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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대영제국 영화의 OTZ

트뤼포와 고다르를 배출한 프랑스의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가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00편”을 선정했다. 프랑스의 감독, 평론가, 산업 관계자 76명이 선정한 이 목록의 1위는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다.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과 찰스 로턴의 <사냥꾼의 밤>이 공동 2위로 그 뒤를 잇는다. 프리츠 랑의 , 장 비고의 <라탈랑트>,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버스터 키튼의 <제네럴> 등이 20위까지 순위를 채웠는데 이 영화들은 1960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1위부터 20위까지 할리우드영화가 14편이나 되는 가운데 오즈 야스지로의 <도쿄 이야기>와 미조구치 겐지의 <우게츠 이야기>가 각각 14위와 16위에 랭크된 점도 눈에 띈다. 그러나 20위 내 일본영화 2편의 존재는 <인디펜던트>와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이 100위 안에 영국영화가 한편도 없는 점을 꼬집어 “프랑스가 대국의 영화를 잊었다”고 대서특필할 만한 구실을 던져주었다. 영국 출신 영화감독인 채플린과 히치콕의 영화가 순위 내에서 몇번이나 언급되지만, 영국 언론들의 분노는 영국에서 제작된 순수 영국영화가 순위 내에 단 한편도 없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텔레그래프>는 데이비드 린, 피터 그리너웨이, 켄 로치 등 위대한 영국 감독의 걸작들이 순위에 오르지 못한 점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인디펜던트>는 파리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는 호주 작가 존 백스터의 말을 빌려 “<카이에 뒤 시네마>를 위시한 프랑스영화계는 오랫동안 영국영화라는 존재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왔다”고도 전했다. 이같은 반발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장 미셸 프로동은 “반영국사상이라니 말도 안된다. 설문에 참여한 76명의 선택이 반영돼 만들어진 우연의 결과다. 놀랍지만 의도적이지는 않았다. 브라질영화도 순위에는 없다”고 변명했다. 프로동의 말은 사실이다. 미국영화협회(AFI)에서 선정한 최고의 영화 100편 목록과 비교하면, 독일·이탈리아·스페인·러시아·스웨덴·인도영화까지 섭렵하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식견은 다양하기까지하다. 참고로 AFI가 선정한 100편 중 98편은 할리우드영화였으며, 그중 외국영화는 영국 감독 데이비드 린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콰이강의 다리> 단 2편에 불과했다.

[CF 스토리] 그 슬로건, 동의할만 한가?

최근 몇개 브랜드가 새로운 슬로건을 선보였다. SK브로드밴드는 이라 하고, BC카드는 ‘Beyond Card’를 선언했다. 삼성카드는 ‘생각의 프리미엄’을 말한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겠다, 기존 카드를 뛰어넘겠다, 새로운 생각의 프리미엄을 돌려드리겠다고 장담한다. 세상의 어떤 슬로건도 틀리거나 나쁜 말은 없다. 슬로건만 들여다보면 멋진 말 찾기 경연장 같다. 영문 슬로건을 쓸 때는 중학생도 알 수 있는 수준의 영단어로 참 잘도 조합을 한다(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이해하려면 그 이상 수준의 단어는 암호다). 하지만 말이 멋있다고 좋은 슬로건은 아니다. 좋은 슬로건의 기준은 분명히 있다. 글로벌 브랜드인 BMW의 ‘ultimate driving machine’은 광고계에서 최고의 슬로건으로 꼽히는데, 브랜드가 지향하는 차별적 가치(궁극의 드라이빙을 위한 첨단 기술)를 명쾌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슬로건이 여러 마케팅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는 이유는 1975년부터 현재까지 한번도 바꾸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슬로건은 경영자들이 교체될 때 함께 바뀌고 그래서 평균 2년6개월의 수명을 가진다고 한다. 슬로건도 마케팅의 수단이므로 필요에 따라 바뀌어야 하지만 슬로건은 개별 광고의 카피와는 다르다. 브랜드 전체를 설명하며 좌우하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슬로건은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위급할 때 집합 신호로 외치는 소리(sluagh-ghairm)를 슬로건으로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광고로 치면 상황이 위급할 때가 아니라 수많은 ‘말’들 속에서 쉽게 잘 들리도록 외치는 소리가 돼야 한다. 슬로건은 그 유래에서도 눈치챌 수 있듯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소비자뿐 아니라 내부 직원들에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지침이 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슬로건은 없다. APPLE의 슬로건 ‘Think different’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흔한 말로 들릴 수 있지만 APPLE은 그 슬로건을 중심으로 직원 모두가 움직였고 그 결과 정말 다른 실체들을 보여줌으로써 흔한 말을 자신의 고유한 슬로건으로 만들었다. SK브로드밴드, BC카드, 삼성카드 모두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담아 슬로건을 런칭했다. 흥미롭게도 SK브랜드밴드와 BC카드는 모두 밴드 음악과 팝아트적인 비주얼을 보여준다. 두 브랜드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새로운’ 세상을 표현하기에 젊은 세대의 음악, 전형을 뛰어넘은 팝아트가 적합했을 것이다. 들리는 음악처럼 새롭고, 보이는 그림처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겠단다. SK브로드밴드는 후속광고에서 ‘컨버전스의 새로운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세계 여러나라 민속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힙합춤을 추는 광고를 내보냈다. 전에 보지 못한 춤이다. 광고는 브랜드가 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광고 자체가 ‘see the unseen’ 해야 하고 ‘beyond card’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 면에서 두편의 광고는 모두 매력적이다. 이처럼 소비자의 기대를 끌어올렸다면, 이제 그에 합당한 실체가 드러나야 한다. 슬로건은 말의 향연이 아니라 실체의 응축이어야 한다. SK브로드밴드에서 하나로텔레콤 때와 똑같은 텔레마케터의 전화를 받았다면 껍데기만 바뀌고 알맹이는 그대로라는 이야기니까. ‘말이 얼마나 강력한가’가 아니라 ‘동의할 만한가’가 슬로건의 기준이 돼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기업의 슬로건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최고 경영자의 생각이다. 광고대행사에 ‘말 맛나는’ 슬로건을 요구하기 전에, 그 광고를 원하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하고 살펴야 한다.

[듀나의 배우스케치] 구혜선

여러분은 특정 배우의 연기력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리고 그러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전 몇달 전 미니시리즈 <최강칠우>의 첫 2회를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 시리즈는 1, 2회를 같은 날 방영했지요. 그런데 2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에서는 벌써 에릭의 연기력을 비꼬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그 기사라는 게 인터넷 반응을 실시간으로 정리해 올린 것에 불과했지만요. 그날 방영이 끝나기도 전에 에릭에 대한 평가는 정립되었고 그게 시리즈 끝까지 갔던 겁니다. 제 의견은 어떠냐. 전 당시 에릭의 연기나 캐스팅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 캐릭터를 건들건들 현대적으로 연기하긴 했지만 원래 그 시리즈 자체의 분위기가 그랬죠. 게다가 전 에릭이 사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전 오히려 그 사람이 너무나도 조선시대다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19세기나 20세기 초에 조선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을 보면 에릭처럼 빈궁하게 마른 얼굴을 한 남자들이 가득하지요. 여기에 대한 제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 그르다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주장은 나름대로 객관적인 판단기준을 따르고 있고 논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될 거라는 거죠. 그런데도 시리즈 초반에 고정된 미스 캐스팅과 연기 스타일에 대한 비판은 바뀔 줄 몰랐죠. 이같은 논란은 다른 배우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전에 전 송혜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마 <왕과 나>의 구혜선도 비슷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에덴의 동쪽>의 이연희의 경우는… 아, 불쌍한 배우 같으니라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연희의 <순정만화> 연기는 <에덴의 동쪽>보다 낫습니다. 이 사람은 텔레비전으로 넘어갈 때마다 심각해져요. 더 꼼꼼하게 관리되고 더 어울리는 대사가 주어지는 영화 장르에서 이연희는 유용한 배우입니다. 구혜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왕과 나>의 악명이 시작된 건 구혜선의 우는 연기를 잡아낸 움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구혜선 움짤’로 검색하면 십중팔구 그 움짤이 뜨지요. 보면 엄청 웃깁니다. 하지만 과연 전 그게 한 배우를 평가하는 데 객관적인 기준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움짤이란 결국 순간 캡처와 특별히 다르지 않지요. 순간 캡처 한장으로 한 사람의 미모를 평가할 수 없듯이, 한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려면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봐야 합니다. <왕과 나>처럼 호흡이 긴 드라마는 배우의 적응 기간도 고려해야 하지요. 실제로 구혜선은 중·후반부엔 상대적으로 나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같은 우는 장면이라도 표현이 다르지요. 하지만 그래도 ‘구혜선 움짤’의 힘이 강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팬들이 더 나은 후반 연기를 캡처해 반박용 ‘구혜선 움짤2’를 올려도 오리지널은 그 반박을 능가합니다. 한번 찍힌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린 순간 평가와 움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이는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입니다. 배우가 뒤늦게 항의하거나 변명하면 모양만 나빠질 뿐이죠. 그런 변명을 주변 사람들이 대신 해주어도 마찬가지이고요. 결국 적응하려면 테크닉을 강화하고 전형적인 연기 스타일에 올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뻔한 답변이 아니냐고요? 네, 뻔한 답변입니다. 그리고 정말 재미가 없지요. 모든 텔레비전 배우들이 움짤과 순간 평가를 겁내면서 모두에게 적당히 통하는 한 지점으로 모인다면 얼마나 심심할까요? 시청자가 좀더 여유있게 대처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눈에 보이는 걸 보이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며 불끈하는 유희본능을 억누를 필요도 없는 거겠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게 수렴될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테크닉을 한점에 수렴하려 한다고 해도 배우들의 비균질성이 그렇게 쉽게 깨질 수도 없을 것이며 캐스팅 과정이 그렇게 공정하기만 할 수도 없겠죠. 이런 난장판은 여전히 남을 것이며 뒷담화하길 좋아하는 시청자와 배우들의 기싸움 역시 여전할 것입니다. 그건 좋은 것이겠죠. 줏대없는 인터넷 기자들이 받아쓰기 기사로 이를 억지로 부풀리지 않는다면.

배우 박광정 폐암으로 사망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배우 박광정 씨가 15일 오후 9시40분께 지병인 폐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46세.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박씨는 1992년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에 출연하고 같은 해 연극 '마술가게'를 연출하면서 배우 겸 연출가로 데뷔, 영화와 드라마, 연극 무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가 출연한 영화로는 '뜨거운 것이 좋아', '작은 연못', '오로라 공주', '물고기자리', '자귀모', '넘버3', '박대박', '아이언팜', '진짜 사나이' 등이 있으며, '사랑을 그대 품안에', '아일랜드', '단팥빵', '하얀거탑', '뉴하트', '대박인생', '사랑한다 말해줘'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로 조연을 맡아 개성 넘치는 감초 역할을 했던 그는 작년 개봉한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에서는 주연을 맡았으며, 이 작품으로 작년 제1회 모나코 국제이머징탤런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연극 연출가로도 활발히 활동해 온 그는 2001년 극단 파크를 설립, '개그맨과 수상', '청혼 그리고 결혼피로연', '여성반란', '매직타임', '진짜, 하운드 경위', '죽도록 죽도록' 등의 연극을 선보였다. 올해 초 폐암 판정을 받은 후에도 MBC 드라마 '누구세요'에 출연하며 연기 투혼을 불살랐고, '부드러운 매장', '서울 노트' 등의 연출을 맡으면서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연극인인 부인 최선영 씨와 2남이 있다. 발인은 17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 성남. ☎02-2072-2091. hisunny@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니콜 키드먼, 濠 전통악기 불었다가 구설수>

(시드니=연합뉴스) 이경욱 특파원 = 호주 출신의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이 호주 전통악기 '디저리두'를 불었다가 애보리진(원주민)으로부터 반발을 사는 등 혼쭐났다. 자신이 주연으로 등장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 홍보차 독일을 방문한 키드먼은 지난 주말 독일의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예정에 없었던 디저리두를 잠시 불었다고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가 16일 보도했다. 문제는 호주에서 여성이 디저리두를 부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는 것. 긴 대나무 모양의 디저리두는 원주민들이 각종 축제 때 흥을 돋구기 위해 사용하는 악기다. 시드니의 한 애보리진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앨런 매든은 "키드먼이 뭔가를 더 잘 알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마도 키드먼이 디저리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가 디저리두를 입에 댔을 리가 없다"면서 "키드먼이 디저리두를 불어 보려 했을 때 주변에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 제작팀이 말렸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방송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자 주인공 휴 잭먼 등이 함께 출연했다. 영화배우이면서 영화대본작가인 리처드 그린은 "독일 사람들이 디저리두를 부는 키드먼의 모습을 보기 원했을 것"이라며 "키드먼은 요청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디저리두를 입에 대지도 말아야 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디저리두를 부는 여성은 불임이 된다"면서 "키드먼은 앞으로 임신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린은 "다른 여성들도 키드먼의 행위를 따라 디저리두를 무심코 부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며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2편의 호주 홍보 동영상을 제작한 오스트레일리아 감독 버즈 루어만 제작팀이 애보리진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애보리진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서호주(WA) 킴벌리의 킹조지폭포 밑 연못 발랑가라에서 수영장면을 촬영한 데 대해 애보리진들이 비난하고 나서 루어만 감독팀은 이래저래 구설수에 오르게 됐다. 한 애보리진은 "호주관광청이 전 세계에 우리의 애보리진 문화는 마음껏 짓밟아도 되는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지난 9월 출판사 하퍼콜린스는 여성들을 위한 한 단행본에서 디저리두 연주 방법을 서술했다가 애보리진 사회로부터 반발을 사 결국 수정판에서 이 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다. kyunglee@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재밌는 게 왜 안 걸렸지?

올해 많은 영화들이 극장 개봉을 했지만, 극장에 걸리지 못한 영화들도 부지기수다. 이들 미개봉 영화 중 올해 국내와 해외에서 DVD로 출시된 영화 10편을 소개한다. 2007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부터 애덤 샌들러의 배꼽 빠질 코미디까지 연말연시 당신을 즐겁게 할 리스트다. 소설 <백야>와 발리우드가 만나면 <사와리야> Saawariya 2007년/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138분/출시 소니픽쳐스 노래와 춤에 열광하거나 어색함에 치를 떨거나. 인도영화의 고유한 특징과 마주한 대다수 한국인의 반응은 그럴 것이다. 수입과 개봉은 물론 홈비디오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은 한국에서 인도영화가 차지하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 일전에 <라간>을 선보였던 제작사에서 <사와리야>를 출시함으로써 몇년 만에 인도영화의 DVD 한편이 추가됐다. 고작 DVD 한장에 반가움과 신기함이 교차하는 경우다. <사와리야>는 <데브다스>(2002)를 연출해 인도 안팎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산제이 릴라 반살리의 신작이다. 사라트찬드라 차테르지의 고전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된 <데브다스>와 달리 <사와리야>는 특이하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 <백야>를 원작으로 선택했다. 언뜻 북구의 밤과 인도영화의 궁합을 상상하기 힘든데, <사와리야>는 그것이 기우였음을 증명한다. 일찍이 루키노 비스콘티가 각색한 <백야>(1957)가 공인된 걸작임이 분명하지만, <사와리야>의 환상적인 분위기 또한 원작의 몽환적인 성격과 몽상가의 이야기와 썩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사와리야>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옛 연인이 빚는 사랑 이야기를 노래와 춤으로 해석한다. 시리도록 푸른 색감을 기조로 한 세트는 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미술로 채워져 있으며, 배우들은 꿈과 사랑과 약속을 마음 깊은 곳에서 내뿜는다. 인도의 전통음악과 팝과 현대음악을 적절하게 섞은 노래는 중독성이 너무 강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다. 영상과 소리의 재현이 A급인 DVD는 음악의 제작과 프리미어 시사 관련 영상(20분, 22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화장실 코미디 <조한> You Don't Mess With The Zohan 2008년/감독 데니스 듀간/109분/출시 소니픽쳐스 애덤 샌들러와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로 빅히트를 친 주드 애파토우 감독이 만났다. <조한>은 애덤 샌들러가 극중에서 분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 최고 요원의 이름이다. 조한은 인간 능력을 가볍게 뛰어넘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격투의 달인이며 날아오는 총알을 가볍게 피할 정도로 재빠르다. 심지어 총알을 잡아내기도 하며, 엄청난 정력을 자랑하는 섹스머신이다. 이런 겉모습과 달리 그의 진짜 꿈은 커트 기술을 배워 최고의 미용사가 되는 것. <조한>은 대단히 유쾌한 코미디영화다. 조한이 섹스머신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코미디 성격은 정해졌다. 마치 벤 스틸러의 음란 코믹영화처럼 저질 대사를 남발하며, 툭하면 허리를 휙휙 돌리며 강렬한 디스크 춤을 선보인다. 그리고 흡사 아이큐 두 자리 수를 가진 관객을 배려한 것처럼 이야기는 헐렁하다. 바로 이 점이 <조한>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강점이다. 진지하게 영화를 보며 고상을 떨기보다 술을 마시며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기에 그만인 영화! <조한>은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액션 코믹물로 포문을 연 <조한>은 동네 미용실을 배경으로 할머니 손님들에게 음란 서비스를 행하는 질펀한 섹스코미디를 지나, 훈훈한 로맨틱코미디로 마무리 한다. 애덤 샌들러의 다시 없을 음란, 저질 만점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미국 퍼스트레이디와 그 자녀들을(부시와 클린튼, 심지어 오바마까지) 두고 벌이는 음탕한 성적 농담들이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수위가 높아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화장실 코미디 스타일을 고수하기 때문에 취향을 많이 탈 수 있으니 참고하길. 2007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천국의 가장자리> Auf der anderen Seite(The Edge of Heaven) 2007년/감독 파티 아킨/116분/ 출시 대경DVD 2004년 <미치고 싶을 때>가 베를린영화제를 포함한 수많은 영화제를 휩쓸면서 파티 아킨은 독일영화를 이끌 주자로 나섰다. 이후 3년, 다큐멘터리와 단편 작업에 이어 연출한 <천국의 가장자리>가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자 아킨은 예술영화를 주도할 차세대 작가의 위치에 오른다. <천국의 가장자리>의 복잡하면서도 농밀한 이야기와 성숙한 연출 그리고 대중적인 화법은 전작을 확실히 뛰어넘는 것이다. 터키계 독일인인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정체성에 뿌리를 둔 이야기를 계속한다. 여섯 사람- 육체의 만족을 얻으려고 매춘부를 집에 들인 터키계 노인,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못마땅한 지식인 아들, 딸의 교육 때문에 독일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터키의 중년 여자, 반정부활동을 하다 독일로 피신한 그녀의 딸, 의지할 곳 없는 터키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독일 여자, 딸의 자유분방한 삶을 염려하는 어머니의 엇갈린 운명에 관한 이야기인 <천국의 가장자리>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테르의 죽음, 로테의 죽음, 천국의 가장자리’라는 소제목대로 두 사람의 죽음이 벌어진 뒤에야 남은 자들은 천국의 가장자리로 겨우 진입한다. 아킨은 인터뷰에서 사랑이 용서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했다. <천국의 가장자리>는 사랑하기 위해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영화다. 세대간, 민족간, 국가간, 계급간의 날이 쉬 무뎌질 리 없겠지만, 이야기와 연기의 힘이 적잖은 호응을 얻어낸다. DVD 부록인 메이킹필름(57분)이 마음에 든다. 감독의 아내인 모니크 아킨이 영화의 시발점, 주제, 캐스팅, 리허설, 로케이션, 영화제 현장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털이 거뭇거뭇한 래드클리프 <디셈버 보이즈> December Boys 2007년/로드 하디/105분/출시 워너브러더스 올 겨울에 ‘해리 포터’를 만나지 못해 마음 아팠던 팬들에게 <디셈버 보이즈>는 뜻밖의 선물이다.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그간 해리 포터의 캐릭터로만 인식됐는데, 첫 키스와 첫 경험 앞에서 수줍어하는 소년의 역할은 그를 연기자로 바라보게 한다. 마냥 귀엽던 꼬마에서 털이 거뭇거뭇한 청년으로 성장하는 래드클리프를 보는 것 자체가 팬들에겐 기쁨이다. 마이클 누난의 소설을 각색한 <디셈버 보이즈>는 초로의 남자가 1970년대에 보낸 소년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오지에 있는 고아원의 원생 가운데 생월이 12월인 네 소년은 ‘디셈버 보이즈’로서 운명을 공유하는 사이다. 생일을 맞아 휴가 여행을 떠난 넷은 외로운 어른들이 모여 사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도착한다. 가족과 살기를 갈망하는 네 소년이 소소한 사연을 간직한 어른들과 만나 벌어지는 사건은 의외로 심심하다(원작을 읽지 않아 그게 각색 탓인지 연출 탓인지 알 수 없다). 호주의 영화자본이 적극 투입된 <디셈버 보이즈>의 진짜 즐거움은 호주의 거대한 황야와 바다와 해안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비롯된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풍광이 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처럼 빛나는 영화이며, DVD는 고운 영상으로 영화에 답한다. 유일한 부록인 삭제장면 모음(8분)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하고 넘어간 몇몇 부분을 보완한다. 괴짜 작가 어거스틴 버로스의 어린 시절 <러닝 위드 씨저스> Running with Scissors 2006년/라이언 머피/122분/출시 소니픽쳐스 작가 어거스틴 버로스에게도 십대는 혼란과 고통의 시간이었다. 남들과 달랐다면 그는 힘들게 통과한 시기를 글로 써 스스로를 치유했다는 점이다. <러닝 위드 씨저스>는 베스트셀러가 된 성장소설(<가위 들고 달리기>로 번역, 소개됐다)을 각색한 영화다. 1972년, 어린 버로스는 유명작가의 꿈에 빠진 허영심 많은 엄마와 가족에게 무관심한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다. 1979년, 부모의 불화 끝에 어머니의 정신과 의사가 14살 소년을 입양하기에 이른다. 스트레스로 억압받은 인생을 분노로 표출하라는 의사의 주문에 어머니의 질환은 갈수록 심해지고, ‘아담스 패밀리’에 버금가는 의사의 가족 구성원은 십대 소년의 삶을 뒤흔들어놓는다. 소년은 자기 삶이 왜 우울한지,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 궁금하다. TV시리즈 <닙턱>의 각본·제작·연출로 유명한 라이언 머피의 <러닝 위드 씨저스>는 <로얄 테넌바움>과 <아이 하트 허커비>의 가운데에 자리할 영화다. 괴짜 인물들의 엉뚱한 행동을 에피소드식으로 전개한 영화에선 묘한 매력이 흐른다. 명배우들의 앙상블, 197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명곡들부터 ‘크로노스 쿼텟’의 재즈연주에 이르는 선곡도 훌륭하다. 수준급의 영상과 소리를 자랑하는 DVD는 캐릭터, 원작자, 미술에 관한 세 가지의 특별영상(19분)을 부록으로 담았다. 오쿠다 히데오 소설이 원작 <인 더 풀> インザプ-ル 2004년/감독 미키 사토시/100분/출시 태원엔터테인먼트 <인 더 풀>은 요즘 가장 사랑받는 일본 작가 중 한명인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동명의 원작 소설은 나오키상 수상작 <공중그네>의 전편에 해당하는 것으로 엽기적인 의사와 간호사 커플인 이라부와 마유미가 여러 환자들과 벌이는 기이한 행각이 내용의 주를 이룬다. 영화는 소설의 다양한 사례를 세건으로 줄였고, 인물의 구성을 상당 부분 바꾸었으며, 배우들의 익살맞은 연기가 원작의 맛깔스러운 대사를 대신한다. 발기가 지속되는 바람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든 젊은 직장인, 정신건강을 원해 수영을 시작했다가 오히려 수영 중독에 걸린 남자, 전열기구로 인한 사고와 화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바깥 출입에 지장을 받는 여자가 등장한다. 이라부는 이들의 사례를 전혀 의사답지 않은 자세로 임하거나 뚱딴지 같은 행위를 요구하는데, 미키 사토시 감독은 의사의 이름을 빌려 관객에게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라는 주문을 건다. <인 더 풀>은 등장인물들처럼 문제를 안고 살던 관객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태도와 소신껏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자세를 구하길 원한다. DVD 본편은 깔끔한 영상과 소리를 갖추었으며, 부록으로 캐릭터 분석과 감독의 연출 스타일 등을 다룬 메이킹필름(38분), 리허설 과정(18분)을 수록했다. 본편의 음성해설에 자막이 지원되지 않는 건 아쉽다. 만화 <군계>의 격투를 영상으로 <군계> 軍鷄(Shamo) 2007년/감독 정 바오루이/105분/출시 Tai Seng Video 여문락 주연의 <군계>는 하시모토 이조, 다나카 아키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격투 만화 팬들의 필독서로 손꼽히는 걸작으로, 주인공 나루시마 료는 소년 시절 부모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다른 죄수들에게 폭행과 강간을 당하면서 자기 보호를 위해 가라테를 배우며 무도인의 길을 걷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영화는 각색 작업을 거쳤지만 원작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이뤄졌고, 핵심 요소인 격투의 비중은 변화가 없다. 그러나 원작 팬의 입장에서 볼 때 아쉬움이 있다. 나루시마는 사악하지만 자신의 결정과 의지를 믿고 실천하는 카리스마를 지녔다. 여문락이 연기한 나루시마는 강렬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압축한 탓에 인물을 깊이있게 다루지 못했다. 또한 나루시마의 주변 인물들과 얽히고설키는 사건 전개도 매끄럽지가 않다. 하지만 원작 만화의 백미인 격투에 관해서는 훌륭하게 영상으로 표현했다. 만화에서의 무도인이 발산하는 무게감은 재현하지 못했지만, 기교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울 것이 없다. <권계>의 격투 연출은 기존 홍콩 액션영화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보고 즐기기 위한 액션이 아닌 사실적인 대결을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 실제 K-1 MAX의 챔피언 마사토를 기용해 나루시마와의 마지막 승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또한 오랫동안 홍콩 권격영화의 팬이었다면 영화 중반 멋진 실력을 발휘하는 양소룡의 건재함이 반가울 것이다. 프로레슬링의 박력을 원하신다면 <컨뎀드> The Condemned 2007년/감독 스콧 와이퍼/100분/출시 소니픽처스 지난해 공개되어 액션영화 팬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컨뎀드>는 미국 프로레슬링 단체 WWE가 설립한 WWE 필름스에서 제작한 영화로, ‘스톤 콜드’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레슬러 스티브 오스틴을 기용한 박력 만점의 액션영화다. <컨뎀드>의 이야기는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러닝맨>을 떠올리게 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들이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 동원되고,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죄수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이 과정은 고스란히 인터넷으로 중계된다. 자극을 좇는 시청자에게 최고의 오락 프로그램이다. 프로레슬링의 명승부를 보는 것처럼 <컨뎀드>는 화끈한 액션이 눈요기다. <러닝맨> <배틀 로얄>을 대충 섞어놓은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담고 있는 액션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80년대 극장가를 장악했던 마초 액션을 재현하듯이 <컨뎀드>의 격투는 힘과 힘의 대결이며, 레슬러로서 갈고닦은 기술까지 영화에서 멋지게 재현한다. <컨뎀드>는 보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B급 액션 애호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맛있는 영화다. 이번엔 여자 옹박이다 <초콜렛> Chocolate 2008년/감독 프라차야 핀카엡/92분/출시 Magnolia Home Entertainment <옹박>으로 새로운 무술 액션의 세계를 연 프라차야 핀카엡 감독은 넘치는 아류작들과 차별화를 위함인지 여배우를 기용해 또 다른 액션영화를 내놓았다. <초콜렛>이란 특이한 제목의 영화다. <초콜렛>의 여주인공 센은 자폐증을 앓고 있지만, 엄청난 무술 잠재 능력이 있다. 대개는 피나는 수련 과정을 거치고 고수가 되지만, 그녀는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무술의 테크닉을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무술의 천재이다. 재미있는 것은 트레이닝 과정에 등장하는 것이 이소룡과 토니 자의 영화들이다. 그녀는 열심히 무술영화를 보고 머릿속으로 기술들을 흡수하며 어느덧 고수가 된다. <초콜렛>의 무술 액션들은 <옹박>의 그것과 동일하다. 남녀 성별만 바뀌고 파워가 조금 모자랄 뿐 대단히 높은 기술을 구사한다. 토니 자처럼 점프하며 무릎과 팔꿈치로 실제 가격하는 리얼 액션의 계보를 잇는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움찔할 정도로 실감나는 격투를 소화한 여주인공 지쟈 야닌은 가냘프고 앳된 외모의 소유자로 거친 액션을 소화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스턴트까지 소화하는 그녀의 진면목은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지는 NG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수입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개봉을 못하고 있어 아쉽다. 유적지에 피어난 죽음의 식물 <루인스> The Ruins 2008년/감독 카터 스미스/91분/출시 CJ엔터테인먼트 스콧 B. 스미스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호주·미국 합작영화 <루인스>는 2008년에 나온 공포영화 베스트 목록에서 빠지면 섭섭할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멕시코의 휴양지. 해변과 수영장을 오가는 놀이에 싫증이 난 미국인 관광객 4명과 독일 청년 1명이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대 마야문명의 유적지를 찾아 나서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유적지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총과 활로 감시를 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갈팡질팡하던 다섯명의 멤버들은 유적지 안으로 몰리면서 하나둘씩 끔찍한 일을 당한다. <루인스>는 잔혹한 살육 행위를 앞세운 최근 공포영화들의 트렌드와는 살짝 거리를 둔다. 돌로 다리뼈를 부수고 절단하는 끔찍한 고어장면도 있지만, <루인스>의 매력은 매 순간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탁월한 분위기 묘사로 심리 공포를 추구하는 데 있다. 유적지에서 여행객을 위협하는 것은 식물이다. 강한 전염성을 가진 이 식물과 접촉을 하면 얼마 뒤 숙주가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식인식물이 나오지만 시각적인 화려함은 전무하다. 그러나 <루인스>의 공포 효과는 대단히 효과적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서서히 죽음에 이르게 되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로 관객을 긴장과 공포로 몰아간다.

[댓글로 보는 TV] 귀여웠던 ‘우리 약용이~’

올 한해 동안 댓글가에서 가장 인기를 모은 방송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인터넷 포털 ‘다음’의 협조를 받아, 방송·연예 전문 게시판인 ‘텔레비존’에 가장 많은 댓글이 올라온 프로그램을 꼽아보았다. 1위는 MBC 드라마 <이산>이다. <이산>의 댓글은 초반엔 정조(이서진)와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사랑을 꼭 이루어달라는 바람이 주를 이뤘지만, 드라마 후반 정약용(송창의)이 등장해 좌충우돌 사고뭉치로 그려지면서 게시판이 후끈 달아올랐다. 누리꾼은 그에게 ‘정초딩’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우리 약용이’라 부르며 몹시 귀여워(!)했더랬다. 2위를 차지한 <베토벤 바이러스>(MBC)와 5위인 <바람의 화원>(SBS)은 게시판에 누리꾼의 예술적 감수성이 흘러넘쳤던 드라마들이다. 강마에와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똥.떵.어.리’ 동영상 패러디로 댓글가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뒤 안으로는 드라마에 삽입된 클래식 음악의 제목을 공유하고 밖으로는 연주장면 동영상을 퍼날랐다. 음악 전공자들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악기와 연주법, 용어 및 곡 해설에 전념하는 사이, 미술 전공자들은 <바람의 화원>을 패러디한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을 선보였다. 기념 티셔츠를 디자인하고 도화서 문양을 낙관으로 만들어 나눠 갖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됐다. 올 한해 드라마를 사랑한 누리꾼은 <일지매>(4위)를 보며 ‘파문놀이’(예: 인조 “난 MB를 벤치마킹 했다” 파문)를 즐겼고, <쾌도 홍길동>(6위)과 함께 ‘멍청이놀이’(모든 말을 ‘멍청이’로 끝내는 놀이)를 했으며, <에덴의 동쪽>의 무수한 등장인물을 소재로 ‘짝짓기놀이’에 심취했다. 올해 드라마 시청률 순위에선 찾아볼 수 없는 <태양의 여자>(7위)의 독특한 재미를 먼저 알아보고 “본방 사수”를 외쳤던 누리꾼이지만, <너는 내 운명>(10위)의 가혹하리만치 뒤틀린 설정에 대해선 “막 나가는 드라마”, “다중인격 새벽”이라는 악플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 <뉴하트> 게시판에는 지난 12월15일 세상을 떠난 배우 박광정을 추모하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의 게시판이 붐비는 건 당연하지만, 시청률과 댓글 수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시청률 집계 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가 발표한 2008 시청률 상위 10개 프로그램과 ‘텔레비존’ 댓글 수 상위 10개 프로그램 중 겹치는 것은 <이산>과 <뉴하트> <너는 내 운명>뿐이다.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는 일일극이나 주말극이고, 게시판이 붐비는 드라마는 주중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다. 연예·오락 프로그램의 경우, <일요일 일요일 밤에-우리 결혼했어요>는 시청률 상위 5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댓글 수에선 단연 1위로 꼽혔다. 텔레비전 시청층이 점차 고령화된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 아닐까. 안녕, 우리가 열렬히 사랑했고 잘근잘근 씹었던 2008년 방송 프로그램들이여! 다음 ‘텔레비존’ 댓글 수 순위 드라마 부문 1. <이산> 2. <베토벤 바이러스> 3. <뉴하트> 4. <일지매> 5. <바람의 화원> 6. <쾌도 홍길동> 7. <태양의 여자> 8. <온에어> 9. <에덴의 동쪽> 10. <너는 내 운명>

[2009 라이징 스타] SK 텔레콤 부장님편 CF모델 최다니엘

사람들은 종종 캐릭터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를 혼동한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의 양수경이 다혈질에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들이대는 캐릭터라고 해서 양수경을 연기한 최다니엘이 그런 성격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최다니엘은 능청스러울 것 같다.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신입사원이 되어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로 시작되는 노래를 불러대는 모습 또한 능청스러워서였을까. “양수경 같은 모습이 내 안에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 대하는 것도 되게 어려워하고, 한번도 내가 능청스럽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난 항상 진지했다.” 드라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이다인은 그가 “의외로 감성적이고 또 굉장한 노력파”라고 얘기했다. “고시공부하듯이 대본을 달달 외우”기도 했던 그는 초짜 연기자 특유의 근성으로 캐릭터에 놀랍게 몰입했다. 그 결과 전체 드라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양수경만의 개성을 발산하는 ‘수위 조절’에 성공했다. 데뷔 동기는 의외다. 고등학생 때 빼빼로CF로 데뷔한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부귀영화를 꿈꾸며 허황된 꿈에 젖어서”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몇편의 CF를 찍고 방송에 잠깐씩 얼굴을 비추긴 했지만 제대로 된 연기는 해보지 못했다. “그땐 별의별 알바를 다 했다. 입에 풀칠하기 바빴는데, 그 안에서 행복을 누렸다.” 누구나 다 배고픈 시절이 있지 않냐며 과거를 툴툴 털어버리고 현재에 충실한 모습이다. 아직 잡혀 있는 작품 계획은 없다며 “백수라서 요즘 힘들다”고 엄살을 피웠지만 “나이를 먹어서도 계속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처럼만 땀 흘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말이다.

[영화화 추천 만화] 네모칸 뚫고 스크린에서 놀자

네모칸 속 그림들이 답답한 틀을 벗어버리고 넓은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인다면? 만화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상상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만화를 토대로 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에 이어 만화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들이 계속 탄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들이 영화화할 만한 만화들을 추천했다. 한국 히어로만화의 선구자 <트레이스> 고영훈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웹툰 <트레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한국형 히어로만화’다. 30여년 전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트러블과 트레이스가 나타났다. 때로는 괴물의 모습으로 때로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트러블은 인간을 무차별 공격하고, ‘트러블의 흔적’이라 불리는 초능력자 트레이스가 유일하게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 인간이면서 특수한 능력을 지닌 트레이스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 혹은 영화 <엑스맨>처럼 다양한 능력자가 등장하는 <트레이스>는 호쾌한 액션신과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미 수백만 네티즌의 검증을 받은 작품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애니메이션으로 보고 싶다는 의견과 영화로 보고 싶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일부 네티즌은 <트레이스>의 주인공과 닮은 배우들을 가상 캐스팅하기도 했다. 트레이스를 이용하려는 권력과 이에 맞서는 트레이스의 대결을 다룬 ‘거지’ 에피소드가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다. 복수를 설계하라 <란의 공식> 양영순 상대의 캐릭터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동선을 짠 뒤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설계’를 통한 복수를 거행한다.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설계자는 절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항시 복병은 숨어 있는 법. 아이의 가벼운 복수는 끝내 살인까지 이어지는데, 이것 역시 또 하나의 설계다. 그렇다면 자신 외 제2의 설계자가 있다는 결론. 숨겨진 진범을 찾기 위한 진짜 설계가 시작된다. 양영순 작가의 <란의 공식>은 이렇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로 마지막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치밀한 두뇌게임이다. <더 게임> <쏘우> 등 기존 영화와도 맞닿아 있지만, 이 만화의 묘미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명문고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이라는 점이다. 골드클래스의 숨겨진 권력구도가 드러나고, 모두를 파멸시키는 설계자의 실체가 밝혀진다. 이 정도면 청소년과 성인 모두를 겨냥한 숨막히는 추리게임이 되지 않을까. 연재가 끝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댓글에서는 속편과 영화에 대한 독자의 요구가 이어진다. 가상 캐스팅을 생각해본다면 소심한 성격이지만 불같은 결단력을 지닌 인물, 사람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는 주인공 란에는 류덕환, 온화한 미소 뒤에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담임은 송영창이 어울릴 것 같다. 좀비라서 행복해요? <좀비의 시간> 이경석 내가 좀비가 된다면? 그냥 죽어버릴까, 그러기엔 억울하니까 다른 사람도 좀비로 만들까. 죽음을 마냥 기다려야 하는 이 시간은 아마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경석의 <좀비의 시간>은 이 고통의 시간을 행복한 시간으로 바꾼다. “웃긴 얘기지만, 좀비에 물리고 나서 더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라는 주인공 준수의 대사에 이 만화의 핵심이 있다. 준수는 느닷없이 좀비에게 물리고, 소심한 백수에서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멋진 남자로 변한다. 좀비로 변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 만화는 좀비물의 단순한 규칙에서 진화했다. 인간은 좀비에게 무조건 쫓기고 좀비의 머리를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이 기본이라면 이경석의 만화에는 좀비로 변해가는 사람들의 슬픔과 희망이 동시에 녹아 있다. 말하자면 좀비애와 인간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광화문에 운집한 좀비들 사이에서 좀비가 된 아들과 그 아들을 죽여야 했던 형사 아버지의 운명적인 만남은 명장면이다. 장르의 공식을 무너뜨린 <좀비의 시간>은 B급 장르에서 S급 감동을 선사한 작품이다. 물론 이경석 특유의 유머도 빠질 수 없다. 굳이 비슷한 작품을 꼽으면 2004년 영국에서 제작된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닮았다. 에이즈 보균자를 사랑한 남자 <푸른 알약> 프레데릭 페테르스 20분의 1밀리미터의 얇은 고무, 즉 콘돔 없이는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연인이 있다. <푸른 알약>은 스위스 제네바 출신의 작가 프레데렉 페테르스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HIV 양성반응, 즉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인 카미를 사랑한 남자 프레데릭의 특별하지만 평범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그런 사랑은 아니지만 대신 에이즈 환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아들의 생활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아낸다. 그들은 ‘푸른 알약’만 있으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불안은 존재한다. 작은 상처에도 두려움을 느끼고, 콘돔이 살짝 찢어지기라도 한다면 바이러스 감염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부리나케 찾아간 의사는 바이러스 감염이 “지금 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을 때 하얀 코뿔소를 만나는 확률”이라고 말하지만, 그 두려움은 쉽게 떨쳐낼 수 없다. 그리고 남자는 그 불안이 자신의 사랑임을 깨닫는다. <너는 내 운명>처럼 에이즈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소재 자체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고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려고 애써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그러나 조금 불안한 삶을 엿보는 것뿐이다. 동심은 아름다워 <마음이 만든 것> 정필원 만화의 인물들이 실사로 눈앞에서 움직인다면 어떤 느낌일지 너무나도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음 미디어세상’에서 그리 길지 않게 연재된 정필원 작가의 <마음이 만든 것>은 많은 이들에게 어린 유년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깨워주고 그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선머슴 같은 동주와 그저 꼬마로 느껴지는 호진은 둘도 없는 친구다. 고무줄놀이보다 축구가 더 좋은 동주는 엄마의 죽음도 아직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천둥벌거숭이 꼬맹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물고기를 놓아주기 위해, 그리고 선생님에게 얼굴을 붉히는 아빠에 대한 반항심으로 바다를 찾아 떠난다. 한여름 호진과 함께한 여행에서 기면증에 시달리던 아저씨도 만나고 성추행범으로 추정되는 변태도 만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도착한 곳은 엄마의 유해를 뿌렸던 바닷가 마을. 그곳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게 된 동주는 물고기와 함께 비로소 엄마를 떠나보낸다. 흘러가버린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따뜻하고 섬세한 인물의 감성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치밀한 배경과 아름다운 색채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까지 모든 박자가 시계 태엽처럼 잘 맞물려 찬사를 받았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생의 철학까지 던져준, 어른을 위한 성장물에 더 가깝다. 실사영화보다는 아름다운 색채와 풋풋한 감성, 순수한 마음을 오롯이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애니메이션이 기대되는 작품이다. 예쁜 로봇-왕따 짝궁 <3단합체김창남> 하일권 로봇을 사랑한 소년이 있다. 인간처럼 생긴(엄청 예쁜) 로봇 시보레는 고등학교에서 생활하며 시운전을 하게 되고 우연히 왕따인 호구와 짝이 된다. 친구가 없었던 호구는 자연스레 시보레에게 의지하고, 둘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그렇게 교감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시보레가 감정이 없는 로봇이긴 하지만. 로봇과 인간의 교감,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다.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이야기도 이젠 질릴 만하다. 하지만 전편인 <삼봉이발소>에서 외모콤플렉스를 다르면서 예뻐지고 싶은 평범한 여고생에게 생의 용기를 주었던 하일권 작가의 역량은 <3단합체김창남>에서도 뛰어나게 발휘된다. 청소년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 따돌림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네티즌의 공감을 얻었다. <3단합체김창남>은 영화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원작의 그림이 출판만화나 기존의 웹툰과 달리 애니메이션 그림과 비슷해서 그대로 움직임만 주면 애니메이션이 완성되지 않을까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영화도 물론 가능하지만 이때는 무표정한 로봇 시보레를 연기할 여배우가 영화의 성패를 결정지을 것이다. <3단합체김창남>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되었던 웹툰이다. 찌질해서 더 뭉클해 <최강전설 쿠로사와> 후쿠모토 노부유키 40대 육체노동자 쿠로사와의 일상은 일, 퇴근길 혼자 한잔, 집, TV 시청, 잠의 반복이다. 그 나이 먹기까지 연애도 한번 못해본 건 물론, 친구도 없다. 혼자 지내는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나날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외로움을 숨길 수는 없는 일. 생일 저녁 홀로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던 그는 주변의 즐거운 일행을 바라보다 “인망을 얻고 싶다, 크흑” 하며 자신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이후 각고의 노력 끝에 동료들의 신망을 얻는 데 성공, 다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된다. 작은 성공에 흥분한 쿠로사와는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중학생 불량배들을 야단치는데, 이게 사단이 되어 매복하고 있던 중학생들에게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는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중학생들과의 일전을 선포하고, 치밀한 계획과 집요한 추적 끝에 그들을 일망타진한다. 이후 동네 불량배들의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쿠로사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 맞서 싸우며 전설이 되어간다. 잠깐의 비굴함으로 편안한 인생을 영위하는 게 인생철학이라면 철학이었던 그는 이 싸움으로 자신의 존엄함을 발견해나간다. 조금만 띄워주면 우쭐하고, 위기가 닥치면 우선 움츠리고 보는 덩치만 큰 이 남자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 불의와 맞서 싸우고, 궁극의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 비슷하지만 주인공의 찌질함 지수가 높아 훨씬 더 뭉클하다. 가상 캐스팅은 젊은 시절의 주현, 또는 손현주? 호그와트와 비교하지 마시라 <강특고 아이들> 김민희 왜 한국 청소년영화엔 귀신만 나오나. 교육현실이 이 모양이라 원한에 찬 귀신만 나오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식상하니 시원한 초능력자 학원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강특고는 강원도 오지에 있는, 초능력자를 키우는 학교다. 학생들은 변신능력· 천리이(耳)·괴력 등을 지닌 육체파 능력자와 텔레파시·염력 등을 지닌 정신파 능력자로 나뉜다. 혹여 <해리 포터> 같은 고상한 기숙학교를 상상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이 학교 엄청 후졌다. 기차도 전기도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TV도 인터넷도 없고, 재래식 화장실에, 쓰러져가는 건물에… 심지어 교장도 시간만 나면 미소녀로 변신하는 초능력자이긴 하나, 그뿐. 특별히 초능력을 가르친다기보다는 초능력자를 격리해 고등교육을 받게 하는 기관이다. 이야기는 동물로 변신하는 능력을 가진 세나와 그의 오빠 태권소년 지문이 초대장을 받아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특별한 줄거리 없이 회마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진행되는 개그물인데, 독특한 캐릭터와 황당한 배경설정, 장면마다 빛나는 개그센스로 큰 웃음을 선사한다. 이글대는 야망도, 눈에 불을 켠 경쟁도, 뼈에 사무치는 원한도 없는 유쾌한 학원물! 가상 캐스팅은 세나 역에 이민영, 박예진. 캐리보다 화끈한 노처녀들 <플리즈 플리즈 미> 기선 칙릿 계열 만화로 리얼리티나 재미 면에서 단연 으뜸. 연애하고 싶어 안달난 일러스트레이터 구애리,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커리어우먼 강나경, 남자를 낚는 천재적 기술보유자 점숙은 서른살 동갑내기 친구다. 얼핏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지만 하는 짓은 바보 수준. 구애리는 한껏 차려입고 간 클럽에서 모르는 남자와 벨트버클이 얽혀 무대를 뒹굴고, 강나경은 저돌적으로 대시하는 남자후배에게 딱지를 놓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설사를 하고(그래서 결국 후배랑 사귄다!), 점숙은 알고 보니 심각한 애정결핍에 성형중독이다. 여느 칙릿과 같이 30대 여성의 일과 사랑, 자아 찾기를 다루고 있는데, 어딘가 모자란 주인공들의 이야기라 더 정이 간다. 러브 라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개그물이지만 돈, 외모, 계급 같은 문제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매력. 노처녀 시장은 점점 커지는데 <싱글즈> 이후 이렇다 할 ‘노처녀물’이 부족한 한국영화시장에서 노려볼 만한 수작. 가상 캐스팅은 구애리 역에 이하나 혹은 공효진. 천명 중 한명, 당신 아닙니까 <이키가미> 마세 모토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24시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배경은 일본, 지금과 비슷한 모습이나 ‘이키가미’라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국가번영유지법을 도입한 뒤 국가생산이 증대하고 출산율은 높아지고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까지 얻는다. 이 법에 따라 모든 국민은 초등학교 입학 때 ‘백신’을 맞는데 1천명 중 1명의 확률로 나노 캡슐이 들어가 있다. 이 캡슐이 들어 있는 주사를 맞은 사람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누가 백신이 들어간 주사를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게 해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만화의 주인공인 이키가미 배달원 후지모토는 사망 바로 하루 전에 해당자에게 사망예고증을 전달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임무를 맡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친구에게 마구 폭력을 가하던 남자, 국가번영유지법에 광적인 열광을 보내던 청년, 모두에게 똑같이 24시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이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까지 했지만, 굳이 한국영화로 보고 싶은 이유는 책 속 세상이 지금의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법에 따라 국가의 번영을 위해, 권력의 유지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관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일본식 전체주의가 거슬린다는 독자가 있기는 하나 조지 오웰도 <1984년>에서 국민을 통제하는 암울한 미래사회를 예견하지 않았나.

[포커스] 레드원카메라는 필름을 삼킬까

충무로에 괴물이 나타났다. 작고 날렵한 몸집의 이 괴물은 같은 과인 HD카메라를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센 필름카메라까지 단숨에 삼킬 기세다. 영화인들도 이 괴물이 궁금해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먼저 괴물을 만져보려고 나서지 않는다. ‘처음’이라 두렵다는 게 그 이유다. 그리고 누가 먼저 시도할 건지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도대체 이것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충무로가 이처럼 술렁일까. 이 괴물은 바로 ‘레드원(Red One)카메라’다. <국가대표>가 처음으로 촬영 시작 레드원은 HD카메라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HD카메라와는 다르다. 상업영화로선 국내 처음으로 레드원카메라 촬영을 시도하고 있는 <국가대표>(감독 김용화)의 박현철 촬영감독이 지난해 6월 발표한 영진위 보고서(<디지털카메라의 진화, 레드원 4K카메라>)에 따르면, 레드원과 기존 HD카메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필름과 대등한 화질’이다. 그는 ‘기존의 HD카메라가 2K크기로 촬영한다면, 레드원카메라는 4K방식’이라고 말했다(K는 영상, 색 정보를 저장하는 단위다. 단위가 클수록 화질이 좋다). 필름 역시 4K방식인 점을 감안하면, 레드원카메라는 디지털이면서도 필름과 유사한 화질을 구현한다는 이야기다. 또한 필름카메라의 깊은 심도를 따라갈 수 없었던 기존 HD카메라의 약점을 보완한 것도 레드원의 강점이다. 기존의 HD카메라에는 필름카메라에 사용되는 렌즈를 장착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레드원은 렌즈 호환이 가능하도록 제작됐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드원은 자체 저장장치(기존의 HD카메라가 영상을 테이프에 사용했다면 레드원은 파일 형태로 저장한다)가 가벼워 현장에서의 기동성이 뛰어나다. 이것은 필름카메라는 물론이고, 바이퍼카메라(디지털카메라의 한 종류로 박찬욱 감독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 때 사용한 카메라다)와 차별되는 점이다. 지난해 한 기업광고를 통해 국내 최초로 레드원을 사용한 주성림 촬영감독(<뚝방전설> 촬영, <박쥐> B카메라)은 “바이퍼는 외장하드와 연결하는 선이 너무 두꺼운데다가 저장장치가 무거워 현장에서 기동성이 떨어졌는데, 레드원은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기동성은 물론이고 핸드헬드(카메라를 들고 찍는) 촬영이나 스테디캠(카메라를 몸에 부착하여 찍는)이 용이하다”고 말했다. “현상할 때까지 그림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었던 필름카메라와 달리, 찍은 당시의 그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변형 가능성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도 레드원의 장점이다. 정리하자면, 레드원카메라는 현재 필름카메라를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HD카메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무로가 레드원을 주목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레드원카메라가 현장에 도입되면 제작 시스템과 제작비 운영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가대표>의 정주균 프로듀서는 “일단 필름 구입비를 비롯한 카메라 대여, 현상, 텔레시네(필름으로 촬영한 영상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과정), 사운드 작업비용 등에서 2억~3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필름에 비해 노출범위가 넓은 점도 제작비 절감에 한몫한다. 광량이 부족한 초저녁까지 많은 분량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진행속도가 빨라지고 자연히 전체 회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후반작업업체 C-47스튜디오의 이진 편집기사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현상에서 텔레시네로 이어지는 필름과 관련된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후반작업에 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을 꼽는다. “레드원의 후반작업은 현재 어려운 영화산업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앞으로는 이처럼 후반작업에서도 비용을 절감한 형태가 상용화될 것이다.” 데이터 부족과 필름업체 저항이 변수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레드원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촬영감독들은 데이터가 부족한 점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HD카메라의 데이터란 일종의 촬영매뉴얼을 뜻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노출수치가 얼마일 때 색감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통용되는 레드원카메라의 데이터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의 빛에 맞춰진 데이터다. 당연히 한국의 상황에 맞는 데이터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다른 이유로 레드원카메라의 정착을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필름업체들이다. 국내 거대 필름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초부터 상황을 계속 주시 중”이라며 “올해부터 필름카메라를 쓰는 현장이 예년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엄살처럼 들리겠지만 (레드원카메라로의) 시스템 변화는 필름 판매업체부터 관련 장비업체, 필름 후반업체까지 필름산업의 위기가 걸려 있다”고 걱정했다. 필름 판매업체인 태창 엠피필름의 주영대 이사는 “레드원이 아무리 필름과 화질이 비슷하다고 해도 필름만의 질감이 있다. 이 미묘한 차이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장의 프로듀서, 촬영감독을 대상으로 한 (필름 관련) 세미나를 꾸준히 열고, 테스트 촬영시 촬영기자재를 지원해주는 등” 필름산업도 레드원카메라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가운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국가대표>가 국내에선 처음으로 레드원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한데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체>가 레드원으로 촬영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카메라에 대한 영화인들의 호기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레드원카메라의 한국 수입사인 디지로그시스템의 임희완 대표는 “지난해 봄에는 국내에 3대뿐이었는데, 현재는 주문량이 계속 늘고 있다. 최근 환율 때문에 주춤거리기도 했지만 많은 영화인들이 꾸준히 주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 작은 괴물이 한국영화산업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2억∼3억원 절약… 결과물에도 만족” 레드원 4K카메라로 촬영 중인 <국가대표> 정주균 프로듀서 -레드원카메라가 필름과 비교해서 제작비 운영 측면에서 어떻게 다른가. =아무래도 필름과 관련된 비용이 절약된다. 현재 레드원카메라 3대로 촬영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필름 구입, 현상, 텔레시네, 사운드 작업비용 등 2억~3억원 정도를 절약하고 있다. 물론 디지털로 작업한다고 해서 후반작업이 다 공짜는 아니다. 디지털에 따른 D.I.(디지털 색보정), 키네코(디지털로 찍은 영상을 극장에 상영하기 위해 필름프린트로 변환하는 과정) 작업은 따로 해줘야 하니까. 하지만 필름으로 찍을 때보다 확실히 비용은 절감된다. 특히 <국가대표>는 컷 수가 많아 3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 그것이 레드원카메라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충무로에서 최초로 사용하는 만큼 부담감이 크겠다. 지금 다들 누가 총대를 멜 것인가 눈치보고 있는데. =처음 사용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다. 주위에서 많이 기대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박현철 촬영감독이 촬영 전에 많은 테스트들을 거치면서 데이터에 대한 노하우와 감을 잡아갈 수 있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그리고 결과물들을 보니까 만족한다. 이 정도 퀄리티면 충분한 것 같다. -단순히 비용문제 외에 현장진행에 있어서도 다를 텐데.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진행비용도 절약된다. 필요에 따라 2대 이상을 쓸 수 있으니까. 그것 때문에 촬영시간도 짧아지고 회차도 줄일 수 있다. -프로듀서로서 매력적이겠다. =종전의 HD디지털은 필름과 퀄리티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상업영화에서는 높은 수준의 퀄리티를 보장해야 하는 측면에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카메라는 필름과 거의 유사할 정도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