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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다섯편의 영화가 눈에 쏙~

무릇 예로부터 한국사회의 설 연휴는 온갖 영화들이 자웅을 겨루는 시기로 온 세상에 정평이 나 있으니, 중원에 우뚝 서고자 하는 배우라면 이 연휴판에서 한 번 뜨는 게 평생 소원이라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내려왔다. 올해에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십수편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뭇 사람의 연인자리를 놓고 일합을 벌이는 5명의 배우, 5편의 영화가 눈에 쏙 들어오더라. <이중간첩>의 림병호, 한석규 만 3년만에 관객들 앞에 나타난 한석규는 꽃을 고르지도, 커피를 권하지도 않았다. “정윤희 한번 보러 내려왔수다.” 철저한 교육을 받은 뒤 목숨을 걸고 내려온 남한에서 귀순용사로, 안기부의 요원으로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살아가는 림병호다. 몇년 만에 고정간첩 윤수미와 접선에 성공하지만, 결국 그는 북쪽으로부턴 배신자로, 남쪽으로부턴 간첩사건의 연루자로 운명지워진다. 남과 북의 권력으로부터 용도 폐기처분 당하는 림병호는 오로지 상황에 떠밀려 브라질로, 죽음으로 향할 뿐이다. 하지만 속내를 드러낼 듯 말 듯 건조한 그의 표정은, 그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게 했던 우리의 역사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영웅>의 고혹한 영웅 비설, 장만위 비설, 장만위가 걷기 시작하면 세상이 모두 숨을 죽이고 그에게 절을 하는 듯 하다. 장이모 감독의 ‘대담스런’ 중화주의에도, <영웅>을 외면할 수 없는 건 장만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인 량차오웨이(파검역)는 ‘천하’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단어 한마디에서 ‘깨달음’을 얻고 진시황의 목전에서 칼을 거두고 말지만, 비설은 끝까지 무명(리롄제)의 진시황 암살계획을 돕겠다고 나선다. 적색의 옷을 휘날리며 비오듯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낼 때, 순백색의 옷을 입고 연인 가슴에 꽂힌 칼을 자신의 가슴에 찌를 때, 그는 도도한 무사이자 아름다운 연인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리어나도. 이름부터 그 많은 톰이나 존 따위들과 나란히 놓이기에는 너무 고귀해 보이는 이 태생적 왕자님은 오랫동안 일종의 거지왕자이기를 자처해왔다. 마약에 쩔거나 대책없는 반항아이거나. 수많은 영화에서 “어때 그래도 멋있지”를 외치는 듯한 그의 제멋대로 스타일은 2000년 <비치>에서 결국 왕자적 면모를 완전히 잃고야 말았다. 그리고 2년 뒤, 리어나도는 복구불가능해보이던 왕자적 기품을 빛내며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하는 프랭크 아비그네일 주니어는 희대의 사기꾼. 10대의 나이에 비행기 조종사, 의사, 변호사를 자유자재로 연기하며 수백만 달러의 돈을 주물렀던 인물이다. 디캐프리오는 천재적 두뇌에 숨길 수 없는 10대의 천진함과 수려한 외모를 곁들여 영화사상 가장 매혹적인 사기꾼을 연기한다. 몸에 착 감기는 파일럿 제복을 입고 미소짓는 디카프리오를 보면서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재간을 가졌다면 아마도 당신은 철심장! <클래식>의 조승우 친구의 약혼자를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약혼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필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조심스레 옮기는 남자, 준하는 60년대 고등학생이다. 애끓는 사랑을 품고 있지만 그는 호기심 많고 수줍음 많으며 장난기 가득한 10대인 것이다. 준하가 그렇듯 조승우는 완벽한 꽃미남이 아니다. 그러나 포크댄스 교실에서 좋아하는 여학생 주희 옆에 앉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나 약혼자와 키스(사실은 뽀뽀)했다는 친구의 고백을 들으며 아이처럼 실망하는 그의 표정은 카리스마 넘치는 꽃미남이 보여줄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작은 눈을 반달로 만들면서 삐뚤빼뚤한 앞니를 드러내며 씩 웃을때, 준하는 누구라도 여고시절의 한켠에 새겨두고 싶은 첫사랑의 아이콘으로 자리잡는다. <스몰 타임 크룩스>의 한심한 은행털이 레이, 우디 앨런 뉴욕의 투덜이 우디 앨런이 정말 볼품없는 은행털이 레이로 변신했다. 은행 옆집에 아내 프렌치를 시켜 쿠키가게를 차리고 그 지하에서 은행으로 통하는 땅굴을 판다는 것이 그만, 지도를 거꾸로 들고 작업하는 바람에 엉뚱한 가게로 침투한다. 경찰, 굴 입구에서 대기중. “은행 털려던 게 잘 안 됐어요…이딴 짓 안하고 과자나 팔게요.” 그러나 과자가게는 엄청 잘 돼 프렌치와 레이 부부는 떼부자가 되는데, 이번엔 돈으로 교양을 산다. 알고보니 앨런, 뉴욕 지식인 사회에 침입한 스파이인데, 교양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인 속물인지 까발기기 시작한다.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한겨레> 영화팀

독립,단편영화 <새벽에> <휴식시간>

이번주에 ‘독립영화관’(KBS2TV 1월31일(금) 밤 12시50분)에서 방영되는 두편의 외국 작품은 단편영화의 미덕을 발산하는 작품들이다. 도발적이거나 실험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여유만만하게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영국 작품 <새벽에>(At Dawning/ 감독 마틴 존스/ 35mm/ 2002년)는 매혹적이다. 아내가 바람피운 것을 비관해 자살하려는 남자와 그 남자를 구해주려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유부녀인 여자 역시 바람을 피우고 막 나가려는 중이다. 극한 상황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맛깔스러우며, 장면장면 반전의 재미가 있다. 여기에 재미를 넘어서 상대방의 상황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는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또한 한정된 상황에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휴식시간>(Mi-Temps/ 감독 Mathias GOGALP/ 35mm/ 2002년)은 대형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하는 여학생을 등장시킨다. 그녀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자신의 고민에만 빠져 있다. 당연히 함께 일하는 나이 많은 동료들에게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늙다리라고 불렀던 나이 많은 동료의 도움을 받는다. 이 작품은 세대간의 갈등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풀어낸다. 시종일관 흘렀던 사적인 감정의 불편함은 노동자들의 긴급파업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당당한 노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수확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그것을 풀어내는 독창적인 시각의 중요성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조영각/ 계간 <독립영화> 편집위원 phille@dreamwiz.com

증오는 영혼을 잠식한다,<케이프 피어>

빌리 와일더, 카렐 라이츠, J. 리 톰슨, 이들은 벌써 끄트머리에 면해 있는 2002년 올해에 세상을 하직한 영화감독들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요즘의 (젊은) 영화 관객 가운데 ‘리 톰슨은 도대체 누구지’ 하고 의문을 품을 이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빌리 와일더야 <선셋 대로>(1950)나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1960) 같은 미국영화의 걸작들을 만들어낸 명감독이고, 카렐 라이츠는 어떤 영화사 책이든 뒤져보면 영국 프리시네마 관련 장(章)에 꼭 등장하곤 하는 인물인데, 하면서 말이다. 사실 리 톰슨(1914∼)은 앨프리드 히치콕이나 존 포드처럼 거의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이름의 영화감독은 아니다. 아니면 그는 <나바론>(1961)이나 뒤에 찰스 브론슨이 주연을 맡은 액션물들을 만든 영화감독 정도로 치부되면서 어떤 오락영화들에서는 꽤 쓸 만한 연출솜씨를 발휘했던 인물 정도로 평가되곤 한다. 그런 리 톰슨을 한 사람의 ‘작가’로 본 비평서가 나온 것은 그의 감독 데뷔 50년이 되는 지난 2000년의 일이었다(스티브 칩놀, , 맨체스터대학출판부 간행). 리 톰슨을 정말 ‘작가’로 평가할 수 있는가는 찬반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복잡한 문제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그가 일찍이 영국 영화계의 총아로 촉망받으며 영화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키친 싱크 리얼리즘의 전주곡에 해당하는 영화들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에 손대면서 여러 편의 수작들을 만들어낸 리 톰슨은, 1959년쯤에는 이미 캐롤 리드와 데이비드 린의 대열에 함께 들 출중한 젊은 영화감독이란 평가를 들을 정도였다. 이 명민한 영국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적지 않은 영국인 감독들의 뒤를 따라 할리우드에 입성한 뒤로 점차 하락의 길을 걷는다. 리 톰슨의 이 미국행은 그의 스케일 큰 전쟁영화 <나바론>에서 주연을 맡았던 그레고리 펙의 ‘초대’로 이뤄졌다. 펙은 <나바론>을 찍을 때 리 톰슨이 보여줬던 연출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자신의 제작사에 만들 다음 (미국)영화에 메가폰을 잡으면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어려서부터 할리우드행을 꿈꿨던 리 톰슨은 펙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케이프 피어>였다. 리 톰슨은 자신의 이 첫 미국영화를, 그동안 영국에서 쌓은 연출력을 십분 발휘해 자신의 최고작으로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케이프 피어>는 이후 하강곡선을 그리게 될 리 톰슨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분기점에 위치하는 영화다. 존 맥도널드의 소설 <집행자>(1957)를 영화화한 <케이프 피어>는 나중에 마틴 스코시즈가 리메이크하게 될 동명의 영화와 대략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간다. 영화는 샘 보든(그레고리 펙)이란 변호사의 증언으로 감옥에서 무려 8년을 썩었다고 믿는 맥스 케이디(로버트 미첨)가 출옥 뒤 샘과 그 가족에게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도 현재의 관객이 리 톰슨의 <케이프 피어>를 보게 된다면 그건 스코시즈의 <케이프 피어>(1991)를 보고 난 뒤가 될 가능성이 꽤 높을 터인데, 그럴 경우 리 톰슨의 영화는 어쩌면 스코시즈 영화의 ‘차분한 요약판’처럼 보일 수도 있다. 리 톰슨의 영화가 일종의 요약판 같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우선 이것이 스코시즈 영화보다 20여분 정도 짧은데다가 스코시즈 영화보다 약간 더 많은 시간을(후반부 약 30분 정도) 케이프 피어 강에서 벌어지는 맥스의 끔찍한 위협과 샘의 방어에 할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 톰슨의 영화는 예전 영화답게 스코시즈 영화만큼이나 강도높은 폭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하지만 앞에서 받았던 상대적으로 차분하다는 인상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케이프 피어 강에서의 대결 시퀀스에 이르면 부적당한 것으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 맥스가 샘의 부인과 딸을 차례로 위협하고 샘이 그와 맞서는 이 시퀀스에서 리 톰슨은 히치콕에게서 배운 비교적 정공법적인 방식으로 서스펜스와 스릴을 누적해내고 증폭시켜간다. 리 톰슨의 <케이프 피어>가 스코시즈의 <케이프 피어>와 결정적으로 갈리는 지점은 흔히 지적하듯 캐릭터의 복잡성에 있다. 예컨대 스코시즈가 그려낸 샘이 바람도 피우고 직업적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 등 허점이 노출된 인물이라면 전작에서의 샘은 가정에 충실한 인물이고, 스코시즈 영화에서의 샘의 딸이 아버지의 유약함이 싫고 그래서 악에 대해 매혹되기도 하는 인물인데 반해 리 톰슨의 영화에서 그녀는 화목하고 안락한 중산가정의 어여쁜 딸일 뿐이다. 그렇다고 리 톰슨의 영화가 무턱대로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그렸다고 보기는 힘들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우리는 처음에는 유순하기만 했던 주인공 샘이 맥스의 과도한 폭력을 이겨내면서 맥스만큼이나 증오심 가득한 인간으로 변화하고 만 것을 보게 된다. 한 인간의 야만적인 광포함은 다른 사람에게로 고스란히 전염이 된다는 것이다. Cape Fear, 1962년 감독 J. 리 톰슨 출연 그레고리 펙, 로버트 미첨 자막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타이어 화면포맷: 1.85: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오디오 돌비 디저탈 2.0 출시사 콜럼비아 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

[제7회 여성관객영화상] 여성의 욕망에 꽃을 던져라!

최고의 한국영화에 <밀애>, 최악의 한국영화에 <나쁜 남자> 선정연말에 열리는 각종 영화상 시상식 가운데 가장 이채로운 영화상이 여성관객영화상이 아닐까 싶다. 지난 12월16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제7회 여성관객영화상은 예년에 비해서도 특히나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줬다. <취화선>과 <생활의 발견> <오아시스> 등 남성 감독들이 만든 ‘작가영화’들이 ‘최악의 영화’ 후보에서 수위를 차지했고(<나쁜 남자>에 큰 차이로 지고 말았지만), 이 영화들에 비해 일반 평단에서 상대적으로 그리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밀애>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최고의 영화’ 후보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 <밀애>가 1등으로 선정됐다. 한국사회에서 ‘여성 관객’은 ‘다른’ 존재일까. 여자와 남자를 통틀은 ‘일반 관객’과 아주 다른 선택을 한 이 관객집단의 선택에는, 다른 어떤 영화상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의미와 가치들이 빛나고 있다.‘여성주의’라는 평가의 프리즘을 통과하고 난 뒤, 지난 1년의 한국영화들은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올해 여성관객영화상에서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힌 변영주 감독의 <밀애>의 평가표를 보자. <밀애>는 ‘여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여성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2개의 항목에서 1위, ‘여성의 욕구 혹은 욕망을 솔직히 표현한다’, ‘여성들간의 유대감, 자매애를 표현한다’, ‘사회체제나 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등 3개 항목에서 2위 자리에 올라 모든 항목에서 고르게 지지를 받았다. <낮은 목소리> 변영주 감독의 장편극영화 데뷔작으로 김윤진이 주연한 이 영화는, 남편의 불륜으로 정신적인 상처를 받은 여자가 스스로의 삶을 자신의 욕망대로 영위하게 되는 지점을 포착한 작품이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다른 여성 조연캐릭터와의 유대도 표현돼 있다.최고의 영화 2위는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 돌아갔다. 엄정화 감우성 주연으로, 결혼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미혼 애인과 동거를 하는 여성의 행보를 그린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여성의 욕구 혹은 욕망을 솔직히 표현한다’, ‘사회체제나 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 등의 항목에서는 <밀애>를 앞질렀다. 3위는 <굳세어라 금순아>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가 공동으로 차지했고, <버스, 정류장>이 5위에 선정됐다.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는 순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여성들간의 유대감, 자매애를 표현한다’와 ‘여남간 성역할 구분을 뛰어넘는다’ 항목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최고의 한국영화가 근소한 차이로 경쟁을 벌인데 반해 최악의 한국영화는 <나쁜 남자>가 <가문의 영광> <취화선> 등을 따돌리며 1위로 결정됐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는 여성주의적 시각과 관련된 10개 세부항목 중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의 부재’ 항목을 제외한 전 부문에서 1등을 차지했다. ‘여성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못하고 여남간의 고정된 성역할 구분에 얽매여 있으며 남성 의존적인 여성이미지가 지배적이고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시하며 여성이 젊음과 외모 중심으로만 비쳐진다’는 것이, 여성 관객이 <나쁜 남자>에 내린 평가의 내용. 권은선 준비위원은 <나쁜 남자>가 “가학적이고 남근적인 상상력에 바탕을 둔 영화다. 선화가 사창가에서 첫 손님을 받는 장면은 강제적 성행위와 관음증적 시선을 동시에 보여주며 여성 관객의 입장을 곤란하게 한다. 특히 마지막에 두 사람의 관계를 운명적인 것으로 그린 것도 문제다”라고 말했다.최악의 한국영화 2위는 여자의 처녀성과 가부장적 가치인 ‘가문’이 이야기의 주된 동기인 <가문의 영광>에 돌아갔다. 3위는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기도 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뽑혀, 여성 관객의 눈매가 일반 관객의 눈과 어떻게 다른지 여실히 보여줬다. 사극인 점을 감안하더라고 <취화선>에서 여성이 지나치게 ‘위대한 남성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몸’으로 가치절하되어 있음이 문제시되었다. <취화선>의 뒤를 이은 영화는 <중독> <생활의 발견> <오아시스>. <중독>은 남성주인공의 거짓말이 극을 이끌어가는 서사가, <생활의 발견>은 여성이 성적인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점이, <오아시스>는 장애를 가진, 취약한 몸의 여성을 강간하는 남성의 행위와 강간이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 흐름이 비난받았다. 그러나 <오아시스>에서 홍종두가 한공주를 위해 나뭇가지를 쳐내는 부분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오아시스>의 문소리가 베니스국제영화제를 필두로 청룡영화상, MBC영화상 등 국내 영화상 등에서 여우주연상 혹은 신인상을 휩쓸었던 올해, 여성 관객은 올 한해 최고의 여자배우로 주저없이 <밀애>의 김윤진을 뽑았다. <밀애>의 미흔 캐릭터를 통해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태도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밀애>의 수상사유를 설명해줄 만한 장면으로 미흔이 창가에 나체로 서 있는 뒷모습 실루엣 장면을 택해 보여주었다. 지난해, ‘스무살, 섹스말고도 궁금한 건 많다’라는 카피로 홍보되었던 ‘섹스리스’영화 <고양이를 부탁해>가 같은 상을 받았던 것과는 큰 차이. 김윤진은 “이렇게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남성캐릭터들 위주의 영화가 주를 이루고 있는 요즘에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로 여성관객상을 받게 돼 매우 기쁘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최고의 여자배우 2위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엄정화가 차지했고, <피도 눈물도 없이>의 이혜영이 그뒤를 이었다. 이날 시상식 객석에는 몇몇 남성 사진기자, 이현승 감독을 제외하고 유일한 젊은 남성이 있었는데 바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배우 감우성이었다. 감우성은 여성 관객이 뽑은 2002년 최고의 남자배우로 선정되어 단상에 올랐다.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어 감사하다. 첫 영화로 좋은 영화를 만나서 이런 행운을 얻은 것 같다. 앞에 특별상을 받은 심재명 프로듀서가 여기서 최고의 영화상을 받은 영화들은 흥행이 안 됐다고 했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흥행에도 성공을 했다. 아무래도 여성 관객 여러분이 찾아주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최고의 남자배우상 시상에 앞서 특별상 시상이 있었는데, 명필름 대표인 심재명 프로듀서가 ‘이미연 등 여러 여성프로듀서를 배출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감우성이 조크를 던진 심 대표의 말은 바로 이것. “시상 결과를 보니 최악은 다 돈 번 영화이고 최고는 다 돈 못 번 영화들이더라. 내년에는 최고의 여성영화로 흥행도 성공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최고의 작품상 트로피는 <밀애>의 변영주 감독이 받았다. 변영주 감독은 “여성 관객의 지지는 내게 빚처럼 느껴진다. 잘할 때까지 해보라는…. 적을 이롭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 바운더리를 넓혀가고 싶다. 여성 관객을 더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지 남성 관객을 김기덕 감독에게서 뺏어오는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고민이다”라고 역시 재치있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최악의 작품상을 받은 <나쁜 남자> 팀은 이날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제작사가 행사를 축하하는 꽃바구니를 보냈다.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로 여성관객상을 받게 돼 매우 기쁘다." - 김윤진"첫 영화로 좋은 영화를 만나서 이런 행운을 얻은 것 같다." - 감우성"여성 관객의 지지는 내게 빚처럼 느껴진다." - 변영주"내년에는 최고의 여성영화로 흥행도 성공시켰으면." - 심재명한편, 설문에 참여한 여성 관객이 2002년 한해 동안 관람한 영화 편수는 평균 11.8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참가자 중 <씨네21> 독자들의 관람편수는 16.1편으로 월등히 높았다. 또한 설문에 참가한 여성 관객들은 ‘영화 속에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등 사회의식 항목에 비해 ‘우리 사회는 남성중심사회이다’라는 인식과 ‘여성의 자기실현을 위한 사회활동’, ‘여성의 출산/피임권리’ 등 여성의 현실과 성역할에 관련된 의식에서 높은 수준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또 영화가 여성주의 영화를 평가함에 있어서 ‘여성의 주체적인 문제해결 능력’, ‘여성의 욕구 혹은 욕망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드러났다.올해 여성관객영화상의 결과가 다른 영화상의 결과와 특히 다른 것은, 그만큼 올 한해 비여성주의적인 영화들이 만연했고, 또 ‘훌륭한’ 영화에도 일반 관객과 평단이 간과한 ‘부적절한’측면들이 많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영화가 여성주의 시각에 점차 가까워질 때 여성관객영화상은 일반 영화상과의 간격을 좁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 ‘의외의’ 영화상에 적지 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올해 여성관객영화상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완전 선택형이 아니라, 선정위원들이 후보를 선정한 뒤 설문자들이 이 가운데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설문은 지난 11월13일부터 27일까지 15일 동안 행해졌고, <씨네21> 독자엽서를 통해 설문에 응한 109명, 여성문화예술인 30명, (주)다음커뮤니케이션 사이트 방문객 1123명, 여성문화기획 홈페이지 방문자 113명 등 모두 1375명이 응답했다. 통계상으로 4가지 유형의 집단은 동일한 가중치를 부여받아 25%씩의 비중으로 처리되었다. 연령별로는 20살 미만이 14.2%, 20∼24살인 20대 초반이 48.4%, 25∼29살 22.1%, 30살 이상이 15.1%를 차지했고 기혼이 11.3%, 미혼이 88.6%를 이루었다.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4]

장이모 감독이 말하길 산업적인 야심_ 영화산업이 발전하려면 주류영화와 예술영화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야 한다. 예전에 예술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영웅>은 상업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했다. <영웅>을 계기로 많은 중국인들이 극장을 찾고 있지만 중국인에게 중국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기도 하다. <영웅>은 개봉 1주일 만에 1억, 2주일 만에 2억위안를 넘어서는 성공을 거뒀다. 영화를 안 보던 사람들이 극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쉬리>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처럼 <영웅>이 중국에서 <쉬리> 같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_ 이번 영화에선 내가 각본을 직접 썼다. 이전엔 소설을 기초로 쓴 영화가 대부분이다. <영웅>의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복수를 하려는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중엔 설명이 되긴 하지만 일반적인 복수극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목을 생략함으로써 <영웅>은 복수를 포기하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진정 용기가 필요한 것은 복수를 포기하는 순간이다. <영웅>은 집착이나 욕심을 포기하는 용기에서 협의 정신을 발견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협은 이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 우정, 애국심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갖고 있지만 <영웅>에서 주목한 것은 그런 점이다. 스타일_ 음악감독 탄둔은 <영웅>을 ‘오페라’라고 불렀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중국의 전통예술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였다. 전통예술을 차용한 것은 세 가지로 나눠서 얘기할 수 있다. 첫째는 경극에서 차용한 소리이다. 검과 칼의 소리와 기합소리에서 경극의 요소를 사용했다. 두 번째는 인물과 환경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빗물, 바람, 나뭇잎, 호수 등 여러 가지 풍경이 인물과 겹쳐져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세 번째는 무협영화지만 피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칼로 베고 찌르는 동작이 있지만 피는 나오지 않는다. 폭력에 대한 절제된 묘사도 중국 전통예술의 한 측면이다. 양조위, 장만옥_ 양조위와 장만옥은 홍콩에서 가장 좋은 배우들이다. 특히 장만옥과는 오래 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 외국에서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언젠가 꼭 작품을 같이 하자고 말하곤 했다. 나의 예전 영화들은 중국의 농촌을 무대로 삼은 게 많아서 장만옥을 쓰긴 어려웠다. 이번엔 무협영화라서 장만옥을 캐스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양조위와 장만옥은 <화양연화>에서 드러나듯 연인을 연기하는 데 가장 조화로운 파트너이다. 이 두 사람만이 짧은 시간 안에 연인의 모든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웅>은 인물마다 등장하는 시간이 20∼30분에 불과한데 그런 짧은 시간에서도 연인의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양조위, 장만옥뿐이다. 중국 내의 <영웅> 비판에 대해_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웅>에 대한 찬반논란은 매우 정상적이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어떤 중국영화도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지하전영(독립영화) 감독들이 나의 영화를 안 좋게 보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들은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들로서 내가 예술영화를 버리고 상업영화를 택했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산업은 여러 가지 영화가 공존해서 발전할 수 있다. 젊은 감독들도 내 연배가 되면 내가 <영웅>을 만든 것을 이해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있어야 영화가 있다는 점이다. 관객이 없으면 영화는 죽는다. 지금 중국 영화계가 힘든 상황에 있는데, 예술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이 있어야 영화가 살아남을 수 있다. 남동철 namdong@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세계의 영화지들이 꼽은 2002년 베스트 10 [3]

스페인의 악동, 신세기 첫 걸작 <가디언>의 2002년 베스트 10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블러디 선데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막달레나 자매들>, 칸영화제 본선 진출작 <전부 혹은 전무> <스위트 식스틴>의 공통점은 모두 영국영화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고스포드 파크>까지 보태보자. 2002년 영국 영화계는 기세 등등할 이유가 충분했다. 하반기에 접어들어 필름 포 등 주요 프로덕션이 문을 닫는 바람에 영화산업이 침체에 빠지긴 했지만 말이다.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그중에서도 <모번 캘러의 여행>을 2002년 최고의 영국영화로, <아들의 방>과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최고의 외국영화로 선정했다. <가디언>의 일요일판인 <옵저버>의 평론가 필립 프렌치의 초이스에서도 <아들의 방>과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아들의 방>을 “의미심장한 이탈리아 스릴러”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할리우드에 관한 할리우드영화로, 2002년에 만난 가장 흥미로운 미국영화”로 추어올렸다. 이 밖에 두 평론가의 선택이 이룬 교집합에는 <고스포드 파크> <인썸니아> <그녀에게>가 있다. 특히 필립 프렌치는 <그녀에게>를 “21세기 최초의 그리고 최고의 걸작”이라고 단언하며, 알모도바르를 “히스패닉 시네마의 르네상스를 이끄는 주역”이라고 찬양했다. 그는 할리우드가 프랜차이즈 사업에 몰두하고, 영국 영화계가 의기소침해져 있는 사이, 금세기 최초의 걸작 자리를 스페인의 거장에게 내줬다며, 반가움과 아쉬움을 내비쳤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선택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키네마순보>의 선택 (샘 멘데스)">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1]

최초의 특수효과영화 <불가사리> 한국 영화계에 특수효과라는 개념을 가져온 작품은 1962년 광성영화사에서 만들어진 김명제 감독, 최무룡, 엄앵란 주연의 <불가사리>였다. 고려 말기에 역적들의 손에 의해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한 청년이 원한에 사무쳐 쇠를 갈아 마시는 불가사리라는 괴물로 환생, 원수를 갚는다는 내용의 괴기물인 이 영화는 1985년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같은 제목의 영화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불가사리>로 불붙은 특수효과영화는 <옹고집>(1963), <대괴수 용가리>(1967), <우주괴인 왕마귀>(1967) 등으로 이어진다. 일본 기술진의 도움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 <불가사리>의 특수효과는 지금은 물론이고 당대 기준으로도 그리 ‘특수’한 느낌의 ‘효과’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괴수 용가리>가 만들어지던 66년 당시 <영화잡지>는 “방화 사상 최초로 본격적인 특수촬영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불가사리>란 영화가 선을 보인 적이 있으나 역시 기술적인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트릭’과 ‘미니추어’ 등을 사용한 특수촬영을 방화계에서 급격히 서두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옹고집>에 관한 내용. 허장강, 도금봉, 황정순 등이 출연한 이 작품은 조선시대 소설인 <옹고집전>을 영화로 옮긴 것. 옹진에 살던 못되먹은 옹고집이라는 양반이 한 스님이 만들어낸 또 다른 옹고집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잡지>는 “여기서 허장강은 1인2역을 했는데 둘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장면들이다. 따라서 국산영화로서 특수촬영을 성공시킨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아무튼 한국영화에서 “본격적인 특수촬영”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대괴수 용가리>는 일본 기술자 10여명이 들여온 200여종의 장비를 이용해 만들어졌고, 훗날 한국 SFX영화의 모태가 된다. 그 적자(嫡子)가 심형래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가장 많은 작품을 담당한 영화음악가 황문평과 이철혁 정종화씨는 황문평씨가 400편 넘는 작품을 담당해 단연 최다 영화음악 작곡자라고 설명한다. 특히 50~60년대 거의 모든 영화의 음악을 맡다시피 했다는 것. 영상자료원의 기록상으로 따지면, 가장 많은 음악을 담당한 음악가는 이철혁 한국영화음악작곡가협회장으로 1971년 <아름다운 팔도강산>을 시작으로, <가을비 우산 속에> <장남> <감자> 등을 거쳐 2002년 <싸울아비>까지 250여편을 만들었다(본인 주장에 따르면 400편이 넘는다). 이씨가 한창 활동하던 70~80년대는 영화음악을 이씨와 정민섭씨가 가장 많이 담당했는데, 한해에 30~40편을 작곡하고 녹음해야 할 때도 있었다. 이씨는 “요즘처럼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영화를 다 만들어놓고 의뢰하는 경우가 거의 전부”였다고 설명한다. 그래도 웬만하면 소리가 안 나는 러시필름과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작업을 의뢰했지만, 어떤 제작자는 “그냥 이런저런 얘기니까 대충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특히 의무편수제도가 있을 때는 의무편수 제작 상반기 마감인 6월과 하반기 마감 12월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했다는 그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끝내도 나는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다음 손님 들어오세요’라고 말하는 등 붙박이로 일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가장 많은 영화에 음표를 그려넣은 사람은, 인도 타밀의 뮤지션 일라이야라자다. 76년에 데뷔한 이래 500편 이상의 영화에 이름을 올린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몇 안 되는 영화음악가 중 하나. 하지만 우리의 귀에 익은 작곡가는 빈 출신의 할리우드 영화음악가 막스 슈타이너. RKO의 <낙원의 새>(1932)로 처음 영화음악 음반을 만들며 데뷔한 이래 <킹콩><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306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다. 최초의 뮤지컬 <푸른 언덕> 1948년 유동일 감독의 <푸른 언덕>은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뮤지컬을 시도한 작품이다. 황문평이 음악을 맡고 현인이 주연한 이 영화는 시골 청년이 상경해 콩쿠르에서 장원을 한 뒤 가수로 대성공해 아가씨들이 줄을 서지만, 결국엔 고향에서 사귀던 아가씨와 결혼한다는 이야기. 이 영화는 촬영 도중 음악을 틀어 이를 녹음하는 이른바 ‘푸레이 백’을 이용해 동시녹음됐다. 한편 본격 뮤지컬영화는 아니지만 김상진 감독의 <노래 朝鮮>(1936)은 유사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O.K레코드 전속 가수 일행이 일본 오사카에서 공연을 가졌을 때 무대 모습을 촬영한 필름과 국내에서 촬영한 <코믹 춘향전>을 편집해서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뮤지컬 영화란 타이틀을 얻은 영화는 MGM의 <브로드웨이 멜로디>. 1929년 2월 1일 할리우드의 그로맨스 차이니스 씨어터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오리지널 스코어를 가진 최초의 뮤지컬 영화다. 최초의 영화용 음악 1939년 이창근 감독의 <妻의 모습>에서 조남두 작곡의 음악. 가장 많이 판매된 O.S.T <접속>으로 77만장이 팔렸다.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영화음악 일본의 사기스 시로가 만들어낸 <무사> 음악. 총제작비 2억원 정도가 들었다.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9]

가장 비싼 의상 김지미의 기모노 <요화 배정자>(1966)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한국인이지만, 한일합병조약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는 배정자 역할을 위해 김지미가 사들인 기모노는 무려 80만원 상당. 당시 샐러리맨들의 월급이 8천∼1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고가품이다. 여배우들의 편당 평균 개런티 20만원, 30만원 안팎을 챙겨 받던 A급 배우 김지미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요화 배정자>의 개런티 50만원(이 작품 이후로 김지미는 편당 40만원 이하에 좀처럼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다 더 큰 금액이다보니 배보다 더 큰 배꼽을 메우기란 만만치 않았을 터이다. 재력으로만 손에 넣을 수 없는 명품이라, 항간에는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이후락의 도움이 컸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한편 이해윤씨는 <사의 찬미>(1991) 당시 장미희가 입었던 의상이 가장 비싼 의상이라고 증언한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당시 전체 배우 의상비가 대략 2~3천만원 선이었는데, 장미희가 입은 옷 한벌이 이와 비슷했다는 것이다. 그보다 1년 전인 1965년, <마담 X>의 콘스탄스 베넷은 스크린에서 가장 비싼 의상을 걸친 바 있다. 그녀의 몸을 휘감은 검은 담비 털코트는 당시 5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액수. 가장 오랫동안, 많은 영화의상을 제작한 의상 담당 이해윤. <단종애사>(1956) 이후 현재 제작 중인 <청풍명월>까지 400편 넘는 영화에서 의상을 제작하고 있다. 그녀가 현재까지 제작한 의상 수는 ‘최소한’ 5천벌 정도. 이중 3천벌은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에 보관 중이다. 가장 많은 의상이 등장하는 영화 <성웅 이순신> <성웅 이순신>(1962)으로 1천벌 정도를 새로 제작해야 했다. 해외에선 32,000벌의 의상이 등장하는 <쿼바디스>(1951). 한 영화에서 가장 많이 옷을 갈아입은 배우 <결혼교실> 정종화씨에 따르면 <결혼교실>(1970)에 출연한 남정임, 문희, 윤정희였다. 이 영화는 당대 트로이카 여배우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는데, 제작 전부터 세 배우의 신경전이 대단했다고 한다. 제작사는 애초부터 각자의 배역이 두드러진 3개의 시나리오를 여배우에게 돌려 어렵사리 오케이를 받아냈다. 촬영에 들어가서도 경쟁은 계속됐는데, 서로 지지 않으려고 옷을 갈아입는 통에 거의 장면이 바뀔 때마다 의상이 바뀌었다고 정씨는 기억한다. 한편 이 영화가 개봉한 국도극장에서는 간판 때문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각 배우쪽에서 서로 자신의 이름을 앞에 내세워달라는 요구를 한 탓에 간판 미술가들을 난처하게 했다. 결국 간판 위 이름은 가나다 원칙을 따랐다. 85시간짜리 영화 <불면증을 위한 치료법>(1987)에서 201번이나 옷을 갈아입는 리 그로번. 극장 개봉작 중에서는 <에비타>의 마돈나가 85벌의 의상, 39개의 모자, 45켤레의 신발 등 화려한 패션쇼를 선보였다. 현역 최고령, 최장수 스탭 정성일 촬영감독 1929년생으로 2002년 <취화선>을 촬영한 정일성 촬영감독. 그는 데뷔작 <가거라 슬픔이여>(1957) 이후 45년 동안 활동하고 있다. 제작기간이 가장 긴 영화 <정복자>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일 것 같지만 권영순 감독의 <정복자>(1963)다. 이 영화는 1961년 크랭크인해 1963년에야 크랭크업했는데, 돌발사태가 발생했기 때문. 촬영도중 주연인 문정숙이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6개월 동안 입원했고, 그뒤로 2개월간 요양을 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이 대작은 뒤늦게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2001년 1월 말 크랭크인해 2002년 9월11일 개봉했다. 1년8개월 걸린 셈.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 과정까지 집어넣으면 2년이 훌쩍 넘는다. 무려 28년에 걸쳐 완성한, 캐나다 출신 영국 애니메이터 리처드 윌리엄스의 <아라비안 나이트>(1995). 상당 시간은 1000만 달러를 벌어 준 <제시카와 로저 래빗>(1989), 핑크 팬더 영화 2편의 애니메이션 타이틀 작업 등 총 2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모으느라 흘러 갔다. 촬영기간이 가장 긴 영화 <화산고>(2001). 2000년 8월 촬영을 시작해 2002년 7월에 크랭크업했다. 장혁을 비롯한 배우들과 스탭들은 무려 11개월 동안 어둠 속에서 와이어 액션을 갈고 닦았다. 557일간 찍었던 에드거 라이츠의 <제2의 고향>(1992). 할리우드 영화로는 모터 보트와 제트 스키, 175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신 하나만 한 달을 찍었다는 <워터월드>의 220일이 최장기록. 후반작업 기간이 가장 긴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1년 10월31일 크랭크업한 뒤 2002년 9월11일 개봉할 때까지 10개월 이상 작업했다. 컴퓨터그래픽에서 한계에 부딪힌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5]

최초의 키스신 <운명의 손>(1954)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러브신이라 해봤자 하염없이 바라보다 덥석 두손을 마주 잡거나 와락 껴안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외국 배우들이야 ‘필’만 꽂히면 입술을 부벼댔지만서도, 이를 본 관객이 금발의 연인들을 제몸처럼 여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운명의 손>이 건드린 표현 금단의 영역은, 그래서 ‘조선’ 관객에겐 달콤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5초가량 슬쩍 입을 맞댄 것에 불과했지만). 하지만 한형모 감독의 ‘결단’이 뜻대로 진행되기 위해선 거추장스러운 몇 가지 의례가 요구됐다. 일단 카바레 마담 정애 역의 윤인자와 국군 대위 영철 역의 이향의 키스 도중 ‘부적절한’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차단해야 했다. 두 사람의 입술에 셀룰로이드 재질의 비닐(담뱃갑의 비닐을 활용했다는 설이 있다)을 입힌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질병 전염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일석이조. 이와 관련해 사회적으로 질병예방 체계가 허술했던 전쟁 직후의 상황에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방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처음 시도하는 키스이니만큼 당시 제작진은 만반의 준비를 기했는데, 윤인자의 남편을 세트로 데려와 그의 입회하에 촬영을 진행한 것도 그중 하나다(방송작가였던 남편이 고소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아래 에피소드와 뒤섞여 잘못 적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회적인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개봉 이전에는 기본적인 설정 이외에 영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등 비밀 마케팅으로 일관했다. 효력은 상당했다. 12월14일, 서울 스카라극장의 전신이었던 수도극장에서 개봉해서 5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영화들이 키스장면을 끼워넣는 것은 보지 않아도 당연한 일. 하지만 잡음도 없지 않았다. 첫 번째 키스를 성공적으로 마쳤던 이향은 <인생역마차>(1956) 촬영 도중 노경희와의 키스장면이 신문광고에 버젓이 등장하는 바람에 몸을 사려야 했다. 노경희의 남편이자 배우였던 전택이가 주머니 칼을 소지하고 그를 찾아 충무로를 헤맸기 때문. 결국 감독이었던 김성민이 살벌한 협상테이블을 중재한 뒤에야 촬영이 재개될 수 있었다 한다. 이러했으니 여배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강대진 감독은 <외나무 다리>(1962)를 두고, “주연배우였던 김지미와 최무룡이 당시 열애 중이라 실감나는 장면을 뽑아낼 수 있었다”며 회고하기도 했다. 스크린 사상 최초의 키스신로 기록된 장면은 1896년 연극 <미망인 존스>에서 필름으로 찍은 메이 어윈과 존 라이스의 입맞춤. 클로즈업으로 촬영된 이 장면은, 당대의 저널 <더 채프 북>에서 "절대적으로 역겹다"는 평을 듣기도. 최초의 누드 <전후파>(1957)의 윤인자 호스티스 역을 맡은 윤인자의 목욕장면. 1950년대 윤인자는 국내 여배우 중엔 광범위한 팬을 확보하고 있던 마릴린 먼로의 독주에 제동을 걸 만한 이로 손꼽혔다. 같은 해에 선보인 <그 여자의 일생>(1957)에서도 윤인자의 샤워장면을 볼 수 있는데, 실제 이 장면 촬영시엔 두 번째 남편이었던 고설봉씨와의 협의 끝에 감독과 촬영, 조명감독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세트장 출입을 통제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라고 그녀를 훔쳐볼 순 없었다. 큰 수건으로 맨몸을 둘둘 말았기 때문이다. 한때 세속의 때를 벗기 위해 출가하기도 했던 윤인자는 83년 환속한 뒤 연기를 계속했다. 쉽사리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제아제 바라아제>(1989)에서 노스님을 눈여겨볼 것. 이에 비해 김승호는 “옷 입고 목욕하는 것 봤느냐”며 홀라당 벗고 연기에 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겨울 오픈세트에서도 그의 주장은 굽힘이 없어, 처음엔 얼굴 보러 왔던 아낙들이 그의 거침없는 탈의에 혼비백산 줄행랑을 치기도 했다는 일화가 여러 편 있다. 영화가 기억하는 최초의 여주인공 누드는 조지 포스터 플랫이 연출한 <인스퍼레이션>(1915)의 오드리 먼슨의 나신. 조각가의 모델이 되고 그와 사랑에 빠지는 순진한 시골 아가씨의 벗은 몸은, 당시 미국사회에서 충분히 도발적인 시도였다. 남성의 누드는 1912년 이탈리아영화 <단테의 인페르노>에서 잠깐 스쳐가지만, 상업영화에서 성기를 노출한 것은 켄 러셀의 <위민 인 러브>(1969)에서 올리버 리드와 앨런 베이츠가 옷을 벗고 레슬링 시합을 벌인 이후라고. 최초의 동성애영화 <시발점> 동성애의 기준을 어디에 놓을 것이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표현 수위나 노출 수위 등을 고려할 때, 최초로 동성애를 전면에 다룬 한국영화는 김수용 감독의 <시발점>(1969)이라 할 수 있다. 이청준의 소설 <병신과 머저리>를 원작으로 하는 이 영화는 2차대전 패망 뒤 만주를 배경으로 일본군에 속했던 일본인 하사관과 조선인 지원병의 이야기를 그린다. 추위를 이기지 못해 부둥켜 끌어안는 등 ‘동성애적 묘사’를 포함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검열당국은 못 마땅했지만, 제목을 <병신과 머저리>에서 <시발점>으로 바꾸는 정도의 제재만을 가했다. 여성간의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최초의 영화는 <산딸기> 시리즈의 김수형 감독이 76년에 만든 <금욕>이다. 세 남자에게 강간당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패션모델 영희와 부유한 이혼녀이자 화가 노미애 사이에서 싹트는 연대와 연민을 다루는 이 영화의 표현 수위는 당대로선 파격적이다. 미애는 영희의 알몸에 바디 페인팅을 하거나 벌꿀로 전신마사지를 해주기도 하고, 벌거벗은 등에 바퀴벌레를 풀어놓기도 하는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육체적 접촉을 암시했다. 영화의 결말은 영희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쪽으로 귀결되지만, 동성애 잡지 <버디>가 이 영화를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영화”로 꼽은 것은 “레즈비언이란 여자와 성교하는 여자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가치 중심을 여자에게 둘 수 있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다. 최초로 ‘동성애영화’를 표방한 한국영화는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1995)이다. 한국 현대사의 상흔으로서 동성애를 묘사했던 이 영화는 ‘진정한 동성애영화’를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켰지만, 중년의 동성애를 다루는 등 과감한 표현으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외화를 통틀어 살피면, 독일산인 리하르트 오스발트의 1919년작 <남들과 다른>(Anders als die Andern)이 남성간의 동성애를 다룬 최초의 영화로 기억된다. 프러시아의 위압적인 기숙학교에서 교사에게 매혹되는 소녀의 이야기로 여성간의 동성애를 다룬 레온티네 사간의 1931년작 <제복을 입은 소녀>(Ma(움라우트 찍어주세요)dchen in Uniform) 역시 독일영화. 일본과 영국 등 기타 국가에서 동성애영화가 나오는 것은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최초의 엉덩이 노출 남자배우 구봉서 정종화씨에 따르면,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의 구봉서. 화장실에서 일보는 장면에서 엉덩이가 보였다고. 코미디언이라 심한 제재나 격한 논란은 없었다.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