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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막장드라마의 모든 것] 찝찝하지만 어차피 다 엉터리잖아

궁금했다. 막장드라마, 왜 보는 건지. 저런 악랄한 설정이 정말 통하긴 하는 건지. 보면서 화는 안 나는지. 그래서 물었다. 흔히들 막장드라마의 주시청자라고 생각하는 아줌마들에게. 직업은 모두 주부이나 40대 중반, 50대 중반, 60대 초반으로 나이대는 제각각인 아줌마 셋을 붙잡고 직접 질문을 던졌다. 흥미로운 답변도 있었고 애청자임을 애써 감추려는 기색도 엿보였지만 남김없이 정리해 재구성했다. 난 삼류라고들 하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주부야. 요즘 인기라는 <너는 내 운명>은 매일 봤어. 그전에 같은 시간 같은 채널에서 했던 드라마도 계속 봤거든. <조강지처클럽>은 중간부터 봤지. 그건 이름이 재밌어. 캐릭터에 맞는 이름을 갖다가 붙여놓으니까 처음 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더라고. 원수는 정말 원수 같은 짓만 하고 이기적은 이기적이고 복수는 남편한테 복수하려고 딴 남자랑 재혼하고. 한창 방영 중인 <아내의 유혹>도 얘기 듣고 보기 시작했어. 왜 문소리 나오는 거 있잖아, 주말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 그것도 봐. 재벌이 나오는 드라마는 나랑은 다른 세계라 호기심이 생겨서 보고. 아침드라마는 시간이 남을 때만 보고 저녁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지. 대체 드라마를 왜 보냐고? 사실 오후 8시부터가 텔레비전 보기 좋은 시간대거든. 저녁밥 먹고 대충 치운 다음이니까 좀 한가해. 그때 텔레비전 틀면 하는 게 드라마잖아. 어떤 드라마든 한번 보다보면 다음 내용이 자꾸 궁금해져서 또 틀어놓게 되고. 왜, 드라마 보는 거 습관적이잖아. 뭐가 재미있는지 확실하게 집어서 얘기할 순 없지만 중독성이 있어. 젊은 애들처럼 어떤 배우를 좋아해서 보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 그런 사람 있긴 하더라만. 그런데 <에덴의 동쪽>도 그렇고 <너는 내 운명>도 그렇고 갈수록 별로인 것 같아. <너는 내 운명>의 시어머니는 진짜 이상하더라. 자기 자식이 마치 분신인 것처럼. 완전히 병이지 병. 근데 진짜 그런 사람 있어. 자식한테 집착해가지고 떠나보내지 못하는 사람들. <아내의 유혹>은 너무 착하기만 한 며느리라고 함부로 대하는 게 조금 속상했는데 조금씩 신원을 바꿔가지고 복수의 칼을 가는 중이야. 오늘 재미있던데. <내 인생의 황금기>는 일단 가족드라마인데 그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임신해서 아기 아빠가 아닌 사람하고 결혼했다고. 그것도 출생의 비밀이긴 하지만 드라마에선 안 다뤘던 문제 같아서 신선해. 설정이 파격적이더라고. 아, 듣자하니 <너는 내 운명>은 할머니들이 많이 본다던데? 물론 공감하면서 볼 때도 있지. 슬픈 장면이 나올 땐 애절하기도 해. 눈물 연기할 땐 나도 모르게 같이 울기도 하고. 주책이라고 남편한테 구박도 받고. 멜로드라마에선 내가 안 겪어봤던 것도 나오고 하니 감정이 아릿하더라. 약간 맘적으로. 너무 착한 남자 보기 좋긴 하지만 현실적이진 않잖아. 계속 착한 남자가 어디 있을 수 있나. <에덴의 동쪽>은 가족애라는 끈끈한 사랑과 정, 형제라면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해주는 모습이 흐뭇하더라고. 드라마에 항상 나쁜 놈만 나오는 건 아니라고. 요즘 나오는 독한 설정은 어떠냐고? 난 솔직히 이해가 안되던데. 내용도 천박하고 사악하고 그렇잖아. <에덴의 동쪽>의 신태환만 봐. 말도 못하게 나쁜 사람이고 그 간호사는 더 사악하고. 명예와 부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이용한다는 생각에 경악하게 되지. 삼각관계도 짜증나고.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정말 찝찝해. 조금 잘나가는 드라마다 싶으면 작가들이 질질 끄는 것도 싫고. 비비 꼬면서 궁금증 유발시켜가지고. <너는 내 운명>도 그렇잖아. 골수를 이식하네 마네. 그런데 그게 그 드라마를 안 보는 이유는 안돼. 다들 한번 보면 끝까지 보려고 하지 않나. 어차피 다 엉터리잖아. 게다가 잔인한 면만 있진 않거든. 동기간 우애도 있고 모성애도 있고. 그래서 계속 볼 거냐고? 일단은 그렇지. 하지만 자꾸 이렇게 악랄하게 나오면 텔레비전 꼴도 보기 싫어질지 누가 알겠어?

작년 극장 영화 관람객 5%나 줄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지난해 극장 영화 관람인구가 전년도에 비해 5%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영화진흥위원회의 '2008 영화소비자 조사 결과'와 CJ CGV의 '2008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해 극장 관객수는 1억4천918만명으로, 2007년보다 5.3%(834만명) 줄었다. 영진위가 지난해 11월 28일~12월 5일 전국 16개 시.도의 15~49세 남녀 2천4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표본 오차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결과도 비슷한 추세가 확인됐다. 지난해 1년간 극장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은 88.5%로 전년의 93.6%에 비해 5.1% 포인트 떨어졌다. 전체 소비자의 1년간 극장 영화 관람편수는 평균 8.9편으로 2007년보다 3.7편 줄었고, 관람 경험이 있는 소비자의 평균 관람편수는 10.1편으로 전년도보다 3.3편 줄었다. 24~29세 남녀의 관람편수 감소폭이 각각 6.5편과 6.2편으로 가장 컸다. 성별로는 남성의 86%, 여성의 91.1%가 극장에서 영화를 봤으며 연령대로는 남성은 24~29세, 여성은 19~23세의 관람률이 가장 높았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관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영화 국적은 한국이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영화가 밀리고 미국 영화가 40.7%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추세는 남성들이 주도했다. 여성의 경우 30대 후반을 제외하면 한국영화를 가장 선호했지만, 남성은 20대 초반을 제외한 전 연령층이 미국영화를 더 좋아했다. 장르별로는 액션을 가장 좋아하는 관객은 43.3%로 드라마(29.5%), 로맨스(19.2%)보다 많았다. 관객들은 영화를 선택할 때(복수응답) 줄거리와 내용(90.4%), 장르(84.8%), 주위의 평가(71.9%) 순서로 우선 고려했으며, 출연배우(57.9%), 흥행순위(57.9%), 전문가 평가(39.2%)는 덜 생각했다. 최근 영화계에서 영화 관람료 인상론이 제기됐으나 관객들은 극장 관람료가 비싸다고 인식했다. 55.6%가 7천원 정도의 현재 관람료가 비싸며 적정 가격은 5천100원이라고 답했다. 적절하다는 의견은 43.4%였다. 또 극장 요금이 1천원 오르면 관람 횟수를 줄이겠다는 응답자가 36%로 가장 많았고, 500원을 올리면 덜 보겠다는 사람은 20.6%였다. 관객들은 영화를 고를 때 참조하는 정보를 인터넷(61.6%)에서 가장 많이 얻었다. 인터넷을 참조하는 경우는 전년보다 11.1%포인트나 늘었다. 극장에 갈 때는 배우자 및 자녀(37.9%), 친구(34.7%)와 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관람할 영화는 극장에 가기 전에 미리 선택하는 경우가 87.1%로 극장에 가서 결정한다는 12.9%보다 많았다. 불법 다운로드를 해본 사람은 48.1%로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으며 불법 업로드를 해본 사람은 19%, 불법 DVD를 직접 사봤다는 관객은 7.3%로 2007년보다 약간 줄었다. 한편 지난 한해 동안 텔레비전 수상기를 이용해 영화를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98.8%, 인터넷ㆍ모바일 영화를 본 적 있는 사람은 85.8%로 전년도와 큰 변화가 없었다. 1년간 여가 시간이 늘었다는 사람은 전년도보다 5% 포인트 늘어난 31.4%였지만, 여가 소비액이 늘었다는 사람은 전년보다 6.2%포인트 줄어든 41.7%였다. cherora@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알렉 볼드윈] 캐릭터에 폭소엔진 장착

NBC·GE·유니버설·K마트 동부해안지역 텔레비전/전자레인지 사업부 부사장. <30록>에서 알렉 볼드윈이 연기하는 잭 도나기의 공식 직함이다. 웃겨보려고 일부러 붙인 것이 분명한 이 생뚱맞게 긴 타이틀은, 야망의 미중년 잭 도나기가 한번의 쉼도 없이 나열할 때 본색을 발한다. 해외 기사들은 ‘잭 도나기’와 ‘알렉 볼드윈’ 사이에 커다랗고 굵은 등호를 그려 넣으려 원고지를 바친다. “알렉 볼드윈이 아닌 잭 도나기는 상상할 수 없다.”(<백스테이지웨스트>) “<30록>을 놓치지 말아야 할 단 하나의 이유, 알렉 볼드윈.”(<뉴요커>) 연기 인생 30년 만에 정점에 올라 1987년 스크린에 데뷔한 알렉 볼드윈은 <붉은 10월>(1990), <글렌게리 글렌 로스>(1992)를 통해 스타급 배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유명세에 도움을 준 것은 킴 베이싱어와의 시끌벅적한 결혼과 요란스러웠던 이혼이다. 그 뒤 1997년까지 출연한 모든 영화를 “폭탄”이라고 자평하듯 점차 조연으로 밀려났고, 날렵한 턱선을 가졌던 아일랜드계 청년은 시간에 순응하며 중년의 풍채를 갖게 됐다. 사실 영화계는 그의 푸른 눈동자보다 금속을 긁는 듯한 목소리를 사랑했다. <파이널 환타지>부터 <마다가스카2>까지, 그는 영상만큼이나 꾸준하게 목소리 연기로 관객과 만나왔다. 그리고 2007년, 연기를 시작한 지 30년 만에 만난 <30록>으로 그는 명실공히 커리어의 정점에 오른다. 두툼한 뱃살과 뻔뻔한 인격으로 무장한 알렉 볼드윈은, 2007년부터 3년 연속 SAG(배우조합)에서 남우주연상, 2008년 에미상, 2007년과 2009년 골든글로브까지 모두 6개의 트로피를 잭 도나기의 이름으로 거머쥐었다. 잭 도나기는 수완 좋은 사업가인 동시에 교묘한 조정가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그의 목표는 의 모기업 의 CEO. 비즈니스 성공수칙을 줄줄이 꿰는 잭은, 칭찬하지 않고도 고래를 춤추게 할 인물이다. 에피소드에서 언급된 그의 청년기를 정리해보면, 북극곰을 (아마도 맨손으로) 때려잡았고 킬리만자로를 등반했으며 단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허드슨강으로 차를 몰아 탈출을 시도했다. 땅콩 알레르기도 정신력으로 이겨냈다. 이 남자가 극복할 수 없는 존재는 덜떨어진 가족들과 독설가인 어머니뿐이다. 그러나 자수성가한 잭과 다르게 평범 이하의 삶을 사는 가족들은, 달리 보면 그를 오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다. 모두 배우가 된 4형제의 맏이로서 볼드윈이 느꼈을 성공에의 의지와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정작 그는 “나에게 영화적 재능은 없다. 못하는 건 아닌데 타고나지도 않았다”며 잭 니콜슨, 알 파치노 같은 대배우들로부터 거리를 둔다. 오히려 그는 오슨 웰스에 자신을 견준다. “파워풀한 배우지만, 언제나 위대한 배우는 아니었다. 거만하기도 했지.” 스티브 카렐이나 짐 캐리와는 다른 웃음 사람들은 알렉 볼드윈이 꽤 웃기는 남자배우이자 빼어난 재담가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젊은 시절 보여준 선 굵은 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짧은 결혼생활 뒤 이어진 지난한 이혼소송과 딸의 휴대폰에 남긴 욕설 파문, 숨김없이 드러내는 정치적 견해 등이 그가 가진 코미디언으로서의 재능과 유명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분리시키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코미디 배우의 대표 격인 스티브 카렐이나 짐 캐리와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전자에 속하는 배우들이 슬랩스틱으로 웃음을 유발한다면, 볼드윈은 하늘 아래 그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캐릭터로 승부한다. <30록>의 파일럿을 본 에서 볼드윈이 시즌1 전회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승인했다는 사실은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그러나 알렉 볼드윈은 작품을 장악하는 신스틸러(Scene Stealer)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에피소드를 빛나게 하는 감초에 가깝다. 스티브 부세미, 제니퍼 애니스톤, 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화려한 게스트들과의 앙상블에서 눌리지 않으며 티나 페이, 트레이시 모건 등 출연진과 조명을 나눌 때도 튀지 않고 어우러진다. 전자레인지 시장에 돌풍을 몰고와 텔레비전 사업부까지 진출한 잭 도나기식으로 말하면, 그는 <30록>의 “3번째 열선”이다.

[정한석의 블랙박스] 오, 빗자루!

<씨네21> 688호 ‘해외 평단이 뽑은 2008 베스트10’을 읽다가 그들의 좀더 상세한 개별 리스트에 한국영화는 없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참고한 건 <사이트 앤드 사운드> <필름 코멘트> <카이에 뒤 시네마>의 명단이다. <사이트 앤드 사운드>의 설문에 참여한 평자 중 영국 일간지 <텔레그라프>의 팀 로비만이 유일하게 한국영화를 꼽았는데, 이창동의 <밀양>이다.“이창동이 그가 하고 있는 것에 관하여 훨씬 더 깊이 사유하고 그의 여주인공에게서 놀랄 만한 연기를 얻어냈다는 진일보의 증거.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영화는 여기서(영국) 극장 개봉을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그는 한탄하고 있다. <필름 코멘트>는 미국 내 개봉작과 미개봉작으로 나눠 매년 각 20편씩 선정하는데 미개봉작 16위에 홍상수의 <밤과낮>이 올라 있다. 개별 리스트에서는 페데릭 보노가 2위에, 필립 로페이트가 10위에 <해변의 여인>을 꼽았다. 올라프 뮐러의 선택이 특히 눈에 띄는데, 그는 이지상의 뚝심있는 연작영화 <십우도3-견우(티벳에서, 제망매가)>를 무순으로 넣었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필진은 <해변의 여인>과 <밤과낮>에 더 주목한다. 루도비크 라망은 6위에 <해변의 여인>을, 장 필립 테세는 공동 8위로 <해변의 여인>과 <밤과낮>을 묶어서 꼽았다. 그중 다섯편의 공동 2위에 <밤과낮>을 올린 에르베 오브롱은 <해변의 여인>과 <밤과낮>에 관해 멋스럽게 썼다.“풍경에 무관심한 이 우발적인 여행자들은 그들의 강박을 숙고하길 계속했다. 계몽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훨씬 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건 여전히 거기 있다. 무한함과 편평함, 숭고함과 시무룩함 사이에 일어나는 종국의 조우- 오즈와 로메르, 우리가 물끄러미 보는 녹색 광선과 술잔.” 재미있는 건 <씨네21>에 글을 기고하기도 했던 뱅상 말로사의 선택이다. 그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감독 김동주의 <빗자루, 금붕어되다>(전주국제영화제, 테살로니카영화제 상영작)를 공동 5위에 꼽았다. 무엇과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와 함께.

[전영객잔] ‘인민의 초상’ 넘어선 ‘인민의 응시’

1958년에 세워져 50여년을 이어져왔으나 지금은 허물어지는 군수공장 팩토리 420의 마지막 시간. 그러나 그것을 허물고 들어설 현대식 주거지 24시티가 아직 완전하게 들어서기 이전의 시간. 그 흔한 말처럼 과거의 것이 사라졌지만 아직 새것은 오지 않은 불확정적인 이행의 시간. 지아장커의 <24시티>는 강제로 생겨난 그 이행의 시공간과 그곳의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댄다. 이 영화 <24시티>에 관해서는 허문영이 <씨네21> 689호 전영객잔을 통해 이미 한 차례 썼다. 그가 해낸 풍요로운 서술 이상으로 내가 이 영화에 더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라면 그가 말한 이 영화의 위대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일종의 첨언을 해보는 것이다. 그게 이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모호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일 거라 짐작하며 <24시티>는 그런 식의 대화가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걸 실로 요구하는 영화인 것 같다. 안과 밖으로 이어지는 상호작용 그러니까 이상하다. 이 영화는 단순하고 간결한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는 정제된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결정된 것들로서의 사람과 풍경을 마지막으로 채집한 것처럼 보인다. 정지된 스틸로 마지막을 기억하고, 떠나가는 마음을 아련하게 추억하는 것 같다. 기억으로 우리를 정박시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건 그 아련함과 쓸쓸함과 함께 있는 무엇이다. 이 영화는 어딘가 시종일관 운동하고 있다. 어느 한점에서조차 멈추지 않고 서로 오가는 정감의 힘이 <24시티>에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오해가 될 것인가. 아니 차라리 어느 한편에서 멈추지 않고 서로 왕래하는 오고감의 운동성 자체가 이 영화의 운명이라면 지나친 생각일까. 즉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그쪽에서 또 반대쪽으로 던지고 받는 어떤 상호작용이 이 영화에는 있다. 어느 한점이 아니라 바로 그 왕래. 시적인 정취로서의 왕래. 문턱 또는 문지방 그 사이에 놓여 겹겹이 일어나는 상호작용. <24시티>가 단순하거나 정제된 것처럼 보이는 건 오히려 이 몇 가지 양방향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완벽한 결과에 가깝다. 이것이 결국은 지아장커가 마침내 이 영화를 중국 인민의 것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지아장커가 <스틸 라이프>와 <동>에서부터 수정을 시도했던 지점은 바로 여기이며 <무용>의 3부에서 찬란하게 도달했던 지점도 이것이었다. 그것을 풀어 한편의 영화로 만들어낸 것이 <24시티>다. <24시티>가 얼마나 양방향에서 들고 나는지 알아차릴 만한 대표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허문영이 지적한 아름다운 장면. 음악이 흐르고 있고 경비원은 폐허가 된 공장을 마지막으로 시찰한다. 그때 갑자기 창문을 깨고 들어온 돌이 그 순간 흐르던 음악을 중지시킨다. 내재적 화면과 외재적 사운드 사이에 경이로운 영향 관계가 형성된다. 노래가 꿈꾸는 미래지향적 이상을 지금 무너져가는 돌멩이의 파편이 멈춰 세운다. 이것은 지아장커가 텍스트 내적인 장면을 통해 그 바깥에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이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화면의 사건이 외화면의 사운드를 중지시켰을 때 일어나는 그 아득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아장커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명백하게 이 영화가 지금 무언가 안과 밖으로 이어지는 들숨과 날숨으로 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지아장커는 그런 작용 관계의 면모를 놓치지 않고 이 영화를 보기를 원하고 있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돌출시키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한편은 다큐이고 또 한편은 극영화인 <동>과 <스틸 라이프>에서 같은 제스처가 반복해서 등장할 때(<동>에서 리우샤오동의 자리와 <스틸 라이프>에서 한산밍의 자리) 그건 이 두 영화를 보는 자로 하여금 서로 다른 자리에서 해석하고 선택할 여지를 주는 상호작용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그걸 지아장커는 <무용>에서 1부와 2부에 이어 3부의 에피소드에서 첨예하게 수렴해냈다. 그건 물론 다큐와 픽션의 양방향에서 온다. 다큐와 픽션. <24시티>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양방향의 상호작용이 그것이다. 다큐와 픽션의 결합이라는 점.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지아장커 스스로가 잘 설명해왔고 이 영화를 본다면 누구라도 알게 된다. 때문에 나는 이 지점에서 오히려 다큐와 픽션이 결합된 형태에 관해 중언부언하기보다 오히려 지아장커만이 아니라 그를 포함한 아시아영화 안에 이런 양식이 있음을 간단하게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다. 다큐-픽션의 결합은 지아장커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에게도, 리티판에게도, 류우에게도, 라브 디아즈에게도 있는 것이고 실로 오래되었다. 특히나 기억, 그러니까 구축의 행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재조립이 불가능한 기억을 다루려고 할 때, 이걸 다루는 아시아영화들은 어딘가 공통적인 가상선을 설정해낸다. 그러나 <24시티>에서의 특별함이라면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며 지금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라지는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 지아장커가 <24시티>에서 하는 일은 전문적인 배우와 인민을 한자리에 놓는다는 점이다. 알려진 것처럼 <24시티>에는 루리핑, 진건빈, 조앤 챈, 자오타오가 등장하여 인민의 한 사람인 척 구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아장커는 그들이 중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라고 말한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만약 장미희가 이 영화의 조앤 챈처럼 어떤 영화에 출연하여 시민의 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지나간 70년대를 회고하고 또 당시에 자기의 우상이 장미희였다며 회상에 젖은 다음 <겨울여자>의 장면이 흘러나온다면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될 것인가. 혹은 그것이 장미희가 아닌 당대의 유명한 어떤 다른 배우라도 정서적 파장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알려져 있는 배우가 지금 우리 눈앞에서 진짜 인민과 섞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더군다나 지아장커는 비전문 배우를 연기시키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연출자가 아니다. 그러니 <24시티>에서 보통 사람인 것처럼 등장하여 구술연기를 펼치는 그들을 배우라고 부르기보다는 유명 배우 즉 스타라고 인식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지아장커가 필요했던 것은 무명이지만 충분히 인민의 한 사람으로서 등장하여 감쪽같이 구술해낼 수 있는 누군가의 능력이 아니라 한눈에도 그가 유명 배우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한 스타의 출연이자 출현이라는 양상이다. 이때 경계의 선긋기와 구별이 중요해진다. 즉, 이 사람은 스타입니다, 허구입니다. 지아장커는 경계를 무화한 다음 하나가 어느 하나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경계를 돌출시켜 조화보다는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방점을 찍는다. 실은 그 이유는 지금 그 경계를 넘어 무언가 오고 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가리키기 위한 것이다. 스타가 발휘하는 보편성의 장 여기서 보편성과 개별성의 장이 어떻게 설정되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지아장커가 인민들 사이에 스타를 기용하는 것은 그 말의 설득력을 애초부터 펼칠 수 없는 개별 인민을 대체할 방편으로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들이 출연함과 동시에 스타가 발휘하고 포섭하는 보편성의 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심지어는 그들과 같이 출연하는 실제 인민들의 구술조차 그 스타들의 구술이 지닌 보편적 장을 뚫고 개별적으로 승화하지 않는다. 이건 스타의 말을 보편적으로 만들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개별적으로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그 너머엔 무엇이 있는가. 스타의 말이 텔레비전 드라마의 말처럼 보편적으로 들릴 때 그렇다면 그 상대편에서 개별적이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무엇인가. 이때 지아장커가 사람들을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멈춰 세운 장면을 지속적으로 삽입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개별적이며 구체적인 것은 오히려 그 초상일 것이다. 스타의 말이 들숨이라면 인민의 이름없는 초상은 날숨이다. 일단 이 영화는 자기의 말을 다 하지 못하는 개별 인민을 대신하여 등장한 스타의 보편적 말(구술)에 귀기울일 것인가, 혹은 침묵하는 개별적 인민의 초상을 볼 것인가의 양분된 문제로만 귀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말없이 초상을 볼 수 있는가, 초상없이 말을 들을 수 있는가의 문제를 우선 껴안게 된다. 나는 우선 말이 초상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지아장커에게 이 영화에서 말과 초상은 서로 작용하는 것으로서 동등하게 중요하다. 말이 없이 초상만 더 중요해지지는 않으며 말이 있어야 초상이 중요함을 알게 된다. 그러나 지아장커가 무엇을 의도했건 스타의 보편적 말과 인민의 개별적 초상이 경계를 드러낸 이후에는, (지아장커가 어느 것을 더 원했건 간에) <24시티>에서 결국 초상의 힘이 말의 힘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더 강력하게 부상한다. 문제는 더 분화되며 더 구체적으로 미세하게 상호작용한다. 나는 <24시티>를 보며 지아장커가 유도한 것처럼 인민의 초상을, 인민의 얼굴을 본다고 처음에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미세한 경계의 설정이 있으며 또한 그걸 넘어서는 작용이 있다. 초상을 그 이상의 무엇으로 이어내는 장면을 마주치지 못했다면 나는 이 영화가 위대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이 영화가 강력한 상호작용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스타의 보편적 구술의 장을 넘어서 무심하게 서 있는 인민들을 보았을 때 그것은 다만 그들의 초상이며 얼굴인가. 그들은 대상이며 우리는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인가. 시선의 주관성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으며 그들은 단지 대상으로 남는 것인가. 영화 속 한 장면이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있다. 두 남자는 장난을 치다 웃음을 참는데…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아 철거되는 기자재 틈바구니에서 마지막 노동을 하는 두 노동자. 선후배로 보이는 이 두 남자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 앞에 선다. 그런데 서로 어깨를 걸치던 그들 중 선배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머지 사람의 목에 살짝 손을 대고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을 건다. 또 다른 남자는 웃으려다 참는다. 그러기를 두번 반복한다. 그들은 이 카메라에 담길 때 감독과 한 가지 약속을 했을 것이다. 이 카메라를 보세요. 그냥 잠시만 보고 계시면 됩니다. 그들에게 웃으라거나 연기하라고 지아장커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한 남자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웃음을 참으려고 한다. 하지만 결극 그들은 대상으로서 지켜야 할 약속을 자의적으로 어긴 셈이 된다. 그러니까 한 남자가 장난을 걸고 나머지 한 사람이 웃음을 참기 위해 애쓰는 것은 지아장커가 연기를 주문하여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고다. 물론이다. 지아장커의 당초 의도는 다른 이들처럼 마지막까지 공장에 남아 철거되는 기자재 속에서도 마지막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두 사람의 초상을 묵묵히 기억하려는 것이다. 이때 미세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지아장커는 이 장면을 멈춰 세운 다음 다시 찍거나 빼버리거나 다른 장면으로 대체해도 됐었겠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때 지아장커가 마침내 자신이 인민의 초상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응시를 찍는다는 사실을 감지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초상이 아니라 응시다. 우리가 보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보내오는 반사적인 시선이다. 그 응시란 그들이 규칙을 깨고 돌발적인 상황을 일으켰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양방향의 상호작용이며, 다른 무표정들에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이 두 노동자가 돌출행동을 하여 이것이 지금 사이의 경계를 오고가는 행위임을 일깨워줌으로써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네가 나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사실. 그 두 노동자가 은연중에 카메라의 명령을 따르거나 기억에 봉합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일어난 돌발적 사건. 그걸 받아들이는 지아장커의 유연함이 놀랍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인민의 몸이, 인민의 개별적 몸이 미세한 사건을 통해서 마침내 자율적으로 실체를 드러내는 그 양방향의 순간을 지아장커는 놓치지 않았다. <24시티>에 이르러서도 지아장커가 그토록 바라는 대상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것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정말 그걸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끝내 대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서로 오고가는 경계의 문턱을 만들어냄으로써 서로 공정한 양방향적이고 상호작용적 시선의 상태가 형성됨을 입증하는 것 같다. 경계를 넘어 오고가는 시선의 양방향. 때문에 이 두 노동자의 유쾌하고 불가사의한 장면은 지아장커의 모든 영화를 통틀어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에 속한다. 영화에 평등함의 마술을 부리다 다큐와 픽션이라는 두 양식, 그 안에서 보기의 서로 다른 위치를 유도하는 스타와 인민, 그들이 사용하는 말과 초상, 그리고 마침내는 무표정의 초상을 넘어 무언가 반응하고 손짓하는 초상에서 표정으로 그리고 표정에서 응시로의 전환.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그 두 노동자의 장면은 마침내 <24시티>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평등한 장면이 되며 동시에 <24시티>는 위대한 영화가 된다. 돌이켜보면 지아장커는 데뷔작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어떤 상호적인 응시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왔다. 인민이 영화를 응시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그는 깨닫고 있었다. <소무>의 마지막 장면에서 소매치가가 길거리 전봇대에 아무렇게나 묶여 있을 때 카메라는 갑자기 몸을 돌려 묶여 있는 그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들은 동원된 엑스트라가 아니라 영화를 찍는 걸 구경하던 사람들이다. 과연 그때 그들은 소매치기 <소무>를 본 것일까. 그들은 전봇대에 묶여 있는 소매치기를 본 것이 아니라 그걸 찍는 영화를 본 것이다. 동시에 그때 그들의 시선은 영화를 찍는 것을 보는 단순한 구경꾼의 시선이 아니라 영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응하는 인민의 응시로 전환된다. <24시티>는 문득 이것이 지아장커의 중요한 영화적 의무 중 하나였음을 환기시킨다. <24시티>는 진정으로 양방향의 영화란, 그리고 공평한 영화란 어떻게 완성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팩토리 420이 무너지고 24시티가 들어서는 사연을 듣고도 우리가 무언가 희망을 걸게 하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흔히들 말하는 인터랙티브한 영화. 그것이 관람자의 선택에 따라 없는 숏을 삽입하고 신을 설정해 넣는 것으로 온전히 가능할 것인가. 그건 영화를 게임화하는 위험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응시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숏이나 신을 새롭게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내밀하고 영화적인 양방향의 방법을 가능하게 한다. 말하자면 문턱을 넘어서 오고가는 양방향의 영화, 상호작용의 영화. 그리고 그것이 더군다나 민초의 시선이라면. <24시티>는 더 많은 질문을 포괄하지만 영화에 평등함이 깃드는 진짜 마술 같은 순간을 창조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나다.

[나의 길티플레저] ‘텔레걸’은 곗돈을 탑니다

한주의 시작인 월요일 밤부터 난 남몰래 갈등한다. 내가 좋아하는 유재석과 멋진 여자 김원희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볼 것이냐, 강호동과 그의 친구들은 물론 완전 소중한 아저씨 최양락의 합류로 시작된 <야심만만2>를 볼 것이냐. 뭔 같지도 않은 고민이라고들 비웃겠지만 난 그렇다. 그뿐이 아니다. 좀 시들해지긴 했으나 화요일엔 <상상플러스>를 수요일엔 알토란 같은 재미의 <황금어장>을 목요일엔 편하고 사랑스러운 <해피투게더>를 꼭꼭 챙겨본다. 웃겨주는 프로그램 보기가 취미이며 그것들을 되도록이면 실시간으로 봐야만 찜찜하지 않을 정도의 마니아다. 얼마 전까지도 좋아하는 프로그램 본방 사수를 위해 주말엔 외출을 삼갔을 정도니 어디 가서 자랑 삼긴 참 부끄러운 취미를 가진 셈이다. 아침잠을 포기하더라도 일요일 오전 9시에 성당을 다녀오는 이유는 3개 방송사의 저녁 오락 프로들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줌마들의 거침없는 수다판 <세바퀴>, 이 나이에도 결혼 체험 한번 해보고 싶도록 샤방샤방한 <우리 결혼했어요>, 여섯 남자의 복불복 여행기 <1박2일>, 즐거운 한바탕 MT 분위기의 <패밀리가 떴다> 등 주말 저녁엔 리모컨 돌려가며 곗돈 탄 기분이 된다. 마무리로 오랫동안 빼먹지 않고 사랑해오던 <개그콘서트>와 절친이 주인인 <박중훈쇼>까지 보고 나면 한주의 마무리 끝. 나이 꽤나 먹은 여자가 더구나 20년간 영화를 하면서 밥을 먹고 살아온 영화인이 영화보기는 오히려 그리 즐겨하지도 않으면? 그러나 내게 TV는 결코 바보상자가 아니라 안 보면 바보가 되는 상자이며 얄팍하고 짧은 그나마의 내 상식을 쌓아준 것도 TV다. 그때그때 유행이거나 꽂힌 드라마는 실시간으로 보고, 놓친 프로들은 케이블을 뒤져 재방송으로라도 보아야 하니 난 결국 텔레비전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별명은 ‘텔레걸’. 함께 일하는 L 감독님에게는 그 때문에 종종 무시(?)를 당한다. L 감독님은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다른 것을 보기 위해 TV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하다며 TV에 열광하는 나를 거의 한심하다는 눈으로 본다. 그러나 적어도 난 사무실을 방문한 꽃미남 배우를 보고 매너없이 “넌 누군데 이렇게 예쁘냐?”라고 하거나 세상 사람 다 아는 여배우를 보고도 “어디 나오셨더라? 이름이?”라고 당황스러운 질문을 던지진 않는다. L 감독님에게 배우들을 들이대 캐스팅을 하고 영화를 찍게 한 사람은 그래도 어쨌든 나인걸. 솔직히 연예인들 이름과 TV 프로그램들을 줄줄 말하거나 유행어에 특별히 민감한 내가 고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져 보이긴 한다. 하지만 그런 체면 때문에 나의 유일하고 오래된 일상의 즐거움을 이 나이에 포기할 순 없다. 사람을 만나다가도 집에 급한 일이 있는 양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무한도전>의 무모한 도전기를 보며 받은 감동이 재미없는 영화 보며 시간 죽이는 것보다 마음에 남으니 어쩌겠는가. 이런 나의 과도한 텔레비전 사랑이 ‘길티플레저’의 예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기엔 쑥스러운 대단한 취미 정도까지도 아니지만 이 글을 쓰며 돌아보니 남다른 중독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잇값도 못한다는 소리를 일생 들어가며 꼼꼼하고 부지런하게 코믹 프로들을 챙겨보고 실생활에 응용하며 살아온 결과, 충분히 실없는 사람일 수도 있었건만 다행히 유머 센스를 지닌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난 믿는다). 누가 뭐라거나 말거나 실망하거나 말거나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나의 텔레비전 사랑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게으르고 귀찮은 내가 남보기 반듯한 취미생활을 새롭게 찾아내서 즐길 일은 절대로 없어 보이니 말이다. 정승혜 영화사 아침 대표. <도마뱀>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등을 제작했다. 그녀는 강우석 감독이 가장 신뢰하는 영화평자이자 카피라이터다. 종종 일간지와 영화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는다. 또한 하루 평균 몇 백명이 방문하는 인기 블로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월10일 현재 그녀의 블로그 대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난 파란 눈동자… 외계인 ㅋ.”

[그 요리] 신비의 열쇠, 그까짓 마늘

먼, 아주 먼 옛날 시궁쥐 로스큐로가 수프의 왕국 ‘도르’에서 사람들의 오해와 무지로 여왕을 죽게 한 뒤 도르 왕국은 대혼란에 빠진다. 우리의 영웅 생쥐 데스페로가 이 왕국에 나타나 다시 도르 왕국을 살리고 위험에 빠진 공주도 구한다는 그런 줄거리다. <작은 영웅 데스페로>는 요리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의 내러티브에 핵심 노릇을 하는 게 수프다. 할리우드가 지중해의 소박한 요리 라타투이에 재미를 봤는가 보다. 또다시 소박한 남부 유럽 요리인 채소 수프를 가져다 썼으니 말이다. 우리도 국물 요리에 요리 이상의 어떤 상징을 부여한다. 노숙자들이 ‘어허’ 하면서 뜨끈한 국물 한 그릇을 비우는 장면이려야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의 ‘그림’이 되지 그들이 설사 최고급 빵집 제품인들 케이크를 물어뜯으면 영 재미없게 되는 거다. 요리의 대가를 묘사하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도 눈을 지그시 감고 국자로 국물을 떠먹어보는 장면이 가장 그럴듯하게 차용된다(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신이 나온다). 하긴 일본 열도를 지금도 울린다는 <우동 한 그릇>도 국물 요리이다. 사실 수프를 왕이 사랑하는 고급 요리로 묘사하는 장면은 좀 과장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수프는 라타투이처럼 소박한 서민 수프다. 이 영화의 무대는 중세 유럽일 텐데, 이 시절의 유럽 문화를 평균적인 미국 관객의 선입견과 교양에 대충 두들겨 맞춘 인상이 짙다. 중세 유럽의 왕이 수프 따위에 목숨을 건다는 설정은 코미디 같은 얘기다. 축구공 만한 트러플버섯이나 사냥한 황금색 뇌조의 척수로 만든 수프라면 몰라도. 어쨌든 영화 도입부에 궁정 요리사가 수프를 맛있게 만들려는 지난한 노력이 묘사된다. 왕의 입맛에 착 붙는 수프를 만들어야 한다. 그는 비전의 요리책에서 불러낸 요리 도사에게 비법을 전수받으려고 한다. 이때 마늘이 등장한다. 그까짓 마늘, 할지 몰라도 서양 관객에게 마늘은 맛의 신비를 쥔 열쇠처럼 통용되곤 한다. 마늘을 평생 먹지 않는 사람도 흔한 서양인들에게는 꽤 그럴듯한 소재이다. 여기에다 포도주병이 수프에 빠지면서 수프의 맛을 환상적으로 바꾸는 장면도 나오는데, 술이 음식 맛을 낸다는 것을 신기해할 미국 어린이 관객을 겨냥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술은 학교에서 담배나 코카인과 함께 마약류로 취급되고 교육받기 때문이다.

[원태연] “난 이단아지, 나쁜 놈이지, 이제 익숙해”

비현실적이다. 맞다, 사실 그런 이야기다. 홀로 남은 소년, 소녀가 등을 맞대고 한집에서 살면서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러브스토리. 소녀는 아름답게, 소년은 건실하게 자라지만, 선의를 품었다 해도 침략자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남자가 둘 사이에 끼어들고, 누군가는 시름시름 앓다 목숨을 잃는 뻔한 결말. 그렇지만 조금 솔직해지자. 가슴 시린 어느 저녁이라면, 당신 역시 그림같이 예쁜 남녀가 그림같이 예쁘게 사랑하다 그림같이 예쁘게 이별하는 그림같이 예쁜 멜로영화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을까. 게다가 권상우, 이보영, 이범수 주연에, 지휘자로 이름을 올린 이가 원태연이다. 아니, 원태연이라니? 맞다. 90년대 초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 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같은 시들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시인 원태연이, 맞다. 남녀주인공의 이름부터 케이와 크림이라니 감상적인 그의 시쓰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 아닌가. 주특기인 러브스토리를 데뷔작으로 선택한 시인, 아니 감독 원태연을, 3월3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인처럼 안 생겼다는 말을 듣기 싫다”던 그는 의외로 줄담배에, 말수 적고, 돌려 말할 줄 모르며, 사격을 배운 탓에 상대의 눈을 지그시 조준하는 딱 남자 같은 남자였다. -개봉을 앞둔 심정은. =떨린다. -그전에도 시나리오를 몇편 쓴 걸로 아는데 이번 시나리오는 어떤 계기로 쓰게 됐나. =공동작가가 있다. 그 친구 노트 저쪽에 ‘사랑하는 여자 결혼시키기 대작전’이라고 적혀 있더라. 베스트셀러 극장 공모할 거라고. 그거 로맨틱코미디로 하면 안될 것 같고, 나한테 맡기면 슬픈 멜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된 거다. -기본적인 얼개는 본인이 짠 건가. 각본가에 다른 사람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고, 각색가도 따로 있던데. =일단 초고를 썼고. 그걸 다른 분이 각색했다. -원래 대답을 단답형으로 하나. (웃음) =말주변이 없어서. 길게 말할까? 알겠다. -각색가가 초고에서 덜어낸 부분, 첨가한 부분은 뭔가. =덜어낸 부분은 거의 없다. 구성이나 순서를 좀. -예를 들면? =솔직히 말해도 될까. 내가 작가잖나. 근데 작은 아이디어나 그런 것들 있잖나. 그걸 사람들이 너무 자기 것으로 착각하더라고. 그런 게 싫어서 그분들 이름을 크레딧에 넣은 거다. 시나리오는 내가 다 썼다. -시집에 등장할 것 같은 대사들도 등장하던데 이런 건 즉흥적으로 쓰는 편인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게 재떨이 좀 갖다 달라, 혹은 그냥, 같은 대사들. 아주 평범한 말인데 그 사람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말. 사랑은 양치 같은 거다, 그런 건 설명이 필요한 대사잖나. -사랑하는 남자가 원한다 해도 죽어가는 사람을 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여주인공은 이해하기 어렵던데. =그걸 어떻게 말로 이해를 시키겠나. 구조 같은 걸 말하자면 이건 할 말이 없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크림은 당장 강원도로 내려가서 집을 팔아서 산삼을 사야 한다, 고 생각한다. 케이는 그런 크림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을 느끼고. 산삼을 파는 사람은 사기꾼이어야 한다. 그리고 둘이서 단칸방으로 옮겨서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같이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이렇게 그린 이유는 뭔가. =안타깝잖아. -안타까움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크림은 아마 시집까지 갈 생각 없었을걸. 타이밍을 봤겠지. 거기서 그러잖나. 결혼식을 올렸으니 진짜 부부가 됐다. 이보영씨 코디네이터가 결혼식 장면을 찍을 때 나한테 살짝 와서 아무도 안 물어봤던 질문을 하더라고. 감독님, 왜 결혼식 하객들이 박수를 안 쳐요? 그래서 너는 참 예리해서 내가 알려줄게. 여기가 결혼식장이 아니라 장례식장이야, 그랬지. -케이와 크림이 식사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더라.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에 의미를 많이 둔다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집이 경기도에서 농사하던 집이라 밥에 민감하다. (웃음) 밥 먹었냐, 가 인사고, 밥 먹은 배가 왜 이래, 이게 인사다. -주인공들이 라면을 좋아하던데 라면은 좋아하나. =여긴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나왔다. 라면, 담배, 커피. -제목도 직접 지은 건가. =제목은 회사에서. 내가 원래 지었던 제목은 ‘사랑에 빠진 미운 오리들’이다. -극중 라디오 프로그램의 이름 말인가? =그게 원래 제목이었는데 회의를 하던 중에 대표가 슬픔보다 더 슬픈, 뭐 그런 거 없어,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차라리 그걸로 하자. 이야기만 붙여서. 안 슬프면 나 바보 되는 건데 딱 오니까 간 거지. -이모개 촬영감독과 조근현 미술감독이 합류했다. 화면이 인상적이던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작업했나. =그 영화 자체가 누가 이야기를 해주는 형식이다. 미술까지는 모르겠는데, (이)모개랑은 누가 이야기해주는 느낌을 살렸으면 좋겠다고 의견 조율을 했다. 자칫 비현실적인 이야기인데 모개가 현실감을 잡아줬다. -권상우는 그전에 다른 영화의 출연을 번복하면서 말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캐스팅했나. =나는 캐스팅이 된 다음에 만났다. -연출을 하기로 했으면 그전부터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감히 내가 권상우를 캐스팅하자 그럴 환경이 아니었다. 이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잡고서 나를 기쁘게 해줬지. 권상우가 캐스팅될 것 같아, 어때? 고맙죠, 그랬다. -이보영도 비슷한 케이스인가. =그렇다. 내가 주장한 건 정애연씨밖에 없다. -이승철, 정준호, 남규리 등 얼굴 보면 알 만한 연예인들이 깜짝 출연했다. =제작사의 인맥 덕이다. 나는 그렇게만 주장했지. 이승철씨 역으로 진짜 가수가 나와야 한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거든. 이걸 배우가 해야지, 아님 화면이 튄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한 게 이건 진짜 같은 이야기가 돼야 해서. -사랑, 연애, 이별, 그런 것들에 대한 시들을 주로 썼다. 첫 영화도 멜로인데 사랑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나. =관심이 많다기보다 내가 더 잘하는 거고. 내가 코미디를 쓰면 보지도 않더라고. -사랑 이야기에 소질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솔직하거든. 왜? 돌려 말하는 남자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남자가 멋있지 않나. 나는 그렇더라. 솔직하게 대하면 여자들이 좋아한다. -크림과 케이라니 이름부터 좀 민망하다 싶은 관객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의견은 없었나. =많았지. 사실 이름이랑 직업을 못 정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카페에서 대학 교수인 친구랑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 친구가 크림을 따로 달라고 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교수님, 그러더라고. 어, 너 어떻게 지내. 저 엠넷 PD 됐잖아요, 그러면서 명함을 주더라고. 그 상황에서 크림 나왔습니다, 이러는데 사람 이름처럼 들리더라. 오케이, 여자 이름 크림. 남자 직업은 라디오 방송국 PD. 여자 직업은 작사가. 남자 이름은 뭐로 하지? 강철규, 내가 아는 싸이더스 PD 이름이다. 생각해보니 이름이 참 착하더라고. 성이 강이니까 케이로 해야겠다. -1998년부터 영화 연출을 준비했다고 들었다. 자기가 직접 만들고 싶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건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그때 쓴 시나리오는 차승재 대표가 갖고 있다. 차승재 대표가 그걸 사서 연출을 하라 그랬는데 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 하면 안되겠다 싶더라. -그것도 멜로였나. =멜로였다. -혹시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진 않았나. =안 배웠다. -1995년 신씨네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일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때 제대를 했는데 민병천 감독이라고 알지? 그날 신철 사장도 만났던 것 같다. 당시에 민병천 감독이 준비하던 <나비>라는 시나리오를 썼고. 그게 잘 안돼 삼영필름으로 가서 또 쓰고. 딴 데 가서 또 쓰고. 2년이 지나더라고. 솔직히 나는 영화 연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열 받아서 시작했다가 거기 빠져버린 거야. 그러고 비디오가게에서 영화를 빌려보다가 5개월째 안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말이 되게 찍는 것도 힘든 거구나. -그 부분에서는 성공했다고 보는가. =안타깝긴 하지만 이게 내 손을 떠나갔을 때 작가가 가져야 할 마음상태가 있다고 본다. 그냥 애가 나오니까 청결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거다. -청결한 마음? =난 그걸 굉장히 중시한다. 탁한 마음 갖고 있으면 여지없이 날아온다. -그럼 민병천 감독은 이미 알고 있었나. =그날 만났다. -어떤 계기로 만났나. =그게 기억이 안 나. (웃음) -책 출판하려고 출판사에서 잡일을 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7년 동안 습작을 했고, 네달 동안 잡부로 일했다. 원래 세달 하는 건데 한달 더 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먼저 도전하는 타입이 아닐까 싶던데. =나는 그런 게 아니라 무모한 사람이다. 옛날에는 몰랐다. 내가 무식하다는걸. 요즘에 나이가 드니까 나한테 내가 잔인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는 여기 툭 나를 밀어놓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다. 울면서 배우는 스타일이다. -뮤직비디오도 두편 연출했다고 들었다. =정말 잔인한 경험이었다. 처음 작품은 이요원씨랑 서태화씨가 주인공이었다. 노래는 모를 거다. 안 떠서. 나는 뭐 하여튼 잘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제작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흑백으로 만들어버린 거다. 성질이 나가지고. 그 다음번엔 내가 작사한 노래를 가지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거지. 댄스음악이었어. 그런데 월드컵이 터졌지. 사장됐어. -요즘은 시 안 쓰나. =서른세살 때인가. 시를 쓰고 앉아 있더라고. 책 내려고. 슬펐지. 구라거든. 그 뒤에 안 썼다. -책 내려고 시 쓰는 게 싫어서? =그거야말로 진짜 구라지. 다른 시인들이 나를 욕하는 게 그 사람들이 나를 모르기 때문이지, 시에 대한 내 자세는 훌륭하다고 본다. -사람들이 뭐라고 욕하는데? =그게 시냐. 나도 쓴다. 그리고 이단아지, 쉽게 말하면. 나쁜 놈이지. 영화판에서도 그럴걸? 난 이제 익숙해. 작사판에서도 그랬고. -경희대에서 체육학을 전공했다고 나오더라. =사격선수였다. 고2 때부터 한 거다. 대학 들어가서 중국 시합 갔다 와서 그만뒀지. -사격을 시작한 계기는 뭔가. =너무너무 좋아서였지. 우리 학교에 사격부가 있었다. 고가의 운동이라서 참고 있다가 어떤 사고로 인해 보호가 필요해서 사격부에 들어갔지. 총을 갖고 다니면 날 괴롭히지 못할 것 같아서. (웃음) -혹시 누군가한테 찍혔나. (웃음) =농담이다, 농담. 총을 되게 좋아했다. 총이랑 말만 보면 가슴이 뛰어. -의외로 남성적인 취향 아닌가. =난 완전 남자다. 그리고 남자다운 사람을 좋아한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배우 류승범

스무살의 그는 짝퉁 아르마니 티셔츠를 입고 껌을 질겅이며 건들건들 영화 속으로 들어왔다. 고개 숙인 채 치뜬 눈과 궁상맞게 쪼그려 앉은 포즈가 엄청 잘 어울리는 배우구나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은 어울리고 자시고 한 오라기 관심도 없는 게 분명했다. 모처럼 날아차기를 해도 목표물에 미치지도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류승범은, 끝내 홉뜬 눈으로 눈밭에 널브러진다. 그러나 쓰러진 그 청년과 빼도 박도 못하게 눈이 마주쳐버린 관객과 영화인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신동’형 배우의 탄생이었다. 2년 뒤 류승범을 대중 스타로 만든 드라마 <화려한 시절>은 극중 인물들의 구박을 통해 그에게 “맷집 좋은 놈”이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된통 얻어터지고 돌아서서 “내 영혼까진 빼앗진 못할걸”이라고 구시렁거리는 류승범 때문에 한바탕 웃고 나면 휑하니 슬펐다. 너, 영혼은 그렇다 치고 당장 오늘 해질 때까지 서럽고 고달픈 일이 너무 많을 텐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대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요약한 대로,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는 주제를 구현한 캐릭터들을 통해 류승범은 난생처음 인생을 뜻대로 열어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품행제로>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이어졌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재능은, 양수겸장, 기습공격, 측면돌파로 쌩하니 질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20대 반환점을 돌고 찍은 영화 <주먹이 운다> <가족의 탄생> <사생결단>은 공인된 류승범의 걸출한 표현력이, 더 긴 호흡과 타이트한 화면의 압박 속에서도 능히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눈썹보다 길게 빠진 눈꼬리, 얼굴 절반을 역삼각형으로 덮는 입. 이목구비가 오목조목한 미남은 아니지만 길쭉한 선이 지배하는 류승범의 얼굴은 멀리서 봐도 표정이 선명하다. 비틀리고 구겨지는 변주의 가짓수가 끝이 없어서 단편 옴니버스 <이공>에서 함께 작업한 민규동 감독의 말대로 편집실을 행복한 고민에 빠뜨리는 표정의 편람을 과시한다. 풍부한 표현과 더불어 류승범 연기의 또 다른 고유함은 그의 몸에 내재된 ‘엇박’이다. <품행제로>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공동작가이자 중단된 프로젝트 <29년>을 류승범과 준비했던 이해영 감독은, 주어진 상황에서 엇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본능이 그에게 있다고 관찰한다. “인물들이 심각한 논의를 하는 장면에서 의자를 빼고 뒤에 앉아 다리 떨고 농담을 던져 심각함에 물을 타야만 직성이 풀리는 캐릭터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코미디 중 백미는 류승범의 엇박 기질을 활용하고 있다. 주인공 상환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받은 텔레파시에 응대하는 대사, “방송실에 계세요?”가 예다. 어쩌다 멜로 연기를 할 때 류승범의 엇박자는 수줍음으로 나타난다. 영화에서 그는 로맨틱한 기분이 들면 햇빛에 눈이 부신 듯 찡그리는데 어찌 보면 울려는 것 같다. 우리 눈앞에서 끓어오르는 20대를 보낸 류승범은 요즘 부쩍 달라졌다. 아니, 축적된 변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슴없이 기독교 신앙을 언급하고 작은 행복을 예찬한다. 반항아의 투항이라고 실망할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없다. 일도, 방황도, 놀이도, 남들이 20년에 걸쳐 치를 분량을 10년 동안 밀도 높게 해치운 덕에 다음 단계로 진행도 빠른 걸까? “그렇죠. 우리는 한번 발 담그면 끝까지 가야 도로 나오니까요.” 류승범의 웃음 섞인 동의다. 차기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류승범과 일할 계획을 세운 이준익 감독은 “동시대 남자 배우 중 그만큼 야성적 내면이 그대로 연기에 구현되는 배우는 여전히 드물다”고 말한다. 우연한 데뷔 직후 그를 인터뷰했던 전 <씨네21> 조종국 기자 역시 “변했다고들 말해도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들보다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한 배우”라고 평한다. 한편 이해영 감독은 “철부지 막내이기만 했던 인상에 언젠가부터 오빠의 이미지가 보인다”고 말한다. 생활의 변화가 그의 연기에 무엇을 더하거나 뺄지 우린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류승범이 인터뷰에서 열심히 들려준 이야기는 뜨거웠던 20대에 대한 안면몰수가 아니라 일탈과 월반의 선수가 찾아낸, 열정과 청춘을 연장하는 현실적인 방책으로 들렸다. -1년 전 어느 인터뷰에서 2008년은 학생처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다는 희망을 말하셨어요. 실제로 어떻게 보냈나요? =‘개과천선’의 의미는 아니었고요. (웃음) 왜 삶의 방식이 조금 달라지면 되게 재밌잖아요. 저는 워낙 무엇이 재미있나 초롱초롱 살피며 사는 사람이라서 제가 경험 못한 아침형 생활이 어떤 것인지, 이른 아침의 ‘내추럴 하이’(자연스러운 고양감)가 어떤 건지 맛보고 싶었어요. 더운 여름날 편의점 파라솔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때 세상이 멈춘 듯한 느낌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에요. -영화를 위해 몸을 만들었다가도 촬영 끝나면 억한 심정으로 몸을 망가뜨린다고 한 적이 있죠? 실제로 <주먹이 운다> 마치고도 15kg 쪘고요.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느낌을 구하게 됐다면 생활 습관도 달라질 거 같아요. =영화 끝나면 그동안 지긋지긋한 운동에서 해방된 것처럼 손을 놓아버렸죠. <야수와 미녀> 찍을 때는 79kg이 나갔어요. 가만히 있어도 살이 안 붙는 체질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직업이 배우니까 살이 찌면 결국 빼야 하는데 그러기가 너무 피곤해서 이제는 평상시에 기본적인 운동을 하고 체력을 마련하려고 해요. -류승범씨는 운동신경이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몸을 필사적으로 만들지는 않잖아요. 그 점이 늘 흥미로웠어요. =지금도 배에 왕(王)자 만들려고 운동하진 않아요. 몸의 미학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몸의 미학은 이런 거예요. 몸이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역사를 말해줄 때가 있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노가다 근육도 그렇고, 걷지 않고 앉아서 일하는 현대인의 복부비만도 그렇고요. 제 직업은 모델이 아니고 배우라서- 배가 나온다거나 하면 곤란하겠지만- 필요 이상 몸을 만들면 오히려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웃긴 얘기지만, 몸을 만들기보다 만들어진 몸을 없애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2년 동안 먹을 것 안 먹고 몸을 만들어놓았는데 들어온 역할이 완전 아저씨라면요. 스스로 “아, 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는데”하는 아까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꺼리지 않을까요? 몸이란 것이 또 만들면 보여주고 싶거든요. 몸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그쪽으로 끌고 가게 되는 거죠. 배우는 어느 선배 말대로 하얀 상태로 있다가 뭐든 시키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헬스클럽에 가면 유산소 운동만 한다고 잔소리 듣는데 아직도 무거운 역기랑 씨름하는 사람들 보면 “아유 왜 저런 데 힘을 쓰지?”싶어요. (웃음)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 견자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오랜만의 영화라 각별한 점이 있나요.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현장에 네번인가 다섯번 나간 것이 다였고 <라듸오 데이즈>도 여러 배우가 같이 연기하는 장면이 많아서 스스로 느낌은 영화 찍은 지 아주 오래된 것 같아요. 언론에 알려진 <29년> 외에도 중단된 작품들이 있었어요. 쉬고 싶어서 쉰 게 아니죠. 그러다보니 작품 선택의 기준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넓어져요. 며칠 전 <29년>의 이해영 감독님을 만나는데 당분간은 무엇을 하느냐보다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 계속 가동하는 것이 일단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제작사쪽에서도 요즘은 “우리만 믿지 말라”고 해요. 과거에는 남의 영화가 먼저 들어가면 배우 뺏긴다고 안타까워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더 확정적인 자본을 끌 시간을 벌었다고 좋아하는 분위기예요. 활기차고도 어두웠던 10대 -여섯살 무렵 충남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걸로 압니다. 그 이전 기억이 남아 있나요? =짤막짤막하게요. 온양 시내에서 주로 살았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시골에 머문 적이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서 뱀을 본 일이 기억나요. 긴 오솔길을 할머니랑 걸으면 아직 초저녁인데도 하늘이 까맣고 별이 무척 밝았어요. 잔디에 물 주는 호스를 틀어놓고 수영복 입고 형이랑 조스 놀이한 것도 기억나고요. -태어날 때, 어머님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들었어요. 무사히 태어나게 해주면 목회자로 키우겠다고 기도드리셨다면서요. =그건 뭐, 어머니가 제 성향을 잘 모르실 때라 마음대로 정하신 거죠. (좌중 웃음) 어쨌건 결과적으로 모태신앙을 갖게 되었고 종교를 못 떠나요. 나름대로 거칠어지려고 해도 기본을 어쩔 수 없어요. 신앙이 곧 제 자유의지가 되어버렸어요. -최근 들어 류승범씨의 신앙이 주목을 받지만 2001년 기사를 봐도 “찬송가를 쓰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신의 존재가 매일 자신 안에 작용하는 힘인가요? =매일 만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돼요. 이따금 극한상황에서 무서우리만큼 가까이 다가와 대화를 하는 일이 있죠. 하지만 저는 종교를 친구나 지인에게 강권하지 않아요. 교회에서는 권하라고 말하지만, 아니 하나님이 나보다 능력이 좋으신 분이…. (좌중 웃음) 신이 매일 저를 작동하는 것까진 아니라도 작용하죠. 운전하다 앞차가 끼어들면 “아이시!” 하려다가도 “형제님, 축복합니다. 가시죠”한다거나. (폭소) 종교는 갖고 있다고 떠벌려야 딴 짓 못해요. 컴퓨터 배우려고 싸이월드를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 “크리스천이 담배 피우고 술 먹고 뭐하는 짓이냐”는 리플이 장난 아닌 거예요. 원래 남의 욕에 심장이 무딘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담배도 지금 멈춘 상태고 클럽에서 디제이할 때도 주로 물을 마셔요. 10년 넘게 술과 담배를 해서인지 더이상 재미도 별로 없고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비마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은 성장기였을 거라고 짐작해요. =부유한 환경에서 학업에 열중하기만 하면 미래가 보이는 처지가 아니었죠. 꿈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요. 그래도 불우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덕분에 선택이 빨랐죠. 어차피 초이스가 별로 없으니 빨리 선택해서 빨리 갔죠. 활기차고 좀 어두웠어요. -활기차고 어두웠다고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품행제로> 같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을 떠올려보며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지만…. =사실 <품행제로>의 중필이라는 아이 보면 스산하거든요. 저는 중필이가 가슴 저렸어요. 어둠이 만성이 되다보니 견디는 방법을 알게 된 아이랄까. 10대 때 생각해보니 조직 생활은 못할 것 같았고 혼자 할 수 있는 일 중 음악에 목표를 뒀어요. 당시 컴퓨터 한대면 할 수 있는 미디음악이 유행이어서 천호동 이태원을 전전하면서 나이트클럽 DJ 형들을 쫓아다니며 음악과 디제이 공부를 같이 했는데, 으아 재능이 너무 없는 거예요. 지금도 제가 DJ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요. 제가 약간 박치 끼가 있거든요. 음치도 있고. -설마! =배워보면 금방 알아요. 제가 아니다 싶으면 포기는 빨라요. 한데 그렇게 꿈을 접고 나니 그나마 밝은 어둠은 없어지고 어두운 어둠만 남았어요. 다크하게 살았죠. 지금 2000년, 2001년에 찍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면 영화 속 제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겠어요. 너는 왜 그렇게 화가 많았니, 묻게 돼요. -그나저나 박치라는 말씀은 정말 의외입니다. 류승범씨의 대사, 액션, DJ 활동에 공통된 요소는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왔거든요. =흑인의 리듬감은 리듬감이라고 안 하고 그루브(groove)라고 해요. 얘들은 백인의 그것과 달리 리듬이 엇박인데 일종의 박치인 거죠. 흑인음악을 들어보면 “딱 딱” 이 아니라 “딱 따닥 딱딱” 하는 마치 한국의 장단 같은 박자예요. 제게도 엇박의 리듬감은 있는 것 같아요. 딱 떨어지는 리듬감을 지닌 사람과 달리 전체적인 삶의 태도나 방식도 조금씩 어긋나 있고. -힙합 음악도 같은 이유에서 좋아하는 건가요? =예전에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나 정서를 중요시했어요. 지금은 가사도 없는 하우스 음악,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좋아해요. 단순한 것을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음악인데 네가 알아서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느끼라는 음악이에요. 시니컬하죠. 똑같이 춤을 추고 있으면서도 어떤 이는 슬퍼하고 어떤 이는 기뻐해요. -2007년부터 공식적인 자리에서 디제잉을 시작했습니다. 엊그제 강남 클럽에서 열린 한 대학의 졸업파티에서 플레이하시는 모습을 구경했는데요. 스타 DJ의 장단점이 있더군요.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는 직방인데, DJ의 일거수일투족에 눈이 쏠려 사람들이 스스로 춤추고 즐길 때까지 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매번 그렇다면 힘들겠죠. 노는 데에 익숙한 클러버들이 모이는 자리는 또 달라요. 저도 에너지를 많이 받죠. 음악 틀다가 너무 흥분해서 떨어진 적도 있고. 하지만 엊그제 같은 행사는 제가 에너지를 확실히 빼앗기는 날이죠. 한창 나이에 공부하느라 놀이에 목말랐던 학생들이 클럽에 왔으니 팍팍 제 기운을 빼가는 거죠. (웃음) 돌다리, 두들기면 관객이 알아차리더라 -데뷔 초 인터뷰에서는 영화도 많이 안 본다고 했는데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음악, 패션 등 문화예술계쪽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한 걸로 보입니다. 그냥 어울리는 게 아니라 본인의 취향과 관점도 있는 것 같고요. 의식적으로 접근하고 배우신 건가요? =책으로부터도 배우지만, 저는 공부는 돌아다니면서 사람한테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항상 많이 만나고 눈과 귀를 세우고 있어요. 다행인 것이 인복이 많아서 만남의 시간이 아까웠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전 배우들이 움츠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직업이 좋은 것이 다른 분야 아티스트들을 만나고자 하면 보통 사람보다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식당에 걸린 좋은 그림을 보고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아무래도 일반 손님보다 성의껏 알아봐줘요. 배우가 관심분야에 대해 조금만 더 적극적이면 길은 훨씬 많이 보여요. 백현진 형도 그랬고 그런 식으로 만난 분들이 많아요. 만나서 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느끼고 싶거든요. -액션이 좋은 배우를 언급할 때 항상 거명됩니다. 류승범씨의 경우 역시 몸 연기의 근본은 춤이었다고 봐야 할까요? =사실 강동원 같은 친구들이 팔다리가 길어 검을 잡으면 동작이 멋지죠. 다만 액션에도 연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때릴 때도 왜 때리는지 왜 칼을 뽑는지 감정을 갖고 하려고 노력해요. 액션 잘하는 배우들 보면 동작으로만 소화해내는 게 아니라 연기를 함으로써 좀더 잘하는 것처럼 보여요. 1번부터 10번까지 합을 짰다면 동작으로만 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합을 완전히 숙지해서 툭 치면 그냥 나오게 만들고, 그 다음에 연기를 하는 것이죠. 성룡의 동작은 이연걸만큼 멋있지 않지만 동작의 마무리와 연기가 뛰어난 거예요. -감독들이 류승범씨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본능, 순발력, 직관 등이에요.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제작기를 보면 연기를 하다 보니 정말 계란을 밟아도 안 깨졌다거나 와이어도 없이 대뜸 물구나무서기에 성공하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이상한 연상이지만 저는 그런 모습이 상징적인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요. 본능적으로 뛰어난 배우라는 평가에 자부심을 가졌던 시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자부심까지는 아니에요. 단 우연하게 데뷔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배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주는 면은 있는 것 같아요. 본능을 믿는다기보다 제 자신을 믿어요. 내가 이 돌다리를 건너기로 선택했고 감독이랑 함께 바위랑 작은 돌을 멀찍이 가까이 배열했어요. 그러면 건널 때는 그냥 당당하고 씩씩하게 쭉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거기서 또 두들기고 흔들리면 관객이 알아차려요. 하지만 천재도 아니고 “난 100% 본능적인 배우”라고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해요. 전세계를 통틀어 혹시 그렇지 않나 의심되는 배우는 드니 라방(<나쁜 피> <퐁네프의 연인들>)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개런티 받고 일하는 배우 중에 “난 본능에만 충실하면 돼”하면서 촬영 전날 두 다리 뻗고 자는 배우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직관이 발달한 배우쪽에 속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텐데요. =다른 배우를 두고 어느 분이 쓴 말에 감탄한 적이 있어요. “10점은 못 맞추는데, 4점, 5점짜리 과녁을 화살로 뻥 뚫어버리는 배우”라는 표현이었어요. 10점을 딱 쏘면 박수가 쏟아지는데, 우리 같은 배우는 4점, 5점을 쏘되 아예 관통해버리니까 보는 사람이 멍해져서 점수 매기는 걸 잊어버린다는 거죠. (좌중 웃음) 그래서 과녁을 다시 설치해주고 쏴보라고 하면 또 뚫어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10점을 못 맞춰도 계속 일은 할 수 있는 거예요. (웃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배우”같은 식상한 표현에 비해 참 훌륭한 묘사였어요. -(웃음) 정진하겠습니다. 봉태규씨 인터뷰에서 읽었는데 2000년에 영화상 신인상 후보로 시상식에 갔다가 알아봐주지 않아서 2층에 앉은 적이 있었다면서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찍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들어가기 전에 옥수동 형네 집에 얹혀 살 때였어요. 깡소주 사와서 새우깡이랑 먹고 있는데 태규가 우리집에 놀러와 자장면을 시켜먹었어요. 태규가 시상식은 가고 싶은데 혼자 가긴 뻘쭘하니까 나를 엮으려고 작전을 세운 것 같아요. (웃음) 당시 배우라는 의식도 없었던 저는 생각도 전혀 못했는데 태규가 시상식 구경 가자는 거예요. 택시 타고 세종문화회관에 갔는데 쪽팔려서 차도 멀찌감치서 내렸어요. 레드카펫 말고 옆으로 올라갔는데 후보라고 말해도 문을 지키는 분이 모르는 거예요. 어찌어찌 스탭이 나와서 입장은 했어요. 원래 신인은 2층에 앉는 줄 알고 자연스럽게 2층에 앉아 있는데 후보 호명할 때 옆자리 관객이 무슨 큰일난 것처럼 저를 흘끔거리는 거예요. 그 순간까지 아무렇지도 않다가 왠지 무안해져서 태규를 끌고 도중에 나왔어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포스터가 아직도 기억나요. 류승범씨가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었죠. 역할 비중을 생각하면 뜻밖이었어요. =흑백 사진인데 기태 머리만 빨갛죠. 30대 세명은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축 처져 우중충하게 걷고 있는데 영화 속 유일한 20대인 기태는 거기 딸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웃고 있어요. 어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좋은 거죠. 그 미소는 인생의 뒤를 돌아보는 웃음이 아니라 관객을 바라보며 영화의 의미를 전달하는 거죠. “나 어딘가로 가요. 기분 좋아요.” -<품행제로>는 배우 류승범이 가진 표현력의 진열장입니다. 이소룡 연기도 해보고 송강호 연기도 해보고, 지금 보면 그맘때 사진첩 보는 기분이겠어요. =중학교 시절이라고 똑같이 말해도, 누구는 수학여행을 누구는 체육대회를 기억하잖아요. <품행제로>는 제 20대에 그런 추억이에요. 굉장히 재밌는 시절이었죠. 월드컵이 있었고 연애도 시작했고 돈도 벌기 시작할 무렵이었어요. 그즈음 내 길이 미세하게 열리는 걸 느꼈어요. 그때까지는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한번도 실감 못했거든요. (좌중 웃음) “나도 사람이구나, 뭔가 할 수 있구나” 처음 느꼈어요. 신파 같은 정박보다 엇박에 끌린다 -류승범씨 연기는 유난히 혼잣말이 많아요. <품행제로>에서는 상대를 때리면서도 두려움을 감추느라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고,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상환도 ‘아유’, ‘저기’하는 식으로 사이 메우는 혼잣말이 끊이질 않죠. <다찌마와리…>의 문어체 독백은 말할 나위도 없고요. =지금은 여백에 끌리지만 당시에는 여백이 싫어서 꼭 채워넣어야 했어요. 대사도 말이니까 “너 밥 먹었어? 뭘 먹었어?” 하기보다 “야, 너 밥 먹었어? 아니, 근데 뭘 먹었는데?”라고 하는 편이 더 찰지고 맛있다고 생각한 거죠. 지금이라면 “밥 먹었어?”그러고는 한참 콤마를 찍겠죠. 제 성향이 바뀐 건 음악 들을 때 실감해요. 전에는 웅장하게 시작해서 하이라이트가 다시 하이라이트를 낳는 모든 걸 주는 음악을 선호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끝까지 계속 줄 것처럼 안 주는 음악이 좋아요. 다 듣고 나서 “야잇”하며 화가 나서 또 듣는 거예요. (웃음) 근데 그 긴장이 클라이맥스보다 더 미쳐요. 일렉트로니카 음악 중 미니멀이라는 장르는 기본 리듬과 멜로디 하나로 이루어지거든요. 그래서 누구나 음악을 만들지만 또 누구나 훌륭한 걸 만들진 못해요. 거기에 숙제가 있는 거죠. 누가 침묵할 때 “저 사람은 많은 걸 내면에 안고 있어서 침묵하는 거구나”하는 거랑 “아, 쟤는 말을 하면 깨니까 안 하는구나”는 구별되잖아요. (폭소) -웃을 포인트를 주지 않고 끌고 가다 끝에 가서 피식 바람이 새게 만드는 코미디에 능해요. 다들 진지한 분위기에서 심각한 걸 알면서도 어떻게든 바람을 빼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캐릭터에 드러나고요. =그것도 역시 엇박의 일종이죠. 충청도에서 자라진 않았어도 핏속에 있나봐요. 형이 만든 <짝패>에도 나오지만 충청도는 살벌한 걸 살벌하게 표현 안 해요. 가령 사람을 죽일 때 “아프지? 아프지?” 하면서 때리다가 죽으면 “죽으니까 사람이여” 이러는 거죠. 시니컬하잖아요? 저도 그런 유머가 좋아요. 코미디뿐 아니라 슬픔도 정박 아닌 엇박이 좋아요. 코미디건 멜로건 너무 정직하면 신파처럼 느껴져요. 예술은 현실에서 평면만 보이는 감정을 끄집어내다가 입체적으로 만드는 작업이잖아요. 곧이곧대로 옮긴다면 우리가 할 일이 뭐 있겠어요. -<아라한 장풍대작전> 마지막 결투장면도 생각나네요. 흑운(정두홍)이 비장한 구세주로 등장해 세상을 구제하려고 하는데 상환이는 놀이로 맞서잖아요. “아 왜 이러셔? 심각하게” 하면서 널빤지를 스케이트보드처럼 올라타고 싸웠죠. =일부러 목소리도 한번 까뒤집어서 연기했어요. 흑운이 한대 치면 “아이씨, 배 아프잖아아아”하면서 투정부리는 톤으로 갔죠. -연기생활에서 <주먹이 운다>가 두 번째 중요한 지점 같습니다. 그전까지 별로 없던 클로즈업도 많았고 반면 표현은 최소화됐죠. 평소 매우 풍부한 눈과 입의 움직임을 대폭 제어했어요. 뭐랄까. <품행제로>의 중필이 말할 내용이 하나면 열 마디 하는 아이였다면 <주먹이 운다>의 상환은 할 말이 열개라면 한마디하고 마는 성격이었는데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연장선 위에 있는 연기이기도 해요. <품행제로>가 과장과 허풍으로 자기 속내를 감추었다면 <주먹이 운다>는 다른 방식으로 감춘 거죠. 상환이가 딱 한번 우는데, 할머니 면회실에서 눈물을 흘리잖아요. 할머니가 맨정신이었다면 못 울었을 텐데 넋을 놓고 자기를 못 알아보니까 혼자라서 운 거예요. 사람이 다 그래요. 스스로에게도 솔직해지지 못하고 주위의 딴 것을 뜯어다가 자기를 포장하죠. 내 학교, 사는 동네, 그런 나 아닌 것들로 가짜의 나를 만들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마침내 자신도 스스로 어찌할 수 없게 되고, 그걸 지키기 위해 살잖아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비겁하다기보다 솔직해지기에는 환경이 너무 받쳐주지 않는 아이들이었어요. 사랑스러운 것까진 아니라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인물, 영화에 담길 만한 인간인 거죠. -<주먹이 운다>를 마치고 연기하는 일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그건 직업으로 연기한다는 사실에 따라오는 여러 요소를 받아들이기 힘겨워서 한 말인가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때까지 앞만 보고 왔잖아요. 근데 어느 순간 내가 인감도장 갖고 이번에는 이 영화, 다음에는 저 영화 도장 찍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마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그때까지도 갈등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심각하게 유학을 고민했죠. 언젠가는 나이 들어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남들이 인정하건 안 하건 전 이제 평생 연기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몇년의 공백은 차이가 없거든요. 그래서 불황이라 해도 불안하지는 않아요. 다만 약간의 생활고가…. (웃음) 어려서 일을 시작해 돈을 허투루 썼던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건 꼭 해야 하고, 전셋집에 인테리어를 하질 않나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곤 했죠.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왜 단역이 오버를…” -<가족의 탄생>은 당시로서는 공효진씨와 공연한 사실 자체가 외부자에겐 놀라운 일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공효진씨 최고의 연기라고 생각하고, 두분이 함께한 장면들이 무척 좋았어요. 출연에 망설임이 없었나요? =완전히 다시 연애는 아니었지만 잘 지낼 때였죠. 1년 정도 헤어진 건 우리가 연애는 좀 안 맞는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지 서로 사람한테 실망한 적은 없었거든요. <사생결단>을 찍고 있었는데 김태용 감독님이 승범이가 하면 어떨 것 같냐는 말을 꺼내셨고 효진이가 선뜻 쿨하게 저한테 연락을 한 거예요. 저도 두번 생각하지 않고 일단 시나리오를 달라고 했는데 참 좋았어요. 카메오를 원래 좋아하진 않지만 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하기엔 <복수는 나의 것>부터 <만남의 광장>까지 카메오 출연이 꽤나 많잖아요? (웃음) =일단 하기로 하면 카메오로 인식하지 않고 똑같은 역할로 봐요. 하는 역도 없이 얼굴만 내미는 카메오는 싫어요. 서너신만 나와도 시나리오 전체를 읽어요. 단 한 장면 나와도 필요없는 인물은 없다고 보거든요. 시나리오상 불필요하더라도 좋은 연출자는 결국 필요를 불러일으켜요. 그런데 <가족의 탄생>은, 우와 서러웠어요. 나름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감독님, 촬영기사님과 설정과 캐릭터를 의논하고 그랬는데,“왜 단역이 오버를…” 하는 공기가 현장에서 느껴지는 거야. (폭소) 그래서 그냥 상의 안 하고 준비한 연기를 했죠. 근데 모니터를 보니까 내가 없어! 무슨 설정을 해도 내 대사의 반은 효진이 반응숏인 거예요! 몇신 없으니 디테일로 승부하려고 설정이 무지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대화를 하다가 여자 앞에서 양말을 털면서 신는 연기가 있어요. 그걸로 전 그 집의 공기를 표현한 거예요. 또 여자 앞에서 양말을 턴다는 행위로 둘이 살림을 했던 것 같은 느낌을 전한 것이고 젊은 애들은 하지 않는 동작이니까 인물의 나이도 어느 정도 표현한 거죠. 그런데 얄짤없이 넘어가더라고요. (좌중 웃음) -<만남의 광장>에서 부임하는 길에 지뢰를 밟아 며칠이나 꼼짝 못하는 교사 역으로 출연해 ‘장면 도둑’ 소리를 들었는데요. 연극 워크숍처럼 하나의 상황을 주고 끝없이 변주하는 연기라 본인도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시간 경과와 설정은 시나리오에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대사와 행동을 만들었어요. <주먹이 운다>와 <사생결단> 같은 지독한 영화를 한 다음이라 대놓고 희극을 하고 싶었던 욕구를 나름 해소했어요. 그런 경우는 완전 품바짓을 해야 해요. 피에로는 자신이 미쳐 있지 않으면 딱 걸리거든요. 쌈마이라고 욕 먹는 걸 무서워하면 안돼요. 쌈마이의 끝을 가줘야 욕을 안 먹어요. 그런데 다 찍고나서 퇴장이 흐지부지한 것 같다고 추가촬영을 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제가 연기를 좀 과하게 한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죠. 시나리오에 없던 신이 필요해졌다는 건 제가 잘못 했다는 뜻이거든요. -출연작을 보면 공효진씨 정도를 제외하면, 경력이나 모든 면에서 강한 남자배우와 공연한 예가 많아요. 백찬기 선생 같은 TV 대선배부터 안성기, 최민식, 황정민씨까지. 차기작 후보 중에 <용서는 없다>라는 작품도 설경구씨와 나란히 출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고요. 남자쪽이 좀더 편합니까? =생각보다 제가 여자를 잘 못 대해요. 누나들이 도리어 편하고 또래 이성은 불편해요. 특히 요즘 또래 여배우들은 너무 예쁘잖아요. 저만 꼭 뒤떨어진 인간 같고 나만 연예인, 배우 아닌 거 같아요. 시상식 같은 데를 가도 왠지 뒤에 가서 비웃고 쟤는 왜 여기 왔냐고 할 것 같다니까요. (웃음) 근데 최민식 선배님, 황정민 형 만나면 편안한 것이 같은 부락 식구 같아요. (좌중 폭소) -그렇다면 여자를 친구로 둔다는 것이 류승범씨한테는 쉬운 일이 아니군요. =거의 불가능하죠. 저는 남녀는 친구가 되기 어렵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보거든요. 덤덤해지지 않으니 이성을 만나기 두렵죠. 전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웃음) 무슨 말이냐면 남녀불문하고 저는 남성/여성으로서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 배우들은요. 결혼해서 자식이 생기고 할아버지가 되어도 누군가의 감정을 빼앗아와야 하는 직업이니까. 제가 여자라면 아직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고 설렐 거 같아요. 미키 루크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도 아직 촉촉함을 간직해서라고 생각하고요. 브래드 피트가 천재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자기를 참 잘 알잖아요. 장르영화의 거친 역도 하지만 배우로서 여자들에게 언제든 탄성을 자아낼 힘을 끌고 가니까요. 옷 입기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 -최근에 옷에 대한 집착이 없어졌다고 밝히긴 했지만, 옷 입기를 즐거워하시잖아요. 한때 쇼핑 중독이었다고 표현한 적이 있기도 했죠. 옷 입는 즐거움도 여러 가지일 것 같은데요. =옷은 저한테 그날의 기분을 만드는 도구예요. 제가 옷을 꾸며 입는 이유는 자애(自愛)라고 해야 하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사실 옷 잘 아는 사람들이 옷 모르는 사람보다 돈은 덜 쓸걸요? 잘 모르는 사람이 백화점 가서 한꺼번에 사죠. “난 돼지고기를 좋아해”라는 말과 “난 옷을 좋아해”라는 말은 다르지 않아요. 다만 전에는 옷에 허비한 에너지가 많긴 했어요. 말하자면 다른 거 안 먹으면서 돼지고기 좋다는 곳마다 쫓아다닌 거죠. 그런데 이젠 확실한 내 스타일이 생기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있는 옷으로 돌려입고, 막아입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무조건 편안하게. 과거에 옷에다 저를 맞췄다면 이제 옷이 나한테 맞춰야 해요. 그리고 저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옷 잘 입고 겉모습 화려한 배우를 보면 “쟤는 영혼이 맑지 않고 허영기가 있어. 저런 데 신경을 쓰니 연기적 에너지가 덜할 거야”라는 편견이 있잖아요. 반대로 허름하게 하고 다니면 막연히 연기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든가. 사실 그렇진 않거든요. -그래도 ‘패셔니스타’로 인식되고 패션 에디터, 디자이너와 가까우실 텐데 “요즘 스타일이 나빠졌다”거나 감을 잃었다는 말을 듣게 되는 일이 걱정되진 않나요? =받아들여야죠. 이정재씨가 한 시대 풍미한 패션 아이콘인데, 그렇다고 지금 빅뱅 옷을 입을 순 없잖아요? 그건 오히려 이뤄놓은 바를 깎아먹는 거죠. ‘패셔니스타’라는 호칭도 잘 모르겠어요. 저, 꽤 오랫동안 워스트 드레서, 패션 테러리스트로 불렸거든요. 어느 날 평가가 바뀐 거예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멋있어야지 옷이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임스 딘이 패션 아이콘이 된 데에는 그의 성격과 표정이 포함돼 있는 거죠. -TV 연예 프로그램이나 가끔 나올 때면 영화 속 모습과 크게 달라서 희한했어요. 굉장히 공손하고 좀처럼 나서지 않으려는 태도가 확실히 보이거든요. 고정 이미지가 강해서 방어를 하는 걸까 싶기도 했고요. =데뷔 초에는 방어하려는 태도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배우에 대해서는 편견이 좀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조금만 변해도 달라보일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원래 일대일 만남은 편한데 다수를 상대로는 불편해요. 학교 다닐 때도 교실 안에서는 장난을 못 치고 하굣길에 친한 친구 앞에서는 난리였죠. 게다가 “35번, 일어나서 읽어봐”하면, 글씨가 입체로 보이고 철자를 틀리게 읽는 난독기도 있어서 수업 시간에 공포가 좀 있었어요. 데뷔 뒤에도 라디오를 할 때면 불안감이 남아 있었죠. 20대의 설레는 마음 유지하고파 -동물을 키우는 일을 무서워한다고 말한 적 있어요. 류승완 감독님에 의하면 어디 나들이 가면 조카들이 차 근처에만 가도 다칠까봐 굉장히 챙기고, 감독님이 어디 멀리 가도 사고날까 걱정이 많다고 들었고요. 가까운 존재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강한 편인가요? =무의식에 있을지는 몰라도 트라우마까진 아닌 것 같고요. 동물은 원래 싫어했는데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는 중이에요. 효진이가 기르던 갈색 푸들을 맡았어요. 제가 워낙 걱정을 사서하고 늘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요. 예를 들어 효진이가 상을 타오면 기쁜 날이잖아요? 요즘은 달라졌지만 예전의 저는 축하하기보다 “야, 넌 이제 X된 거야” 하는 반응을 보였어요. 제가 상을 받아도 “와, 이제 난 끝장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빡세게 살아야 되나, 큰일났다.” (폭소) 그런데 효진이 만나서 제가 사람 된 거예요. 이 친구는 정말 낙천적이에요. 완전 신이 내린 평범한 기준에 합당한 삶을 사는 아이거든요. 그런데 평범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라 독특한 매력을 갖게 된 거죠. -거기서 평범하다는 말은 비범의 반대말이 아니군요. 신이 인간에게 의도한 방식대로 산다는 뜻? =‘노멀’이죠. 희로애락을 다 받아들이고 자연을 사랑하고… (기자가 웃자) 진짜로 효진이는 그래요. 분리수거 꼭 해야 하고, 환경운동에 꿈이 많고, 저보고도 이제 너도 시작하라고 말해요.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형과 형수(영화제작자)가 사는 모습이 류승범씨가 지닌 결혼의 상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까? =결혼생활의 현실을 지켜보았기에 숙제가 많다고 느껴요. 연상의 친구도 많다보니 유치원 다니는 아이를 둔 연배의 이야기도 많이 듣거든요. 과연 나라는 사람이 현실을 헤쳐갈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죠. 그러나 현재로서는 꼭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거 해야 사람 되는 것 같아요. 못 이길 것 같아서, 희생과 사랑이 두려워서, 피하는 건 비겁해 보여요. 그만큼 힘들다는 건 분명 그 너머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류승범씨에게 20대를 보내는 일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일도 무척 많이 했고, 배우로서 청춘의 얼굴을 연기하다보니 남보다 두세배 인생을 살며 청춘의 행복과 힘겨움을 경험했을 테니까요. 시네마테크 행사에서 <아이다호>를 추천작으로 고르신 것이나, 신앙에 다시 부쩍 진지해진 것도 그래서 아닐까 짐작했어요. =스물아홉, 서른이라는 숫자가 주는 느낌이 굉장한 건 아닌데, 고민의 폭이 점점 커져요. 저란 사람이 고민하길 좋아하고 자기를 혹사해야 제대로 산 것처럼 느끼는 피곤한 타입이에요. 심장이 멈추지 않고 항상 뜨거웠으면 좋겠어요. 늘 설레지 않으면 배우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20대에는 나이 먹은 선배들 삶이 재미없을 것 같았지만 나이 들어보니 다른 재미가 있잖아요? 아이돌들 보면서 “너네도 나이 들어봐라. 알록달록한 옷 입고 찍은 사진 다 태우고 싶단다” 할 수 있는 재미도 있고요. (폭소) 그래도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고 치고, 30살에서 60살까지 한번 살래, 20대를 세번 살래 묻는다면 후자를 고르긴 할 것 같아요 에너지를 잃고 싶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좌충우돌을 계속해도 사람들이 아무 말없이 기다려 준다는 점이 좋겠죠. (웃음) 追伸 2월 말 서울의 한 클럽에서 열린 어느 대학 졸업파티에 류승범이 DJ로 나선다고 하여 구경하러 갔다. 밤 11시를 넘기자 후드를 눌러쓰고 흰 캔버스화를 신은 그가 생수통을 들고 도착했다.“일 마치고 가서 빨리 쉬어야죠”라는 엷은 피로감이 밴 잔잔한 말투가 영락없이 일하러 온 사람이다. 젊은이들의 환호로 시작된 그의 플레이는 1시간 반가량 계속됐다. 천변만화하는 컴퓨터그래픽 영상과 일렉트로닉 리듬의 무궁동(無窮動) 속에, 부지런히 음반을 고르는 류승범의 자리만 이상하게도 동그마니 고요해 보였다. 이틀 뒤 인터뷰에서 내가 던진 많은 물음은, 결국 민망해 꺼내지 못했던 하나의 질문을 에둘러간 샛길이었는지 모른다. 안정과 애정의 결핍으로부터, 그러니까 머리가 아닌 몸으로부터 예술을 길어 올린 아티스트의 육체가 시간과 함께 자연히 변해갈 때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류승범이 다른 이야기 끝에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대답을 들은 기분이 되었다. “배우는 내 직업이고 좋은 인간으로 살아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예술이에요.”