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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LA] 이야기의 원가는 얼마가 정당한가

11월1일로 내정된 할리우드 작가들의 파업전야인 할로윈 데이. 협상안을 두고 WGA(미작가협회: Writers Guild of America)와 AMPTP(영화 및 텔레비전 제작자연맹: Alliance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Producers)가 여전히 의견의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1930년대, 새로운 매체로 등장한 유성영화에 이른바 멋진 대사를 입히기 위해 긴급 수송해왔던 동부 출신의 작가들(주로 뉴욕의 브로드웨이 작가들)과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불만을 감추지 않았던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제작자들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릴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을지도 모른다. 1988년에 마지막으로 이루어졌던 6개월에 걸친 작가파업은 그로 인한 산업의 피해 규모가 총 5억달러에 이르렀는데, 현재 텔레비전의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되고 있는 수많은 리얼리티쇼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와 대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리얼리티쇼의 출발점이자 정의이지만,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잡은 현실 속 리얼리티쇼 뒤에는 작가의 대본이 엄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번 WGA의 주장은 바로 이러한 리얼리티쇼의 경우에도 작가들에게 수익 배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파업이 일단 시작되면 아마도 더 많은 리얼리티쇼나 연예인 인터뷰, 재방송 등이 텔레비전의 빈곳을 메우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반적인 전망이다. 다큐멘터리나 외국영화, 영국 텔레비전 시리즈에는 이번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현재 할리우드는 하루하루 새로운 협상안에 대한 WGA와 AMPTP의 성명을 주시하며 초긴장 상태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단순히 두 세력간의 이해관계의 대립을 넘어서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산업 표준의 변화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즉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냐는 부분이다. 무형의 자산인 이야기는 사고팔기 위해서 이야기를 담는 그릇, 즉 포맷의 가격에 따라 가치가 교환된다. 1988년, WGA가 동의한 비디오테이프 하나의 생산원가를 기준으로 한 수익배분은 현재 시장의 표준이 된 DVD 한장의 생산원가를 생각해본다면 분명 이견의 여지가 있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는 재생산 비용을 최소화시켜버림으로 인해 수익모델에 큰 혼란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DVD뿐만 아니라 뉴미디어 및 인터넷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수많은 콘텐츠에 이르면 더욱 복잡해진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할리우드를 시발로 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곧 전세계로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파업이 시작되든 극적으로 타결이 되든 간에 여전히 작가들이 책상 위에서 글을 쓰고 있을 것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차라리 무성영화가…

MBC 텔레비전의 미스터리 오락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재연 배우들 가운덴 한국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다. 에피소드의 배경이 한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나라들일 땐 한국인 배우들이 한국어로 연기를 하고, 그 밖의 지역일 땐 외국인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를 한다. 외국인 배우들 가운덴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도 있는 듯, 말투가 천태만상이다. 또 전문 연기자가 아니니만큼, 대사말고도 연기가 전반적으로 썩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래도 비-아시아권 사회가 배경인 에피소드에 외국인 배우가 나와 영어로 연기를 하는 건 그 에피소드의 현실감을 높이는 데 얼마쯤 이바지한다. 유럽에서고 남아메리카에서고 죄다 영어만 쓰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에피소드에 따라 가장 알맞은 자연언어를 골라 이야기를 쓰는 것은 기술적 재정적으로 불가능할 게다), 이를테면 독일이나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에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 배우가 나왔을 때보다는 영어를 쓰는 외국인 배우가 나왔을 때 시청자들은 더 큰 실감을 느끼며 이야기에 빨려들게 된다. 거기서 영어는 한국 바깥세상의 기호, 또는 동아시아 바깥세상의 기호다. 비평가가 아닌 평범한 영화 관객에겐 이야기에 몰입하는 게 복이다. 그 복을 방해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배경과 서로 엇걸린 자연언어다.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피아니스트>는 배경이 오스트리아 빈이지만, 프랑스 배우들이 나와 프랑스어로 연기한다. 물론 등장인물들은 죄다 오스트리아 사람이므로 배우들의 입에서 나오는 프랑스어는 독일어로 간주된다.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자막에 의존해서 이 영화를 볼 때는, 장면의 현실감에 그리 큰 문제가 없다. 그에게 이 영화의 프랑스어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영어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 언어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볼 땐, 빈에서 빈 사람들이 쓰는 프랑스어 때문에, 그가 누리고자 하는 현실감이 훼손당한다. 멜 깁슨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출연한 배우들을 고생시키며 굳이 아람어와 라틴어를 쓰게 한 것은 ‘유식한’ 관객의 이런 현실감 해리를 막기 위해서였을 테다. 영화에서만은 아니지만 특히 영화에서, 영어는 진정한 보편어다. 할리우드영화가 미국이나 다른 영어권 사회만을 배경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그 영화들은 공간적으로 지구 곳곳과 은하계 저편을 배경으로 삼는다. 어디서고 등장인물들은 영어를 쓴다. 영어는 단지 통-공간적일 뿐만 아니라 통-시간적이기도 하다. 이집트의 파라오도, 먼 미래의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영어를 쓴다. 사실 ‘유식한’ 관객의 회의가 공간적 합리성의 운산을 넘어 시간적 합리성의 운산에까지 미치면, 몰두해서 볼 영화가 없다. 영화 속에서 사자왕 리처드가 쓰는 현대 영어는 그의 현실감을 깨기에 충분하다. 실제의 사자왕 리처드가 썼던 영어는 현대 영어 사용자들에게 불가해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그 시절 잉글랜드 왕실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고 프랑스어를 썼다. 이 모든 영화들에서 현대영어는 고대 이집트어로, 중세 노르망디의 프랑스어로, 은하계 저편 생물체의 미지 언어로 간주된다. 그렇게 간주해야만 이야기에 빨려들 수 있다. 그 영어를 그저 통역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이겠거니 여기지 않으면, 몰입의 복을 누릴 수 없다. 영어권 바깥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도 상업적 타산에 따라 영어로 만들어지는 일이 많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니고 그래서 일상적으로는 영어를 쓰지 않을 배우들도 그런 영화 속에선 영어를 쓴다. 그들 가운데 어떤 배우들의 영어는, 영어권에 살아보지 않아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내 귀에도, 방언적 허용 너머에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관객은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훨씬 더 예민하게 느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배우들에게 편한 언어로 영화를 만들고 자막을 다는 게 낫지 않을까? 대사는 연기의 중요한 부분이다. 배우의 뛰어난 자질 가운데 하나는 대사 처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이다. 영어권 바깥 사회에서 어설픈 영어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실감을 훼손하는 데서 더 나아가, 연기의 그 중요한 부분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에피소드별로 배우의 인종과 언어를 바꾸듯, 적지 않은 할리우드영화가 현실감을 높이려 중간에 언어를 뒤섞기도 한다. 냉전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스파이영화에서 소련 스파이들(물론 미국인 배우다)은 이따금 러시아어를 쓴다. 영화 <대부>의 마피아들은 저희들끼리 더러 이탈리아어로 얘기한다. 그 등장인물에게 러시아어나 이탈리아어는 모국어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러시아 사람이나 이탈리아 사람 귀에 그 미국 배우들의 러시아어나 이탈리아어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릴까 하는 궁금증. 혹시 ‘깨는’ 것 아닐까? 이리 지레짐작하는 것은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끔 듣는 한국어가 도무지 한국어답지 않은, ‘깨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현실감에 관한 한 차라리 무성영화 때가 나았는지 모른다.

[What's Up] 영국영화의 박스오피스 습격사건

영국영화의 상업적 르네상스가 오려나. 오랫동안 영국영화가 시장에서 재기할 가능성이란 대처 총리가 노동운동에 뛰어들 가능성에 가까웠다. 그러나 2007년은 영국영화가 오랜 침잠기를 벗어나 수면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보여준 해로 평가받을 듯하다. 현재까지 영국영화 자국점유율은 무려 27%에 달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도의 19%에서 8%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뜨거운 녀석들> <미스 포터>와 <속죄>의 성공이 자국영화 점유율 상승에 단단히 한몫을 했고, 올해 박스오피스 상위 20위권에 오른 영국(혹은 합작)영화들은 무려 16편에 달한다. 지난해의 3편에 비하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기념비적인 자국영화 점유율 상승을 ‘전반적인 박스오피스 규모의 확장’과 ‘다양한 장르를 자랑하는 영국영화들의 등장’이 불러일으킨 동반효과로 풀이한다. 전체 박스오피스의 규모가 올해 유독 상승한 구체적인 이유는 3가지다. 주목받았던 텔레비전 시리즈들의 동반 실패, 거대한 축구 매치의 부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록적으로 끔찍했던 여름 날씨. 특히나 날씨가 형편없었던 올해 7월은 1970년 이후로 영국 박스오피스 역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린 달로 기록됐다. 거기에 강력한 할리우드 합작영화와 양질의 자국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니 자국영화 점유율도 동반 상승 효과를 거둔 셈이다. 영국영화진흥위원회는 “할리우드로부터의 장기적인 투자 획득과 강력한 자국영화의 생산을 지속적으로 짝지울 수 있다면, 영국 박스오피스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합작으로 만들어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성공으로 이루어진 사상누각이라면? 물론 영국영화진흥위원회는 솜씨 좋은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 올해 영국 영화계가 <히스토리 보이스> <노트 온 스캔들> <라스트 킹>처럼 다양한 장르의 수작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희순] “본의 아니게 겸손해지는 인생이다”

<남극일기> 개봉 직후 박희순은 영화에 쏟아진 온갖 혹평에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게 네티즌”이라며 혀를 내두른 바 있다. 그런 그가 요즘은 포털 사이트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곤 한다. <귀여워> <가족> <남극일기> 등에서 악역 전문 배우로도 통했던 그는 현재 “정신없이 소중하신”, “청초한 외모의”, “박희순 오빠” 등 어마어마한 수식어에 휩싸여 있다. 시간 순서대로 보자면 독특한 구성과 전개로 소수의 열혈팬을 만들어낸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 이후 역시나 독특하고 빠른 전개로 관객을 흡입하는 스릴러 <세븐데이즈>가 있었다. 보물을 위해 여자를 이용하는 비열한 인간인 줄 알았으나 나름의 사정을 간직했음이 밝혀지는 조폭 민철로, 한 발짝 뒤에서 오랜 친구를 지켜주는 모자라지만 정감어린 비리형사 성열로, 불같은 네티즌의 호기심을 뒤늦게 달궈버린 이 남자. 드라마 촬영과 함께 수십 개의 온·오프라인 매체 인터뷰를 병행했고, 전날까지 <얼렁뚱땅 흥신소>의 마지막 촬영과 뒤풀이에 참석했다는 그의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앞으로 그는 그처럼 얼떨떨한 마음으로 급작스런 유명세를 더욱 체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헨젤과 그레텔> <바보> 등 그가 출연했으나 개봉 기회를 잡지 못했던 영화들을 통해 박희순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기억해주시길. <얼렁뚱땅 흥신소>와 <세븐데이즈>가 그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12년간 극단 목화에 몸담았고, 지난 5년간 10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의 내공은 좀더 느긋하고 오래도록 즐기고 싶다. -<얼렁뚱땅 흥신소>의 낮은 시청률과 열렬한 인기도 놀랍지만, 오랫동안 정극을 했던 배우가 그렇게 TV 드라마 출연을 했다는 것도 의외였다. =예지원이 <얼렁뚱땅 흥신소>의 함영훈 PD와 친한 사이였다. 또 건달 역할에, TV인 것도 걸려서 계속 도망다녔는데, 막판에 (예)지원이 (이)선균이며 (임)원희까지 동원해서 설득했다. 건달이라지만 러브라인도 있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다니, 인간적인 매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지원이한테 한턱 내야 할 텐데. -영화에 비하면 촬영 속도도 빠른 편인데. =<세븐데이즈>가 더 빨라서 괜찮았다. (웃음) 문제는 다른 캐릭터들은 만화처럼 통통 튀고 재미있는데, 나만 혼자 무게를 잡으려니까. 멋있으면서도 양면성을 보여줘야 하는 게 어려웠다. 드라마라는 게 참 미묘해서, 남자들이 들으면 닭살 돋는 멘트들이 많더라. -혹시 그거? “당신의 입술은 생각보다 달콤했어.” =그건 감독님도 빼자는 걸 내가 하자고 그랬다. 원래 대본에 있는 대사였는데, 그게 지원이가 연기한 희경에게 정을 떼도록 만들려는 야비한 말인 건 분명한데, 말 자체를 좀더 슬프게 하면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질 것 같았다. 어차피 그전에 온갖 닭살 멘트 다 했는데 그것만 안 하면 그것도 이상하잖나. -<세븐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에 따르면 예전 제작진이 <목요일의 아이>라는 이름으로 찍었던 시나리오에는 성열에 대한 설명이 구체적이고 전형적이었다더라. =일단 당시 시나리오에 비해 <세븐데이즈>에는 성열의 분량이 훨씬 많아졌다. 단선적인 캐릭터가 복합적이 되고, 보여줄 것도 많아지고. 그때는 성열이 유괴사실을 모르는 채 흐지부지 끝나는 거였는데. 예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자잘한 재미도 많아지고, 중요한 반전이 스포일러로 미리 알려져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됐다. -원래 본인의 성격과 성열은 많이 다를 것 같다. =다르다. 그렇게 멋있지 않지. (웃음) -성열처럼 능글맞고, 구시렁거리는 건 잘 안 할 것 같다는 얘기다. =나도 구시렁거린다. (웃음) 재밌는 얘기 있으면 좌중을 휘어잡고 막 떠드는 게 아니라 옆사람 붙잡고 작게 시도하기도 하고. -<세븐데이즈>의 시나리오에도 지연에게 성열이 고백하는 장면이 있었고, 실제 찍기도 했다던데. =그게 은영에게 딸이 유괴됐다는 말을 듣고, 성열이 굉장히 쑥스럽게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널 짝사랑했다, 말하는 장면이다. 유독 최영환 촬영감독님이 그걸 닭살스럽다고 되게 싫어했다. (웃음) 그 때문이었는지 그 대사만 빠졌더라. 빼길 잘한 것 같다. 그 신 자체에서 성열의 사랑이 보여지니까 굳이 말을 안 해도. 그런 게 또 한국 남자인 것 같고. -그 정도까지 도와주는데 누가 좋아하는 걸 모르겠나. 편집실 취재 갔다가 그날 저녁 때 박희순씨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편집실에 자기 분량 보면 떨리지 않나. =내 부분 작업하려고 하면, 나 나가면 하라고 그랬다. (웃음) 촬영 때는 너무 행복하고 재밌어서 감독님께 “제 분량 다 잘려도 좋다”고 말했지만 막상 편집할 때 되니까 굉장히 두근거리더라. (웃음) 그래도 결국 잘려나간 신이 거의 없었으니 너무 고맙다. 소문에 의하면 신민경 편집기사가 성열 캐릭터를 너무 좋아해서 자르려고 하면 다 막았다는 얘기가 있더라. (웃음) -여러 인터뷰를 보면 애드리브 이야기가 많다. =내 전작들은 대체로 무거워서 그럴 수 없었지만, 이번 영화는 내가 자유로워야 할 것 같아서 감독님께 미리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다고. 되게 개방적이어서, 맘대로 하라고, 글을 써와도 된다더라. 어떤 대사는 감독님이 현장에서 애드리브로 만들어주기도 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연과 성열이 열쇠수리공 불러서 아파트 문을 열려다가 안 되니까, “직업의식이 없어”라며 수리공을 구박하는 장면. 그게 윤진씨와 내가 처음 함께하는 첫 촬영이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한 뒤에 뻘쭘하게 있다가 슛 들어가면 갑자기 친한 척해야 하는 상황. 근데 처음에 감독님은 성열을 계속해서 방방 뜨는 식으로 설정했다. 나는 그 부분을 좀 틱틱거리기도 하고, 꿍얼거리는 캐릭터로 생각했는데 서로 의견이 달랐던 거지. 감독님 버전, 내 버전으로 찍었고, 현장 편집본에는 감독님 버전이 있었는데, 완성된 걸 보니 내 버전이 있더라. -계속해서 달려나가는 심각한 영화 속에서 성열의 캐릭터는 유일하게 밝은 구석 아닌가. 부담이 있었겠다. =근데 감독님이랑 궁합이 잘 맞았다. 원신연 감독은 어떤 요구사항이 있으면 뜸들이지 않고 즉석에서 “성열이가 이럴 리가 없다”고 말한다. 성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 거지.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성열이가 이렇다, 저렇다,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경우 편집에서 잘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여러 ‘기술’을 구사하다가 흐름을 깰 수도 있어서 수위 조절이 힘들다. =고민이 많았다. 너무 웃음 위주로 가서 해가 되도 안 되지만 김윤진씨의 무거운 분위기에 말리면 영화가 지루하지 않겠나. 줄타기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감독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일단 저지를 수 있었다. -너무 과하다며 제지를 당할 때도 있지 않았나. =후반부에 성열이 용의자를 붙잡으려고 할 때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를 막 질렀는데, 테이크 끝나자마자 최영환 기사, 원신연 감독, 김윤진씨 셋이서 공격을 해대더라. “에이, 너무 튀려고 연기를 한다”, “열연을 하지마, 응?”, “대충해, 우리 다 대충하잖아”. (웃음) 그렇게 편하게 얘기해주니까 나 역시 “알았어, 그만 좀 해, 창피해 죽겠어”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만일 심각하게 감독이 옆에 와서 “감정 좀 죽여주시구요” 이랬다면 서로 불편했을 텐데. -원신연 감독과 심각하게 의견이 달랐던 적은 없었나. =별로 없었다. 트러블이라면 오히려 윤진씨와 있었지. 윤진씨는 표현하고 싶은 심정이 있는데 감독님이 그걸 못하게 하니까. 난 중간에서 그랬다.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줘~. 감독님 삐치잖아, 어차피 편집할 때 감독님이 그거 쓴단 말이야. (웃음)” -무대인사 다니면서 박희순씨가 박수를 더 많이 받아서 김윤진씨가 삐칠 정도였다던데. =영화 상영 전에 하면, 윤진씨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데, 상영 뒤에는 내 캐릭터를 알게 되니까 많이들 좋아해주시긴 하더라. -이런 걸 언제 찍었나 싶은 것도 있지 않았나. =현장편집을 전부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빨리 움직였으니까. 내가 영화에 나올 때 표정이 어떤 게 있다는 걸 다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이런 표정도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일단 멋있게 나왔지. 최영환 기사 지론이 무조건 남자배우는 멋있게, 여자배우는 예쁘게라니까. (웃음) -부모님께서 아들이 멋지게 나와서 정말 좋아했겠다. =일단은 아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니까 정말 좋아하신다. 영화는 두번 보셨다. 어른들 보시기에 화면이 너무 빠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재밌어 하시더라. -게다가 전작처럼 악역도 아니고, 밝고 긍정적인 인물이니. =<러브토크> 보신 어머니께서, “악역이 차라리 낫다, 그게 뭐니” 그러시더라. (웃음) <세븐데이즈>를 처음 볼 땐 내가 다칠까봐 액션신마다 조마조마했는데 두 번째는 친구들이랑 즐겁게 보셨다고. 하여튼 어머니는 무조건 아들이 많이 나오면 좋아한다. (웃음) -<러브토크>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거기서는 굉장히 답답해 보였다. 어머니가 싫어하신 게 이해가 간다. =그저 내가 캐릭터 잡기를 내가 가진 몇 가지 성격 중 다운된 상태가 지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뿐이다. 무기력하고 답답한 시기의 나. 거기도 분량이 훨씬 많았는데, 40% 정도 잘렸다. 답답한 면모만 남아서 속상하긴 했다. 캐릭터 설정이 아니라 연기를 못한다고 보는 분들도 있었다. -그럴 땐 억울하겠다. =중요한 스트레이트는 누구나 거기에 힘을 줘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잽을 얼마나 잘 구사한 다음에 스트레이트가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잽들이 편집에서 다 사라져버리면 배우의 캐릭터 구축에서 손해가 막심하다. <세븐데이즈>는 작은 잽들이 다 살아 있어서 스트레이트가 더 좋아 보였던 영화다. -<2001 이매진>에 나왔더라. =<남극일기>까지만 해도 <2001 이매진> 배우라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다. 장준환 감독이랑 제대로 영화를 함께 다시 해봐야 할 텐데. 예전엔 내가 친구 덕을 보려고 했는데, 이젠 그 친구가 내 덕을 보려고 한다. (웃음) -그 영화의 현장은 정말 웃겼을 것 같다. =나야 뭐 정말 난생처음 영화연기였으니 신기했고. 촬영은 봉준호 감독이었는데, 두 거장을 첫 영화에서 만났으니. 열흘간 촬영하면서 내내 밤을 샜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은 카메라 잡고 졸고, 감독은 레디 액션 부른 다음에 졸고. (웃음) 아, 거기 총 쏘는 장면이 있었는데, 장준환 감독이 겁이 되게 많아서는, 레디 부른 다음에 귀를 두손으로 막고 눈을 꼭 감은 채로 “액션!” 이러는데, 그게 어찌나 웃겼는지. (웃음) 그래도 그 영화처럼 진지하고 독특하고 웃긴 블랙코미디를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아직 못했다. -장준환 감독과는 <2001 이매진> 이후 한번도 함께 작업한 적이 없었나. =뮤직비디오. -앗, 장준환 감독과 문소리씨가 사귀게 되었다는 그 뮤직비디오! =(문)소리랑 셋이서 술도 많이 먹었다. 둘이 사귄다는 것도 나만 알고 있었다. 셋이서 술 먹다가 느낌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서너 시간 동안 계속 추궁했더니, 준환이는 거의 고백 직전까지 갔는데 소리는 끝까지 잡아떼면서 화를 내더라. 결국 그냥 알았다고, 난 사귀는 걸로 알 테니까 그냥 너희도 모른 척하라고 넘어갔다. (웃음) 신혼집에 놀러오라는 말은 들었는데, 올해 이래저래 바빠서 아직도 못가봤다. -어쨋거나 이젠 나쁜 남자 혹은 조폭 전문배우라는 말은 쑥 들어가겠다. =사실 개봉 남겨둔 영화 중에 한편 더 있다, 악역으로 나오는 거. (웃음) 하지만 박희순을 몰랐을 때의 악역과 알았을 때의 악역은 확연히 다르다. 저 사람이 연기변신을 했구나, 와 박희순 쟤는 원래 나쁠 거야, 는 천지차이니까. -그래도 <세븐데이즈>와 <얼렁뚱땅 흥신소>에서는 혼자만 멋있게 나온 셈 아닌가. 속된 말로 ‘따먹는 연기’랄까. 어떻게 보이면 본인의 캐릭터가 살지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극단 목화의 시스템 자체가 처음 대본이 연습을 통해 계속 바뀐다. 배우가 연습 때 무얼 준비해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역할이 커지고 작아진다. 매 연습이 오디션이다. 오태석 선생님이 늘 하는 말씀이 “잘나갈 때 조심해라”였다. 공연을 하다보면 반응이 오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힘을 주면, 그러니까 ‘따먹는 데’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에 빠진다. 그래서 관객반응이 대박나는 부분은 오 선생님이 호흡이나 대사를 바꿔버린다. -12년이나 있으면서 오태석 선생님이 예뻐해 주셨던 모양이다. =나중엔 조연출 비슷한 역할까지 했다. 후배들과 연습도 맡아하고. 선생님이 이용할 여지가 많으니까 잡아두려고 했겠지. (웃음) 선배들이 하나씩 나가고, 내가 나갈 차례였는데, 임원희며 유해진이 나가다보니까 날더러 “애들 관리 못했으니까, 넌 몇년 더 있어” 이러시더라. (웃음) -그래도 용케 박차고 나왔다. =같은 작가, 같은 연출, 같은 공간, 같은 배우들과 하니까 아무리 변신을 해도 비슷한 연기가 나올 수밖에 없더라. 나와서 처음엔 <록키 호러 쇼> 같은 뮤지컬을 했는데 그때 이진아 연출을 만나서 전환점을 맞았다. 예술적인 연극을 하다가 대중적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달까. 나는 항상 엘리베이터 하나없이 한 계단씩 밟아온 것 같다. 방심할 만하면 태클이 들어왔다. 출연작이 개봉을 안 한다든지. (웃음) 본의 아니게 겸손해지는 인생. 지금도 뭔가 하나를 고집하기보다는 많은 걸 경험하면서 커지고 싶다. -2002년부터 영화를 했는데, 목화를 그때 나온 건가. =다른 선배들은 왔다갔다 할 동안 난 12년간 한번도 외부작품을 안 했고, 그냥 선생님께 3년 정도 바람 쐬고 오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근데 영화에서도 자리를 못 잡으니 다시 돌아가기도 창피하고 애매하더라. -이제는 돌아갈 수 있겠다. =아직 멀었다. (웃음) 좋은 작품,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이번에 특히 좋은 감독을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오태석 선생님이 멍석을 깔아줬을 때 내가 신나게 놀듯이 영화에서도 그런 스승 같은 분을 만나고 싶으니까. 그중 하나가 원신연 감독님이고. 예전에 (송)강호 형이 “시나리오 소용없다, 감독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던 게 뭔지 알겠더라. (웃음)

[현지보고] 다람쥐 밴드의 크리스마스 습격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인 햇빛 쨍쨍한 로스앤젤레스. 한물간 작곡가 데이브(제이슨 리)는 예상치 못한 특별한 손님들을 맞이하게 된다. 가지런하던 데이브의 집안을 한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손님들은 바로 천방지축 다람쥐 형제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 데이비는 이 귀여운 존재들이 부엌을 엉망으로 만드는 재주 외에도 말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전망이라곤 없어 보이던 데이브의 음악은 다람쥐 형제를 통해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자신은 단지 ‘친구’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데이브와 그의 ‘가족’이 되고 싶어하는 다람쥐 형제. <앨빈과 수퍼밴드>는 팝 스타로 우뚝 서게 된 장난꾸러기 다람쥐 형제와 작곡가 데이브가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가게 되는 크리스마스용 가족영화이다. 몇 십년 동안 이차원의 화면에 머물러 있던 이들 사고뭉치 다람쥐 형제는 <앨빈과 슈퍼밴드>에서는 보송보송한 털에 둘러싸인 삼차원 캐릭터로서 그 귀여움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 다람쥐 형제는 반세기 전, 로스 바그다사리온 시니어에 의해 탄생했다. 1958년 음반을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된 장난꾸러기 다람쥐들의 목소리는 느리게 녹음된 노래를 빠르게 돌림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다람쥐 형제 특유의 목소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 음반을 만들어냈고 이후 장난꾸러기 앨빈, 영리한 사이먼, 귀여운 테오도르라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텔레비전 만화 시리즈로까지 영역을 넓히게 된다. 반세기에 걸쳐 이른바 미국 대중문화의 고전이 된 다람쥐 형제들은 원작자의 아들이자 80년 방영되었던 텔레비전 시리즈의 PD 겸 성우를 맡았던 로스 바그다사리온 주니어와 그의 아내 재니스 카르먼의 공동제작을 통해 2007년 크리스마스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앨빈과 슈퍼밴드>다. 그러나 그저 예전의 다람쥐들을 옛 모습 그대로 되살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몇 세대에 걸쳐 고른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고전만화 캐릭터를 21세기에 맞게 업데이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재능들이 필요했다. 제작진은 <심슨네 가족들>의 작가인 존 비티의 시나리오와, ‘리듬 앤드 휴즈’의 3D애니메이션 기술을 끌어들였고, 거기에 <다이하드4.0>으로 얼굴을 알린 저스틴 롱, <크리미널 마인드>의 매튜 그레이, 디즈니의 아이돌 스타 제시 매카트니 등 젊은 배우들의 목소리를 수혈했다. 팝 아이돌 스타의 산지인 LA를 배경으로 한 <앨빈과 슈퍼밴드>는 잠이 달아나는 건강식품이라며 휘핑크림을 듬뿍 담은 커피를 어린 다람쥐들에게 쥐어주는 탐욕스런 프로듀서 이안(데이비드 크로스), 2007년의 대형 스캔들 중 하나인 팝가수 애슐리 심슨의 립싱크 공연을 연상케 하는 립싱크 사건과 야유하는 관중 등, 오늘날 미국 팝 아이돌 세계를 가볍고 신나는 손길로 그려내고 있다. <앨빈과 슈퍼밴드> 정킷은 프로듀서 로스 바그다사리온 주니어가 소유한 샌타모니카 저택의 바닷바람이 부는 앞마당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소중한 자식의 생일파티를 여는 듯한 정킷이었는데, 프로듀서의 작품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클래식을 업데이트 하는 기분이었다” 다람쥐 형제 목소리 연기한 저스틴 롱, 매튜 그레이, 제시 매카트니 인터뷰 사고뭉치 다람쥐 형제의 목소리를 맡은 저스틴 롱, 매튜 그레이, 제시 매카트니. 세명의 배우가 함께 인터뷰에 참가하자 분위기가 꽤 소란스러워졌다. 롱과 그레이는 비슷한 무늬의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와서는 누가 먼저 입었느냐 가지고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젊지만, 롱 말대로 너무나 ‘일하고’ 싶어하는 그런 배우들이었다. 무척 유쾌한 삼총사였다.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저스틴 롱: 폭스에서 전화가 왔다. <다이하드4.0>에서의 반응이 좋아서 폭스랑 관계가 좋다. (웃음) 전화를 받자마자 “언제, 어디로 가면 돼요?”라고 했다. =매튜 그레이: 그리고 “얼마?”가 붙었겠지. (웃음) =저스틴 롱: 제일 중요한 부분이지. 사실 엄청 떨렸다. 왜냐하면, 오디션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날아갈 지도 모르니까. 원래 나는 사이먼 역으로 오디션을 받았다. (그러자 그레이가 “정말?”이냐며 동그랗게 눈을 뜬다.) =매튜 그레이: 결국 내가 붙고 네가 떨어진 것이구나. (웃음) - 힘든 점이 있었다면. =저스틴 롱: 더빙하는 내내 로스가 옆에 있었다. 엄청난 압박이다. 생각해보라. 앨빈 목소리를 몇 십년간 해온 로스가 내가 하는 연기를 보고, 하나하나 체크하고. =매튜 그레이: 로스는 이전 텔레비전 시리즈 클립을 보여주고는, “이런 목소리와 톤이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것과 달라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 그러니까 <카사블랑카>의 유명한 장면을 보여주면서, 바로 이렇게 해야 하지만 그건 또 아니다라는 소리랑 같지 않나. =저스틴 롱: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냥 직접 하시지 그래요,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기 일보 직전일 때도 있었다. 아니, 빈정거리는 소리가 아니다. 정말 그들이 바로 진짜 목소리였으니까. 왜 나를 쓰려고 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시 매카트니: 업데이트를 원했으니까. 우리는 기존의 캐릭터에 뭐랄까 힙한 요소를 살짝만 가미하면 되었는데, 그게 되게 어려웠다. 클래식에다 뭔가 새로움을 얹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목소리 연기를 해보니 어떤가. =제시 매카트니: 10회 정도 녹음했는데, 편안 옷차림으로 남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스틴 롱: 나는 연기할 때 손이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서 늘 의식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나처럼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들에게 목소리 연기는 최고인 듯. (웃음) 다람쥐들에게 윽박지르는 연기에 아이들이 화낼까 걱정이다 데이브 역의 제이슨 리 인터뷰 베레모를 쓴 제이슨 리는 인터뷰 내내 껌을 씹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옆집 아저씨 느낌이 훨씬 강하다. 실제 그에게는 확실히 캐릭터 데이브의 수더분한 모습이 있다. -오리지널 <앨빈과 수퍼밴드>에 대해 알고 있었나. =크리스마스 캐럴로 유명해서 알고 있다. 이들의 80년대 펑크 음반도 기억난다. -어린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4살이다. 이번에야말로 아들에게 좋은 아빠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이전 작품들이나 <내이름은 얼> 같은 TV 시리즈를 같이 본 적이 있는데 무척 지겨워하더라. (웃음) 아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에 출연한 것이 이번 영화의 가장 큰 보너스라고 할까. -극에서 데이브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인정하기를 꺼려한다. =글쎄, 왜 데이브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그 이유에 대해서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고. 결국 나중에 그들을 잃고 나서, 그 부재 속에서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인물이 전달되었다면 그것으로 내 몫을 다한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내 주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앨빈!!!!” 하고 그 조그마한 다람쥐에게 윽박지르는 데이브를 관객이 싫어하지 않게 할까 하는 부분이었다. 내가 화를 내는 장면에서 컷 사인이 떨어지면 감독에게 가서 이거 너무한 것 같지 않냐고, 아이에게 화내면 안 되지 않을까라고 걱정하곤 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이 있다면. =매일매일 5주일 동안 보이지 않는 다람쥐들을 상대로 혼자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 그것도 이 세 마리 다람쥐들은 같은 장소에 함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세 마리가 각각 다른 장소에, 그것도 계속 움직이면서 말이다. 그 모든 움직임을 상상하고 반응해야 했으니까 이러다가 미쳐버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데이브는 탐욕스러운 프로듀서 이안에게 말한다. “녀석들은 아이들이라고!” 당신에게 아이란 무엇인가. =놀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 가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성숙하고 영악하기까지 한 아역배우들과 마주치기도 하는데, 기분이 묘하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아무 걱정없이 재미있게 놀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아들은 아이다운가. =그렇다. 가끔 나랑 같이 디즈니 클래식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녀석은 뒤뜰에서 뛰노는 스타일이다. 비디오 게임은 절대 못하게 하니까. -텔레비전 시리즈인 <내 이름은 얼>로 확실하게 지명도를 굳히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해보고 싶나. =<내 이름은 얼> 이전에는 언제나 일거리를 찾으러 다녀야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조지 클루니가 아닌 이상 할리우드의 배우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겠나. 그래서 적어도 시리즈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남들이 하듯 늘 출근할 곳,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이 시리즈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는지 안 불러준다. 수염을 자를 수 없어서인가? (웃음) “이 다람쥐들은 진짜 자식과 같은 존재다” 공동 프로듀서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이어와 재니스 카르먼 인터뷰 공동 프로듀서이자 부부이기도 한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와 재니스 카르먼에게서는 캐릭터에 대한 엄청난 열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그들은 30여년을 이 캐릭터들과 함께하면서 실제로 그들을 키운, 미국의 다소 극성스럽기도 한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 그대로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거의 10년이 걸렸던 것 같은데.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 매일매일이 프로젝트가 엎어질지도 모르는 변수들로 가득한 10년이었다. 실사 합성이다보니 배우들의 연기, 애니메이션, 음악, 음향효과, 더빙 등의 모든 작업 과정에서 하나의 오차도 허용할 수가 없었다. -원작자가 당신의 아버지이고, 스스로가 30여년이 넘게 캐릭터와 함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는 애니메이션 하나하나, 연기 하나하나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 생각해보라. 당신 같으면 당신 자식을 낯선 사람에게 맡기고는, 몇년 뒤에 다시 찾아올 때까지 마음대로 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는 우리에게 진짜 자식과 같은 존재이다. -반세기 동안 몇 세대에 걸쳐 인기를 끌어온 캐릭터이다. 만화였던 원작을 실사와 3D애니메이션 합성 영화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로스 바그다사리언 주니어: 원작의 팬층이 세대마다 있기 때문에 3D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새롭게 재탄생하더라도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다워야 했다. 외모에 삼차원의 입체가 더해지지만, 그들의 말투나 말하는 태도, 행동 양식은 원작 그대로야 했으니까. 동시에 이번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그냥 말하고 노래하는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진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앨빈, 사이먼, 테오도르 였다. 이안이 데이브와 통화를 끊자 앨빈이 “데이브예요?”라고 하는 표정에는 데이브가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이브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어야 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성인용 대통령

“너무 좋아, 굉장해.” “제가 입에 좀 넣어도 될까요?” … “조철봉은 어느새 입 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이렇게 대담하고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상황은 처음인 것이다.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에 사인하는 분위기와 같다.”… “‘맛이 있어요.’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장선옥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눈웃음을 치는 얼굴을 보자 조철봉의 가슴이 미어지면서 목구멍이 찌르르 울렸다.” 조철봉은 살아 있다. 한때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조철봉이 너무 안 하는 것 같다”며 섭섭해했다지만, 조철봉은 요즘 활발히 하고 있다.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주인공인 그 조철봉 말이다. 인터넷판에는 칭찬인지 조롱인지 헷갈리는 독자 댓글이 달려 있었다. “이렇게 쓰니 얼마나 좋아. 독자들도 많아지고….” 조철봉은 ‘대북사업’에도 한창이다. 베이징에 본사를 둔 평화무역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최근 취임한 그는 북한의 천리마무역 부대표인 장선옥과 ‘딜’을 하는 중이다. 빼돌린 비자금의 분배비율을 놓고 탐색전에 돌입했다. 이 글이 실린 <씨네21>이 나올 때쯤이면, 두 남남북녀는 벌써 침대가 놓인 링에서 한바탕 겨뤘으리라 예상된다. 조철봉은 뻔뻔스럽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달성한다. 그 무기는 주로 ‘철봉 휘두르기’다. 이 낯뜨거운 소설에 대해 신문윤리위원회가 수십 차례에 걸쳐 주의경고를 내렸고, 여러 여성단체가 연재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철봉은 오히려 ‘언론자유의 상징’으로 둔갑했을 뿐이다. 청와대가 <문화일보> 구독을 중단하고, 일부 여당 의원들이 그 선정성을 공격하면서다. <문화일보>는 시련에 처한 조철봉을 끝내 버리지 않았다. 한때 철봉으로 하여금 조금 덜 하도록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강안남자’는 중국 신서에 나오는 ‘강안여자’를 모방한 제목이라고 한다. 얼굴이 강한(强顔) 남자를 뜻한다. ‘강하다’는 ‘두껍다’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소설 <강안남자>를 읽으며 대통령 선거 전선에서 활약하는 또 다른 강안남자를 떠올렸다. 10일도 안 남은 대선에서 강안남자 이미지에 어울리는 자는 누구일까. 아마도 상당수 독자들이 “추진력이 ‘강’하다”는 한 후보를 동시에 찍었으리라. 그는 최근 멋진 텔레비전용 정치 광고를 선보였다. 욕쟁이 할머니의 꾸중을 들으며 꾸역꾸역 국밥을 먹는 모습은 일견 훈훈하게 비칠 만했다. 네거티브로 시작했던 한 여권 후보의 광고와는 비교도 안 되게, 훨씬 감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했다. 한데 그 광고를 되풀이해 보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왜 그는 밥만 먹을까? 아무리 “배고프다”고 해도 뭔가 대꾸가 있어야 예의 아닌가? 그동안 많은 이들이 그를 상대로 욕쟁이 할머니 노릇을 했다. 욕을 하는 아이템도 다양했다. 자녀의 위장전입, 위장채용, BBK 주가조작 사건 연루와 부동산 투기 의혹, 마사지걸 비하 발언,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건물에서의 불법 성매매…. 그러나 그는 별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의 낯은 강했다. ‘강’해서인지 지지율은 끄떡하지 않았다. 소설 <강안남자>를 열심히 찾아 읽는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며 강추한다고 나무랄 이유도 없다. 그 소설에 관해 도덕적으로 심판하고 훈계를 늘어놓는 일은 진부해 보인다. 하지만 어린 자녀들에게 “참 재밌는 소설”이라며 일독을 권유할 부모는 없다. 그건 성인용이다. 소설 <강안남자>처럼 대통령 후보인 그에게서도 ‘성인용’ 냄새가 난다.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미·적분 수학문제처럼 어려운 BBK야 검찰이 무죄라고 우기는 상황이니 일단 제쳐놓고, ‘2차’는 또 무엇인가. 그는 여성단체 토론회에 참석해서 “2차가 뭔지 잘 이해를 못한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당신이 소유한 서울 서초동 건물 지하의 유흥업소에서는 여성 종업원들이 2차도 갔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게 스리슬쩍 넘겼다. 그 유흥업소의 간판들은 내가 사는 수도권 신도시에도 넘친다. 일곱살짜리 우리집 꼬마에게 ‘ㅇㅇㅇ섹시클럽’ 간판을 가리키며 “우리 새 대통령님 소유의 빌딩에서도 저런 집이 장사를 잘해 돈을 많이 벌었단다”고 설명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는데, 조금 멋쩍겠다. 18살 이하를 접근 금지시켜야 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성인용 대통령 후보’라는 말인가. 어? 진짜 ‘성인용’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뜬 그의 광고 동영상을 클릭했다. “명박 오빠, 못 믿어? 극비영상 대방출”이라는 큼지막한 헤드라인과 함께 “본 콘텐츠물은 19세 이상 관람을 권장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떠 있다. 18금에 준하는 표시까지 돼 있다. 깜짝 놀랐는데, 그 밑에 “사실은 전체 이용가~ ㅋ”라는 또 다른 문구가 흘렀다. 썰렁한 농담, 으로 위장한 진담처럼 느껴졌다. ‘밤의 대통령’ 조철봉은 눈앞의 비즈니스에 성공할 것인가. ‘낮의 대통령’ 후보인 이 아무개씨는 선거에서 승리할 것인가. ‘강안남자’들의 운명이 궁금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개운치 않은 낙관주의

이것은 볼티모어 하늘에서 출발한 음악이 방송사 세트장에 종착되는 이야기다. 열린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 향해가는 이야기, 내일을 말하며 어제를 더 어제처럼 보여주는 이야기, ‘굿모닝 볼티모어’에서 시작해 ‘굿이브닝 볼티모어’로 끝나는 이야기…. 감독은 영화 후반부에 도시의 이러저러한 소리와 박자를 거두어 <코니 콜린스 쇼> 안에 봉인한다. 조그만 러시아 인형이 더 큰 몸통 속으로 차곡차곡 들어가듯 인물들은 춤추면서 TV쇼 안으로 들어간다. 노래하며 차례차례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쿵’ 마지막 뚜껑을 덮는다. 영화가 끝날 즈음 나는 ‘트레이시’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첫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곤 그것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바탕 달게 자고 일어난, 미국이 꾼 낮꿈. 피로한 21세기의 백일몽. <헤어스프레이>는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낙관적인 영화다. 동시에 시종 긍정적이어서 이 낙관을 과연 낙관이라 할 수 있을까 묻게 만드는 영화다. 이 미국산 뮤지컬이 보여주는 희망은 박제된 연푸른부전나비 표본처럼 아름답고 평면적이다. <헤어스프레이>는 즐겁다. 트레이시를 위시한 10대의 꿈과 욕망은 ‘치이익-’ 시원한 소리를 내며 가볍게 분무된다. 사람들은 춤추고 화해하고 응징한다. 그 세계는 ‘재클린 캐네디’의 머리모양처럼 매끄럽고 둥글둥글하다. 트레이시는 노래한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아버지는 권고한다. 그럼 나가봐, 여긴 미국이야. 콜린스는 벨마에게 대든다. 이게 미래예요. 그러나 매력적인 대사는 따로 있다. “저 뚱땡이 빨갱이를 끌어내야 해”라든지 “(흑인과 백인을) 섞어? 이게 무슨 칵테일이야?”와 같은. 60년대의 긍지보다 그 시대의 편견을 드러내는 대화들. 인종차별을 다룬 부분은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다. 그것은 개인의 입신양명을 자주 다루는 뮤지컬 장르에서 드문 소재이기도 하다. 아쉬운 건 그 시기, ‘편견’이라기보다 ‘상식’에 가까웠을 혐오나 공포의 정서를 보통 사람들이 아닌 악인 몇몇에게 뒤집어씌운 점이다. 트레이시는 카메라 앞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모든 날을 ‘니그로 데이’로 만들겠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주위 스탭들이나 10대들의 낯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가 비추는 건 속물적인 벨마와 스폰서의 경악한 얼굴뿐이다. ‘미스 헤어스프레이’를 뽑는 생방송 중 무대 위로 흑인이 뛰어들 때도 마찬가지다. <헤어스프레이>는 작은 선(善)이 큰 악(惡)을 향해 벌이는 외로운 싸움이 아니라, 큰 선(혹은 다수의 좋은 사람들)이 작은 악을 물리치는 얘기로 끝을 맺는다. 흥미로운 건 트레이시의 ‘먹는 몸’, ‘흔드는 몸’이 ‘시위하는 몸’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특별히 의식이 있는 것도 책을 보는 것도 아닌 트레이시가(“전 온종일 <코니 콜린스 쇼>만 생각해요!”) 흑인들 편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과 함께 춤을 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구호’나 ‘당위’가 아니라 그들을 ‘몸’으로 먼저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적 가치에는 동의하면서 신체적 접촉 앞에선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상상하는 몸과 머리의 속도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다. 트레이시에게 흑인과 함께하는 게 ‘즐거움’인 반면, 내게는 ‘교양’이었던 셈이다. 비록 차별철폐란 피켓이 어정쩡하게 나오긴 하지만, 흑인과 ‘춤’으로 먼저 소통한다는 ‘헤어스프레이’의 설정은 뮤지컬이란 장르와 잘 맞아떨어진다. 다행히 미스 헤어스프레이의 우승자는 트레이시가 아니다. 물론 엠바도 아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수를 볼티모어 공동체로 불려나가길 원하는 듯하다. 이것은 물론 나쁜 결말이 아니다. 영화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본 것뿐인데, 이상하게 겸연쩍은 기분을 느낀다. ‘넌 큰 대가를 치를 거야’란 말과 달리 볼티모어 사람들도, 우리도, 너무 큰 것을 너무 쉽게 얻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옳은 구호’의 평편함에 비해 사람 속은 훨씬 깊고 구불거리고 복잡한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모닝’이 그닥 굿‘모닝’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볼티모어 사람들의 화려한 축제는 텔레비전 안에 그대로 갇혀버린 채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그렇게 갇혀 있는 채 열린 주장을 하면서 막을 내린다. 순전히 ‘즐겁자’고 만든 영화를 정색하며 살피긴 멋쩍지만 이왕이면 그 즐거움이 개운한 것이었으면 하는 욕심은 어쩔 수 없다.

김기덕 감독, 오다기리 조와 한팀된다

김기덕 감독이 만들 새 영화의 밑그림이 나왔다. 제목은 <비몽>(가제), “슬픈 꿈”이라는 뜻이다. 김기덕 감독은 현재 각본을 최종 수정 중이며, 완성되는 대로 2008년 1월4일경 촬영에 들어가 대략 1월25일까지 서울 안에서 촬영할 예정이다. <숨>과 마찬가지로 김기덕 필름과 여타 제작사와의 공동제작 형태로 완성할 계획이며, 이번에도 적은 예산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경제적인 영화 만들기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이다. 꿈속에서 교통사고를 내게 된 남자 ‘조’. 꿈을 깬 뒤 그가 꿈에 보았던 장소로 가보니 정말 뺑소니 사고가 있었다. 경찰은 ‘란’이라는 여자를 용의자로 추적하던 중 집에서 ‘자고 있던’ 그녀를 체포한다. 하지만 ‘란’은 자신이 교통사고를 낸 적이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몽유병이 있음은 인정한다. ‘란’이 범행을 거부하는 동안 ‘조’는 그 사고를 낸 것이 사실은 자신이라고 말한다. 두 주인공의 꿈속 경험과 실재는 점점 흥미롭게 얽혀간다. <비몽>의 일부 내용이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화제가 될 만한 것은 남자배우의 캐스팅이다.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의 젊은 배우 오다기리 조가 남자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됐다. <숨>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장첸에 이어 외국 배우로는 두 번째다. <비몽>의 송명철 프로듀서는 “11월 말쯤인가, 12월 초쯤인가 만나 합의했다. 그전부터 오다기리 조도 감독님도 서로에게 관심이 있었다. 실은 내년 초에 오다기리 조는 중국영화의 촬영 일정이 계획돼 있었는데 그게 연기되면서 다행히 우리와 스케줄이 맞았다. 인기있고 역량있는 배우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나.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유레루> 등을 보며 김 감독님이 관심을 가져오신 것 같다”고 전했다. 여주인공도 현재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 중인 국내 주연급 여배우로 결정된 상태. 그러나 관계자는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숨>에서 김기덕 감독은 외국인 배우인 장첸에게 대사없는 죄수 역을 맡겨 외국 배우와 한국 배우 사이의 언어문제를 해결했는데, 이번 영화 <비몽>에서는 “주인공들이 서로의 말을 잘 이해한다고 가정”한 뒤 “오다기리 조가 일본말을 하면 그걸 자막으로 넣어 보여주고, 한국 배우들은 그냥 한국말로 대사를 하는 식”으로 흥미롭게 처리한다. 적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김기덕 감독의 15번째 영화 <비몽>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투표

대선 후보 합동토론회에 나온 권영길씨는 다섯 해 전과 다름없었다. 논리 전개는 허술했고, 음절 경계는 흐리터분했다. 그 알아듣기 힘든 언어는 게다가 구체성의 살을 발린 채 관념의 뼈대로 앙상했다. 동문서답도, 썰렁한 유머도 여전했다. 요컨대 권영길씨는 다섯 해 전처럼 공부 없이, 준비 없이 토론에 나온 것이 분명했다. 그 배짱이 그를 설핏 신참자 이명박씨와 닮아 보이도록 했다. 아무런 사전정보나 선입견 없이 토론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권영길씨와 이명박씨를 우등생 넷 사이에 낀 열등생들로 판단했을 것이다. 끝끝내 텔레비전 토론을 거부한 채 대통령이 된 김영삼씨가 텔레비전 토론이라는 것을 했다면, 아마 권영길씨나 이명박씨 식으로 해치웠을 것이다. 메떨어진 억양과 빈약한 가용어휘로 말이다. 그러니 민주노동당에 미련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권영길씨가 아니라 심상정씨나 노회찬씨가 앉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한다 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아니, 권영길씨와 이명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네 후보 중 누구라도, 그가 권영길씨 자리에 놓였다면, 한결 더 효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중도우파 세력의 지지 기반이 무너져 진보정치의 공간이 외려 넓어질 수도 있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제 후보를 잘못 골랐다는 뜻이다. 주류 정치세력 후보들 모두를 선택지에서 제쳐놓은 유권자들도 권영길-민주노동당에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눈치다. 뭔가 개운치 않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뭔가 개운치 않은 것이 꼭 권영길씨 개인의 매력이 모자라서만은 아니다. 정작 개운치 않은 것은 권영길씨를 아슬아슬하게 민주노동당 후보로 만든 정파의 이념적 봉건성이고, 좀처럼 화해하기 힘들어 보이는 민족지상주의자들과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의 당내 혼거 상황이다. 이질적 정파의 이 혼거는 갈등을 조정할 당내 정치력의 부족으로 자주 파열음을 낳고, 그 파열음은, 보수정당에서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사소한 추문들과 맥놀이를 만들어내며, 기호 3번에 표를 주기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그러나 세상만사는 다면적이고 상대적이다. 권영길씨는 다른 후보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 다른 삶은, 진보 유권자들 처지에서는, 존경할 만한 삶이었다. 신문기자로 일할 때 그가 얼마나 노동계급 지향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는 지난 20년간 한국 노동운동의 한복판에, 또는 그 전위에 있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경선을 거쳐서 그 당의 후보로 뽑혔다. 그것은, 이번이 몇 번째 출마든, 그가 한국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로서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다. 기호 3번에 투표하는 것이 권영길씨 개인에게 투표하는 것이라기보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자주와 통일 담론에 대한 완고한 집착이 이 당의 노동계급 정체성을 많이 흐려버리기는 했으나, 민주노동당이 제도권 안에서 한국 노동계급을 대표해온 유일한 정당이라는 사실은 엄연하다. 법적 출발로만 따져도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정당이지만, 민주노동당의 사회·정치적 역사가 2000년 1월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 정당에는 군사파쇼 정권의 폭압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졌던 노동운동의 흐름들이 합류했고, 해방기까지 올라가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흐름들이 합류했다. 그러니까 기호 3번에 투표하는 것은 한국 노동계급의 역사와 그 미래에 투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민주노동당은, 그 근본이 조직노동자들의 정당이긴 하나 적어도 다른 정당들에 견줘서는 우리 사회의 순정(純正) 아웃사이더들에게까지 눈길을 건네왔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80만 조합원이 각자 10명씩을 조직하여 800만 표를 노동자 후보에게 몰아주자”고 호소했다. 꼭 10명씩이 아니라, 조합원 모두가 제가끔 가족 친족 유권자들만 설득해도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미증유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조직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자들 자신이 지역을 비롯한 이런저런 연고에 이끌려 표를 ‘반-노동자적으로’ 행사했기 때문일 테고, 민주노동당 안의 이른바 자주파마저 수구세력 집권 저지라는 대의와 민족주의 열정에 휘둘려 중도우파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실천했기 때문일 테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보수정치세력이 힘을 얻고 있는 데다 그 보수세력이 민생은 몰라도 민족주의 열정은 살려낼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지금은, 비판적 지지를 철회하고 계급투표를 하기에 딱 좋은 계제다. 물론 그런다고 권영길씨가 대통령에 당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표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치를 시험의 모의고사 점수 노릇은 하게 될 것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든 범여권이 재집권하든 한국 노동계급에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한국 노동계급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