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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스물아홉의 성장통, <파니 핑크>

EBS 10월13일(토) 밤 11시 서른으로 가는 길목, 스물아홉살의 여인들은 왜 그토록 불행한가? 아니, 스스로 기꺼이 불행을 껴안고 서른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순간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떠는가? 일찍이 누군가는 서른에 이미 잔치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누군가는 심장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것 같다고 고백했고, 또 누군가는 9회말 투아웃이라고 외쳤다. 그뿐인가. 요즘처럼 책 안 읽는 시대에도 불티나게 팔리는 ‘여성자기계발 백서’는 여자 나이 스물아홉에서 서른을 인생의 전환기, 무언가 대대적인 변혁을 실행해야만 하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이러한 무서운 가르침 앞에서 언니들은 어이없게도 십대 소녀 시절을 향수하거나, 세상을 냉소하며 무력감에 빠지거나, 서른 이후에 모든 것을 걸며 미친 듯이 자기투자에 몰두한다. 아무튼 스물아홉 먹은 여인은 스물아홉 번째 해를 살지 않고 과거를 살거나 미래를 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 모든 건 상술이다. 텔레비전과 책과 글들은 스물아홉의 불행을 창조하고 판매한다. 서른 문턱의 불안한 언니들은 최고의 소비자다. 서두가 길었지만, <파니 핑크>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난데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항 검색원 파니 핑크는 스물아홉살의 독신녀다. 허름한 아파트에서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견디어가는 그녀는 삶을 밀어내고, 죽음의 순간을 연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리카 출신의 심령술사인 오르페오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자기 앞에 다가올 사랑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 그러나 섣부른 희망에 사로잡힌 파니에게 운명은 사랑이 아니라 고독을 안겨준다. 이때부터 삶의 끝자락에서 고독에 몸서리치는 두 사람, 파니와 오르페오의 우정이 시작된다. 파니의 슬픔과 성장이 에디트 피아프가 들려주는 절절한 선율의 고백으로 감싸질 때, 분명 거기에는 서른이라는 한 세계에 대한 불안과 동경이 있다. 하지만 서른이라는 나이 자체에 내재된 자기연민, 삶에 대한 유난한 두려움은 어쩌면 반복되는 일상의 단절과 도약을 꿈꾸는 자들, 그 꿈을 파는 자들이 만들어낸 서른이라는 ‘환상’일 따름이다. 생각해보라. 서른이 다른 시절보다 뭐가 그리 더 대수로운가.

<야경>으로 부산 찾은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세계

장 피에르 고랭의 표현을 빌자면 영화의 역사에는 두 종류의 영화가 존재한다. 그 하나는 ‘이디엄의 영화’로 이는 기존의 관습적 언어를 재구성해 테크닉을 활용, 삶의 갈등을 표현하고 감동을 만들어내는 영화다. 다른 한 편 ‘그래머의 영화’가 있다. 영화의 문법, 영화 언어의 문제를 고민하는 영화로 이는 어떻게 영화에서 새로운 창조적 언어가 가능할 것인지, 세계를 향한 이미지가 어떻게 창조될 수 있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다소 이분법적으로 말하자면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업방식은 후자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영화의 문법을 사유하는 그리너웨이의 작업방식을 고려할 때 21세기에 그가 만들어낸 삼부작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은 지극히 야심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차이는 있지만 고다르, 혹은 크리스 마르케처럼 그리너웨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20세기의 문명사를 결산, 혹은 분류하고자 했다. 이 연작은 멀티미디어적인 기획으로, 가령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은 극장용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미디어들(텔레비전, DVD, CD-롬, 책, 웹사이트 등)을 통해 상영, 전시되면서 관객들의 상이한 관람체험을 만들어냈다. 모험은 그런데 늘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다. 그가 구상한 멀티미디어의 모든 관문을 통과한 관객은 아주 적을 것이고, 그래서 그가 구사하는 ‘그래머의 영화’는 21세기의 항해자로서의 관객을 여전히 가상적인 관객으로 남겨 놓았다. 종종 그리너웨이의 열광적인 지지자들과 만날 때가 있는데, 사실 그들 대부분은 그림을 전공하거나 미디어연구자들로 영화광들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영화광들은 그의 최근 작품에 종종 난색을 표하곤 한다. 가령 <프로스페로의 서재>나 <마콘의 아이>에서 신비스럽고 매혹적으로 지식과 종교의 남용에 대해 비판했고, 일본문화에 관한 에로틱한 시각이 담긴 <필로우 북>에서 디지털 시대의 영화가 동양적인 서예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던 그의 작품은 분명 흥미로웠다. 마치 이 시대의 디드로처럼 수학, 과학, 건축, 회화, 영화의 역사를 거슬러가며 지식과 종교, 섹스와 로맨스를 표현하며 시대를 넘나드는 사유를 보여준 지난 세기의 그리너웨이의 작업은 난해하기는 했지만 시각적 황홀을 제공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21세기의 그리너웨이의 모험은 좀 남달랐다. 그의 작업은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멀리 간 시도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영화를 창조하고자 한 그의 야심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의 작업은 이미 영화의 경계를 훌쩍 넘어가버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너무 영화와 멀어졌다고 지나치게 푸념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리너웨이가 제기하는 질문과 모험이 영화의 경계를 벗어났다기보다는 그것을 보다 근본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리너웨이는 지난 세기의 영화가 너무 스토리텔링에 치우쳐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영화에서 여전히 이야기를 중시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소설을 쓰라고 충고한다. 이제 텍스트에 근거한 영화가 아니라 이미지를 사고하는, 인터랙티비티와 멀티미디어 환경을 활용하는 영화들이 새로운 세기에 더 적절하다는 것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에는 새로운 영화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그는 천천히 수를 헤아린다. <차례로 익사시키기>(87)에서 이미 소녀는 줄넘기를 하며 별의 수를 헤아렸다. <털시 루퍼의 여행가방>에서는 ‘92’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그러면서 아흔 두 개의 여행 가방이 보따리 풀리듯 열린다. 92는 우라늄 원자기호로 그리너웨이는 20세기의 역사가 우라늄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마찬가지로 아흔 두 개의 가방에 담긴 물건들에 20세기의 역사가 숨어있다고 한다. 수를 세고, 알파벳을 호명하는 것, 그것은 세계의 질서, 사물의 형식, 영화의 구조를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그렇게 그리너웨이는 아흔 두 개의 관념들과 인물, 만남들, 모험을 거쳐 미디어를 관통하면서 21세기의 영화를 새롭게 사고한다. 그의 작품은 한 마디로 역사와 픽션, 미디어 매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이자 백과사전적이고 신화론적인 거대기획이었다. 그가 이제 렘브란트의 그림에 담긴 비밀스런 이야기를 들고 부산을 찾았다. 이제 다시 흥미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하나, 둘, 셋.., 질문의 숫자를 함께 세어보자.

[외신기자클럽] 대륙의 새로운 빛

중국은 2007년 400편이 넘는 장편영화를 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숫자는 단지 정부 영화부처에서 상영인가를 받은 영화들, 즉 극장 배급을 목적으로 한 합법적 영화들만을 센 것이다. 텔레비전용 영화와 HD영화, 무인가 영화들까지 포함한다면 제작편수는 적어도 1.5배는 더 많아질 것이다. 2001년 중국은 단지 71편의 인가 영화를 제작했다. 펑샤오강의 <거장의 장례식>, 장위안의 <사랑해>, 황지엔신의 <엄마는 갱년기>, 장양의 <지난날> 같은 인정받는 감독들이 만든 손꼽히는 영화들이 이때 나왔다. 낮은 제작수준에도 불구하고 이해는 새로운 세대의 흥미로운 감독들이 나온 주목할 만한 해였다. 카오바오핑의 <절대적 감정>, 리지시안의 <왕수선의 여름>, 루추안의 <사라진 총>, 멩치의 <눈오는 날>, 텡후아타오의 <100>, 장이바이의 <스프링 서브웨이> 등의 데뷔작이 나왔다. 2001년에 촬영을 마쳤지만 2002년에야 상영인가가 난 작품으로는 천다밍의 <맨홀>, 마리웬의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이의 죽음>, 주징레이의 <아버지와 나> 같은 작품들이 있다. 지난 몇년간 6배로 성장한 영화산업은 외국 감독들과 새로운 재능있는 신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어권 영화는 외국인 감독들은 우선적으로 홍콩과 대만에서 수급한다. 2001년 대만의 추옌핑과 홍콩의 서극, 마초성, 종주가 등이 공식적인 공동제작물의 감독이 되기도 했다. 중국과의 공식적인 공동제작 수가 지난 6년 동안 붐을 이루었을지 몰라도, 이런 성장의 대부분은 국내에서 성장한 인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심지어 다작을 하는 홍콩 영화감독들도 400여편의 영화에 자신의 자취을 남기긴 힘들다. 그리고 보수적인 홍콩 영화업계는 “수출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들을 그동안 키우지 않았다. 베이징과 상하이에 계속해서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지난 2년간 만들어진 중국영화의 작은 일부밖에 보지 못했다. 한 나라 영화의 10% 이하만이 극장개봉을 하면 우회로를 통해 DVD를 받아보는 것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1년 이상이 지난 뒤에야 새로운 영화를 보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2007년 동안 주목할 만한 데뷔작들을 충분히 보았고, 이때가 2001∼2002년 이후 중국의 새로운 감독들의 가장 생기 넘치는 시기라고 믿을 수 있게 됐다. 장우신의 <애정적 치아>, 후야오치의 <텅 빈 도시>, 왕웨이의 <타푸> 등 최근의 영화들이 필자를 자극시켰다. 그외 충실한 데뷔작으로는 장멩의 <운 좋은 개>, 레온양의 <콜드 프레임>, 인리촨의 <공원>이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제작자들도 2001∼2002 세대에 투자했고, 그들 중 여러 명은 5년 동안 광야를 헤매다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 기회를 갖게 됐다. 카오바오핑은 생동감 넘치는 블랙코미디 <트러블메이커>를, 천다밍은 앙상블드라마 <계건부녕>을, 그리고 장이바이는 거의 연속으로 두편을 찍었다. 그동안의 불모지 같은 시기가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 듯하다. 카오바오핑은 주목받고 있는 로맨틱코미디 <사랑과 죽음의 등식>을 찍고 있고, 천다밍은 잘 알려지지 않은 홍콩의 고전 한편을 흥미롭게 리메이크하고 있으며, <공원>의 인리촨은 이미 <애정적 치아>의 재능 넘치는 주연 여배우를 기용해 두 번째 장편을 찍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를 무시한 영화제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10년 동안은 본토 중국영화에 대해서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호들이 보인다.

[미드의 배우들] 내 인생 제8의 전성기는 TV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의 TV스타 조지 클루니와 짐 캐리는 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할리우드에 입성, 영화인으로 완벽하게 환생했다. 21세기 ‘미드’의 전성시대에서는 그 반대 공식이 더 유효하다. 시시한 영화배우에서 하루아침에 스타로 돌변한 <위기의 주부들>의 테리 해처, 드라마 두편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데미지> <쉴드>의 왕성하고 우아한 노년 글렌 클로즈, 여성적 욕망의 아름다운 초상 홀리 헌터의 첫 TV드라마 <세이빙 더 그레이스>의 소식까지 담지 못하는 게 아쉽다. 현재 미국 TV시장에서 가장 열렬한 대접을 받고 있는 영화배우 6인의 제8의 전성기 스토리. 드라마의 품에 안긴 할리우드의 탕아들 <24>의 키퍼 서덜런드 & <두 남자와 1/2>의 찰리 신 키퍼 서덜런드와 찰리 신은 이른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브랫팩’ 멤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코폴라의 <아웃사이더>(1983)나 조엘 슈마허의 <세인트 엘모의 열정>(1985) 같은 데 끼진 못했다. 그러나 키퍼 서덜런드는 <스탠 바이 미>(1986)와 <로스트 보이>(1987)를 통해 소년 갱 리더 타입의 금발의 반항아로 주목받는 중이었고, 찰리 신은 <플래툰>(1986)을 향한 언론과 평단의 열렬한 지지 속에 커리어 순항을 예고받은 터였다. 두 사람은 (이제는 별로 기억되지 않는) 브랫팩 무비 형태의 서부극 <영 건>(1988)에 나란히 출연해 상업적 성공을 거둔 뒤 맷 딜런과 로브 로, 톰 크루즈,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브랫팩 군단에 합류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술과 파티, 여성편력이다. 각각 도널드 서덜런드와 마틴 신을 아버지로 둔, ‘배우 가문’의 공통분모도 지닌 두 아들들은 90년대 들어서면서 문화란보다 가십난의 단골 손님이 되어 부모들의 속을 썩였다. 16살에 캐나다 온타리오의 집을 출가, 19살에 이미 33살의 여성 프로듀서와 결혼했다가 딸까지 둔 키퍼 서덜런드는 <유혹의 선>(1990)에서 만난 줄리아 로버츠와 결혼을 엿새 앞둔 어느 날, 클럽에서 한 여자를 만나 잠을 잤던 사실이 들통나 파경을 맞았다. 런던 출생인 키퍼 서덜런드는 4살 때 이혼한 자신의 아버지가 영화배우인지 18살 때까지도 몰랐다고 한다. 아버지와 상관없이 영화배우의 길에 들어섰던 그는 연기 커리어가 풀리지 않자 연출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1993년에 TV영화 1편, 1995년에 TV드라마 에피소드를 1편 연출한 뒤 1997년 <진실과 결과>라는 장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악평을 얻고 쫄딱 망했다. 키퍼 서덜런드는 로데오 선수가 되겠다고 할리우드를 떠났다. 아버지를 보며 연기자의 꿈을 키운 찰리 신은 알코올중독과 마약 복용을 상습해오다가 1990년 여름, 그의 가족들이 거의 잡아넣다시피해서 중독자 재활원에 들어가 1달을 지냈다. 그뒤 1년간 술과 약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굳게 지킨 다음, 정확히 366일째에 니콜라스 케이지의 집에 놀러가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고, 아내를 두고서 다른 여자와 27번의 매춘을 해서 고소 및 이혼을 당하고, 여자친구의 팔에 우발적으로 권총을 쏘고, 이름 모를 여자로부터 물리적 폭력을 이유로 고소당했다. 가슴팍에 ‘15분 안에 집에 들어간다’는 글귀를 문신으로 새겨놓고 날마다 술과 약에 절었다. 그는 재활원을 집 드나들듯 했다. 찰리 신은 키퍼 서덜런드처럼 제 발로 할리우드를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와 진지하게 일 얘기를 하려는 사람이 할리우드에 없었다. <못말리는 비행사>(1991), <못말리는 람보>(1993), <머니 토크>(1997) 등의 패러디코미디나 액션물을 하며 찰리 신은 90년대를 보냈다. 2000년, 마침내 ‘멀쩡해’진 찰리 신은 TV시트콤 <스핀 시티>의 새 주연으로 발탁됐다. 는 4년 전 마이클 J. 폭스 주연으로 인기를 끌어모았던 이 시리즈의 ‘재활’에 사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브랫팩의 또 다른 멤버이기도 했던 폭스의 대체재로서 재기의 기회를 얻은 찰리 신은 자신의 본명을 쓴 캐릭터를 통해 그의 타고난 능글맞은 코미디 연기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는 이 시트콤을 2시즌, 33개 에피소드에서 종결시키고 새로 기획 중인 드라마에 찰리 신을 투입했다. <두 남자와 1/2>(Two and a Half Man)은 그렇게 탄생했다. 매사에 무책임하고 여자나 밝히기 좋아하는 노총각이 집에 조카를 들이면서 벌어지는 이 가족적인 코미디는 ‘누군가의 대신’이 아닌 찰리 신 본연의 캐릭터로부터 출발한 드라마다. 캐릭터의 이름은 당연히 찰리. 현재까지 ??시즌이 이어진 이 시리즈의 전선은 당분간 이상무다. 지난해 그는 에피소드당 35만달러의 조건으로 출연 연장계약을 맺으며 미국 코미디 시리즈 사상 최고의 개런티를 받은 배우가 됐다. 한편 <폭스TV>는 2001년 9·11이 터지고 두달도 채 되지 않은 2001년 10월의 마지막 날, 허구의 기관 ‘대테러진압팀’(Counter-Terrorism Unit)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 암살 계획을 막는다는 가상의 드라마 <24>의 첫화를 공개했다. 가 <스핀 시티>에 찰리 신을 기용했을 때처럼, <폭스TV>도 키퍼 서덜런드의 기용을 일종의 도박이라 생각했다. 방영 직전 9·11이 터진 것도 우려의 조건이었는데, 속칭 ‘리얼타임 드라마’, 잭 바우어 형사의 24시간을 24개 에피소드로 만든 이 시리즈는 새로운 컨셉과 재미로 호평을 얻고 인기의 급물살을 탔다. 방영 2년 만에 영화화 이야기가 나왔다. 1998년 US 팀 로핑(US Team Roping) 챔피언십에서 보란 듯이 우승을 차지한 다음 순전히 로데오 때문에 사들였던 110만평짜리 목장과 소, 말을 모두 팔아치우고 LA로 돌아온 키퍼 서덜런드는 냉철하고도 목표를 위해서라면 범법을 마다하지 않는 악당 같은 형사 역할로 2002년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까지 매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2005년 제외)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권총 사용이 합법적인 세계에 편입되었을 뿐 <24>에서 41살의 그는 여전히 냉온을 오가는 금발의 반항아처럼 매력적이다. 키퍼 서덜런드는 자신의 첫 드라마 <24>를 찍는 5년간 하루 14시간씩 일주일에 6일을 촬영장에서 지냈고, 8시즌까지 계약을 연장하며 3시즌에 4천만달러라는, 미 드라마 사상 최고 개런티를 받기에 이르렀다. 2002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 키퍼 서덜런드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찰리(신)의 기분이 이해가 가는군요. 아랫도리 감각이 거의 없는데요.” 이렇게 말한 까닭은, 그날 그 자리에서 찰리 신이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복귀작 <스핀 시티>로 평생 첫 주연상의 영예를 얻은 찰리 신의 수상 소감은 이랬다. “이거 약도 안 먹고 취한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 빛을 본 근사한 중년의 매력 의 데이비드 카루소 & 의 게리 시니즈 제리 브룩하이머는 알고 있다. ‘반장님’이 멋있어야 수사팀이 먹고산다는 사실을. 누가 뭐래도 시리즈의 주인공은 중후하고도 명석한 중년의 카리스마, 바로 반장님들이다. 특히 스핀오프의 반장님들, 호레이쇼 케인 역의 데이비드 카루소와 맥 테일러 역의 게리 시니즈는 이전에 잠시 얻었다 꺼진 인기의 불씨를 이곳에서 다시 피우며 근사한 중년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두 배우는 생애 결정적 스타덤에 오른 시기가 우연찮게 겹친다. 데이비드 카루소는 1993∼94년에 방영한 TV시리즈 <뉴욕경찰 24시>를 통해 스타가 됐고, 게리 시니즈는 같은 시기 개봉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1994)를 통해 전세계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레이쇼 반장님의 화려한 카리스마와 맥 반장님의 침착하고 다정한 카리스마가 서로 다르듯, 배우로서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드라마의 합류 배경도 판이하다. 데이비드 카루소는 1956년 뉴욕 태생이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아일랜드인 어머니, 전형적인 미국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던 그는 26살 때 본격적으로 배우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13년 만에 찾아온 스타덤이 바로 뉴욕 경찰들의 이야기를 다룬 <뉴욕경찰 24시>였다. 마흔에 가까웠던 카루소는 이 드라마를 계기로 이틀마다 들어오는 영화 출연 제안에 마침내 결심을 세우고, 제작자 및 동료 배우들과 모두 불화를 빚은 채 시리즈를 떠났다. 2002년 (CSI: Miami)로 돌아오기 전까지 TV영화를 포함한 11편의 영화에서 그는 단 한번도 재미보지 못했다. 첫 영화 <이중노출>(Kiss of Death, 1995)과 같은 해 <제이드>로 받은 상은 래즈베리 어워드의 ‘최악의 뉴스타’상. 형편없는 신세가 돼버린 그 시절에 카루소는 한 인터뷰에서 “<배트맨과 로빈>도 하고 도 하는 조지 클루니처럼 나도 영화와 TV를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한섞인 변명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작 그의 롤모델 조지 클루니는 <배트맨과 로빈>(1997) 홍보 때 카루소의 영화쪽 진출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답했다. “불쌍한 친구. 얼마나 바본지. 그 문제를 갖고 같이 얘기도 많이 했건만. 전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로 다시 궤도에 오른 데이비드 카루소는 쉰을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매력적이다. 적당히 단추를 풀어헤친 셔츠, 바람에 흩날리는 옅은 금발, 마이애미 해변을 응시하는 무심하고 우울한 푸른 눈빛. 그리고 카루소는 겸손하게 말한다. “물론입니다. 이제 다시는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아요.” 데이비드 카루소보다 1살 위인 게리 시니즈는 할리우드 배우이기 전에 영향력있는 시카고 연극인이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재미삼아 본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때문에 꿈을 세운 게리 시니즈는 고교 졸업 직후 친구들과 고향 시카고에 극단 ‘스테펜볼프 시어터 컴퍼니’를 차렸다. 2번의 토니 남우주연상 후보(1990, 2001) 및 1번의 연출상 후보(1991) 지명, TV시리즈와 영화 연출, <퀵 앤 데드>(1995) <아폴로13>(1995), <스네이크 아이>(1995), <그린 마일>(1999), <미션 투 마스>(2000), <휴먼 스테인>(2003), <포가튼>(2004) 등의 연기 커리어를 모두 종합해볼 때 게리 시니즈는, 스타덤에 목말랐던 데이비드 카루소와 달리 직업의식과 열정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이어온 쪽에 가깝다. 어느 기사에서 “상냥한 말씨를 가진”(sofe-spoken)이라고 묘사된 게리 시니즈는 2004년 초 제작팀이 앤디 가르시아와 레이 리오타에 이어 스핀오프 트리트먼트를 자신에게 들고 찾아왔을 때 “주인공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달라”는 조건으로 사인을 했고, 26년 전 연극무대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세 아이들 곁에 머물 수 있게 LA에서 촬영하자는 조건도 함께 걸었다. 맥 테일러 반장은 배우 자신의 이런 진지하고 섬세한 성격을 고스란히 닮아, 깐깐하고 부리부리한 외모와 달리 따뜻한 속내를 지녔다. 드라마의 분위기도 시리즈 중 가장 감성적이다. 요즘도 군대를 방문하면 군인들에게 “어이, 댄 중위!”(<포레스트 검프>에서 시니즈가 맡았던 베트남 상이용사의 이름)라는 말을 듣는다는 게리 시니즈는 (CSI: NY)을 시작하던 해에 이라크아동돕기 단체를 만들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그곳의 학교들을 찾아갔다. 군인들이 어설프게 깔아놓고 간 마룻장 위에서 종이와 연필도 없이 수업 듣는 아이들을 위해 게리 시니즈는 베이스 기타를 잡고 지인들과 함께 록밴드 공연을 열었다. 밴드 이름은 ‘댄 중위 밴드’였다. 평범함을 입고 돌아온 개성파 배우들 <고스트 앤 크라임>의 패트리샤 아퀘트 & <보스턴 리걸>의 제임스 스페이더 검사의 꿈을 지닌 세 아이의 엄마. 서른 넘어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률회사에 들어간 앨리슨 드부아의 이야기 <고스트 앤 크라임>(Medium)은 실존하는 동명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리즈다. 원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영매사 존 에드워드의 토크쇼와 유사한 형식으로 기획되었는데 파라마운트 텔레비전이 이를 드라마로 수정했고, 그녀의 에이전트는 이것을 전달하며 말했다. “재미있는 게 들어왔어. 근데… TV물이야.” <트루 로맨스> <에드 우드> <로스트 하이웨이> <하이-로 컨트리> <비상근무> <휴먼 네이처> 등 작품성이 고려된 독특한 영화적 세계를 천천히 밟아온 패트리샤 아퀘트는, 그마저도 더디어진 마흔살의 무렵에 <고스트 앤 크라임>의 내용 자체에 흥미를 느껴 수락했다. “TV라고 해서 가린 적은 없다. 평범한 여성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 사람은 우리 옆집 사람이랑 진짜 비슷해’라고 느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마침 그녀가 둘째아이를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은 그런 일상을 연기하고픈 욕구를 더 부추긴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니콜라스 케이지와의 격했던 결혼생활 6년을 정리하고 <휴먼 네이처>(2001)에서 만난 새 남편 토머스 제인과의 사이에서 그녀는 아이를 가졌다. 드라마 제작자가 “그래도 살을 좀 뺐으면 싶다”고 말했을 때 단칼에 거절했다. “주인공이 아이 셋이나 키우면서 뒤늦게 공부 시작한 아줌마잖아요. 그런 여자가 살 빼고 멋있는 옷 입고 다닌다는 게 말이 돼요?” 출산 뒤 더욱 불어나고 있는 몸을 관리하지 않은 이유도, 앨리슨 드부아가 특별한 능력을 지녔음에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꾸려가려고 애쓰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고스트 앤 크라임>이 빚어내는 진짜 기적의 순간은 그래서 앨리슨이 영매 능력으로 범인의 뒷덜미를 턱 잡을 때가 아니라, 할 말 가득한 죽은 영혼들을 떠올린 그녀가 자기 가족을 더 소중히 지키고자 애쓸 때다. 가수 톰 웨이츠의 부인이 “마치 아프로디테의 분신 같다”고도 말했던 신비한 여배우 패트리샤 아퀘트는 여전히 그 영혼은 비범하되, 아늑하고 소박한 가정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40대를 문열었다. 가 제임스 스페이더에 표한 우려는 좀더 노골적이었다. <보스턴 리걸>(Boston Legal)과 이것의 모체인 <보스턴 저스티스>(The Practice)의 기획자 데이비드 E. 켈리의 말을 옮기면 이 정도다. “우리가 그 사람 이름을 꺼냈더니 방송사 간부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더라.” 스페이더는 아퀘트보다도 더욱더 TV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긴 코에 음흉한 눈빛을 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크래쉬> <세크레터리> 등에 나와 마약 밀매하고, 채찍 들고 ‘SM 플레이’에 심취한 백인 남자를 법률회사의 변호사들 이야기 주인공으로 쓴다니. 물론 켈리에게도 제임스 스페이더가 1순위는 아니었다. 1997년부터 시작된 드라마의 예산을 가 어느 날 절반으로 깎는 바람에 오리지널 캐스트 6명을 갈아치우면서 내놓은 2안이었다. 켈리의 안목에 보답이라도 하듯, 스페이더는 <보스턴 저스티스>에 출연하자마자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샌님처럼 콧방귀를 뀌며 쩨쩨한 한마디를 날리다가 금세 젠틀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돌변하는 앨런 쇼어의 <보스턴 저스티스>는 고스란히 <보스턴 리걸>로 이어졌고, 스페이더는 올해 에미 시상식에서 개인 통산 3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강력한 수상후보 제임스 갠돌피니를 제친 결과. 스페이더는 부시 대통령 부자가 다닌 보스턴의 고급사립학교 필립스 아카데미를 다녔으며 어린 시절 아버지와 시를 읽고 할아버지와 희곡을 낭독한 예술적인 엘리트였다. 동시에 필립스 아카데미를 11학년에 자퇴, 연기를 하겠다고 뉴욕으로 넘어가 똥거름 주기, 마룻바닥 닦기, 트럭 운전사, 건물 경비원 등의 일을 하며 돈을 번 청춘이기도 했다. 이 묘한 인생의 양면. 앨런 쇼어의 이중적 면모보다 어느 면에선 더 흥미롭다.

[미드의 배우들] 드라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스타들

필생의 배역은, 배우라면 누구나 꿈꾸지만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행운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 미국 드라마 열풍 속에 ‘필생의 배역’을 만나 인기를 누리는 미드의 배우 7명을 소개한다. 드라마의 인기가 오롯이 배우에 기대 있다고 하기엔 비약이 있지만, 이들 없이는 드라마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배우들이 누리는 지금의 명성 뒤에는 1%의 행운을 만나게 한 99%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미스 어글리: <어글리 베티> 아메리카 페레라 ‘못생긴 베티’는 45분간의 분장으로 태어난다. 제작진이 스타일리시하다고 입을 모으는 아메리카 페레라가 가짜 눈썹과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파란 고무줄로 묶인 교정기를 물면, 사랑스러운 못난이 <어글리 베티>가 완성된다. 다양한 계층과 인종의 1400만 시청자를 사로잡음과 동시에 인터넷에 시청소감이 빗발치는 현상을 낳은 <어글리 베티>는 코미디지만 생생한 현실감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예쁜 얼굴에 주근깨 몇개를 그리는 것으로 못생겼다고 우기는 대신 진짜 ‘베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못난 외모 덕에 패션잡지의 편집장과 놀아날 염려가 없어 개인비서로 채용된 여자의 분투기는 성공적으로 시즌1을 마무리했고, 지난주 미국 현지에서 시즌2를 시작했다. <어글리 베티>의 제작자인 샐마 헤이엑이 직접 발굴한 다이아몬드 아메리카 페레라는 <청바지 돌려 입기> <진짜 여자는 굴곡이 있다> 등의 인디영화로 데뷔했다. 베티의 아름다운 내면이 외모에 가리지 않듯 숨길 수 없는 영민함과 열정을 가진 ‘진짜 여자’ 페레라는 “캐스팅을 위해 몸무게를 감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연예산업의 아찔한 기준을 조소한다. 또 “패리스 힐튼이나 니콜 리치를 평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하다면 그건 대단한 거다”라고 당찬 면모를 보인다. 아메리카 페레라는 그가 맛본 성공을 라틴계 여배우의 도약으로 읽는 시선을 거부한다. “라틴계 여배우의 성공으로 읽히지 않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베티가 노력한 것처럼 나 역시 그래야 한다”며 굳은 심지를 내비친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이 많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비극”이라고 말하는 아메리카 페레라와 <어글리 베티>의 성취는 “양키가 수호해온 낙천주의와 근면, 성실, 온화한 마음 등의 덕목으로 성공을 이룬 드라마”라는 <타임>의 찬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어글리 베티>로 골든글로브 TV시리즈 코미디 부문 여자연기자상을 수상한 페레라의 소감을 빌리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깊은 곳에 자리한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의 드라마다. 성공의 증거: 영국의 한 보험사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페레라의 미소에 10만달러를 보장했다. 미세스 뷰티: <위기의 주부들> 에바 롱고리아 대중이 에바 롱고리아에게 원하는 이미지는 하나다. <맥심>이 2년 연속 가장 섹시한 여자로 그녀를 추앙하는 것도 그 요구에 충실한 결과다. 남성 잡지의 표지에 사슬만 걸치고 등장해 화제가 됐고, 드라마에서의 그녀는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요가 중이거나, 카탈로그에나 나올 법한 속옷 차림으로 상대를 유혹한다. 최근 시즌4를 출항한 <위기의 주부들>은 미국 중산층을 배경으로한 블랙코미디로, 권태롭고 무료한 삶에 아슬아슬한 외도를 시도하는 전직 모델 가브리엘 솔리스는, 롱고리아에게 찾아온 최고의 기회였다. 에바 롱고리아가 못생긴 아이였다는 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가난한 부모가 해줄 수 없었던 성인식을 위해 ‘웬디스’로 나섰다는 것과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섯 군데에서 일해야 했다는 사실은 생경하다. <위기의 주부들>은 그녀의 서른에 찾아왔다. 잔치가 끝나는 나이에 축제를 시작한 롱고리아에게, 서른은 연기를 시작하며 그녀가 정한 성공의 시한이었다. “하지만 29살이 되도록 성공의 기미가 없어서 35살로 미뤘다.” 2007년 7월, NBA 스타 토니 파커와 결혼해 진짜 주부가 된 롱고리아는 가족의 중요성을 안다는 점에서 가브리엘보다는 브리나 리네트에 가깝다.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언니를 위해 발달장애자를 돕는 재단을 운영하고, 라틴계 미국인의 인권수호에 앞장서는 것 역시 뿌리를 아끼는 마음에 근거한다. 그녀를 소비해온 이미지가 단일하다고는 하지만 ‘섹시한 라틴 디바’라는 족쇄를 채우기에 롱고리아의 신체는 재능이 많다. 비교적 단신임에도 슬랩스틱이 자연스러운 그녀는 미간의 움직임만으로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하고 호소력 짙은 눈과 입술을 지녔다. <센티넬>의 정장 속 감춰진 육체를 안타까워했던 이들도 많겠지만, 능숙한 사격술로 키퍼 서덜런드와 마이클 더글러스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잠재성을 상기시킨다. 이제, 롱고리아 스스로 추녀로 변신하는 미녀 배우의 성공 공식 외에 새로운 루트를 발견해야 한다. 성공의 증거: 연예전문지 는 롱고리아의 결혼식 사진에 200만달러를 지불했다. 닥터 댄디: <그레이 아나토미> 패트릭 뎀지 때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법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시작이 <24>의 ‘땜빵’이었던 것처럼 시즌 휴지기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그레이 아나토미>의 운명도 그와 같았다. 종합병원 ‘시애틀 그레이스’에서 외과의를 꿈꾸는 인턴들의 이야기 <그레이 아나토미>는 첫 시즌 1850만명의 시청자를 모았고, 9월27일 시작한 시즌4의 첫회는 2100만명을 불러들여 주요 시청자그룹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패트릭 뎀지가 연기하는 외과의 데릭 셰퍼드는 부정한 아내에 대한 상처로 원 나이트 스탠드에 나선 첫회에 이미 TV 앞 여성들의 마음에 들어섰다. 극중 그의 별명인 ‘맥드리미’ 역시 꿈속에나 있는 남자라는 의미다. 깊고 푸른 눈매가 말해주듯 내성적인 성격의 패트릭 뎀지가 배우가 된 것은, 재미로 시작한 외발자전거 묘기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며 느낀 희열 때문이었다. 하지만 난독증을 겪은 그에게 연기는 도전이었다. “도전이 필요했다. 연기는 죽음과 대면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라앉거나 발버둥치거나 둘 중 하나다.” <러버보이> <캔트 바이 미 어 러브>로 틴코미디를 점령했던 20대의 뎀지는 코미디와 로맨스가 가능한 몇 안 되는 젊은 배우였지만, 27살 연상과의 실패한 첫 결혼처럼 달짝지근하지만 강단없는 연하남의 역할이 반복됐다. 이미지가 굳어질 것을 우려한 그는 TV로 무대를 옮겨 성숙한 역할에 도전했지만, 출연한 파일럿이 본방송으로 이어지는 행운은 따르지 않았다. “되는 일이 너무 없어서 영화조차 보기 싫었다”는 그의 90년대는 일견 암흑기로 보이지만, 역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채워진 필모그래피는 그가 영화를 쉽게 떠날 수 없었음을 대변한다. 2002년 <스위트 알라바마>에서 리즈 위더스푼과 호흡을 맞추며 다시금 스크린에서의 지평을 넓힌 뎀지는 <프리덤 라이터스>에서 힐러리 스왱크의 자상한 남편을 연기했고, 최근에는 디즈니의 <인챈티드>에 출연했다. 차기작은 <메이드 오브 어너>로 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한 남자가 그의 역할이다. 성공의 증거: 돈이 성공의 척도는 아니지만, 2006년 패트릭 뎀지의 출연료는 회당 20만달러로 뛰어올랐다. 닥터 압카: <하우스> 휴 로리 <하우스>는 의학 드라마지만 수사극의 모양새를 지녔다. 경찰서를 병원으로, 형사를 의사로 대체하면 현장 조사와 증거 수집 과정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심지어 용의자의 혐의를 지워나가는 소거법마저도 똑같다. 알려진 대로 <하우스>의 주인공 그레고리 하우스의 모델은 명탐정 셜록 홈스로, 하우스의 아파트 호수는 221B이며, 악기에 능하고 약물에 중독된 것 또한 동일하다. 뛰어난 진단학자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하우스는 오히려 심술궂은 어린아이로 생각해야 이해가 갈 정도지만, “내가 틀리면 환자는 죽는다”는 프로정신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그를 살짝 존경하게까지 만든다. “완벽한 미국식 발음” 때문에 제작자 브라이언 싱어가 미국인이라고 착각한 영국 배우 휴 로리는 시대착오적으로 말하면 ‘현대의 귀족’이다. 의학박사이며 조정 경기 메달리스트인 아버지를 둔 그는 명문 예비학교를 나와 케임브리지에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가입한 공연 클럽 ‘각광’(Footlights)은 그의 배우 인생에 밑천이 됐는데, <블랙애더> 시리즈와 <어 빗 오브 프라이 앤드 로리> 등을 함께한 스티븐 프라이도 이 시절 만난 친구다. 빼곡한 필모그래피에서 <센스, 센서빌리티> <스튜어트 리틀> 정도가 알려진 영화의 전부일 로리는 영국에서 소설가로도 유명한데 처녀작 <건 셀러>는 ‘제임스 칼럼’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차기작 <페이퍼 솔저>는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연기를 모니터하지 않는 배우 중 하나로, 에피소드를 본 적은 없지만 “악인인지 선인인지 규정되지 않는 모호함”을 <하우스>의 매력으로 꼽는다. 촬영 때문에 미국에 머무는 이 영국 배우는 “LA는 날씨도 사람들도 햇살뿐이다. 잔인할 정도로 무례한 사람들의 런던이 그립다”며 특유의 냉소를 감추지 않는다. 하지만 장면별로 하우스가 몇알의 진통제를 복용한 상태인지까지 면밀히 분석하는 완벽주의자이며, 동료 배우들에게 암기력과 체력을 시샘받는 타고난 배우는 <하우스>의 인기가 지속되는 한 미국을 떠날 수 없을 듯하다. 성공의 증거: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휴 로리의 출연료는 회당 30만달러다. 부패한 형사: <쉴드: XX강력반> 마이클 치클리스 귀청을 때리는 강렬한 음악으로 시작하는 <쉴드: XX강력반>의 첫 에피소드는 드라마 파일럿 사상 최대의 반전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편이 기다려질 수밖에 없는 파일럿으로 순조롭게 출발한 <쉴드: XX강력반>는 회당 400만이라는 케이블 채널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드문 케이스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타락한 거리는 햇볕이 있을 뿐 ‘신시티’나 ‘고담’과 거울을 보듯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의를 구현해야 할 영웅과 악당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극중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구도를 보이는 마초 형사 빅 매키와 아세베다 국장조차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해 적군과 아군의 경계가 희미한 살벌한 생태계를 그대로 반영한다. 세상엔 두 가지 경찰이 있다. 좋은 경찰과 나쁜 경찰. <쉴드: XX강력반>는 ‘더 나쁜’ 경찰들의 이야기다. 존 벨루시의 전기영화 <와이어드>(Wired)에 출연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마이클 치클리스는 TV시리즈 <커미시>에서 풍채만큼이나 사람 좋은 경찰관으로 5년간 브라운관을 찾았다. 그래서 그가 20kg을 감량하고 <쉴드: XX강력반>의 기동대장 빅 매키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도 높은 운동과 삭발로 인상을 바꾸는 데 성공한 그의 메소드 연기 탓에 사람들은 종종 빅 매키와 동일시하지만 그 둘의 공통점은 아이들에게 자상하다는 것뿐이다. 코믹스 <판타스틱4>의 열렬한 팬으로 18살부터 괴력의 ‘씽’ 역할을 소망해왔다는 치클리스는 실제로 영화에서 씽을 연기했다. 꿈의 배역에 캐스팅 된 행운의 배우는 추하게 변한 외모를 표현하기 위해 CG 대신 특수분장을 선택했는데, 체중을 감량할 때보다 더 오래 러닝머신 위를 뛰었고, 특수분장 중에는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 생체주기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치클리스는 추한 육체에 속박된 캐릭터의 정신적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대신 그를 동정할 만한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나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입체감을 갖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라고 말하는 장인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증거: 꿈의 배역 <판타스틱4>의 ‘씽’은 <쉴드: XX강력반>의 성공없이는 불가능했다. 순결한 살인마: <덱스터> 마이클 C. 홀 “연쇄살인은 모두 나쁘기만 한 걸까?”라는 질문에서 태어난 제프 린제이의 소설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는 소설 그 자체로도 성공했지만 드라마로 만들어져 더 많은 팬을 얻었다. 덱스터는 법의 심판은 피했지만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만 골라서 살해하는 ‘기준’있는 연쇄살인범으로, 경찰이 발견하지 못한 세상의 얼룩을 청소하는 그의 직업은 아이러니하지만 혈흔전문가다. 덱스터는 어린 시절 겪은 정신적 충격으로 평범한 감정 대신 살인충동을 얻었다. 양부 해리는 이상한 조짐을 미리 읽어냈지만 정신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범죄자를 알아보는 법, 처리하는 법, 흔적을 없애는 법을 가르쳤고,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 덱스터가 탄생했다. “솜씨 좋은 괴물” 덱스터를 연기하는 마이클 C. 홀은 TV데뷔작인 <식스 핏 언더> 이전에 뮤지컬과 오프 브로드웨이 작품 500편에 출연한 우수한 배우였다. <식스 핏 언더>에서 까다롭지만 책임감있는 장의사 데이비드 피셔를 5년간 연기한 까닭에 “세포까지 데이비드를 닮아”가던 홀은 마지막 시즌 촬영 중 <덱스터>를 만났고, 소원하던 무대로의 복귀를 미루고 브라운관에 남았다. 섬세한 데이비드의 내면까지 연기한 탓일까, 사람들은 호모포비아에 시달리는 옷장 속 게이와 그를 혼동하고 커밍아웃을 격려하기도 했는데, <덱스터>로 키퍼 서덜런드, 휴 로리 등과 골든글로브 TV시리즈 정극부문 남자연기자상 후보에 올라 한번 더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덱스터>의 시즌2는 시즌1 중반에 제작이 결정됐는데, 에피소드 두편을 선방영했고 9월30일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소설의 속편이 희생자를 난도질해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흉악한 범죄자를 다루는 것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안전망’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난 새 시즌에 대해 “지난해 우리는 캐릭터와 드라마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때와 비교하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자신한다. <쉴드>의 빅 매키, <소프라노스>의 토니 소프라노를 뛰어넘는 어두운 내면의 안티히어로가 또 한번 시청자를 매혹시킬지 기대된다. 성공의 증거: 마이클 C. 홀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거나, 브로드웨이로 돌아가면 확인할 수 있을 듯. Asian Face: <히어로즈> 마시 오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려한 외모에 옷걸이 좋은 다른 출연자들을 제치고 ‘히로’가 <히어로즈>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뽑힌 것에는. 평범해 보이는 초능력자들을 다루는 <히어로즈>는 흡사 만화책을 넘기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스토리는 물론이요, 마벨이나 DC코믹스의 만화책에 쓰일 법한 폰트로 이뤄진 크레딧과 각 에피소드를 챕터로 표현한 스타일도 이런 의혹을 제대로 겨냥한 고도의 전략이다. <히어로즈>의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비범함을 저주로 받아들이거나 숨기려고 노력할 때, 주어진 능력을 운명과 임무로 받아들이는 만화 같은 캐릭터가 있으니 마시 오카가 연기하는 히로다. 도쿄에서 태어나 6살에 미국으로 이주한 일본계 미국인 배우 마시 오카의 본명은 마사요리 오카로, 10살 때 ‘미국의 아시아 영재들’이라는 <타임>의 커버스토리로 사진이 실린 적이 있는 그는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IQ 180의 천재다. 조지 루카스의 ILM에서 CGI 아티스트로 근무하며 <퍼펙트 스톰>을 위해 만든 파도 생성 프로그램은 <캐리비안의 해적: 망자의 함>의 그래픽에도 사용됐다. 그런 까닭에 그의 필모그래피는 배우와 CGI 아티스트의 두 가지로 나뉜다. 2000년, 연기자가 되기 위해 LA지사로 옮긴 오카는 영화와 드라마의 단역을 거쳐 <히어로즈>의 오디션에 응했다. 영어와 일본어가 능숙한 오타쿠라니, 제작진이 찾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도쿄의 사무실에서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로 텔레포트한 그가 외친 첫마디 “야따!”(해냈다)는 이미 유행어가 됐고, 길에서 그와 마주친 소년이 “야따맨”이라며 환호한 것도 그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얼굴이 떨릴 정도로 두눈을 질끈 감는 텔레포트 장면을 연기할 때 “화장실 갈 때”를 생각한다는 재치만점의 배우는 코미디영화의 감독을 꿈꾼다. 아시아 배우의 미국 진출은 새로운 일이 아니고 김윤진, 샌드라 오 등 바람직한 표본도 생겼지만, 그 수요는 아직 부족하다며 채플린처럼 웃음으로 문화적 장벽을 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겠다”는 마시 오카가 아시아 배우들의 히어로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성공의 증거: 안티가 판을 치는 인터넷에서도 마시 오카는 “주머니에 넣고 싶은 애완동물(?)”로 사랑받는다. 드라마 한 편으로 이만큼 떴답니다 미드 명예의 전당에 오를 두 배우, <프렌즈> 제니퍼 애니스톤과 <섹스 & 시티> 사라 제시카 파커 드라마 하나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를 꼽으라면 단번에 제니퍼 애니스톤과 사라 제시카 파커가 떠오른다. 두 배우가 새로운 역할에 도전한다 한들 제니퍼 애니스톤은 언제까지나 <프렌즈>의 대책없지만 사랑스러운 레이첼 그린일 테고, 사라 제시카 파커도 <섹스 & 시티>의 섹스 칼럼니스트 캐리 브래드쇼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역할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인물로 거듭남이 요구되는 배우들에게 가혹한 말일지 몰라도, 그 역할 덕분에 지금의 그들이 있다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까. 제니퍼 애니스톤도 그 사실을 인정하는지 <프렌즈> 이후 새로운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고 있으며(코트니 콕스의 새 시리즈 <더트>에 우정출연한 적은 있다), 사라 제시카 파커 역시 “더이상의 드라마 출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후광으로 셀러브리티 대열에 오른 두 사람이 그 뒤 어떤 길을 갔는가 하면, 애니스톤은 영화로, 파커는 제작자와 사업가로 항로를 변경했다. 2002년 출연한 저예산 독립영화 <굿 걸>의 호평을 시작으로, 짐 캐리의 여자친구로 출연한 <브루스 올마이티>는 2억4300만달러를 벌어들였고, 벤 스틸러와 함께한 <폴리와 함께> 역시 1위로 개봉했으며, 그녀의 유명세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도록 도와준 브래드 피트와 이별 뒤 연인관계로 발전했던 빈스 본과 출연한 <브레이크 업: 이별후애(愛)>도 2억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는 등 애니스톤의 필모그래피는 제법 알차 보이지만, 씁쓸하게도 상대 배우 없이 제니퍼 애니스톤 이름 하나만으로 얻을 수 없는 성과였다는 것이 자명하다. 사라 제시카 파커 역시 <우리, 사랑해도 되나요?> <달콤한 백수와 사랑만들기> 등의 로맨틱코미디로 영화에 출연하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는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가니에르’, ‘갭’ 등의 모델로 활동하며 캐리의 이미지를 대량생산했고, 그녀의 이름을 건 패션라인과 향수를 런칭하는 등 패셔니스타로서의 명성을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타협안을 찾았다. 아무렴 어떨까, 그 둘은 레이첼 그린이고 캐리 브래드쇼인 것을.

[해외단신] <스타워즈> TV시리즈로 제작 外

<스타워즈> TV시리즈로 제작 조지 루카스 감독이 <스타워즈>를 텔레비전 방송용 실사물로 만들 계획을 발표했다. 루카스 감독은 이와 관련한 작업에 이미 착수한 상태로, 루크 스카이워커나 다스 베이더 등 영화의 주요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을 예정이다. 세부사항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감독은 “마이너한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다. 로봇의 생활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TV애니메이션 <클론 전쟁>의 CG애니메이션 제작도 진행 중이다. 미국, 극장 내 광고수입 15% 상승 미국의 극장 내 광고수입이 2006년 4억5570만달러를 달성했다. 3억9480만달러였던 2005년과 비교하면 15% 상승했다. 극장 내 광고는 영화 전 삽입되는 영상광고와 스탠딩, 팝업, 프로모션 등의 오프스크린광고로 나뉘는데, 2006년 각각 4억1740만달러와 3830만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극장광고위원회(CAC: Cinema Advertising Council)는 미국 전체 극장 중 81%의 극장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이 같은 수입 증가는 기술환경의 발달과 박스오피스의 양적 성장에 기인한 것으로 추측했다. CAC는 영상광고에 대한 관객의 선호도도 조사했는데, 응답자의 8%만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이하드4.0> DVD, 디지털 파일 포함해서 출시 브루스 윌리스의 육탄액션 <다이하드4.0>의 DVD 타이틀 스페셜 에디션이 디지털 파일을 포함해 출시될 예정이다. 디지털 파일은 DVD플레이어와 달리 지역코드에 제한이 없으며, PDP, PC 등 다양한 기기를 통해 재생이 가능하다. 이십세기 폭스 홈엔터테인먼트의 마이크 던은 시청자가 선택한 미디어로 영화 관람이 가능한 장점을 들어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표현했다. 폭스는 같은 형태로 더 많은 DVD 타이틀을 출시할 예정이다. <아포칼립스 코드>, 러시아 박스오피스 제패 러시아 신작 <아포칼립스 코드>의 비상이 눈부시다. 전세계에 숨겨진 핵무기를 찾으려는 스파이들의 암투가 줄거리로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의 697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첫주 자국에서만 36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바딤 스멜레프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겸하고, 1550만달러로 제작된 <아포칼립스 코드>는 지난주 집계된 전세계 박스오피스 40위 안에 진입한 비영어권 영화 중 최고 수입을 벌어들였다.

[알고 봅시다] 일본을 울린 눈물의 힘은 원작소설

오다기리 조의 출연작 중 유일하게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영화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2006년 일본을 휩쓴 도쿄타워 신드롬의 영화판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배우 오다기리 조가 어떻게 대중의 마음을 울렸는지 그 비결은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에 담겨 있다. 일본인들의 꿈과 향수, 평생의 고향 어머니에 대한 눈물이 유머와 함께 묻어나는 이야기. 2006년 한해 일본을 울린 도쿄타워의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도쿄 드림의 상징, 도쿄타워 ‘연인과 함께 도쿄타워에 갔을 때 불이 꺼지면 그 사랑은 영원하다’는 믿음이나, 에쿠니 가오리가 소설 <도쿄타워>에서 묘사한 금지된 사랑의 피난처처럼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도쿄타워를 단지 낭만적인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일본의 중년들에게 도쿄타워는 꿈의 상징이다. 고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당시 일본의 경제상황과 맞물려 수많은 젊은이들이 물밀듯이 상경했고, 고속철도인 신칸센 개통, 넘쳐나는 공장과 치솟는 땅값에 일본 정부는 도쿄 주변에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시대 상황 속에서 도쿄라면 언제 어디서든 보이는 도쿄타워는 ‘도쿄 드림’의 상징. 1958년 철탑으로는 세계 최고인 333m로 지어져 텔레비전과 라디오 신호의 중계 스테이션으로 쓰였고, 이후 전망대, 수족관, 갤러리 등의 시설들이 들어서며 도쿄 시민들의 오락 공간이 되었다. 현재도 도쿄타워는 <후지TV> <아사히TV> 등 거의 모든 방송사의 전파를 송출하고 있다. 2006년 일본을 휩쓴 도쿄타워 바람 영화의 모태가 된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는 일본의 서점 직원들이 선정하는 ‘2006 서점대상’의 대상 수상작이다. 릴리 프랭키와 재일 한국계 소설가 유미리, 문예평론가 후쿠다 가즈야 등이 함께 창간한 동인문학지 에 연재되기 시작해 2005년 6월28일 단행본으로 발매됐고, 2006년 1월에는 판매고 100만부를 돌파했다. 2006년 10월31일에는 누적 2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작가인 릴리 프랭키가 자전적인 경험을 그대로 녹여서 쓴 소설은 70년대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를 자극해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일본의 소설가이자 TV프로듀서인 구제 데루히코는 “히라가나로 쓰여진 성서”라고 평했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우는 얼굴을 보여주기 싫다면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 건 위험”이란 말이 돌았을 정도. 2006년 11월에 단막극 드라마를 시작으로 2007년 1월부턴 하야미 모코미치 주연의 연속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2007년 5월엔 오다기리 조의 영화가, 2007년 7월에는 무대에서 연극으로 선보였다. 릴리 프랭키는 누구? 작가의 이름만 들으면 이 소설이 일본 소설이 맞는지 의심할 수도 있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쓴 작가 릴리 프랭키의 본명은 나카가와 마사야.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과 동일하다. 릴리 프랭키는 그의 펜네임으로 대학교 때 단짝친구와 어울려 다니던 모습을 보고 주변에서 ‘장미와 백합’(로즈와 릴리) 같다고 말해 붙여진 이름이다. 뒤의 프랭키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일본인인지 외국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이름을 갖고 싶어서” 본인이 나중에 붙인 것. 한때는 영국 밴드 Frankie Goes To Hollywood나 일본 록밴드 BLANKEY JET CITY를 자신의 펜네임으로 쓰기도 했다. 소설가, 에세이스트, 그림책 작가, 아트디렉터, 디자이너, 뮤지션, 연출가, 포토그래퍼 등 셀 수 없이 많은 직업을 겸하고 있으며, 작사나 작곡을 할 때는 엘비스 우드스탁이란 이름을 쓴다. 탤런트 야스 메구미와 함께 리리메구라는 이름으로 CD를 내기도 했으며, 스마프 멤버 기무라 다쿠야의 솔로곡 <당신이 있어>의 가사를 썼다. 눈물 뒤에 숨겨진 괴짜 영화에선 많이 생략되어 있지만 소설과 릴리 프랭키가 직접 고백하는 자신의 진짜 이야기는 좀더 엽기적이다. 외할머니 댁을 떠나 엄마와 새로 찾은 집은 이미 폐허가 된 옛 병원 건물이었고, 도쿄에 올라와 돈이 떨어졌을 때 그는 예전에 헤어졌던 여자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어덜트 비디오 콘테스트인 ‘AV OPEN 당신이 결정한다, 세루어덜트비디오 일본 결정판’의 명예 총재, ‘일본미녀선발협회’의 전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괴짜인데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발매하면서는 이 책이 모든 이에게 소중하게 다루어졌으면 좋겠다며 “더럽혀지기 쉬운 하얀 표지”로 만들어달라 주문했다.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상습 지각범이지만 부탁받은 일은 거절하는 일이 없으며, 한창 많이 글을 쓸 때에는 동시에 30편의 작품을 연재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인기 비결에 대한 잘못된 재해석

무개념, 무형식, 무스타 등 3무(無)을 표방하며 MBC <무한도전>의 대항마로 지난 9월22일 출격한 SBS 토요버라이어티프로그램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은 언뜻 ‘눈에는 눈’의 맞불 전략을 구사 중인 것처럼 보이며 예능프로그램의 최신 경향을 따끈하게 대변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일본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움직이는 벽’까지 수입(?)해 준비된 아이디어와 잘 짜인 형식의 힘을 발휘하려 했지만 실패한 전례(<작렬! 정신통일>)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듯 이 프로그램은 <무한도전>식 ‘리얼리티’와 ‘빈틈 많은’ 캐릭터들의 단체 플레이를 한층 강도높게 사냥하고 있다. 이번에도 일본 TBS <링컨> 등 옆나라 예능프로그램에서 재료를 차용한 흔적이 다분하다. 그러나 더블 MC인 이경규와 김용만을 비롯해 김구라, 신정환, 윤정수, 김경민 등 출연진이 매주 어디에서 어떻게 톡톡 튀는 아이템을 소화하느냐보다 얼마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막 노느냐가 더 중요한 터라 ‘못난 따라쟁이’라는 논점은 일단 제쳐도 무방할 듯싶다. <…라인업>은 이른바 ‘짠 개그’에 대한 거부반응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웃기려는 의도, 연출 등의 흔적이 나타나면 ‘너 때문에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1% 더 올라하게 생겼다’고 대놓고 면박을 준다. 대신 B급을 자처한 이들이 ‘리얼리티’를 위해 택한 것은 다른 사람의 못난 곳, 아픈 곳을 들춰 망신을 주는 애드리브의 속공이고, 거침없는 수다의 카니발이다.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 스타’라는, 출연진 모두가 서로 말하느라 정신없는 또 하나의 ‘무’(無)투성이 토크쇼에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김구라는 각본없는 ‘프리스타일’의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물 만난 고기마냥 ‘독설가’, ‘욕쟁이’ 등의 캐릭터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물론 강아지 그림을 덧붙인 ‘새끼야’라는 욕설까지 내뱉어 ‘가족들이 시청하는 시간대에 어디 무엄하게’라는 준엄한 꾸짖음도 된통 들었지만 말이다. 아예 막장 버라이어티라는 고약한 정체성도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 반말은 기본이다.‘야’, ‘개미라도 퍼먹든지’, ‘별 나부랭이’, ‘난쟁이’ 등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언행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김구라의 욕설방송 이후 제작진은 사과문까지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실제로는 더 심한 욕도 입에 담고 사는 사람들이 ‘리얼리티’ 한번 제대로 하겠다는데 너무 혼내시는 것 아니냐고 속으로 야속해했을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이 멋진 폼 잡지 않고, ‘우리도 똑같이 웃통 벗고 논다’를 외치며 사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엿보기와 공감의 쾌감을 적잖게 자극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전제한 ‘리얼리티’에는 친밀하다는 게 얼마든지 타인의 영역을 넘나들고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예의없음과 일맥상통한다는 착각이 담겨 있다. 프리스타일의 개그와 유희가, 치밀하고 창의적인 ‘얘깃거리’의 제조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짠 개그’를 통달한 다음에야 가능한 고수의 영역이라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유명인에 대한 엿보기로 시청자를 몰입과 쾌감의 롤러코스터에 태우려면 해당 예능인의 재능과 노력에 대해 기본적인 존경심을 자아낼 수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연민과 애정과 웃음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호감있는 캐릭터로서 존재해야 한다. <…라인업>은 <무한도전>과 닮은 듯 닮지 않았다. 단지 뭔가 앞과 뒤, 위와 아래를 거꾸로 입은 듯한 놀림거리의 자학성만 강하게 풍기고 있다.

[내 인생의 영화] <브루스 브라더스> -박현욱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아쉬운 건 무단결석 한번 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무단결석보다는 연애를 못해봤다는 것이 더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에는 다른 친구들도 대개 그러했으니 크게 억울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십대에만 느낄 수 있는 고유의 감정을 겪어보지 못하고 그 시기를 넘어간 건 아무래도 인생에서 뭔가 손해를 본 것 같다. 무단결석은 그 다음으로 아쉬운 일이다. 학교와 집 밖에 모르고 매일이 꽉 짜여 있던 시절, 텅 비어버린 하루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일까. 우리 이후의 세대들을 보면 이른바 범생이든 날라리든 무단결석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은데,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무단결석이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1983년이던가. 어느 일요일을 기억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혜은이가 춤을 추면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화면 밑에 공습경보를 알리는 자막이 깔렸다. 국민 여러분, 이 방송은 실제방송입니다. 전국을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던 그 자막은 북한 공군 장교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남으로 넘어올 때 귀순인지 남침인지 파악이 되지 않던 시점에 나온 것이었다. 그때는 그런 일이 한번 있으면 으레 뒤따르는 행사가 있었다. 이내 여의도에 수십만 군중이 모여 북한 괴뢰에 대한 규탄대회를 여는 거였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관제 규탄대회에 수십만 군중이 동원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보니 만만하기 이를 데 없는 고삐리들도 인원 동원에 빠질 리 없었다. 우리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학교 하루 안 가면 무조건 그게 더 좋은 거려니 하면서 여의도로 향했다. 한두명도 아니고 수십만명이 모이는데 거기서 어떻게 우리 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지점을 찾고, 담임을 찾아 출석 체크를 하겠는가. 게다가 그날은 비까지 내렸으니 그냥 하루 땡땡이를 치고 나중에 담임을 못 찾았다고 뻥을 쳐도 그럭저럭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의도 광장에서 수십만개의 우산을 헤집은 끝에 담임을 찾아내어 출석 체크를 했다는 사실. 그야말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결석하면 안 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재지변이 있던 날에도 우리는 학교에 갔다. 1983년의 초가을에 있었던 기록적인 수해. 뭔일만 있으면 규탄해댔던 북한 괴뢰가 본분을 망각하고 인도주의에 근거, 원조물자를 보내주기까지 했다. 어찌나 비가 많이 왔던지 산 중턱에 있는 학교에 올라 보니 운동장이 커다란 호수가 되어 있었다. 운동장에 고인 물은 허리 높이까지 차올랐다. 학교 주변 언덕길에 있는 담벼락들은 물줄기를 이기지 못해 무너져내렸고 그 사이로 흙탕물이 콸콸 쏟아져내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 결국 휴교령이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학교에 갔다. 한 시간 늦은 놈도 있고, 두 시간 늦은 놈도 있고, 세 시간 늦은 놈들도 있었지만 모두들 어찌어찌 산 넘고 물 넘고 바다 건너서 학교에 왔다. 합법적으로 눈치껏 결석할 수 있는 기회에도 그렇게들 기어이 학교에 왔으니, 무단결석의 개념이란 우리의 머릿속에 아예 탑재되지 않았던 거다. 그 무렵, 나는 깊은 고뇌에 빠져 있었다. 무슨 고뇌였는지 간단히 말하자면, 도대체 사는 게 뭔지! 하는 거였는데, 어느 날엔가 고뇌가 너무 깊어져서 도저히 학교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더라는 거지. 그리하여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야간자율학습을 쌩까고 교문을 나섰다. 이렇게 말하면 비웃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도 조금은 쪽팔리지만, 고등학생 때 담배 한 모금, 술 한 방울 입에 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나름대로 커다란 일탈이었다. 막상 교문을 나섰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고뇌를 안고 집에 갈 수야 없는 노릇. 버스에 올라타고 시내로 나갔다. 서대문, 광화문, 종로. 서울 변두리에 있는 우리에게는 그곳이 서울의 중심이었고 세상의 중심이었다. 세상의 중심의 문턱, 서대문에 내려보니 갈 곳 없는 나 같은 청춘을 위해 아줌마들이 영화 할인 티켓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브루스 브라더스>, 푸른극장. 세상에는 스크린이라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영화도 있었다. 두 시간 동안 나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면서 원없이 웃어댔다. 인생에 대한 고뇌? 사는 게 뭔지? 알게 뭐냐. 인생은 아름다워라.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 한편으로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는 건 거짓말이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세상, 스크린 속으로 빠져드는 건 행복하여라. 그때부터 극장에 가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버스 토큰 두개와 극장비만 있으면 시내로 나갔다. 이후 <브루스 브라더스>보다 더 웃기고 더 재미있는 영화도 많이 보았다. 묵직한 감동을 준 영화도 많다. 슬픔에 잠기게 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 짓게 한 영화도 많다. 그 수많은 두 시간짜리 행복들을 뒤로하고 <브루스 브라더스>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일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영화로 인해 극장에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곧 내 인생의 첫 영화인 셈이다. 그런 영화를 어찌 잊겠는가. 어느 한순간 온통 넋을 앗아갔던 첫 키스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황홀했던 첫 키스라 해도 살다보면 아예 잊고 살 수도 있다.)

[겨울영화] <점퍼> <아메리칸 갱스터>

살인범을 찾아, 파리에서 도쿄로 순간이동! <점퍼> Jumper 감독 더그 라이먼 목소리 출연 헤이든 크리스텐슨, 제이미 벨, 레이첼 빌슨, 새뮤얼 잭슨 수입·배급 이십세기 폭스 개봉예정 12월 당신이 ‘점퍼’라면. 지구의 어디든 텔레포트(순간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대체 뭘 할 것인가. 조건이 하나 있다. 당신은 이성적인 사리사욕에 익숙한 성인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모진 학대를 겪고 있는 십대다. 스티븐 굴드의 SF소설 <점퍼>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된 사춘기 소년 데이비 라이스의 이야기였다. 그는 학대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쳐나와 오랫동안 헤어진 엄마를 찾아나선다. 가히 소년 SF다운 모험담이다. 하지만 더그 라이먼 감독의 <점퍼>는 원작보다 훨씬 매끈한 성인 취향 할리우드 공산품에 가까운 인상이다. 더그 라이먼과 할리우드의 가장 잘 팔리는 두 작가(<엑스맨: 최후의 전쟁>의 사이먼 킨버그와 <배트맨 비긴즈>의 데이비드 S. 고이어)는 원작에서 ‘텔레포트’ 능력만을 똑 따와서 이야기를 재구성했고, 영화 <점퍼>는 부유한 청년 라이스(헤이든 크리스텐슨)가 엄마의 살인범을 찾아나서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여자친구 밀리(레이첼 빌슨)와 아슬아슬한 연애전선을 형성하던 라이스는 같은 능력을 지닌 영국 소년 그리핀(제이미 벨)을 만나게 되고, 정부요원 콕스(새뮤얼 잭슨)을 위시한 ‘점퍼 사냥꾼’들과 생존을 위한 격전을 벌여야만 한다. 감독 더그 라이먼은 “더그 라이먼 영화란 악당이 없는 영화”라는 말로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려 한다. “더그 라이먼 영화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른 관점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회색지대를 남겨두는 것이 훨씬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자신을 3인칭으로 일컫는 야심만만한 감독의 말과 트레일러의 분위기로 미루어보건대 <점퍼>의 주인공들이 꼭 선한 영웅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점퍼들의 ‘아이덴티티’는 이집트, 중국, 파리, 도쿄, 로마를 제멋대로 오가는 점퍼들의 ‘속도’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적 열쇠로 작용할 것이다. Tip. 원작 <점퍼>와 <리플렉스>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면서 여피 같은 라이스의 모습에 한숨짓는 원작 팬들이 꽤 있을 것이다. 엄마 찾는 소년의 모험담을 원한다면 원작을 미리 읽어보자. 연작인 <리플렉스>(Reflex)는 정부요원으로 활동하게 된 유부남 데이비드 라이스의 모험을 다루며, 그리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 소설도 있다. 한국어 번역본은 없지만 아마존(www.amazon.com)에서 구입가능하다. 청소년 대상 소설이니 부담도 없다. 흑인 대부와 백인 경찰의 대결 <아메리칸 갱스터> American Gangster 감독 리들리 스콧 출연 덴젤 워싱턴, 러셀 크로, 쿠바 구딩 주니어, 조시 브롤린 수입·배급 UPI 개봉예정 12월27일 누구나 눈치채겠지만 <아메리칸 갱스터>에 등장하는 덴젤 워싱턴의 결혼식 장면은 직접적으로 <대부>(1972)를 연상시킨다. 물론 그 역시 ‘famil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말하자면 <아메리칸 갱스터>는 마리오 반 피블스의 <파시>(1993)가 서부시대의 흑인 건맨들을 등장시켰던 것처럼, 역시 흑인들의 시선으로 써나가는 미국 갱스터의 새로운 역사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런 갱스터 무비의 전체 계보 안에서 봐도 덴젤 워싱턴은 가장 이지적인 축에 들어간다는 점이다. 더불어 화려한 테크니션이기도 한 리들리 스콧의 갱스터 무비라는 점에서도 구미를 당기게 한다. 영화는 1970년대 베트남전 당시 뉴욕의 할렘에서 헤로인 왕으로 군림했던 마약상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와 그를 쫓는 마약 전담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실존인물인 프랭크 루카스는 어려서 노스캐롤라이나의 시골에서 자랐지만, 1970년대 베트남전이라는 사회적 혼란상황을 이용해 갖가지 방법으로 베트남에서 생산된 마약을 수입하면서 할렘 최고의 마약상으로 군림한 인물이다. 올해로 데뷔 30년째인 덴젤 워싱턴은 <아메리칸 갱스터>의 핵심이다. 가장 지적인 면모의 흑인배우라 해도 틀리지 않는 그는 ‘패밀리’를 이끌어가기 위해 잔인무도한 짓도 서슴지 않는 흔들림없는 보스로 등장한다. 최근 토니 스콧의 <맨 온 파이어>(2004)와 <데자뷰>(2006)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그는 사이좋게 토니 스콧의 형 리들리 스콧과 조우하게 됐다. 리들리 스콧으로서도 <어느 멋진 순간>(2006)으로 고전했던 기억을 말끔히 씻어버린 영화다. 1970년대라는 설정도 <더티 해리>(1971), <프렌치 커넥션>(1971) 등 옛 미국 하드보일드영화의 활력을 되살릴 수 있는 최적의 배경이다. 리들리 스콧의 단짝이기도 한 러셀 크로 역시 프랭크 루카스와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는 형사로 출연해 모처럼 터프한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가 <대부>와 같은 시대에 대한 풍경화이기도 하다면, <아메리칸 갱스터>는 베트남전 시기의 혼란을 묘사하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 같다. Tip. Jay-Z(제이지)가 O.S.T를? 이미 은퇴를 선언했다 번복한 ‘비욘세 남편’ 제이지는 <아메리칸 갱스터>를 먼저 보고는 ‘필’이 꽂혀 일찌감치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그는 영감을 얻은 장면을 정지해놓고는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화답하는 식으로 작업했다. 총 9곡이 수록될 예정인데 단독 앨범으로 낼지, O.S.T 형식으로 갈지는 협의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