으로 모텔에서 거부당한 뒤 매일밤 숲속 야영. 히피 마을에서 히피들의 공연 보기, 막간 휴식 즐기고 모래밭에 씨 뿌리고 풍년 기원 기도. 뉴올리언스의 마을 축제 퍼레이드에 자발적 참가와 이로 말미암은 구치소 구금, 남부 토착민들의 악의 어린 저주와 농담 세례와 살의 넘치는 매타작, 마디그라에 도착한 뒤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경험하는 무아지경. 마리화나 흡입(옵션이 아니라 기본 프로그램임). 남부 사람들의 거칠 것 없는 총격. 알코올중독 변호사로 분한 젊은 잭 니콜슨과 함께 술 마시기. 교훈: 히피건 마디그라건 꿈속의 이상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만이 인간의 선악을 판단한다’(마디그라 아가씨 집에 붙어 있는 문구). 불량한 행색으로 60년대 미국 남부를 돌아다니는 건 분쟁지역 한복판을 산책하는 것보다 안전하지 않다. 후유증: 미국여행이 문득 두려워진다. 미국여행을 할 때면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조차 두려워진다. 삶이 문득 허무해진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삶을 마감한다. <천국보다 낯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길게, 초저가 패키지 준비물: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사 먹고 사 입을 수 있도록 꾹꾹 눌러싼 여행가방. 심심할 때 읽을 잡지와 책들, 동거인한테 구박받지 않을 만큼 구사할 수 있는 영어 실력. 특히 속어에 강하면 편함. 여행 테마: 이름도 정체성도 미국인으로 바꿔서 미국인 친구마저 속일 수 있는 정도의 미국화 교육.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도박 실력의 신장. 일행: 친지들이 헝가리어로 말하면 짜증을 낼 만큼 미국식 삶에 철두철미한 헝가리인 벨로(미안~ 윌리), 윌리와 함께 빈둥거리는 미국인 친구 에디, 갓 미국에 도착한 윌리의 사촌 에바. 주요 일정과 이동수단: 뉴욕 도착, 빈민가에 위치한 윌리의 손바닥만한 방에서 약 1년간 체류한 뒤 윌리, 에디와 클리블랜드 고모집에 얹혀사는 에바 방문, 함께 플로리다를 여행한 뒤 뿔뿔이 흩어짐. 체험 하이라이트: 윌리의 방에서 TV 보기, 낮잠 자기, 텔레비전 보기, 냉동식품 먹기, TV 보기. 가끔씩 윌리의 허락없이 집 주변 게토지역을 목숨걸고 산책하기, 윌리와 에디의 아슬아슬 사기도박 관람, 윌리한테 진정한 미국인이 되기 위한 미국 속어 강의 듣기. 그러나 진짜 미국인에게 먹힐지는 미지수. 클리블랜드 도착 뒤 상당기간 고모와 함께 TV 시청. 에바와 눈보라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호숫가 놀러가기, 플로리다에 도착해서 아무도 없는 바닷가 산책. 함께 있으면서 저마다 따로 놀기. 교훈: 어딜 가도 다 똑같다(에디의 명언). 아름다운 클리블랜드 호숫가도 꿈속의 마이애미 해변도 천국보다 낯설기는 매한가지. 길 엇갈린 사람을 만나려면 괜히 싸돌아다니지 말고 처음 있던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는 게 상책. 후유증: 만사 귀찮아진다. ‘인생 뭐 있어’라는 인생관이 점점 더 확고해진다. 짐 싸기 귀찮아서 몇년동안 계획했던 여행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숨> 촬영현장 및 기자간담회

김기덕 감독에게서 날아온 반가운 현장 초대다. 1월17일 서대문형무소 건물 안. 영화의 세 주인공 하정우, 장첸, 박지아가 함께 나오는, 어쩌면 <숨>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지아가 감방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푸른 죄수복을 입은 장첸이 그녀에게 다가가고 둘은 끌어안는다. 미니 크레인에 달려 천천히 후진하며 떠오르는 카메라. 하정우가 프레임으로 들어와 박지아의 손을 잡아 반대방향으로 끌고 가면, 박지아는 자꾸만 장첸쪽을 뒤돌아보며 노래를 부른다. 그들과 반대쪽으로 조용히 프레임 아웃하는 장첸. 서대문형무소 좁은 복도에서 피어나는 상상적이면서도 애틋한 이 장면. 과연 <숨>은 어떤 이야기인가? 연(박지아)은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장첸)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를 본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끌리듯이 사형수가 있는 형무소를 찾아가 면회를 요청한다. 그리고 그에게 1년간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마음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맞춰 한번씩 그를 방문하여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한편으론 계절에 맞는 노래를 불러주고, 또 계절에 맞게 면회실을 꾸며준다.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다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형수는 언제나 그녀의 방문을 기꺼이 받는다. 한편, 외도에 빠져 연을 외롭게 만들었던 남편 정(하정우)은 아내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채고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숨>은 연과 사형수와의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이 영화의 제목 <숨>은 그들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다. 김기덕 감독의 열네 번째 영화 <숨>에서는 순환의 시간에 놓인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기이한 공존과 구원의 이야기가 그려질 듯하다. 올 여름 국내 개봉예정이다. “내겐 3만의 관객이 중요하다” (현장 공개가 끝난 직후에는 서대문형무소 야외 풀밭에서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이하 김기덕 감독 문답) -이번 영화에 대해 소개한다면. =우선 이렇게 추운 날 찾아와주어 고맙다. 지난번 <시간> 문제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시간>은 국내 판매 형식으로 8개관에서 개봉한 뒤 3만명 정도 관객이 들었다. 애초 내가 말한 20만명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영화사 스폰지에 이번 작품을 수출하여 국내 개봉하기로 했다. 또, <시간> 때의 발언 이후 몇몇 매체에서 내 생각을 지지해주었고, 그 지지자들의 마음을 저버려서는 안 될 듯싶었다. 나에게는 997만명의 관객보다 3만명의 관객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영화를 위해 발품을 팔고 봐준 관객에게 이번 영화도 보여드리고 싶다. 그게 내가 했던 말을 책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라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숨>의 시나리오는 <빈 집>과 <나쁜 남자> 때 감옥장면을 찍으면서 떠올렸다. 서대문형무소를 배경으로 찍어보고 싶었다. <숨>은 80%가 교도소 장면이다. 제목이 <숨>인데, 숨을 내쉬는 것과 들이쉬는 것이 음양의 이치와 같아 보였고, 그 숨쉬기가 인생의 어떤 한 모습이지 않은가 싶었다. 여주인공 연이에게 남편인 정이 해주지 못하는 걸 사형수가 대신하는 것이다. 내쉬고 들이쉬는 숨의 이미지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 -지금까지 촬영한 건 어느 정도 마음에 드나. =이번에는 외국에서 투자를 받지 않았다. 최소로 봤을 때 2억5천만원으로 제작하는 영화다. 그동안의 해외수익금을 모아 제작하는 작품이고, 그걸 스폰지에 수출한 것이다. 촬영횟수가 10회차밖에 안 되고, 그걸로 90분 러닝타임을 맞춰야 하니 전쟁처럼 찍은 영화다. 마음에 드는지는 편집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개봉인데 왜 수출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나. =내 영화는 만들면 적어도 20개국 이상 판매되고 있다. 내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만 따지면 2만∼3만명이지만, 전세계 가까이 따지면 1천만명 정도가 된다. 그중 한국은 2∼3% 되기 때문에 넓게 봐서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국내 배급을 맡은 스폰지 조성규 대표) 부가설명을 하자면, <시간>도 그렇지만 이번 영화 <숨> 역시 외국영화를 수입할 때와 동일한 조건과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김기덕 감독의) 수출이라는 말은 그런 뜻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저예산영화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내가 제일 중요하게 문제 삼는 건 제작비 상승이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용이 55억원이라는 게 문제다. 25억원 미만, 더 나아가서는 10억원 미만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 다음은 국가 지원책에 관한 거다. 나는 꾸준히 10억원 이하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국가지원책이 있어서 가능했다. 만약 그런 맥이 끊겼다면 못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극장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것에도 국가 지원책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가가 어느 정도 지원을 하는 것이 거대 영화들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길이라고 본다. 그리고 영화를 하는 후배들에게 바란다면, 자기가 가진 아이디어와 능력을 오락영화에 함몰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변덕을 자주 부린 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 고민 많이 했다. 그러나 아까 말한 것처럼 3만명의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한 거다. 약속을 어긴 거라고 보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이랬다 저랬다 한 것도 여러 번이 아니라 이번 한번 아닌가. (좌중 웃음) 그건 인간이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농담으로 말하자면) 앞으로 한 세번 정도 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웃음)

<그놈 목소리>와 감독 박진표 Part 1

‘현상 수배극’이라는 슬로건을 건 박진표 감독의 신작 <그놈 목소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16년 전 있었던 실화 이형호 유괴살해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박진표 감독은 세편 모두 실화 소재의 영화를 만들었다. 소재가 된 사건의 전모, 급박했던 제작 상황, 영화 속 실제와 허구의 묘한 동거, 박진표 영화의 특징 등에 초점을 맞춰 <그놈 목소리>를 살펴본다. 그리고 현상 수배극이라는 영화를 만든 이 감독, 박진표는 누구인지를 덧붙인다. <그놈 목소리>를 통해 보는 ‘영화와 사람’, 박진표와 <그놈 목소리>에 관한 1인2색. 영화사에 기록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1976년 미국 댈러스에서 로버트 우드라는 경찰관이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랜덜 데일 애덤스라는 청년이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훗날 80년대에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가 수감 중인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다른 모든 죄수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정황을 들은 감독은 정말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겼고, 랜달 데일 애덤스가 아니라 사건 당시 또 한명의 용의자였던 데이비드 해리스가 진범임을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한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흥미로운 건, 데이비드 해리스와 랜덜 데일 애덤스를 포함하여 관련 인물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재연이라는 방식으로 다분히 저널리즘적 형식을 동원하여 조합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한때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 형식에 관해 거론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누가 진짜 범인인지는 적어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범죄에 연루되어 체포된 뒤 결국 사형당한 데이비드 해리스는 죽기 전에 로버트 우드 살인사건의 진범이 자신임을 자백했고, 랜덜 데일 애덤스는 이 영화의 증언에 힘입어 세간의 관심을 얻어 십여년이 넘는 옥살이를 마감하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감독 에롤 모리스가 1988년에 만든 <가늘고 푸른 선>의 일화이며, 이 영화는 무고하게 감옥살이를 했던 한 인간의 삶을 구해내는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소재로 삼은 사건의 양상도 다르지만, 결국 <그놈 목소리>가 갖고 싶어하는 어떤 후일담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결말일 것이다. 존재 목적을 가진 상업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박강두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스크린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 시선은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도 잡히지 않은 네가 지금 거기 앉아 있겠구나, 그리고 이걸 보겠구나,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라고. 지금도 대한민국 어느 곳에 살고 있을 그놈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난다. <그놈 목소리>는 거기에서 더 나아간다. 다소 과장되어 들리기는 하지만 “현상 수배극”이라는 용어로 영화를 설명하고 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제 범인의 전화 협박 목소리를 들려주고 몽타주를 보여준다. “1991년 이형호 유괴살해사건, 현재까지 15년간 경찰병력 3만명 투입, 420명 용의자 검거 및 수사, 87건의 음성 및 필적 감정, 2006년 1월 공소시효 만료” 등을 자막으로 요약한다.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찍은 거고,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존재 가치다. 끝까지 간 거고, 끝까지 가자는 말을 스스로 내게 했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감독은 말한다. 상업영화가 이런 방식을 취하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형호는 1991년 1월에 실종되었다가 44일 만에 한강 둔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언론은 이를 두고 ‘이형호군 유괴살해사건’이라고 불렀다. 범인은 총 87차례의 협박전화를 했고, 부모는 44일간 피를 말리다가 결국 죽어도 못 잊을 슬픔을 맞았다. 1992년 당시 SBS의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의 조연출이었던 박진표는 형호가 죽은 지 1년 뒤 첫 회를 만들 때 그 부모의 증언과 울음을 곁에서 생생하게 듣는 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에 범인이 워낙 소름끼치고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는, 문에 찧어 손이 시커멓게 돼도 아프지 않다는, 정말 많이 울던 그 부모”를 보며 “내가 나중에 영화를 하게 되면 이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5년간 매일 그 생각만 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15년간 마음속에 담아왔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는 <너는 내 운명>이 끝나고 나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있었던 이 프로젝트에 대한 시나리오를 썼다. 실화와 극화 사이, 전달과 주장 사이 강남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상우는 조금 통통하긴 해도 귀여움이 넘치는 소년이다. 그 소년의 아버지(설경구)는 유명한 9시 뉴스 앵커이고, 아들의 비만을 걱정하여 다정하게 운동을 독려할 줄 아는 어머니(김남주)는 현명해 보인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없어졌고,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부모는 번갈아가며 꼼짝없이 범인이 시키는 대로 돈가방을 들고 이리저리 온갖 서울 시내를 뛰어다니지만, 범인은 아들의 음성조차 쉽게 들려주지 않는다. 상우 엄마의 신고로 경찰이 비공개 수사를 펼치지만 번번이 범인을 잡는 데 실패한다. 전담 잠복을 맡은 김 형사(김영철)는 심지어 눈앞에서 범인을 놓칠 뿐만 아니라 농락당하는 꼴이 되고 만다. 범인은 지독하고 경찰은 무능하고 부모는 애간장이 탄다. 44일이 지나 아들은 죽어서 시체로 발견되고 아버지는 무언가 중대한 결심을 한다. 감독은 무엇보다 이 실화를 틀림없이 그 실제 장소에 가서 촬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꼭 그래야 하는 장소가 있다고 여겼다. “처음부터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 장소에 갔을 때 체감되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촬영하기에 용이한 곳 보다 어려운 곳이 더 많았다. 그중에서도 실제 형호네 가족이 살던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형호가 실종되었던 그 아파트 내의 놀이터에서 촬영을 허가받는 건 거의 사투였다. 감독은 머리끝까지 예민해졌고, 제작자부터 프로듀서, 제작부원들까지 모두가 발벗고 나서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설득하고 빌었고, 천운처럼 그 실제의 계단과 아파트 외관과 놀이터 등에서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들어가는 배우나 스탭이나 연출자인 나까지 더 절박한 심정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는 것이 지금도 변함없는 감독의 생각이다. 대부분 실제의 장소에서 찍었지만, 때때로 대한극장이나 갤러리아백화점처럼 당시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한 곳은 다른 극화된 장소를 마련했다. 대한극장은 극동극장 골목으로, 갤러리아백화점은 남산 케이블카를 타는 곳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허구로 추가된 장소 중 중요한 곳은 롯데월드일 것인데, 의미상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가족 단위로 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놀러오는 그곳에서 돌려받기로 한 아이를 결국 찾지 못하고 돈만 빼앗기는 아버지의 모습은 다른 가족들의 축제 분위기에 둘러싸여 허망하기만 하다. 영화 속 상우의 부모가 실제와 허구의 장소를 따라 허겁지겁 끌려다니는 동안 그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데 그 이야기 역시 실제의 이야기와 허구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진행된다. “나도 이제 잘 모르겠다. 뭘 바꾸고 안 바꾼 건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여겨지는, 가령 쓰레기통 속의 쪽지를 따라 범인의 지시를 이행하는 장면 등은 실제로도 같았다. 범인이 몰고 가는 차 트렁크에 숨어 있다가 범인을 잡기는커녕 벌거벗겨진 채로 어딘가 교외에 덜렁 버려진 경찰의 행색은 사실 그대로가 아닐지라도 그걸 상상하게 할 만한 일들은 있었다. 혹은 지친 아버지가 차 안에서 잠이 들어 있을 때 범인이 찾아와 “생각보다 긍정적이시네요. 침도 흘리시고”라는 문구를 써놓고 가는 장면은 그 문구가 실제가 아닐 것임에도 그 범인이 했던 행동 그대로다. 감독으로서는 “실화와 극화의 경계를 지켜나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실화를 영화로 만들 때 조심하고 스스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게 바로 그런 범위를 조율하는 일인 것 같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놈의 목소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이야기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건 감독도 잘 안다. “공소시효 지난 15년 뒤의 피폐해진 부모를 주인공으로 지난 일을 회상하는 방법도 있고, 그 사건이 있은 지 1년이나 2년 뒤 그들의 모습 또는 공소시효 직전에 일어나는 이야기 등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44일간의 그들의 피말리는 흔적을 그리기 위해 나름대로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걸 버렸던 건 나름 자랑이라면 자랑”이라는 것이다. 이건 “부모의 절박한 심정을 위배하고 배신해서는 안 되고 부모가 주체가 되는 영화”다. “경찰이나 범인의 영화로 만들면 자칫 게임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의 큰 원칙이 범인을 잡는 것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봐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스타 강동원이 범인인 그놈 목소리를 연기한 것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아니었다. 여기에 영화적인 장치들이 뒷받침되고 있는데, “극단적인 클로즈업”이 사용되고 있고, 그걸 2.35:1의 화면비로 담았고, 카메라의 사용에 있어서는 두대의 카메라로 다른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 “한대는 들고 가되 범인이 협박하는 느낌으로 또 하나는 고정으로 가되 범인에 의해 협박받는 부모의 느낌으로였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형호의 그림자도 조심스럽게 넣었다. “첫 장면에 아이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질 때 자세히 보면 형호의 사진이 끼워진 액자가 화면 왼쪽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꽃길을 따라 형호의 영정이 나온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 내내 형호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혹은 상우의 사체가 발견되고 난 뒤 부모가 우리 다시 애를 낳자며 가슴 아파하는 장면까지는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가를 기타 연주로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자는 기독교인 박진표의 기도다. 무엇보다, 박진표는 전작 <너는 내 운명>에서 대단히 힘있는 클라이맥스를 선보였는데, 이번에도 그 점을 눈여겨보게 된다. 그건 상우 아버지의 직업이 뉴스 앵커(그것도 9시 뉴스)라는 설정과 연관되는 것인데, 범인은 “대한민국에서 한경배 앵커 얼굴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라고 말한다. 이 사람은 변호사도, 검사도, 의사도 아니다. 텔레비전에 나오지만 쇼 프로의 사회자도, 노래하는 가수도 아니다. 박진표는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일인칭 화법’으로 클라이맥스의 정점을 친다. “상업적인가 아닌가의 논란, 얼마든지. 작위적인가 아닌가, 얼마든지. 연출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그것도 얼마든지. 그렇지만 가족들 몇명, 형사들 몇명이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를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로 바꾸고 싶었다는 우리의 의도를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얼마든지가 아니다. 이 영화는 나의 실험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실험이기도 하다.” 그게 박진표가 <그놈 목소리>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진의다. 당신이 그 만분의 일의 불운을 안게 된다면 박진표의 영화는 요즘 보기 드물게 어떤 ‘주장과 주의(ism)’를 갖춘 영화적 퍼스낼리티를 표방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회파인 것 같은데 들여다보면 순정주의다. 박진표의 영화에 관해 말할 때, 그 어떤 순정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화 속 인간의 순애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순정’을 믿는 긍정성 자체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 그 사회의 순정에 대한 믿음은 일반의 젊은 남녀가 아니라 노인들의 드문 육체적 열망까지, 에이즈 환자와 농촌 총각의 드문 사랑까지 아름답고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또는 슬픔에 대해 말할 때는 우리가 직접 겪은 바가 없더라도, 아이를 유괴당하고 울부짖는 이 부모의 찢어진 마음을 느끼고 같이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박진표는 호소하되 순정을 통해 호소한다. 사회의 문제를 다루더라도 투명하고 본래적인 순정에 대한 공유를 항상 염두에 둔다. 그것이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남다른 무의식이거나 소신이다. 이를테면, 사회의 순정을 말하기 위해 박진표는 ‘만분의 일에 관한 영화’를 선택한다. 노쇠한 노인들이 서로의 육체를 그렇게나 아름답게 사랑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혹은 그걸 당당하게 드러낼 만한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에이즈 환자와 그를 죽도록 사랑하는 순박한 남자가 끝까지 맺어질 그 관계의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내 아이가 유괴되어 세상을 잃어버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너는 내 운명>이 희귀하기 때문에 더 행복한 결말이라면, <그놈 목소리>는 그 확률의 수치에 거꾸로 내가 당첨되었을 때 떠안을 수 있는 안존의 섬멸을 섬뜩하게 떠올리게 한다. 내가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을 유도할 때 힘을 발휘하게 된다. 영화는 완성된 영화 자체로 이해되어야 하므로 <그놈 목소리>에 대한 평가는 이것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데 빚지지 않은 채로도 꾸준히 말해져야 할 것이다. 우선은 의도에 비해 형식의 밀도는 낮은 편으로 보이지만, 영화가 믿는 사회적 순정, 그 순정을 통한 교감의 시도 혹은 직설적인 언급은 미덕이 될 만하다. 거기에 덧붙여져 영화 바깥의 기적까지 일어나면 더 좋을 일이다.

닥터 몽고메리, 이번엔 당신이 주인공이야

디즈니 소유의 미국 방송사 의 인기 TV시리즈 <그레이 아나토미>가 변화를 꾀한다. 닥터 애디슨 몽고메리(몽고메리-셰퍼드 였으나 이혼하면서 몽고메리로 성을 수정했다)를 주인공으로 하는 스핀오프 드라마를 준비한다는 것. 확정된 사실은 아니지만, <그레이 아나토미>의 외전격인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뉴스를 <로이터> 등의 외신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보도한 내용을 중심으로 기사화했다. 케이트 월시가 연기하는 닥터 애디슨 몽고메리는 닥터 데릭 셰퍼드(패트릭 뎀시)의 전부인으로 1시즌 마지막 회에 등장해 메레디스 그레이와 삼각관계를 이뤘으나, 극이 진행됨에 따라 안정적인 고정 출연자로 자리 잡았다. 현재 미국에서 방송중인 3시즌에서 몽고메리는 차기 외과 과장 자리를 염두해 두는 한편, 인턴 중 한사람과 애정라인을 보여주는 등 안정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그레이 아나토미>의 각본가 숀다 라임스는 5월 중 방송되는 에피소드 중 2시간 분량을 애디슨 몽고메리의 이야기로 구성할 계획이며 이는 스핀오프를 뒷받침하는 파일럿 구실을 하게된다. 사실 이 스핀오프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확정된 바가 없다. 텔레비젼 스튜디오의 대변인은 케이트 월시와의 계약이 확실해졌다고 한 반면, 각본가의 라임즈와의 계약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타이틀도 미정이며 이야기의 배경이 시애틀이 될지, 뉴욕이 될지 조차 정해지지 않았다고. TV 시리즈 역사에서 스핀오프 프로그램이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특히 최근들어 이전 프로그램에서 존재하는 캐릭터를 추출해 새로운 시리즈를 창조하는 것에 대해서 급변하는 TV 비지니스 업계에서는 꺼리는 편인데, 시트콤 <프렌즈>의 인기 캐릭터 조이를 주인공으로 한 새 시리즈 <조이>의 실패가 그 예이다. 성공한 스핀오프로 대표되는 역시 전혀 새로운 캐릭터와 세팅으로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TV 프로그램 시청률 경쟁에서 바닥을 기던 가 비행기 조난 스릴러 <로스트>를 시작으로 시청률 1위 채널로 뛰어 오른지 불과 2년이 지났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3시즌을 시작하며 <로스트>의 주요 연령대(18세~49세) 시청률이 지난 시즌에 비해 23% 하락하는 실정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미 익숙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쉽게 시청률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에 스핀오프는 매력적이다. 현재 <그레이 아나토미>는 TV 드라마 시리즈 중에서는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그레이 아나토미>보다 주요 연령대 시청률이 우수한 프로그램은 <아메리칸 아이돌> 뿐이다. 현재 각본가 숀다 라임스는 여성 저널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파일럿을 준비중이므로 <그레이 아나토미>의 스핀오프가 탄생할 가능성은 5월 이후로 점쳐봐야할 듯 하다.

“중국영화에 먹칠을 한 영화”

“<황후花>는 중국영화 명성에 먹칠을 한 블록버스터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교육기관인 중앙당교가 기관지 <스터디 타임스>의 칼럼을 통해 장이모 감독의 신작 <황후花>를 맹공격했다. 당나라 말기 황실의 비극을 그린 영화 <황후花>는 제작비 4500만달러가 소요된 중국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작품. 장이모 감독은 이 영화로 2002년 자신이 세웠던 중국 박스오피스 기록(<영웅>, 흥행수익 3500만달러)을 개봉 20일 만에 경신했다. <스터디 타임스>가 <황후花>의 나쁜 점으로 지적한 것은 이 영화가 “도덕적인 기준도 없이”, “유혈낭자한 잔인한 장면”과 “사치스런 세트”로 뒤범벅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본 뒤 사라지지 않는 역겨움만 남았다”는 말로 칼럼을 시작한 타오둥펑은 “순수예술은 돈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좋은 영화는 화려한 장면과 효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비판한 뒤, “도덕 자체가 위대한 예술을 만들어낼 순 없지만, 그게 없는 ‘블록버스터’는 단지 관객을 기분 나쁘게 할 뿐”이라고 평했다. 또 세간의 평을 인용해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장이모 감독을 스크린에 빨간 페인트를 끼얹는 도공으로 표현했다”며, <황후花>를 “간단히 말해 잔인한 핏빛 영화”라고 정의했다. 1990년 <국두>, 1991년 <홍등>, 2003년 <영웅> 등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세 차례 작품을 노미네이트시킨 바 있는 장이모 감독은 한때 중국 정부로부터 영화상영 금지 조치를 받았던 감독. 하지만 <영웅> 이후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영화가 중국 공산당 관련 기관의 비판을 받았다는 점은 다소 의아해 보인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영화 속 황제가 중국 공산당의 사회주의에 어울리지 않고 비장하게 쿠데타를 준비하는 장면이 공산당의 심기를 자극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또한 <스터디 타임스>는 “최근 영화와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의 정치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에 대해 중국 정부의 검열이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일부 영화평론가들은 “중국영화 당국이 행정적인 지원을 미끼로 재능있는 예술감독들의 능력을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일본 코미디 특별선, 2월28일부터 필름포럼에서

‘웃음’은 만국공통의 언어이지만, 웃음 코드는 민족, 국가 그리고 지역과 계층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얼마 전 개봉한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가 어떤 이들에게는 신랄한 풍자를 통해 시원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불쾌한 경험으로 기억되는 것만 보아도 웃음을 유발하는 데 취향과 가치관의 문제가 얼마나 미묘하게 얽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온갖 매체를 통해 선사하는 유머들을 보며, 우리는 때로 그 기발한 상상력에 놀라며 자지러질 듯 웃어젖히다가 다음 순간 이해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일본의 희극영화를 볼 때도 분명 우리는 할리우드나 유럽 코미디영화와 달리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과 우리가 확실히 다른 문화권과 전통 안에 있음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본 코미디영화들의 변천사를 몇편의 대표작을 통해 만나볼 기회인 ‘일본 코미디 특별선’이 2월28일(수)부터 3월7일(수)까지 서울시네마테크와 필름포럼시네마 주최로 필름포럼에서 열린다. ‘일본 코미디 특별선’에서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일본 코미디영화의 대표작 가운데 8편이 선정되어 상영된다. 이중 가장 오래된 아마나카 사다오의 1935년작 <백만냥의 항아리>(百万兩の壺)는 192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30편 이상의 영화가 만들어진 단게 사젠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 시대극이다. 동생의 결혼선물로 선대의 유물인 항아리를 준 야규 가문의 영주는 평범해 보였던 항아리가 백만냥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뒤늦게 동생에게 그것을 되돌려 받으려 하지만 이미 동생 겐자부로의 아내가 넝마주이에게 팔아버린 뒤다. 이후 형은 장안의 모든 항아리를 다 사들이고, 동생은 항아리를 찾는다는 핑계로 기생집에서 살다시피한다. 그러다 이 사건에 외팔이 사무라이 단게 사젠까지 끼어들게 된다. 봉건영주인 형제를 형은 탐욕스럽게 동생은 무능력한 호색한으로 그림으로써 지배계층을 풍자했다. 평론가 사토 다다오는 감독이 외눈박이 로닌 단게 사젠을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묘사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모든 등장인물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함으로써 영화 내에서 계급적인 격차를 없앴다고 평가했다. 오즈 야스지로가 그의 죽음을 일본 영화계의 최대 손실이라고 평했던 야마나카 사다오의 이 작품은 2004년 쓰다 도시오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57년에 제작된 가와시마 유조 감독의 <막말태양전>(幕末太陽傳)도 주의깊게 보아야 할 작품이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공동 각본을 맡았던 이 영화는 일본의 봉건시대와 현대의 경계되는 시기인 1860년대 에도의 한 유곽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가 맺고 풀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전통적인 희극 양식인 라쿠고를 소재로 삼아 영화적으로 적용한 작품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야기는 사헤이지라는 영리한 평민과 유곽의 게이샤들, 그리고 서양 세력에 반발하는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친구들과 무전취식을 한 뒤 유곽에서 일하게 된 사헤이지는 자신의 기지를 이용해 게이샤들을 곤경에서 구하기도 하고, 무사들의 혁명에 필요한 지도를 제공하고, 빚에 팔려 창부가 될 처지에 놓인 어린 소녀를 유곽에서 탈출시키기도 한다. 결국 모든 인물들이 원하는 바를 얻도록 해준 뒤 사헤이지는 유유히 유곽을 빠져나간다. 그레고리 베렛은 이 작품이 일본 근대화 전야에 칼에 의지하여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무라이와 기지에 의지하여 개인적 안위를 지키려는 평민의 대조적인 삶의 태도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태양족 영화’로 유명한 <미친 과실>에 출연했던 이시하라 유지로에게 젊은 사무라이 역을 맡긴 가와시마 유조 감독은 막부 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새로운 세대인 태양족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오즈 야스지로의 잔잔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오하요>(1959)도 만날 수 있다. 몇 걸음만 옮기면 이웃집 방문까지 닿을 듯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한 동네에서 ‘말’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부녀회 회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여자들간의 오해와 갈등이 소곤소곤 서로의 입을 타고 들락거리고, 텔레비전 때문에 벌어진 부모와 자식간의 말다툼은 아이들의 입을 다물게 만든다. 제목이자 인사말인 ‘오하요’는 의례적인 측면에서의 언어가 갖는 역할에 대한 감독의 관심을 표현해주는 동시에 그런 의례의 세계에 익숙한 어른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간의 차이와 소통을 표현해주는 지표로 사용된다. 텔레비전이나 세탁기와 같은 새로운 문물은 가족이나 이웃 사이의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현대식 생활습관을 가진 커플이 결국 주민들의 호감을 사지 못하고 동네를 떠나게 되는 모습에서 현대사회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인 태도가 살짝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가전제품들이 다시 화해의 도구로 사용되고, 전통적인 커뮤니티의 간섭으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개인의 심리도 드러내는 균형감각도 잃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도 오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고정된 카메라와 겹겹이 층을 이룬 미장센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 일본의 소시민 가정을 가장 독특한 감수성으로 포착한 작품은 아마도 모리타 요시미쓰의 1983년작인 <가족게임>(家族ゲ-ム)일 것이다. 1980년대 물질적 풍요 속에서 오히려 극도의 정신적 불안 상태에 빠진 일본 중산층 가정의 풍경을 풍자적으로 해부한 영화로 스스로도 뛰어난 풍자코미디영화를 만들었던 이타미 주조가 가장인 누마타를 연기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누마타의 가장 큰 걱정은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는 차남 시게유키의 성적을 올려 명문고등학교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그는 가정교사 요시모토를 고용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을 올려줄 것을 부탁한다. 요시모토가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동원해 시게유키를 복종시키며 부모가 원하는 만큼 성적을 올리는 동안 모범생이었던 시니치는 점점 학교에서 멀어진다. 가구나 소품들을 자유롭게 이동시키며 독특한 카메라워크를 구사하는 이 영화의 유머감각은 매우 특이하다. 마치 부조리극처럼 인물들간의 대화는 소통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며, 상황 전개는 럭비공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튀어나가기 일쑤다. 감독은 시종일관 어색하고 딱딱한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와 외부인인 가정교사가 가족 내에서 갖게 되는 기묘한 지위를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에서 가족이 어떤 식으로 해체되는지를 꼬집는다. 제작된 해 유수 영화제에서 각광을 받고, <키네마준보> 베스트10의 1위를 차지했던 이 작품을 통해 모리타 요시미쓰는 대형 스튜디오들이 몰락하기 시작한 1980년대 일본 영화계의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이외에도 이번 영화제에서는 오즈 야스지로, 기노시타 게이스케와 함께 쇼치쿠 전성기의 3대 감독으로 손꼽히는 시부야 미노루의 <금일휴진>도 소개된다. 더불어 1969년부터 1996년까지 총 48편이 만들어져, 세계에서 가장 긴 영화 시리즈로 유명한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를 만들었던 야마다 요지 감독의 <바보는 전차와 함께 온다>도 함께 상영된다. 자신의 다양한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코미디, 시대극, 탐정물,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이치가와 곤 감독의 희극 <만원전차>도 상영작 리스트에 올라 있다. 마스무라 야스조에게 “구로사와 아키라와 함께 이미지만 가지고 허구적 내러티브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감독”이라는 칭송을 받은 그는 이 작품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의 일상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전후 일본사회의 경제적 기적을 냉소적으로 조망한다. 이 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최근의 일본 코미디영화는 나카하라 슌 감독의 1991년작 <열두명의 마음 약한 일본인>(12人の優しい日本人)으로, 이 작품은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되었으며 연극과 드라마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쏘우> 시리즈 연출한 보즈만 <스캐너스> 리메이크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1981년작 컬트 스릴러 <스캐너스>가 리메이크 된다. 이전에도 리메이크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스캐너스>의 메가폰을 잡을 감독으로는 <쏘우> 시리즈의 2편과 3편에 이어 4편을 준비하고 있는 대런 린 보즈만이 낙점됐다. 국내 TV에서도 방영된 바 있어서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익숙한 오리지널 <스캐너스>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대표작이자 감독에게 상업적 성공을 안겨준 작품이다. 영화는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스캐너'들의 지하조직에 한 과학자가 침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텔레파시 능력을 살인무기로 이용하려는 집단의 음모가 스캐너와 스캐너가 아닌 사람들, 스캐너와 스캐너 사이의 전투로 번진다. 오리지널에서 머리가 터지는 파이널은 아주 유명한 장면이기도 하다. 리메이크를 위해 감독과 제작사인 디멘션 필름즈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 제작자 리처드 사퍼스타인은 크로넨버그 감독의 오리지널을 "후세에 길이 남을 편집증적 영화"라고 평했다. 사퍼스타인은 1981년 당시 익숙하지 않았던 영역인 유전자 조작이나 줄기 세포 연구 등의 개념을 조사하고 영화에 반영해 <스캐너스>를 그럴싸한 영화로 만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현재 <쏘우4>를 제작중인 대런 린 보즈만은 4월15일 이후 부터는 록 호러 오페라 <리포! 더 지네틱 오페라>의 작업에 뛰어들며, 그 이후 <스캐너스> 리메이크에 전념할 예정이다. <스캐너스>의 각본은 <블레이드> 시리즈와 <배트맨 비긴즈>의 각본가 데이비드 고어가 시간에 맞춰 준비할 예정이다. 리메이크되는 <스캐너스>는 2008년 초 제작에 들어가며, 그해 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슈] 컴온 베이비

애가 김혜수를 먹어버렸다. 지난주 씨네리에서 독자선물로 준 김혜수 브로마이드의 얼굴 부분이 흔적도 없어졌다. 종이 뜯어먹기를 좋아해도 광택지까지 눈깜짝할 새 해치울 줄은 몰랐다. 엄마를 닮아서 특히 김혜수에 꽂히나보다(최근 그녀가 여러 영화에 원톱이 아니라도 출연하고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도 나오는 걸 보면서 타협‘되기’보다는 타협‘하기’를 선택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점점 근사해진다). “이 먹보, 그만해, 너 얼굴 벌써 김혜수만해”라고 혼냈는데, 그날 밤 애가 열이 펄펄 끓었다. 안쓰러움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이 9개월에 벌써 그만하면 커서는 족히 세배는 되겠다는 비관이 애를 아프게 한 게 아닐까(괜찮아, 엄마도 잘 살잖아). 애를 낳아 키워서인지, 전에는 큰일 당한 이를 보면 그가 불쌍했는데 요즘에는 그의 부모가 있다면 어떨지 먼저 생각하게 된다. 고 윤장호 병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서 그의 어머니는 꺽꺽 흐느끼기만 하고 아버지는 “봐요, 내 아들 얼마나 잘생겼는지, 얼마나 잘생겼는데…”란 말만 반복하는 것을 봤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 파병된 다산부대 소속 윤 병장은 통역병으로 2월27일 현지 기능공 교육자들을 안내하려고 출입증 발급을 돕던 중이었다. 자살폭탄자는 몸에 급조폭발물을 달고 부대 정문으로 걸어와 터뜨렸는데, 탈레반 대변인은 일부 통신사에 전화해 이날 바그람 기지를 방문 중이던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목표였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졌다. 윤 병장은 오는 4월에 돌아와 6월 전역할 예정이었다. 정부 홍보와는 달리 한국군 파병지 가운데 안전지대는 없다. 탈레반은 올 봄 미군 상대의 자살폭탄공격을 대대적으로 벌일 것이라 했단다. 윤 병장에 앞서 다산부대 파병생활을 했던 강성주씨는 <한겨레> 기고에서 “(평화와 재건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점령군’으로서 ‘피지배자’들을 협박하고 모욕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원돼야 했다”면서 “엉뚱하게 ‘남의 나라’ 침략전쟁에 동원되는 우리 젊은이들이 하루빨리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국익이고 동맹이고 나발이고 할 것 없다. 조건없이 돌아오라. 컴 온 베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