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어느 영화감독의 자유

이제는 편안해졌습니다. 지금 원하는 일이 당장 그 결과를 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유로워진 젊은 예술가는 진짜 무서운 낙관은 철저한 비관 위에서 피어나는 법이라는 것을 진짜 우리 눈앞에서 실연하려는가보다. 잃어버린 평등, 잃어버린 삶의 가치를 일시에 회복하고 바람직한 변화를 얻어내는 일이 단박에 실현될 수 없으므로 초조함을 버리고 자기 사회 속에서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라. 갈수록 책임이라는 말이 좋아집니다. 왜냐하면 중국에선 갈수록 이 책임감이 적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아장커 감독은 아다시피 중국의 언더그라운드, 지하에서 영화를 하는 인물이다. 그가 한국에 처음 들고온 첫 장편 <소무>에는 그때까지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중국의 오늘, 화장을 지운 맨 얼굴의 현실이 있었다. 자본주의가 도입되는, 급변하는 중국사회의 변두리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시선이 거기 있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화면에는 오늘의 우리 현실이 담길 데가 없지요. 그때 젊은 감독은 중국 제5세대, 자신의 선배감독들의 미학에 그렇게 결별을 고했었다. 그 이후, 우리가 지아장커 감독에게 지나치게 경도한 것 아니냐고, 그를 지나치게 편애해온 것 아니냐고 누군가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그의 두 번째 장편 <플랫폼>의 유랑악단을 뒤쫓는 여행기록을, 임순례 감독과 마주한 대담을, 때로는 그가 <하나 그리고 둘>이나 <화양연화> <와호장룡>와 같이 한꺼번에 융기한 중국 문화권의, 그러니까 화어권의 가작들을 마주한 소감을 <씨네21>은 독자들께 보여드렸다. 그리고도 다시 올해 부산에서 그의 시간을 청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를 맞은편 자리에 청한 건 <씨네21> 기자들이었다. 지아장커 영화의 뜨거운 지지자인 정성일씨는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할 때 디지털 삼인삼색이라는 프로젝트에 그를 불러들인 사람, 결과적으로 감독이 디지털영화의 효용성을 발견해서 디지털로 세 번째 영화 <임소요>를 찍게 만든 장본인이다. 두 사람의 재회는 자본주의화와 세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을 영화로, 미학으로, 전투적으로 해나가는 현황과 이유를 들려주는 소중한 사건이 되었다. 지난주 약속드린 보드웰-홍상수의 대화에 앞서, 중국의 지하전영 이야기를 먼저 보내드린다. 이것은 약속위반이다! 사과를 드리면서, 죄송하게도 다시 청탁을 덧붙이게 된다. <임소요>를 빨리 볼 수 있게 <씨네21> 독자들이 ‘압력’을 넣어달라는 정성일씨의 부탁말씀에 귀기울여주십사고. 또 한 가지, 정몽준 국민통합21의 대통령 후보 릴레이 인터뷰 기사가 실린 지난호가 대부분의 독자들께 전달되기 전, 노무현 후보로의 후보 단일화가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마감 탓이라고는 해도 생동하는 상황을 따라잡지 못한 점을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이회창 서면인터뷰

<씨네21>은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 기획의 세 번째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인터뷰했습니다. 이 기획의 목적은 12월19일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 및 정당의 영화영상 관련 정책의 밑그림을 미리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독자들이 후보들의 문화적 소양이나 문화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단, 각 후보의 의사와 사정을 반영해 직접 만나거나 서면으로 하거나 둘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후보마다 달리 인터뷰가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편집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5년 전 대선을 앞두고 <씨네21>이 같은 기획을 했을 때 인터뷰에 응한 바 있다. 당시에는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으나, 이번에는 일정 조정이 힘들어 서면인터뷰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지난번 대선 때 지금까지 보신 영화 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가 <미션>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같으신지요. 또 <미션> 외에 몇편을 더 꼽는다면. → 제가 97년에 그렇게 대답했나요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미션>이 제가 본 영화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그 영화가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고, 무엇보다 종교적 숭고함이나 인간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배경음악과 남미 이과수폭포를 배경으로 한 장엄한 영상도 참 멋졌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로버트 드 니로나 제레미 아이언스 등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고요. 그외 기억에 남는 영화가 몇편 있는데 아마도 제가 대학 1학년 때에 본 스탠리 큐브릭 감독,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팔타커스>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스튜어트 그랜저 주연의 <스카라무슈>도 지금까지 깊게 인상에 남아 있고, 그 밖에 최근에 류승범씨가 주연한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퍽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보신 한국영화는 무엇인지요 →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입니다. 내용도 괜찮았지만, 여자주인공으로 나온 문소리씨의 연기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보고 싶은 영화는 많은데 요즘에는 시간이 거의 나지 않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 감독과 배우, 외국 감독과 배우를 꼽으신다면. → 좋아하는 한국 감독들이 몇분 있는데, 굳이 한 사람만 꼽으라면 <집으로…>를 만든 이정향 감독입니다. 그리고 남자배우는 안성기씨, 여자배우는 문소리씨입니다. 외국 감독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인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제작한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느낀 점이 참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의 존엄과 가치, 생명 존중이라는 감독의 철학이 짙게 밴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외국 남자배우로는 로버트 드 니로, 여자배우로는 <양들의 침묵>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조디 포스터입니다. 스크린쿼터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지요. 정부는 지난 6월30일 WTO 회원국 23개국에 대해 양허요청안을 제출했습니다. 이를 철회하지 않는 한 스크린쿼터는 축소, 폐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 스크린쿼터제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 입장입니다. 쿼터제도의 유지 여부에 기준이 되는 시장점유율 40%를 지난해에 넘었기 때문에 축소 내지 폐지 주장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영화시장 전체가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시장과 동일한 조건의 경쟁상대가 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영화시장의 기반이 허약합니다. 영화제작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어 생활하기가 힘들 정도이고,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받는 영화는 아직 극소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많은 예산을 들인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고 난 뒤, 투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40% 시장점유율은 매우 불안정안 상태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스크린쿼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영화사의 직배체제가 가져올 유통망의 장악 가능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영화를 만들어 국제대회에서 호평받고, 또 국민들이 보고 싶어하더라도, 외국 메이저 배급사의 막대한 자본에 밀려 극장을 얻지 못해 상영조차 할 수 없다면 우리 영화시장의 쇠퇴현상은 불을 보듯 뻔할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우리 문화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스크린쿼터제는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이러한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단 내년 3월로 예정되어 있는 WTO 양허각서안 제출을 연기하고 개방의 폭과 속도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습니다. 한국영화 의무방영 비율인 방송쿼터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 방송쿼터의 경우 2001년 방송위원회 고시로 그 비율을 하한에 가까운 25%로 규정하여 현재까지 유지해왔으나, 그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고, 주요 시청 시간대의 방영비율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방송사들이 우리 영화제작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독립영화나 고전영화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중파 방송의 공공성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쿼터는 그다지 큰 부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 사태처럼 표현의 자유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고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표현의 자유는 문화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 입장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과 청소년과 같이 자라나는 세대에 정서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일정 정도의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사법적 통제보다는 시민사회의 보편적 합의에 의한 자율적인 규제와 제한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음성적·탈법적인 사업을 통해 사회악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적 제재가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표현물에 대한 수사만큼은 불구속 수사로 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 여기에서도 사안을 둘로 나누어서 봐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적법한 상황에서 문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표현물인데 일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불구속 수사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음성적으로 이루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현행법의 엄격한 적용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법으로 판정하기 전에 시민사회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선행되고, 또한 자율적으로 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 저예산영화, 독립·예술영화들이 극장을 잡기 힘든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들의 상영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지원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 언급하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극장에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만,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극장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이들 영화에 대한 국가지원은 영화산업의 기반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우선 저예산 예술영화가 자유롭게 상영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기존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찾아보고, 장기적으로는 예술영화전용관 건립을 적극 추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재원은 영화진흥금고를 활용하는 방안과 기업의 지원이나 시민사회의 모금 등을 통해 공익기금을 확보하는 방안이 있을 것입니다. 필요할 경우 영화진흥금고에서 추가로 출연해 현재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전용관 체인사업이 효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예술영화상영관 확보를 위해 이런저런 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예산문제로 전향적인 방안이 못 나오는 듯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영화진흥법 개정시 정부가 위원회의 예산승인권을 넣었고, 이후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추진 등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 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를 문화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민간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영화진흥위원회가 자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영화진흥법상 문화관광부의 예산 승인권 조항의 폐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자율권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개방성과 합리적인 의사결정, 민주적 절차 등이 담보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문화관련 예산을 늘릴 생각은 없으신지요. → 저의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문화예산 증액과 순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먼저 문화예산은 현재의 1% 수준을 최소한 1.5%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전체 문화예산의 16.2% 수준인 순수예산 규모를 20% 수준으로 늘려 순수 문화예술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5일근무제는 문화 향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주5일근무제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 세계적인 추세나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주5일근무제로 가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사 모두가 반대하는 주5일근무제를 정부가 법 제정을 통해 강행하려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노동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기업경쟁력과 근로자 삶의 질, 이 두 가지를 같이 고려한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주5일근무제 문제는 노사 양쪽과 국민들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당장은 사업장마다 노사합의를 존중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주5일근무제가 노사합의로 도입된다면 늘어난 여가시간으로 국민들의 문화활동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국민적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시설의 충분한 확보와 프로그램 및 콘텐츠 개발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부족한 시설의 확충은 국민의 문화권 확보 차원에서 적극적인 국가지원을 검토하겠습니다. 또한 국민의 문화생활을 권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문화비용 일정액에 대한 세액공제도 검토할 것입니다.

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2>

<와호장룡>의 장첸이 김현주, 이범수와 주연한 <벌써 1년>은 복서인 두 남자와 그들의 매니저 역인 김현주의 삼각관계를 축으로 한다. 이범수가 경기에서 비참하게 패하고 사라진 자리에 새로 들어온 복서 장첸과 그를 보면서 이범수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는 김현주. 로드웍을 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 다가갈 듯 다가가지 못하는 두 남녀의 미묘한 심리전은 미완으로 남았지만, 곧 발매될 브라운 아이즈의 2집 <점점>의 뮤직비디오로 이어질 예정이다.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는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신은경과 그 대신 감옥에 간 김영호의 기다림을 담은 뮤직비디오. “내가 만든 뮤직비디오를 쫙 늘어놓고 보면, 정말 보편적인 스토리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이미지”라는 그의 말대로, 다수의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는 어디선가 읽거나 들은 듯한 내러티브를 갖고 있다. “박명천 같은 감독은 지금도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대중을 놓고 타협하려고 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던져서 좋아하려면 좋아하고, 아니면 아니라는 건데, 그걸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는다. 그가 어떤 이미지나 트렌드에서 제일 처음이 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면, 난 반대로 그 트렌드 안에서 가장 잘 쫓아가려는 사람이다.” 조성모의 데뷔곡 이후 부쩍 늘어난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가 종종 사고나 불치병으로 연인들 중 하나가 죽으면서 완결되는 식의 극단적인 구성 일색으로 진부하고 식상하다는 비판을 들은 지는 이미 오래. “안 죽어도, 사건사고가 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실제 남과 여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몰래카메라로 찍으면 정말 심심할테니까.” 막상 그렇게 ‘심심하게’쓰다가도, 음악이 고조되는 부분에서는 “차에 치여야 되고, 눈물이 떨어져야 되고, 뭔가 해프닝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강박의 자장으로 끌려드는 때도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게 뭘까”라는 고민의 산물이다. 그래서 차은택의 뮤직비디오 중에도 자신의 연인을 권상우에게 부탁하고 간 정준호가, 그녀를 지켜주려고 주위를 맴도는 권상우를 오해하고 찔러죽인다는 조성모의 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없진 않다. 하지만 그렇게 익숙하고 신파스러운 드라마를 꾸밀 때조차 디테일을 고민한 흔적은 단연 돋보인다. 선호 감독 NO.1 그러는 사이에 차은택은 가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감독이자 “욕도 많이 먹고, 하는 것보다 떨어져나가는 일이 더 많은” 감독이 되어버렸다.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의 이미지나 찍어서 립싱크를 하는 식의 뮤직비디오에는 원체 매력을 못 느끼는데다가, 시놉시스를 오래 쓰는 편이기 때문. “이야기를 만들고, 단편영화처럼 찍는 게 좋다”는 그는, 음악을 받아들면 2∼3주씩 연락을 두절하고 “잠수를 타기” 일쑤다. 혼자 불꺼진 방에서, 집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서, 이따금 새벽에 남산 수산로를 차로 왔다갔다 하면서, 수도 없이 같은 음악을 듣는다. 도입부를 들으면 시나리오가 잘 떠오르는 편이라, 수십번씩 도입부만 반복해 듣기도 한다. “글을 보면 한줄한줄 그림을 만들어가며 읽는” 편이라 남들 하루 읽을 것을 며칠씩 붙잡고 읽는데다, “그림이 안 짜여지고 걸리는 건 따지고 들어서 작가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 김영찬 작가와 함께 한 <화장을 고치고> 등 2편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놉시스를 직접 쓰게 된 것도, 그런 고집 때문이다. 하긴, 그 재미에 뮤직비디오를 한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뮤직비디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라면, 드라마타이즈가 없어진다면, 뮤직비디오를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까지 말하는 만큼, ‘드라마타이즈 뮤직비디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도 많다. 예컨대 골목길에서 맞부딪친 소년, 소녀가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면서 서로의 설렘을 키워가지만 소년은 병으로 죽어간다는 신승훈의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는 전형적인 감상적 멜로다. 소년을 위해 집 앞 앙상한 나무에 가득 새 잎을 달아놓고 눈 속에 잠든 소녀의 사연도 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초생달 눈을 하고 웃거나 단순한 동그라미 같은 눈에서 굵다란 물방울을 흘리는 인형들의 연기는 색다른 질감을 낸다. 표정과 동작이 한정되고 절제된 인형들의 말없는 멜로드라마가, 슬픈 음색의 발라드와 미묘한 대구를 이루는 것이다. <지젤>에서 영감을 얻은 발레로 드라마를 구성한 박효신의 <좋은 사람>도, ‘드라마타이즈’의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는 과정에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실 뮤직비디오 작업에선 돈을 벌기보다, 제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국내 음반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만큼 뮤직비디오 예산에도 한계가 있다. 시장 대비 적정예산은 대략 1억∼1억5천만원선. <사랑해도…>는 제대로 찍었다면 7억∼8억원 규모였겠지만, 직접 개발한 캐릭터 캐발비 등 자체 인건비는 빼고, 스튜디오 비용을 아끼고자 비어 있는 주택을 빌려 안방과 거실에서 2대의 카메라를 돌려가며 한달 만에 촬영한 결과 1억5천만원선에서 제작한 경우다. 대신 “감독에게 태클 들어오는 게 없어서” 무협, 액션, 스릴러, 멜로를 맘껏 해볼 수 있다는 게 뮤직비디오의 장점이란다. 그는 영화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도 크다. 올 초 그는 캐스팅까지 갔다가 끝내고 만 경험이 전부지만, 대중의 심리를 읽어야 하는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계속 해온 만큼 관객이 어떤 영화를 좋아할지“감잡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소박한 편이다. “터뜨릴 수 있는” 작품을 하자는 제안도 심심찮게 들어오지만, “대중이 좋아하고 평단에서 욕은 안 먹는 정도”의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것. 아직은 뮤직비디오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때 양조위와 얘기했던 시놉시스를 12월까지 써보내야 하고, 순제작비 5억원 정도의 저예산으로 <집으로…> 같은 느낌의 특이한 멜로를 해보고 싶은 계획도 줄서 있다.

2003년은 나의 것!

<바람난 가족> <태극기 휘날리며> 등 내년 개봉예정작들 속속 크랭크인내년 개봉예정인 영화들이 속속 크랭크인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12월2일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이 크랭크인한 데 이어 12월20일경 안재모 주연의 <명랑유곽>이 첫 촬영을 시작하며, 내년 1월부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김성호 감독의 <거울속으로>, 오종록 감독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권칠인 감독의 <싱글즈> 등이 본격적인 촬영을 시작할 예정. 내년 봄부터 가을까지 극장가를 장식할 이들 영화는 하나의 장르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없는 색다른 이야기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강제규 감독이 99년 <쉬리> 이후 3년 만에 연출하는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이 갈라놓은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까지 알려진 줄거리는 동생을 무척 아끼는 형이 동생이 징집되자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군에 들어가지만 전쟁 중에 동생을 잃고 북한군이 되어 동생과 마주친다는 것. 장동건이 형으로, 원빈이 동생으로 출연하며 1월10일경 크랭크인할 예정이다.순제작비만 100억원을 예상하는 대작. 이미숙, 전도연, 배용준 등 캐스팅이 화려한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1월 중순 첫 촬영에 들어가며 유지태, 김명민, 김혜나를 캐스팅한 김성호 감독의 공포스릴러 <거울속으로>는 1월1일 촬영을 시작한다. TV드라마 <피아노>의 오종록 PD가 연출하는 첫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아직 캐스팅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1월 초 크랭크인은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불가능에 도전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공부와 담쌓고 지내던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가 일류대 합격과 사법시험 합격을 요구하자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시작한다. 아이엠픽처스가 투자하며 <연애소설>을 만든 팝콘필름이 제작한다. <사랑하기 좋은 날>의 권칠인 감독이 만드는 <싱글즈>는 94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영,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가 원작이다. 장진영, 엄정화, 이범수가 캐스팅됐고 싸이더스에서 제작을 맡는다. 12월20일 촬영을 시작할 <명랑유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한 한 남자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로 쥬쥬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작품이다.한편 곽경택 감독의 <똥개>, 양윤호 감독의 <바람의 파이터>, 장윤현 감독의 <그녀의 아침>은 내년 2월 크랭크인을 준비 중이다. <똥개>는 정우성, <바람의 파이터>는 비가 주연을 맡아 촬영을 위한 몸 만들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 밖에 박찬욱 감독과 김성수 감독의 신작도 윤곽이 잡히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일본 만화 <올드 보이>가 원작인 영화를, 김성수 감독은 로맨틱코미디 <영어완전정복>을 연출할 계획.남동철 namdong@hani.co.kr

위트, 유머, 그리고 영국식 해학 - 영국애니메이션페스티벌 [1]

2002 영국애니메이션페스티벌, 12월11일부터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미스터 빈과 밥 더 빌더, 재치있는 웃음과 만화다운 상상력을 앞세운 영국 안방극장의 애니메이션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12월11일부터 22일까지 남산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2002 영국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개최되기 때문.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주한영국문화원이 2000년부터 공동으로 주최해온 영국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올해 3회째를 맞아 ‘TV와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상영회와 전시회를 갖는다. <월레스와 그로밋> <치킨 런> 등 장편 규모의 작품들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 전부터, 영국은 TV 및 단편애니메이션의 오랜 보고였다. 장편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매년 2∼3편 이상을 선보이는 할리우드의 물량공세를 따라잡기 힘들지만, TV와 단편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채널4> 등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방송사들이 제작지원과 방영을 통해 작가들을 적극 뒷받침하면서 자국의 문화상품으로 키워낸 모범사례랄까. 올해 페스티벌에서 최근 영국 TV애니메이션의 상영 및 전시 외에, <채널4> 등 방송사 애니메이션 컨설턴트를 지낸 클레어 킷슨의 ‘영국의 방송과 애니메이션’ 세미나를 마련한 것도 그러한 배경 때문이다. 모두 6가지 섹션으로 구성되는 올해 상영작은 30여편. ‘섹션1’은 르완 앳킨슨의 코믹한 표정연기와 함께 실사 TV시리즈와 장편영화로 만들어져 영국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누린 <미스터 빈>의 애니메이션 버전이다. TV와 장편영화의 리처드 커티스와 로빈 드리스콜이 각본을 맡고, 앳킨슨의 목소리는 물론 동작까지 빌려 제작한 26부작 가운데, 테니스공을 지붕 위로 잘못 던지는 바람에 이를 되찾기 위해 고전하는 <공>, 심술맞은 집주인이 병원에 실려간 뒤 그녀의 못된 고양이를 돌보는 해프닝을 그린 <고양이 돌보기> 등 2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은 3편이 상영된다.<뚝딱마을 통통아저씨><해밀턴 매트리스><미스터 빈>‘섹션2’는 93년 오스카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받은 단편 <밥의 생일>에서 파생된 <밥과 마가렛> 시리즈. <밥의 생일>의 데이비드 파인과 앨리슨 스노덴이 연출하는 작품으로, 런던의 치과의사 밥과 발치료사 마가렛 부부의 일상 속 사건들을 시트콤 형식으로 풀어낸다.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만 부모가 된 친구의 고생을 보며 고민한다는 <한밤의 이야기> 등 영국 중산층 가정의 삶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익살스러운 만화체의 묘사가 돋보인다. 또 다른 밥이 등장하는 ‘섹션3’의 <뚝딱마을 통통아저씨>는 무엇이든 잘 고치고 잘 짓는 만능 건축업자와 친구들의 이야기. 원제는 <밥 더 빌더>로 99년 를 시작으로 무려 100개국 이상에 방영되는 히트를 기록한 인형애니메이션 시리즈다. 불도저 먹, 크레인 로프티 등 깜찍하게 의인화된 기계와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면서 마을을 가꿔나가는 내용은, 재미와 교육적인 효과를 영민하게 거머쥔 균형감각으로 미취학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호감을 샀다.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상작을 모은 ‘섹션 4-Annecy’s Choice’는 10대 이상의 관객도 꼭 챙겨볼 만한 섹션. 특히 드러머가 되는 개미핥기의 여정을 그린 <해밀턴 매트리스>는 <월레스와 그로밋> 못지않게 정교한 세트와 인형 캐릭터, 흥미진진한 구성이 뛰어난 코미디다. 개미를 찾아 뒹구는 일상이 권태로운 해밀턴의 소망은 새 바지를 사는 것. 그의 타고난 리듬감을 알아본 애벌레 펠드윅은 매니저를 자청하며 그와 함께 ‘부리 도시’로 가지만, 새들의 도시에서 못생긴() 개미핥기가 드러머가 되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문전박대는 물론, 기껏 채용된 클럽에서도 외모만 번드르르한 드러머 뒤에서 몰래 드럼을 쳐줄 뿐. 좌절한 채 뒷골목을 헤매던 해밀턴은, 성형을 강요하는 클럽 사장을 뿌리치고 귀향해 자신의 밴드를 꾸린다. <토털 이클립스>의 ‘베를렌느’ 데이비드 툴루이스의 목소리, 인형애니메이션의 대가로 이름난 배리 퍼브스의 연출, 음악 등이 모두 잘 어우러진 수작. 2D디지털로 제작된 TV시리즈 <덤벙덤벙 기사들>은 <빅 나이트>란 원제로 소개된 바 있다. 보리스와 모리스, 덩치 크고 어리숙한 두 기사들이 자신도 모르는 새 갖가지 모험에 휘말리는 중세 배경의 코미디로, 풍부한 개그와 아이들 그림처럼 단순한 디자인, 컬트적인 상상력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 밖에 ‘섹션 5-위트, 유머, 그리고 영국식 해학’에서는 1분 남짓한 시청자 토크쇼 형식으로 영국 사람들에 대한 촌평을 담은 <위대한 영국>과 성인 취향의 유머 감각을 지닌 <에릭은 괴로워> 시리즈를, ‘섹션 6-New Trend of U.K.’에서는 기존의 형식과 틀을 넘어서려는 젊은 예비작가들의 시도를 접할 수 있다. 또한 <스탠리> <개> 등 단편인형애니메이션으로 세계영화제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진 여성작가 수지 템플턴의 워크숍이 12월12일과 13일에 걸쳐 마련될 예정. 모든 행사는 무료로 진행된다(문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02-3455-8484, www.ani.seoul.kr).황혜림 blauex@hani.co.kr ▶ 위트, 유머, 그리고 영국식 해학 - 영국애니메이션페스티벌 [2] - 상영시간표

세계구 연기자,자신있습니다!<바람의 파이터>의 비

“너 소야 나 최영의야.” <넘버.3>에서 불사파 두목 송강호의 명언으로 남은 그 대사를 기억하시는지. 집채만한 황소 수십 마리와 드잡이를 하다가 가뿐히 메다꽂았다는 장수 최영의, 아니 최배달의 존재가 미미하게나마 스크린에 드러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세계 모든 격투기를 제압하는 등 무패의 신화를 일궜던,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의 생애가 방학기씨의 동명만화 <바람의 파이터>를 토대로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흘러나온 것이 2년 전. 문제는 제작진이 단순히 최배달의 ‘대역’이 아닌 ‘현신’을 찾는다는 데 있었다. 진짜 싸움의 냄새를 알고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고행에 가까운 수련 과정을 오롯이 따를, 그리하여 실제 무술의 고수들과 겨룰, ‘될 성부른 떡잎’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서프라이즈! 그 문제의 ‘파이터’로 낙점된 이는 기성 배우도 무술인도 아닌, 가수 비였다. “네가 무도(武道)를 알아?” 비의 캐스팅 소식이 전해지자, 반대여론이 만만찮게 들끓었다. 그럴 법했다. 그는 무대 위에서 환한 미소와 고운 미성, 그리고 현란한 율동을 선보이던, 밝고 앳된 이미지의 하이틴 스타이기 때문이다. 그런 반감과 의혹을 의식한 탓일까. <바람의 파이터> 제작 발표회 현장에 나타난 비는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웃음기를 거둔 결연한 표정의 비는 “가수 비는 잊어달라”고 못 박기까지 했다. 이날, 양윤호 감독은 우연히 TV에서 본 비에게 학창 시절 싸움깨나 한 전력이 있다는 얘길 듣고 맘이 동한데다 그가 오디션에서 보여준 ‘눈빛’과 ‘몸짓’에 매료됐다고 설명해주기도 했다. 촬영과 인터뷰를 위해 두어주 뒤에 다시 만난 비는 그때의 긴장과 피로는 씻은 듯했으나, 여전히 단단히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사진기자의 “웃어달라”는 주문에 “웃어도 돼요”라고 되물으며 편하게 풀어지기 전까지는. “그냥 넌 노래나 하고 춤이나 춰라, 그러시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전 준비되지 않으면 아예 시작하질 않거든요. 연기는 이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만난 거죠. 남 주기 싫었어요.” 올해 4월 말에 데뷔해 <나쁜 남자> <안녕이란 말대신> <악수>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스타덤에 오른 비는, 그간 심심찮게 충무로의 손짓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대개가 가수 비의 이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요구하지 않는 그런 멜로영화였다고. “한국엔 정통 액션물도 액션스타도 없잖아요. 그래서 이 영화에 끌린 것 같아요. 김두한은 전국구 파이터지만, 최배달은 세계구 파이터잖아요. 한마디로 영웅이죠. 이런 분을 연기한다는 것이, 저 개인에게는 ‘수련’의 의미도 있어요.” 안양예고 시절, 춤에 빠져 연기 수업을 등한시했다는 그는 이제 엄청난 ‘벼락치기’공부를 해야 한다. 연기 수업은 물론, 극진 가라테 훈련과 일본 현지 수련을 거쳐야 한다. “그 고통을 느껴봐야 그분을 알 것 같거든요.” 지옥훈련을 방불케 하는 수련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는 비는 겁에 질려도 모자랄 판에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비는 그런 사람이다. 한때 그의 스승 박진영씨는 연습 중독인 그를 걱정해 연습실 출입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친구,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인생을 너무 전투적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비는 그것이 자신이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두려워요. 도태될까 봐. 그래서 잠이 안 와요. 그럴 땐 연습해요. 그럼 맘이 편해요… 바다 한가운데 섬이 떠 있고 거기까지 가야 하는데, 계속 파도가 밀려 와요. 수영을 잘하지 않아도 열심히 헤엄쳐 가면, 언젠간 그 섬에 도착하겠죠.” 비는 배우로 검증되지 않은 자신을 미더워하지 않는 시선이 불쾌하지 않다고 했다. 아직 보여준 게 없으니 그럴 수 있다면서. 그리고는 “기다리라”고, “자신있다”고 되뇌었다. 그런 그를 한번 믿어보고 싶어졌다.

관객이 원하는 코드에 새로움을 덧붙이다,<색즉시공>

■ Story 늦깎이 대학생이자 차력동아리 회원인 은식(임창정)은 에어로빅부의 은효(하지원)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소란스러운 기숙사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수줍고 애틋한 마음을 키워가지만 상황은 늘 은식에게 불리하다. 주체할 수 없는 몸의 정열이 수시로 말썽을 일으키는데다 은효가 교내의 바람둥이 킹카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효가 임신을 한 채 버림받게 되자 은식의 사랑은 더욱 진실해진다. ■ Review <색즉시공>은 윤제균 감독의 재능을 한눈에 보여준다. 데뷔작인 <두사부일체>가 다소 엉성한 품새로 조폭영화의 흐름 위에 올라탄 코미디라면, 두 번째 영화 <색즉시공>은 대중영화로서 대단한 짜임새와 유려함을 과시한다. 물론 이 영화의 소재나 주제, 스타일이 전통적으로 평론계가 지지해온 것과는 거리가 있고, 관객 가운데서도 일부는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나’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가 늘어놓는 화장실 유머나 관음증은 뻔뻔스럽다. 그러나 한국의 주류 관객이 선호하는 코드들을 잘 간추려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거기에 한두 가지 새로움을 덧붙임으로써 감독 자신이 선정한 위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바꿔 말하면 연출가보다는 기획자로서의 성공이 먼저 눈에 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의 섹스영화들이 나이 꽉 찬 성인들의 불량한 애정행각을 묘사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불륜을 엿보는 위치에 놓이도록 만들었다면, 최근에는 기혼여성, 중학생, 노인 등 성이라는 이슈에서 소외되었던 계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 두드러진다. <색즉시공>은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스무살 언저리 대학생의 현실적인 성 감각을 건드린다. <색즉시공>은 젊은 관객에게 ‘너 바로 이렇지’라고 들이댄다. 이러한 직설법은 관객의 분열증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결혼을 하거나 여관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지만 성적인 에너지로 보자면 일생에 가장 왕성한 청소년 혹은 20대 초중반의 관객은 스크린 어디에서도 그들의 실제적인 성과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섹스라고는 도무지 관심 없는 착하고 아름다운 젊은이로 묘사되거나, 아니면 아예 부모도 스승도 몰라보는 뒷골목 아이들이나 되어야 섹스 이야기가 비로소 중심에 오른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육체는 도색잡지나 인터넷 성인 사이트, 불법 비디오, 화장실 유머 사이를 떠돈다. <색즉시공>은 이들의 삶에서 섹슈얼리티가 일상적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아울러 그것의 표현 형태와 상상력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해준다. 이 영화에서 섹슈얼리티를 묘사하는 방법은 엽기적일 만큼 과장되어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리얼하다고 여겨진다. 칙칙하고 부담스러워서 외면하고 싶다는 느낌 대신 비록 어처구니없지만 가볍게 웃으면서 인정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마저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윤제균 감독은 이렇게 직설적인 접근법에 균형과 안정감을 부여하는 장치를 여럿 깔아두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정신없는 ‘섹스 어드벤처’ 와중에 서정성과 순박함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은효를 바라보는 은식의 초반 시선부터 은효의 주위를 맴도는 은식의 초라한 모습, 임신 중절 수술을 한 은효를 위로하려는 은식의 애절한 노력 등이 코미디의 리듬과 공존하고 있다. 조연급 캐릭터들이 슬랩스틱이나 시트콤처럼 보이는 과장된 대사와 액션에 많이 의존하는 반면, 두 주인공에게는 뚜렷한 이야기선을 부여하고 코미디와 드라마 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도록 했다. 이같은 효과로 인해 후반부 들어 멜로드라마 플롯으로 귀결되는 데 무리가 없다. 코미디가 강하면 드라마가 약하고, 드라마나 캐릭터를 고민하면 코미디가 실종되는 주류 상업영화의 딜레마를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차력동아리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에어로빅부와 한방을 쓰게된다. ♣ <색즉시공>은 섹스에 대한 젊은이들의 다양한 태도를 요약해서 보여준다. ♣ 또한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라는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 <색즉시공>의 또 다른 관심사는 젊은 육체가 주는 매혹이다. 굳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서 폭발하는 육체의 움직임이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들 가운데 하나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차력이나 에어로빅과 같이 육체를 격렬하게 사용한다. 배우들이 대강의 동작을 흉내내고 어려운 부분은 대역을 써서 눈가림 편집을 한 것이 아니라, 임창정과 하지원을 비롯한 배우들의 동작이 하나같이 그럴싸한 수준이다. 주연급 배우들에게 석달이 넘도록 연습을 시킨 것은 단순히 감독의 결벽증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영화의 목표 자체가 육체의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에어로빅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섹스장면까지 화려한 카메라와 편집을 통해 거침없이 보여주고 상당한 러닝타임을 할애한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급진적인 것이 그 자체로 자랑이 아닌 것처럼, 보수적이라고 해서 감독이 안이한 타협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윤제균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섹스를 향유하되 여성의 몸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것과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랑을 하라고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요즘 젊은 관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잔소리’가 아닐까 싶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단편 Review] 모든 천사는‥‥/그해 아폴로 11호는‥‥/단팥죽

→ 단편리뷰 모든 천사는 수위를 꿈꾼다 ■ Story 고정초등학교는 이제 학생 수가 네명밖에 되지 않아 폐교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날인가 학교를 찾은 두칠은 아버지의 직업을 이어받아 이 학교의 수위가 되고 싶어한다. 교장선생님이 시킨 일거리들을 해내면서 두칠은 학교를 바꿔간다. 우물에 빠져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만수를 데리고 나와 학생수가 다섯이 된 고정초등학교에는 이제 신입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 Review 수위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두칠은 사실 천사였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는 수위를 꿈꾼다>. 동화가 어떻게 하여 행복에 이르는 것인가를 꼼꼼하게 생각해본 흔적이 이 영화에는 역력하다. 수위가 되려 하는 두칠에게 교장선생님은 꽃을 알아야 한다고 하고, 토끼의 눈이 왜 빨갛냐고 묻고, 담장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두칠은 척척 하나씩 해결해간다.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총명한 소년처럼. 종종 그 목적지가 행복이 되기 위해서 동화 속에는 ‘임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면서 모든 게 완성된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우물에 빠져죽은 줄로만 알았던 만수를 데리고 나와 마침내 학교를 즐거운 동산으로 만든 두칠은 또 어디론가 도착해 수위가 되기를 자처할 것이다. 그해 아폴로 11호는 달에 갔을까 ■ Story 철없는 33살의 고모 희라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했던 그날에 태어났다. 매일 매일을 띠동갑 조카와 달그림을 그리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할 정도로 그녀는 아직 철이 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집안 식구들은 결국 그녀를 ‘거기로’ 보내기로 한다. 아마도 그녀가 돌아오는 날에는 많이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조카는 말한다. ■ Review <그해 아폴로 11호는 달에 갔을까>에서 아폴로 11호가 정말 달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에서 보았던 것처럼 조작된 사실일 거라고 확신하는 아이의 말에 고모 희라는 화를 낸다. 이유가 있다. 그녀는 달나라에서 채 크지 않은 채로 지구로 내려온 아기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구에서는 언제까지나 마음이 크지 않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결국 그녀가 다시 거기로, 아마 달로 돌아간 것은 다시 지구로 오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수많은 달나라 아기씨들이 지구력의 시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소곤거린다. 그리고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착한 동화라기보다 자라기 싫은 어른들이 보고 싶어하는 그림들을 보여주는 그림 일기장이다. 그들이 살기에 지구는 너무 늙었다고 영화는 생각한다. 단팥죽 ■ Story 어느 눈 내리는 겨울, 한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와 단팥죽을 먹는다. 바깥은 춥고 바람이 분다. 창문에 붙어 선 ‘눈사람’은 단팥죽을 먹는 식당 안의 사람을 바라본다. 그리고 창문이 열리면, 어느새 그 눈사람은 사람이 되어 단팥죽을 먹고 있다. 단팥죽을 다 먹은 눈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물기가 서려 있다. ■ Review <단팥죽>은 뚜렷하게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로, 감정들이 배제되거나 묻어나게 하면서 사람과 눈사람을 맺어준다. 식당 안에서 단팥죽을 먹던 그 무표정의 남자는 어느새 바깥에서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눈사람으로 바뀌어 있다. 따듯함의 내부와 차가움의 외부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열리고 닫히면서 하나의 형상으로 겹쳐진다. 한명의 배우가 두 인물을 연기하면서 이들은 사실 한 (눈)사람의 두개의 마음으로도 이해된다. 그래서 눈사람이 소망하는 내부의 따듯한 온기는 스스로를 녹이는 슬픔이 되어갈 수도 있다. 주인이 창문을 닫고 바람소리가 걷히고, 눈이 멈추면 (눈)사람은 가득히 물이 되어 있다. <단팥죽>은 최소한의 세트로, 최소한의 인물로, 최소한의 행위로 감정을 담아낸다. 거기에서 단팥죽은 안과 밖의 마음을 하나로 만나게 해주는 대상이다.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