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UPCOIN24비트매입코인돈세탁비트매입코인돈세탁'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야마시타 노부히로]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끌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각본을 10번 이상 고쳐쓴 뒤 시대를 90년대 초로 바꿨다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90년대 초라는 시대가 연출하기에 편리했던 것 같다. 휴대폰도 없고, 아직은 뭔가 부자유한 느낌이 남아 있는 시절. 그냥 이야기를 풀기에도 재밌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무너졌던 때라고 하는데 나는 학생이라 별로 실감을 못했고, 그냥 텔레비전에서 불경기가 될 거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일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대체 세상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했다. -멧돼지 전설의 고장 마츠가네란 마을이 인상적이다. 어디에나 눈이 있는데 거기서 기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로케이션 헌팅 때부터 눈만 있는 마을은 너무 그림 같을 거라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눈이 남아 있긴 하지만 설국의 이미지는 아닌 그런 곳을 원했다. 겨울의 나른한 느낌이 좋았고, 추운 곳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란성 쌍둥이로 등장하는 형제 히카리와 코타로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했나. =주인공 설정이 힘들었다. 처음엔 일란성 쌍둥이로 정했다가 나중에 이란성 쌍둥이로 바꿨다. 같은 학년이고, 항상 같은 걸 보고 자랐는데 한명은 경찰이고 다른 한명은 양계장에서 일하는 말썽쟁이다. 참 그로테스크한 관계구나 싶더라. 게다가 아직도 함께 살고 있고. 그런 불편함을 그리고 싶었다. -전작인 <린다 린다 린다>가 당신 작품 중에선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이 사실이 이번 영화에 영향을 끼쳤나. =일단 <린다 린다 린다>가 관객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다시 나만의 정도(正道)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나의 20대를 마치는 느낌이 큰 영화다. 이전까지 나는 청춘영화만 찍어왔고, 그 안에서 폭을 넓히지 못했다는 느낌도 있었다. 30대에는 좀더 시야를 넓혀서 해보자는 결심을 한 거고. -당신에겐 청춘이 어떤 의미인가. =가진 건 없으면서 자신만 있는 거. 내가 만들었던 영화들을 보면 다 그런 놈들만 나온다. <린다 린다 린다>도 겉보기엔 산뜻하지만 결국 비슷한 캐릭터들의 영화다. 그 무렵엔 나도 그렇게 자신감만 넘쳤다. 요즘엔 그때처럼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다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소녀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무척 의외로 느꼈다. =일단 소녀만화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고, 첫 경험이었다. 처음엔 진도를 나가지 못해서 몇번이나 좌절했다. 하지만 소녀만화 방식에 익숙해지니까 빠져들게 되더라. -각본을 <메종 드 히미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와타나베 아야가 썼다. 그녀와의 작업은 어땠나. =아야와 함께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프로젝트를 맡은 여러 이유 중 하나다. 계속 팬이었으니까. 무카이(고스케)의 각본은 매우 친절하지만 아야의 각본은 읽기엔 재밌어도 촬영해보면 상당히 힘들다는 걸 알 수 있다. 손이 많이 간달까. -<크림레몬>을 시작으로 <린다 린다 린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등은 영화사에서 제안받은 프로젝트다.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차이가 많이 있나. =<크림레몬>이나 <린다 린다 린다>를 할 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별로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면 해도 좋지 않겠어?’ 뭐 이런 느낌이랄까. 제안받은 프로젝트라고 해도 <크림레몬>도 나랑 예전부터 같이 하던 촬영감독이었고, 각본도 무카이가 써서 별 다른 점은 못 느꼈다. -당신 영화에는 대화와 대화 사이의 정적이 길고 롱테이크도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끌리는 연출자다. 한 장면이 이어지다 질리지 않을 순간을 찾아 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린다 린다 린다>의 라이브 장면도 4명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마지막 라이브 장면은 실제로 찍은 컷을 다 쓴 거다. 필요한 최저한의 컷만 간다. 그게 롱테이크든 짧게 끊어서 가든 중요하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길게 가게 되는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라면 특수한 기술이나 재주는 부리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 -<린다 린다 린다>를 비롯해서 대부분 청춘의 주인공들은 해피엔딩이라 하기엔 심심한 결말을 맞는다. =그대로 끝나버리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내 영화에 성장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긴 하지만 성장하진 않는다. <린다 린다 린다>에서도 네 여학생은 모두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을 거다. 이건 비관적인 게 아니다. 서로 변해간다는 건 좋은 거니까. -<린다 린다 린다>를 합숙하면서 찍었다고 들었다. 촬영 분위기가 좋았겠다. =내가 시골에서 영화를 찍는 건 사실 합숙하며 촬영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찍으면 배우, 스탭들과 같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바보의 하코선>을 할 때도 전원 합숙하면서 찍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실례지만 여자배우, 남자배우가 한방에서 같이 자기도 했다. 남자, 여자 따로 나누지 않고 그냥 배우는 이 방! 이런 식으로. -일본의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란 수식을 듣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을 처음 들었던 게 <우울한 생활>을 찍었을 때다. 카우리스마키의 <레닌그라운드 카우보이>랑 느낌이 비슷하다고. 짐 자무시 이야기는 <바보의 하코선> 때 나왔다. 한 <버라이어티> 기자가 젊은 짐 자무시가 찍었을 법한 영화라고 그랬었나. 그래서 그 다음엔 무카이랑 <리얼리즘 숙소>를 <천국보다 낯선>처럼 찍어보자고 했다. 대놓고 따라해보자고. (웃음) 그랬는데 그때는 또 아무 말이 없더라. 들킬 줄 알았는데 안심이었다. -당신의 영화를 보면 다운타운(일본의 유명 개그 콤비)의 마쓰모토 히토시(2007년 <대일본인>으로 영화 데뷔했다)가 하는 개그의 영향도 보인다. 폭소가 아닌 미지근한 웃음이 그렇달까. =아마 영향을 받았을 거다. 나의 소스라고 하면 TV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또 내가 오사카예능대학을 나왔지 않나(마쓰모토 히토시가 오사카 출신이다). (웃음) 기타노 다케시의 영향도 받았을 거고. -영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바가 있나. =<린다 린다 린다>를 본 사람이 있다면 <우울한 생활>을 찾아서 다시 봐줬으면 좋겠다. 기타노 감독에겐 매우 실례의 말이지만 내가 기타노 영화를 보면서 ‘에, 저 정도면 나도 찍을 수 있겠군’이라고 했던 것처럼, 내 영화를 보면서 똑같은 결심을 해줬으면 좋겠다.

평화롭고 쓸쓸한 하룻밤 <밴드 비지트: 어느 조용한 악단의 방문>

화면 정면에 멈춰 있던 버스가 지나가면 그 자리에 똑같은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정지된 풍경처럼 일렬로 서 있다. 이스라엘 어느 지방 도시의 초청으로 방문했건만, 이들을 기다리는 건 황량하고 고요한 벌판뿐이다. 환대받지 못한 자들의 어색하고 불안해진 눈빛과 자세가 처량하다. 직접 목적지로 찾아가기로 결심한 남자들은 버스에 오른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경찰 관현악단의 이스라엘 방문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원래의 목적지는 ‘페타 티크바’지만, 영어 발음을 잘못 알아들은 탓에 ‘벳 하티크바’라는 사막 같은 마을에 내린다. 다시 돌아갈 버스는 끊기고 모텔도 없는 이곳에서 이들 눈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식당. 다행스럽게도 집시 분위기를 풍기는 여주인 디나와 조금은 멍해 보이는 두 남자의 배려 덕에 밴드 멤버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낯선 이들과의 우연한 하룻밤에 펼쳐지는 잔잔한 추억거리들이 영화의 중심이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만남. 정치적인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밴드 비지트: 어느 조용한 악단의 방문>은 인물들의 국가색을 최소화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낯선 타인들의 소통 이야기로 보편화시킨다. 그걸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휴머니즘적 승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 체결을 맺은 아랍권 최초의 국가지만, 여전히 두 나라는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2007년 카이로국제영화제 조직위는 이스라엘이 관여한 작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이집트에서는 이스라엘영화들이 상영 금지된 상태다. 2007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 수상작이자 이스라엘영화제 주요 부문을 석권하고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밴드 비지트…> 역시 이집트에서는 상영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 출신 감독 에란 콜리린에게 이스라엘 밴드의 이집트 방문기보다는 이집트 밴드의 이스라엘 방문기를 찍는 편이 훨씬 수월했을 수밖에 없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인물들, 투픽(새슨 가바이), 할레드(살레흐 바크리), 디나(로니트 엘카베츠) 등은 이스라엘의 국민 배우들이며 밴드의 2인자 시몬(칼리파나투르)을 연기한 배우는 이스라엘에서 활동 중인 팔레스타인 배우다. 그러니까 안타깝게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로운 소통을 그린 영화에서 실제 이집트와의 소통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집트와의 전쟁에 몰두하는 국가의 텔레비전에서 오마 샤리프가 출연한 이집트영화가 나오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밴드 비지트…>를 둘러싼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같은 풍경, 먼 곳을 쳐다보는 듯 무표정한 인물들의 얼굴, 긴 침묵 사이의 짧고 엉뚱한 대화는 때때로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를 떠오르게 한다. 언제나 한 박자씩 느린 인물들의 반응은 그 자체로 영화 고유의 리듬을 만든다. 같은 선율을 반복하는 음악과 최소의 움직임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소통하는 인물들, 그리고 평면적인 배경은 영화를 미니멀리즘적인 분위기로 감싼다. 그 여백에 쓸쓸한 유머가 배어 있다. 이 영화는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가장 낭만적인 만남에 대한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고, 투픽으로 대변되는 깐깐한 구세대와 할레드로 대표되는 자유분방한 신세대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음악을 매개로 삶,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로도 보인다. 시몬이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한 협주곡의 마무리를 두고 고민하자, 그의 하룻밤을 책임져준 이스라엘 친구가 조용히 조언한다. “그냥 거기서 끝나도 돼. 슬프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은 그곳. 작은 방, 램프의 불빛, 침대, 그리고 잠든 아기. 이 깊은 고독감 말이야….” 드라마틱한 결말을 원하거나 영화 곳곳에 스며든 고독감을 무료함이라고 느끼는 자들에게, 혹은 현실에 대한 날선 정치적 발언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속에 외로운 선율을 품고 만남, 기다림, 헤어짐을 스쳐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작은 선물이 될 것이다.

[베를린] 독일에서 파시즘은 정말 사라졌나?

독일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은 나치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신물이 나도록 듣는다. 황금시간대에 텔레비전을 틀면 나치의 만행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가 끊임없이 방영된다. 그렇다면 독일사회는 이런 계몽작업의 효과만 믿고 파시즘은 발디딜 틈이 없을 거라 안심해도 괜찮은 것일까? 모튼 류의 원작을 각색한 신성 데니스 겐젤의 신작 <디 벨레>(Die Welle)는 여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영화는 68세대 이후 반권위주의적, 자유주의적 교육 세례를 받고 자란 독일의 청소년들도 파시즘적 집단 최면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은 독일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다. 주인공 벵어(위르겐 포겔)는 청년 시절 좌파대안운동권에서 빈집 점거를 한 경력이 있다. 그만큼 의식도 있고 학생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반권위주의적 교사다. 그런 그가 ‘독재’를 주제로 심화학습을 하려하자 학생들은 “어휴, 지겨워. 차라리 미국 대통령 부시를 다루지요”라며 거부한다. 이에 자극받은 벵어는 학생들과 게임을 시작한다. 독재가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모두가 참여하는 실험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실험의 모토는 ‘규율을 통한 권력, 공동체를 위한 권력, 행동을 통한 권력’.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흰색 셔츠로 통일해 입은 뒤 프로젝트의 명칭을 물결이란 뜻의 ‘디 벨레’라고 붙인다. 실험이 계속되자 아이들은 정말로 집단 도취에 빠져들고 벵어마저 권력에 도취되며 실험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디 벨레>는 심지어 아웃사이더, 외국인, 저소득층 자녀들마저 파시즘적 공동체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극우문제 전문가 베노 하페네거는 “청소년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우리는 사회적으로 비교적 불안정한 상황에서 산다. 그래서 이들도 전체주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독은 부모들의 자유주의적인 교육법에도 의문을 던진다. 영화에서 한 엄마가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고 하자 여학생은 “날 그렇게 키웠으면 차라리 나을 뻔했어. 키울 때 약간 엄격했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라고 대꾸한다. 73년생으로 68세대 부모 밑에서 자란 겐젤 감독은 이것이 실제 자신이 부모에게 했던 말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대사를 통해 그는 68세대 이후의 부모들이 권위적 어른이기보다 친구처럼 구는 것이 오히려 자식들을 전체주의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그건 사실일까? 이상향을 추구하는 반권위적 교육이 오히려 전체주의적 유혹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영혼들을 키우는 걸까?

[2007-2008 추천 OST] <아임 낫 데어> <댄 인 러브> 外

여전히 밥 딜런적이지만 신선하게!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 소니BMG | V.A. 열말 제치고 우선 이름부터 나열해보자. 컨트리계의 전설 윌리 넬슨, 펄잼의 에디 베더 그리고 두말할 필요없는 소닉 유스, 윌코의 프론트맨 제프 트위디, 포스트펑크밴드 텔레비전의 보컬 톰 버레인, 페이브먼트의 보컬 스티븐 말크머스, 인디계의 매력적인 여신 캣 파워, 현재 인디신에서 제일 뜨거운 슈퍼스타 요 라 탱고, 천재 싱어송라이터 서프전 스티븐스, 예예예스의 보컬 카렌 오, <원스>의 글렌 한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 듀오, 잭 존슨 그리고 머큐리상 최우수 음반상에 빛나는 안토니 앤드 더 존슨스 등등. 인디·컨트리·블루스·얼터너티브·개러지계의 신·구스타들이 한데 모여 토드 헤인즈의 영화 <아임 낫 데어>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했다. 과거에도 음악신 스타들의 밥 딜런 트리뷰트는 있었다. 위의 뮤지션들이 커버한 33곡의 ≪아임 낫 데어≫ 사운드트랙이 매력적인 까닭은 같은 뻔한 트랙들을 가급적 피하면서 또 다른 방식으로 밥 딜런의 초상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뮤지션들은 각자 자기 재능과 밥 딜런 곡의 본질 사이에서 길을 헤매지 않고 다양한 해석의 지점들을 찾아냈고, 토드 헤인즈와 뮤직 수퍼바이저 랜달 포스터는 앨범 전체의 수록곡 면면을 섬세한 스펙트럼으로 조율해냈다. 같은 희귀 음원의 트랙들과 같은 타 뮤지션들의 커버곡으로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넘버들까지 모아 놓은 것. 그것은 토드 헤인즈가 여섯명의 배우에게 각각 다른 시기의 밥 딜런 이미지를 입혀 밥 딜런이라는 인물의 큰 그림을 맞춰보려 한 영화적 시도와도 당연히 부합한 것이다. 미국 최대 음악사이트 ‘올뮤직’의 앨범평은 이렇다. “밥 딜런의 음악 녹음이라는 파워를 견지하면서 이미 존재하는 그것에 대한 신선한 해석의 입장을 지켜낸 음반. 이렇게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은 다른 앨범들은 거의 하지 못했던 일이다.” 강추 트랙: 특별히 두개. 소닉 유스가 특유의 몽환적인 느낌으로 커버한 그리고 2CD 마지막을 닫는 밥 딜런의 다. 첫사랑에 조응하는 사운드트랙 <이토록 뜨거운 순간> The Hottest State | 와이드미디어 | 제시 해리스 제시 해리스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노라 존스란 이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시 해리스는 재즈/포크계열 뮤지션 노라 존스를 하루아침에 슈퍼스타로 만든 데뷔앨범 ≪Come Away With Me≫와 2집 ≪Feels Like Home≫의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다. 전세계적으로 히트한 1집의 타이틀곡 의 작곡자이기도 한 제시 해리스의 제법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담백한 포크송이 배우 겸 감독 겸 소설가 에단 호크의 섬세함과 코드의 일치를 봤다는 건 별로 이상하지 않다. 자신이 쓴 동명 소설 <이토록 뜨거운 순간>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하면서 에단 호크는 “영화가 첫사랑에 관한 것이고, 첫사랑에는 사운드트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스물한살 생일을 며칠 앞둔 청년 윌리엄의 뜨거운 첫사랑과 실연 그리고 성장. 감독 말에 따르면 “곁에 늘 라디오를 두고 살” 그 무렵에 누구나 듣고 또 들을 법한 곡들을 제시 해리스가 모두 썼다. 나른한 기타 소리, 노라 존스와 에미루 해리스를 비롯해 캣 파워, 파이스트, 맷 워드, 토니 셔 등 매력적인 인디포크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오후 봄볕처럼 따사로운 조화를 이룬다. 강추 트랙: 제시 해리스가 직접 부른 심플한 기타 솔로곡 . 노라 존스 스타일로 알려진 제시 해리스의 감성의 정수를 들려주는 트랙이다. “우리가 함께 느낀 모든 것들은 늘 우리와 함께 할 거예요. 늘 함께, 늘 함께, 우리와 있을 거에요.” 인도 여행의 길잡이는 역시 인도 음악 <다즐링 주식회사> The Darjeeling Limited | 유니버설뮤직 | V.A. 웨스 앤더슨도 취향이 분명한 감독 중 하나다. 타란티노만큼 유별난 과시를 하지는 않지만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로얄 테넌바움> 같은 전작에서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이면 이를 수긍하고도 남을 것이다. 앤더슨이 특히 좋아하는 뮤지션들, 가령 롤링 스톤스나 킨크스, 캣 스티븐스, 니코, 존 레넌 등 록신의 거물들은 멜랑콜리함과 블랙코미디가 버무려진 그의 영화에서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인물들이 인생을 깨우치고 조금 어른이 되는 순간을 대변해주곤 한다. 한심한 3형제가 인도 여행을 떠나는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의 음악적 선생님은 인도의 전통 음악. 웨스 앤더슨과 그의 절친한 뮤직 슈퍼바이저 랜달 포스터는 인도영화의 거장 샤티야지트 레이 영화에 쓰였던 음악들과 머천트-아이보리 필름이 제작한 영화들에 삽입된 인도 음악들을 무려 11곡이나 뽑아 <다즐링 주식회사> 사운드트랙 안에 넣었다. 킨크스( )와 롤링 스톤스()를 삽입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지만, 이 앨범은 인도 음악에 애착이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히 어필할 게 분명하다. 덧붙이면 롤링 스톤스의 삽입곡이 앤더슨 영화의 O.S.T에 정식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추 트랙: 3형제의 막내가 머물던 슈발리에 호텔의 방을 청승맞게 가득 채운 팝송, 인도 출신 피터 사르쉬테트가 1969년 발표한 곡 다. 심플하지만 중독적인 북구의 선율 <댄 인 러브> Dan in Real Life | EMI | 손드러 레케 예기치 못한 발견이었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이 <졸업>에 기여한 바”에 비견될 만큼 영화의 심장과 직결되는 음악을 원했던 피터 해지스 감독은 수백장의 CD를 첩첩이 쌓아놓고 듣던 중 유독 손이 가는 뮤지션을 발견했다. 대가를 기대했던 그가 맞닥뜨린 이름은 바로, 손드러 레케(Sondre Lerche)였다. 발음조차 난해하기 짝이 없는 낯선 이름의 주인공은 노르웨이에서 건너온 스물세살의 파릇한 청년. 2002년 데뷔앨범 <>으로 <롤링스톤>이 꼽은 그해의 베스트50에 이름을 올린 뒤 북구의 신성으로 불리던 레케는 곧장 할리우드 초대장을 받았다. “설탕을 뒤집어씌운 듯한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코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그가 완성한 것은 심플한 어쿠스틱 기타 선율을 중심으로 한 포크풍의 음악. 폴 사이먼과 엘리엇 스미스의 중간 어딘가에 떨어질 법한 <댄 인 러브>의 O.S.T는 로드 아일랜드의 별장을 무대로 가족간의 화합을 노래하는 영화의 푸근한 감성과도 완벽한 등호를 그린다. 음반에 수록된 16곡 중 진정한 정수는 레케가 새롭게 작곡한 4개의 보컬곡 . 담백하지만 중독적인 기타 선율과 레케의 부드러운 가성이 일품이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원곡을 재즈풍으로 편곡한 , 열여섯살에 강아지를 위해 작곡했다는 사랑스러운 듀엣곡 (영화의 엔딩에 레케가 직접 출연해 연주하기도 한다) 등 그의 기존 앨범들에 실렸던 곡들 또한 이 새로운 뮤지션의 (어려운) 이름을 뇌리에 새기게 만든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에 비견되는 성취는 몰라도, 발견의 기쁨을 안겨주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강추 트랙: 오리지널 보컬곡 중 하나인 . 비눗방울처럼 맑고 경쾌한 기타 선율이 잰걸음으로 달려가며 심박수를 높이고, 나른하면서도 달콤한 후렴구가 귀에 착 감겨든다. 달콤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의 전형 <인챈티드> Enchanted | EMI | 앨런 멘켄 앨런 멘켄은 뭐니뭐니해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가’다. <인어공주>(1989), <미녀와 야수>(1991), <알라딘>(1992), <포카혼타스>(1995), <노틀담의 꼽추>(1996) 등 할리우드 2D셀애니메이션의 명가 디즈니를 빛낸 자식들 중 적어도 절반은 멘켄의 품에서 나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커리어를 시작한 멘켄의 활동 본거지는 그런데 사실 브로드웨이다. 그의 음악이 디즈니 특유의 언더스코어(인물들의 움직임에 정확히 일치된 음악) 전통을 이으면서도 뮤지컬적인 화법을 끌어와 애니메이션 장르를 화려하고 웅장하게 포장하는 스타일을 갖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등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를 써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인챈티드>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그러한 멘켄의 특징을 집약시킨 또 하나의 디즈니 음악. 차임벨과 플루트, 현악이 어우러진 꿈처럼 달콤한 스코어는 디즈니의 과거 애니메이션 테마들을 수수께끼처럼 숨겨놓아 찾아 듣게 하는 재미도 있고, 여주인공 에이미 애덤스와 그의 친구들이 부르는 신나는 뮤지컬 사운드는 기분을 절로 띄워준다. 강추 트랙: 신예 싱어송라이터 존 맥러플린이 부른 발라드 . 의 계보를 잇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발라드 트랙이다. 행복 에너지 100% 충전! <헤어 스프레이> Hairspray | 유니버설뮤직 | 마크 셰이먼 당신의 행복 지수를 절정으로 치솟게 할 앨범. 존 워터스의 1988년작 영화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다시 스크린으로 이식된 <헤어 스프레이>의 2007년판 O.S.T는 듣는 내내 발끝을 붙들어매기 힘들 만큼 쾌속의 유쾌함으로 끓어오른다. 등 대표적인 넘버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니키 블론스키의 목소리는 탄산음료처럼 청량하고, <하이스쿨 뮤지컬>로 이미 한 차례 검증받은 잭 에프런,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로 코믹한 방점을 찍는 존 트래볼타가 한데 어울려 순도 100%의 낙천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등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세개의 곡이 수록됐고, 역으로 뮤지컬에는 사용되었으나 영화에서 생략됐던 이 스페셜 트랙으로 추가됐다. 88년 원작 영화의 리키 레이크,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마리사 자렛 위노쿠어, 니키 블론스키까지 3명의 트레이시가 입을 맞추는 은 스크린과 무대를 고루 밟았던 <헤어 스프레이>에 딱 걸맞은 마침표다. 강추 트랙: 엔딩곡인 로 그 이름 그대로 말초신경 끝까지 짜릿하게 자극하는 희열의 난장이다. 니키 블론스키, 잭 에프런, 아만다 바인스, 존 트래볼타 등 메인 캐스트가 총출동한다.

[What's Up] 이젠 극장에서 오페라, 콘서트, 농구까지 본다!

넌 극장에서 영화만 보니? 난 오페라, 콘서트, TV시리즈, 발레, 농구도 본다! TV는 점점 강력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극장과 DVD 수익의 격차는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VOD에 불법 다운로드까지 적수로 떠오르는 요즘. 관객의 발길을 붙들어매기 위한 극장의 새 단장 노력이 즐비하다. 지난 3월23일 미국 멀티플렉스 체인의 그러한 움직임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북미 최대 영화체인인 AMC와 리갈이 셀린 디온의 콘서트와 <스타트렉>의 연속 방영 등을 진행했고, 오는 4월24일에는 수백개의 극장에서 국제 군악챔피언십(drum corps international world championships)의 하이라이트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스포츠 중계 역시 빠질 수 없다. 지난해 8월 뉴욕 메츠의 게임을 생중계하여 재미를 본 뉴욕 지그필드 극장은 올해 여름에는 이러한 기회를 더욱 늘릴 계획이며, <할리우드 리포터>는 댈러스 매버릭과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NBA 경기가 댈러스의 극장에서 3D 중계된다고 보도했다. 한편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극장을 통한 고급예술의 대중화가 시도되고 있다.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의하면, 올해 말부터 로열 오페라와 로열 발레 공연이 전국 60여개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고 한다. 첫 번째 개봉작은 <피가로의 결혼>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멀티플렉스의 이 같은 곁눈질은 “더이상 관객 수의 증가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조치일 뿐 이를 통해 엄청난 수익 증대를 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다. 랜드마크 시어터의 고위 간부 테드 문도르프는 “스포츠 경기 생중계 등이 개봉주의 <해리 포터>를 대신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5주차 <해리 포터>라면 또 모르겠다”는 말로 이 같은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보고] “위대한 두 배우와 일하는 것은 축복이었다”

인생에 진척이 없다라고 느낀 30대 초반의 시나리오작가 저스틴 잭햄은 어느 오후, 책상에 앉아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 혹은 해야 할 리스트(버킷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리스트에는 며칠 동안 비우지 않아 방 안 가득 냄새를 피우는 쓰레기통을 처리하는 것에서부터 인생의 동반자가 될 여인을 만나는 것, 그리고 스튜디오에 시나리오를 파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몇년 뒤, 저스틴 잭햄의 ‘버킷 리스트’는 전부 현실이 되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어 퓨 굿맨>의 롭 라이너 감독은 죽음과 싸우는 두 캐릭터의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게 다루는 이 잔잔한 코미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70대의 두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한다라는 컨셉에 스튜디오가 그다지 열광적이지는 않았던 관계로 두 주인공이 방문하는 세계의 모습은 모두 컴퓨터그래픽의 도움으로 처리되었다. 모건 프리먼이 한때 역사학자를 꿈꾸었지만, 자동차 수리공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던 카터 역을, 잭 니콜슨이 제멋대로인 억만장자 기업가인 에드워드 역을, <윌 앤 그레이스>의 ‘잭’으로 익숙한 얼굴인 숀 헤이즈가 에드워드의 명민한 비서 역을 맡았다. 12월8일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열린 <버킷 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하 <버킷 리스트>)의 정킷은 컨퍼런스와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의 개별 인터뷰로 이루어졌다. 컨퍼런스에는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 시나리오작가인 저스틴 잭햄과 감독 롭 라이너, 프로듀서를 맡은 앨런 그리즈먼, 닐 머론, 크랙 재던 그리고 <윌 앤 그레이스>의 ‘잭’으로 유명한 숀 헤이즈가 패널로 참여했다. 컨퍼런스에서 두 배우가 차지하는 무게는 확실히 다른 어떤 정킷과도 달랐다. 그들은 스타를 넘어서 할리우드의 아이콘으로 존경의 대상이었다. 컨퍼런스 내내 좌중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던 잭 니콜슨은 개별 인터뷰에서는 무척 자상했는데, 영화의 대사 하나하나, 장면의 디테일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인용해내는 모습에서 그가 왜 스타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먼저 저스틴 잭햄에게 질문을 하고 싶다. 잭 니콜슨은 스스로 대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로서 어떻게 받아들였나. =저스틴 잭햄: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니 어떻게 저런 대사를 생각해냈냐는데 대부분이 다 잭의 머리에서 나온 거였다. 나로서는 거저먹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롭 라이너: 잭은 원래 작가로 시작했다. 프리 프로덕션 들어가기 이전부터 각 장면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배우이다. 이를테면 시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해 “smoke through a key hole”(열쇠구멍으로 빠져나가는 연기)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가 싶다가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묘하게도 그 느낌이 전달된다. -당신에게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 =롭 라이너: <버킷 리스트>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보는 내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영화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슬픈 균형이 있다고 할까. 왜냐하면 실제 삶이란 게 그런 서로 다른 요소가 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니까. 처음 저스틴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인생에 대한 뉘앙스가 깔려 있는 드문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은 둘 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유머를 지니고 있다. 그게 많은 것을 이야기하지 않나. 인생을 바라보는 깊이가 느껴져서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작가가 30대일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다. =저스틴 잭햄: 내가 죽음을 앞둔 70대의 두 남자의 심리를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많이 아프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누었던 대화들에 영감을 많이 얻었다. 그때 할머니는 죽음이 어떻게 보면 참 재밌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었다.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과의 작업은 어떠했나. =롭 라이너: 위대한 두 배우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첫 번째나 두 번째 테이크에 더이상 좋은 것이 나오기란 불가능할 것 같은 연기를 뽑아주는 배우들과 일한다고 생각해보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존재가 화면상에 드러나지 않게, 그래서 이들의 연기가 빛이 나게 하는 것이다.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음악이 있되 관객이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게 내 몫이다. -당신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내레이션 작업에 당신만의 비법이 있다면. =모건 프리먼: 글쎄,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은 없다. 학교 다닐 때 발성법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무척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다는 것 정도? 목소리 연기는 1970년대경 텔레비전 시리즈 <일렉트릭 컴퍼니>에서 많이 하게 되었다. 그때 늘 이어폰을 꽂고 내 목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연극 무대에 섰던 것도. 극장 안의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발성에 대한 기본을 배우는 곳은 역시 연극 무대만한 곳이 없으니까. -<버킷 리스트>는 삶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영화다. 당신은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모건 프리먼: 그 생각이라는 것은 그날그날 매번 바뀐다. 글쎄, 삶은 우연한 사건이랄까. 여기 이 순간 내가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해야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존재라는 것. 스스로를 인식하기에 언제나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것 같고. 그렇지만 그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없기에 ‘신’이라는 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나 할까. 기본적으로 우리는 죽기 위해서 살고 있다. 죽음을 통해 한 삶이 정의되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나. =모건 프리먼: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다. 문제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는 것이다. 나 스스로를 가눌 수 없이 무기력해지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영원히 살고 싶지 않은가. =잭 니콜슨: 개인적으로 영원히 살고 싶지는 않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안 믿는다. 다들 영원히 살고 싶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 다음 세대를 희생하면서까지 우리 삶을 연장하고 싶냐라는 부분이겠지. 아무튼 가장 하기 싫은 일이(죽음), 결국 가장 나중에 하는 일이 되니까.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잭 니콜슨: 무척 어려운 소재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해 가볍지 않으면서도 코믹하게 다루겠다라는 시도가 특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매력이었고.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잭 니콜슨: 여럿 있는데. 흠. 왜 에드워드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America’라고 한마디 내뱉는 장면이 있지 않나. 때로는 이렇게 한 단어만으로도 모든 감정이 정확하게 전해지는 순간이 있지 않나. -당신에게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잭 니콜슨: 웬만하면 리스트 만드는 일은 피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지만, 이번 작품하면서 계속 이 질문을 받다보니 하나 든 생각이 바로 ‘마지막으로 멋진 로맨스를 해보는 것’이다. -롭 라이너와는 작업은 어떠했나. =잭 니콜슨: 롭의 부모와 절친해서 롭이 꼬마일 때부터 지켜보았다. 캐릭터 배우였을 때나 감독일 때나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가 언제나 예술가라는 점이라고 할까? 그는 남들과 의사소통하려고 하기를,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분히 고전적이라고나 할까. -배우로서 역에 접근하는 방식은 어떤가. =잭 니콜슨: 교과서적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는 것부터 시작한다. 철저하게 읽으면 그게 다 내 의식 아래에 자연스럽게 깔리니까. 그리고 모든 장면 하나하나를 내가 아는 모든 이제까지의 경험을 다 끄집어내 분석한다.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긴장감을 벗어던지고 자신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어느 순간 캐릭터의 자리에 가 있는 것이다. -아시안 시네마에 관심이 있나. =잭 니콜슨: 구로사와 아키라와 오시마 나기사의 팬이다. 특히 오시마. 그런데 막상 자국팬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근래에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몇몇 한국 작품을 보라고 해서 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 에드워드는 커피 하나에도 까다로운 취향을 보인다. 실제의 당신에게 독특한 버릇이 있다면. =잭 니콜슨: 다이어트 코크만 마신다. (웃음) 아, 언제나 내 재떨이는 늘 들고 다닌다.

[LA] 할리우드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오후 시간 카페 안에서 의자에 기대 책장을 넘기고 있는 이 동네 손님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들 대부분은 작가가 아니면 배우일 가능성이 크다. 배우들이 새로운 프로젝트에 가장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들이 읽고 있는 책을 보면 어떤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젝트들이 현재 진행 중인지를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옆 테이블에 놓인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Dark Tower)는 오랫동안 소문만 무성하다가 지난해 마블사에서 코믹북으로 출판된 이후 영화화가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고보니 흥미롭게도 카페 안의 몇몇 사람들이 같은 표지의 책을 탁자 위에 두고 읽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유난히도 두꺼워 보이는 그 책은 러시아계 미국 여류작가인 아인 랜드의 1957년작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神)>(Atlas Shrugged)이다. 구석에 앉아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神)>을 읽고 있는 배우 지망생은 들고 다니기도 만만치 않은 1200페이지 속에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질지도 모르는 숨겨져 있는 역을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이 작품의 영화화에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주인공으로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면서 곳곳에서 자주 눈에 보이고 있다. 기술자, 기업인, 지식인, 예술가 등의 ‘창조적인 소수 엘리트’들이 어느 날 파업을 한다면 사회는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아인 랜드의 <아틀라스: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神)>은 4월15일로 발표된 미국배우조합(SAG)과 미국제작자연맹(AMPTP)간의 재계약 협상안을 앞둔 시점에서 꽤 흥미로운 소재임이 분명하다. 100일에 걸쳐 진행되었던 작가파업에서 작가들의 성실한 지원자였던 SAG는 감독협회(DGA)나 작가협회(WGA)가 얻어낸 협상안보다 더 유리한 협상안을 끌어내고자 하는 모습이다. 작가파업이 끝나고 텔레비전 시리즈 제작이 재개되었지만, 파업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할리우드에 SAG의 이번 행보는 대체 어떤 결론으로 도달하게 될까.

고독과 사색, 혁신을 조화시킨 전설의 자화상

<사랑의 찬가>(2001)를 보고 난 미국인 가운데 상당수는 영화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언급되는 방식에 대해 다소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레지스탕스의 기억을 돈으로 사는 스필버그라는 존재를 대하며 누군가는 좀더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밝힐 필요를 느끼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신랄한 조크이지만 좀 과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사실 스필버그에 대한 장 뤽 고다르의 과격한 공격 혹은 비꼼은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간 지점부터 시작되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고다르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단지 스필버그 개인에 대한 어떤 악감정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세계가 조직된 방식과 그 세상에서 영화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시인적이면서 철학가적인 통찰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금세기 들어 고다르가 처음으로 내놓은 영화인 <사랑의 찬가>는 분명 <영화사>(1998) 이후의 작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다르의 너무도 방대하고 야심적인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기도 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의 찬가>에서 고다르는 또다시 20세기의 기억 혹은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의 영화가 맡은 역할의 문제를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1995)에서 고다르가 한 말은 “유럽에는 기억이 있고 미국에는 티셔츠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사랑의 찬가>에서도 고다르는 미국인은 역사도, 이름도 없는 존재들, 그리하여 다른 이들의 역사를 구매해서 자신들을 위한 기억으로 가공하려 드는 이들이라고 했다. 고다르가 보기에 중요한 점은 이 같은 사람들은 세상을 제대로 보는 방식 역시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지배적인 위치에서 영화 카메라를 들고 있음으로써 영화의 무능력이 두드러지는 현재적 상황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고다르가 유럽의 상황에 대해 호의적이거나 낙관적이라고 본다고 말하긴 어렵다. 예컨대 <사랑의 찬가>에서 그려지는 파리는 미국이라는 나라와는 달리 자기만의 독자적인 기억을 갖고 있긴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많은 기억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그곳은 유령의 도시, 과거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불길한 도시인 것이다. 게다가 고다르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구대륙에서도 예술의 가치가 쇠퇴하고 있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 에서 그는 규칙의 문제이고 규칙의 일부인 문화와 예술이며 예술의 일부인 예외라는 개념을 서로 대립시킨다. 그리고는 이어서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규칙을 이야기한다. 담배, 컴퓨터, 티셔츠, 텔레비전, 관광, 전쟁. 하지만 이제 아무도 예외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최근의 고다르에게서 <토킹 픽처>(2003)의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유사한 면모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올해로 100살이 된 포르투갈의 대가처럼 벌써 80대를 바라보는 스위스 출신의 감독은 유럽의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왔고 그 황혼을 쓸쓸하게 지켜보는 존재인 것이다. <영화사>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다르라는 ‘나’의 구현인 그의 최근 영화들에서 어떤 멜랑콜리의 느낌이 강하게 풍겨난다면 그건 그 ‘나’의 고독함 때문인 것이다. <아워 뮤직>(2004)에서 고다르가 사라예보로 카메라를 가져간 것은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의 절박성도 원인이 되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이 바로 사라예보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사라예보, 현재의 영화, 이들은 모두 추방의 공간들”이고 고다르 역시 추방 혹은 고립 안에 있는 인물인 것이다. 이 같은 고다르의 자화상에, 어떤 평자들이 지적하듯이, 초월적 자기 신비화의 경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가 전반적으로 영화의 퇴조를 겪는 세상과 절연하여 자기 영화 속에 고독과 사색과 혁신을 조화시킨 예외적인 인물, 그래서 에서 말하듯 이제는 전설이 되었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은 틀림이 없다. <사랑의 찬가> <아워 뮤직>, 고다르의 세편의 근작들을 4월12일부터 2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JLG/JLG: 고다르의 자화상 특별전’은 그의 최근 입지를 재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메신저토크] <댄 인 러브>, <천일의 스캔들>

헬프: 하하. 이걸로 비앙카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면 재미있겠당. 라스가 사는 마을 사람들 같은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는 영화가 또 한편 개봉되죠. <댄 인 러브> 말입니다. 어스: 맞아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 동화책에서 집단 탈출한 듯한 이웃들이 등장한다면 <댄 인 러브>에는 그런 가족이 나오죠. 헬프: 어떻게 보면 퇴행적이라는 느낌마저 없지 않았어요. -_- 어스: 아내를 여의고 세딸을 키우는 상담 칼럼니스트 댄(스티브 카렐)이 추수 감사절 가족 모임을 위해 부모 집에 왔다가 하필 동생의 여친(줄리엣 비노쉬)과 사랑에 빠지는 난감한 로맨스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칼럼니스트 댄이 아침에 기상하는 장면인데요. 헬프: 옆에 아내가 있는 줄 알고 더듬거리다가 없음을 확인하고 쓸쓸하게 일어나는 장면이죠. 어스: 더블베드인데도 한쪽에 몰려서 자고, 그의 옆에는 연인이나 배우자가 아니라 밤새 보던 자료들이 누워 있더군요. 보는 제 가슴도 쓰라렸어요. 남의 일 아니거든요. -.- 특히 펜에서 잉크가 새서 이불에 묻었거나 깔고 잔 자료의 스테이플러 칩 자국이 뺨에 남아 있을 때는 정말 서럽죠. T-T 나이 들면 피부 탄력 저하로 자국도 잘 안 없어져요, 흑. 헬프: 일과 휴식은 확.실.히. 분리하셔야 합니다. 침대에서는 잠만 자자! (무슨 70년대 가족계획 구호 같다….) -..- 어스: 그런데 “<어바웃 어 보이>의 제작진”이라는 홍보 문구 영향 탓인지 그 영화를 좀 과하게 벤치마킹하지 않았나 싶은 인상이었어요. 이 영화의 대가족은 <어바웃 어 보이>의 친구/이웃 그룹을 대신한 것 같았고 클라이맥스에서 주인공의 어색한 노래장면이 있는 것도 비슷했죠. 헬프: 노래장면이나 춤장면이 확실히 좀 공식적으로 쓰인 부분이 있죠. 이 영화의 가족은 아주 푸근하고 따뜻하지만, 그 끈끈한 가족애가 지나치게 퇴행적이란 인상은 지울 수가 없더군요. 수십명 대가족이 모여서 서로 함께 춤추고, 남녀 편갈라서 설거지 내기 크로스워드 게임을 하고, 학예회처럼 한명씩 무대에 올라 장기 자랑을 하고…. 특히 실연을 막 겪은 미치가 그 아픔을 가족과의 게임으로 해소하는 장면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어스: 사실 좀 무섭죠. 프라이버시란 눈씻고 찾아도 찾기 힘드니까요. 많은 캐릭터가 실리콘으로 만든 듯(앗, 여기도 리얼 돌?)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과 더불어 <댄 인 러브>의 약점은 플롯 진행이 군데군데 작위적이었다는 점이에요. “하필이면 그때!” 라고 느껴지는 고비가 몇 차례나 있거든요. 헬프: ‘시나리오의 냄새’가 너무 강하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죠. 어스: 조크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장면을 구성한 다음, 그것을 기승전결에 맞춰 배열했다고나 할까요. 헬프: 동감! 예를 들어서 두 남녀가 모든 상황이 쑥밭이 된 상황에서 볼링장으로 들어가 아이처럼 볼링을 하면서 히히거리는 장면은 아주 이상한 설정인데, 그런 설정이 들어간 이유는 그 다음에 둘이 그곳에서 로맨틱한 키스를 하는 장면을 가족에게 들켜야 하기 때문이죠. 어스: 그리고 형에게 애인을 뺏긴 셈인 동생에게 재깍 대체할 여자친구가 생기는데, 에밀리 블런트가 분한 이 여인은 그저 가족의 평화로운 정경을 파투내지 않기 위해 투입된 접착제처럼 느껴져요. 물론 블런트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이어 섹시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적절한 연기를 보여줬지만요. 헬프: 오직 관객이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을 볼 때의 도덕적인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죠. 같은 경우가 <마법에 걸린 사랑>의 종반에도 있었잖아요. 여주인공에게 외면당한 동화 속 왕자가 현실의 여성과 맺어지는. 어스: 하지만 <댄 인 러브>는 <마법에 걸린 사랑>과 달리 현실적 층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라 불편함이 조금 더 하죠. 게다가 <마법에 걸린 사랑>의 ‘스워핑’은 현실과 환상의 적당한 조합이 좋은 사랑을 만든다는 나름의 주제와도 연결이 그나마 있었으니까요. 헬프: 로맨틱코미디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감각이 있다면 ‘귀여움’이 아닐까 싶은데,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성공했다는 느낌이 있어요. 전 스티븐 카렐의 연기가 좋더군요. 사실 뻔한 이 영화를 살려낸 경우라고 생각해요. 이전부터 카렐의 얼굴에는 좀 비극적인 진지함 같은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코미디에서 묘한 입체감과 페이소스를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어스: 그의 전작 <에반 올마이티>에 비하면 <댄 인 러브>는 훨씬 은근하게 이 배우의 장점을 잘 살렸죠.한편 줄리엣 비노쉬는 아까 언급한 줄리 크리스티와 함께 어떻게 늙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여성 관객에게 좋은 대답이 되는 배우예요. ^^ 헬프: 비노쉬는 정말 아무런 방어벽없이 웃는 여배우라는 점에서 독특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어스: 정말 그 웃음! 전 <나쁜 피>에서 그녀가 웃는 걸 처음 보았을 때 무슨 성인이 저렇게 갓난아기처럼 웃을 수 있을까, 충격마저 받았더랬어요. 헬프: 거의 폭소에 가깝죠. ^^ 이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잉글리쉬 페이션트>나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도 거의 정신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고 마음껏 웃잖아요? 그건 캐릭터가 아니라 자연인 비노쉬의 느낌이란 생각이 절로 들죠. 김혜리: <천일의 스캔들>은 치정관계가 얽히고설킨 구식 소프오페라 같은 면이 있죠. <달라스>나 우리나라로 치면 궁중 여인 열전류의 드라마요. 이동진: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앙상하다는 게 치명적 단점이라고 봤어요. 스토리의 정해진 궤도로만 달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핵심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자매의 애증까지도 그리 잘 살아 있다고 볼 수 없어요. 어스: <천일의 스캔들>이 우리의 마지막 영화네요. 저는 아직도 리처드 버튼이 헨리 8세, 쥬느비에브 비졸드가 앤 볼린으로 분한 <천일의 앤>을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선해요. 헬프: 워낙 텔레비전에서 많이 해준 영화죠. 어스: 그렇게 사랑하던 여자를 목을 쳐서 죽였다는 결말이 어린 마음에 충격이었죠. 헬프: 권태에는 그렇게 잔인한 구석이 있어요. 어스: 하지만 전해지는 헨리 8세 초상화를 보면 확실히 이번 영화의 에릭 바나는 지나치게 미화된 버전이 아닌가요? 리처드 버튼이나 다른 판본에서 헨리 역을 맡았던 레이 윈스턴이 훨씬 닮았어요. 게다가 에릭 바나는 <트로이>에서 그리도 멋지던 헥토르가 이 무슨 부끄러운 캐릭터입니까…. 물론 유능한 군주였다고는 하지만. --; 헬프: 세심하죠, 로맨틱하죠, 게다가 몸까지 좋잖아요. 어스: 아마 스칼렛 요한슨이 분한 메리 볼린이 왕과 정말 사랑에 빠졌다는 내러티브를 설득하기 위해 헨리 역에 멋있고 섹시한 배우가 필요했을 거예요. 헬프: ‘바나’(burner^^)까지는 아니라도 헨리 8세 역이라면 관객을 후끈 달굴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납작한 캐릭터라서리…. 어스: <천일의 스캔들>은 치정관계가 얽히고설킨 구식 소프오페라 같은 면이 있죠. <달라스>나 우리나라로 치면 궁중 여인 열전류의 드라마요. 헬프: 이 이야기는 실제, <튜더스>란 미드로 만들어지기도 했잖아요? <천일의 스캔들>은 철저히 야사적인 시각을 가졌죠? 야사에서 가장 애용되는 모티브가 ‘처벌받는 야망’이잖아요. 그런데 결국 야망이 처벌받는 걸 보여주긴 하는데, 그 야사에 몰두하는 대중의 심리는 주인공의 야망과 극적인 신분상승에 대한 미묘한 동일시에 그 핵심이 있죠. 뻔한 불륜 드라마를 보는 관객의 심정과도 비슷한 맥이 있어요. 어스: 처벌받는 인물 앤 볼린(내털리 포트먼)의 행동이 좀 지나치게 현대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특히 왕의 선물을 연거푸 거절하는 모험적 행동은 마치 “재벌 2세 실장 마음을 빼앗으려면 그를 무시해서 당신 같은 여자 처음이야라는 반응을 끌어내라”는 농담의 실례를 보는 것 같았어요. -_-# 헬프: 왕과의 관계에서 그녀가 하는 행동에는 확실히 그런 느낌이 강하죠. 뭐, 거의 각색의 만용이랄까요. ^^ 실제 앤이 그와 유사한 전략을 썼다고 하더라도, 좀 과한 각색의 측면이 없지 않았어요. 전 이 영화가 아주 잘못된 것도 없지만, 이렇다 할 매력도 없는 것 같아요. 그냥 헨리 8세의 스캔들이라는 소재가 가진 화끈한 인화력에만 기댄 인상이죠. 어스: 두 자매를 통해 극단적으로 대별되는 유형의 여인상을 보여주려고 약간 무리를 한 감도 있죠. 그래도 시대 의상을 보는 매력은 확실히 있어요. 당시 회화를 보면 여인들의 머리장식이나 드레스를 잘 고증하고 아름답게 표현했음을 알 수 있죠. 헬프: 샌디 파웰의 시대극 의상은 확실히 눈요깃감이 되지요. 어스: 저는 이 영화에서 세명의 주인공보다 아라곤의 캐서린 역할을 한 아나 토렌트와 두 자매의 엄마 볼린 부인 역을 한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에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헬프: 볼린 부인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어리석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죠. 어스: 영화에 암시된 전사(前史)를 보면 그녀는 오로지 사랑 하나를 위해 신분 하락을 감수하고 남편과 결혼한 여인인데, 바로 그 남편이 자기와 함께 삶을 걸고 지키려 한 가치관을 딸들을 물건 취급하며 배반하는 현장을 보는 심정이 어떻겠어요. 그건 남편과 공유해온 인생 전체에 대한 절망이라고 할 만한 거죠. 마지막에 남매를 차례로 잃을 때는 거의 그리스 신화에서 일곱딸과 일곱 아들을 신의 화살에 잃는 니오베를 연상시키더군요. 헬프: 그 말에 일정 부분 동의를 하면서도 좀 다른 느낌도 받았어요. 볼린 부인은 이 영화에서 홀로 텍스트와 떨어진 채 온갖 훈수를 두는 내레이터 같다는 느낌이 있다는 겁니다. 극중에서 스캇 토머스가 하는 대사들을 들으면, 다른 인물들과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상황에 대해 몇 발짝 떨어져서 팔짱 끼고 코멘트를 하는 것처럼 보여요. 어스: 극의 외부에서 들려오는 선지자의 목소리 같다는 거죠? “데어 윌 비 블러드…” 하는 식으로. ^^ 헬프: ^^ 그렇지. 거의 <밤과 낮> 첫 장면에 등장하는 거지 캐릭터나?? <10,000 BC>의 내레이터 오마 샤리프 같은 캐릭터라는 거죠. ^^ 어스: 아마 제가 그렇게 열외인 그녀의 캐릭터만 좋아했다는 사실 자체가 뒤집어 말하면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에 몰입을 할 수 없었다는 방증이겠죠. 헬프: 이 영화는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앙상하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봤어요. 스토리의 정해진 궤도로만 달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자매의 애증까지도 영화 속에서 그리 잘 살아 있다고 볼 수 없어요. 어스: 워낙 숨가쁜 엎치락뒤치락하는 사건이니까요. 사실 연속극이 맞는 포맷일지도 몰라요. 헬프: 분명 스피디한데도 지루한 면모가 있거든요. 어스: 원래 지루함은 느림에서 오는 게 아니라 리듬감의 부재에서 나오거든요. ^.~ 헬프: 내털리 포트먼이나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그냥 그랬어요. 이건 뭐, 거의 콩쥐팥쥐 같더라고요. 어스: 많이 닮았다는 평을 듣는 키라 나이틀리와는 반대라 좀 신기한데 내털리 포트먼은 사극은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차라리 <스타워즈> 같은 SF가 나아요. 헬프: <스타워즈>에서도 그리 훌륭하진 않았어요. 어스: 내털리 포트먼의 팬들은 <천일의 스캔들>보다 이미 극장개봉이 끝났지만 <다즐링 주식회사> 앞에 붙은 <호텔 슈발리에>를 찾아보시길 권해요. (DVD에도 첨부되겠죠?) 최근작 중 제일 멋진 모습이었어요. 헬프: 일단 저부터 조언 접수하겠습니다. 자, 이제 정말 메신저토크를 끝낼 시간이 됐군요. 마지막 토크의 첫 영화로 <어웨이 프롬 허>를 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스: 천일을 채우지 못하고 헤어지게 됐네요. 그동안 독자 여러분이 읽어주신 덕분에, 선배와 대화를 통해 많이 배웠고 무엇보다 부지런히 새 영화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일한 이래 가장 많은 신작을 본 한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헬프: 뜻이 잘 통하는 대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얼마나 즐거운 경험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어요. 어스: 두 사람이 영화 보는 눈이나 코멘트가 비슷하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는데, 서로 더 물들기 전에 일단 헤어지고, 시간이 흐른 뒤 어떻게 변했나 다시 확인해보아요.^0^ 헬프: 언젠가 더 훌륭한 분들이 메신저토크를 맡아주시길 기대하면서, 이제 그만 물러갑니다. 어스: 잠깐요, 쫑파티 해야죠.(*이모티콘 중 케이크와 와인잔) 자, 건배! 헬프: 메신저 밖에서 날 잡아요. 오랜만에 얼굴 보면서 영화 얘기할 수 있겠네요. ^0^ 어스: 앗, 마지막으로 문의해주신 무수한 독자들께 다시 확인 드리겠습니다. ‘메신저토크’는 메신저로 진행한 것, 맞습니다.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