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누가 뮤지컬을 행복하다 하는가

<어둠 속의 댄서>를 보고나서 좌석에 붙박혀 있던 내 육체를 그물처럼 얽었던 정서는 ‘외로움’이었다. 막판까지 폐부에서 솟아올라오는 우툴두툴한 목소리로 통곡 같은 노래들을 쏟아내는 비욕을 그대로 급전직하의 사형대에 매단 이놈의 감독. 차마 소리내어 울 수가 없어서 그냥 줄줄 흘러내리던 눈물이 극장의 불이 밝혀지자 훤히 본색을 드러내었다. 튀는 비욕, 정교한 뮤지컬의 기하학을 파괴하다 <어둠 속의 댄서>에서 비욕은 혼자 튄다. 그렇게 잦은 클로즈업에다 그렇게 튀는 목소리를 가졌으니 누가 그녀와 감정적으로 동일시하지 않을 수 없겠냐마는. 그녀의 목소리는 체질적으로 백 코러스와 부드럽게 믹스되는 실키한 맛을 지닌 주디 갤런드 유의 여주인공과 애당초 거리가 멀다. 비욕은 줄리 앤드루스가 성대수술로 맛이 간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주위의 합창에서 따로 떨어져 논다. 주변과 섞이지 못하는 그녀의 춤과 노래는 <어둠 속의 댄서>에서 살아 돌아가는 몸으로 그어대는 유일한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I’ve seen it all'을 부를 때, 그녀외의 사람들은 모두 마네킹같이 정형화한 동작으로 그녀를 에워싸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자연스러운 몸과 감정은 더욱더 엑스트라들의 군무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실 <어둠 속의 댄서>를 미국 뮤지컬의 대부 버스비 버클리가 보았다면 관에서 벌떡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둠 속의 댄서>에서 극장 안의 한 장면으로 보여지는 버스비 버클리 뮤지컬의 핵심은 최대한 개인의 개성을 자제하고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춤에서 뽑아내는 것이었다. 버클리 뮤지컬의 트레이드 마크인 호수로 차례차례로 빠져드는 수영복 차림의 무희들처럼, 대규모의 규칙적인 군무가 빚어내는 일사불란한 움직임의 볼거리는 당시 관객의 넋을 빼놓았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이와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움직인다. 철저히 개인의 상황과 정서에만 현미경적인 시선을 갖다대면서, 그는 뮤지컬이 빚어내는 장르적 기하학을 완전히 깨부숴버리는 전복을 시도한다. 설사 밀로스 포먼이나 로버트 앨트먼이 뮤지컬 <헤어>와 <내시빌>에서 미국적 가치와 뮤지컬의 장르적 관성을 실컷 조롱하고 있다고 해도, 그들 역시 뮤지컬이 갖는 기본 전제들- 영화의 무드와 주인공의 정서와 음악적 공연을 네러티브의 맥락 속에서 결합시키는 뮤지컬 자체의 ‘내적 논리’에 파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반면 <어둠 속의 댄서>의 뮤지컬 신들은 뮤지컬 특유의 유동적인 운동 흐름을 완전히 차단시켰는데도, 여전히 기이하게 아름답고 뭉클하다. 그것은 뮤지컬 장르의 핵심인 운동의 연속성과 안무가 주는 시각적 쾌락보다는 100대의 카메라와 수십번의 편집이 주는 순수한 카메라의 최면과도 같은 마법일 것이다. 비욕이 튀고, 카메라가 거대한 가위 역할을 하면서, <어둠 속의 댄서>에서의 뮤지컬은 그 특유의 장르적 컨벤션을 완전히 전복시키고야 만다. 이 영화의 뮤지컬 신은 영화적 스타일과 카메라 미학의 역동성 그 자체이다. 덴마크 출신의 악동 감독은 완벽의 테크니션이라는 품질 평가서의 딱지를 떼어버리고, 스스로의 손으로 왕관을 썼던 나폴레옹처럼, 다가올 시대의 고다르라는 야심찬 즉위식을 혼자 치러낸다. 현실과 환상의 봉합, 또는 이화 노래가 끝나면 뮤지컬이 조렸던 세상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셀마는 다시 프레스 기계가 웅웅거리는 현실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보았어요’라고 득도의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보던 셀마를 뒤로 하고, 제프(칼 스토메어)는 ‘당신은 눈이 멀어가죠’라는 냉혹한 현실의 울림을 되풀이한다. <어둠 속의 댄서>의 뮤지컬 신들은 실은 라스 폰 트리에가 얼마든지 마음만 먹었다면, 미국식 낙관주의와 할리우드식 관객 서비스로 관객을 행복한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서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득의만만한 과시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scatter Heart'에서 자신이 죽인 시체와 춤을 추는 셀마는 살인을 해도 도주에 성공하는 도망자일 수 있었고, 'new World'에서 법정을 들썩이게 하는 셀마는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 기적적인 사면으로 목숨을 건지는 행운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라스 폰 트리에는 이러한 미국식 해피엔딩의 마취와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매몰차게 저버린다. 아니 종국에 가서는 셀마와 함께 사형대 위의 시체들로 가차없이 폐기처분해버린다. 셀마는 뮤지컬 특유의 판타지에서 빠져나와 다시 가혹한 현실로 밀쳐지는 일을 되풀이하는데, 혼자의 움직임으로 가득 찬 황홀한 뮤지컬의 세상과 대비되어 셀마가 던져진 현실은 낯설고 가혹한 타인의 땅 위에서의 들풀 같은 삶이 되어간다. 미국이라고 주장하는 유럽의 이 초라한 땅을 보라.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 이래 처음으로, 관객은 셀마라는 이민자의 시선으로 미국이라고 ‘주장하는’ 땅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더욱 기이한 점은 셀마의 이국땅에서의 외로움과 소외감이 정통적인 방식의 입체적 캐릭터 구성이나 뛰어난 내레이션의 구축으로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캐릭터의 손과 발을 동여매고도 라스 폰 트리에는 관객과 정서적 게임을 벌이는 도박판에 나선다. 셀마의 고립감은 <어둠 속의 댄서>에서 분명하게 전해지는 단 하나의 진실이다. 뮤지컬 신이 갖는 황홀한 아름다움과 메마른 현실이 이화작용하는 데서 발생되는 화학적인 기류는 <어둠 속의 댄서>를 눈부시게 낯설면서도 아름다운 최초의 뮤지컬로 만든다. 이쯤 되면 누가 뮤지컬을 행복을 파는 장르라고 할 것인가. 멜로드라마라는 슬픔의 정서와 뮤지컬의 장르적 관습이 서로를 배반하는 지점에서, 라스 폰 트리에는 <어둠 속의 댄서>의 정서를 극단으로 몰고 나간다. 현실과 환상을 봉합하는 뮤지컬의 솔기를 뜯어 헤치면서 관객의 감정적인 장력은 ‘all or none’ 수준이 되고, 그것은 정서적 시너지 효과였던가, 정서적 사기술이었던가? 이윽고 <어둠 속의 댄서>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될 것이다. 현란한 자기과시도, 영원의 구원도 ‘있다’ 그랬다. 라스 폰 트리에는 깔깔대며 미국을 비웃었다. 'my Favorite Song'을 부르는 비욕이 ‘크림색 망아지와 반질거리는 주전자가 좋아요’라고 할 때, 정말 그녀에게 흰색 망아지와 구리 주전자를 가져다주며 구체적 사고밖에 할 줄 모르는 저능아 미국을 비웃었다. ‘미국은 통에 담긴 사탕과 배우 같은 집 주인과 영화 속의 집’이라는 비욕의 대사가 끝나자, 과자통에 담긴 돈은 배우 같은 집 주인에게 강탈되고 셀마는 영화 속의 집 근처에도 못 가보고 사형대로 직행한다. 미국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과 사법제도가 뿌리째 조롱을 당하는 지경에 걸맞게, <어둠 속의 댄서>는 <타임> 선정 올해 최악의 영화에 뽑히는 영예(?)를 누렸다. 그렇다고 라스 폰 트리에가 전적으로 유럽의 편을 들어주는 선선한 인간이던가. 아비의 이름을 대라 하자 셀마는 미국 시민이 된 왕년의 뮤지컬 배우인 올드리치 노비의 이름들 들이민다. 이제 유럽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아비 없는 자식의 땅인 것이다. 어찌보면 남편과 행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셀마는 상징적 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미국으로 건너간 잔다르크이자, 장르적 질서 속에 스스로 위치짓기를 거부하는 라스 폰 트리에의 수호천사인지도 모른다. 이 속에서 100대의 카메라는 100개의 영화적 가능성이며, 줌인 속에 빠져드는 클로즈업은 단 한번밖에 오지 않는 카메라의 구원의식이다. 라스 폰 트리에가 바랐던 것은 어지러운 디지털의 현란한 자기과시였을까? 칼 데어도르 드레이어가 영화 <잔다크르>에서 이뤄냈던 영혼의 구원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어둠 속의 댄서>에는 이 둘 모두가 들어가 있고, 말하는 사람을 쫓아가는 욕지기나는 팬숏들은 사건의 표면을 응시함으로써 무의식의 지층을 확보하는 투시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지. 셀마는 죽어가지만 죽음보다 더 무서워했던 것은 아들이 시력을 잃는 것이었다. 그녀는 살아 있는 어머니가 되기보다는 개안한 아들의 죽은 어미가 되기를 원한다. ‘눈이 더 중요해요.’ 라스 폰 트리에는 어미의 이름으로, 살아 돌아다니는 권위로 행세하기보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위해 죽으라고 말한다. 아비도 없는 자식에게 어미까지 없애라고 말한다. 눈을 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왼손잡이가 되는 것이라고, 죽어가는 셀마에게 남겨진 것은 아들의 안경이었다. 나도, 아들의 이름을 왼손으로 써보았다 그래, 사는 게 자칫하면 팔이 잘릴 프레스 기계의 소음 속에서도 춤을 추는 것 아니던가. 소줏집을 나서니 바람이 차가웠다. 혼자 자고 있을 아들이 있는 집으로 터벅터벅 향한다. 빌어먹을. <사운드 오브 뮤직>이 단 사탕이라 이거지? 집에 가서 아들의 이름을 왼손으로 써보았는데 잘 써지지를 않는다. 삐뚤삐뚤한 글씨를 바람이 크레인숏처럼 하늘 꼭대기로 올라가면서 다 날려버렸다. 그날, <어둠 속의 댄서>는 여전히 내 삶 안에서 유효했다. 오르기 위해 떨어지던 눈발은 땅 위를 낮게 맴돌고, 어둠은 보내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서, 끝나지 않은 노래를 창 저편에서 부르고 있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연기, 풀수록 어려운 수수께끼, <킬러들의 수다> 배우 정재영

장진 사단으로 불리던 배우들이 있었다. 배우 아무개가 아니라, ‘장진과 친구들’ 묶음으로 소개되던 그들. 최근 이들이 그룹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나 둘 ‘뜨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신하균은 <공동경비구역 JSA>로, 임원희는 <다찌마와 Lee>로 영화계 안팎에서 관심과 애정의 세례를 받고 있다. “배 아프죠. (웃음) 아니, 그건 아니고. 기분 좋아요. 진짜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더 일찍 인정받았어야 할 친구들이죠.” 이들과 함께 장진 사단으로 불렸던 또다른 배우 정재영(32)의 진심이다. 정재영은 신인 소개란에 뒤늦게 얼굴을 내밀게 된 것도, 괘념치 않는 눈치다. 곧 촬영에 들어갈 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첫 영화’로 생각하고 싶다는 얘기를 덧붙이는 걸 보니. 정재영은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그간 부지런히 영화와 연극을 오갔다. <허탕> <박수칠 때 떠나라> <라이어> <매직타임> 등이 대학로에서 선보인 작품들. 영화로는 <산부인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비교적 선량하고 평범한 캐릭터도 거쳤지만, <박봉곤 가출사건>의 동네 건달, <초록물고기>의 카바레 취객, <조용한 가족>의 제비, <공포택시>의 논스탑 등 깡패나 양아치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간첩 리철진>. 리철진이 만난 택시강도 중 가장 멀쩡해 뵈던 ‘강도4’가 그였다. 국가정보원에 리철진의 가방을 주러 왔다가 잡혀서 취조당할 때, 그는 파마머리 가발 아래로 험상궂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난 운전만 했어라”라고 우겨댄다. 청부살인자 매니저를 연기한 인터넷영화 <극단적 하루>에서는, 의뢰인들에게 ‘사다리 타기’로 살해방법을 고르게 하는 등의 황당한 설정이, 그의 진지한 얼굴 때문에 더욱 익살맞았다. 비주류의 감성, 불량스런 캐릭터를 도맡은 데 대해,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한다. “단역 중에서 연기력이 좀 필요한 역할들이 다 그래요. 내 이미지도 한몫한 것 같고.” 실제로 정재영은 엉뚱하고 기습적인 유머를 시침 뚝 떼고 구사하는 품새가, 그의 분신들과 똑 닮아 있다. 무의식 중에 튀어나온 ‘와이프’ 이야기를 0.5초 만에 ‘(자동차)와이퍼’ 이야기로 둔갑시키는가 하면, 내성적인 성격을 개조하게 된 것이 “군대에서 역기로 맞아, 정신이 나갔다 온 다음부터”라고 밝히는 그 앞에서, 맥없이 무장해제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 이름을 정지현에서 정재영으로 바꿨다. 장모님이, 사위 하는 일이 잘되라는 바람을 담아, 스님에게서 받아온 이름이라고 했다. <킬러들의 수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의 이름도 ‘재영’이다. 여기서도 그는 양아치 같은 킬러로 분한다. 맵시있는 외모에 사격의 명수인 그는, 임무 완료 뒤에 고해성사를 하는 등 엉뚱한 언행을 일삼는 캐릭터. “배우는 자세로 정직하게 하려구요. 과하거나 덜하거나,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거든요.” 그는 거창한 목표나 대단한 경쟁상대를 찾는 대신, “자연스럽고 리얼한 연기”를 해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연기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려워지는 수수께끼 같다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해, 정재영은 요즘 자신을 배우의 길로 이끈, 젊은 날의 기억 하나를 곰곰이 되새기는 중이다. 방송반으로 활동하며 PD를 꿈꾸던 고등학생 시절, 연극반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 <봄날>로 무대에 올랐을 때, 그는 예기치 않게 최우수연기상을 받았고 두루두루 찬사를 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한 연기인데, 반응이 좋았거든요. 그게 뭐였을까, 거기 뭐가 있었던 걸까, 찾고 싶어요.”

로커스홀딩스와 인수계약 맺는 시네마서비스 대표 강우석

지난 3월6일 시네마서비스(대표 강우석)가 로커스홀딩스(대표 박 병무)에 인수됐다. 일대 지각변동이라 할 이번 인수계약이 있기 하루 전, 시네마서비스 사무실에서 만난 강우석 감독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화 만들 때마다 자금압박 을 받아온 그간 사정을 고려하면 이해할 만하다. “거액을 받고 회사를 팔았다”, “시네마서비스 우산 아래 있던 영화사들의 핵 분열이 예고된다”,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가 합병하는 거 아 니냐” 등 이번 계약에 관해 업계에서 떠도는 말이 한둘이 아니기 에 강우석 감독은 간단명료하게 최근 변화의 실체를 털어놓았다. 그는 이번 계약이 메이저배급사로 자리잡는 필연적 수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해 20편 넘게 투자, 제작, 배급하고 비디오 출 시, 멀티플렉스 건설 등 신규사업을 벌이는 데는 로커스홀딩스처 럼 든든한 모회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지난해 워버그핀커스 에서 외자를 유치하는 일부터 이번 계약까지가 기반을 다지는 데 투자된 시간이라며 앞으로 기획, 제작, 연출에 전념하겠다고 한 다. 시네마서비스의 입장이건 강우석 감독 개인의 입장이건 이제 한고비를 넘기고 다음 고지를 바라볼 시점이 된 셈이다. 일단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로커스홀딩스가 시네마서비스를 인 수하는 것이다. 어떻게 시작된 일인지 궁금하다. 지난해 워버그핀커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지만 한해 20편 넘는 영화를 배급하자면 안정적인 자금확보가 필요했다. 처음엔 워버그 핀커스 같은 외자를 끌어들이는 데 주력했지만 로커스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금융자본이 많이 있지만 영화에 대해 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을 하는 곳은 별로 없다. 로커스는 단순히 주가상 승이나 단기적 이익을 보겠다는 입장이 아니었다. 시네마서비스 입장에선 비디오배급 등 신규사업도 해야 하는데 일을 벌일 수 있 게 뒷받침할 자본이 필요했고 개인적으론 자금에 대해 신경 안 쓰 고 한국영화 기획, 제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급 선무였다. -중간에 결정적으로 어긋난 적도 있다고 하던데. =처음엔 워버그핀커스가 반대했다. 그러나 시네마서비스, 로커스 , 워버그핀커스 3자 모두에 최선일 수 있는 방향을 찾았다. 싸이 더스의 차승재 부사장이 중간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시네마서비 스와 싸이더스가 부딪치지 않고 로커스와 함께할 수 있도록. 싸이 더스가 매니지먼트사업이나 음반사업을 하니까 중복투자할 생각도 없고 잘하는 사람 밀어주는 게 나로서도 좋다. -지분관계로 보면 로커스가 경영에 대한 전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지 않나. 지분에 따른 경영권 행사에 대한 견제책이 있을 텐데. 상황을 조금만 알면 그런 염려가 필요없다는 걸 알 거다. 내가 없는 시네마서비스에 전권을 행사해봐야 어쩌겠나. 내가 독립해서 다른 회사 만들면 시네마서비스는 빈 껍데기처럼 될 텐데. 물론 계약서에도 김정상 사장에게 전권을 맡긴다는 조항이 있다. 내 지분을 로커스에 넘긴 건 로커스가 지주회사가 되는 데 필요한 조 건을 맞추기 위해서일 뿐이다. -로커스로 인수되면 시네마서비스에 어떤 혜택이 있나. 개인적으로 얻는 로커스 지분만해도 90억원 상당이라 알려졌는데 거액을 챙기고 회사를 팔았다는 소리가 나온다. =함께 연대하고 있는 제작사와의 관계는 인간적인 것이다. 나 혼 자 잘 먹고 잘살자고 했으면 로커스 투자 유치할 필요도 없다. 바깥에서는 팔고서 떼돈 벌었다는 말이 나돌지만, 그런 돈이라면 한 두번 만진 게 아니다. 사실 그런 식으로 돈을 챙겼다면 <투캅스> 시리즈와 <마누라 죽이기>까지로 번 돈만 100억원이 넘는다. 그 돈 금고에 넣어놓고 가끔 맘에 드는 작품의 감독하고 살면 그만 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고 한국영화 제작, 투자하는 데 썼다. 늘 잘되는 것도 아니고 힘든 때도 많았지만 그렇게 해서 외국투자 사가 인정할 만한 위치까지 온 거다. 개인적으로 돈에 욕심이 있었으면 이런 식으로 안 해도 된다. -싸이더스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 그간 시네마서비스 만 믿었던 제작사들은 이제 싸이더스만 편애하게 되는 거 아닌지 걱정스런 눈치다. 아무래도 싸이더스가 작품 수가 많으니까 터무 니없는 염려는 아닌 것 같은데. =싸이더스와 시네마서비스가 완전히 합쳐지는 건 절대 아니다. 그 간 싸이더스 작품을 CJ에서 배급하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시네마서 비스가 전부 배급하는 게 달라지는 점이겠지. 기존 제작사들은 나 와 오래 함께해왔고, 이번 계약건에 대해서도 미리 운을 뗐다. 심 적으로 불안한 점도 있겠지만 배급사가 어느 제작사를 편애하는 식으로 갈 수는 없다. 당장 극장 가서 주말 관객 수 나온 거 보면 아무도 말 못한다. 극장에서 관객 안 들어서 간판 내리겠다고 하 면 그만이다. -쿠앤필름의 <하루>와 싸이더스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 1주 차이로 개봉해 쿠앤필름에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싸이더스쪽에서도 손해봤다고 하더라. 하지만 결국 영화가 불러 올 수 있는 관객만큼 든 것이지 먼저 개봉했다고 더 들고 1주 뒤 로 밀렸다고 덜 들고 하지 않았다. -지난해 흥행성적은 그리 좋지 않다. 외자유치 등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그런 것인가. =그런 측면이 많다. 영화에 따라서는 어떤 작품인지 잘 모르고 투 자한 경우도 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회사운영을 김정상 사장에 게 맡기고 한국영화 기획과 제작에 관여할 시간이 늘어났으니 시 나리오나 캐스팅이나 내가 관여하는 부분이 늘 거다. 지난해엔 회 사의 기초를 다지는 일에 신경쓰느라 시행착오를 한 셈인데, 적어 도 이제는 목표가 분명한 영화를 할 생각이다. 지난해엔 뭘 이야 기하려는지 명확하지 않은 영화들이 있었다. 상업영화인지 예술영 화인지 만들 때 판단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했다. 손 해를 보는 영화를 하더라도 예측할 수 있고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올해 여름 라인업이 약한 것 같다. 대작이 없다는 점이 불안하지 않나.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요즘 40억∼50억원짜리 영화들이 기획 되는데, 그럴 만한 영화라면 그 정도 제작비를 들여야겠지만 아무 영화나 제작비 많이 쓴다고 되는 건 아니다. 적정 제작비는 기획 에서 온다. <비천무> 같은 경우는 내가 돈 더 쓰라고 했다. 올해 개봉할 <화산고>도 그런 예다. 올해 여름에 <툼레이더> <진주만 > <쥬라기공원3> 등 외화가 강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피해갈 생 각은 없다. 방학 한복판에 <엽기적인 그녀> <신라의 달밤> 같은 영화를 밀어넣을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영화를 찾는, 배우 보 고 찾아오는 고정 관객이 있다.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영화들만 나 란히 붙어 있을 때 잔잔한 한국영화를 걸면 더 잘될 수도 있다. -배급편수가 늘어나면 한국영화의 경우 장르별로 골고루 안배해야 할 것 같은데. 지난 연말부터 비슷한 멜로영화가 연달아 개봉했는데 이런 건 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신라의 달밤>이나 <세이 예스>가 예상보다 늦게 촬영에 들어가 는 바람에 멜로물만 연달아 하게 됐다. 우리가 하면 다들 따라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킬러들의 수다>도 3, 4월에 개봉하려고 했는데 이제 촬영 시작이다. 영화란 게 늘 계획대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같은 장르의 영화가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하는데 올해는 내가 직접 나서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는 일은 없을 거다. 배급에 대해선 날 믿고 따르는 게 좋다. <주유소 습격사건 >만 해도 그렇다. 제작사에선 비수기에 개봉한다고 뭐라고 했지만 결국 개봉을 가을로 미뤄서 잘되지 않았나. 나중엔 나보고 한수 배웠다고 하더라. -비디오 배급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다른 신규사업도 있나. =올해 말부터 우리 브랜드로 비디오가 나오고 자체 조직도 갖출 생각이다. 우리가 극장 배급하면서 배급망을 갖고 있으면 노력 여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듯이 비디오 역시 위탁하는 것과 아무래 도 다를 거다. 요소요소에 멀티플렉스를 만드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연출도 할 생각이라고 누차 밝혔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아직 작품이 결정되지 않았나. =무조건 형사영화다. 지금 준비하는 것만 3개의 시나리오가 있다 . 쿠앤필름에서 진행중인 게 하나 있고, 나머지 둘은 작가에게 의뢰한 상태다. 4월 말 정도면 윤곽이 나오겠지만, 이중 제일 자신 있는 걸 할 생각이다. 지난해까진 촬영장에 가도 그저 그랬는데 올 초부터는 부럽고 설레고 그러더라. 이름 뒤에 감독이라고 붙이 는 게 어색한 느낌이 나고. 친구들이 ‘강 회장’, ‘강 사장’ 하며 장난을 치는데 요즘은 거부반응이 인다. 건방지게 보일지 모 르지만 지금 나오는 영화들 보면 아직은 내가 연출해도 비난받을 정도는 아니겠구나 싶다. 지금 나오는 영화들이 세련되긴 했지만 , 관객과 착착 붙는 영화들이 별로 없다. 거칠지만 드라마로 호흡 하는, 내 영화에 대한 향수가 있다. 다른 감독의 영화를 편집하다 보면 내 영화를 편집하고 싶고,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강 감독 영화를 보고 싶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렇다. 어쨌든 감독으로 남고 싶다. 안 그러면 금융회사 사람과 차이가 뭐냐. 김정상 사장 이 결재하나, 내가 결재하나 무슨 차이가 있나. 오히려 그 사람에게 전권을 주는 게 더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김정상 사장을 영입하기 위해 대단히 노력했다고 하던데 ‘반드 시 이 사람이다’라는 판단이 있었나. =그렇다. 오래된 친구이고 대단히 합리적인 사람이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많고, 미국 유학 시절 영화를 직접 만들려고도 했고 . 일에 대한 욕심도 많다. 나보다도 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이고 경영에 관해선 나보다 훨씬 잘할 거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계획한 대로 된 셈인가. 강 감독이 늘 주장하던 대로 한국영화가 푸대접받지 않고 극장에 걸리는 상황이 됐는데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맞다.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하지만 다음 목표를 정하기까진 아 직 과도기인 것 같다. 한국영화 잘되는 게 현실이냐 아니면 일시 적인 현상이냐가 문제다. 지금 갈림길의 끝자락쯤에 와 있는 것 같다.

황혼의 개구쟁이

저녁 5시 무렵 지하철 1호선을 타면 묘한 위화감이 열차 전체를 채우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파고다 공원에 있다가 퇴근 시간을 피해 집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들 때문인지, 열차 안의 평균 연령은 아무래도 60세를 상회한다. 이곳에서는 경로석은 물론, 일반 좌석에 앉아 있는 것조차 꿈꾸지 말아야 한다. 자칫 젊은 녀석이 졸면서 앉아 있다가는 일장 훈시는 물론, 자리를 양보한 뒤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전철을 타고 가긴 어렵다. 도합 수백년을 살아온 눈동자들이 그 ‘범죄자’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긴장감에서 벗어나면, 그곳이 제법 싱싱한 활기로 들썩거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슨 논쟁이라도 벌어지면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달려드는 할아버지들은 흡사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장난꾸러기 같다. 그러나 그들만의 리그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그곳을 벗어나면 축 처진 어깨를 늘어뜨리며 아무도 놀아주지 않는 쓸쓸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스승, 때로는 친구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놀아대는 만화 판에서도 노인들은 그렇게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주인공을 맡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인생의 노년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비춰줄 햇볕이 없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꾸부정한 허리를 지팡이로 일으켜 세우며 맹렬히 독자들에게 달려가는 노인들이 있다. <드래곤 볼>의 무천 도사는 만화 속에서 등장하는 가장 전형적인 노인 캐릭터 중 하나다. 머리가 벗겨진 대신 백발의 수염을 늘어뜨리고 있고, 구부정한 허리를 지팡이로 치켜세우고 있는 무천 도사는 전통적인 ‘사부’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젊은 여자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색정광’인데다가 상당히 비겁한 면모까지 가지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소년 주인공들보다 철딱서니가 없기까지 하다. 사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가장 편안한 존재일 경우가 많다. 중년의 아버지, 어머니가 지닌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 있으며, 아이들의 방패막이를 해주며 같이 장난을 즐길 수 있는 친구. 어떤 나쁜 짓도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 용서가 된다. <짱구는 못 말려>의 짱구 할아버지나 <마스터 키튼>에 나오는 키튼의 아버지는 모두 다 장난꾸러기에 여자를 밝히는 노인이다. 위기가 닥치면 능글맞게 사태를 피해가는 모습이 얄밉기도 하지만,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부리지 않는 면에서는 매우 친근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천 도사가 보여주는 노인의 상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취권>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이미 동양의 무술 세계에는 자신의 실력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바보 같거나 괴팍한 짓을 하는 노사부의 상이 자리잡고 있다. <머털도사> <임꺽정> 등으로 이어진 이두호의 여러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스승의 모습은 잘 재현된다. 특히 <임꺽정>의 떠벌 스님은 꺽정으로부터 여러번 의심을 살 정도로 기이한 행동을 하지만, 중요한 시점에 ‘따끔한 한마디’를 할 줄 아는 ‘스승’이다. 무천 도사는 이러한 노 스승의 권위를 이어받고 있지만, ‘색정광의 기행’에 비해 ‘스승의 따끔함’은 부족한 편이다. 요즘의 아이들은 야단치는 스승을 원하지 않는다. <슬램덩크>의 감독님처럼 한때 호랑이였을진 모르지만, 지금은 턱을 잡아서 늘여도 아무 말도 않는 편안한 노인이 좋은 것이다. 권력의 주변,영원한 아웃 사이더 사실 위엄과 권위의 노인들은 만화 속에서 매우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미성년의 소년소녀가 주인공인 동아시아 만화의 전통 상, 그들의 반대편에는 늙고 파렴치한 악당을 배치하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총몽> 등의 SF 작품에 등장하는 미친 노 과학자의 이미지는 매우 전형적인 것이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는 생리요법으로 수명을 간신히 유지해 나가는 신성황제가 나오는데, 그 역시 젊은 날에는 나름의 건전한 야망을 품었었지만 그것이 좌절된 후 자신의 지식과 권력을 그릇된 방향으로 쓰게 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일본, 중국, 한국 할 것 없이 정치와 경제의 중추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동아시아 늙은 권력자들의 실체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와 우리 주변의 노인들을 둘러보자. 권력의 핵심에 닿아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은 사실 아무런 힘도 의지도 가지지 못한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다. 그들이 소리칠 수 있는 곳은 지하철 경로석 앞뿐이다. 황미나의 <이씨네 집 이야기>에 나오는 치매 걸린 할머니가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노인의 상일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벤치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그들이 만화라는 활력의 장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개구쟁이 노인’이라는 반치매의 상태에 빠져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의 정체성을 잃지 마라 살아남으려면, 젊은 주인공들과 어울리려면, 스스로 어려져라. <멋지다 마사루>의 사미자 교장처럼, 언제 혼령이 빠져나갈지 모르는 몸을 하고도 그들의 무의미한 애교 코만도 행각에 동참하라. <마법진 쿠루쿠루>의 북북춤 할아버지 훌리오처럼 자신의 무가치함을 끊임없이 증명하라. 그리고 아무리 핍박받아도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지 말라. <이나중 탁구부>의 기노시타 할머니처럼 철저하게 추해져라. 물론 눈부신 로맨스 그레이도 없지 않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에 등장하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우아한 노인들을 보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에서 수우 가족을 돌봐주는 시즈 할머니의 삶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나 아무래도 더욱 그럴 듯한 노인은, <란마 1/2>이나 <메종일각>과 같은 다카하시 류미코의 만화에 나오는 괴팍하면서도 생기발랄의 개성을 마음껏 펼쳐내는 조역의 노인들이다. 그러고보니 노인을 가장 노인답게 그리는 데 다카하시를 따라올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

드림웍스 6년, 미리보는 <쉬렉>

■ PDI 스튜디오에서 만난 드림웍스 신작 애니메이션 <쉬렉> 지난 2월15일 미국 샌 호세의 PDI 스튜디오에서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쉬렉>(Shrek)이 일부 공개됐다. 반도체, 컴퓨터 등 첨단산업 관련업체가 모여있는 실리콘 밸리 부근 PDI스튜디오에서 5년에 걸쳐 제작된 <쉬렉>은 <개미><이집트 왕자><엘 도라도>, 그리고 아드만 스튜디오의 완제품이지만 드림웍스가 공동제작한 <치킨 런>에 이어 다섯 번째로 선보이는 드림웍스표 애니메이션. 드림웍스와 영화, CF 등에서 컴퓨터그래픽 특수효과 회사로 명성을 쌓아오다가 <개미>로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선 PDI가 두 번째로 의기투합해 만든 100%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이다. 현재 90% 이상 제작이 진행된 <쉬렉>의 완성을 앞두고, 드림웍스와 PDI는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모아 제작과정 및 작품 일부를 공개하는 투어를 가졌다.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한국 등 10여개국 기자들이 샌 호세의 PDI 스튜디오를 방문했고, 작업과정 및 주요 시퀀스들을 담은 작품 일부를 보고 프로듀서이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수장인 제프리 카젠버그를 비롯한 스탭들과의 인터뷰를 가졌다. 동화, 우화로 태어나다 <쉬렉>은 기획단계부터 따지면 이미 97년부터 제작에 착수했던 작품이다. 모세의 출애굽기, 개미 왕국을 구해내는 일개미 Z의 모험담, 두 스페인 건달들의 황금향 탐험, 치킨 파이가 될 운명에서 탈출하는 영국 닭들의 엑소더스를 항해해 온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새로 닻을 내린 영토는, 공주와 기사의 동화 세계다. 옛날 옛적 어느 숲속의 늪지에 사는 쉬렉은 북구 신화에 등장하는 덩치큰 괴물 오그르. 늪지에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꾸민 그는 혼자만의 평화와 고독을 즐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동화 속 동물 캐릭터들이 하나 둘 늪지로 도망쳐오면서 늪지는 붐비기 시작하고, 안온한 일상을 잃어버린 그는 원인 조사에 나선다. 그의 침대를 차지한 늑대, 입을 다물면 죽기라도 할 듯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당나귀 등은 모두 포악한 영주 파르콰드에게 살 곳을 잃고 쫓겨온 동물들. 일상을 되찾고 싶은 쉬렉은 파르콰드를 찾아가고, 왕이 되기 위해 결혼할 공주를 찾는 그에게 신부감을 데려다주는 조건으로 원상복귀를 약속받는다. 파르콰드는 불 뿜는 용이 지키는 탑에 갇혀 있는 피오나 공주를 신부로 점찍고, 쉬렉은 말많은 당나귀를 벗삼아 공주를 구하러 떠난다. <쉬렉>은 <배트맨과 로빈> 등 실사영화에서 시각효과를 주로 담당해온 앤드루 애덤슨, 애니메이션 제작사 한나 바버라 스튜디오 출신으로 <엘 도라도>의 프로덕션 디자인에 참가했던 빅키 잰슨이 공동 연출한 데뷔작. 공주와 기사, 탐욕스런 악당 등 동화적인 설정은, 아동 취향의 동화 색채가 강한 디즈니와 다른 길을 가겠다는 의사를 내비쳐온 드림웍스의 전작들에서 벗어난 듯 하다. 하지만 30여분에 이르는 주요 시퀀스 시사에서 엿본 <쉬렉>은 동화 치곤 좀 웃기는 동화다. 공주를 구하러 나서는 ‘기사’ 쉬렉은 잘 봐주려고 해봐야 못생긴 초록빛 괴물이고, 공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공주는 또 어떤가. 구출된 피오나는 자신을 구한 기사와 키스를 나누고 사랑에 빠지는 게 공주의 운명이라며 쉬렉에게 투구를 벗으라고 요구하지만, 멋진 왕자가 아니라 괴물이란 사실을 알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거울아, 거울아, 신부감을 보여다오” 하는 주문에 따라 파르콰드에게 신데렐라, 백설공주, 피오나를 차례로 소개하는 ‘마법의 거울’은 “백설공주! 다 좋은데 일곱 남자와 산다는 게 좀 문제죠”라며 익살을 떨고, 피오나를 감시하던 암컷 용은 당나귀가 미모를 칭찬하자 공격을 멈춘다. 90년에 나온 윌리엄 스타이거의 아동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얼핏 동화를 가장한 <쉬렉>의 본색은 사실 아동 관객의 눈높이를 교묘히 넘어선 우화에 가깝다. 잘 알려진 동화를 재료삼아 패러디와 황당한 개그적 상상력으로 요리함으로써 아이들은 물론, 십대와 성인 관객까지 폭넓게 포섭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그냥 고전적인 동화를 곧이곧대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맞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걸 훌륭하게 해내는 또 하나의 회사도 있고, 우리가 그보다 더 잘할 거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건 내 관심 밖의 문제고, 아티스트들에게도 그리 도전적인 일이 아니다.” <쉬렉>의 시사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카첸버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화의 아이디어를 빌려와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을 만들되, 동화의 관습을 안팎으로 정교하게, 독특한 스타일과 톤, 태도를 가지고 뒤집는 것, 그게 재밌고 도전적”이라며, “5년 동안 만들려면, 재미가 있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쉬렉>은 공주를 구하는 기사의 모험담이라는 동화의 보편적인 골격을 지니면서도, <백설공주>처럼 익숙한 동화적 유산을 혼성모방과 패러디로 변주한 코믹 모험판타지로 탄생한 것이다. <이집트 왕자>, 도전의 서곡 이러한 <쉬렉>의 변주는 카첸버그가 드림웍스의 첫 기획 <이집트 왕자>부터 은근히 강조해온 차별화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디즈니에서 나온 뒤 드림웍스SKG 설립을 논의하던 중에 구상했다는 <이집트 왕자>는 “동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바람에서 출발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 등을 저술한 미국의 애니메이션 평론가 찰스 솔로몬이 쓴 <이집트 왕자-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비전>에 따르면 카첸버그는, “동화를 스토리텔링의 기초로 삼는 디즈니의 전통”과 다른 애니메이션의 비전을 갖고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아이들을 위한 그림동화로 인식되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더욱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하나의 테크닉으로 발전시켜가고 싶다는 것이다. “93년에 나온 <쥬라기 공원>과 <쉰들러 리스트>가 실사영화란 공통점을 가질 뿐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듯”, 애니메이션도 그 자체로 아동용 장르가 아니라 여러 소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길 바랬달까. 스필버그, 게펜과 모여 드림웍스에 대한 구상을 나누던 카첸버그는 그러한 꿈을 밝혔고, 스필버그는 세실 B.드밀의 <십계>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게펜도 흔쾌히 동의했고, 그게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초석인 <이집트 왕자>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95년 2월, 사무기기조차 없는 LA 유니버설 시티의 텅빈 사무실에 <이집트 왕자>의 스탭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스튜디오가 출범했다. 카첸버그는 디즈니의 중견 프로듀서 페니 핑켈만 콕스, 샌드라 래빈을 스카웃했고, 그와 할리우드의 흥행사 스필버그의 이름을 보고 모인 애니메이터들을 채용했다. 스필버그가 이끄는 런던의 애니메이션제작사 앰블리메이션을 합병하면서 유럽 출신의 재원들을 대거 수용하면서 40개국에서 온 400여명의 애니메이터들로 구성된 스튜디오의 꼴을 다져갔다. <이집트 왕자>의 제작과정에서 이들 제작진에게 떨어진 주문은,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한 보편적인 장치를 넣지 말라는 것. 솔로몬이 드림웍스의 청탁으로 제작과정부터 따라붙어 썼다는 <이집트 왕자…>에 따르면, 말하는 동물이나 주인공을 받쳐주는 코믹한 조연을 없애고, 선악의 이분법적 구분을 피하라는 것이다. 과연 완성된 <이집트 왕자>에는 말하는 동물이나 웃기는 조연이 없고, 람세스와 모세의 갈등에 형제애를 가미해 선악의 이분법이 희석돼 있다. 얼굴이 길고 가무잡잡한 유대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외모는 비교적 사실적이며, 19세기 화가 구스타브 도레의 그림과 데이비드 린의 시네마스코프를 참조했다는 배경과 볼거리는 웅장하면서 전체적으로 색감이 어둡다. 성서에서 가져온 소재 자체의 무게도 무게거니와, 아동용 장르로서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란 테크닉을 사용한 영화로 보다 폭넓은 관객층을 바라보겠다는 전략의 결과랄까. 작품의 성격에 따라 카첸버그는, 밝은 색감의 깜찍한 캐릭터로 사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온 디즈니와 달리, 어린 관객들을 겨냥한 캐릭터 사업 대신 OST와 책으로 사업방향을 돌리겠다고 공언했다. <이집트 왕자>는 미국에서 약 1억달러를 벌어들이는 성공을 거뒀다. 실패의 여운, <치킨 런>으로 벗어나 이러한 작품의 성격은 <이집트 왕자>보다 기획은 좀 늦었지만 한발 앞서 개봉된 <개미>에서도 이어진다. 밝은 색감의 개미들을 비롯한 <벅스 라이프>의 귀여운 캐릭터, 반투명한 초록빛 숲과 달리 <개미>의 개미들은 전혀 귀엽지 않고, 배경은 어두운 갈색조가 지배적이다. 대신 <펄프 픽션>의 트위스트 장면 패러디와 같은 성인 취향의 유머와 세련된 대사를 앞세운 <개미>는, 미국에서 9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제작비의 4배가 넘는 1억6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벅스 라이프>의 성공에는 훨씬 못미쳤지만, 6천만달러 제작비를 회수하고도 남는 액수였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작품으로는 두 번째, 드림웍스의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으로는 세 번째인 <엘 도라도>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애니메이션의 공식들을 조금씩 비껴간 작품이다. 주인공들은 사기도박으로 먹고 사는 건달들이며,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엘 도라도로 모험을 떠난다. 결국 원주민을 도와 침략자 코르테스를 막는 선행을 펼치지만, 판에 박힌 영웅형은 분명 아니다. <개미>나 <이집트 왕자>에 비하면 색감이나 분위기가 훨씬 가볍고 경쾌해졌지만, 극을 주도하는 두 주인공의 재담은 아이들이 즐기기엔 성인 편향. 마야 문명의 유적을 화사한 원색으로 되살린 환상적인 스펙터클도, <라이언 킹>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엘튼 존과 한스 짐머 콤비의 음악도 평이한 드라마를 흥행 부진의 늪에서 구해내진 못했다. 9천5백만달러의 예산을 들인 <엘 도라도>는 자국시장에서 5천만달러를 간신히 넘기는데 그쳤다. 이 실패에 대해 카첸버그의 답은 명쾌하다. “상투적이고, 사람들이 지금껏 봐온 것과 다르지 않았다. 충분히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엘 도라도>의 실패의 여운은 길지 않았다. 99년에 2억4천만달러를 들여 합작 계약을 맺은 영국의 클레이메이션 제작사 아드만의 신작 <치킨 런>이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치킨 런>은 드림웍스와 5편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로 계약한 아드만의 첫 작품. 작품에 대해서는 아드만 스튜디오에 일임했다고 밝힌 만큼 드림웍스의 전략이 낳은 결과라고 보긴 어렵지만, 묘하게도 <치킨 런> 역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노선에서 그리 멀지 않다. 탈출을 꿈꾸는 닭들의 농장은 종종 어두운 감옥처럼 묘사되며, 주인공인 닭들은 월레스와 그로밋처럼 사랑스럽지만은 않은 것이다. 어쨋거나 <치킨 런>은 작년 미국시장에서 1억 이상의 수익을 올린 몇편 안되는 영화들에 포함됐다. 이러한 시점에서 드림웍스가 <쉬렉>에 거는 기대는 적지 않은 듯 하다. 우선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벤치마킹한 듯 친숙한 동화를 끌어온 시도에서 그간 좀 소홀했던 어린 관객들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이집트 왕자> 때와는 달리 ‘말하는 동물에 코믹한 조연’인 당나귀도 등장한다. 그러면서도 동화적인 세계를 코믹한 패러디 감각으로 적극 변주한 것은 ‘뭔가 다른 작품’에 대한 고집과 10대 이상의 관객에 대한 구애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배려와 함께, 쉬렉이 진흙으로 샤워를 할 때나 숲의 풀들이 바람에 따라 세밀하게 움직일 때 드러나는 컴퓨터그래픽 표현력의 진일보도 눈을 사로잡는다. 그 <쉬렉>이 최종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5월이면 드러날 일이다. 더 넓은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향해 그 밖에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계보를 이어갈 작품으로는, 올해 개봉을 바라보고 제작 중인 2D애니메이션 <스피리트; 치마론의 종마>, 내년 공개 예정인 100% 3D애니메이션 <터스커>가 있다. 서부시대 미국을 무대로 한 <스피리트>는 스피리트란 이름의 말이 주인공이다. 인디언들과 기병대에게 잡혔다가 자유를 쟁취해가는 과정을 그의 시선으로 그릴 예정이다. ‘스피리트’의 시점을 대사 없이 내레이션으로만 표현함으로써 <이집트 왕자>처럼 비교적 사실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갈 계획. 밀렵사냥꾼을 피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코끼리떼의 모험을 그린 <터스커>는 PDI와 드림웍스의 3번째 작품이다. <이집트 왕자>부터 <쉬렉>까지, 드림웍스에서 제작한 일련의 작품들이 ‘남다른 점’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카첸버그의 말대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전략 운운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 지 모른다. 50년이 넘은 디즈니나 다른 스튜디오에 비한다면, 드림웍스는 아직 걸음마 단계고 이제 겨우 4편을 만들었을 뿐이니 말이다. 또 애니메이션을 그릇 삼아 다양한 요리를 담고 싶다는, 또 “누구도 가 본 적 없고 애니메이션만이 이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겠다는 카첸버그의 바람대로라면, 앞으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담아내는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테니까. 오래도록 동화의 아성을 지켜온 디즈니도 <쿠스코? 쿠스코!>에서 이기적인 황제라는 파격적인 주인공과 패러디를 내세우고, <아틀란티스>에서는 어두운 심해를 무대삼아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아나스타샤>에 이어 <타이탄 A.E.>의 참패로 장편애니메이션 사업을 접다시피한 20세기폭스, 흥행과 비평 다 별 재미를 못 봤던 <매직 스워드>, 평가가 좋았음에도 흥행에 실패했던 <아이언 자이언트>로 부진을 면치 못한 워너와 달리 드림웍스는 비교적 꾸준히 제길을 다져가고 있다. 디즈니와는 또다른 작품으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좀더 풍요로운 색을 보태며 7살을 맞고 있는 것이다. LA=황혜림 기자 blauex@hani.co.kr

아줌마들의 저녁식사

■정성주·조선희·최보은·안판석 - 세 아줌마와 한 아저씨, <아줌마>를 논하다 과거지사. 최보은씨는 축시(丑時) 즈음 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민가를 찾아 떠나는 일을 종종 벌였는데, 어느 날 일산 정성주 작가의 집도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새벽녘 일어나서 글을 쓴다는 작가와 잠을 거르고 달려온 옛 <씨네21> 기자 최씨는 저번에 보고 두 번째네요, 라고 믿기지 않는 말을 나누고는, 정담으로 아침해를 맞았다. 야간 의기투합 얼마 뒤, 단지 밤잠없다는 이유로 끌려갔던 구 기자는 정성주 작가의 집을 다시 찾는다. 정성주 작가는 <추억>이라는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었고, 명목은 작가 인터뷰였다. 인터뷰 기사를 작성해 넘겼는데 어중이떠중이 구 기자가 쓸 리 없는 아름다운 글이 되어 나왔다. 거기에는 비밀이 있었으니, 당시 데스크이자 당대의 명문장가 조선희씨가 보기 드물게 감동받은 드라마 <추억>에 ‘의욕’을 보인 결과였다. <씨네21> 새로운 영화읽기 코너를 ‘아줌마, 극장가다’로 지은 최보은씨는 자신의 크레디트도 ‘아줌마’로 바꾼다. 그리고 정성주 작가는 차기작 드라마를 <아줌마>라고 이름짓고 집필을 시작한다. 이들 정성주, 최보은, 조선희씨가 바람 부는 일산의 정성주씨 자택에서 만났다. 만남의 이유는 <아줌마>라는 드라마에 푹 빠진 탓이고, 그들이 페미니스트인 탓이고, 그들이 아줌마인 탓이다. 아참, 아저씨가 한명 더 있다. 정성주씨가 수렁에 빠질 때마다 단호한 어조를 이끌어주었다는 <아줌마> 드라마의 연출 안판석 PD다. 2000년 9월18일 방영을 시작한 <아줌마>는 인간 오삼숙의 투쟁기이다. 남편에게 ‘강간’당해 결혼해서, 시부모를 공양하고 올케의 자식을 봐주고 교수가 된 남편에게 무시당하며 살아가던 오삼숙은 한국의 그저그런 ‘아줌마’였다. 그러다 자신의 ‘과오’가 ‘착한 짓’에 있었음을 대오하고 이혼법정에 선다. 그리하여 자식을 자신의 일을 하는 것으로 거두 고 살아가는 특별한 ‘아줌마’가 된다. <아줌마>는 지식인의 위선을 까발리고, 교수 불법임용 문제 등 민감함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고, 계약동거, 외도, 맞바람 등 공공연함에도 TV에서는 볼 수 없던 소재를 다룸으로써 저자의 화제가 되었다. 소재의 선정성은 내용의 건강함으로 이어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3월8일 여성권익 디딤돌로 드라마 <아줌마>를 선정했다. <아줌마>는 2001년 3월20일 54회를 마지막으로 6개월의 대장정을 끝낸다. ............................................................................................................................ |정성주 아줌마| 57년생. <신데렐라> <추억>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대본. 한번의 이혼. 한 아들의 엄마. |조선희 아줌마| 60년생. 전 <씨네21> 편집장.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를 통해 애 키우며 전쟁을 치르듯 사는 삶을 이야기함. 두 딸의 엄마. 이혼경력 없음. |최보은 아줌마| 60년생. 전 <케이블TV가이드> 편집장. <씨네21> 아줌마 vs 아줌마 필자. 두 딸의 엄마. 두번의 이혼 경력. |안판석 아저씨| 61년생. 한국 거대 방송사 PD.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연출. 이혼경력 없음 ........................................................................................................................... ■조선희(이하 조) 모델이 된 캐릭터가 있는 건가요? ■정성주(이하 정) 먼 동생 중에 오삼숙 같은 애가 있어요. 걔 엄마가 어렵게 그 애를 키웠어요. 그러고 결혼해서는 남편 먹을 것을 따로 만들 정도로 존경하더라구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들려주는 이야기가 범상치 않은 거예요. 처음엔 강 선생이라고 했는데, 아무개, 그 다음엔 성도 떨이지고 그놈, 그 새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얘기 재밌군, 그랬죠. <장미와 콩나물> 끝나고 남편이 아프고 그러니까 저에게 빨리 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기획서를 내라고 그래요. 기획서에는 남편이 기자였어요. 기획서를 가져갔더니 국장이 “기자는 조금 그렇지 않나” 그래요. 걔의 남편이 시간강사고 전임교수가 될 즈음이었어요. 사방 불려다니며 논리를 세워주는 논리기생, 지식기생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그 동생이 남편이 전화하는 소리를 들었대요. “걔네들 왜 또 거기서 만나는 거야. 저번 거기 전복 상한 거 나왔는데” 그러더라나요. 뭐, 전복? 칼로 뭘 썰고 있었더라면 그 칼을 내던지고 싶다, 그 정도까지 됐다는 거예요. 충분히 재밌는 이야기잖아요. 평소에 갖고 있던 소수자, 여자가 아니라 소수자로서 충분히 대표성이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드라마 주인공으로서의 고유성도 지니고 있고. 대본 한개를 썼을 때 안판석 PD에게 보냈어요. 옛정을 생각해서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막 칭찬을 받고 고무가 돼서 다음 걸 쓰는데 죽어라고 안 돼요. 왜 힘든지 잘 몰랐는데 안판석씨와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이유를 알게 됐어요. 내가 이 인물을 발언자로 보고 있더라는 거예요. 이야기 속 사람들이 아니라. 나는 역시 발언을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뭐냐면 그 사람 뒤를 잘 밟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를 보는 사람이지, 그 사람을 끌고 다니면서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큰 소리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조 이미 여러 편의 드라마를 써서 노련할 텐데, 이번 드라마는 왜 그런 강박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정 전복의지. 우리더러 따르라고 하는 가치체계에 대한 전복의지. 그 꼴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것. ■최보은(이하 최)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정성주씨는 성공한 여자잖아요. 자기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그런데 그런 분노의 에너지가 축적되나요. ■정 우리나라는 1%와 99%로 갈라져 있어요. 99%에도 차이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99%중 상당수가 1%를 열심히 쫓아가면 자신도 1%가 된다고 생각해요. <조선일보>에서 구조조정하면 안 돼, 통일을 하면 위험해, 그러면 그 생각을 따라가려고 애를 써요. 있는 것을 지켜야 한다는 환상까지도 품어요. 하지만 나는 없어요. 99% 중 하나예요. 그래서 1%가 하는 일이 싫어요. 자기들의 가치 기준을 따르라고 하는 게, 자기네들 밑에 깔려달라고 할 때 핏대나지요. ■최 여자들은 여자로 태어나는 게 무슨 차별이냐고 생각하고 살다가, 나이가 들수록, 평균적으로 아줌마가 되었을 때 여자로 산다는 게 뭐지, 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런 게 마그마처럼 끓고 있는데 <아줌마>가 바늘구멍을 내준 것 같아요. 아, 이건 내가 억울해 해야 하는 거네, 화를 내야 하는 거네, 생각하게 해줬다는 거죠. <아줌마>는 시대를 툭 건드려서 끌고 가는 드라마가 아닐까 하면서 봤어요. 칭찬이에요. 고딕으로 써주세요. ■조 <아줌마>를 보면 지식인 계급, 중산층 이상들은 도덕적으로 해이한 사람이고, 허위의식에 가득 찬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은 상당히 용서가 되는, 인간적으로 용서가 되는 사람들에요. 작가 자신도 지식인이잖아요. ■정 나는 지식인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지식인은 지식을 가지고 뭘 해야 하는 사람인데 나는 그렇지 않아요. 지식을 갖고 안 갖고를 떠나서 나는 모든 것이 다 행복하고 순조로워보이는 그런 체질이 아니라는 것, 그뿐이지요. 무슨 대답을 원하든지간에, 나는 그렇게 대답할래요. 나는 지식인이 아니다. ■조그런데 장진구의 모델이 되었다는 그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정 그 남편은 이 드라마를 보며 저런 아둔한 새끼가 있나, 욕한대요. 그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았어요. 남편이 장진구처럼 추운 처지가 아니라 잘 나가기 때문이에요. 그 동생은 최유미로 이행을 했어요, 이미. 방배동 요리선생집에 다니고 그래요. ■최 오삼숙의 올케 같이 일하는 여자를 왜 부정적으로 그렸느냐는 비판이 있어요. ■정 알게 모르게 착취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만 존재하는, 그 빛나는 전문직을 가지고 행세할 수 있는 사람요. 그런데 자기를 위해서 딴사람이 더러운 것을 만져준다는 자각이 없으면 그 사람도 권력지향형 인간에 지나지 않아요. 나는 일하는 여자를 부정적으로 그린 게 아니라 그런 사고구조를 가진 사람을 부정적으로 그린 거예요. 그게 하필이면 같은 여자고 하필이면 올케인 거죠. 자기는 지 남편한테 그 일 못시키니까 헐값에 만만한 사람 시키겠다는 생각이지요. 이건 남자들이 그만큼 일하니까 여자들이 다 챙겨주고 해야 한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에요. 나도 그래요. 우리 엄마가 애들도 다 키워주다시피했고, 시어머니도 많이 써먹었어요. 나는 집으로 돌아갈 때 가끔, 그 생각해요. 내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러나, 곗돈이 생기면 갖다바치지만 입 틀어막는 것에 다름 아니거든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이런 거나 해줘야지 하는 그런 못된 심보가 나한테 있더라구요. ■조 원래 드라마 각본에는 재결합하는 걸로 돼 있다고 하던데요. ■정 아니에요. 시놉시스 쓸 때 일년 뒤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어서, 삼숙은 자기 뜻대로 살게 되었다, 이렇게 썼어요. ■조 우리 하고 싶은대로 하자면 뒤돌아보지 않고 나가는 건데요. 재결합의 여지를 남겨두는 게 보여요. 이런 여지를 남겨두는 게 드라마의 긴장 때문인가요, 사회적인 파급력이 큰 드라마기 때문에 어떤 한국사회의 상식에 적당히 부합하려고 했던 건가요? ■정 극적인 긴장감이 더 클 것 같아요. 시아버지를 자세히 보세요. 재결합을 도모하게 생긴 사람인가, 아닌가. 재결합을 꾀하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그런 국면으로 돌입하게 되는 거지요. ■조 시아버지가 재결합 꿈꾸는 거는 작가도 못 말려, 그렇게 되는 거네요. ■안판석(이하 안) 드라마들을 냉정하게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따라가면서 드라마에 나타나는 이야기만을 쫓아가는 비평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자기 식에다 꿰맞춰서 드라마를 많이 봐요. 예를 들어, “재결합을 하려는데 억지스럽다” 하면, 당황스럽죠. 또 삼숙이랑 한지원이랑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냐고 그러는데, 한 대목 한 대목 쫓아 살펴보면 친구가 아니에요. 그리고 장진구의 친구관계가 왜 그렇게 개판이냐고 그러는데, 아니에요. 그냥 보통 친구예요. 으르렁거리게 되는 상황이 주어졌을 뿐이지요. 둘 중 한명 죽고 한명 사는 상황이 주어지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 잔대가리를 굴리죠. 이 드라마 속에서 잔대가리가 기어나올 문맥이 되어서 기어나온 거예요. 그런데 시청자는 그런 친구관계가 어딨어, 이렇게 말해버리거든요. 연결고리들을 쫓다보면 친구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납득이 되거든요. 납득이 되게 온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하면 시청률이 60%, 70% 나올 게 뻔해도, 연결고리가 안 생기면 그렇게 만들지 않아요. ■최 마지막으로 가면서 슬랩스틱 요소가 강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안 그건 당연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갈수록 처한 상황이 극악해지거나 막다른 골목으로 가요. 막다른 골목에 놓여 있는데 상식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요. ■조 시청률이 원인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안 그런 건 시청률에 도움이 안 됩니다. 시청률은 이혼하고 재결합하고 다시 깨지고 ‘이놈’이 ‘저년’하고 붙고 ‘이년’이 ‘저놈’하고 붙는 게 도움이 돼요. 그걸 단순하게 해놓고 오밀조밀하게 해야죠. 그게 한국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인 것 같아요. 드라마가 지루하게 늘어진다는 비판을 봤어요. 시청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이혼했는데, 이제 재결합하겠구나 하고 미리 짐작하기 때문이죠. 재결합 하려면 빨리 하지, 지금이 몇횐데 아직도냐, 이렇게 생각하는거예요. 시청률 올리려면 재결합, 재재이혼, 재재결합, 이러면 많이 올라가죠. 전개가 빠르다 그러고. 그런 식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드라마가 아니죠. ■최 여자의 임신으로 가는데 작가가 임신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요? ■정 잠자기 전, 잠잔 뒤, 애배기 전, 애밴 뒤, 애 낳은 뒤. 하필 여자라면, 여자에게는 전기가 되죠. 긍정적인 전기만은 아니라서 남의 입의 것 꺼내서 지 새끼 입에 넣어주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겠지만. ■최 봉황의 깊은 뜻은 없는 건가요? 쌍둥이 임신이라면서요. ■안 기획서에 쓴 말에 허위의식이라는 게 있어요. 가면을 벗어야 허위의식이 드러나는데, 지식인은 교묘해서 가면이 잘 안 벗겨져요. 무지하게 당황스러운 국면에 빠뜨려야 가면이 벗겨지죠. 처녀가 애를 뱄는데, 그것도 쌍둥이를 뱄다, 이렇게 파국적인 면으로 들어가야 껍질이 자꾸 벗겨지면서, 쓸 말이 나옵니다. ■최 저는 몇몇 대목들, 심혜진이 약혼은 했지만 처녀성은 보존했다고 암시하는 대목, 정재환의 역할이 수컷으로서 미묘한 것 등에서 도덕률에 영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정 오히려 뒤집고 싶은 마음이에요. 정재환의 역할을 키우지 않은 건, 현실적으로 드라마톤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려는 이유도 있지만, 마초로 비칠까봐 그런 이유도 있어요. 심혜진이 처녀다 하는 건, 웃기잖아, 웃기라고 그런 거예요. 말도 안 된다고, 그게 무슨 자각이라고. 그러나 이 여자가 마음속 깊이 자랑으로 생각하냐면 그건 아니거든요. 해보고 싶어 죽겠는데, 외국 나가서는 에이즈 걸릴까봐 그 짓을 안 하고, 이게 얼마나 웃기냐고 슬쩍 깔아놓은 거죠. 장진구가 너의 순결을 지켜주지, 거 웃기잖아. 뭘 지켜줘? 그런 말들, 횡행하는 게 너무 웃겨서, 한번 하게 해보려고요. ■최 이 드라마에서 카타르시스는 오삼숙의 통쾌한 법정 승리 부분이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저도 얼마 전에 도장을 찍었는데, 굉장히 어렵더라구요. 법이 너무너무 불리하더라구요. 어떻게 생각하면 남자들에게 겁주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법적으로 불리해서 이혼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질투나더라구요. ■정 오삼숙한테 그런 행운이 있으면 안 돼요? 의지가 확고하고 단호하고, 단순하고, 그런 미덕이 있잖아요, 오삼숙한테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사람은 잘 못하죠. 장진구는 이혼 말이 나오자 애는 어떻게 될까, 나는 이렇게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한참 하는데. 그럼 못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해야 돼, 그러면 빨리 되는 거고. 법적으로 알아보니까 오삼숙이 유리하더라구요. 시댁에서 무시당했다는 확실한 증거들, 그거는 재판상 유리하게 작용해요. 질투난다고 하니까 보람을 느끼네요. ■조 이혼녀와 이혼녀의 자식들에 대해서 특별하게 보는 시선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이혼의 경우에는 모두 오삼숙 편이고, 장진구에게 돌을 던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이혼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혼녀를 독립적이고 당당한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그것만 해도 나는 여성운동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기를 존중하는 과정을 배워가는 것, 그게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 없는 사람, 99%에 속해 있는 사람이 오삼숙처럼 되려면 무시당했다는 것을 자인을 해야 해요. 나 잘살고 있어, 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나는 당당함이라든가 그런 면보다는 이런 말들이 게 기억에 남아요. 내가 하지 않고 오삼숙이 한 말 같은데, “나는 무시당해도 싼데” 이런 말. “내가 잘못 살았지” 이런 말. 그 단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게 싫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 싫은 것 안 할래, 그렇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최 <신데렐라> <추억> <장미와 콩나물> <아줌마> 이렇게 오면서 젊은 가족간의 문제, 여자간 남녀간의 문제, 그런 생각이 점점 더 발전해왔어요. 그 전의 드라마는 타협이 있었거든요. 재결합을 한다든지, 또는 뭐, 호텔 갔는데 섹스를 안 한다든지 하는 그런. <장미와 콩나물>에서 예리해졌다고 그럴까. 작가의 의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건가요? 앞으로도 <아줌마> 수준의 사회의식을 가진 드라마를 기대해도 될까요? ■정 내가 드라마를 통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지, 예전엔 일단 자신이 없었던 거죠. 직업의식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되는 대로 하지 뭐, 그런 게 있었어요. 애들이 독립할 때까지는 이 일로 벌어먹어야 될 텐데 이 정도의 직업의식으로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달라졌다고 할까요. 앞으로 드라마도 그럴 건지 어쩐지는 자신할 수 없어요. 나는 의식있는 작가 뭐, 그런 게 아니에요. 직업의식이 달라졌다고 해야죠.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자 하는. ■조 수다스럽게 얘기 많이 하는 코믹드라마는 계보를 올라가면 김수현 드라마, 김수현 드라마가 워낙 넓으니 어떤 부분,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가 있을 듯한데, 그건 가부장적 아버지, 순종적인 아들이 나오는 드라마잖아요. 세대가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계보 내에서도. 10년 전이었다면 이런 드라마 쓰기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대중의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안 10년 전이라도 되었을 것 같아요. 일문일답을 착실히 해나가면 돼요. 이 사람이 이러면 얘가 이러겠지 하는 걸 다 쫓아가잖아요. 다 쫓아가다 보니까 이 여자가 시아버지 따귀를 때려도 되겠지 하면 얼떨결에 “네” 하는 순간이 만들어지게 마련이에요. 10년 전에도 됐을 것 같아요. 제 단계를 밟아주면. ■최 이 드라마 하는 중에 이혼율이 높아졌다는 게 사실이에요? ■안 그 사이 이혼통계가 나왔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조 근데 이게 좀 재미없게 사는 여자들로 하여금 한번씩은 돌아볼 생각을 하게 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그게 통계 수치상으로 백업이 되든 안 되든간에. 정리 구둘래/ 객원기자 anyone@cartoonp.com 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충무로에 부는 네티즌 펀드 바람

지난 3월8일 한국영화계에 작은 ‘기록’ 하나가 수립됐다. 구스닥이라는 인터넷 업체가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한 <엽기적인 그녀>의 1억원짜리 투자 공모가 6시간40분 만에 마감된 것. <엽기적인…>은 이틀만에 1억원을 모은 <리베라 메>의 ‘기록’을 갱신했지만, 심마니 엔터펀드가 실시하는 12일의 <친구> 투자 공모에 9일 현재 공모액 1억원 중 이미 6천만원이 대기 중이어서 그 영광을 오래 누리지는 못할 전망이다. 네티즌들의 돈을 모아 영화에 투자하는 네티즌 펀드가 최근 들어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9년 11월 인츠닷컴이 <반칙왕>에 대해 1억원을 공모한 것으로 시작된 네티즌 펀드는 엔터펀드, 엔터스닥(옛 무비스탁), 구스닥, 한스글로벌, 문화거래소 등이 속속 참여하며 점차 그 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자카르타> 등이 높은 수익률을 올려 투자자에게 고액을 배당하게 되면서 네티즌 펀드는 ‘저금리, 저주가 시대’의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수익률이 150%인 <공동경비구역…>의 경우 10만원을 투자한 사람이라면 15만원이라는 추가소득을 얻게 되는 셈이니 가히 ‘대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대개의 작품이 20% 안팎의 탄탄한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네티즌, 투자에서 홍보까지 물론 이들 네티즌 펀드에 관심이 쏠리는 동기를 자산증식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재미도 보고 돈도 버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징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가장 큰 동기일 것. 애초 네티즌 펀드가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같은 사실은 명확해진다. 영화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보다는 자신의 영화를 네티즌의 힘을 빌어 홍보하고자 하는 영화 투자사나 제작사의 입장과 자사 사이트의 인지도를 높이고 부가적으로 수수료를 챙기려는 네티즌 펀드 업체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현재 네티즌 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영화에 관심이 높은 20대∼30대. 엔터펀드에 의하면, 20대와 30대가 각각 51%, 45%로 95%를 차지하며 직업별로는 학생이 45%로 가장 많다. 이들은 자신이 투자한 영화를 띄우기 위해 인터넷 곳곳의 게시판에 홍보문구를 띄우는 등 마케팅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엔터펀드의 윤제근 팀장은 “우리가 분석해본 결과, <자카르타>의 경우 인터넷 게시판에 띄워진 찬사의 글 중 절반 가량은 투자자의 작품이다”라고 설명한다. 투자액은 확대, 공모방법은 전문화 하지만 ‘머니게임’의 양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따라 네티즌 펀드의 목적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단순 마케팅이 아니라 실질적인 투자수익을 노리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엔터펀드의 경우 튜브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하는 <파이란>에 2억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에 각각 4억원을 공모해 투자하는 등 점차 투자액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올해 안으로 10억 규모를 공모해 제작비의 절반 정도를 대고, 내년에는 제작비 전액을 네티즌 펀드로 조달하는 작품도 만들 예정이다. 엔터스닥의 경우 더 적극적이다. 상반기 안에 20억 규모의 전액을 네티즌 펀드로 투자하는 작품을 제작할 예정이고, 곧 만들어질 영화 수입펀드에 20억원을 넣기 위해 새로운 펀드를 공모할 계획이다. 한스글로벌도 <게이머>에 6억원을 네티즌 펀드로 조달할 방침. 공모 목표액이 높아지다 보니 이들 업체는 투자자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엔터펀드의 경우 증권전문 사이트인 팍스넷, 포털 사이트인 네띠앙과, 엔터스닥은 영화예매 사이트인 맥스무비, 직장인 사이트인 김대리 등과 제휴를 맺었고 구스닥은 모회사인 인터파크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네티즌 펀드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건은 투자 대상인 영화 작품이 얼마나 완성도와 흥행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 이들 업체가 믿을 만한 메이저 영화투자 및 제작사와 손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츠닷컴은 청년, 마술피리, 엔터펀드는 튜브엔터테인먼트, 구스닥은 신씨네, 백두대간 등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아직 네티즌 펀드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메이저 제작사의 경우 굳이 네티즌의 ‘코묻은 돈’이 아니더라도 자본을 끌어모을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므로 아직 네티즌 펀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또 자칫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영화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이들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우리 역시 네티즌 펀드에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별 작품에 대한 투자는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이는 싸이더스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한 나쁜 이미지로 연결될 수가 있다. 따라서 몇 개의 작품을 묶어서 패키지식으로 펀드를 조성하는 방법이 더 좋아보인다”고 얘기한다. 갈길은 멀다,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 최근 들어서는 네티즌 펀드에 대한 관심이 과열상태가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200만원 이상의 고액 투자자가 점차 증가하고 있고 1천만원대의 거액을 내놓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것. 엔터펀드의 경우 100만원 이상 투자자가 전체 투자자 중 5%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0%가 넘는다. 또 네티즌 펀드를 홍보 차원이 아니라 자본 그 자체로 필요로 하는 영화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투자유치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되고, 이는 또 흥행에서도 큰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흥행성이 떨어지는 기획이 네티즌 펀드로 진행될 경우 결국 투자자만 손실을 입을 것이고 네티즌 펀드 자체에 대한 불신감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츠닷컴의 김정영 영상사업부장은 “영화 기획이 아니라 이벤트 기획 같은 말도 안되는 기획서가 숱하게 들어온다”고 말한다. 그동안은 흥행성과 작품성 등을 고루 갖춘 작품에 대해 주로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에 수익률이 높았지만, 앞으로 네티즌 펀드가 활성화하는 틈새로 가망없는 작품이 들어올 여지는 많아보인다. 물론 네티즌 펀드가 전통적인 충무로 자본에서 대기업으로, 다시 금융자본으로 바뀌어온 한국영화 자본의 흐름을 당장 바꿔놓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싱싱한 눈과 감각을 가진 새로운 투자자군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기존 투자자에게 외면받던 신선한 발상의 영화가 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돈놓고 돈먹기’식의 투기장이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네티즌 펀드 현황 회사명 도메인 주소 작품 공모액 투자자 수익률 인츠닷컴 film.intz.com 반칙왕 1억원 464 97% 킬리만자로 1억원 438 40% 동감 4300만원 - 56%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560만원 754 30% 공동경비구역 JSA 1억원 350 150%예상 단적비연수 1억원 282 1% 무사 1억원 공모예정 미개봉 엔터펀드 화양연화 8천만원 498 10% enterfund.simmani.com 리베라 메 1억원 711 12%예상 자카르타 1억원 485 50%예상 눈물 4천만원 278 정산중 휴머니스트 1억원 공모중 미개봉 그녀에게 잠들다 1억원 공모중 개봉중 친구 1억원 공모예정 미개봉 파이란 2억원 공모예정 미개봉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4억원 공모예정 제작중 2009 로스트 메모리즈 4억원 공모예정 제작중 엔터스닥 하면된다 1억 120여명 -20% 예상 www.entersdaq.com 라스트 씬 5천만원 60여명 미개봉 공중화장실 5천만원 40여명 미개봉 구스닥 www.goodsdaq.co.kr 부에나비스타.. 3천만원 125 정산중 엽기적인 그녀 1억원 353 제작중 인디안 썸머 1억원 공모예정 미개봉 프린스 앤 프린세스 미정 공모예정 미개봉 한스글로벌 www.hansboom.com 천사몽 3억3천만원 175명 정산중 문화거래소 www.gfan.net 게이머 1억1천436만원 (목표 6억원) 100여명 (공모중) 제작중 ▶김정영 인츠닷컴 영상사업부장 인터뷰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지

봄비였을까? 마천동, 5호선 열차가 몇 안 되는 승객을 내뱉고 잠시 쉬어가는 종착역. 남한산성 아래 있다는 그의 집을 찾는 길에, 비가 내렸다.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부터 최근작 <내 마음의 풍금>까지, 태동하던 이 땅의 영화가 나고, 옹알이를 하는 모습, 걸음마를 떼는 순간, 갈 길 몰라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거쳐 든든한 청년이 되기까지. 긴 세월,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한국영화의 성장을 지켜보았던 배우 박광진(77)은, 그러나 더이상 청년이 아니다. 마치 손자에게 키를 나누어 주어 점점 키가 줄어든다 했던 <축제>의 동화 속 할머니처럼…. 초등학교를 따라 뻗은 길,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한복차림의 노인의 볼은 먼 길을 찾아온 손님에 대한 반가움 때문인지 오랜만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배우집이라 부잣집일 줄 알았을 텐데…, 이런 누추한 곳에서 두 노인네만 살아요.” 몇개의 골목을 지나 들어선 곳은 붉은 벽돌의 빌라 지하방. 손자가 만든 조잡한 종이 카네이션 뒤에 송파구 배드민턴대회에서 탄 금메달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는 그의 집은 50년 넘는 세월 동안 배우로 살아왔던 삶을 보상하기엔 턱없이 초라했다. 그러나 프림, 설탕 가득한 다방커피 대신 헤이즐넛향나는 신식 원두커피를 내어오는 그에게선, 영화가 로맨스고, 영화가 멋이었던 시대를 통과해 온 사람 특유의 대책없는 낭만이 여전히 늙지 않은 채 숨쉬고 있었다. “남은 건 이거밖에 없어, 자식 손주들에게 줄 것도, 이거밖에 없어.” 한장한장 넘길 때마다 묵은 먼지가 이는 누런 사진첩과 함께, 그의 빛바랜 기억을 불러오는 작업은 “그게 뭐였더라” “어이구… 기억이 잘 안 나네…”란 말이 수시로 이어지는 난해한 퍼즐 맞추기 같았다. 일흔일곱의 삶 동안 몇 조각은 달아나기도 하고, 장롱 밑에 숨기도 하고, 몇몇은 색이 바래 가물해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모아놓은 조각들은 마치 한폭의 민화처럼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925년 을축년. 한강 대홍수 발생. 조선총독부 완공. 나운규 주연의 <심청전> 조선극장 개봉. 전국 극장수 27개. 전국 인구 1952만명. 1925년 9월21일 율면, 경기도 이천에서도 한참 들어가야 하는 ‘깡촌’. 농사짓던 부모님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박광진(본명 방상옥)은 지금은 징용 끌려가 소식없는 작은형과 6·25 이후 소식끊긴 철원의 작은 누이와 함께 자랐다. “종국엔 이걸 하려고, 배우하려고 그랬는지, 학교 댕길 때도 꼭 연극운동이 있으면 나갔어. 박수소리가 좋았던가봐.” 사람들 앞에 나서고, 재주부리는 게 마냥 즐거웠던 소년은 5년짜리 중학을 졸업한 16살이 되던 해, 직장을 잡기 위해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서울에 올라와 본 진짜배우들이 나오는 연극은, 배우들의 기찬 연기와 함께 장중한 세트로 학생연극만 봐왔던 시골소년을 압도해왔다. “시대물 같은 거 하면 정말 찬란했어. 그 뭐야, 황철 선생 나오는 <바람부는시절>부터 청춘좌(당시 동양극장 전속 극단)에서 하는 연극은 안 본 게 없었지.” 일할 곳을 찾던 소년은 “좋은 음성 덕에” KBS라디오 성우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월북한 호규서 아나운서와 함께 <세계일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리고 성우로 일한 인연으로 극단 <아랑>의 <산적>이라는 연극에 참여하면서 연극계에 첫발을 디뎠다. “꿈에 그리던 황철, 서일성, 김선영, 고설봉 같은 대배우와 얼굴을 맞댈 수 있다니!” 비록 작은 역이지만 죽을 힘을 다해 하고 싶어졌다. #1945년 8월15일 해방. 미군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댄스홀 대유행. 좌익이 주도권을 잡은 조선영화동맹 결성. 해방은 되었지만 연극계는 여성국극의 인기와 함께 점점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명치좌(시공간, 이후 국립극장)를 거쳐, 당시 극단 청춘극장에 속해 있던 박광진은 <동명성왕>의 주인공인 ‘동명왕’ 역을 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지만 지방을 전전하며 공연을 해봐도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없었다. 배고프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때 청춘극장 단장과 친했던 영화감독 윤대룡이 “어디 쓸 만한 배우없냐”고 물었고, 단장의 추천으로 그는 처음으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16mm 무성영화로 영화사에 기록될 작품 <검사와 여선생>(1948)이다. 탈옥수를 숨겨준 일로 남편의 오해를 산 여선생이 실수로 남편을 죽이고 법정에 선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검사는 바로 이 여선생에게 은혜를 입었던 제자. 여기서 박광진은 주인공 영애를 잡아가는 형사로 출연한다. “뭔지도 모르고 그냥 감독이 시키는 대로 했지요. 카메라가 뭔지. 어디를 찍고 있는 건지. 온몸으로, 발가락 하나까지 연기하던 연극배우가 쭉 땡겨서 잡는 ‘압뿌샷’(타이트샷)이 뭔지 알 길이 있나.” # 1955년 모래 찜질의 명소 만리포해수욕장 개설. 50년대 후반 육체파 여배우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수영복 입은 여배우가 등장하는 해수욕 장면이 자주 출몰.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의 <미망인> 중앙극장 개봉. 이규환 감독 <춘향전>의 히트와 함께 사극영화 중흥기를 맞음. 한번의 영화출연을 제외하고, 연극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그도 이제 서른. 짝을 만나 결혼을 해야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라는 직업은 늘 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굿하는 무당이 점지해준 사람이야, 그 사람이.” 무당의 소개로 만난 여자는 의외로 연극배우라는 직업에 호감을 표했다. “내가 그땐 연극에 주인공을 도맡아 하니까, 멋있어 보였나봐, 다른 세계 사람 같았겠지.” 그렇게 그해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 낭만이고 멋이고 ‘진짜 생활인’이 되어야 했다. 연극판에 비하면 당시 한국영화의 제작은 활발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1957년 김소동의 <아리랑>에서 박광진은 미친 영진의 친구 역으로 출연했다. “데뷔를 잘했어야 했어. 바쁘고 힘드니 단역이고 주연이고 가릴 상황이 되나, 그냥 역할이 있으면 가리지 않고 출연한 게 지금까지 단역으로 굳어진 것 같아.” 청춘극장 시절의 동기이자 친구인 신영균이 주연으로 서서히 인기를 끌며 따뜻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가던 시절, 그는 춥고 배고픈 단역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새벽 5시쯤 충무로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면 ‘수타다방’, ‘신천지’, ‘청맹’ 같은 다방에서 ‘오시뗑’(단역배우들을 실어나르는 트럭) 오기만을 기다리는 거야.” 그렇게 멀리서 ‘오시뗑’이 터덜대며 오는 소리가 들리고 포장 안 된 길을 따라 상계동이며 남한산성, 북한산성으로, 촬영장을 향해 달려가면, 그의 진짜 하루가 시작되었다. “영화에서는 출세하려고 해도 못해. 주인공하는 배우들은 일단 ‘그림’이 우리랑 다르거든. 누가 봐도 잘생기거나 특출한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같이 평범하게 생긴 사람은 힘들지.” 그러나 카메라의 오랜 애무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는 비록 단역이지만 최대한 타이트한 샷으로, 최대한 오랫동안 나오기 위해 여러 번의 ‘무모한 시도’를 감행했다. <의적일지매>(1961)를 찍을 때였다. 카메라가 달려오는 배우 한명한명을 비추다가 쭉 빠져 풀샷이 되는 장면에서 그가 제일 앞에 서게 되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는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계속 카메라를 보며 따라 돌았다. 감독은 “미친 놈, 뭐 하는 짓이냐”고 불호령을 내렸다. “죽을 만큼 야단맞았지. 그래도 그땐 왜 그랬는지, 그렇게 욕심을 내고 싶더라고.” 시대물이 주를 이루던 시대라 단역배우에게 말타는 것은 필수사항이었다. 이장호 감독의 <일송정 푸른솔은>을 마지막으로 그만두기는 했지만 말다루는 솜씨는 늘 그의 자랑거리다. “그땐 스턴트맨, 그런 것 없어. 우리가 직접 말을 타야 돼. 내가 말타는 솜씨가 끝내줬거든. 고삐 놓고 말등에서 총을 쏠 정도였지. 가끔은 내가 탄 말이 주연배우 말보다 앞으로 나가서 NG난 적도 많았지.” <세종대왕>(1964) 촬영장에서 박광진의 역할은 말탄 장수. 그에게 안현철 감독은 말을 타고 달려오다가 맞은편 장수의 말로 ‘붕’ 날아가서 목을 조르라고 지시했다. “등에 줄 매고 그런 거 하나없이 사람이 어떻게 붕 하고 나르나, 몇번 시도를 해봤는데 자꾸 떨어지는 거야. 그 컷 찍기 시작한 게 10시였는데 저녁 5시까지 죽기 살기로 그짓을 했어. 그때는 감독이 하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던 때거든, 지금 애들 보고 하라 그러면 도망갈걸. 결국 그렇게 찍고 나서 나중에 영화를 봤는데 어느 놈이 어느 말에 탔는지도 안 보일 만큼 풀샷인 거야. 허허, 물론 그림은 멋있지. 그래도 다시는 그런 짓 안 한다고 했어.” # 1965년 정부, 양곡을 원료로 사용하는 증류식 소주의 제조를 금지. 새해 벽두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 개봉. 고은아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갯마을> 개봉을 필두로 문예영화 붐. 영화제작이 활발해지면서 이른바 신영균, 최무룡, 신성일, 최은희, 도금봉, 문정숙 같은 스타들이 탄생했지만 영화제작편수에 비하면 이른바 ‘장사되는’ 스타의 수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날라리 제작자들이 많았거든.” 당시 영화제작자들은 주연급 배우를 데려다놓고 하루이틀 만에 스틸사진을 찍어서 서울이나 지방의 흥행사(당시 지역의 판권을 쥐고 있던, 지금으로 말하면 배급업자)를 찾아가서 배우의 얼굴을 걸고 영화를 미리 팔곤 했다. 하여 주연급 배우는 열몇편의 영화를 동시에 찍을 수밖에 없던 시절. 지금의 ‘제작부’와 다르게 그때의 ‘제작부’는 힘깨나 쓴다는, 이른바 ‘주먹’들이었다. 배우를 차지해야 그날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제작부들간에 벌어지는 몸싸움은 살벌했다. “주먹 센 놈이 무조건 주인공을 데려오는 거야. 쌍말이 오가고, 차 앞에 벗고 드러눕고, 난리도 아니었어.” 주연배우 없이는 촬영을 못하니 단역배우들까지 합세해 팔걷어붙이고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고래싸움에 새우등만 터진 거지. 그렇게 한바탕하고, 이기면 다행인데 지면 새벽 6시부터 수염붙이고 기다렸던 게 다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야. 다른 촬영약속도 못 지켜서 욕은 욕대로 먹고…. 기분이 참 더러워. 촬영도 못하고 분장 지우다 보면 이걸 왜 하나, 씁쓸하지, 슬프기도 하고….” # 1975년 제2남침용 지하땅굴 발견. 55일 동안 17명을 연쇄살해한 김대두사건. 박정희 긴급조치 제9호 선포,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 금지. TV 보급으로 영화제작 부진, 영화산업 위기. 이만희 <삼포가는 길> 작업중 45살 나이로 타계. 대학의 낭만을 그린 <바보들의 행진>제작, 그러나 한편에선 <영자의 전성시대>로 이어지는 호스티스영화 대량 생산. 누군들 외도를 꿈꾸지 않았으랴. “딴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 한편에 3천원 하는 출연료로는 살기가 빠듯했거든.” 그나마 받을 출연료도 제작자가 “다음에 줄게” 하고 도망가기 일쑤. 남산에 있는 녹음실까지 쫓아가 성우들 양해 얻고 후시녹음 스튜디오에서 기침소리, 잡소리 내가면서 방해해 억척스럽게 출연료를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쉰이 넘도록 해온 단역생활은 늘 죄없는 아내를 경제적인 가장역할로, 일터로 내몰았다. 생일날 미역살 돈이 없어서 시래깃국을 끓여 밥상을 차린 아내는 화장실 뒤에서 숨죽여 울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 웬만한 일에는 눈물 한번 안 보이던 사람인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울었을꼬.” 수유리 살 때는 잠시 집을 지어 파는 장사를 해봤지만, 집값 오를 때 집을 짓고 나면 팔 때는 갑자기 집값이 떨어지곤 했다. “운이 없었던 건지, 배우일을 계속하라고 그런 건지….” 잠시 배우일을 떠난다 해도 멀리 달아날 수가 없었다. “담배 같어. 끊는다 끊는다 하면서도 못 끊거든. 배우생활하다 다른 일한다고 나간 사람들 중에, 뭐 안 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10 중 8, 9는 다시 영화판으로 오더라고.” # 1985년 월드컵축구 32년 만에 본선 진출, 시험관 아기 국내서 첫 탄생. ‘5·23’ 미문화원 점거농성사건, <깊고 푸른 밤> 49만5천명 관객동원하는 기록수립. 하명중의 <땡볕> 베를린영화제 본선진출. <뽕> 촬영장에서 환갑을 맞았다. 감독이 특별히 차려준 환갑상 덕에 이미숙과 이대근의 술잔도 받고, 잡지에도 나갔다. “늙으니 좋은 날도 있더라고.” 영화가 뭐기에, 지옥 같은 생활고 속에서도 “낭만 하나 만으로” 고생을 감수하는 배우들은 모두 같은 맘이다. “한곳에 촬영이 끝났는데 돈을 안 줘. 그렇다고 다음 촬영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아. 처음엔 모두들 입이 댓발은 나왔지. 그렇게 다음 촬영장으로 ‘오시뗑’ 타고 포장도 안 된 길을 털퍽털퍽 가는데, 아무 말 없이 그렇게 한 15분쯤 달렸나…. 누구 하나 나지막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어. 그리곤 하나 둘, 나중엔 모두들 그 노래를 따라 불렀지. 오시뗑 위에서 웃고 구르며 장단까지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그땐 돈이고 마누라고 자식새끼고 머릿속엔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거야. 그런 낭만이랄까. 그런 거 없으면 배우 못했을 거야.” #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대기업 영화제작참여 본격화. 영화주간지 <씨네21> 창간. 한국영화의 시대극 제작이 뜸하고, 가족이 슬그머니 사라지기 시작한 뒤부터 일흔이 넘은 노배우에게 돌아올 수 있는 역은 그닥 많지 않았다. 배우생활 50년, 500편이 넘는 작품과 함께한 오랜 벗에게 영화는 제33회 대종상 특별연기상으로 그 고마움을 대신했다. 하지만 근 반년을 바쳤던 김호선 감독의 <애니깽>을 마치고 나니, 이젠 더이상 말을 탈 일도, 칼싸움을 할 일도, 상투를 틀 일도 없었다. “요즘 촬영장에 나가면 벙어리가 된 기분이야. <내 마음의 풍금> 찍을 때 왜 강주라고 전도연이 짝꿍, 그 아가 ‘밴또’ 가져다주는 할배 역을 했는데 전라도 고창에 있는 폐교에서 찍었어. 버스에서도 혼자 앉고, 숙소도 혼자 쓰지, 어려워서 그런가 애들이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해. 감독도 한참 어린 사람이고, 사실 우리 같은 단역들이야 촬영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게 낙인데, 이젠 얘기나눌 사람도 없어. 그나마 전조명이라고 촬영감독이 또래라서 다행이었지. 그이마저 없었으면 정말 벙어리된 것 같았을 거야.” 하지만 1967년 <망향천리>를 찍으며 처음 맺어진 임권택 감독과의 인연은 <축제>(1996)까지 이어지며 간간이 일감을 던져주었다. “임 감독하고 하는 촬영은 편해. 연출부들에게는 어떨는지 몰라도 우리한테는 절대 까다롭게 안 하거든. 게다가 그 촬영장에는 감독, 촬영감독, 배우들까지 또래들이 많아서 얘깃거리 나눌 사람도 많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나.” # 그리고 2001년 신사해. 32년 만의 폭설. 전국 극장수 600여개, 전국 인구 4686만명. 퇴계로(退溪路)와 명동로(明洞路) 사이, 도심지의 남쪽을 동서로 관통하는 길이 1900 m의 충무로(忠武路). 한때 극장과 영화사, 영화인들의 걸음으로 빽빽이 채워졌던 거리 곳곳에는, 배우를 꿈꾸며 상경한 촌 아가들이 하루아침에 배우가 된 믿지 못할 이야기와 영화를 말아먹고 빚쟁이에 쫓겨다니던 영화사 사장들의 사연이 피고 또 지고, 50년을 한결같이 기다리기만한 단역배우가 밤새 먹은 술로 토악질해댄 부산물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지고 또 말랐다. “영화라는 게 늘 기다림의 연속이지. 자기 찍는 거 얼마 안 돼도 계속 기다리는 거야. 연기란 게 주연만 중요한 게 아니거든. 잠깐 나와도 내 역할을 잘해내야 돼. 주연들이야 이번에 잘못하면 다음 작품에서 만회하면 되지만, 우리는 한번 잘못하면 다시는 아무도 안 불러주거든.”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의 동네친구로, 수도하는 제자로, 뒤를 쫓는 형사로, 혹은 곱사등이 내시로, 최은희의 인력거를 끌던 손은 정윤희에게 편지를 전하고 전도연에게 도시락을 건네며 그렇게 늙어갔다. 이제 자신보다 늦게 태어난 대한극장이 문을 닫고, 화려한 멀티플렉스로의 변환을 꿈꾸는 거리에 서서, 마지막으로 누렇게 된 사진첩을 건네며 그는 작은 바람 하나를 내비쳤다. “이 사진을 꼭 좀 실어줘, 이때는 주인공이었거든. 연극할 때는 솔찮이 주인공을 했는데….” 인생의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극단 시절, 주인공으로 섰던 연극 <동명성왕>의 사진을 부탁하는 그는, 마지막 커튼콜을 바라는 무대 뒤 배우 같았다. 한국영화의 흐름에, 그 바람에 온몸을 내맡긴 깃발 같은 삶. 정성들여 키운 자식을 사회로, 세계시장으로 내보내면서도 몸종처럼 뒤쪽에 물러앉아 부모대접을 못받을지라도, 걱정마세요, 자식들은 기억합니다. 누가 자신을 키웠는지를. 글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사진 손홍주 기자 lightson@hani.co.kr

잉마르 베리만 영화제 - <어두운 유리를 통해>

Sasom i en spegel/ Through a Glass Darkly 1961년, 출연 군나르 비외른스트란드, 하리엣 안데르손 “인간과 신 사이의 관계를 다루지 않는 드라마는 흥미가 없다.” 유진 오닐의 이 말을 자주 인용했고 또 그것에 동의했던 베리만은 60년대에 들어오면서 신과 믿음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천착하는 일련의 영화들을 만든다. 흔히 ‘신앙 3부작’이라고 불리곤 하는 그 영화들은, 베리만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믿음의 ‘위축’이라는 주제로 한데 묶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두운 유리를 통해>는 <겨울빛>(1962)과 <침묵>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3부작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작가인 아버지 다비드, 그의 딸 카린과 남편 마르틴, 그리고 카린의 남동생 미누스, 휴가차 외딴 섬을 찾은 이 네명의 가족에게만 전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는 영화 <어두운 유리를 통해>는 우선 가족 드라마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베리만의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일단 이 가족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아버지 다비드에게로 돌려야 할 것처럼 보인다. 작가로서 사회적 삶이 중요한 그에게 가족이란 오히려 소원한 것일 뿐이다. 영화는 카린의 정신병이 재발하는 순간을 계기로 이 어긋난 가족에 대한 드라마 위에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덧씌운다. 치유가 불가능한 정신병에 린 카린은 이제 자기 몸에 신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신은 고통을 동반하는 존재라는 것일까? 어쨌든 베리만은 카린의 ‘붕괴’ 속에서 치유력이 없는 믿음이 붕괴하는 것을 본다. 그리고는 영화의 말미에 가서는 다비드의 입을 빌려 태연스럽게 신에 대한 단순한 ‘진실’ 하나를 이야기한다. 신은 사랑이며 사랑이 곧 신이라는 것을. 바로 이 순간은 이런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들 미누스에게 다비드가 먼저 말을 건 것이다! 베리만의 이토록 친절한 과잉설명은 구원을 바라는 그 자신의 바람이 너무나 강렬한 탓이었을까?

한국영화 퇴행징후 5가지

죽음에의 집착, 지워진 가족, 강박적 유머, 가학과 엽기 ■최근 한국영화에 만연하는 퇴행의 코드들 의아스러운 점은 갑자기 한국영화가 빈곤해져 버렸다는 점이다. 1998년에 나온 화제작들의 목록만 적어봐도 상황은 너무 명료해진다. <강원도의 힘><조용한 가족><여고괴담><기막힌 사내들><퇴마록><정사><처녀들의 저녁식사><아름다운 시절><미술관 옆 동물원>. 대부분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문제는 흥행성적이 아니다. <강원도의 힘>만 빼면 놀랍게도 모두 신인의 데뷔작인 이 영화들은 나올 때마다 관객과 비평가 모두에게 각각 다른 의미지만 발견의 기쁨을 선사했다. 신인의 비중은 다소 줄었어도 1999년에도 이런 추세는 지속된다. <박하사탕><반칙왕>으로 떠들썩했던 2000년 상반기가 지나자 갑자기 어두워졌다. 여름부터 더 크고 더 많은 영화들이 쏟아졌지만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외하면 많은 사람들 입에 회자된 화제작도, 발견의 기쁨을 준 문제작도 찾기 힘들어졌다. 무엇보다 장르영화의 후진이 너무 빨리 찾아왔다. 지난 여름의 공포영화 네편은 하나같이 <여고괴담>이나 <조용한 가족>의 재미에도 만듦새에도 미치지 못했다. <싸이렌><리베라 메><단적비연수> 같은 대작들도 줄을 이었지만, 어느 것도 <퇴마록><쉬리><유령>의 대중성과 개척자적 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올해 소개된 <천사몽><광시곡>을 나란히 놓으면 암담할 지경이다. 가을부터 소개된 멜로드라마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다. <정사><처녀들의 저녁식사><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이어진 1998년의 다양한 개성의 멜로에 비하면 최근의 멜로영화들은 이야기의 풍성함에서도 연출의 창의성에서도 한참 뒤떨어진다. 물론 상황 탓일 수도 있고 단기적 부진일 수도 있다. 거장이라도 걸작으로만 필모그래피를 채우진 않는 법이니, 특정한 감독이나 프로듀서를 탓할 일도 아닐 것이다.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영화들이 일종의 정신적 퇴행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나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유령>은 매우 국수적이고 극우적인 이데올로기를 드러냈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적 한계에 도전했다는 점과 함께 남성 캐릭터 영화의 한 경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최근 한국영화들의 진짜 문제점은 정신적 퇴행의 징후들이 이야기 및 캐릭터의 빈곤화와 긴밀하게 결부돼 있다는 사실이다. <씨네21> 289호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최근 한국영화가 사소한 것에 대한 질문, 죽음에 대한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혀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의 발언은 이런 의구심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현실과 대면할 의지의 상실이 내러티브의 빈곤을 낳고, 그 빈곤을 메우기 위해 죽음이라는 극단적 모티브를 남용하거나 사소한 것에 매몰된다는 것이다. 정성일씨가 지적한 두 가지 요소 외에도 가족의 부재, 강박적 유머, 가학과 엽기가 정신적 퇴행성과 빈곤한 내러티브의 접점에 있는 요소들이라는 점에 의견이 모아졌다. 이 요소들은 갑자기 나타난 것은 물론 아니지만, 최근 한국영화에 집중적이고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섯 가지 요소들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으며 어디서 비롯됐는지 살펴보는 일은 오늘의 한국영화가 놓인 자리를 바라보는 하나의 준거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여기 실린 글들이 단정적 비판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제기로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다. 대중영화에 고도의 예술성이나 특정한 사회적 책무를 요구하는 일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만 좀더 풍부하고 좀더 다양한 개성의 영화들을 보고 싶어하는 건, 영화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영화는 현실에 보다 다가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평론가 박평식씨의 말대로 ‘현실’처럼 매력적인 단어는 많지 않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