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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여성관객영화상] 여성의 욕망에 꽃을 던져라! [2]

최악의 한국영화 2위는 여자의 처녀성과 가부장적 가치인 ‘가문’이 이야기의 주된 동기인 <가문의 영광>에 돌아갔다. 3위는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기도 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뽑혀, 여성 관객의 눈매가 일반 관객의 눈과 어떻게 다른지 여실히 보여줬다. 사극인 점을 감안하더라고 <취화선>에서 여성이 지나치게 ‘위대한 남성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몸’으로 가치절하되어 있음이 문제시되었다. <취화선>의 뒤를 이은 영화는 <중독> <생활의 발견> <오아시스>. <중독>은 남성주인공의 거짓말이 극을 이끌어가는 서사가, <생활의 발견>은 여성이 성적인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점이, <오아시스>는 장애를 가진, 취약한 몸의 여성을 강간하는 남성의 행위와 강간이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 흐름이 비난받았다. 그러나 <오아시스>에서 홍종두가 한공주를 위해 나뭇가지를 쳐내는 부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오아시스>의 문소리가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청룡영화상, MBC영화상 등 국내 영화상 등에서 여우주연상 혹은 신인상을 휩쓸었던 올해, 여성 관객은 올 한해 최고의 여자배우로 주저없이 <밀애>의 김윤진을 뽑았다. <밀애>의 미흔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태도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밀애>의 수상사유를 설명해줄 만한 장면으로 미흔이 창가에 나체로 서 있는 뒷모습 실루엣 장면을 택해 보여주었다. 지난해, ‘스무살, 섹스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라는 카피로 홍보되었던 ‘섹스리스’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같은 상을 받았던 것과는 큰 차이. 김윤진은 “이렇게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남성캐릭터들 위주의 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 요즘에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로 여성관객상을 받게 돼 매우 기쁘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최고의 여자배우 2위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가 차지했고, <피도 눈물도 없이>의 이혜영이 그뒤를 이었다. 이날 시상식 객석에는 몇몇 남성 사진기자, 이현승 감독을 제외하고 유일한 젊은 남성이 있었는데 바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배우 감우성이었다. 감우성은 여성 관객이 뽑은 2002년 최고의 남자배우로 선정되어 단상에 올랐다.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어 감사하다. 첫 영화로 좋은 영화를 만나서 이런 행운을 얻은 것 같다. 앞에 특별상을 받은 심재명 프로듀서가 여기서 최고의 영화상을 받은 영화들은 흥행이 안 됐다고 했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흥행에도 성공을 했다. 아무래도 여성 관객 여러분이 찾아주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최고의 남자배우상 시상에 앞서 특별상 시상이 있었는데, 명필름 대표인 심재명 프로듀서가 ‘이미연 등 여러 여성프로듀서를 배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감우성이 조크를 던진 심 대표의 말은 바로 이것. “시상 결과를 보니 최악은 다 돈 번 영화이고 최고는 다 돈 못 번 영화들이더라. 내년에는 최고의 여성영화로 흥행도 성공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최고의 작품상 트로피는 <밀애>의 변영주 감독이 받았다. 변영주 감독은 “여성 관객의 지지는 내게 빚처럼 느껴진다. 잘할 때까지 해보라는…. 적을 이롭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 바운더리를 넓혀가고 싶다. 여성 관객을 더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남성 관객을 김기덕 감독에게서 뺏어오는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고민이다”라고 역시 재치있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최악의 작품상을 받은 <나쁜 남자> 팀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제작사가 행사를 축하하는 꽃바구니를 보냈다.▶[제7회 여성관객영화상] 여성의 욕망에 꽃을 던져라! [1]▶[제7회 여성관객영화상] 여성의 욕망에 꽃을 던져라! [3]

[현지보고] 장이모의 <영웅> 시사기 [4] - 양조위·장만옥 인터뷰

"아시아의 무협엔 철학이 있다" 파검 역 배우 양조위 인터뷰 글을 쓰듯 검을 휘두르고, 검을 휘두르듯 글을 쓰는 자객 파검. <영웅>에서 양조위가 연기한 파검은 문(文)을 통해 무(武)의 새로운 경지에 다다른 평화주의자다. 스스로 무술 연기에 소질이 없다고 고백하는 양조위는 파검의 극심한 갈등과 고통을 체현해내는 것이 힘들었던 듯 촬영 당시를 회상하면서 언뜻언뜻 얼굴에 그늘을 내리기도 했다. 양조위는 스타 연하지 않는 친근하고 편안한 인상 그대로,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국적과 장르를 가리지 않는 ‘오픈 마인드’의 자세를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장이모 감독이 홍콩에 직접 찾아와서 캐스팅의 뜻을 밝혔는데, 무엇보다 그를 존경하는 마음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외국 스탭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시나리오의 세 가지 에피소드별로 다른 표현방식으로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아시아의 무협이 서양에서 어필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아시아의 무협이 서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만 아시아의 무협은 서양의 액션과 달리 철학과 역사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동사서독>의 무술감독 홍금보와 <영웅>의 무술감독 정소동을 비교해본다면. =정소동은 춤을 추는 것처럼 부드럽게 표현한다. 미학적 무술이라고 할까. 무술에 문외한인 여배우들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 반면 홍금보의 액션은 딱딱하고 복잡해서, 실제 무술에 더 가까운 편이다. -당신의 캐릭터인 파검은 평화라는 대의를 위해 저항을 포기하려 한다. 그 뜻에 동의하는가. 패배주의적이고 무기력한 결정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모든 걸 포용하는 인물이다. 작은 걸 희생하며, 더 큰 것을 포용하는 것이 영웅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파검은 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캐릭터다. 진시황을 죽이지 않는 것은 애인과 동지들을 배반하는 일이고, 진시황을 죽이는 것도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어서, 분단국 간의 참혹한 분쟁을 부르는 일이다. 그는 이런 갈등을 다른 협객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심리학자가 다른 사람의 마음은 자유자재로 읽어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내적인 고통을 드러내 보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장이모 감독과의 작업은 처음인데, 어떻게 느꼈나. =북방인의 기질을 타고난 분이다. 진솔하고 직설적이고 대범하다. 에피소드별 색채를 단색으로 표현해낸 것도 그의 그런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주로 허무주의자를 연기해왔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글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캐릭터가 많이 들어온다. 내가 허무와 고뇌에 찬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는가보다. "동양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는 좋은 시도다" 비설 역 배우 장만옥 인터뷰 일명 번개머리라 부르는 짧은 펑크머리에 니트와 청바지를 받쳐입은 장만옥은 담배 연기와 함께 기자단을 맞았다. 비련의 여주인공 이미지가 싫다면서, 만다린어에 익숙지 않다면서, 검을 쓰는 무술연기가 무섭다면서, <영웅>의 비설을 받아들인 이유는 장이모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 때문. 역사가 폭군으로 단정한 진시황에 대해 “지도자라면 그 정도의 영향력은 있어야 한다”고 손을 들어줄 만큼 통이 큰 여인이기도 했다. -에피소드별로 변화가 많았다. 그런 차이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한 이야기에서 세 가지 에피소드가 갈라져 나오는 구성이라서, 조금 힘들었다. 각기 너무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핵심을 비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디테일의 차이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적색 에피소드에선 강렬하고 당당한 이미지를 담아보려 했고, 청색에선 낭만적이고 순애보적인 이미지에 현모양처의 분위기를 내보려 했고, 백색에선 나약한 여인이 아닌 대범한 협객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했다. -액션신을 소화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었다면. =해발 3000m 고지대나 사막에서 촬영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중 사막에서의 촬영은 모래 바람 때문에 집중된 연기를 하기가 힘들었다. 와이어 액션이 어렵지 않았냐고들 물어오는데, 나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게 재밌었다. 정말 힘든 건 검을 쓰는 연기였는데 여자로서 검을 부딪치고 휘두르는 것이 좀 무서웠다. -<화양연화>에 이어 또 다시 비극적 멜로의 주인공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역할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쪽으로 캐릭터가 굳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다. 그런데 장이모 감독이 <화양연화>를 좋게 봤다면서 출연을 권해 왔기 때문에 거부할 수가 없었다. 꼭 한번 같이 일하고 싶었다. -현장에서 겪은 장이모 감독은 어떤 사람이던가. =처음 사진을 통해 본 장이모 감독은 무섭고 또 심각한 이미지였다. 막상 촬영장에서 만나보니, 유머 감각도 풍부하고 배우들을 자상하게 챙겨주더라. 물론 영화적 고집은 무척 센 편이고, ‘한다면 한다’는 스타일이다. -배우로서 이 영화에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관객이 좋아해주길 바란다. 이 영화는 상업영화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지만,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좀더 세심하게 읽을거리가 많은 영화다. 서예나 무술처럼 동양의 고유한 문화, 그 아름다움을 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날 영화관에 눈은 안내려도..

집에서 조용히 보내기에는 2% 아쉬운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그렇다고 술집과 노래방을 전전하면서 보내기에는 아까운 시간에 가까운 사람들과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는 부담없고 즐거운 이벤트다. 그러나 무턱대고 나갔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좋다는 이야기만 듣고 몰려갔다가 매진으로 허탕치거나 영화 선택을 잘못해 극장을 나오며 서로 썰렁한 눈초리만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한겨레> 영화팀은 가족, 연인, 싱글 등 ‘처해진 여건’에 따른 영화 선택의 몇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오랜만의 가족 이벤트 영화 <로얄 테넌바움>의 가족들처럼 구성원 각각의 개성과 심미안이 넘치더라도 가정의 화목을 원한다면 역시 안전한 흥행작이 최고다. 어른, 청소년들에게 두루두루 평균 이상의 평점을 받을 만한 영화로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를 꼽을 수 있다. 1편보다 웅대한 스케일이 볼 만하지만 상영시간이 세시간이나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매 또한 필수다. 1월1일 개봉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보물성>도 아이들과 함께 볼 만한 영화. 스티븐슨의 모험소설 <보물섬>을 미래 배경의 에스에프로 바꾼 이야기다. ▶연인끼리 손 꼬옥 잡고 80년대에 10대를 보낸 커플이라면 <품행제로>(27일 개봉)를,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커플이라면 <색즉시공>을 권할 만하다. 고교 캡짱 중필(류승범)의 학원무림신화와 중필을 가운데 둔 두 여고생의 삼각관계가 명랑만화처럼 펼쳐지는 <품행제로>에서는 가수 김승진, 롤라장, 디스코 바지 등 80년대 히트상품 퍼레이드가 귀엽게 향수를 자극한다. 임창정, 하지원이 출연하는 <색즉시공>은 한국판 <아메리칸 파이>, 또는 대학생 버전의 <몽정기>다. 코미디 취향이 아니라면 2002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피아니스트>(1월1일 개봉)도 괜찮은 선택. 2차대전 때 게토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피아니스트의 회고를 담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혼자서도 잘 해요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애당초 동반자를 찾지 않고 혼자 보는 편이 마음편할 영화. 성을 주제로 한 감독의 괴팍한 이야기 방식 때문에 행여나 같이 보러 간 사람한테 취향을 의심받을 수도 있다. 혼자 영화보는 게 못내 아쉽고 분노까지 치민다면 착한 이란 영화 <비밀투표>를 보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 한편으로 기분이 안 풀릴 때는 같은 극장(씨네큐브)에서 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추가로 보기를 권한다. 27일부터 다음달까지 3주 동안 하이퍼텍 나다에서 하는 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기획상영전은 올 한해 소리없이 개봉했다가 내린 좋은 작품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 <도니 다코>,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걸 파이트>, <레퀴엠>, <워터 보이스>, <텐 미니츠 트럼펫> 등 “영화 좋다”는 이야기와 “간판 내렸다”는 소식이 거의 동시에 들렸던 11편을 상영한다.

한반도의 정세가 영화의 소재로,<007 어나더데이>

■ Story 북한에 침투한 제임스 본드는 무기 거래상으로 위장하여 문 대령을 상대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신분이 들통난다. 격투 중에 장군의 아들인 문 대령을 죽이게 된 본드는 북한 병사들에게 잡혀 14개월간 수감된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본드는 문 대령의 심복 자오를 뒤쫓는다. 본드는 자오와 비밀에 휩싸인 사업가 구스타프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태양열 무기 ‘이카루스’로 음모를 꾸미는 그들에 맞서 싸운다. ■ Review 아이 같은 이분법은 언제나 007 시리즈의 전략이었다. 나쁜 편과 착한 편, 남자와 여자, 귀족과 더 귀족, 강한 자와 더 강한 자.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상대를 바꿔가며 적을 지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그들은 나쁜 편을 먹고, 제임스 본드는 착한 편을 먹는다. 상대가 바뀌면 장소(국가)도 바뀌고, 또는 그 상대의 음모가 크면 클수록 장소는 더욱 다양해진다. 그러면서 제임스 본드는 일종의 세계일주를 하며 이국적인 풍경들을 여행하고, 그 풍경에 걸맞은 본드 걸을 만나고 최첨단 장난감들을 동원해 정의를 놀이한다(사실 본드의 바람둥이 기질은 세계일주 제국주의와 거의 일치한다). <007 어나더데이>에서도 본드 걸들은 유혹을 뿌리고 다니고, 차와 시계와 반지는 신기한 소품들이고, 쿠바의 해변과 아이슬란드의 설경은 장관을 이룬다. 때문에 지금까지 그래왔듯 팝콘 먹는 마음으로, 한편으론 환호하며 ‘오락’을 즐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지금 한국에서의 정치적인 이슈에 동승하고 있다. 소련이 적으로 지정되거나 중동이 음모의 장소가 되는 것을 오락으로 즐기던 마음은 사라지고 국내의 정치적 사안이 그동안 즐겨왔던 재미보다 먼저 앞선다. 영화는 여전히 시리즈의 규칙을 지키고 있는 셈이지만, 그러니까 007 제작진의 입장에서 보면 차례가 되어 한반도의 정세가 영화의 소재로 지정된 셈이지만, 그것을 보는 한국 관객의 관람태도는 뒤바뀔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장교를 악의 화신으로 등장시키고, DMZ를 쑥밭으로 만드는 것은, KGB를 혹은 중동을 그렇게 만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007 시리즈의 전략에 따라 다시 한번 바뀐 배경으로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문제를 삼아야 할 부분은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북한 장교가 악인으로 나온다는 점 등이 아닐 것이다. 영화는 특별히 정치적인 디테일들을 첨부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문 대령과 자오를 되도록 추상적인 인물들로 묘사하고 있다. 무조건 ‘나쁜 편’으로. 그러니 정말 문제인 것은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007 시리즈의 스펙터클 전략 자체일 것이다. 너무 짙어서 말하기조차 무색한, 영화 속 세계정복의 음모를 물리쳐내는 현실의 세계정복 논리 말이다. 그런 점들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재미의 선택은 자유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품행제로>의 두 배우 류승범, 공효진

“예? 표지 사진에 검은 옷과 흰 리본으로 조의를 표하고 싶다구요” 영화사를 통해 표지 촬영 때 미군들에게 죽은 여중생 효순, 미선이에게 조의를 표하고 싶다는 류승범의 의사를 전해 듣고, 아주 잠깐이나마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류승범과 공효진 두 배우가 등장한다면 응당 명랑한 에너지가 넘치리라는,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그들에게 기대해온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제안. 공효진도 흔쾌히 동의했다는 류승범의 아이디어에, 몇초간이었지만 올해의 마지막인 송년호 표지로 혹 너무 무겁진 않을까 하는 갈등도 스쳤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리고 참 건강한 활기를 띤 그들답다는 모종의 반가움과 미더움 역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생각했죠.” 형 류승완과 박찬욱, 김지운 감독은 삭발까지 했는데, 배우라 당장 머리를 깎을 순 없지만 뭔가 해야겠다 싶었다는 게 나중에 들은 류승범의 말이다. 공효진이 먼저, 류승범이 조금 늦게 스튜디오에 들어선 겨울날 오후. 분명 눈이 내려 하얗게 얼어붙은 다음날이었는데, 바깥 추위 때문에 싸늘했던 스튜디오의 공기가 점점 훈훈해졌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도, 인터뷰를 하면서도, 속닥속닥 이야기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 두 배우 덕분이다. “얘는 내 발 밟고 모른 척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고, 나는 악 하는 표정인 거야. 어때요 이게 진짜 코미디 아냐” 카메라 앞에서 계속 이런저런 자세를 연출하는 류승범에게 장단을 맞추며, 공효진은 연신 웃음을 참느라 고생이다. 쿨한 표정으로 치는 시늉을 해달라는 류승범의 주문에 툭툭 쳐 보이는 공효진, 맞아서 아픈 듯 익살 반 엄살 반의 표정인 류승범. 어느새 <품행제로>의 나영과 중필이 곁에 와 있는 듯하다.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 만난 두 사람이 처음 스크린에서 공연한 <품행제로>는 80년대 청춘들의 유쾌한 성장담. 문덕고의 ‘쌈장’인 불량학생 중필과 모범생 민희의 풋사랑을 주축으로, 여고 ‘짱’인 나영과의 삼각관계, 중필의 아성을 위협하는 싸움꾼 상만의 갈등, 10대들의 아기자기한 일상의 에피소드와 80년대 문화의 복고풍 감수성을 포개놓은 영화다. 류승범에게는 “첫 주연작”이기도. 아닌 게 아니라 <품행제로>는 보는 내내 류승범이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이 잘 가지 않을 만큼, 류승범의 영화다. 푸른색 ‘추리닝’ 차림에 만사 귀찮은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학교 담을 넘어 등교하는 첫 등장부터, 류승범은 영화의 감성을 몰아가는 막강 엔진이다. 중필은 동급생들보다 한살 많은데다 곧잘 수업을 빼먹고 학생들에게 돈을 뜯는 이른바 문제아. 중필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아침에 책을 읽고 교양을 처먹어야지 도시락을 까먹어!” 하고 같은 반 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민희와 친한 모범생 영만에게 말을 걸고자 영어책을 뒤적이며 “잉글뤼쉬”라고 발음을 굴릴 때, 류승범의 천연덕스러움은 가히 압권이다. 눈썹을 올리며 인상을 쓰는 표정이나 건들거리는 동작, 평범해 보이면서도 웃음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연기가 보는 이의 시선을 휘어잡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중필과 한몸이 된 듯한데, 정작 류승범 자신은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고. “처음엔 너무 웃기려는 느낌”이어서 고민했다는 그는, 촬영을 3∼4시간씩 미루고 조근식 감독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근데 감독님의 한마디가 딱 몸에 들어왔다. 중필이는 도심 속의 섬 같은 아이다, 아무도 침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눈에 띄어서도 안 된다는.” 그래선지 표정 하나하나로 웃기다가도, 상만에게 ‘짱’ 자리를 위협당하자 수군거리는 아이들의 뒤에서 씁쓸해할 때나 악을 쓰며 싸우는 중필이를 보면 어쩐지 짠해진다. 학교의 질서 속에 쉽게 섞여들 수 없는 인물의 거친 성장기에서, “표면적인 코미디말고도 언뜻언뜻 드러나는 쓸쓸함, 외로움을 봐줬으면” 했다는 그의 바람이 담긴 때문일까. “류승범이 저것밖에 안 되냐고 할지 몰라도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면서, 그는 “그 시간을 꾸려가는 게 힘들지만, 부딪치고, 싸우고, 설레는” 첫 주연의 기억이 행복했던 눈치다. 후반에 찍은 학교장면 즈음에는 다들 “수위 조절이 안 될 만큼”신이 나 있어서 웃다가 NG를 낼 만큼, 즐긴 흔적도 역력하다. 스크린 체류 시간은 중필보다 짧지만, 오공주파를 이끄는 여고 ‘짱’ 나영 역시 <품행제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 민희에게 심술도 부리지만, 중필을 대신해 야구 배트를 잡고 상만과 대적하러 갈 만큼 깡다구가 센 나영은, <네 멋대로 해라>의 송미래 못지않게 당찬 매력이 넘친다. “여자 짱이란 것도 매력있고, 카리스마도 있고.” 중필의 마음을 “물어보고는 싶지만 확인하지 않으려는, 여린” 이면을 지닌 나영이 되면서, 공효진은 “처음으로 살갑게 인물의 감성을 느꼈다”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사랑받지 못해 속상할지언정 연적에게조차 의리를 지키는 그의 분신들은 사랑스럽도록 씩씩하다. 옆에서 “20대 초반에, 보통은 얼마나 예쁘게 비쳐지는지에 관심이 많게 마련인데, 이런 여배우도 드물다”고 한마디 거드는 류승범의 말이, 분명 그저 여자친구를 위한 공치사는 아니다. 6개월가량 <품행제로>를 촬영하는 동안, 공효진은 정신없이 바빴다. 이미 찍고 있던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와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까지 세 가지 일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 잠도 거의 못 자고 <품행제로>를 찍으러 부산에 내려갔다가, 현장에서 쓰러지는 바람에 류승범이 공효진을 업고 뛰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그래도 금세 다시 일어나 제 몫을 해내고야 마는 게, 그의 연기에서 드러나는 ‘깡’이 이미지만은 아닌 듯하다. <긴급조치 19호>와 <서프라이즈>, 가장 최근에 개봉한 <철없는…>까지 다작에 겹치기 출연을 피하지 못한 한해였지만, 별탈없이 성실하게 지나왔다. 모델 시절부터 5년지기 친구인 조은지와 연인 사이로 출연한 <철없는…>은 “동성애 연기도,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인생을 바치는 황금숙이란 캐릭터의 애절함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올 한해 공효진의 출연작은 4편. <피도 눈물도 없이> <묻지마 패밀리> <복수는 나의 것>의 소아마비 장애아 연기까지 류승범의 출연작도 4편이다. 편수는 많지만, 너무 가벼워지거나 무거워지는 일없이 거침없는 젊음을 발산하는 두 배우의 전모를 알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 류승완 감독의 <마루치 아라치>에서 양아치가 아니라 형사로 출연할 류승범, 형부와 처제의 사랑을 다룰 드라마 <눈사람>에서 17살부터 25살까지 성장해갈 공효진의 내년이, 또 궁금해진다. 연기 변신 류승범 | “비슷비슷하다는 말도 듣고, 변화에 대한 고민도 하는데, 배우가 변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 배우를 변화시키는 것 같다. 그래도 얼마나 다른 작품인가보다는 어떤 작품이냐를 보고 싶고. 하다보면, 나란 배우를 바꿔주는 작품도 만나겠지.” 공효진 | “어느 기사에선가 짝사랑 전문 배우라고 하더라. 아직 내가 다른 느낌이 안 나나보다. 배우로서 겉모습도 캐릭터와 비슷해야 할 텐데, 안 맞는 옷을 입고 싶진 않다. 시간이 지나면 또 변화하겠지” 지나온 1년, 앞으로 1년 류승범 | “너무 쉼없이 지나왔다. 인간 류승범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다행인 건 작품이 남아 있으니까…. 내년에 <마루치 아라치>를 잘 끝내놓고, 연극을 꼭 해 보고 싶다. 지가 뭔데 스타가 됐다고 연극도 마음대로 하느냔 오해를 사고 싶진 않지만, 관객과 1m 거리도 안 되는 그 무대에 꼭 서보고 싶다.” 공효진 | “정처없이 바쁘게 달려왔다.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을 잃을 만큼. 드라마를 또 하는 게 좋을까 고민도 했는데, 나란 배우의 캐릭터도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사람>에서는 철없이 과장된 연기말고도 더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물처럼 흘러가듯 살고 싶다. 돈은 못 벌어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old&wise

내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다른 대학을 갔지만 서로의 학교에서 살다시피했고 2년쯤 함께 자취를 했다. 그 모든 차이(10·26 다음날 아침 라디오에서 나오는 장송곡 메들리를 들으면서 나는 묵은 빨래를 꺼내 신나게 빨아댔고 내 친구는 “그래도 사람이 죽었는데…” 하면서 내 인품의 경박함을 안타까워했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우정이 지속됐던 건, 그 을씨년스럽던 야간자율학습을 함께하며 서로 눈꺼풀에 안티푸라민 발라주면서 싹튼 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 벽이 생겨났다. 20대 중반쯤이었는데, 각기 사회활동 영역이 달라진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영혼의 영역이 달라진 것에 비하면. 내 친구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패거리 여섯 가운데 나머지 넷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친구들은 나를 볼 때 “쯧쯧, 저 길 잃은 양을 어떻게 하나” 하는 근심스런 표정이 역력했고, 나는 외로움을 달래며 “하느님이 내 친구들을 다 빼앗아가 버렸어” 하고 탄식했다. 종교분쟁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대개, 친구들이 복음을 전하려는데 내가 강력히 저항해서 분쟁으로 번지는 수순이었다. 친구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사람도 하나님나라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보다 더 불행하다’는 논리를 폈다. 나도 하나님의 부재 증명들을 제시했다. 종교전쟁 타령을 했고 볼테르의 <깡디드>를 거론했다. 세상은 부조리투성인데 다 신의 섭리로 믿는 거야말로 ‘순진한 녀석’(깡디드)이지. 분쟁이 과열되면 ‘구원’, ‘지옥’, 또는 ‘맹신’, ‘사이비’ 같은 험악한 말도 튀어나왔다. 우리가 휴전에 암묵적인 합의를 한 건 20대 막바지였다. 서로 정신적 존재기반을 더이상 공격당하고 싶지 않아졌던 것이다. 사실 영혼의 소속이 다른 것만 빼면 우린 아직 비슷한 점이 많았고 그냥 친구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가끔, 나이 들어가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 대학 학생상담소에서 일하는 그 친구와 최근 밥먹다가 우리는 엉겁결에 휴전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앗, 지뢰밭! 하지만 분쟁은 없었다. 우리에겐 어느새 관용의 태도가 생겨나 있었다. 얘기는 내가 먼저 꺼낸 것 같다. “영화감독들 가운데는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작품을 망치는 경우도 있어. 세상일에 다 질서가 있고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모두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면 현실을 냉정히 보지 못하게 되니까 그런 것 아닐까. 난 그런 게 싫어.” “그래, 모든 걸 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 그건 미성숙의 소치라고 봐. 신앙도 인격하고 같이 성숙하거든. 내게 하나님의 섭리란 이런 거야. 내 욕구나 바람이 내게는 절대적이겠지만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는 다를 수도 있거든. 절대자의 뜻 앞에서 끊임없이 나를 상대화시켜보는 거야. 그게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종교의 순기능이 있다고 생각해. 종교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도 있어. 내 소설에서 정신과 의사가 나환자촌의 소년이나 일가족을 잃은 아주머니에게 신앙심을 굳게 가지라고 하잖아. 칼 융도 정신과적 처방으로 종교를 이야기했지.” “맞아. 강박증이나 편집증도 기본신뢰감이 결여돼서 생겨나는 거라고 봐. 상담현장에서 이런 기본적인 신뢰감이 없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안타깝더라. 세상에 믿어서 손해보는 것보다 못 믿어서 손해보는 것이 훨씬 많구나, 싶어. 종교란 기본적인 신뢰감이거든. 종교 없는 사람들이 대단해. 그 어마어마한 불안을 어떻게 견뎌내는 거지” “불안하지. 비빌 언덕이 없으니까. 예기치 않은 불행에 대해 속수무책이니까. 하느님을 믿으면 빽이 생기니까 불안감이 덜 할 텐데. 죽음이라는 것도 두렵고. 하지만 숨고 싶지는 않은 거야. 세상이 그런 거라면 그대로 마주봐야 한다는 생각이지.” “너의 그 치열하고 솔직하고 당당한 삶의 태도를 존경해. 근데 왠지 좀 고독해보여. 독립과 자율도 의존 없이는 있을 수 없어. 내게 믿음이란 찌그러지고 상처받은 마음이 펴지고 회복되는, 그래서 또 희망을 잃지 않고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그런 것이야. 네 말대로 기대고 비빌 언덕이지.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 많이 해. 성숙한 사람은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비기독교적인 형태로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네 소설의 주인공도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적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어.”조선희/ 소설가·전 <씨네21> 편집장

[조종국] 충무로에 봄은 올까

한국 영화계가 꽁꽁 얼어붙었단다. 극장에는 연일 관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긴 하지만, 제작 일선에 있는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엄동설한이라고 입을 모은다. 돈이 말라붙었다는 것이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투자사들의 자금 집행이 긴축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동결됐다고 한다. 그 여파로, 주연배우 캐스팅을 확정하고 촬영일정까지 공표했던 영화가 제작을 포기하거나 무기한 연기하고, 이미 촬영 중인 영화도 무사히 촬영을 끝내고 완성할 수 있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물며 기획 중인 상당수 작품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마치 황금어장이라도 만난 듯 돈이 몰려들었던 영화계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투자사들은 긴축 또는 동결의 배경이 한국영화로 돈을 벌지 못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개봉한 영화 제목들을 떠올려보면 흥행성적이 좋았던 영화가 그리 많지 않아 투자사들의 쓰린 속을 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세간의 화제가 됐던 덩치 큰 화제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체감경기를 악화시켜 위기감이 증폭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최근까지의 한국 시장 동향은 투자사들이 주장하는 상황논리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점이 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한국영화는 86편이 개봉해 1641만7600명(서울 관객 기준)의 관객을 불러모았으며,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45.8%로 집계됐다.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46.1%에 비해 0.3% 떨어졌지만 전체 한국영화 관람객 수는 14.4%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영화 제작편수는 2000년 58편, 2001년 52편에 비해 무려 28~34편이나 늘어났으며, 2000년 32.0%, 2001년 46.1%에 이어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년과 비교해 가장 큰 변화는 올해 제작편수가 상당히 늘었다는 것이다. 물론 올해 개봉영화 편수는 제작시기와 개봉시기가 연도별로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점은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는 있는 근거로는 모자람이 없다. 투자사들이 돈을 벌지 못했다는 말은 투자한 돈에 비해 거둬들인 돈이 적다는, 즉 손해를 보거나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개봉영화 편수가 예년에 비해 상당히 많아 편당 수익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영화 시장 전체를 놓고 보면 투자사들의 주장은 미시적인 상황 논리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한 투자사에서는 최근 검증된 감독에, 호평받는 시나리오에, 최고 스타급 배우 3명을 캐스팅까지 한 작품에 대해서도 투자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전이라면 스타 1명만 캐스팅되어도 선뜻 제작비를 내주던 행태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상황이다. 시장을 선도하는 투자사에서 수익률이 낮다고 엄연히 시장이 존재하는데 마치 여차하면 영화제작에서 손을 떼기라도 하겠다는 듯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업계 판도를 좌우할 수 있는 투자사에서 제작환경을 경색시켜 지나치게 업계 전체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물론 자본이 많아지면서 제작사의 부실 기획과 일부 거품이 수익률 하락의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긴 하지만 투자사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돈이 넘쳐나지 않았으면 만들 수 없었던 영화, 만들지 않으니만 못한 영화도 적지 않게 있다. 투자사들도 제작사의 부실을 방조하거나 조장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부문이든 산업적으로 성장하면 그 토대와 기반은 단단해지고, 경기나 외적 환경에 따라 현상적인 부침은 있더라도 전체적인 판도가 뒤흔들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지금은 한국영화도 근래 몇년 사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산업적 안정성이 강화되고 있는 중대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사가 반성하고 감당해야 할 과제가 또한 적지 않지만, 지금처럼 투자사들이 일률적인 긴축과 동결이라는 강경한 미봉책은 합리적인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하루라도 빨리 영화계에도 봄이 오기 바란다. 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

영화속 설경구,종두-강철중-재필-김의 가상대화 [2]

이창동이라는 변태 작업반장이 있는데… 종두 | (끼어들며) 아저씨, 저, 계속 말씀 중에 대단히 죄송한데요. 저는 정말 경찰서가 싫걸랑요. 경찰서라면 지긋지긋해요. 그리구요. 그 설경구란 아저씨는 저 되게 싫어하걸랑요. 말도 못 꺼내게 해요. 그 아저씨가 나보고 그랬다구요. “미안한 말인데, 난 니가 싫어. 정말 미안한 말인데, 난 니가 진짜 싫어. 니가 또라이고 한심한 놈이란 건 알겠는데 니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사실 오아시스 나이트클럽 건설현장이 참 만만한 게 아니었거든요. 제 친구 중에 되게 지루한 놈이 하나 있는데, 그 성지루란 놈이 하루는 작업장에 놀러왔다가 “야, 여기 왜 이렇게 살벌해, 뭔일 있냐”고 쫄았을 정도였다구요. 사실 이창동이란 작업반장… 직접 증언을 들어보실래요 설경구(OFF) 아휴, 죽갔죠. 되도 않은 걸 요구하니까, 밉죠. 현장에서 뭐가 안 나오면 막 자학을 하잖아요. 나 때문이 아니라고 하는데 감독이 머리 쥐어 싸매고 자학하는데 내가 편할 리 있나. 현장 살벌하게 조용해. 막 찍어누르는 것 같다고. 100이 안 나오면 안 나올 거 알면서도 자꾸 하라는데 별수 있나 해야지. 그러다 참다못해 부산에서는 막 싸웠잖아. 물론 그 다음날 나와서 죄송합니다, 했지만. 결국엔 이 감독님하고 작업 하고 나면 애정이 아니라 애증이 생겨요. 그것도 아주 찐한. 징글징글한. 철중 | 그래서 그 미친놈은 다시 그 변태감독 하고 작업할 거래 종두 | 모르긴 몰라도, 아마 쉽게 못 벗어날걸랑요. 내후년에 또 쌍으로 자학할 건가 봐요. 사이코들이야, 사이코. 그런데 아저씨, 출출한데 우리 자장면이나 먹고 할까요 나, 요 앞에 홍콩반점에서 일하걸랑요, 배다알∼. 재필 | 시끄럽다. 그만 좀 해라. 새끼야. 철중 | (타이르듯) 그러지 마라…. 재필 | 형사님, 그 병신새끼 말에 일일이 대답할 필요 없어요. 사실 설씨가 그러는데 ‘뭐든지 좆나 서비스해’의 강 감독하고 일을 하고부터는 많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원래 그렇지만 암 생각없이 좆나 일만 했는데 끝나고 나서 보니까 본인의 노가다 인생에 ‘퉈닝 포인트’로 삼을 만한 일이었다는 그 말인 거라. 철중 | 영어쓰지 마라, 이 형아가 듣기에 좆나 재수없거든. 응 재필 | 아, 예, 죄송합니다. 어쨌든 이어서, 예전에 박하사탕공장에서 일하고 나서 송어도 팔고 단적비로 연수까지 다녀왔는데도 그 새끼 좆나 무겁게 살았거든요. 음지에서 일하면서 양지를 지향하는 좆나 어두운 인간 있잖아요. 뭐 만날 장기수를 위한 감옥 건립이나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그런데 ‘공공의 적’센터 건립 이후엔 그런 이상한 무게감을 덜어낼 수 있어서 좋았대요. 최근엔 고삐리 중삐리까지 알아보고, 얼마 전에 구미에 인사차 갔었는데 HOT 상대 해도 끄떡없겠더라는대요. 철중 | 졸라리 열심히 해보라고 해. HOT 벌써 해산했다. 근데 그놈은 올해 왜 4번이나 일을 뛰었다냐 돈이 없다냐 종두 | 그게 아니고 하나는 99년에 끝낸 물건이 뒤늦게 작자를 만나 풀린 거였고, 하나는 마무리 공사가 기냥∼ 해가 넘어가는 바람에 1월에 나온 거였대요. 사실 지난해에 ‘나도 마누라가 있으면 좋겠다’고 공식적으로 외치던 때부터 올해 초까진 8개월 동안 꼼짝달싹 안 한 거라니까요. 철중 | 그러니까, 그놈 비결은 결국 좆나 열심히 일하고 감독말 잘 듣는 거란 말야 종두 | 그게 다는 아니죠. 사람복이 많은 것 같아요. 여자들 봐도 예쁘네, 곱네 그런 말 한번도 안 하고 이년, 저년 욕만 하는데도 한번 같이 일한 사람들은 꼭 안 떠나고 자기사람 만들더라구요. 송강호, 최민식 같은 남자노가다꾼들 사이 의리는 말할 것도 없고. 박하사탕공장에서 만난 문소리는 당연한 거고, 대패질하던 김윤진이나, 왜, 그 처녀 파티서 못 뽑던 진희경, 심지어 광주꽃잎박람회에서 만났던 이정현까지도 연락하고 신경 써주고 산다잖아요. 철중 | 그 새끼 진짜 변태네. 내년엔 실미도로 간답니다. 재필 | 그런데요, 형사님… 이거 진짜 일급인데 내년 4월에 설경구 가요, 북파공작원이 된다는 소식을 긴급 입수했는데요. 공작원 훈련하러 실미도라는 외딴섬에 간다던데요. 그때까진 아마 보라매공원 부근이나 원래 살던 동네 수영장에 몸 만들러 나타날 것 같아요. 철중 | 지랄한다. 이놈이 어디서 또 사기를 쳐! 재필 | 아참, 이제 저 사기 안 쳐요. 무석이 도와서 빵 만들면서 열심히 살 거라니까요. 재필 | 아참, 이제 저 사기 안쳐요. 무석이 도와서 빵 만들면서 열심히 살거라니까요. 종두 | 아, 저도 비슷한 이야기 들었어요. 오아시스나이트클럽 작업현장은 대가리가 힘들었고, 광복절기념탑 건설현장은 몸이 좆나 힘들었고, 내년에 실미도에선 몸과 마음이 다 힘들 거라고 하던데. 근데 그게 공작원교육이었구나. 난 또…. 선착장 공사면 나도 데려가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아저씨 근데요, 저 이제 진짜 가면 안 돼요 누구 좀 만나야 되거든요. 철중 | 누구? 종두 | 공주마마. 재필 | 새꺄, 여자들 하나도 믿으면 안 돼, 우리 경순이도 내가 <분홍 립스틱> 불러줄 때는 헤벌레하더니 금방 메기 같은 경찰놈한테 정신팔려서 나 돌게 만들었잖아. 종두 | <내가 만일>은 달라요. 철중 | 조용히 좀 해 이 새끼들아. 꼭 지들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어이, 그리고 아저씨, 거 뒤에 누워서 자꾸 낑낑대지 말고, 화장실이 저 옆이니까…. 김 | (잠꼬대) 어흡… 나는… 츱츱… 똥… 마려운 게…츱츱…아녜여…우우욱∼. 바로 그 순간 자고 있던 김의 입에서 터져나온 ‘오바이트’가 폐곡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분출하고 있었다. 철중 | 아이… 재수 드럽게 없네, 씨발 눈도 오는데, 씨발 기분도 좆 같고, 씨발 오바이트도 묻었는데…. 공공의 안전이고 나발이고. 연말연시를 이런 돼지 우리같은 경찰서에서 보내냐. 씨발 니들이나 나나 사는 게 왜 이러냐. 재필 | 아, 갑자기 경순이 보고 싶네. 종두 | 나두, 공주가 보고 싶다. 경쾌한 시그널송과 함께 새벽뉴스가 2003년의 시작을 알리는 가운데 눈오는 경찰서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 글은 설경구와의 인터뷰와 2002년 개봉한 그의 출연작 <공공의 적>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오아시스> <광복절특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영화속 설경구,종두-강철중-재필-김의 가상대화 [1]

올해 들어 그를 목격한 것은 1월과 3월, 8월, 그리고 11월 총 네 차례였다. 신출귀몰하기로 신창원 뺨친다는 날렵함은 불행히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반짝이는 미모로 여성들을 홀리는 재주 역시 안타깝게 소지하고 있지 않으나, 특유의 우직함과 무데뽀정신으로 무장한 이 설경구란 작자는 올해 단 4번의 출현만으로도 충무로 건설업계를 싸그리 뒤집었다. 대학로의 전설을 뒤로 하고 꽃잎박람회와 말많은 처녀들의 디너파티를 어슬렁거린다 했더니 마침내 박하사탕공장의 기차화통과 맞장떴다는 소문도 낭자하던 설경구를, 그후 짧은 시간에 이 바닥을 접수해버린 설경구를, 건전인력유통을 위한 종합주간지 <쎄네21>에서는 ‘2002년 가장 힘센 노가다 일꾼’으로 꼽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워낙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타입에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놓지 않는 설씨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결국 이 UFO 같은 존재가 ‘공공의 안전’을 해칠는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졌고, 올해 초 ‘에미 애비 모르는’ 천하의 파렴치한을 살인죄에 마약소지죄까지 씌워서 철창신세지게 만든 ‘공공의 적 말살자’,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 형사가 이 조사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그는 설경구의 신상파악을 위해 주변인물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물론 이상한 자의 주변엔 더욱 이상한 자들이 운집해 있게 마련. 탈옥을 밥먹듯이 하다가 지난 11월 ‘부산영화제특사’로 풀려난 사기꾼 ‘재필’과 강간미수에 뺑소니로 별 여럿 달렸다가 ‘공주마마’를 만난 이후 개과천선한 철가방 ‘종두’가 먼저 거론되었다. 그중엔 지방대 영화과 교수 ‘김’도 포함되어 있었다. 새벽에 애인을 여관방에 놔두고 도망치다가 잡혀들어온 이 양반은 아침부터 마신 술로 이미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였다. 게다가 뜨끈한 경찰서로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벌러덩 누워 코까지 골며 자는 것이 아닌가. 강철중은 기가 막혔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아 의자에 앉히고 싶었지만 ‘민중의 지팡이’를 아무 데서나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 괜스레 애꿎은 하늘에 대고 욕을 뱉어본다. 철중 | 아이씨, 마른하늘에 왜 눈은 오고 지랄이야…니미…. (재필을 보며) 이름. 재필 | 예 재, 재피리요. 철중 | 직업. 재필 | 신용관리사…. (철중, 재필의 가슴을 발로 찬다. 의자에 실려 사무실 끝까지 밀려갔다 다시 돌아오는 재필) 철중 | 직업! 재필 | (고개를 숙이며) 사, 사기꾼요. 철중 | (징그럽게 실실 웃으며) 대통령선거도 끝나고 이 형아가 좀 쉬어야 되는데 업무가 많다. 씨발 경찰이 그렇잖냐 안 그냐 이 사기꾼 새끼야. 설경구란 놈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 재필 | 아이, 왜 이러시나, 나도 힘들게 산 놈인데 살살 합시다. 철중 | (얼굴 굳는다) 경찰이 된 지 올해로 십이년째. 그때나 지금이나 경찰은 똑같다. 여전히 박봉이고 여전히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차에서 자고, 골목을 달려, 거리에서 뒤엉켜 싸운다. 이런 씨발, 십이년 동안 날마다 흉터만 늘었다. 나라와 겨레에 충성하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에 봉사하고…. 이것이 죽거나 병신이 되지 않는 한 경찰이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다. 나 경찰이다.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 조용히 말할 때… 불어. 재필 | (쫄았다) 저… 옛날에 나 감방 살 때요, 좆나 단순해서 무슨 숟가락이 삽인 줄 알고 6년 동안 판 무석이란 새끼가 이야기해준 건데요. 설경구란 놈은 살을 붙였다 뗐다 하는 신비한 재능이 있다던데요. 철중 | 개새꺄! 무슨 살이 속눈썹이니 붙였다 뗐다 하게 재필 | 아, 이사람 속고만 살았나. 올해 초에 목격한 바에 의하면 뱃살 출렁출렁 투툼하고 목살이 두세겹으로 접힌 상태였다는데 여름에 봤을 때는 피골이 상접해서 몰골도 그런 몰골이 없었다더라구. 그런데 1달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땐 다시 정상인이라던데. 항간엔 그놈이 일 시작하기 전에 살견적부터 뽑는다는 소문이 돕디다. 결국, 감독을 따라가야 한다 종두 |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실실 웃으며 끼어든다) 그런데 아저씨, 저는 언제까지 이러구 앉아 있어야 돼요 나, 우리 공주마마 밥해주러 가야 되는데…. 철중 | 미안하다. 의자가 없다. 종두 | 아이∼ (여전히 웃으며) 씨발이네. 철중 | 욕을 하면 알아듣게 해야 되는 거거든. 못 알아들으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거거든. 응 너 나 모르지 나 성질 좆 같은 놈이야. 난 나한테 시비거는 새끼 경찰서 안 데려가. 종두 | 그럼 어떻게 하는데… 요. 철중 | (종두의 눈을 노려보며) 죽여. 주먹질하는 새끼, 주먹으로 죽여. 연장질 하는 새끼, 연장으로 죽여. 가끔 너처럼 좆도 모르는 게 주둥이만 산 새끼. 왁! 주둥이로 죽여. 그러니까 너도 설경구란 새끼에 대해 소상히, 상세히, 아는 대로, 다불어 새꺄. 종두 | 그…그 설경구란 아저씨가요. 늘 그런 말을 했거들랑요. 작업감독 스타일이 있지, 노가다꾼이 뭔 스타일이 있냐 철중 | 그게 뭔 말이냐. 종두 | 물론 작업에 있어 노가다꾼이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엔 감독을 따라가야 한다는 거죠. 자기는 감독만 믿고 간다고, 설령 감독이 틀렸다고 해도 선택한 이상 믿어야 한다고, 안 그럴 거면 아예 시작도 말아야 한다는 그런 말이걸랑요. 철중 | 그래 (흠…그게 전법인가) 그렇다면 작업감독들 중에 그 새끼를 배후조종하는 놈이 있겠군. 그놈이 같이 일한 작업감독들에 대해 까봐. 야! 야! 새꺄, 재필이! 너 조냐 어디라고 조냐 너 졸라고 비싼 세금받아 처먹으면서 난로에 기름 때는 거 아니거든. 응 재필 | (입에 침 딱으며) 아이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눈치보다) 최근부터 말할깝쇼 철중 | (중얼거리듯) 니미… 제발 니 꼴리는 대로 하세요. 재필 | 최근 광복절기념탑 건립현장에서 일했던 김상진 감독은, 흠 흠, 이 노가다 십장은 좀 젊은데 일 수완이 좋거든요. 생긴 것 같지 않게 화도 잘 안 내고 현장분위기가 좋아서 워낙 편했대요. 준비 안 한 놈은 조져야 되지만, 할 때까지 해서 안 되는 거면 용서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라 분위기 좋을 수밖에. 설경구하고는 학교 동창이라 너나들이 하구요.

10인의 제작 투자자가 말하는 2002년 8문8답 [4]

"대기업 투자활발, 바람직하다"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정 태 원 올해 한국영화는 지난해와 비교하였을 때, 제작편수나 좌석점유율면에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있었던 해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적으로 블록버스터영화가 좋지 않은 결과를 냈지만, 관객의 사랑을 받으려면 다양한 장르의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급망을 갖춘 대기업의 투자가 활발해진 것. 과거 대기업들과 달리 탄탄한 배급망을 갖춘 대기업들이 안정된 콘텐츠 확보를 위해 한국영화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올해 쇼박스의 등장으로 더욱 활발해졌다. 롯데그룹도 곧 한국영화에 투자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투자가 과거 대기업이나 금융권처럼 흥행수익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기적인 투자가 아닌, 기존의 사업과 연계하거나 자신들의 배급망을 위한 콘텐츠 확보 등 충분한 스터디를 통해 이루어지는 투자이기 때문에 좀더 장기적인 투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므로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이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에도 멀티플렉스가 생겨나는 현상이다. 이들을 통해 지방 관객 수가 증가하면 결국 한국영화산업도 활발해질 것이다. 몇몇 블록버스터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안정지향적 투자와 제작이 이루어져 비슷한 장르와 스타일의 영화만 생산되는 경향이 보인다. 이렇게 되면 한국영화의 질적 성장이 더뎌지게 되고, 관객의 관심도 멀어지게 된다. 올해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부터 시작해서 <소림축구> <레지던트 이블> <인썸니아> 그리고 <가문의 영광>까지 외화와 한국영화가 골고루 좋은 결과를 얻었다. 이전까지는 한국영화를 1년에 한편만 제작했는데, 올해는 지난해부터 준비하던 한국영화 중 3편을 개봉 또는 제작 중에 있다. 따라서 올해 한국영화 제작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이 중대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전부터 준비해온 시나리오들이 올해 동시에 3편이나 제작에 들어가게 되면서 한국영화 제작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다. 매번 영화를 개봉할 때마다 여러 가지 아쉬움이 남게 된다. 딱 한 가지를 시행착오로 들기는 어렵다. 가장 인상깊은 영화는 <공공의 적>. 아들이 부모를 살해하는 엽기적인 이야기를 위트있게 그리고 완성도를 가져가면서 상업적으로 풀었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자극이 된 영화로는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전부터 스필버그를 ‘최고의 감독’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로 그가 ‘최고의 감독’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구성, 연출력, 시나리오, 어느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영화였다. 내년에는 더욱 다양한 장르와 새로운 시도의 영화들이 제작에 들어가거나 제작준비 중에 있기 때문에 올해와 비슷할 것 같으며 양보다는 질적인 향상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미도>. 강우석 감독이 한국 과거사 중 가장 암울하면서 숨기고 싶은 역사의 한 단면을 어떻게 상업적으로 풀어낼 것인가가 궁금하다. <나비>. 지난해 제작한 <흑수선>이 관객과의 만남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이번 영화에서는 되풀이하지 않고자 한다는 면에서 기대하는 작품. "무모한 투자와 제작, 위기심화"싸이더스 대표 차 승 재 양적, 질적 성장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 하지만 2002년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무모한 한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무모한 투자와 제작이 이뤄지면서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블록버스터영화의 실패와 이에 따른 투자 위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된 건 만드는 사람의 책임이다. 이들 블록버스터영화는 기획과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제작관리,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무계획적으로 이뤄졌다고 본다. 이런 영화일수록 훨씬 정교함을 기해야 한다. 자금난이 가장 심각하다. 바깥 사람들의 상상 이상이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40% 넘을 전망이지만, 전체 투자 대비 수익을 따져보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다. 현재로선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 이러한 자금난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인 듯 보인다. 지속적으로 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을 통해 기존 자금의 공백을 메우는 대기업 등 새로운 투자자를 맞이해야 한다. 한마디로 지리멸렬, 암중모색이다. 성과가 별로 없었다. 상 받은 것도 없고 돈 번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정글쥬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약간의 수익을 올렸지만, <로드무비>가 대중적인 호응을 못 얻었다. 그래도 20만명 정도는 봐줄 줄 알았는데 5만명 정도에 그쳤다. 이 3편을 전체적으로 보면 수익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이 있다면 그건 자본을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그게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고, 그게 시행착오이기도 하다. 연초부터 외국까지 나가서 자본을 끌어들이려 노력했지만, 성과가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전범이 되는 영화다. 가장 인상깊었고 가장 큰 자극을 줬다. 한국영화가 내년엔 활성화되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투자사들과 제작자들이 많이 움츠리고 있다. 요즘 창투사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듯하다. 심지어 일부 대형 영화자본조차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편수는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캐스팅은 여전히 어려울 것이다. 우리로서 갖게 되는 또 하나의 고민은 수익성에 대한 것이다. 수익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회사 자체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갈수록 영화가 점점 일회성, 또는 순간적인 엔터테인먼트로 자리매김된다는 점도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다. 이 영화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만큼 많은 제작비를 들인다는데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위상을 다시 찾아줬으면 한다. 대형 프로젝트인 <내츄럴시티>도 궁금하다. 이들 영화가 성공해야 큰 제작비를 쏟는 영화도 계속 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목표가 있다면 수익성 확대다. 300만 이상의 관객이 드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영화로 번 돈, 영화로 돌아오는 시스템 생겼다"CJ엔터테인먼트 상무 최 평 호 긍정적으로 본다. 거품이 빠진 정도 아니겠나. 올해 한국영화 점유율도 40%를 넘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차분히 추스르고 내년을 기대해볼 만하다. 올해 흥행한 영화가 지나치게 코미디에 편중돼 있긴 하지만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다양한 장르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전체적으로 한국영화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한 단계 성숙해진 한해였다고 평가한다. 멀티플렉스의 확대를 꼽아야 할 것이다. CGV, 메가박스, 롯데 등 대형 멀티플렉스가 본격화되면서 유통부문이 산업화되고 있다. 유통구조의 급변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영화자본이 생긴다는 점이다. 최근 2∼3년간 머니게임을 위한 금융자본이 많이 들어왔다가 빠지고 있는데 멀티플렉스 체인을 통해 형성된 자본은 이런 금융자본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장기적인 전망을 갖는 영화투자가 가능하다. 영화로 번 돈이 영화로 재투자되는 시스템이 생긴 것이다. 이는 산업으로, 시스템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제작비용의 급상승을 들 수밖에 없다. 인건비가 대폭 올라 시장 규모에 비해 제작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만큼 수익률은 낮아졌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화인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는 거품이 빠지면서 자연스레 해소될 문제도 있다. 시나리오부터 전보다 까다롭게 고르고 프리 프로덕션도 더 철저히 할 테고 시장 규모에 어울리는 프로덕션이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줄일 수 있는 비용이 꽤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자체적으로 12편 정도를 투자, 배급해서 한국영화 1년 라인업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시스템을 만든 한해였다. 제작관리나 마케팅이나 모두 노하우를 쌓고 본격적인 시스템이 가동시킨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15편 정도 투자, 배급할 계획이다. CGV 멀티플렉스도 내년이면 130개를 넘을 것이다. 이 정도면 유통에서 어떤 궤도에 오르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배급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뜻이다. 1년 라인업이 제대로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다. 올해 투자한 영화의 흥행성적이 좋지 않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CJ는 제작투자만 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흑자를 낸다. 올해 흥행성적이 기대치보다 낮았다는 것은 시행착오라고 볼 수 있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데 따른 시행착오다. <오아시스>다.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었고 감동적이었다. <집으로…>도 향후 한국영화의 방향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말 한국적인 소재로도 세계시장에 어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고 스타를 캐스팅하는 게 최선은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올해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본다. 극장이 늘기 때문에 전체 시장도 확장될 것이다. 이젠 한국영화가 한 단계 성장했기 때문에 탄력을 받아서 전진할 거라고 예상한다. 다른 회사에서 만드는 영화는 잘 모르겠고 CJ에서 투자한 영화로는 <살인의 추억>과 <스캔들>을 들 수 있다. 감독이나 프로듀서의 능력으로 볼 때 많이 기대하는 작품들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