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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양, 돼지… 다음은 영화?

구제역 파동에 유럽지역 영화제작 차질 영화계에도 구제역 비상이다. 현재 영국에서 개발 중이거나 촬영 중인 영화와 TV 쇼가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로케이션 장소를 변경하고, 스케줄을 조정하는 등 제작에 많은 차질을 빚고 있다. 소와 양, 돼지 등의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은 전염성이 매우 높아, 바람과 철새를 통해서도 그 바이러스가 번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이번 구제역은 지난 한달 동안 10만 마리에 달하는 가축을 도살하고도 잦아들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 사람은 물론 물품 유입도 통제하는 등 폐쇄령이 떨어져 있는 상태. 영화 촬영지로 애용되는 농장과 옛 건축물 등에 접근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이원 맥그리거와 주드 로의 영화사 내츄럴 타일론이 제작하는 <크롬웰 앤 페어텍스>는 7월 크랭크인 예정이지만, 현재 헌팅을 비롯한 프리프로덕션 작업이 중단된 상태.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는 문화재와 전원 주택들이 모두 폐쇄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트 촬영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번 칼라>의 제작진은 스코틀랜드 서부 오반 지역에서 촬영하려던 계획을 취소했고, <샬롯 그레이> 팀은 프랑스에 머물며 스코틀랜드와 런던 촬영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다. 이는 영국 내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EU산 축산물 수입을 중단한 노르웨이에서는 영화 <나는 디나> 촬영차 방문한 프랑스와 영국 배우들을 문전박대했다. 노르웨이 현지 농부들은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비롯한 배우와 스탭들에게 방역을 요구했고, 현지인들을 대거 엑스트라로 출연시키려던 제작진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구제역 바이러스로 인해 EU 국가의 국경이 ‘철옹성’으로 둔갑하게 된 이번 사건이, 유럽영화계는 물론, 배우파업을 우려해 전지구적 로케이션을 감행하고 있는 할리우드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박은영 기자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돌아온 임순례 감독

이제 ‘세 친구’ 하면 웃기는 세 남자부터 떠오르지만, 예의 TV 시트콤이 있기 전까지 우리에게 ‘세 친구’는 못내 안쓰럽고 쓸쓸한 이름이었다. 단편 <우중산책>에서, 삼류 극장 매표소 처녀의 비에 젖은 어깨를 감싸안았던 임순례(39) 감독은 첫 장편 <세 친구>(1996)에서 학교와 사회 사이 바람부는 공터에 내버려진 발목 꺾인 소년들을, 눈물을 삼키며 지켜보았다. <세 친구>가 하고 싶은 일이 아예 없거나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어 불행한 사내아이들의 이야기였다면, 4년의 공백을 끝낸 임순례 감독이 명필름에서 완성한 신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불행한 30대 밴드 마스터와 그 친구들의 스토리다. <와이키키…>의 친구들은 상반기 화제작 <친구>의 주인공들과 달리 ‘친구’라는 한마디에 피가 끓기에는 많이 쇠약해진 사람들이고, <와이키키…>의 불행은 너무나 만연돼 있어 ‘불행’이라는 드라마틱한 명칭마저 쑥스러운 흐릿한 서글픔이다. 지난해 연말 40여회의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에 몰두해온 임순례 감독을 마지막 색 보정을 마친 이튿날, 봄볕 환한 인사동에서 만났다. 5월로 내정됐던 영화의 개봉이 국제영화제의 반응을 밑거름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을로 미뤄진 요즘, 그는 한 영화의 ‘끝’을 조금은 즐겁게 음미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짧고 어리석은 질문들에 대한 그녀의 긴 대답들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우리가 아는 그녀의 세계와 같고도 다름을 조근조근 일러주었다. 정말 끝인가. 작업은 완전히 종료됐다. 지난주 토요일 기술 시사를 마치고 그 결과에 따라 그제, 어제 색 보정을 했다. 시나리오 첫 느낌 그대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찍으면서 각본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순서가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다만, 음악영화이다보니 음악이 들어갈 때 요구되는 최소한의 호흡 때문에 러닝타임이 조금 길어져서 편집에서 정리했다. 애초 <세 친구>와 다른 색깔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로 귀환했다는 평이 많다. 인물이 처한 지리멸렬한 상황은 통하는 곳이 있지만 캐릭터는 전혀 다르다. 말하자면 삼겹, 섬세, 무소속이 나이먹은 모습을 그린 영화는 절대 아니다. 사실 일부러라도 달라지고 싶었고 변화할 만한 공백도 가졌다. 그런데 영화가 감독의 정서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기본 설정이 <세 친구>와 완전히 다른데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분은 비슷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친구>의 아이들은 희망도 부여받은 책임도 없었다. 하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밴드 멤버들은 자꾸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스스로 굴레를 깨치지 못하고 소시민으로 사는 그들에게는 본인의 책임도 크다. 주인공 성우의 고교 동창들도 기본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어야 하는 삶의 순수를 포기하고 편안함과 편리함을 좇는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 만연된 30대의 보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첫 영화를 마치고 관객과 의사소통하는 ‘화술’에 대해 고민했다고 들려준 적이 있다. 미장센이나 리듬에서 어떤 새로운 궁리를 했는지.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콘티 단계에서 의식적으로 <세 친구>(380컷)의 두배 정도로 컷을 분할할 계획을 세웠다. 카메라 움직임이 3, 4회에 불과했던 전작과 달리 크레인과 달리숏도 많이 써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연출 의도를 그런 식으로 드러내는 것이 수줍고 꼭 이럴 필요가 있나 싶어 부자연스러웠다고나 할까. 심지어 공연장면에서도 그랬다. 결국 400컷 정도로 매듭지었는데도, <세 친구>보다 인물과 에피소드가 많고 음악이 들어가서인지 보는 사람들이 훨씬 덜 지루해 한다. 해인사 인근에서 1년 반쯤 휴식하는 동안 삶이 너무 평안해서, 왜 굳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제 스트레스의 세계로 돌아온 셈인가. 감독에게 스트레스의 뿌리는,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과 모든 요소들이 혼자 맘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현실일 것이다. 초반에는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거지!”하며 어려움을 많이 느꼈는데, 중반을 지나면서 점차 편안해졌다. 처음 함께하는 충무로 스탭들이라 구도나 움직임이 서로 익숙지 않은 상태였다. 예컨대 나의 개인적 스타일은 미장센이건 카메라워크이건 특정한 한 요소를 끌어내 연출 의도를 강조하지 않는 것인데,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리는 없으니 촬영이나 조명에 대해 최초의 컨셉이 다를 때도 있었다. 충무로 제작 시스템 안에서 작업하면서 예전에 짊어졌던 프로듀서 역할의 짐을 덜었다. 전작들과 <와이키키…>의 경험을 비교한다면. 아무래도 충무로는 “선수들끼리 무슨…” 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나 역시 큰 틀만 초기에 이야기하면 세부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어서, 이야기를 통해 문제를 조율하는 능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이번에는 첫 영화와 달리 배우들이 10년 이상 연극무대에 선 프로들이어서 연기면에서 마음을 조금 놓아버린 면도 있었다. 다들 정말 열심히 해주었다. 연기와 관련된 어려움은 밴드영화이다보니 연주 연습에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 캐릭터에 대해 토의할 수 있는 절대 시간이 부족했던 점이 아쉽다. 명필름의 <섬>이 그랬듯이 따로 사무실을 얻어 제작을 진행했고, 이은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물심양면으로 아주 편안한 영화만들기였다. “이건 이렇게 안 하면 안 되겠느냐”는 말을 단 한번도 제작자로부터 들은 적이 없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성공일지와 제작기간이 딱 겹쳐졌다. <…JSA>가 개봉하고, 100만, 200만 연이어 기록을 경신하는가 싶더니 또 베를린영화제에 출전하고, 다음에는 일본 개봉 프린트를 준비하느라 후반작업을 같이 하다시피 했다. (웃음) <…JSA>가 아니어도 이은 감독은 영화계 일 등등으로 바쁜 분이라 늘 현장에 있지는 못했지만 분주한 와중에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존재를 확실히 드러내주었다. 자잘한 간섭이 없었던 한편, 내가 정신없이 궤도를 벗어나려 하면 그러지 못하도록 길을 다잡아주었다. 이은 제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재적소에 최적의 지원과 충고를 해준 최선의 프로듀서였다. <세 친구>도 그랬고 나는 딴 건 몰라도 정말 제작자 복은 있구나 싶다. 음악이 전면에 나선 영화인 만큼 음악과 사운드에 많은 공과 비용을 들인 걸로 안다. 만족스럽다. 한국영화에서 플레이 백(play back) 시스템으로 제대로 녹음한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거의 처음이라고 한다. 플레이 백은 모든 레코딩을 최적의 조건에서 미리 해서 입히는 방식이다. 예컨대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장터나 야외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녹음을 하고, 클럽장면은 수안보 실제 클럽에서 녹음했다. 전문 세션맨의 연주를 멀티 채널로 녹음한 다음, 카메라가 악기에 접근하는 거리나 숏의 사이즈에 따라 채널마다 분리된 악기 소리를 조정했다. 사운드를 담당한 블루캡의 김성원 사장은 스스로 고교 밴드 활동 경험이 있어 영화에 애정이 컸다. 게다가 믹싱 과정에서 멀티 채널의 음향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 덕에 음향팀이 매우 즐겁게 재미있게 작업했다. 작년 인터뷰에서 ‘팬 서비스’ 차원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세 친구>와 달리 로맨스의 요소가 들어 있어 눈길이 끌렸다. 시사 뒤 사람들이 들려준 해석에 좀 놀라기도 했다. 영화 전체의 톤이 가라앉아 있다보니 관객 스스로 등장인물의 마음이 되어 삶을 바라보고 동기를 부여하고 어떤 요소를 나름의 희망으로 이해한다는 점이 감독으로서 재미있었다. 염두에 둔 다음 프로젝트가 있나. 가을까지는 어떻게 지낼 계획인가. 이제는 오랫동안 영화를 만들지 않는 일은 없을 거다. 세 가지 정도 기획이 있는데, (남자들 이야기만 한다는 기자의 불평에) 그 가운데에는 고아원 소녀 축구단 이야기도 있다. 가을까지는, 파리에서 베리만 영화를 보다 처음 만난 이후 <우중산책> <세 친구>를 같이 만들었던 박경희 감독의 데뷔작 <미소>를 제작하는 데에 힘을 보탤 생각이다. 그 밖에, 여성영화인모임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면 도울 생각이다. 지난해 4월 창립 이후 초반에 일을 돕다가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문에 바빠져서 소홀해졌다. 심재명 대표가 혼자 많이 고생한다고 들었다. 올 들어 데뷔하는 여성감독들이 열 손가락을 넘기는, 전례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영화계에 자본들이 흘러 들어오면서 기회가 많아졌고 자연히 영상원, 아카데미, 독립영화계를 통해 이미 자격을 구비해 놓았던 여성 인력들이 마침내 기회를 얻게 된 것 같다. 영화제작 공정의 변화도 이유다. 요즘은 과거처럼 감독들이 술도 잘 마시고 힘도 세고 욕도 잘하고,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대다. 그보다 개성있는 시나리오를 쓰는 능력이 제작자들이 사는 포인트가 됐고 이는 여성감독들에게 고무적이다. 여성감독의 부상은 한국영화계에도 이롭다. 우리는 현재 블록버스터이건 멜로이건 장르영화들이 획일화, 형식화돼 있다. 여성감독이 팬시 상품 같은 영화뿐 아니라 그런 장르영화에서도 작지만 자기 이야기를 분명히 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영화가 나올 것이다. 물론 예산이 40, 50억원을 넘어가는 영화는 여전히 여자감독의 기용을 주저한다. 그러나 그것도 양적으로 영화가 많아지면 달라지리라 본다. 우리 세대가 어렸을 때와 달리 지금은 놀이 문화에 성구별이 없어졌다. 당장은 어려워도 전통적인 여성적 감수성의 영역을 벗어난 여성감독의 영화들이 나올 것이다. 개인적으로 향후 1, 2년이 매우 중요한 국면이라고 본다. 차제에 제작자와 관객에게 여성감독도 제작에 있어 관객과의 교류에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확신시킬 수 있다면 성별을 떠나 개인의 특질대로 평가하는 인식이 보편화될 것이다. 단편영화 경선 심사를 해봐도 얼마간 코드화, 관습화돼 있는 남자들의 상상력보다 여성 출품자들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뉴 디즈니 프로젝트 2001-2003

◆<아틀란티스>에서 <스웨팅 불리츠>까지,미리 보는 2001∼2003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전략 지난 2월14일, 뉴욕의 거리는 꽃다발의 물결로 가득했다. 밸런타인 데이. 한국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이지만, 이곳에서는 연인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다지는 날이다. 2001년 여름부터 2003년 가을까지 디즈니가 준비하는 애니메이션의 프리젠테이션이 열리는 소니 링컨 시어터로 가는 길마다 빨간 장미 다발을 든 배달원들이 분주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사람들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낯선 이국에서, 타인의 사랑의 징표를 보는 것은 더욱 낯설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주 익숙하고 정감있지만, ‘다른 세계’. 센트럴 파크를 끼고 돌면 나오는 링컨센터, 그 건너편에 자리잡은 소니 링컨 시어터는 아이맥스관도 하나 있는 큰 멀티플렉스다. 앉으면 꺼질 듯 뒤로 젖혀지는 기능적이면서도 아주 편한 의자에 앉아, 앞으로 3년간 보게 될 8편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미리 만났다. 올해 여름의 <아틀란티스>(Atlantis: The Lost Empire), 겨울의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 Inc.), 2002년 2월의 <피터팬>(Peter Pan in Return to Never Land), 여름의 <릴로와 스티치>(Lilo & Stitch), 겨울의 <보물 행성>(Treasure Planet), 2003년 여름의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가을의 <스웨팅 불리츠>(Sweating Bullets). 그리고 아이맥스로 올해 봄에 공개될 <미녀와 야수>까지. 3년간 8편. <토이 스토리>로 픽사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합세하면서 1년에 두편의 애니메이션을 공개한 적도 꽤 있지만 1년에 2, 3편의 애니메이션을 연속하여 상영한다는 디즈니의 전략은 야심차다. 디즈니 100년, 신화는 계속된다 양만이 아니다. 픽사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몬스터 주식회사>와 <니모를 찾아서> 2편이 예정되어 있고, <미녀와 야수>는 아이맥스판으로 재개봉된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도 뮤지컬 중심에서 벗어나 SF,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었다. 그중 눈에 띄는 건 SF에의 편중. <릴로와 스티치> <보물 행성> <아틀란티스>는 많건 작건, SF 스타일을 차용한 애니메이션이다. <스웨팅 불리츠>는 서부극이고 <니모를 찾아서>는 장난감 대신 열대어들이 등장하는 모험극. 이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동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장르 확산과 기술적 혁신을 이용하여 ‘애니메이션 제국’의 야망을 확고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고보니 올해가 디즈니 제국을 건설한 월트 디즈니의 탄생 100주년이다. <증기선 윌리>로 시작된 디즈니의 신화는 세기를 넘어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그동안 주로 한 우물을 파왔으니 당연하기도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확고부동한 1인자 디즈니도 한때 몰락 일변도였던 극장용 애니메이션에서 손을 떼고 TV 프로그램이나 테마 파크 등의 딴짓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인어 공주>의 돌연한 성공이 아니었다면,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아성도 얼마간은 흔들렸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워너나 20세기폭스도 좀더 편안하게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다. 드림웍스와의 라이벌 경쟁이 벌어졌을 수도 있고. 하지만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 디즈니는 <인어공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를 열었고, 애니메이션은 비디오와 머천다이징 사업으로 극장 개봉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시장으로 변했다.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중흥을 이끌었던 제프리 카첸버그가 새롭게 건설한 드림웍스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개미> <이집트 왕자> 등에 이어 지난해 말 개봉한 아드만 프로덕션의 <치킨 런>은 애니메이션 시장이 디즈니의 독점시장이 될 수 없음을 증명했다. 물론 디즈니도 그것을 알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실사영화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아틀란티스>만 해도 4년 반의 제작기간이 소요됐다. 전체적인 방향을 바꾸겠다고 결심을 해도 결과물이 드러나는 것은 최소한 3, 4년 뒤다. 이번에 디즈니가 향후 3년간의 애니메이션 라인업을 발표한 것은 명백한 자신감이다. 이젠 포기한 20세기폭스와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시장 진입으로 촉발된 디즈니의 위기감과 자신감이 빚어낸 3, 4년 전의 ‘환영’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그 완성도와 관계없이, 좌충우돌해온 감이 있다. 디즈니는 <포카혼타스>의 실패에 아연했다. <포카혼타스>는 디즈니에서 최고라고 평가했던 <알라딘>의 제작팀이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결과물에도 만족했다. 현 디즈니의 사장이고, 당시 애니메이션 부문의 책임을 맡고 있었던 피터 슈나이더는 ‘<포카혼타스>는 너무 앞선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헤라클레스>와 <노틀담의 꼽추>는 디즈니 스타일을 답습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때 디즈니를 구원한 작품이 바로 <뮬란>이었다. <뮬란>은 우연한 성공작이었다. 플로리다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면서 감독과 스탭 대부분을 신진급으로 구성했고, 본사에서도 크게 기대를 걸지 않았다. 동양의 옛 이야기를 재구성한 소재도 ‘세계적’이 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기대주가 아니었던 탓에 간섭도 없었고, 그 자유 덕에 <뮬란>은 걸작이 되었다. 뮤지컬 스타일이 아닌 애니메이션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지난해에 개봉한 <쿠스코? 쿠스코!> 역시 처음에는 장엄한 뮤지컬로 구상했다. 하지만 제작과정에서 <쿠스코? 쿠스코!>는 뮤지컬이 아니라 성인용 시트콤 스타일로 변화했다. 올 여름 개봉되는 <아틀란티스>도 뮤지컬이 아니다. 노래는 결정적인 순간에서만 흘러나오고, 그것도 등장인물이 직접 부르지 않고 배경으로만 깔린다. 이처럼 <인어공주>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뮤지컬은 이제 군무를 추는 ‘하나’가 되었다. 디즈니는 <포카혼타스> 뒤 연속된 실패와 드림웍스의 도전에 맞서 새로운 영역으로 넘어가려 했고, 그 결과가 막 드러나는 중이다. 극사실주의적인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법을 보여준 <다이너소어>나 못된 주인공이 등장하는 시트콤 <쿠스코? 쿠스코!> 등 최근 개봉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완만한 능선 위에 놓여 있는 작품이었다. 지난 2월16일 미국에서 개봉된 <리세스>도 기존 디즈니 스타일과는 다르다. 97년부터 TV 시리즈로 방영되었던 <리세스>는 디즈니 스타일의 귀여운 주인공이 아니라 니켈던의 인기 애니메이션 <러그래츠>처럼 사실적인 악동들의 일상과 사건이 등장하는 코믹드라마이다. <뉴욕타임스>는 “별로 새로울 게 없는 디즈니의 전형적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린이다운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점”은 봐줄 만하다고 평했다. 주인공도, 장르도 바꾼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늘 ‘귀감이 되는’ 주인공들이 등장해왔지만, 앞으로는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리세스>의 ‘어린이다운 어린이’는 당연한 말이지만, 그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다. 악동이라 해봐야 기껏 도널드 덕 정도. 그게 <뮬란>의 용이나 <쿠스코? 쿠스코!>의 쿠스코 같은 인물에서 조금 바뀐 것이다. 워너 애니메이션의 벅스 바니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지만, 어쨌거나 변화는 변화다. 그러나 <릴로와 스티치>의 스티치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년 여름에 개봉할 <릴로와 스티치>는 하와이에 사는 소녀 릴로와 외계인 스티치의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스티치라는 외계인은, 정말 끝내주는 악동이다. 의 선한 외계인 같은 걸 생각하면 큰코 다친다. 에일리언처럼 끔찍하지는 않지만 외계인 스티치는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엄청나게 힘도 세다. 특출한 능력으로 선한 일을 하기보다는 온갖 말썽이란 말썽은 다 저지른다. 한 장면에서 스티치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으로 수감되다가 자동추적장치를 역이용하여 멋지게 탈출한다. 우주 공간에서 추격전을 벌이다가 지구에 떨어진 스티치는 릴로를 만나게 된다. 처음 릴로를 만나는 장면 또한 가관이다. 트럭에 부딪혀 동물보호소로 오게 된 스티치는 추적자들을 피하기 위해 릴로의 가정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것도 벽에 붙은, 아이와 개가 포옹을 하고 있는 포스터를 보고 즉석에서 떠올린 생각이다. 네개의 팔 중에서 두개와 더듬이를 몸 안으로 밀어넣고는, 릴로를 보자마자 달려가 품에 척 안긴다. 그걸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약간 괴상하게 생긴 스티치의 모습에 언니는 꺼려하지만, 온갖 아양을 떠는 스티치는 추적자의 눈앞에서 무사히 릴로와 함께 보호소를 나선다. 귀엽기는 하지만 그래도 악당이다. 디즈니는 늘 엇비슷해보이던 주인공의 형상도 개선하고 있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23세기로 옮긴 <보물 행성>에서는 한쪽 다리가 의족인 악당 존 실버가 익살스러운 사이보그 주방장으로 나온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미 론 실버의 복권이 이루어졌지만, 원작의 실버는 잔인무도한 악당이었다. 게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사이보그’가 등장하기도 처음이다. 사이보그가 처음이라는 것은, SF가 디즈니와 소원했다는 말도 된다. 폭스가 두 번째 애니메이션을 <타이탄 A.E.>로 결정한 것은 디즈니의 취약점을 파고들겠다는 의도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미국의 일반 대중에게 점차 파고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 하나는, 디즈니나 워너의 애니메이션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소재와 주제 그리고 영상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일본 SF와 판타지의 옷을 입고 날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강 장르는 단연 SF와 판타지물이다. 허무맹랑한 개그물도 독창적이긴 하지만, 그것도 판타지나 SF와 연결되어 있을 때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천지무용>이나 <엘 하자드>처럼. 90년대 중반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특기만을 일관해왔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는 바뀌었다. 앞으로 3년간 <아틀란티스> <릴로와 스티치> <보물 행성> 등 SF 스타일을 차용한 작품이 세편이나 연달아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절반 정도 발만 걸친 상태다. <아틀란티스>는 <해저 2만리>, <보물 행성>은 <보물섬>의 여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릴로와 스티치>도 악동을 외계의 말썽쟁이로 바꿔버린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틀란티스>에 등장하는 잠수함이나 굴착기 등의 메커닉 디자인, <보물 행성>의 사이보그 존 실버의 기기묘묘한 요리장면, <릴로와 스티치>의 우주 추격전 등을 보고 있으면 디즈니의 역량은 SF에서도 변함없이 돋보인다.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작가 별로 독특한 메커닉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디즈니 스타일의 SF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디즈니가 SF에 손을 댄 것은, 분명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으로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의 해외 배급권을 따낸 것처럼, 디즈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계화에도 큰 관심이 있다. 미국 출판계에서 일본 만화의 번역판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직 주류의 중심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팬덤’을 중심으로 소수의 향유물이었던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주류로 부상했음은 확연한 사실이다. 굳이 따지자면 주류의 주변쯤이라고나 할까. 적어도 소수 마니아만의 컬트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아틀란티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직접적인 영향까지 엿보인다. 엇비슷한 소재이긴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안노 히데아키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가 바로 떠오른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아틀란티스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등장하는 검은 피부의 여인이나 하늘로 불기둥이 치솟는 장면 등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풍경을 보는 것 같다. 그것이 별다른 흠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 SF 애니메이션의 특기인 기발한 상상력과 역동감을 부드럽고 사실적인 디즈니 스타일과 결합시킨다면 흥미로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설렘도 든다. 적어도 <타이탄 A.E.>처럼 이야기의 파탄만 가져오지 않는다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기술력으로는 특이한 메커닉 디자인이나 사실적인 우주공간에서의 움직임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 지붕 두 가족,픽사를 업고 도약하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2D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유자재로 쓰이고 있다. 군중장면이나 셀로 표현하기 힘든 장면들은, 디지털로 얼마든지 변용이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애니메이션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는 데 공헌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벅스 라이프>로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을 이룩한 픽사의 위력은 여전하다. 올 11월 공개될 <몬스터 주식회사>는 픽사의 네 번째 작품이다. <토이 스토리>가 그렇듯이 <몬스터 주식회사>도 고난도의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옛 이야기에는 침대 밑이나 벽장 속에 살고 있는 괴물이 늘 등장한다. 그런데 그 괴물들이 회사를 이루고, 사람들과 비슷하게 자신들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면 어떨까. 왜 인간과 괴물들은 친해지지 못하는 것일까. 뛰어난 상상력은 픽사의 기술력으로 완벽하게 재현된다. 일반적으로 디지털로 만들어내기 가장 힘든 것은 사람의 피부, 그리고 머리카락이나 털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픽사는 장난감, 곤충처럼 반들반들한 표면을 가진 주인공들을 주로 그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인공인 제임스는 설인처럼 털이 북실북실한 몬스터다. 제임스와 함께 몬스터 세계로 온 부는 인간의 어린아이다. 제임스를 보고 좋아하다가 무서운 표정을 짓자 바로 울상지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부의 표정은 <토이 스토리2>보다 월등하게 발전했다. 제임스의 수북한 털이 작은 바람에 일렁거리는 모습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고 있노라면, 더이상 디지털로 표현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니모를 찾아서>에서는 더 나아가 ‘물’과 화려한 ‘열대어와 산호초’의 재현에 도전하고 있다. 픽사가 디즈니 라인업에 합류한 것은 분명한 시너지 효과가 있다. 엇비슷해보이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 사이에 분명한 강조점을 찍어준 것이다. 디즈니도 덩달아 애니메이션들마다 차별성을 부가하기 시작했다. <스웨팅 불리츠>처럼 전형적인 뮤지컬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피터팬>처럼 과거의 영광을 잇는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아틀란티스>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항마도 만들고, <릴로와 스티치>처럼 아주 독특한 디즈니 같으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이제 한 마디로 뭉뚱그리기는 어려워졌다. 보수적인 가족 중심의 가치관이나 해피엔딩, ‘귀여운’ 등장인물 등은 여전하지만 원거리의 풍경은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주인공의 성격, 장르, 표현방법 등을 조금씩 변주하면서 나름의 표정을 만들기에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목적지는 물론 동일하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더 다양한 분야에의 진출. 프리젠테이션이 끝나는가 했더니, 특별선물이 있다며 어디론가 데려간다. 문을 들어서니 거대한 스크린이 펼쳐진다. <미녀와 야수> 아이맥스판. 멀리서 야수의 성을 잡으며 다가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니, 화면에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 아이맥스영화란 영화는 다 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이맥스영화가 다큐멘터리 스타일에서 이야기 구조를 갖추는 식으로 바뀌어가는 지금, 디즈니는 이미 발빠르게 아이맥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 <판타지아 2000>을 아이맥스용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이맥스로 디즈니영화를 보기가 불가능할 것 같다. 지금 하나뿐인 63빌딩의 아이맥스 영화관은 ‘영화’를 보러 간다기보다는, ‘관광’용으로 주로 기능한다. 90분짜리 ‘영화’를 트는 것보다는 40, 50분 정도의 ‘볼거리’를 트는 게 당연한 경영논리다. 그러니 <판타지아 2000>이나 <미녀와 야수> 아이맥스판이 국내 아이맥스관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건 헛수고다). <미녀와 야수>를 아이맥스로 본다는 것은, <미녀와 야수>를 다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아이맥스영화 한편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만큼 <미녀와 야수> 아이맥스판은 느껴지는 ‘감각’이 다르다. 팍스 디즈니, 달콤 쌉싸름한 즐거움 요즘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은, 그냥 영화사가 아니라 거대한 미디어 기업이다. 디즈니도 미국 3대 방송사의 하나인 와 합병하고, 최근에는 야후까지도 욕심낸다는 소문이 있다. 그걸 문어발식 확장이라고도 부르지만, 혹은 시너지 효과를 위한 전략적인 제휴라고도 부른다. 결정짓는 건 오로지 성공 여부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 ‘확장’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행보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드림웍스의 잠재력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디즈니와 맞상대를 하기는 힘들다, 이때 확고하게 자리를 다져두자.’ 디즈니는 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경탄스럽고, 여전히 막강하다. 3년간 예정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출정자들은 자신의 무기를 탁월하게 다룰 줄 아는 글래디에이터들이다. 그 막강한 위력을 미리 엿보자니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 세기가 바뀌어서도 여전한 챔피언이라니. 어디 좀 화끈하고, 새로운 도전자 좀 없을까, 팍스 아메리카, 아니 팍스 디즈니를 뒤흔들 만한. 김봉석 기자 lotus@hani.co.kr

보이지 않는 지원작, 답답해

“답답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요즘 심정이다. 문제는 시비가 일어 사업진행에 차질을 빚고 있는 2000년 제3차 극영화제작지원 사업. 예정대로라면, 올해 초 선정작을 최종 결정했어야 하는 사안이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안이 없다. 지난 3월22일 열린 임시위원회는 제3차 극영화제작지원 사업 대상작 선정과 관련한 결정을 전적으로 위원장과 부위원장에게 위임키로 했다. 애초 이날 회의에서 최종결정이 나오리라 기대한 이들은 위원장과 부위원장, 두 사람의 합의를 다시 목빼고 기다려야 할 처지다. 진행이 늦추어지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작 다른 사업들이다. 올해 영화진흥사업계획은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 영진위의 입장이지만, 발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사업의 경우 호기를 놓칠 우려가 크다. 100억원 출자가 예상되는 투자조합 조성사업이 대표적. 3월8일부터 중소기업청이 벤처투자조합 출자사업에 1천억원을 내놓았지만, 영진위는 이렇다 할 방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영화에 투자될 돈이 대기중인데 업무추진 주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는 바람에 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셈이다. 통상 선착순인만큼 중소기업청 자금이 3월 중에 바닥을 보일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견해. 이날 임시위원회에서 이용관 부위원장과 김승범 위원이 사안이 긴급한 만큼 안건으로 상정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유길촌 위원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물론 영진위는 ‘꼬일 대로 꼬인’ 극영화제작지원 사업을 풀기 위해 분투중이다. 이용관 부위원장은 3월23일 “자꾸 위원회가 파행으로 가는 것을 막고, 책임있는 결정을 마련하기 위해서 상임위원들에게 맡겨달라고 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답답해도 지금으로선 좀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영진 기자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요 작품사 - 동화보다 아름다운, 캔디보다 달콤한

70년대, 아이들은 일요일 아침이면 늘 TV 앞에 모였다. 마법의 성 위로, 펑 하고 터지는 불꽃놀이. 디즈니랜드의 풍경이 펼쳐지면,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 등 친숙한 얼굴들이 등장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이상으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유년 시절의 통과 의례 같은 것이었다. 그 이미지들은 거의 무의식과도 같은 것이다. 미키 마우스라든지 도날드 덕,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진 피노키오의 얼굴이나 하늘로 훌쩍 날아가는 피터팬의 몸짓은 필요할 때마다 바로 연상되는 원초적인 기억이다. 1923년 월트 디즈니(1901∼66)가 형 로이와 함께 ‘디즈니 브러더스 촬영소’라는 이름의 애니메이션제작소를 차린 이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그림동화나 안데르센 동화 이상으로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20세기의 동화,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20세기의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감동시키고, 또 돈지갑을 열게 했을까. 거기에는 어떤 비결이 숨어 있고, 디즈니는 어떤 전략으로 성공을 거듭해왔을까. 월트 디즈니 탄생 100주년인 올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는 것은 모두의 과거에 간직돼 있는 ‘디즈니’라는 이름의 그림책을 다시 한번 꺼내보는 일이 될 것이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환타지아> <밤비> <신데렐라>와 <인어공주>와 <라이온 킹>,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광을 만들어낸 주요작의 비법을 돌이켜본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 ::: 증기선 윌리 ::: 환타지아 ::: 덤보 ::: 밤비 :::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 101마리 강아지 ::: 인어공주 ::: 라이온 킹 ::: 미녀와 야수 ::: 포카혼타스 ::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 동화보다 동화적인, 혹은 20세기의 '바람직한' 동화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는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시대를 연 작품으로 기록된다. 누구나 알고 있을 그림형제의 <백설공주>. 디즈니는 가장 대중적인 작품을 원작으로 활용하여, '디즈니' 하면 바로 연상되는 '권선징악'이라든가 '행복한 결말과 화해' 등의 공식을 일찌감치 확립했다. 그림형제가 썼던 <백설공주>도 원래는 잔혹한 살해와 배신이 담긴 이야기였지만, 당시 지배층의 요구로 순화시킨 작품이었다. 디즈니는 그것을 더욱 온순하게 길들였다. 희로애락의 드라마와 그것을 감싸는 유머, 권선징악적 해피엔드로 다듬어진 고전동화는 월트 디즈니가 발견한 최상의 애니메이션 스토리였다. 디즈니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사랑하는 동화 속에서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캐릭터를 발견하고 강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백설공주>가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가 되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집단으로만 존재하던 각각의 난쟁이들을 개성있고 독특한 캐릭터로 가꾸어냈고, 이야기 진행과정에 맞추어 흥을 돋우는 음악을 병행함으로써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동화의 각색에서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인어공주> 등등 디즈니의 동화 전략은 색깔을 달리해 끊임없이 반복된다. 디즈니의 첫 장편인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가 돋보인 것은 기술상의 발전도 한몫했다. 동화를 그린 셀지를 앞에 놓고 그 뒤쪽에 배경을 그린 여러 장의 투명유리를 거리를 두고 겹쳐놓고는 맨 앞의 셀지에 초점을 맞춰 촬영을 하는 ‘멀티플레인’이라는 촬영기법을 도입하여 좀더 사실성 있는 영상을 선보인 것이다. 멀티플레인은 일일이 원근을 고려해 그림을 그리던 기존 방식으로는 도달하지 못했던 자연스러운 원근감을 만들어냈다. 14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는 공황기였던 30년대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대중이 현실을 잊고 안락한 동화의 세계에 빠져드는 데 큰 공헌을 했다. :: 증기선 윌리 1928 미키 마우스 시리즈 제1탄. 최초의 토키 애니메이션으로 버스터 키튼이 나오는 무성영화 <증기선 빌 주니어>를 바탕으로 했다. 토키영화라고는 하지만, <증기선 윌리>에서 미키 마우스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휘파람을 불고 동물들을 악기삼아 음악을 연주한다. 소의 이빨이 실로폰이 되고 암퇘지의 젖꼭지가 아코디언의 버튼이 되는 디즈니 특유의 유머러스한 설정이 이때 이미 등장한다. 모든 것은 생쥐 한 마리에서 시작했다고, 월트 디즈니는 말하곤 했다. :: 환타지아 1940 이미지로 보는 음악의 세계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팀 버튼이 디즈니를 박차고 나온 것은, 늘 똑같은 캐릭터에 이야기만 그려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거의 정형화되어 있다. 변주도 예술이긴 하지만, 늘 같은 방식으로만 변주하는 건 강요이고, 세뇌다. 팀 버튼처럼 유별나게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애니메이터에게 디즈니는, 사상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디즈니도 때로는, 휘황한 실험정신을 발한다. 작년 아이맥스판 <판타지아 2000>으로도 만들어졌던 <판타지아>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판타지아>는 소리를 이미지로 표현하겠다는 야심적인 시도로, 각각의 애니메이터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로 빚어낸 걸작이었다. 그러나 너무 시대를 앞서나간 탓에 <판타지아>는 당대의 관객들에게는 외면받는다.<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가 디즈니의 '이야기'를 확립했다면, <판타지아>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기술'을 한단계 고양시킨 작품이다. 처음으로 그림에 목소리를 입힌 토키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1928)를 만들었던 디즈니는 <판타지아>에서 소리와 그림을 하나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실험을 했다. <판타지아>는 바흐, 베토벤 등의 클래식음악 8곡을 고르고, 각각 음악에 맞는 이야기 혹은 이미지를 고안해낸 후 음악의 흐름과 느낌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애니메이션이다. <판타지아>는 음악의 청각적 요소와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요소를 결합하여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표현력을 한껏 과시했다. <판타지아>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때로, 시대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것이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는 범작의 체증을 뚫어주기도 하고. :: 덤보 1941 커다란 귀로 하늘을 나는 아기코끼리 덤보의 이야기 <덤보>는 빈약하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단순한 내용의 작품이다. 그러나 다소 지적이었던 <환타지아>의 후속작으로 관객의 만족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진 <덤보>는 <피노키오>와 <환타지아>의 부진을 씻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디즈니는 곧이어 한결 섬세한 작품 <밤비>를 내놓았다. :: 밤비 1942 사람과 함께 하는 동물, 인간 같은 동물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뛰어난 장점 하나는 동물 캐릭터다. 미키 마우스에서 출발한 의인화된 동물은 물론이고, <정글북>이나 에 등장하는 동물은 움직임도, 감정표현도 극히 자연스럽다. 유난히 매력적인 동물캐릭터를 잘 만들어내는 디즈니의 첫 걸음은 <밤비>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쿠엔틴 타란티노도 걸작이라고 칭할까. <밤비>는 동물캐릭터에 대한 디즈니의 기초훈련이 마무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물들만 나오는 애니메이션 <밤비>는 아기사슴 밤비가 자라 숲의 왕자가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큰 귀로 인한 콤플렉스를 가진 덤보가 밝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던 <덤보>(1941)와 비슷하게 아이들의 성장을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인 팰릭스 셀튼의 소설 <밤비-숲 속의 삶>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디즈니는 <꼭두각시 이야기>를 <피노키오>(1940)로 만들었을 때와는 달리 전반적인 내용의 각색 없이, 예쁜 원작의 이야기와 느낌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다. 동물들에 대한 의인화는 최소화하고, 자연의 생태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제작진은 새끼사슴 두 마리를 스튜디오에 가져와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LA의 동물원으로 자주 ‘견학’을 다니기도 했다. 숲의 풍경과 동물들의 동작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실제 자연의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그 위에 채색을 하는 기법을 쓰기도 했다. <밤비>에서 시작된 철저하게 사실적인 동물캐릭터는 이후 50년도 더 지나 아프리카의 대초원을 그린 <라이온 킹>에서 절정에 달한다. <라이온 킹>은 <밤비>를 만들었던 그 세심함과 철저한 관찰작업을 이어받았다. 게다가 동물 그 자체의 묘사에다가, 적절하게 의인화된 모습을 통해 더욱 감동을 자아낸다. :: 잠자는 숲속의 미녀 1959 디즈니 최초의 70mm 장편애니메이션. 테크니라마사의 70mm 영상을 사용했다. TV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큰 스크린을 마련한 것. 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600만달러가 소요됐으나 싸늘한 평가와 함께 박스오피스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나타냈다. :: 신데렐라 1950 역시 디즈니에게는 동화가 어울려 2차대전 동안 디즈니 스튜디오는 장편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단편을 묶은 패키지만을 극장에 내보냈다. 그러던 디즈니가 장편작업에 복귀한 작품이 <신데렐라>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전쟁홍보영화를 통해 꾸준히 수익금을 올려온 것이 <신데렐라> 제작에 밑거름이 됐다. 8년 만에 만드는 장편 <신데렐라>에 디즈니는 사활을 걸었다. <신데렐라>는 2차 대전 이전 만들어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모든 경험이 하나로 농축된, 이야기와 형식 그리고 기술적 측면에서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원형이 되는 작품이다. 1697년에 쓰인 찰스 페로의 동화 <신데렐라>를 원작으로 디즈니 스튜디오는 이야기와 음악적 특징에서는 <백설공주>를, 회화적으로는 <밤비>의 사실적인 묘사를 활용하여 <신데렐라>를 완성했다.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던 공식들만을 모방하여 만든 이 작품은 극장에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나 스토리전개를 보이지 못한 탓에 비평가들의 평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신데렐라>는 성공했고, 디즈니 스튜디오는 중단되었던 장편작업을 계속 전개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한다. 디즈니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공식에 충실한’ 애니메이션을 양산해낸다. :: 101 달마시안 1961 혁신적인 기술이 필요한 이유는, 비용절감 은 디즈니 스튜디오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1959)의 상처를 딛고 야심차게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전작이 실패한 여파로 월트 디즈니는 많은 스탭을 해고했고, 자신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디즈니랜드 같은 주변의 사업에 더욱 몰입해 있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 은 처음으로 공동작업 없이 한명의 스토리작가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상황은 안 좋았지만 을 살린 것은, ‘제록스’라는 신기술 덕이었다. 원화를 트레이싱지에 일일이 손으로 옮기던 작업을 복사로 대체하여 작업능률을 높이고 오리지널 터치의 생생함도 보존하는 ‘제록스’ 기법은 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애니메이터의 감정이 살아 있는 다양한 표정의 터치가 그대로 트레이싱지에 옮겨졌고, 101마리나 되는 점박이 강아지들의 무수하고 다양한 움직임도 거뜬하게 스크린 위에 살아났다. 제작진의 규모가 축소된 상황에서 제록스 기술이 없었으면 만들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작품이 바로 이었다. 생생한 필선으로 살아난 사랑스럽고 씩씩한 이 점박이 강아지들은 1996년 존 휴즈가 제작을 맡아 동명의 실사영화로 리메이크된다. :: 인어공주 1989 디즈니 신화의 재림 1966년 폐암으로 월트 디즈니가 죽은 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몰락의 기미를 보였다. <멋쟁이 캣>(1970), <로빈 훗>(1973) 등의 잇따른 흥행저조는 80년대 초까지 이어졌고, 더이상 새로운 시도도 없었다. 1984년, 파라마운트 픽처스에 있었던 마이클 아이스너와 제프리 카첸버그는 각각 디즈니의 회장과 제작담당으로 새로운 팀을 짜, 디즈니의 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지리한 부진 끝에 디즈니는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다시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했다. 그들은 <백설공주>의 전략을 택했다. 바로 고전동화의 풍부한 감동을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해내는 것. 1989년 <잠자는 숲속의 미녀> 이후 30년 만에 고전을 각색한 <인어공주>가 대성공을 거두고 애니메이션의 황금시대를 연 것은, 분명한 ‘마케팅’의 결과였다. <인어공주>의 원작은 1837년에 안데르센이 쓴 <아이들을 위한 요정 이야기> 개정판에 수록되었던 동명의 동화다. 인간 세상에 매료된 아름다운 인어 에리얼의 이야기를 존 무스커와 론 클레민츠 감독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말괄량이 인어캐릭터를 만들어냈다. 기술적으로는 15만장 이상이라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 쓰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셀을 사용하고 특수효과를 충분히 써서 부드러우면서도 파격적인 새로운 감각의 영상을 완성했다. 바다 한복판의 폭풍이나 요동치는 돛, 물고기떼, 수면에 반사되는 풍경, 물거품 같은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인어공주>의 약 팔할의 장면에는 특수효과가 사용됐다. 탄탄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실제보다 아름다운 영상과 감성을 울리는 음악, 재치있는 유머까지, <인어공주>는 팔릴만한 요소들로 가득한 새롭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애니메이션이었다. 풍부한 뮤지컬 장면은 어린이와 청소년만이 아니라 20대 연인들까지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조력했다. 풍부한 조연캐릭터들이 자아내는 현대적인 유머는 곳곳에서 성인 관객의 웃음을 끌어냈다. :: 라이온 킹 1994 디즈니의 절정, 그러나 고답적인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라이온 킹>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를 차용하던 디즈니 스튜디오가 처음으로 오리지널 스토리를 지어내 만든 작품이었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의 잇따른 성공으로 자신감을 되찾은 디즈니 스튜디오가 과감하게 구미에 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직접 지어낸 것이다. <라이온 킹> 스토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데츠카 오사무의 <밀림의 왕자 레오>의 이야기는 물론 캐릭터까지 훔쳐갔다고 비난했다.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숙부 무파사에 의해 사자의 왕이던 아버지를 잃은 어린 사자 심바의 이야기 <라이온 킹>은 <밤비> 이후 다시 동물캐릭터가 주도하는 작품이다. <밤비> 제작 과정에서 동물원을 찾았듯이 <라이온 킹> 제작진은 아프리카 현지답사를 통해 실제 풍경을 스케치했고, 스튜디오에 아예 사자를 데려다놓고 동작과 표정을 연구했다. 들소떼가 화면을 가득 메운 채 달리는 장면의 스펙터클을 위해서는 따로 컴퓨터그래픽팀이 장기간 작업을 하기도 했다. <라이온 킹>은 엘튼 존이 주제가를 부르고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아 음악으로 감동을 강요하는 기존의 전략을 고수한다. 동물의 세계를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자는 밝은 색으로 나쁜 사자는 어두운 색으로 표현한다든지 한 것으로 인해 <라이온 킹>은 <알라딘>에 이어 인종차별적인 태도가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함’은 이즈음 계속하여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받는 공격이었다. 1995년 디즈니는 픽사와 공동으로 인형이 나오는 3D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만든다. 1996년에는 카첸버그가 드림웍스를 차리며 떠난 후 첫 작품 <노틀담의 꼽추>를 개봉한다. <노틀담의 꼽추>는 학부모들의 원망을 들을 정도로 성인용 작품의 색채를 더욱 강하게 띤 작품이었다. 이후 디즈니는 그리스신화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다룬 <헤라클레스>(1997), 중국 민담에서 스토리를 따온 여성전사의 이야기 <뮬란>(1998), 열대밀림을 배경으로 한 <타잔>(1999), 그리고 <쿠스코? 쿠스코!>(2000)까지 다양한 신작들을 발표해왔다. 그것은 곧 끊임없이 좀더 신선한 소재, 감동적인 드라마를 찾아 다니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행보였다. 그러나 ‘디즈니적인 것’이 반복될수록, 무엇을 다루든 디즈니 것은 똑같다는 인상이 생겨나고 획기적인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관객의 기대는 더욱 높아져만 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것, 비슷하면서도 다른 즐거움을 주는 것, 기발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돈을 버는 것. 어떤 영화사와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도 동일한 고민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 미녀와 야수 1991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야수의 성에 들어가 역시 사랑으로 야수에게서 왕자의 모습을 되찾아내는 여인 벨의 이야기. <비 아워 게스트> 노래가 흐르는 무도회 장면에서 화면은 매우 드라마틱한 카메라워크로 담아낸 듯한 영상을 그려낸다. 판타지를 뿜어내는 역동적인 영상이 인상적인 작품 <미녀와 야수>는 미국 내에서 6개월 이상 극장에 걸렸다. :: 포카혼타스 1994 디즈니가 채택한 첫 실재 인물의 이야기. 인디언 처녀와 그녀의 마을에 들어온 영국인 개척자의 사랑을 그렸다. 제작진은 실재 이야기에서 가능한 한 아름답고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부각시키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은 비난을 사기도 했다. 제프리 카첸버그가 제작에 관여한 마지막 디즈니 작품. 1994년 아이스너와의 불화로 카첸버그는 디즈니를 떠나 드림웍스사를 세웠다.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 *참고문헌 : 황선길저 <애니메이션 영화사>(범우사 펴냄), 데이비드 코에닉저/ 서민수역 <애니메이션의 천재 디즈니의 비밀>(현대미디어 펴냄), 데이브 스미스저 (Hyperion), 밥 토마스저 "Disney’s Art of Animation-From Mickey Mouse to Beauty and the Beast"(Hyperion)

누가 방아쇠를 당겼나

프리츠 랑 주인공으로 한 실명소설 <당신을 쫓아 세상 끝까지>, 진위에 관심 올해 초 출간된 아그네스 미쇼(Agnes Michaux)의 <당신을 쫓아 세상 끝까지>는 <메트로폴리스> <마부제 박사의 1천개의 눈>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프리츠 랑을 주인공으로 한 실명소설. 유대계 독일인이었던 랑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직전 베를린에서 보낸 마지막 며칠을 재구성한 이 소설은 별거중인 부인 테아 폰 하르보우를 찾아가 작별인사를 하는 대목에서 풍기는 음충한 냄새로 출간과 함께 화제를 모았다. 이 대목에서 <메트로폴리스>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던 부인 폰 하르보우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겁나서 찾아온 모양”이라며 남편을 공격한다. “그런 당신은 사건 L에 대해 얼마나 결백해서”라며 비아냥거리는 랑. 이에 발끈한 폰 하르보우는 “총을 쏜 것은 내가 아닌 바로 당신”이란 대꾸를 통해 독자들에게 범죄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작가 미쇼의 설명은 더이상 없다. 사건 L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랑의 영화 에 등장하는 조폭 깡패들이 그랬듯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 열쇠는 L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있다. 1922년 결혼한 테아 폰 하르보우는 공식적으로 랑의 첫 부인으로 알려져 있고, 랑 또한 폰 하르보우 이전의 어떤 여인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1920년 작성된 모친의 사망신고서에는 며느리 리자 로젠탈(Lisa Rosenthal)이란 이름이 등장하는데, 바로 이 리자가 ‘L’의 주인공이다. 랑은 동료들에게 리자를 러시아에서 온 카바레 댄서, 혹은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로 소개했다고 한다. 베를린 키네마텍에 보관되어 있는 <메트로폴리스> 촬영감독 칼 프로인트의 육성 테이프에는 랑과 관련된 비화가 녹음되어 있다. 1920년 어느 가을 저녁, 그는 랑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당장 자신의 집으로 달려오라는 것이다. 프로인트는 제작자 에리히 롬머와 동료 카메라맨을 불러 함께 랑의 집으로 갔다. 거실에 들어선 세 사람은 피투성이로 싸늘하게 식어 누워 있는 리자 로젠탈을 보고 기겁했다. 테아 폰 하르보우와 함께 있던 랑은 리자가 권총자살을 했다고 말했다. 출동한 경찰한테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는데, 폰 하르보우가 랑의 증언을 확인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경찰은 리자 로젠탈이 남편의 권총을 몰래 꺼내 욕조에서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사건 L을 종결했다. 그러나 <메트로폴리스>의 세트감독 에리히 케텔후트의 부인이 리자의 자살론에 의혹을 제기했다. 리자는 친구인 그녀와 죽기 직전 전화를 해 쇼핑약속을 했으며, 외출하기 전 잠시 목욕을 하겠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랑은 절친한 친구이자 <마부제 박사의 1천개의 눈>의 주연배우 하워드 베르논에게 테아 폰 하르보우와 몰래 거실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부인에게 발각되었는데, 화가 난 부인이 2층으로 올라가 곧바로 권총자살을 해버렸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56년 작품인 <의심을 넘어>에서는 자신과 비밀결혼한 부인 카바레 댄서를 권총으로 살해하는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죄책감을 못 이긴 고해성사가 아니었냐는 의심을 자아낸다. 작가 미쇼가 다시 끄집어낸 사건 L을 둘러싼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목격자도, 남아 있는 증거도 없다. 독자들은 랑과 폰 하르보우의 버전을 전해 들은 사람들의 토막이야기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애써 추측해 볼 뿐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올해 베를린영화제가 프리츠 랑 회고전을 계획하면서, 먼지 속에 파묻혀 있던 랑의 자료들이 몽땅 다시 햇빛을 보게 되는 바람에, 리자의 자살사건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게 됐다. 결정적 단서는 리자 로젠탈의 사망확인서. 부검의는 리자가 1920년 9월25일 오후 7시경 베를린에 있는 랑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기록하면서, 자살이라기보다는 불행한 사고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을 살짝 덧붙여놓았다. 리자의 경우 탄알이 가슴을 관통했는데, 권총 자살자의 경우 이마나 입에다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설명과 함께. 부검의의 추측대로 탄알이 오발된 것이라면, 폰 하르보우와의 밀회현장을 들킨 랑과 리자가 티격태격을 벌였고, 와중에 누군가가 총을 꺼내 들었을 것이며, 이때 몸싸움을 벌이다가 랑의 실수로 총알이 발사되어 리자의 가슴을 관통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죄의식, 협잡, 부당한 혐의로 쫓기는 인물, 뜻하지 않게 살인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을 평생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프리츠 랑, 결국 그의 전 작품세계를 관통했던 것은 리자의 가슴에 박힌 오발탄이 아니었을까? 베를린=진화영 통신원

48년만의 부활

초저예산 영화 <라스트 리조트> 계기, 프리시네마 재조명 영국영화계가 때아닌 ‘프리시네마’의 재조명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불을 당긴 것은 최근 비평적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폴 폴리코스키의 <라스트 리조트>가 프리시네마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계승한 적자라는 비평계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불법이민자들의 생활을 16mm로 찍어 35mm 블로업을 거친 초저예산의 이 영화는 린제이 앤더슨의 기념비적인 12분짜리 단편 <오 꿈의 나라>에 노골적인 오마주를 바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중심적인 이미지도 많은 부분 차용하고 있다. 1953년 만들어진 <오 꿈의 나라>는 영국영화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던 프리시네마의 효시가 되었던 작품이다. <오 꿈의 나라>는 만들어진 지 3년이 지나서야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1956년 NFT(국립영화극장)에서 50분짜리 중편 <투게더>, 다큐멘터리인 와 함께 상영된 뒤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로렌자 마제티와 데이비드 혼이 공동감독을 맡은 <투게더>는 이스트 런던에 사는 벙어리형제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따라간 작품이고, 카렐 라이츠와 토니 리처드슨이 함께 연출한 는 클럽에 드나드는 틴에이저들의 삶을 관찰한 다큐멘터리이다. 감독의 면면을 볼 때 이후 프리시네마의 기수가 되는 세대의 등장을 알린 기념비적인 상영회였던 것이다. 로케이션 촬영, 저예산, 아마추어배우 기용 등 다큐멘터리의 특징을 적극 차용한 프리시네마는 이후 린제이 앤더슨의 <만약에…>, 토니 리처드슨의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등으로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프랑스의 누벨바그에 비견할 만한 전성기를 맞게 되고 영국영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프리시네마는 오래 가지 못한다. 린제이 앤더슨을 비롯한 몇몇의 작가에 의해서만 주도되었던 프리시네마는 그 대중적 파급력이 영화가 가진 힘과는 별개로 약했던 것이다. 일종의 혁신적인 작가군에 의해 단기간 일어났던 ‘영화적 에너지’에 가까웠지 누벨바그와 같은 ‘운동’이 되기엔 국제적 파급력이나 뿌리가 약했던 것이다. 지난 3월22일 NFT에서는 <오 꿈의 나라> <투게더> 등 세편의 작품이 48년 만에 다시 소개되었다. 프리시네마를 재조명하는 스페셜이벤트도 열렸다. 이미 프리시네마를 잊어버린 많은 영국 관객에게 48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탄생한 <오 꿈의 나라>와 <라스트 리조트>를 비교해 볼 수 있었던 값진 기회였을 것이다. 런던=최인규 통신원

낯선 땅, 삼류인생에도 사랑은 있다

인천의 신포동 거리, 과거 ‘중국인 거리’로 알려진 이곳에서 <파이란>의 막바지 촬영이 진행되었다. <북경반점>의 중국음식점으로 쓰인 건물과도 가까운 이곳은 한세기전 서해를 건너온 중국인들이 처음 마을을 형성한 곳이다. 지금은 공장지대로 둘러싸여 바다 내음조차도 맡을 수 없는 곳이 됐다. 제작팀은 이곳의 한 창고를 빌려 비디오테이프와 만화책들을 사다 빼곡이 채워 주인공 강재의 비디오 대여점을 완성했다. 원래 보름 기한으로 임대를 했지만, 올겨울 유난히도 많이 내린 눈이 촬영을 방해하는 바람에 이곳은 두달 이상 비디오가게로 남아 있다. 이제는 오가는 주민들마저도 진짜 비디오가게로 알 정도다. 가게와 가게 주변은 모두 강재의 생활터. 이날 촬영은 강재(최민식)가 불법포르노비디오를 유통시키다가 경찰에게 연행되는 장면이다. 최민식은 촬영이 연일 지속되어 지칠 법도 하건만 아침부터 나와서 쉬지도 않고 단역배우들과 촬영장면을 연습하고 있었다. 아직 연기가 어색한 중학생 배우에게 대사가 씹히지 않도록 말하는 법과 연기의 이동방향까지 지도했다. 심지어 취재온 사진기자들을 위해 여러 번의 리허설까지 해주었다. 오락실과 비디오가게를 전전하며 시시껄렁한 생활을 하는 강재에게도 아내가 있다. 중국 여인 파이란(장백지)의 취업을 위한 위장결혼이지만. 영화에서 이강재와 애절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장백지.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녀에게 한국은 낮선 땅이다. 꽉 찬 일정(홍콩에서만도 두개의 영화를 찍고 있는 중이다)과 홍콩과는 다른 추운 날씨 탓에 장백지는 몸이 쇠약해져 토하기까지 해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 현실과 영화의 중첩이 그녀의 연기에 무거운 실감을 얹어놓는다. <파이란>은 뒷골목 삼류인생의 진한 삶과 사랑을 그리는 멜로영화로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다. <철도원>의 원작자 아사다 지로의 단편 소설 ‘러브레터’를 각색했고, 우리 자본과 홍콩 인기스타 장백지를 투입해 만든 범아시아 프로젝트. 송해성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아시아 최대 배급사인 골든하베스트를 통해 홍콩, 중국, 대만, 싱카포르, 필리핀 등 아시아 5개국에 통산 30만달러의 사전 판권 계약이 성사된 상태. 튜브 픽쳐스의 창립작품으로 약 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자된 <파이란>은 지난해 12월 크랭크인해 강원도와 인천을 오가며 촬영을 진행했고 후반작업을 거쳐 4월28일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글 이혜정 기자 hyejung@hani.co.kr ◀인형뽑기로 당첨된 토스터를 들고 유유히 걸어가는 강재. ◀비디오가게 앞에서 파이란이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스탭들. 외국배우가 우리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빠질 수 없는 스탭 중 하나가 통역이다. 통역 하정인씨가 장백지에게 촬영장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오른쪽).

별게 다 천국이래

미친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서정주 시인이 문열어라 문열어라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꽃들은 일제히 문을 열고, 아줌마 마음도 개나리처럼 화냥기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는 이 시점에, 아무리 팔할이 몽고나 중국산 먼지일지언정, 봄바람보다 더 마음 달뜨게 하는 영화란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았다. 착한 눈망울 하나로 승부하는 <천국의 아이들>은 그렇게 바람 잔뜩 든 상태에서 봐서 그런지,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별로 마음이 착해지지가 않았다. 알리는 귀엽고 자라는 예뻤고 이야기는 순진했지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이미 다 봐버린 귀여움과 예쁨과 순진함이었다. 현관에 널려 있는 아이들 신발을 하나만 남기고 몽땅 내다버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거나, 일단 단칸방으로 이사간 뒤에 허리 아프다는 핑계로 모든 집안 일을 아이들에게 떠맡겨버릴까 또는 아이들에게 필담을 습관화시킨다면 가정환경이 조금 더 조용해지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는 했다. 신데렐라는 잃어버린 유리구두 한짝 때문에 왕비가 되고, 알리는 잃어버린 운동화 때문에 마라톤 선수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도 소득이었다. 결핍도 때와 장소와 사람을 잘 만나면 재산이 된다는 사실은, 소 한 마리로 출발해 소 500마리로 생을 마무리한 정주영씨가 이미 증명해주고 돌아가셨다. 문제는 결핍이 때와 장소와 사람을 잘 만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줌마도 한때는 ‘천국의 아이들’이었다. 기억 속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불러내면,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오글보글 살면서 책상 하나 없이 방바닥에 엎드려 숙제하고 공부하던 장면, 엄마 심부름으로 외상으로 물건 사고 친지들에게 돈 꾸러 다니던 장면이 팝업 화면으로 떠오른다. 가난이 문 틈으로 새어들어오면 사랑은 대문으로 걸어나간다고 했는데, 사랑은 어땠는지 몰라도 그때 우리가 행복하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아줌마는 왜 제목이 ‘천국의 아이들’인가 궁금하다. 차라리 ‘가난의 아이들’이 더 솔직한 제목 아닌가 싶다. 보는 이들이야 에고 귀여워라 할지 모르지만, 입장 바꿔 그들이 되어보면 영화 속에서 그들이 행복을 느낄 만한 장면이 몇개가 되더란 말인가. 하긴 (남들 보기에) 가난과 아이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짝이다. 서로 붙여만 놓으면 아무리 얘기가 엉성해도 보는 이의 심금을 반쯤은 울려놓고 들어간다고 봐도 좋다.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프로그램에서 소년소녀가장 얘기만 나오면 동전 먹은 주크박스처럼 자동빵으로 눈물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줌마 하나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이런 소재의 다큐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아줌마는 괜히 앉아서 위선자가 되는 느낌 때문에 찝찝해진다. <천국의 아이들>만 해도 그림이 그렇지 않은가. 가난한 아이들이 스크린 속에 예쁘게 진열돼 있고, 딴에 다달이 운동화 수십 켤레값 정도는 번다 싶어 헛배 부른 아줌마가 스크린 너머로 그 아이들의 가난을 탐스럽게 바라본다. 아이들 인성교육에 남못잖게 관심많은 아줌마는, 가난이 아이들을 저런 정도로 착하게 만들어준다는 보장만 있다면, 유행따라 세일러문 신발, 포켓몬 신발, 디지몬 신발을 차례로 신고 있는 자기의 아이들에게 저 가난을 돈 주고 사서라도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자기 아이들 근검절약 교육용으로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할 어른들이 어디 한둘이겠나. 엊그제 아침의 일만 해도 그렇다. 전날 저녁 아이들 놀고난 현장의 잔해를 둘러보던 아줌마, 풀뚜껑을 덮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둔 것을 발견하고 아이를 불러 꾸중하는데, “저기 풀 또 있어”라는 태연한 답이 돌아왔던 것이니, 이런 영화 보여주면서 ‘정신 차려, 이 친구들아’하고 싶은 욕심이 안 생겼다면 거짓말이다. 밥상 앞에서 죄없는 북한 아이들 들먹여가며 제발 한숟갈이라도 먹어달라고 빌고, 큰 선심 쓰는 척 몇 숟갈 먹어주면 에고 장한 우리 딸 밥 잘 먹어 예쁘지 착하지 하는 꼬락서니를 몇년 동안 연출해왔으니, 누굴 원망하랴만. 그렇다고 해도, 운동화 한 켤레를 나눠신느라 죽어라 뜀박질하는 이란의 저 아이들이 왜 천국의 아이들이란 말인가.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가난하고 신발은 둘 앞에 하나뿐인 그들, 더럽고 냄새나는 운동화 한 켤레를 두고 매일 심장 터지는 바톤경주를 벌여야 하고, 상을 타고도 기뻐할 수 없는 그들이. 아이들에겐 죄가 없지만, 이 영화에 이런 제목을 붙인 어른들의 심보는 다분히 가학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가난 앞에서 지나치게 담담하고 동심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보려는 눈에 대해서, 이제 아줌마도 슬슬 의심이 나기 시작한다. 주말엔 아이들을 데리고 이 영화를 보러 갈 작정이다. 말했다시피, 저렇게 사는 아이들도 있는데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 할 생각은 없다. 대신 쟤들이 행복해보여?라고 물어봐야지. 최보은/ femolytion@dexmedia.co.kr

20년전 <`공동경비구역 JSA`>

전직경찰 송기열은 악명 높은 빨치산 짝코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요행히 그를 체포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압송 도중 놓쳐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린 까닭이다. 분명 실수로 놓쳐버린 것이지만 경찰당국과 마을사람들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서 쫓겨나고 분한 마음에 술을 퍼마시다보니 재산도 탕진하고 가정마저 파괴되어버렸다. 이제 비참하게 몰락해버린 자신의 인생을 보상하는 길은 오직 하나, 짝코를 다시 체포하는 것뿐이다. 임권택의 걸작소품 <짝코>는 그렇게 쫓고 쫓기며 보낸 송기열과 짝코의 30년 세월을 다루고 있다. <짝코>는 반공영화 같으면서도 반공영화를 넘어선다. 영화는 송기열과 짝코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데, 추적자건 도망자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뜨내기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여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 신앙처럼 굳어버린 광기어린 집념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자문하도록 만든다. <짝코>에 나오는 송기열과 짝코는 바로 분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못난 자화상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철천지 원수로 여겨야만 하는가? 최근 <`공동경비구역 JSA`>가 멋진 방식으로 던진 이 새삼스러운 질문을 <짝코>는 이미 20여년 전에 훌륭한 캐릭터 드라마로 형상화해놓고 있다. <짝코>가 유신체제 붕괴 직후인 1980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의 부친이 빨치산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임권택이 이 작품 이후로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짝코>에서 처음 맺어진 송길한과 임권택의 파트너십은 이후 10편 가까이 계속되어 <씨받이>까지 이어지는데, 80년대 전반기는 곧 이들 콤비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지만 해외평단에서 더욱 주목을 받아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인 작품이 <만다라>이다. 나 역시 대학 초년생 시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때부터 홀딱 반해서 지금껏 비디오테이프가 뭉개지도록 되풀이해 보고 있다. 법운 역의 안성기도 좋지만 지산 역의 전무송이 압권이며 특히 정일성이 카메라에 담은 수려한 이 땅의 산하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완성되었더라면 <만다라>의 좋은 짝이 되었을 법한 작품이 <비구니>이다. <만다라>의 스탭들이 고스란히 다시 모여 실존인물인 김일엽 스님의 일대기를 그리려했는데 주연을 맡은 김지미가 삭발까지 하고 촬영에 들어갔으나 불교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중도하차하고 만 불운의 작품이다. 종교와 인간에 대한 송길한의 관심은 이후 무속으로 옮겨가 <불의 딸>을 낳는다. 분단문제에 대한 좀더 냉철한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은 <길소뜸>이다. 당시 전 국민을 TV 앞에 모아놓고 연일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이산가족찾기운동의 여파를 담담히 그려낸 수작인데, 송길한은 여기서 거짓화해의 해피엔드 대신 고통스러운 파국을 선택한다. 모든 이가 바라는 빤한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과감히 무시하고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작가적 용기가 대단하다. 강원도 해변도시의 한 티켓다방을 배경으로 다방아가씨들과 마담의 꿈과 애환을 그린 <티켓>은 깔끔하고 따뜻한 소품이었다. 원로여배우 김지미와 안소영, 이혜영, 전세영 등 신진여배우들의 앙상블이 절묘했다. 조선시대의 대갓집 종손잇기 과정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봉건적 가부장제의 모순을 파헤친 <씨받이>는 강수연에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전북 전주 출생의 송길한은 본래 법학도로서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다. 군복무 중 소설을 쓰기 시작해 서른살 되던 해인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흑조>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된 것을 계기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3년 같은 제목의 시나리오로 충무로에 데뷔한 이후 현재까지 50편에 육박하는 시나리오를 써온 대표적인 충무로작가인데, 어찌된 일인지 1992년의 <명자 아끼꼬 쏘냐> 이후로는 작품활동이 뜸하여 아쉽고 안타깝다. <넘버.3>와 <세기말>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이 그의 동생이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73년 이상언의 <흑조> 1977년 설태호의 <도솔산 최후의 날> 1980년 임권택의 <짝코> ★ 1981년 임권택의 <우상의 눈물> ⓥ 임권택의 <만다라> ⓥ★ 1982년 임권택의 <안개마을> ⓥ 정진우의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 1983년 임권택의 <불의 딸> ⓥ 1985년 임권택의 <길소뜸> ⓥ★ 1986년 임권택의 <티켓> ⓥ 임권택의 <씨받이> ⓥ 1989년 장길수의 <불의 나라> ⓥ 1992년 이장호의 <명자 아끼꼬 쏘냐>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